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에 대하여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이태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18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강유가람 감독 

진행 김보라 감독 (<벌새>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공간의 서사 속에서 우리는 그에 발맞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함께 숲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사는 것이고, 우리의 공간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용산부터, 지금에는 을지로까지 불안정한 공간에 대한 서사의 시작은 그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강유가람 감독의 <이태원>은 기지촌의 역사를 가진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라는 세 인물을 통해 이태원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주말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퀴어한 것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서사에 대해 감독은 이야기한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속 삼숙, 나키, 영화 세 인물의 캐릭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매력이 넘친다. 다채로운 공간과 인물의 색이 녹아있는 <이태원>이라는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며, 강유가람 감독과 김보라 감독이 함께한 인디토크를 소개한다.  

 



 

김보라 감독(이하 김보라): 오늘 대담을 진행하게 된 김보라입니다. 강유가람 감독님 소개 먼저 듣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날 좋은 토요일 오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태원 연출한 강유가람입니다.

 

김보라: 팬으로서 감독님의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요, 10년에 걸쳐서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이태원이라는 영화 또한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처음 기획하실 때의 의도와 완성하고 나서의 결과물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강유가람: 영화를 시작하기 전, 처음에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인물을 만나기 전까지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지인을 통해서 나키라는 인물을 만나며 이 분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기지촌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삶의 굴곡이나 아픔 같은, 제가 상상하는 상이 있었고 이런 것들을 영화 속에 많이 담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편견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 인물들을 만나기 전 저의 생각들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이태원의 영화 속 인물들을 만나고 나니 이분들이 자신의 삶을 피해자처럼 보여주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고 저 또한 이 여성분들이 한 시기에 기지촌 여성의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에 대해 한정적으로 묘사를 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사람, 이웃 주민으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보라이태원에 나온 세 명의 캐릭터가 각각 다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나키나 영화가 기지촌에서의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긍정하는 반면에 상숙은 계속해서 자신이 양갈보라고 불리우는 것에 거리를 두는 말을 하고,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리고 또 우사단로에 문화를 만들어가는 청년들은 다른 입장이 있고요. 저는 영화를 보며 마음에 남았던 것이, 청년 한 분이 윤락여성과 윤락업소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그 표현을 쓰시기 전에 약간 머뭇거리세요. 그런 표현을 쓰면서 자신들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 생각을 할 때, 이 영화 속 세 명의 노년 여성들을 보고 그들이 어떤 마음들을 가졌을까 궁금해요. 그들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어요?

 

강유가람: 일단 청년들이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우사단로라는 공간이 밝아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에는 어딘가 무서운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오면서 활기가 넘치는 우사단이 된 건 사실이거든요. 저도 그분들의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말씀하신 부분처럼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어떤 분들이 살고 계시는지에 대한 이해는 제가 생각하는 부분과는 맞지 않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태원 촬영을 하면서도 제가 세 명의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얘기도 드렸기 때문에 영화 보러 오셨을 때엔 그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영화를 보시고 실제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기지촌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와 관련된 분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너무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깊이 나누지 못했어요.

 

김보라감독님께서 영화 속 인물 중 어떤 분에게 가장 이입하여 이 영화를 찍었을까 궁금해요. 저는 오프닝부터 상숙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나오니까 처음에는 상숙님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태원에서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자주 등장하는 클로즈업 장면인데요, 그런 장면은 주로 나키에게 있더라고요. 나키의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발톱, 속눈썹, 칫솔이 담긴 컵, 싱크대의 때, 그리고 깎다 만 사과 같은 것들요. 그리고 봉급이 깎였을 때의 나키의 옆모습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제가 극영화를 하다보니 그런 것들이 더 눈에 보였는데, 다른 캐릭터 보다는 유독 나키에게 그런 지점이 보여서 개인적으로 궁금하더라고요. 클로즈업으로 찍으실 때 어떤 의도를 하셨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드시면서 어떤 캐릭터에 이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다큐멘터리를 찍다보면 출연자분들이랑 굉장히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태원을 찍으면서도 세 분 다 캐릭터가 너무 다르고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더욱 그랬어요. 나키님을 만날 때는 저도 모르게 짠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나키님의 삶의 조각들을 보게 되었어요. 나키님께서 굉장히 열심히 사시거든요. 치킨집 알바도 하시고 주점 알바도 하시고 종교활동, 몸을 돌보는 활동까지 되게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저에게 주는 울림이 있어서 클로즈업을 통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삼숙님 같은 경우는 되게 대장부 같은 스타일이고 굉장히 멋있는 캐릭터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묘한 감정을 일으켰던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거리를 두고 다른 기지촌 여성들과 나는 달라라고 처음부터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영화 속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영화를 보여드릴 때도 떨면서 보여드렸고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이 되었죠. 영화님 같은 경우는 되게 거침없으신데, 삶에 대한 쿨한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그런 삶을 살았던 게 뭐 어때서라는 태도고, 어떠한 연민도 없는 태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김보라아마 다른 분들도 많이 공감하셨겠지만 이태원에 나온 세 분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 있잖아요. 너무 생생하고 매력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된 것이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지인분의 소개로 이 분들을 만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지 궁금하고,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세 분만 나오시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마을에 감독님의 작업실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세 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영화의 완성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드롭인센터라고 각 지역 여성에게 물품 지원, 각종 상담, 법률 지원을 하는 센터에 저의 지인이 계셨고, 그것을 계기로 나키님과 굉장히 길게 관계가 있었어요. 나키님이 처음에는 촬영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셔서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만났고, 나키님이 자기 말고 이태원에 대장부 같은 여자 있는데 만나보라고 하시면서 삼숙님께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그렇게 삼숙님을 만났는데 40분 정도 자신의 삶의 역사를 쏟아내시고, 그 포스가 있어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제안을 드렸어요. 오프닝에 등장하는 영상은 삼숙님께서 직접 찍으신 거예요. ‘내 유서다라고 말하고 주셨는데(웃음) 그만큼 삼숙님께서 기록에 대한 열망이 있으셔서 카메라를 어려워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영화님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좀 친해지면서 영화님도 다큐멘터리에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났던 분들이 한 네 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캐릭터를 찾아가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최종적으로 세 분을 카메라에 담게 되었어요. 지역 공간의 변화를 따라가고 싶은데 당시 제 작업실이 용산 쪽에 있어서 우사단로에 작업실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곳에서 공간을 쉐어하는 방식으로 머물다가, 후커힐 쪽의 작업실로 이동하면서 찍었어요. 청년분들의 경우에는 마을회의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그 회의에 가서 촬영해도 되겠냐고 여쭤보고 담게 되었습니다.

 

김보라나키님이 상숙님을 소개해 주셨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두 분은 서로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두 분의 관계는 어땠을까 궁금해요.

 

강유가람: 그것도 이태원속에 담지는 못했는데 두 분은 처음 이태원 왔을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 삼숙님이 예전에 현재 바 2층에 하숙집 같은 것을 하셨나 봐요. 그래서 거기에 나키님이 사셔서 원래 알던 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삼숙님께서 나키님 걱정을 많이 하시죠. 자기처럼 미군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요. 두 분이 서로 안부는 주고받지만 엄청 친하지는 않은 그런 관계인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보았습니다. 저는 감독님의 모래(2011)를 보았을 때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영화의 끝에서 되게 많이 변한다고 느껴졌는데,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같은 시간 안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변할 수 있는 거라고 느꼈거든요. 그렇게 내밀하게 찍을 수 있었던 건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태원을 보면서 그분들과 가족처럼 신뢰관계를 깊게 쌓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영화 속 캐릭터들과 어떻게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사실 저는 모래에서는 가족, 아버지를 촬영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여성분들을 만났을 때는 제가 잘 모르는 분들이기도 하고 감히 제가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낸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서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고 갈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방문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차차 촬영해나갔죠. 그런데 삼숙님 같은 경우는 얘기하는 걸 좋아하셔서 카메라가 있건 없건 기본 1시간은 쭉 말씀하시거든요. 일하는 모습이나 표정처럼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많이 담고 싶어서 인터뷰가 없어도 계속 가서 카메라 들고 가서 촬영했죠. 본격적으로 촬영 시작했을 때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씩 돌아가면서 만났어요. 저 스스로 편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제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 기지촌 여성으로 이태원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감정과 갈등을 느꼈는지 등을 여쭤보는데 그런 인터뷰들의 결과물을 나중에 들었을 때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상상했던 답변이 아니라서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뭔가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저 스스로도 부끄럽기도 하고 그분들도 그에 응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그분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위주로 편집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김보라: 강유가람 감독님께서는 계속해서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영화 속에서 분명히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삼숙님께서 계속해서 미군이나 미국 사람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인상 깊기도 했고요. 나키에게 미군들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상인데 둘의 기억이 너무 다르잖아요. 말하지 않은 서브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조율하셨고 어떤 입장을 취하셨을까요?

 

강유가람: 삼숙님 같은 경우는 소위 말하는 양갈보라는 낙인에 대해 오히려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 중에서 미군 남편이랑 길에서 양갈보라는 이야기 듣고 다시는 남편과 밖에 안 나갔다고 했잖아요. 그만큼 주변의 시선에 속박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이나 미군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면에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기지촌에서 사셨던 분들 모두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가지는 경험치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삼숙님은 클럽주였기 때문에 본인이 웨이트리스를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변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클럽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한국 조폭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경험 또한 삼숙님의 견해를 만들었을 테고요. 나키님 같은 경우에는 클럽 운영도 하셨고 웨이트리스로 사셨던 적도 있는데, 삼숙님이 운영했던 클럽보다 작은 소규모 클럽이었으니 또 다르게 미군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각자가 가진 경험에 따라 각자의 생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를 보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이 나오고, 지금의 청년들이 소비하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이 등장을 하잖아요. 소비되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이태원의 이면과 역사를 알게 하고, 기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일단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이 없으면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더 빨리 쾌락적이고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공간으로 변화할 것 같은데, 감독님은 개인적으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지, 또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사실 이태원을 직접 가기 전 제가 가진 이태원에 대한 인상은 공포의 공간이었거든요. 미군 범죄가 난무하고 큰일 날 것 같은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 달라졌던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도 잘 아니까 찍는다기보단 모르니까 알아가는 마음으로 임했고, 제가 영화 속 우사단길 청년분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방문자 혹은 이방인 같은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낯선 느낌을 많이 포착해서 영화 속에 담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곳에서도 보통 동네 주민인 여성들이 살고 있는데 미리 다르게 보기 때문에 낙인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무섭다기보다는 친근한 방향으로 변화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이태원 재개발이 잠시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님이 사는 보광동 같은 경우에는 옥수동처럼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지 않을까 싶어요. 이처럼 소거해버리는 방식으로 이 지역을 없애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남을 수 있게끔 변화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와 같은 상생이 참 어렵다는 생각은 들어요.

 

김보라: 이어서 질문을 하자면 삼숙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미국 사람들은 역사적인 걸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헐어버리잖아그 말이 저는 감독님께서 이태원에 담고 싶은 것과 많이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감독님께서 모래(2011), 진주머리방(2015), 그리고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위태로운 시기에 놓인 공간의 역사성을 포착하고 계시잖아요. 거의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공간에 대한 변화와 떠나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감독님 영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에 대한 서사를 말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강유가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거든요. 아버지 건설회사 일 때문에 공사하는 지역으로 따라다녀서 항상 발붙일 곳이 없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가졌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지역이라던가 공간, 제가 잠깐이라도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록을 붙들려고 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저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다 보니까 공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각이 생긴 것 같고, 어떤 동인이 있다기 보다는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보라: 마지막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아서 질문 드리고 싶어요. 석양이 지는 클럽 모습으로 마지막을 마무리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강유가람: 그랜드 올 오프리의 불이 켜지면서 영화가 끝이 나는데, 삼숙, 나키, 영화라는 이 세 분이 참 열심히 삶을 사시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분들이 삶을 사는 방식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고, 이렇게 일상을 계속 살아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일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계속 살아오신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마지막에 불 켜진 그랜드 올 오프리의 간판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위한 제작지원비가 나온다면 다음엔 어떠한 공간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2019년 지금 감독님이 관심 갖는 지역이 있을까요?

 

강유가람다시 이태원을 찍고 싶을 것 같아요. 이전에 있었던 미군 클럽들은 쇠락의 끝이라고 봐야할 것 같고, 그 지역에 다른 방식의 유흥산업인 트랜스젠더 클럽과 같은 공간이 늘어나고 변화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또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태원이란 공간을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김보라계속해서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차기작이 있으시다면 간략한 소개를 들으며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유가람90년대 말 활동했던 3,40대 페미니스트가 지금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작업 중이고 올해 작업을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이태원을 만들면서 영화 속 세 분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저 스스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었는데, 다음 작품에서도 저의 주변 분들을 통해 새롭게 배워나가는 과정을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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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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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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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여성의 목소리로 담아낸 광주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18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김경자 감독ㅣ주인공 윤청자 

진행 김영희 연세대학교 교수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을 맞아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을 통해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많은 역사에서 그러하듯 5·18민주화운동의 기록 역시 피해자가 아닌 항쟁 주체로서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광주의 여성들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고 국가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시선과 감각으로 항쟁 주체로서 활동했던 광주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영화가 끝난 후에는 관객들의 공감과 응원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김영희 교수(이하 김영희): 저는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영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윤청자 출연(이하 윤청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윤청자입니다.

 

김경자 감독(이하 김경자): 안녕하세요. 광주에서 독립영화 만들고 있는 김경자입니다.

 

김영희: 오늘 이 자리가 진행하기에 난이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두 분께서 천천히 말씀해주시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말씀을 하실 것 같지는 않아서요.(웃음) 여러분들께서 질문을 많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5·18민주화운동 39주년이라는 뜻 깊은 날에 여러분들과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윤청자 선생님은 이 영화 몇 번 보셨어요?

 

윤청자: 저는 오늘까지 두 번 봤습니다.

 

김영희: 혹시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윤청자: 제목이 말하는 대로 외롭고 쓸쓸하네요. 작품을 만들기까지 정말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옆에 계신 김경자 감독님이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영화의 주제처럼 너무 무겁게는 하시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늘 객석이 꽉 찼으면 좋았을 텐데 빈 자리를 보니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께 미안하네요.

 

김영희: 혹시 첫 번째로 보셨을 때와 오늘 두 번째로 보셨을 때 느낌이 다른 점이 있으셨나요?

 

윤청자: 박영숙 선생님이 오늘 5·18 행사장에 당시 방송을 하셨던 마음으로 가셨어요. 박영숙 선생님을 포함해서 영화에 나오셨던 선생님들을 많이 귀찮게 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역사를 후대에 알려야 되는데 힘들다고 안 하면 살아있는 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런 굉장한 열기로 많은 대중들 앞에 서게 되었어요. 우리의 트라우마를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용기 있게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여기에 출연하신 모든 분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지지 않고 좋은 작품을 완성해주신 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가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이런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김 감독님 같은 경우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온갖 어려움을 쫓아다니셨어요. 다시 보니 너무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이 됐네요.

 




김영희: 저는 사실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 윤청자 선생님의 말씀을 광주, 여성이라는 구술 자료집에서 보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 그분이시구나생각했어요. 자료집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깊이 남아 있는 게 있는데요. “나는 여전히 성찰하고 있고 광주에 대해서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도청에서 누나, 나가라고 했던 어린 것들을 두고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이야기하셨던 게 마음에 되게 오래 남았어요. 여러분들도 관심 있으시면 선생님께서 영화에서 못 다 하셨던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는 오월민주여성회가 공식적인 행사에 초대받은 게 작년이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죠?

 

윤청자: 초대는 계속 받았는데 우리가 갈 수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5·18 민주 항쟁 40주년이 되는데 여전히 역사는 왜곡되어 있고 광주는 여전히 빨갱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고요. 대한민국 국민이 광주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듯이 광주는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참석을 하기 시작했죠.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던 동지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기 때문에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후대들에게 자랑스럽고 위대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주의 정신을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참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이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어디서든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후대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소성리나 제주도 4·3사태와 같은 아픈 역사를 가진 이들과 함께 공동체정신을 발휘하는 게 큰 용기가 되었다고 감사를 받기도 해요.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더 위로를 받고 왔어요. 광주는 여전히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웃음)

 

김영희: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요. 볼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다르기는 했지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 중에 하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그리고 편집을 하는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다양한 태도가 있을 수 있는데요. 김경자 감독님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영화를 찍고 편집하고 실제로 영화에 등장하시는 인터뷰이들이 이 영화를 보실 때 어떻게 보실 지를 항상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준비하시고 마지막으로 작품이 나오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경자: 제가 카메라를 든 지 10년 정도 되가는데요. 다큐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억압에 순응하지 않는 저항하는 삶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광주에 살고 있는 저로서 광주의 오월을 찍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여성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오월의 여성들에 관심이 갔어요. 2012년에 영화를 시작할 즈음에 광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느낌으로 출발을 했고요.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만 묶으면 어떤 느낌일지,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을 만나고 옆에서, 뒤에서 늘 함께 하면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너무 좋으면서도 내가 오월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사람은 아닌지 싶은 갈등이 많이 들었고요. 중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서 도망도 갔어요. 그런데 결국은 내가 애정을 가진 선생님들을 내가 찍었으니까 부족하더라도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2017년 초에 광주여성재단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해에 완성했는데요. 오월(2016)라는 작품도 있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만, 여성들의 경험만 묶었을 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을지 보여주는 것이 이 다큐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 너무 잘 봤고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감정이 들었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교과서에서 5·18민주운동을 배운 이후 세대의 사람인데요. 광주에 있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었고, 왜 이런 중요한 역사들이 조명 받지 못 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어서 분노했고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나 난관에 부딪혔던 순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경자: 2012년에 선생님들을 만나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들이었는데, 광주여성단체연합에서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당시 그곳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촬영하면서 내가 그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게, 내가 카메라를 들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감사했어요. 이 순간에 카메라를 들기를 너무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힘들었던 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아직도 마음속에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계시는데 저는 정말 막연히 시작을 했어요. 잘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담이 저를 늘 누르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실은 잘 찍고 어떻게 편집할 지에 대해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게 아니라 너무 미안한 마음 속에 지냈어요. 그러다 중간에 도망갈 기회가 생겼는데, 선생님들이나 외부에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셨지만 저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망을 갔는데도 편하지가 않은 거예요. 늘 선생님들이 마음에 걸리고 마음이 무거워서 어떻게 되든 간에 제가 마무리를 하고 짓눌림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돌아와서 편집했죠.

 

김영희: 사실 5·18 광주는 많이 이야기된 것 같지만 아직 우리가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5.18과 관련해서 폭력의 피해자로서 여성 혹은 가족을 잃은 유가족으로서 여성의 이야기들은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 항쟁 주체로서 참여했던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가 저에게 크게 다가왔는데요. 사실 이런 작업을 할 때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단순히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정당화할 수 없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예요. 공감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다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감각, 혹은 그냥 단순히 이분들 참 외롭고 높고 쓸쓸하구나라고 화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과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고 느끼고 동참하는 감각으로 함께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제가 사실 감독님하고 GV가 세 번째예요. 감독님은 항상 그 점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시고 조심스럽게 움직이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선생님은 감독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했어요.

 

윤청자: 우리들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하고 자식도 모르는 거예요. 5·18 민주 항쟁 운동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주홍글씨처럼 남아버렸어요. 저는 이야기할 때 5·18 민주 항쟁을 아직까지도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화를 내면서 따지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카메라에 담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자기 자신에 대한 것들을 다 까발리게 되는 거예요. 박영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기까지 아무도 몰랐어요. 차영숙 선생님은 아예 도피하려고 경상도에서 살았는데 안동에서 홍어 요리를 파시는 선생님도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최근까지도 홍어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난다면서 우리를 조롱하고 능욕하는 개새끼만도 못한 것들도 있어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감독님이 무슨 재주로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있나요. 촬영하면서 그런 시선들이 너무 힘드시니까 못 하겠다고 하셨겠죠. 저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아까 꽃집 문 닫고 가는 장면 보셨죠? 그런 사람들이 용서가 안 되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꽃 사러 오는 손님들도 선생님이 또 시위하러 가셨구나라고 해요.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촛불까지 갔을 거예요. 당연히 국민으로서 나가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좋은 작품이니까 홍보 많이 하시고 많은 친구들과 함께 보러 오세요. 5·18 민주 항쟁과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여기 오신 분들 정말 대단하시고 멋지십니다. 감사드립니다.(웃음)

 

김영희: 대단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혹시 또 소감이나 질문 있으신 분 있을까요?

 

 



관객: 좋은 작품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목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백석의 시 제목을 인용한 제목이고 마지막에는 시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는데요. 제목을 선정하고 시를 삽입하게 된 이유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경자: 2017년에 편집을 마무리하는 내내 제목 때문에 너무 고민이 많아서 머리를 쥐어 뜯었어요. 그러다가 오월 선생님들과 몇 분들과 같이 김현성 작곡가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들으면서 여러 곡 중에서도 이 곡으로, 이 제목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딱 왔어요.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요청을 했는데요. 선생님들을 만나 오랜 시간 옆에서, 뒤에서 따라다녔을 때나 함께 있을 때의 느낌은 외롭고 쓸쓸하셨어요. 이런 표현이 차명숙 선생님의 발언에서도 나오는데요. 그런데 이분들이 광주에만 머물러있는 게 아니라 다 보여드리지는 못 했지만 함께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이들과 연대하는 삶을 살고 계세요. 저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이 제목이라고 생각했죠.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너무 좋았어요. 감사하게도 작곡가분께서 허락해 주셨고요.

 

김영희: 저도 감독님하고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요.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이 상처가 있지만 그것에 갇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나가시는 그 뜻이 정말 높은데요. 사실 5·18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 받는 속에서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외롭기도 하고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때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여러가지의 아픔과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항상 마음에 두고 계신 게 있는 것 같아요. 제목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청자: 저도 정말 좋습니다.(웃음) 차명숙 선생님이 되게 외롭게 안동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오셔서 함께 하셨고요. 우리가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에서도 오늘 이 자리에 서울에 계신 우리 선생님들이 두 분께서 오셨어요. 광주가 얼마나 따뜻한 공동체였나 하면요, 아까 영화에서도 보셨을 거예요. 열흘 간의 항쟁 기간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는 거예요. 항쟁 기간에 서울에서 계신 박순희 선생님과 함께 노동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투쟁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당시 돈으로 400만원이 넘는 돈을 모아서 보내주었어요. 가장 없고 힘든 사람이 그 사정을 알 듯이 그때 보태 준 힘은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줬어요. 40년 가까이 되는 이 여정에 위기도 있었지만 늘 함께 응원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김영희: 가운데 앉아 계신가요? 박수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순희 선생님: 잠깐 말이 나왔으니 마이크를 달라고 했는데요. 후배가 독립다큐영화를 찍어서 상영을 한다고 하기에 처음엔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인가보다 했어요. 그리고 오늘은 5·18 광주 민주 항쟁 39주년인데요. 이런 좋은 자리였더라면 더 많이 홍보할 걸 그랬죠. 감독님 수고 많이 하셨고 내용도 좋지만 홍보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웃음) 홍보를 더 많이 해서 서울에서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어요. 그리고 요즘 아무리 여성상위시대라 불리고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고 해도 여성들의 활동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아요. 특히 광주 항쟁에 대해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서 연대하고 그 시대의 현장에서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했던 것이 40여년 가까이 이어와서 지금 국가 폭력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고 분노하고 있는 소성리 같은 곳에도 가고요. 그렇게 대단한 작업을 하셨으니 조금 더 용기 있고 활발하게 외치면서 선전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아직까지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죽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을 통해 씩씩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당부 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박수)





김영희: 영화에 들어갔던 삽입곡 김현성 작곡가님도 자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잠깐 인사 부탁드려요.

 

김현성 작곡가: 오늘 영화를 큰 화면으로 몰입해서 보니까 좋네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제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만, 윤청자 선생님이나 영화에 등장하시는 분들의 삶이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높게 솟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빛나는 것들도 있는 삶에 감명을 받았고요. 오늘 빈 자리들은 아마 영혼들이 와서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비롯해서 다른 자리에서도 더 큰 화면을 통해서 왜 외롭고 높고 쓸쓸한지 꼭 알려지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2012년에 발표했고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이등병의 편지는 이미 대학교 1학년때 만든 노래라서 삼사십 년 가까이 됐네요. 오늘 이 영화를 참 의미 있고 뜻 깊은 날에 볼 수 있어서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박수)

 

김경자: 아까 제목 질문해주신 분께 못 다한 말씀드려요. 제가 찍었던 모든 장면에 애정을 가졌고 나오신 모든 분들께 애정을 가졌는데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부분에 나온 윤청자 선생님의 뒷모습이거든요. 한 번도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없는데요. 그날 청자 선생님께서는 앞에 나서셔서 특별한 발언을 하신 것도 아니지만 그 한 자리 차지해서 박영순 선생님의 힘이 되기 위해서 함께 하셨어요. 그런 게 굉장히 높은 지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사랑하지만 두리번거리는 청자 선생님의 뒷모습을 정말 사랑하거든요. 어제 광주 자연드림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아까 너무 좋은 말씀 해 주셨는데 오늘 청자 선생님과 오면서도 이 말씀을 드렸어요. 앞으로는 제가 정말 적극적으로 영화를 알리겠다고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약속합니다. 제가 더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박수)

 

김영희: 감독님이 작년 내내 고민하셨어요. 이 영화를 저희 학교에서도 봤는데요. 저희가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부르겠다고 했더니 조금 더 고민해 보신다고 하셨어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희가 광주 영화를 다큐로 만들면 사용할 수 있는 자료화면이 굉장히 많아요. 기존에 나와있는 다큐도 되게 많기도 하고요. 그리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아마 찍은 분량은 훨씬 더 많겠죠? 예를 들면 차명숙 선생님께서 갇혀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셨던 장소에 찾아가서도 아마도 더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할 만한 그런 장면을 찍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 영화의 미덕이 그렇게 보여주지 않은 지점에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덜어내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꽃집 문을 닫고 가시는 모습,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하시고 뙤약볕을 피하라고 우산을 나눠 주시는 모습을 넣으신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을 했어요. 어떤 분들에게는 우리의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하지, 왜 이럴까?’ 싶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이 감독님이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모습이 정말로 정성을 들여 들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김경자선생님들과 오래 만났기 때문에 촬영 분량이 많았어요. 그 많은 부분 중에 선생님들의 몸과 마음이 아프신 이야기도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5·18 당시를 다루는 잔혹한 장면도 얻기는 했지만 최대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경험을 전체적으로 한 덩어리로 잘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관객들로 하여금 자극이나 감정의 동요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부분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여성들의 경험을 여성들의 목소리로 잘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객: 영화 정말 잘 봤고요. 저도 광주 출신이라서 제가 경험하지 못 했던 5·18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희는 초등학생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보고 5·18 민주묘지에 갔지만 누군가 직접 5·18이 어땠는지는 말씀을 잘 안 해 주시더라고요. 어른들께 여쭤봐도 얼버무리시는 경우가 많아서 늘 궁금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해주시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영화들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 분들의 이야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담아 주셔서 너무 소중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감명 깊었던 건, 우산을 나눠주는 것처럼 조그만 부분에서도 연대를 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소성리나 다랑쉬 마을 같은 곳에도 다니시면서 연대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감동적이었어요. 그런데 광주 시민들도 어린 사람 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오월민주여성회 같은 단체를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어서 놀랍기도 했고, 저에게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선생님들이 도청 앞이나 거리에 서계시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하신 부분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 장면을 어떤 생각으로 연출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김경자: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그때 당시 활동하셨던 여성 분들 중의 일부고요. 영화에서 보여줬던 것 또한 선생님들의 일부예요. 이 자리에 선생님이 계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있을 수 있고요. 선생님들이 지금, 여기에 서계시지만 시간이 지나면 풍경만 남겠죠. 그런 의미를 담아서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였고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 부분에 현장 사진을 넣은 건 광주의 아픔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야 한다는 마음으로 넣었어요. 또 제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였지만 이 또한 정말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수많은 여성 중에 일부의 목소리 중에 일부를 담았다는 그런 의미를 담아서 마지막을 구성하였습니다.

 

 

관객: 질문은 아니고 소감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초반에 어머님들께서 모여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바느질로 작업하시는 모습을 잡아 주셔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했는데요. 80분 가량의 시간이 3분 안에 다 녹아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까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5·18에 관련된 영화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요. 그것들이 과거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어머님들께서 현재 소성리나 제주도 분들을 만나고 전달하는 것들을 통해서 위로와 격려, 연대가 진행형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오월민주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과 정체성을 잘 살려서 표현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노래가 나오면서 참여하셨던 분들을 잡아 주신 점이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어요.

 

김영희: 윤청자 선생님 말씀도 잠깐 들어볼까 싶은데요. 영화에 보면 5·18 당시의 사진이 한 컷 나오는데 도청 앞 분수대 앞에 있는 여성들 사진이에요. 그 사진을 본 순간 !’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유는 저희가 항쟁의 주역이라고 하면 주로 시민군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제가 조금 더 찾아보니까 당시 도청 앞 사진들을 보면 여성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이 영화와 이전 구술 작업에서도 느껴진 건데 여성분들이 발언하시는 모습을 보면 피해자라는 감각으로 나오지 않아요. 그리고 과거에 내가 이런 일을 했던 사람이다.’라는 걸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제일 아프다, 나 너무 힘들다가 아니라 그때 당시의 주역으로서 지금을 살아가면서 그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보려고 하고 손 내밀고 연대하고요. 과거에 어떤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현재 자신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통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시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 번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윤청자: ‘오월 여성 평화를 품다가 오월여성민주회의 주제입니다. 이제는 세상 어디든 평화만이 살 수 있는 길이고요. 그래서 작년에는 선생님들이 오키나와를 갔습니다. 소성리를 다니는 것처럼 오키나와에 계신 분들을 찾아 갔어요. 그분들께서는 너무 충격이었다고 하셨어요. 오키나와도 제주 강정마을처럼 늘 평화를 위해 싸우시더라고요. 나이가 70세가 넘으시는 분들이 매일 활동을 하셨어요. 시간이 나면 가셔서 구호 외치고 일도 하시고요. 세상의 평화를 향한 운동을 하고 계시는 그분들이 우리의 평화를 품다라는 주제가 너무 좋고 평화를 외친 보람이 있다고 하셨어요. 오월의 정신은 부모가 자식을 잉태해서 안고 있을 때처럼 온갖 사랑이 품 속에 다 있어요. 우리도 오키나와를 다녀온 이후에 광주를 외친 보람이 있다고 느꼈어요. 여성만이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정의의 사도라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너무 좋았고 이 연대를 세계의 여성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오월의 중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반장을 하든 동장을 하든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위대한 사람들이었어요. 5·18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이 가만히 못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여기 오신 분들도 오늘이 서로의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영희: 소성리에 왔던 진압 경찰 간부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요새는 여자들이 집에서 밥을 안 하고 밖에 나와서 데모를 한다.’ 소성리 가보면 정말 그런데요. 저도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에 갔더니 거기도 매일같이 배 타고 나와서 싸우시는 분들이 다 여성분들이시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아마 평화를 위한 싸움에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가고 있는지를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 감독님 말씀을 들어보고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김경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관람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더 적극적으로 이 영화를 잘 알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희: 한국에는 국가폭력의 경험들이 참 많은데요. 이상하게도 한국에서 폭력의 문제들이 언제나 맨 처음에는 보상의 문제로 얘기되는 것 같아요. 5·18도 그랬고요. 윤청자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왜 우리에게는 폭력의 문제가 생명이나 존엄의 문제가 아니고 보상의 문제로 이야기되는가? 이건 존엄의 문제다.’ 오늘 마침 5·18 39주년을 보내고 내년에는 40주년이 되는데요. 국가폭력의 문제는 이제 과거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해서 존엄의 문제와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 싸우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여정이 되었으면 하고요. 선생님께서도 잠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윤청자: 지금 국가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서 8개월동안 헌법 전문의 내용을 바꾸려고 했는데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안 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떴을 때 저와 다른 분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렵게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국가진상조사위원회가 뜨지 않아요. 거기에 이윤정 선생님이 비상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라고 안된다고 하네요. 당사자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어요. ‘우리 위안부 어머님들 중에 투쟁의 선봉에 섰던 분들이 누구인가요? 여성이자 당사자입니다.’ 국가는 그저 대의명분을 위한 말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이윤정 선생님께서 들어가야한다고 요구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새누리당하고 민주당이 어영부영하면서 당사자를 또 뺐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투를 겪으면서 앞장서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그들은 불리할 때만 가만히 놔두고 있어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박수)

 

김영희: 오늘 어려운 걸음해주신 선생님과 감독님, 그리고 여기 와 주신 관객 여러분 감사드리고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영화관 측에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여러분들 편안히 돌아 가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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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립영화의 맛을 느끼고 싶으신가요?  <라오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13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참석 임정환 감독임철 배우 

진행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무언가의 본질이나 가치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복잡하게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변수가 어느 순간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예측하는 게 불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마저 수용함으로써 본인이 찍고 싶은 영화를 제작하고, 더 나아가 상업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 작가 정신에 충실한 작품을 추구한다는 독립영화의 정신까지 몸소 실천하는 감독이 바로 임정환 감독이다. 413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국경의 왕>을 연출한 임정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라오스> 상영 후 관객과의 인디토크 시간을 가지며 다 함께 독립영화의 맛을 느끼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이하 김보년): 안녕하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나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보년입니다. 오늘 인디토크에 <라오스>를 연출한 임정환 감독님과 출연하신 임철 배우님을 모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임정환 감독(이하 임정환): 안녕하세요. <라오스>의 감독이자 이 영화에 출연한 임정환입니다.

 

임철 배우(이하 임철): 안녕하세요. 임철입니다.

 

김보년: 인디스페이스에서 <국경의 왕단독개봉을 했고, 이 기회에 감독님 전작인 <라오스>를 특별상영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화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잖아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도 딱딱하게 진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합니다. 영화가 2014년에 제작되었지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하나둘씩 회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제가 먼저 감독님께 질문을 드릴 텐데,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찍다가 라오스로 이동해서 찍은 큰 규모의 영화 같은데, 엔딩 크레딧을 보면 스태프 이름이 반복되더라고요. 이 영화의 제작 규모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3주 동안 촬영했고요, 준비했던 걸 촬영했지만 3주 내내 촬영했던 건 아니고, 말씀해주셨다시피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촬영을 했죠. 그리고 배우를 할 거라고 생각 못하고 현장 스태프로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가 연기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어요.

 

김보년: 임철 배우님에게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임철 배우님의 경우 음향 담당 스태프와 배우로 이 영화 작업에 참여하셨는데, 사운드 스태프로 먼저 참여하셨는지 아니면 배우로서 먼저 참여했다가 사운드 스태프 일까지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두 분이서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철: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우선 같은 학교 동기라서 이미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저는 우선 스태프로 이 영화에 참여한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라오스에 도착해서 갑작스럽게 연기까지 하는 걸로 계획이 변경되었어요.

 

김보년: 제가 영화 제작 과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이 드문 일이죠? 감독님은 시나리오 작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라오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라오스 이야기와 이어질 부분을 먼저 촬영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한강 수상 법당이 보여서 거기서 10분 정도를 촬영했습니다. 조현철 배우와 주변 친구들이 그때그때 했던 말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보면 아시다시피 배우들의 애드리브도 많았어요. 현장에서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때에 따라 수정 작업을 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김보년이어지지 않는 사건들이 신기하게, 절묘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범죄, 마약, 영화과 동기들의 갈등 등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었잖아요. 어떤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먼저 구상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정환: 영화학도인 원식(정혁기)이 졸업영화를 엎어버리기로 결정한 설정은 제 경험과 상당히 유사한데,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좋은 감독님께서 이미 만든 작품들을 따라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 욕심이죠. 따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김보년: 임철 배우님에게도 이 작업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요.

 

임철: 우선 한국에서 일부 분량을 촬영하고 라오스로 넘어가서 관광을 하면서 동시에 다음 씬의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한다고 들었어요.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기획한 게 아니라 앞의 상황을 보면서 뒤에 이어질 내용을 연결하다 보니까 다른 캐릭터가 들어가도 재미있을 거 같다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북한사람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었어요. 물론 처음부터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라 임정환 감독이 정해놓은 기본적인 상황 속에서 조현철 배우, 정혁기 배우 등이 주고받았던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필요에 따라 수용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김보년: 혹시 영화 작업 이전에 라오스를 가보셨거나, 아니면 촬영 전에 사전 답사 같은 걸 다녀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이전에 같이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김보년<국경의 왕>에서도 외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잘 담아내셨고 <라오스>에서도 일차원적인 풍경을 잘 담아내신 것 같아요. 라오스에 대한 어떤 인상을 평소에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태국과 라오스 중에 라오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정환: <국경의 왕>에서도 그랬듯이 저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국가를 찾다 보니 이 영화를 찍을 때 라오스를 선택했어요. 사실 저는 평소에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지만,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과 함께 한다면 그리고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근데 지금 돌아본다면 라오스를 선택한 게 다소 아쉬울 때가 있어요. 제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찍은 뒤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라오스에서 촬영했거든요. 제가 영화를 통해 보여드리려고 했던 낯선 기시감은 계획과 다르게 실패했지만, 그래도 낯선 땅에서 촬영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김보년: 물론 본인이 참여한 작품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힘들긴 한데요, 임철 배우님께서 현장에서 친구이자 연출자인 임정환 감독님을 보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철기본적 상황만 정해놓고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연출자라면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임정환 감독이 대단해 보였어요.

 

김보년: 감독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에 참여한 총 스태프 수가 적긴 햇지만 친구이자 사운드 스태프로 참여한 임철 배우님에게 북한사람캐릭터를 맡기셨을 때는 어떤 이미지와 연결이 돼서 맡기셨을 텐데, 임철 배우와 그 캐릭터 사이에서 어떤 이미지를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만약 제가 시나리오를 다 써둔 다음에 본격적인 촬영 전에 다시 읽었다면 영화 작업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을 텐데, 친구나 주변 지인들이 순간적으로 보인 반응의 힘입어 영화를 찍게 된 거 같아요. 어떤 이유 때문이라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순간적인 느낌에 충실했어요. 임철 배우에게 북한사람 캐릭터를 맡긴 이유도 특정 이미지가 떠올랐기보다 순간적인 느낌에 이끌렸던 게 아닐까 싶어요.

 

김보년임철 배우님이 <국경의 왕>에서는 유령처럼 나오셔서 이상한 연기를 하셨잖아요.(관객 웃음) 임철 배우님이 그런 이상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연기를 잘하신다고 생각해요. 임철 배우님에게 또 다른 질문을 드리자면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철특별하게 무언가를 참고하지는 않았고, 그저 현장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봤던 거 혹은 들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어요.

 




김보년 제가 유독 집중하게 된 부분이 영화감독과 배우 간의 충돌 장면이었어요. 대사를 코믹하게 주고받기는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대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감독님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로 재구성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오프닝에서 원식과 현철(조현철)이 갈등을 일으키는 장면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둘 중에 누구 손을 들어주기 어려워요. 어떤 대사를 간접적으로나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좋고, 어느 순간에는 정반대로 하는 방식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개인적인 고민을 영화로 담아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돌아봤을 때 조금 더 확고해진 부분이 있다면, 둘 중에 어느 방식이 더 좋다고 고민하는 일 자체가 전혀 쓸데없다는 생각에 가까워졌어요.

 

김보년: 감독님 영화의 매력은 어떤 일상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이상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국경의 왕>에서도 그랬듯이 순식간에 현실적인 장면에서 상상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매력적이에요.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드실 때 혹은 이야기를 발전시킬 때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실현되는 공간이나 낯선 공간에서 작업할 때 흥미를 느껴요.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하는 상황을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구현할 때 흥미를 느껴요. 그와 유사한, 유사하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그런 경험을 영화 속에 끌어내보자는 마음이 있고 친구들이 그런 마음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줘서 고마워요.


김보년<국경의 왕><라오스>를 보고 나니까 만약 감독님이 이전 두 작품과 달리 외국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만 머무르면서 영화를 찍으신다면 또 다른 이상하면서 매력적인 영화가 완성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KBS 독립영화관에서 <라오스>를 봤는데, 오늘 상영본이랑 다른 거 같아요. 방송 심의 때문에 상영본 일부를 편집한 다음 방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모방 위험이 있는 장면이 있어서 특정 장면을 삭제하고 방영했었습니다. 제가 편집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KBS 독립영화관으로 제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영어 제목은 ‘Laos: In the Warmest Country’라고 되어있는데, 다르게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정환: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 사실 ‘In the Warmest Country’를 한국어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싶었는데 그때 당시 적절한 번역을 떠올리지 못했고,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TV 프로그램과 촬영 장소가 겹치면서 제가 의도했던 기시감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미지의 느낌을 살리고 싶지만 한국어로 마땅한 부제를 생각하지 못해서 한국어 제목을 그냥 라오스로 결정했습니다.

 

 

관객: 공황에 도착했을 때 택시기사와 주인공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택시기사가 주인공한테 North Korea인지 South Korea에서 왔는지 물어보잖아요.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배낭여행도 다녀오셨다고 하니까 혹시 경험을 바탕으로 그러한 장면을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거의 대부분 상황은 제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영화에서 등장하는 기타 인물들도 제가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했던 사람을 토대로 영화에 반영했어요.

 

김보년: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혹시 <국경의 왕> 제작 규모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국경의 왕>3주 촬영이었고 조현철 배우를 포함해 총 8명이서 영화 작업을 했었습니다.

  

 

관객: 미리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니라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작업을 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말하고 싶은 주제가 미리 정해져 있었는지, 또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정환: 주제, 주제가... 무언가를 찍고 싶어서 촬영을 시작했지만 찍으면서 계속 바뀌었어요. 때로는 그냥 찍고 싶어서 찍을 때도 있고, 찍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제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찍는 경우도 있어요.

 

 

관객: 혹시 현장에서 많은 장면을 찍은 다음 편집하는 스타일인가요?

 

임정환: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많은 장면을 찍을 수 없는 이유는 제가 영화를 찍다보면 소리를 많이 내지 않아요. 나중에 편집실에서 몇 안 되는 촬영 장면을 보면 왜 이 장면을 찍었는지 스스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현장에서 많은 장면을 찍지 않다보니 편집할 때 어려움이 있어요.

 




김보년: 이제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끝으로 임정환 감독님과 임철 배우님의 근황이나 끝인사를 듣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임철: 저는 계획한 작품이 있고 제작지원을 받으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습니다.

 

임정환: 차기작 제목을 몇 개 구상하기는 했는데, 올해 안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김보년: 오늘 자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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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청춘들의 올곧은 온기를 기억하며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4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김소영 감독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개봉 이틀을 맞이한 토요일,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인디토크가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었다.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난 8명의 북한 청년들과 주변인들을 담아 낸 영화이다. 조국을 떠나 치열하게 고민하며 다양한 지역과 분야를 막론하고 행동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조금은 생경한 이름들과 발자취에서 그들의 신념과 우정을 통해 올곧은 온기를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소영 감독이 참석하고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이하 김일권):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시네마달 대표 김일권입니다. 이렇게 날씨 좋은 토요일날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연출하신 김소영 감독님도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감독(이하 김소영): 황금 같은 연휴에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권: 일단 제가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드리고 마이크를 객석으로 넘겨 드리겠습니다. 영화 보신 소감도 좋고 궁금하셨던 것들을 편하게 직접 여쭤보시면 됩니다. 이 작품이 감독님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3부작이면 굉장히 기나긴 시간 동안 작업을 하신 거잖아요? 5-6년 정도 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나 이유와 함께 3부작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김소영: 2014년에 제가 중앙아시아로 2번 여행을 했어요. 한 번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로 갔었고 또 한 번은 카자흐스탄으로 갔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을 먼저 갔는데 고려인들이 당신의 죽음을 예비하는 방식, 특히 고려인 할머니들이 커다란 수의를 걸어 놓고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는 풍습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어요. 그리고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분들이 감독으로서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 나오는 최국인 감독님하고 김종훈 감독님, 그리고 이 분들을 둘러싼 모스크바 8, 10진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2번의 여행 중 키르기스스탄에서 수의를 본 부분이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에 나타났고,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서도 자신의 죽음에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모습이 고려인 할머니의 수의처럼 죽음에 대한 중요한 제스쳐라고 생각했어요. 두 여행을 통해 3부작을 시작한 것 같아요.

 

김일권: 사실 저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희한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요. 모스크바 8진이 어떤 분들인지 소개를 해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소영: 제가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와 인연이 조금 있어요. 제가 <거류>(2000)를 찍을 때 촬영감독이셨던 박기훈 감독님이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출신이세요. 그때 제가 전주국제영화제 1회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었는데요. 저희가 알레산드르 소쿠로프 감독을 좋아해서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쿠로프 특별전을 했어요. 소쿠로프를 만나러 러시아를 갔고, 그러면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도 방문하고 필름아카이브도 갔어요. 그러던 차에 모스크바 8진이 국립영화학교를 한국전쟁 바로 직후에 다녔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고요. 이분들이 만들어 낸 영화가 어떤 것이었을지, 그리고 이분들이 그 당시 정치적 결단을 하기까지 얼마나 불타오르는 고뇌의 장이 있었을 지 영화를 하는 사람, 연구자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탐색을 그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또 다른 하나로는 북한의 남로당과 연안파가 숙청된 8월 종파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에 관심이 있었어요. 이런 북한사와 영화사, 그리고 러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 어우러진 거죠.

 




김일권: 모스크바 8진은 한국전쟁의 영웅들인데요. 전쟁 중에 공덕을 많이 이루어서 영웅 대접을 받았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히 선별하여 국가에서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김일성 체제에 반대를 하게 되는 건데요. 국가에서 영웅이었고 그에 걸맞게 대접을 받아 유학까지 왔는데 국가에 반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신들의 과거를 배반하는 것이고 앞으로의 출세길들을 다 막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들을 했던 건가요?

 

김소영: 우선은 영화에서는 충분히 담을 시간이 없었는데요. 김종훈 감독님의 긴 증언을 들어보면, 이 분들이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굉장히 큰 감흥을 받은 거예요. 그 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고요. 김종훈 감독 같은 경우는 황해도에서 4년간 무상교육도 받고 선진적인 기술책도 보면서 사회주의를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한국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 있던 국군의 도움을 받아서 생명을 건지기도 했는데, 오히려 자기 고향 출신인 인민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거의 죽을 뻔했어요. 한국전쟁 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사회주의자이지만 이념을 가로지르는 어떤 국면들을 체험했던 것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김종훈 감독은 김일성 체제를 본인이 목도했고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허웅배 선생님과 다른 분들, 그리고 이분들의 스승이자 소련의 대사로 와 계셨던 정상진 선생님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거죠. 이 사회는 자신들이 그리던 사회가 아니라 김일성 체제라는 걸요. 그리고 이분들이 연안파와 가까웠기 때문에 돌아가면 김종훈 선생님이나 한진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어려울 수 있었어요. 숙청이 될 수도 있었고요. 김종훈 감독이나 양원식 촬영감독 같은 분들은 이념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자기 친구들과 선배들을 너무 사랑하고 믿은 거죠. 이 사람들이 못 돌아간다면 함께 연대해서 궐기를 하기 위해 우정으로 뭉친 거예요. 이념을 알지만 이념을 넘어서는, 북한을 알지만 북한을 넘어서는 사회주의. 흐루쇼프 서기장 시대의 소련을 보면서도 절절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젊은 청춘이지만 격동의 틈 속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죠.

 

김일권: 영화를 보면 많은 예술 작품과 소설들이 등장하는데요. 제가 전혀 몰랐던 예술 세계와 문학 세계를 중앙아시아에서 포착하셨는데, 감독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예술 작품이나 그분들의 활약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소영: 2년 전 한겨레에 모스크바 8진에 관한 기사가 상세하게 실렸어요. 그 기자 분과도 GV 자리를 한 번 가질 예정인데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하신 분들은 한진 선생님하고 허웅배 선생님이에요. 허웅배 선생님은 고려인이자 북한인으로서 통일을 위해서 노력을 하셨고, 독립군인 허위 선생님의 손자이기도 하고요. 활동가로도 많이 알려지셨죠. 예술가로서의 성취가 많이 알려지신 분은 한진 선생님예요. 『나무를 흔들지 마라』와 같은 희곡 작품들을 국립극장에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다큐에 나오는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하는데 죽는 곳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고향만큼 정다운 이름이 있어야 될 거야.’라는 글이 한진 선생님의 글귀예요. 제가 보기에는 한진 선생님의 38선』이나 『나무를 흔들지 마라』가 최인훈 작가의 『광장』의 지평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고요. 누군가가 한진 선생님의 작품을 영화화하고 연극화해주기를 바랐어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출신의 감독들을 각 지역에서 배치해서 소련 연방의 영화를 만드는데, 최국인 감독은 거기서 소련 프로파간다 블록버스터를 만들었어요. <용의 해>(1981), <쇼칸 우할리아노프>(1987)로 상당히 알려진 감독이셨고요. 김종훈 감독은 시베리아 쪽 무르만스크에서 고생하시다가 알마티에 끌려서 고려인들 집단으로 오셨고, 고려극장과 고려신문에 큰 기여를 하시게 되죠.

 

 



관객: 안녕하세요, 좋은 작품 너무 잘 봤고요. 감사드립니다. 후반부에 화가 분께서 8진 분들 초상화를 그리셨는데 그분은 어떻게 8진 분들과 인연이 닿았는 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 그리신 건지, 아니면 고려인 사회에서 그분들을 기념하고 추모해서 그리신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소영: 그림을 그리신 작가분 성함은 문 빅토르고요. 알마티에 가면 굉장히 좋은 게 무엇이냐 하면, 일종의 예술가 꼬뮨이 있다는 점이에요. 저의 영화에도 나오신 고려인 2세 송 라브렌치 감독님도 국립영화학교 출신이고, 한야곱 작곡가님도 예술가 그룹에 있으세요. 여기 분들이 고려극장도 하시고 고려신문도 하시지만 러시아어가 더 모국어 같은데, 이럴 때 북한 출신의 망명객들이 고려인 커뮤니티와 일종의 예술 꼬뮨을 만드신 거예요. 영화도 만드시고 연극도 하시고 어떤 대작을 하면 최국인 감독님도 배우로 참가를 하시기도 했고요. 문 빅토르 선생님 같은 경우도 연결되어 있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면서 8진 분들이 존경스러우니까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를 그리신 거예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에서도 아래로부터의 예술을 하던 고려극장의 여성 디바들이 나오는데 이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커다란 고려인 예술 꼬뮨이죠.

 

김일권: 재작년에 개봉했던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온라인에서 다운받아 보실 수 있는데요. 한 번 보시면 여기서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소영: 1500원입니다. (웃음)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제목이 상당히 인상 깊은데요. 제목을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제목 후보가 있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소영: 제목이 좋으셨나요?(웃음)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이야기할 때 시대가 조금 엄한 시절이었어요. 배급사 시네마달 같은 경우는 영화 <다이빙벨>로 고생하고 있을 때고요. 이분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군데 기획서를 내야 했는데요. ‘북한 청년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절대 안 줄 것 같았고요.(웃음) 레이먼드 첸들러 소설 중 Farewell My Love라는 작품이 있는데, 한국에 번역이 되어 나올 『굿바이 마이 러브』라고 나왔어요. 그 제목을 참고했는데 ‘Farewell My Love’는 한국에는 낯선 감각이니까 굿바이 마이 러브NK를 붙인 거예요.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한데요.(웃음) 지원사업에서 많이 떨어졌어요. 예선도 못 간 경우도 허다했고요. 그래서 북한의 이야기지만 조금 발라드 같기도 한 느낌으로 진행을 한 거예요. 개봉할 때는 그런 부분을 조금 덜어내고 붉은 청춘으로 가고 싶기도 했는데요. 배급사 대표님도 굿바이 마이 러브NK’를 가져가는 게 괜찮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하셨고, 저도 붉은 청춘하고 두 개를 합치면 발음은 어려워도 하나의 세상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른 제목으로 생각한 거는 붉은 태양’, ‘태양 청춘이런 것도 있었어요. 몇몇 후보가 있었는데 별로 호응을 못 받았어요.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권: 감독님이 사실 제목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잘 지으세요. 저도 되게 마음에 드는 제목입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저도 작품 너무 감명 깊게 잘 봤고요. 최국인 선생님께서 러시아의 지시로 중국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드셨고 그 영화가 위구르 민족에 대해서 다룬 영화였는데요. 최국인 선생님이 카자흐스탄에 오래 계시면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셨고 어떤 입장이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소영: 굉장히 좋은 질문이에요. 고려인마다 어느 곳에 계시는 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우즈벡,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각각 지역적으로 다른 데요. 최국인 선생님 같은 경우는 카자흐스탄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그들에게는 환대 전통이 있고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땅도 넓은데 들어와서 같이 살면 되지.’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예멘 난민 사태와 같은 정서와는 달리 굉장히 호방하고요. 탈북 고려인들도 그런 정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이분들이 한편으로는 소련에서 교육받은 북한 출신의 엘리트들이셔서 그런지 엘리트 의식도 있으신 것 같은데요. 소련 연방에서 보면 카자흐스탄은 변방이거든요. 재일조선인, 자이니치 분들은 일본에서 죽는 걸 객사라고 하면서 그에 대해서 고통스럽게 생각하는데 카자흐스탄 분들은 다른 생각인 것 같아요. 한진 선생님의 그 문구가 고려인들, 그리고 고려인들과 함께 살았던 북한 청년들의 심정을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분들은 자기가 죽을 곳에 고향처럼 다정한 이름을 붙이고 싶은 거예요. 요 세대까지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환대에 대한 어떤 채무의식 같은 게 있어요. 세계주의, 인터내셔널리즘 같은 것인데 저는 상당히 감동받았어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어떤 숲에 유리판 조형이 여럿 서있는 장면이었는데요. 그게 실제 조형물인가요?

 

김소영: 어제도 GV가 있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주목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역사와 이야기를 접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런 역사를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영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어떤 개념 이미지처럼 저를 이끄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프리즘적인 파편이에요. 역사들의 파편이고 이야기들의 파편인데 그것이 서로를 비추고, 그 파편이 프리즘처럼 어떤 것들을 조망하고 조명하는 거예요. 그런 개념 이미지를 가지고 글도 썼는데요. 제가 천산을 굉장히 좋아해서 촬영을 하러 가면 밥도 먹고 그곳에 있는 흰 눈표범을 기다리기도 했어요. 작업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천산에 가서 석양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밑으로 내려가보고 싶은 거예요. 무언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천산에는 숲도 있고 들풀만 있는 평원 같은 곳도 있거든요.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석양에 빠져 있는 저희 촬영감독을 간신히 설득해서 내려간 거예요. 내려가니까 이 조형물이 쫙 펼쳐져 있었어요.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CIS의 젊은 예술가들이 오픈스튜디오를 하면서 이런 걸 구상한 거예요. 그전에 저는 이런 개념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프리즘적인 파편, 파편을 비추는 프리즘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딱 이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촬영을 하고 영화에도 배치하여 이미지 작업을 했어요. 우리 다큐 전체의 맥을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관객: 같은 질문인데요. 유리 조형물이 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서 묘지가 나오던 장면이 연상이 됐는데, 그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잔상이 남아 있거든요. 제가 사전에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서 지금 GV를 통해서 두 작품이 같은 감독님의 작품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고요. 모든 예술은 함축적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 작업을 하실 때 그런 키 이미지들을 사용하시는 편인지, 여정 속에서 우연히 발견된 건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지 구성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이미지를 통해 방향성을 가지고 일종의 변곡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 조각들이 저에게 온 것은 우연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마주친 거예요. 어저께 변영주 감독님과 GV를 했는데 변영주 감독님께서 다른 다큐들이 시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이미지들로 시작을 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이미지로 영화를 들여다보면 어떤 열쇠를 가지고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로 그래요. 고맙습니다.(웃음)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도 그 장면이 없으면 다큐를 못 만들었을 것이고, 이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김일권: 김소영 감독님의 작품은 한국의 다른 다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방식과 이미지 재현 방식들이 있고 스타일도 굉장히 독특해요. 그래서 소중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 다큐를 보면 인물들을 쫓아가면서 그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전달한다면, 감독님의 인물들은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인터뷰를 하거나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점에 저도 매료되었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한진 선생님 아내분(지나이다 이바노브바)이 궁금한데요. 한진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 분이 한진 선생님의 기억을 그대로 읊으시더라고요. 그리고 한진 선생님과 서로 만나기 전의 상황도 다 아시는 걸 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분이 거의 고려인이 되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감독님은 인터뷰하면서 어떤 느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 방 타마라라는 고려극장의 디바 분이 나오시는데요. 제가 방 타마라 선생님을 만나면서 느꼈던 게 사회주의권의 공부를 한 여성, 혹은 예술가인 여성이 가지고 있는 어떤 방백의 방식이 있어요. 훈련된, 자신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에 있어서 흠이 없게 하는 수사와 스피치의 세계가 있어요. 어떤 기억을 딱 잡아서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었어요. 지나이다 이바노브바님은 러시아문학 선생님인데 한진 선생님을 같이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사랑한 거예요. 저는 제일 감동적일 때가 지나이다 여사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때예요. 그분이 고려인들이나 북한인들의 이름을 부를 때가 참 좋아요. 방금 보신 극장 버전과 저희가 영화제를 다닐 때의 버전이 조금 다른 데요. 영화제 버전에서는 한진 선생님의 둘째 아들이 잠깐 나오는데, 그분이 다운증후군도 있어서 생활이 어려워요. 지나이다 여사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데 아들도 돌봐야 하고 손자도 일을 하지 않고 방에서 거의 자요. 그런 고단한 삶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문학 여성으로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고려인으로 많이 간 듯한 느낌이라기보단, 러시아 여성인데 고려인 예술가 한진 선생을 사랑하는 분이죠.

 

김일권: 여기에 나오시는 분들의 젊은 시절들을 전해 들으면 현대 사회의 우리가 초라해지거나 질투가 날 정도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위대한 청춘을 보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빨리 사회를 정상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 참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담담하게 볼 수 있어서 되게 좋았고요. 저는 아까 말씀해주신 한진 선생님의 자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그분들을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가 궁금합니다. 자신들이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지, 아니면 러시아 사람이면서 한반도에도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가 궁금했고요. 그리고 고려인들이 백인들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의 이야기도 한 번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 지에 대한 생각도 한 번 해봤습니다.

 

김소영: 한진 선생님의 자손 분들의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워요. 우선 손녀인 한 율리아는 나중에 문 빅토르 선생 전시회에 가서 지나이다 여사와 함께 사진을 찍어요. 한국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을 해요. 사실은 굉장히 길게 인터뷰도 했고 저희 영화 자막을 도와 주기도 했는데요. 본인이 서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카자흐스탄의 혼혈아들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저희가 아드님도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은 문학가였어요. 글 쓰는 사람이 되어서 실험적인 소설도 쓰다가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어요. 저희가 묘소에 같이 가서 인터뷰를 했는데 사업을 하면서 한국과도 약간 관계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최국인 선생의 아드님과도 길게 인터뷰를 했는데요. 최국인 선생이 굉장히 흥미로운 게 무엇인가 하면 사진에 나오는 그 부인 분이 고려인인데 국립영화학교에 배우로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고려인이지만 최국인 선생을 따라서 중앙아시아로 망명하셨어요. 지금은 유치원 교사를 하시고 아들은 사업을 하세요. 그분도 고려인들, 한국과 무역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본인들이 고려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유산이 있는 거예요. 정부로부터 받은 아파트에서 살고 계세요. 그런 가계도가 있습니다.

 





김일권: 음악도 굉장히 인상적이죠. 음악을 선곡 혹은 선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김소영: 이 영화를 만들 때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저희 어머니가 말러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말러의 곡 중에서 선택을 했는데요. 노래의 가사가 우리들은 잊혀진다는 내용이거든요. 지나이다 여사가 나올 때도 말러 음악을 사용했고요. 제일 중요했던 건 빅토르 최의 음악인데요. 제가 <레토>(2018)라는 영화를 보고 정말 기뻤어요. 이 영화 맨 처음에 사람들이 모스크바로 건너갈 때 나무라는 곡을 썼는데요. <레토>가 나오기 전에 써둔 것인데 <레토>에서 나무를 맨 마지막 곡으로 써서 정말 마음이 통한 것 같았어요. 빅토르 최의 음악을 들을 때엔 나무라는 곡이 정말 중요하기도 하고요. 또 이 영화가 끝날 때 쓴 전설이라는 곡은 가사 내용이 비극에 관한 시예요. 제 생각에는 아마 왕좌의 게임시리즈가 알았다면 이 곡을 썼을 것 같아요.(웃음) 전쟁과 비극을 보는 대단한 시가 있는 음악인 것 같아서 두 개의 음악이 중요했어요. 나머지는 이나 잔비나리처럼 새로운 국악 연주자들의 음악을 사용했어요. 3부작 중 2부인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에는 고려극장에서 나온 음악들을 썼고, 1<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에는 빅토르 최의 슬픔이라는 곡을 사용했어요. 빅토르 최하고 3부작을 거의 같이 한 것 같아요.

 


관객: 극장에 오면서 빅토르 최의 음악을 검색해봤는데, 죽음에 대한 몇 개의 설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걸 지지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저는 설이 많은지는 몰랐고요.(웃음) 빅토르 최의 삶에서 중요한 게 어머니가 백인계 러시아인이고 아버지가 고려인이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빅토르 최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고려인들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카자흐스탄에 공연도 많이 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죠.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빅토르 최에 관한 <레토>라는 영화 꼭 보세요. 정말 오랜만에 무정부주의적인 영화였어요.

 

김일권: 빅토르 최 음악 참 좋습니다. 검색해서 들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오늘 감독님께서 오시는 줄도 모르고 매표하고 들어왔는데요. 이런 자리를 가지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영화에 감독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그분들이 연출하신 영화는 어떤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련 영화나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소영: 제가 최국인 감독님과 송 라브렌치 감독님의 영화를 아카이빙해서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북부미술관, 일민미술관, 부산국제영화제, 제가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여러 차례 상영을 했어요. 작년에 고려시네마에서 최국인 감독님의 <용의 해>를 상영을 하기도 했고요. 굉장히 전형적인 소련식 몽타주인데 중앙아시아의 독특한 웨스턴이 가미되어 있어요. 중앙아시아가 평원이니까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고요. 중앙아시아식 서부극이라 해야 할까요?(웃음) 최국인 감독님의 <용의 해>는 프로파간다적 영화이고 대작 영화인데 사이사이에 있는 노력들이 참 좋아요. 당신이 소련 당국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라고 지시를 받았는데, 원작으로 실제 위구르족의 각본을 쓰셨어요. 소수민족들의 글쓰기를 존중하면서 만드셔서 굉장히 주옥 같은 대사가 많아요. 이 영화에서도 사용을 했는데요. ‘우리들은 영원한 방랑자들이다. 우리는 국가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청의 지배를 받는 위구르족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요. 위구르족의 조상 중에서 수학자나 천문학자들의 이름들을 열거를 해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만드셨어요. 주인공도 위구르족 여자고요. 제일 감동적인 거는 결국 위구르족이 청 군대에 완전히 짓밟혀서 다시 퇴로에 있는데 영화의 맨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에 위구르족이 청에 대항한 연도들이 쫙 올라가요. 그게 용의 해인 거예요. 최국인 감독님이 위구르족이 소수민족으로서 영토를 빼앗기는 아픔을 자신이 북한인으로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온 사람으로서 복화술처럼 표현하셨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가 정말 좋아요.

 

 



관객: 3부작을 다 함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김소영: 청원 부탁드립니다. (웃음)

 

김일권: 저희가 한 번 자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거든요. 하게 된다면 꼭 와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독님은 디아스포라, 이주를 주제로 계속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요. 그런 이유가 있을까요?

 

김소영제 성장기에 있어서 저희 할머니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저희 할머니가 함안 분이거든요. 지금은 난민이나 이주와 같은 이동을 이야기하는 상황인데, <거류>에서는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는 이동을 이야기했어요. 할머니의 삶이 이야기의 계기가 되었어요. 경남 고성에 살고 있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출신의 화교 여성 이야기도 있고, 경남 진해에 있다가 독일로 이주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어요. 내부에 있던 여성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에서 <거류>가 시작한 거예요. 저는 이주보다는 이동, 여성들의 문제에서 시작을 해서 소수민족이나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온 거예요.

 

김일권: 마지막 인사말로 자리 마무리 짓는 걸로 하겠습니다.

 

김소영: 오늘 황금 같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SNS에 영화 이야기 좀 많이 올려주세요.(웃음)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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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소소대담] 독립영화라 매력적이고, 독립영화라 걱정되고 


참석자: 김윤정, 승문보, 오윤주, 송은지, 이성빈, 이성현, 최승현, 김정은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알다시피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이윤 추구보다 창작자의 의도를 더 중시하는 영화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독립영화만의 고유한 특징과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독립영화가 매력적인 영화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많은 관객에게 장벽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게 현실이고 매달 개봉하는 작품들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점차 독립영화만의 클리셰가 형성되면서 이와 같은 현실을 고착시키는 듯하다. 3월 말 진행된 인디즈 소소대담에선 임정환 감독의 <국경의 왕>, 최창환 감독의 <내가 사는 세상>, 김재환 감독의 <칠곡 가시나들>, 그리고 정희재 감독의 <히치하이크>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으며 전반적으로 대화 속에 독립영화를 향한 언급된 시선이 깔려 있었다.






[인터뷰] <국경의 왕> 임정환 감독 인터뷰: 익숙함과 낯섦, 우연과 인연의 모호한 경계 속을 여행하다 

[리뷰] <국경의 왕>: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인디토크 기록] <국경의 왕>: 우연과 낯섦을 동력으로 여행하는 영화


  

<국경의 왕>은 관습적인 장르 문법을 깨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봉한 독립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하려는 목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의 취지를 살린 작품이라는 인디즈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낯선 풍경과 사람으로부터 일어나는 괴이한 느낌이 뜨거운 감정으로 발전해서 좋았다는 의견, 영화 제목에서 시작해 확장되는 이미지를 고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의 이상하고 미묘한 정서와 날 것 그대로의 느낌 모두 살려서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불친절한 내러티브 때문에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난해함과 싸우느라 심적으로 지쳤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기존 문법을 따르지 않는 신선함에만 의존하기에는 공감할 만한 부분이 적어 이 영화의 다른 매력을 찾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공유되었다. 특히 인디즈들은 <국경의 왕>이 반() 내러티브의 영화에 속하므로 서사를 좇는 관객이라면 영화를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을 거라는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이 관객이 느끼는 독립영화와의 거리감을 악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리뷰] <내가 사는 세상>: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디토크 기록] <내가 사는 세상>: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노동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은 전태일 47주기 대구시민 노동문화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그리고 민예총 대구지회의 협업으로 제작된 영화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관객이라면 깊이 공감하는 부분이 명확히 존재하고, 억지스럽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노동영화라는 기조를 뚝심 있게 유지했다는 점에서 <내가 사는 세상>이 좋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비록 이 영화가 지닌 일차원적이고 평범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절망적인 세상 속 어딘가에 그대로 멈춰있는 두 주인공의 관계 및 모습에 신경 쓴 부분이 <내가 사는 세상>이 추구한 현실성으로 이어진 게 아니겠냐는 의견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사실적으로 다가왔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와 같은 반론은 답답한 현실을 그려내는 영화가 주로 활용하는 촬영 방식과 장면 구성을 지적하는 데에서 시작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과거와 다름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서 수미상관 혹은 흑백 장면을 선택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몰라도, 오히려 이런 관습에 의존하는 게 영화를 사실적인 영역보다 인위적인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독립영화의 경우 상업영화와 달리 투자 금액과 제작 금액 규모가 적다보니 인물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핸드헬드 카메라에 더 의존하는데, 리얼리즘 영화의 발전을 위해 핸드헬드 숏 이외 다른 기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리뷰] <칠곡 가시나들>: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의 전작들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처음에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을 <칠곡 가시나들>은 세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배움이 있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인디즈의 다수의견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할머니들께서 무대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감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통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고, 중간에 삽입되는 할머니들의 시와 인터뷰를 보면서 그 나이에도 삶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영화 제목에서 느낀 첫인상이 막상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그저 무난한 다큐멘터리였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김재환 감독이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보여줬던 색깔이 이번 다큐멘터리와 상충하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는 감상도 있었다.






 

[리뷰] <히치하이크>: 달리고, 달려서 나에게로

[인디토크 기록] <히치하이크>:  위태롭지만 단단한 눈빛과 걸음으로


 

22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소개됐을 당시 충무로의 베테랑과 신예의 조합으로 주목을 받았던 <히치하이크>의 힘은 캐릭터에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극 중에서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이 많이 숏에 잡히는데, 힘든 상황임에도 슬픔을 계속 직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주인공이 보여주고 있는 직시의 힘이 곧장 영화의 힘으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게다가 주인공이 자유 의지든 타의든 결론적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지적되었던 문제가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 보호자가 없어서 주인공이 밖으로 내몰리는 상황, 그리고 어떤 소식을 듣고 나서 비관적인 선택을 하려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핸드헬드 숏을 활용하는데, 주의 깊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다소 뻔히 읽히는 의도이기에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창작자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소재에 지루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관객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창의적인 작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과 함께 이날 진행된 소소대담 자리를 마무리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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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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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한줄 관람평


성혜미 | 시린 시대 속 뜨거웠던 이들

송은지 | 묘지 없이 땅에 묻힌 사람들, 돌아갈 고향 없이 타지에 발디딘 사람들

이성현 | 존재만으로 가장 강력한 선언이 되는 다큐멘터리 

최승현 | 시대에 의해 떠밀려버린, 표류하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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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문보 | 단순 인터뷰 모음집이거나 의미 있는 기록의 아카이브이거나

오윤주 | 역사 바깥의 존재들을 기억하는 법

김정은 | 요원한 세계를 포착하고 올곧은 온기를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리뷰: 역사 바깥의 존재들을 기억하는 법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예술의 역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군가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 누군가는 정치적 목적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누군가는 위로나 공감, 놀이, 혹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에 대해 말할 지도 모른다. 분명 예술은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큰 역할은 단연코 기억이라고 믿는다. 예술은 기억하기 위한 행위다. 예술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채 주변부로 소외된 이들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왜 문학이나 공연이 아니라 굳이 영화여야만 했을까?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속 최국인 감독은 레닌을 인용하여 말한다. "영화는 문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므로 매우 중요한 예술이라고.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공산주의와 개인숭배가 다른 것만큼이나 프로파간다와 예술의 정치성은 다른 이야기다. 모든 예술은 정치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스크바 8진 중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김종훈 씨가 김소영 감독에게 묻는다. 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느냐고. 김소영 감독이 답한다. “이런 특별한 상황 속에서, 영화로 세상을 보고 영화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종훈 씨가 대답한다. “Спасибо(고맙습니다).”



 


나는 일제강점기를 겪어본 적 없다. 냉전시대도, 한국전쟁도, 독재도 겪어본 적이 없다.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고, 반공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나는 다문화 시대에 태어나 국제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다. ‘통일은 우리의 꿈' 같은 포스터를 만드는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빨갱이'라거나 종북'과 같은 단어들이 너무 생소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적이 없다고 그 모든 일들을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 시대를 생생하게 살아낸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들의 후손인 내가, 수없이 많은 이들의 피와 뼈를 딛고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다양한 것들을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손으로 쓰이고 패배한 자들은 지워진다. 때문에 역사책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평생을 세상에 속은 채 변명거리도 되지 못할 무지와 오해로 점철된 삶을 살다 갈 것이다. 나는 영국보다는 아일랜드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고, 스페인보다는 아메리카 인디언(Native American)의 언어가 궁금했으며, 유럽보다는 아랍 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남성보다는 여성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소수자에 대해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온갖 매체를 통해 쉽게 주입되는 주류의 정치에서 벗어나 스스로 파헤치고 찾아다녀야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공부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북한에 대한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힘이 센 여권(旅券)을 가진 한국인은 웬만하면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곳을 방문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북한을 제외하고 말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아직도 나이 지긋한 정치인들은 조금만 의견을 달리하면 서로를 빨갱이종북으로 몰아간다. 사상과 발화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온갖 해악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공산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된다. 한국에서 허용되는 북한 관련 콘텐츠는 그들을 빨갱이간첩으로 몰아가는 내용이거나 구질구질하게 못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만 치우쳐 있다. 우리에게 북한은 분노의 대상이거나 연민의 대상이다. 북한 사람은 괴물이거나 피해자다. 중간은 없다. 이런 흑백논리는 우리 모두를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한국 내에서 북한의 역사나 정치문화적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흥미로운 정보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한국 바깥에서 접하기가 더 쉬운 지경이다. 미디어에서 비추는 북한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을 벗어나 중앙아시아로 향한다. 우리 모두가 목말라하고 있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이 영화를 볼 때의 충격은 <레토>(2018)를 처음 봤을 때의 혼란스러움에 버금가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의 배경에 고려인의 뿌리를 가진 채 러시아의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빅토르 최의 목소리가 깔리며 감동이 더해진다. 김소영 감독은 고려인이라는 디아스포라에 주목하며 '망명 3부작'(<김 알렉스의 식당: 안산-타슈켄트>(2014),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만들었고 <굿바이 마이 러브NK : 붉은 청춘>이 그 대미를 장식한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무지했던 탓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별세계 같았다. 특히 모스크바 8진 중 한 명인 최국인 영화감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너무 흥미로웠다. 최국인 감독은 만주에서 조직된 조선의용군 중 하나인 '연안파'에서 항일투쟁을 했고 북한에서 배우로 활약하다 한국전쟁 당시 소달구지에 촬영 장비들을 싣고 무사히 후퇴한 공로로 모스크바 영화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 후 모스크바 8진 중 한 명인 허웅배가 김정일의 개인숭배 사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8진 모두 대학에서 퇴학당하게 되고 그들은 러시아를 떠나 중앙아시아 각지로 망명하게 된다. 망명 후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최국인 감독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고 <용의 해>(1981)라는 작품으로 국가상까지 받으며 영화감독으로서 성공한다. 그는 한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를 할 줄 안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는 것만도 대단한데, 새로운 언어로 예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결코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1926년생인 최국인 감독은 아주 오래도록 해오고 있었다. 영화는 2015년 작고하신 최국인 감독의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낸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씀이 아주 오래도록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민족을 위해 영화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운명이 상당히, 비참한 운명입니다.” 타지에서 명성 있는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면서도 카자흐스탄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야 했던 죄책감, 결코 잊을 수 없었을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과 사랑이 한데 뒤섞인 말씀 같았다. 운명이 그에게는 비참했을지언정 그가 살아온 숭고한 인생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내러티브의 힘은 대단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시키고 눈물 흘리게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아내인 지나이다가 그를 회고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다. 이제는 백발이 된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힘에 부치는 듯, 혹은 감정의 격동을 억누르려는 듯 잠깐씩 입술을 부르르 떤다. 눈시울이 빠르게 붉어진다. 그의 기억이 조금도 녹슬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장 생생하게 그를 기억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마치 대본이라도 읽는 것처럼 단호하고 확고한 말투로 그에 대한 기억을 읊는다. 그에게 기억이란 먼지 쌓인 서랍 뒤쪽에서 애써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의 주변에서 공기처럼 살아 숨 쉬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려웠을 한국인들의 이름도 거침없이 읊는다. 러시아에서 한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간 날, 지나이다에게 직원이 물었다고 한다. “누가 당신에게 이 고려인과 결혼을 하도록 강요했느냐?” 그는 아직까지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긴 숨을 들이쉰다. 그 후에 다시 말을 잇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랑은 인종, 국경, 그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이 질문이 나에게 던진 울림은 상당했다. 과연 우리는 알고 있을까? 세상에 정말 그런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빨갱이난민밖에는 될 수 없는 북한 사람이, 고려인이, 그런 사랑을 했다는 것을?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한평생 고민하며 괴로워했다는 것을? 그런 괴로움과 죄책감과 번민을 누군가는 카자흐스탄어로, 누군가는 한국어로 남겼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그리고 지금 여기 한국에서도 수많은 고려인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마치 우리처럼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아니,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까?

 

이 영화처럼 북한 청년의 생생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낸 콘텐츠는 본 적이 없다. 또한 북한 청년을 시혜적인 시선이 아닌 같은 사람으로서, 존경하는 예술인으로서, 뿌리 깊은 고려인으로서, 그리고 조국을 사랑한 애국인으로서 조명한 다큐멘터리 역시 처음이었다. 그들이 재연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며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누가 그들의 삶에 반박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그들을 단지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모욕할 수 있을까.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이 철저하고도 다양한 고증을 거쳐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한국에 걸려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 진실로, 우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존재를 지워버릴 수 없듯 기억될 만한 기억은 어떻게든 전승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영화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다양한 것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역사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을 더 담대하게 끌어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지점에서는 소수자이므로 남을 배격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해방될 수 없다.

 




모스크바 8진의 삶은 역사에 새겨지지 않았지만, 격난의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진 최국인 감독과 김종훈 감독의 얼굴, 그리고 지나이다의 얼굴 그 자체가 역사였다. 그 얼굴의 힘, 말의 힘, 진심의 힘을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작년,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같은 해, 제주 예멘 난민 수용을 둘러싼 사회적 쟁점이 불거졌다. 우리는 분명 생산적이면서 인도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더 이상 무지를 근거로 한 혐오는 용납될 수 없다. 혐오의 정치는 언제나 자멸해왔다. 역사가 증명한다. 지나이다가 말했듯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의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를 통해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주변부에서 중심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그 지형이 생각보다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 바깥의 존재들을 기억하는 영화들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더 이상 안과 바깥을 나눌 수 없게 될 때까지.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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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수를 찾아가는 여로(旅路)  <예수보다 낯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29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여균동 감독 배우 조복래

진행 무브먼트 진명현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영화는 허구의 이미지이지만 항상 타자와 현실의 문제로 나아간다. 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신이 존재하듯, 수많은 타자가 있기에 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극적인 서사 혹은 적대자 없이 주고받는 대사만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영화 <예수보다 낯선>은 우리 모두 예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메시지를 하나로 봉합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생각할 틈 없이 유쾌한 웃음을 취한다.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 그 15번째 행사의 인디토크는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와 여균동 감독, 그리고 조복래 배우와 함께했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명현): 영화 잘 보셨나요?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황당하신 분들이 계실 텐데요. 사실 되게 오래간만에 많은 이야기들이 왔다 갔다 하는 이야기예요. 영화의 끝에 배우의 뒤태가 나온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씀 건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출발이 궁금한데,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여균동 감독(이하 여균동): 사실은 영화를 10년간 안했었어요. 영화가 재미가 없고, 해서 뭐하나 싶고, 그러다 우연히 어떤 계기가 있었는데 그 계기를 설명하자면 1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넘어갈게요. 통장을 보니까 몇 백만 원이 있는 거예요. 우연히 촬영과 조명했던 친구들을 만났고, “심심한데 영화나 찍을까? 노느니 뭐하냐. 찍자.”라고 해서 시작을 했어요. 사실 결핍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현장에서 일하면서 다들 한번쯤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결핍감이 아마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출발점인 것 같아요.

 

조복래 배우(이하 조복래): 안녕하세요. 예숩니다. 조복래라고 합니다. 재밌게 보셨는지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여균동: 예수라고 하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진명현: 조복래 배우님이 단발머리하시고 예수라고 하면 왠지 믿게 되거든요.

 

여균동: 머리가 정리되고 단아한 이 모습으로 촬영 현장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예수의 모습하고 비슷해요.





진명현: 단발머리가 감독의 디렉션이 아니었다면 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건지, 예수를 해석한 배우의 연기가 궁금합니다.

 

조복래:평범한 사람이지만 특별하다는 대사가 맘에 들었고, 제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말씀드렸던 게 평범함과 특별함이 공존하는 저의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너무 평범하면 그것이야말로 진부해보이고 평범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은 반대하셨지만 조감독님을 비롯한 8명의 스탭분들을 제가 설득했죠.

 

여균동: 힘들었을 거예요. 보란 듯이 자기가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배우들한테는 부담스러운 역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우리나라는 종교문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나는 뭐 코미디 하나 할래.’ 했지만 배우들한테는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 분들은 예수 역할로 오디션을 봤던 사람들이에요. 주차요원, 깡패, 경찰이 됐지만 영화가 말하는 바대로 우리 모두가 예수라는 것이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렇게 받아들이세요.

 

진명현: 굉장히 많이 웃었을 정도로 재밌는 코미디 영화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웃고 나면 잠깐씩 생각이 멈추는 때가 있어요. 곱씹어보면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있거든요. 엄청난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 문제의 마지막 장면이 나왔어요. 어떻게 연출하신 건가요?

 

여균동: 제가 디렉팅한 건 그거죠. 물 위를 걸어가라고. 근데 물에 빠지더라고(웃음).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찍으면 안 되는 장면이었어요. 물이 엄청 차가워요. 그런데 제가 무식하게 돈도 없고 장비도 없으니까 사실 배우한테 엄청난 폭력을 쓴 거죠.

 

조복래: 감독님께서 그러시는 거예요. “북극곰 축제가 있대. 사람들이 옷 벗고 바다에 뛰어 들어 가는 거야. 바닷물이 겨울에 은근히 따뜻하대.”

 

여균동: 저는 그렇게 추울 줄 몰랐어요. 엄지발가락 담그는 순간 온몸이 얼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배우들이 존경스럽고 정말 목숨을 걸고 촬영하는구나.’ 싶었어요. 배우를 보는 제 눈이 바뀌더라고요.

 




진명현: 실제 촬영지는 부산 아니지 않으셨어요? 강원도 바다 같던데요?

 

여균동: 서해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에 누가 숙박을 제공해줘서 갔어요. 사실 외관으로 보면 따뜻해 보이고 평화롭고, 그래서 그냥 들어가 봐. 괜찮아. 발가벗고 들어가는 축제도 있잖아.” 그랬어요. 저는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을 한 거죠.

 

진명현: 파도가 엄청 세지 않았어요?

 

조복래보기에도 위험해보이지만 그 때 당시 상황보다 화면에 덜 담긴 거예요.

 

진명현: 촬영 한 번 만에 끝나신 거예요?

 

조복래: 물에 발 담그는 순간 뒤돌려고 했어요. 일단 옷을 벗는 자체가 추웠어요. 근데 NG를 내면 옷 입었다가 다시 벗어야 되고 그걸 생각하니까 그냥 들어가자 싶더라고요. 그리고 북극곰 축제는 참여자들이 다 엄청 몸을 풀고 들어가는데 저는 그냥 천천히 걸어가는 거더라고요. 계속 걸어가도 몸이 안 잠기는 거예요. 파도가 한 번 칠 때마다 무릎을 굽히기도 했어요. 물에 입수했을 때 최대한 깊은 호흡으로 물살을 이겨내면서 들어갔던 것 같아요.

 

여균동: 위험한 장면이었던 건 사실이고, 장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그 장면은 찍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 북극곰 축제가 잘못된 거예요. 아니, 남녀노소 다 뛰어 들어 가더라고요(웃음).

 




진명현: 몇 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그렇게 춥진 않다고 하더라고요. 북극곰도 혼자는 잘 안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조복래 배우님 큰 고생하셨습니다. (관객 박수여균동 감독님도 예전부터 배우를 같이 하셨어요. 코미디 연기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톤으로 연기를 하셔서 조복래 배우님께서 계속 연기해야하는 파트너로서 초반에 굉장히 부담되셨을 것 같아요.

 

여균동저는 제가 대본을 쓰고 수없이 연습을 했으니까 똑같진 않더라도 대부분 외워요. 그러니까 저는 틀리면 좀 어때요. 근데 연기자 분들은 대본 받고 연기하는 거잖아요. 그럼 누가 손해를 보겠어요.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는 했어요. “나랑 연기하면 손해 본다. 나는 내 맘대로 해도 되고 너는 네 맘대로 못하니까.” 또 저는 되게 자연스러운 걸 좋아해요. 연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연기자의 연기가 보이는 그런 연기를 싫어해요. 그런데 또 연기를 안 하면 그것도 싫긴 해요. 저도 사실은 솔루션이 없는데 연기자가 연기를 들키는 순간이 있어요. 자의식처럼. 근데 그게 보이면 싫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만족스러운 게 없는 것 같아요. 연기자들이 나를 보면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싶을 거예요.

 

진명현: 배우님은 무슨 생각하셨나요?

 

조복래: 이 작품을 찍으며 굉장히 성장했어요. 죽음까지 갔다가 왔고. 사실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싶었어요. 방향도 모르겠고, 그래서 내려놓기도 했다가 잡기도 했죠. 그런데 그런 걸 떠나서 감독님한테 배운 게 많았어요. 이 영화가 독립영화고 스탭 수도 적고, 촬영은 굉장히 여유롭게 진행했습니다. 하루 쉬고 하루 찍고, 힘들면 다음날 쉬고, 처음 촬영 들어가기 3-4주 전부터 연극무대를 준비할 때처럼 매일 만나서 작업을 했어요. 그 때 예수라는 역할에 대해서 저도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다음 날부터 계속 혼났어요. 감독님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연기를 잘하시고 배우가 고민하는 부분을 너무 잘 아시고, 많이 헤아려주시고, 그래서 작업을 하고 난 뒤부터 남는 게 많았어요. 아직 배우로서 철학과 소신을 적립하는 과정이라 감독님의 디렉션을 모두 수용해서 표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정말 노력을 많이 했고, 재밌었습니다.

 




진명현첫 만남 이후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작품에 뛰어들어야했던 상황이었고 심지어는 바다에 뛰어들면서 끝나니까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던질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심지어 이렇게 예민하게 디렉션을 주는 연기 파트너도 있잖아요.

 

여균동: 제가 주로 연극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를 시작하면서 낯설었던 풍경 중에 하나가 배우들이 바쁘니까 촬영 전에 한 번 와서 리딩하는 모습이었어요. 성의껏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농담하다 가요. 그러고 촬영 날 와서 연기를 하는데, 다 아는 거예요. 천재들인가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연극은 순서대로 하지만 영화는 저거 찍다가 이거 찍고 순서가 뒤죽박죽이잖아요. 완전 천재들의 집단이구나. 그래서 결심했어요. 연출에 대한 말을 아예 안 하거나, 사전에 말을 다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 왜냐면 제가 자신이 없었어요. 매번 와서 저게 맞네, 이게 맞네, 요구하면 제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지적능력이 탁월하지 않고 변덕이 심해서 어제 했던 이야기도 잘 몰라요.

그래서 감독 데뷔했던 <세상 밖으로>(1994)는 말을 아예 안했어요. 카메라 위치 등에 대한 리허설도 안 했어요. 일체의 디렉팅이 없었어요. ‘배우라면 자기가 책임져야지.’ 그래서 남는 건 욕 밖에 없었죠. 그 다음부터는 연습을 했어요. 배우들한테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하고 현장에서는 일체 이야기를 안했어요. 대신 그 한 달은 진짜 연습을 열심히 해요. 싸우고 토론하고 제가 생각한 것 다 이야기하고, 그 방법이 좋은 것 같아요. 그 후 현장 와서 연기를 다르게 했다, 그건 그의 것이기 때문에 일체 이야기를 안 해요. 본인이 책임지는 거니까. 이런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저한테는 연출할 자신이 없어요. 말을 다하거나 아예 말을 안 하거나. 그래서 한 달 간 힘들었을 거예요. 대사 한 줄, 한 줄 가지고 욕하고, 바꾸고 왜 그렇게 말하니.’ 하고, 힘들었을 것 같긴 해요.

 

조복래저는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고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촬영 들어가면 어떻게 같이 호흡할 지 그런 걱정 당연히 했는데, 정말 촬영이 들어가니까 감독님이 디렉션을 하나도 안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감사했어요. 그동안 쌓아왔던 걸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여균동: 확실히 믿은 건 바닷가 이후야.

 

진명현: 처음 찍었던 장면은 어떤 거였나요?

 

여균동: 다 순서대로 찍었어요.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진명현: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굉장히 궁금해지는 영화예요. 영화에서 왔다 갔다 하는 대화가 되게 많아요. 애드리브나 현장에서 조금씩 바뀌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여균동: 그랬을 거예요. 애드리브도 많고. 그런데 조복래 배우가 거의 대사를 외웠더라고요. 대사 다 외우는 배우 처음 봤어요.

 

조복래: 3주가 고통스러웠어요. 한 마디, 한 마디 혼나면서 했거든요.

 

여균동: 제가 대사를 못 외우고, 제가 NG를 내고, 앞에 써두라고 하기도 했죠. 사실 처음에 내 통장에 몇 백 있으니까 영화 찍을래?” 말은 그렇게 하고 스탭들을 불렀는데 걱정이 되잖아요. 극장에서 시사할 때도 스탭들이 개봉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 우리들이 참 장한 일을 했구나 싶었어요. 불가능한 일을 해낸 거예요. “밥값이 없다. 촬영도, 조명도 혼자 와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소수인원으로 하게 됐는데 다들 약간 치유 받는 느낌을 받았대요. 그냥 내 앞에서 하는 소리였겠지 싶긴 해도 무언가를 만든다는 거 자체가 손으로 만져지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내 것 같구나 싶은 경우가 참 드물죠. 사실 죽을 때까지 못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근데 이 영화가 그런 느낌, ‘영화가 만져지는구나.’하는 느낌을 줬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이 영화에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그래서 신, 죽음, 우주에 관한 질문으로 시리즈물을 만들고자 했어요. 이건 신에 관한 질문이고 죽음에 관한 질문은 촬영이 끝났어요. 그것도 똑같아요. 남자배우랑 저랑 떠드는 거예요. 세 번째는 외계인 만나는 건데, 외계인하고 떠드는 거겠죠. 스탭들이 두 번째도 흔쾌히 같이 했어요. 그건 더 재밌게 끝이 났고, 세 번째까지만 세상을 만져보듯이 영화를 해보자. 저는 그걸 갈취해서 영화에 이용한 거죠.

 

진명현: 두 번째 영화나 세 번째 영화에도 조복래 배우가 나오나요?

 

여균동아니요. 바빠서 같이 못 찍게 됐습니다. 외계인은 좀 여러 명 나와요. 생각은 있는데. 조복래 배우가 바빠요. 제발 바쁘길 바라요. 배우로서 좀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좋은 배우가 되길 바라서 바빠졌으면 좋겠어요.

 

진명현감독님의 이전 작품들에서는 좀 더 캐릭터가 강한, 본인들의 얼굴을 보기 어려운 장면이 많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눈을 굉장히 유심히 보게 돼요. 이전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언가 벗겨진 얼굴들을 볼 수 있었던 게 이번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로맨틱한 로드무비로도 봤거든요. 이윤기 감독님의 <멋진 하루>(2008)처럼 서울을 계속 떠도는 낭만적인 이야기 같다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결로 읽힐 수 있는 영화라서 한 번 더 보면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여균동: 제 영화는 악한 사람이 잘 못 나와요. 악인을 그리는 게 힘들고, 어색해요. 성정이 약해서 그런가. 영화에는 갈등도 있고, 악한 사람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으니까 드라마를 만들기가 어려운데, 개인적으로 그런 걸 싫어해요. 예수 같은 경우는 배우한테 내심 말은 안했지만 원했던 건 선한 마음에요.

 

조복래: 어우, 많이 하셨죠.

 

여균동: “조금 모자라 보이더라도 선해보였으면 좋겠다. 다 아는 척 하지 말고 세상에 질문하듯이 연기하면 안 되냐. 우리는 모르니까. 모르는 이야기지만 계속 의문을 갖더라도 악인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와 싸우는 이야기니까 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죠.

 




관객: 영화 너무 재밌게 봤고 주변에 홍보 많이 할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많았거든요. 그 대사들 중에서 감독님이랑 배우들이 생각했을 때 관객이 꼭 가져갔으면 하는 대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복래저도 작업하면서 느꼈던 지점인데, 대사가 주는 것들이 너무 와 닿았어요. 이야기의 구성자체는 심심하게 보일 수 있는 점도 많지만 이런 작품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배우는 게 너무 많았어요. 보면 볼수록 이전에 안 들렸던 대사가 들리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작품인데, 제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여러분들께서 쉽게 캐치하셨을 부분이시기도 해요. “네 입이 달면 세상이 달콤하다.”는 말이 저는 좋았어요. 감독님께서 바다에 갔다 온 후 네가 배우로 보인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들로 작품을 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베테랑인 감독님들과 되게 여유롭게 작업을 하는 그 기간들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균동: 기억에 남는 대사보다는 영화 찍으면서 저를 깨우치게 만든 대사는, 여자가 내가 예수한다니까.”라고 말하는 게 있습니다. 그 대사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되게 묘한데, 다른 사람이 예수한다고 했을 때 남자가 예수한다고 안하잖아요. 근데 여자가 내가 예수할래.” 하니까. “여자가 예수한다고?”라고 물어보면서 바로 젠더 문제로 들어가게 돼요. 그게 우리의 생각이에요. 여전히 상상력이 갇혀 있는 거예요, 우리는. 여자가 짜증내잖아요. “내가 예수한다니까? 여자가 아니라 내가 예수한다고.” 영화의 주제는 누구나 예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상상력을 깬 사람이거든요. 대사를 정리할 때 우리 딸들이 검열을 하면서 고쳐줬는데, 그 부분이 사실 저도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여자가 아니라 내가 예수한다니까?”라고 대답한다는 게요. 근데 촬영하면서 느껴지더라고요. ‘모두가 예수가 된다는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왜 이 대사를 이해 못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좋은 작품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초대해주신 유지태 배우님께도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평생 예수 이야기를 못 박히게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통쾌했던 장면이 많았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과 현재 영화에 나오는 모습 간의 괴리들을 통쾌하게 잘 풀어주셔서 재밌었습니다. 중간에 아들하고의 대화 후에 그림을 들고 차로 가시잖아요. 마치 연출한 장면처럼 차 안에서 그 그림을 뒤에 두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떤 생각을 하시고 그런 연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여균동: 그림 말씀이죠? 그 그림은 제가 그린 것이거든요. 집에 그려놓은 게 몇 장 있었어요. 그냥 그 색감이 예뻐서 소품으로 가져 온 거예요. 그림을 보면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서 포개놨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인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의미는 그런 건데.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지만 실제로 이 세상은 두 가지가 양립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거 같아요. 하나만 있으면 존재할 수 없어요. 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신도 있고 신이 있으니까 인간이 있는 것 같고. 일단 자의식이 있는 건 인간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자기가 자기를 의식한다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울이 없는데 자기를 어떻게 느낄 수 있어요? , 내 마음속에 거울이 있는 거죠. 그 거울이 누구냐면 제가 생각했을 때는 타인이에요. 타인이 있어야 제가 보이는 거죠. 지구는 별이 아니라잖아요. 지구는 행성이라 태양 빛을 반사할 뿐 스스로 빛을 못 내잖아요. 근데 지구 빛이 너무 예뻐요. 그게 인간인거 같아요. 아마 종교도 마찬가지고. 이처럼 그림의 맥락은 되게 사소한데, 실제로 그 장면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자꾸 자기 속에 있는 타인을 밀어내려고 하는가. 자기 안에 타인이 있어야 신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걸 제도화시킨 게 종교죠. 이런 제도화 된 거 말고 자기의식 안에 있는 타자, 내면 안에 신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거창하네요.

 


관객: 영화 인상적으로 잘 봤습니다. 영화에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 관장님이 나오시더라고요. 오디션을 보셨을 것 같진 않고,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합니다. 또 마포대교 갔다가 내려가서 자장면을 시키잖아요. ‘현래장이라는 곳에서 오던데, 그곳은 마포역에서 장사가 잘 되는 중국집이에요. 이게 마포대교를 지나가다가 그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그 곳에서 시키신 건지, 아니면 나름대로 콘티나 스크립트를 짤 때 미리 정해놓으신 건지 궁금합니다.

 

여균동이정모 관장은 동네 친구예요. 그렇게 연기를 하고 싶어 해요. 만날 때 마다 회 사주면서 나 언제 영화에 나오는 거야.” 물어봐요. 그래서 영화 찍으면서 깡패 역할을 줬어요. 근데 와서 연습을 하는데 소리만 지르지 연기를 못하는 거야. 그래서 잘랐어요. 그러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까 마음이 아파. 그래서 셰프 역할을 줬더니 대사를 이만큼 써온 거예요. 과학적이야. 두 번째 질문은, 마포역에 가면 그 중국집에 가게 되어있어요. 제작부에서 사전에 섭외를 했던 것 같아요. NG나면 자장면을 다시 시킬 수는 없으니까 미리 받아놔야죠. 세세하게 이름까지. 그 중국집이 꽤 유명한가 봐요.

 




진명현: 두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 덕에 이 작품을 즐겁게 기억할 것 같아요. 유지태 배우님과 조복래 배우님이 출연하시는 54일부터 오후 95분에 방영될 사극 <이몽> 많이 사랑해주시고, 여균동 감독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두 분 인사 말씀 들으면서 자리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조복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긴장도 많이 했었는데, 우선 유지태 선배님한테 정말 감사드리고 와주신 동료 분들도 감사드려요. 이렇게 재밌게 봐주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무겁게 보시진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그래서 마음 편하게 GV시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올 감독님의 작품이 저는 여균동의 생각을 준다.’ 시리즈인 것 같아요. 감독님의 앞길 응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균동: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영화를 봐주는 것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자리가 되게 행복합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진명현: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신 관객 분들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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