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해야 하는 가족 이야기  인디포럼 월례비행 〈이장   기록


일시 2019년 7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정승오 감독|배우 이선희, 공민정, 곽민규, 송희준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가부장제 안에서 누군가는 권력을 누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안주하려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삶을 통째로 희생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가부장제 안으로 걸어들어온 사람은 없다. 영화 이장은 한편에선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하고 다른 한편에선 아직까지도 가부장제가 죽지 않은 바로 지금 해야 하는 가족 이야기이다. 정승오 감독은 가족적 봉합 보다는 서로 어떻게든 공존하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송효정 평론가(이하 송효정): 관객분들이 객석을 꽉 채워주셨는데요, 참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인물들을 다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이장의 정승오 감독님과 배우분들 모셨는데요, 간단한 인사 듣고 관객과의 대화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승오 감독(이하 정승오): 안녕하세요. 이장을 연출한 정승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궂은날씨에도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선희 배우(이하 이선희): 안녕하세요. 저는 둘째 금옥 역을 맡은 배우 이선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공민정 배우(이하 공민정): 안녕하세요. 저는 셋째 금희 역할을 맡은 공민정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곽민규 배우(이하 곽민규): 안녕하세요. 저는 승락이 역할을 맡은 곽민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송희준 배우(이하 송희준): 안녕하세요. 저는 윤하 역할을 맡은 송희준입니다.반갑습니다.



 


송효정: 이장이라는 영화는 가족들이 아버지 묘지를 옮기기 위해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일단 정승오 감독님은 인천 기반으로 독립영화 활동을 해오셨고, 단편영화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 순환소수(2017), 오래달리기(2018) 같은 작품들을 선보이셨어요. 이번 영화가 첫 번째 장편영화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많은 관객분들이 첫 장편영화 이장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거든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승오: 단편영화들을 몇 개 작업했었는데,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항상 가족드라마가 되더라구요. 항상 가족드라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진 않았는데 이번 작품도 쓰다보니까 오 남매 이야기가 되었어요. 계기 중 하나는, 제가 20대 중반에 할머니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데 공동묘지 터가 아파트 건설 때문에 모두 밀리게 생긴 상황을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는데, 뭐랄까요, 아파트 건설 때문에 죽은 사람들까지 끄집어내서 강제로 철거하는 듯 했고, 그 폭력적인 느낌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또 제가 밀착해서 관찰을 할 수 있는 한 가족이 있었는데, 그들이 실제로 오 남매였고, 그 가족도 막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가 굉장히 가부장적인 지점이 있었어요. 아버지의 말 한마디, 제스쳐 하나에 여성 가족원들이 순응하고 따르는 모습들을 보는데 외아들인 저에게 그 풍경이 이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강제 이장과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단편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네 자매가 나오잖아요. 이 작품은 막내아들까지 들어가 다섯 남매가 된 것인데, 그런 설정의 변화가 어떤 이유로 필요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사실 단편을 확장시켜서 오 남매 이야기가 되었다기 보다는, 제가 밀착해서 바라본 가족의 풍경에서 막내아들을 보면서 한 번 상상을 해봤어요. 굉장히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남겨진 형제자매의 모습은 어떨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자녀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연락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막내아들은 잠수를 타고 사라지고 억압과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이 아버지를 이장해야 한다는 상황이 겹치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다가 만들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가 배우들을 보는 것이에요. 네 자매와 막내아들, 큰아버지 부부. 모든 인물들이 너무나 인상적이고 사실적이었는데요, 어떻게 이런 배우분들을 만나게 된 것인지 궁금해요. 대사를 듣다보면 그 배우의 개성과 너무 잘 맞아서 감독님께 먼저 시나리오를 쓰실 때 특정배우를 상정하고 쓰신 것인지, 아니면 캐스팅을 한 후에 배우분들을 영화에 맞추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프리 프로덕션이 조금 빠듯하게 진행됐어요. 애초에 시나리오를 쓸 때 첫째 장리우 배우님과 막내 곽민규 배우님은 염두에 두고 썼고, 캐스팅 과정에서 곽민규 배우님께서 공민정 배우님을 추천해주시고 장리우 배우님께서 이선희 배우님을 추천해주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아는 PD님이 송희준 배우님을 추천해주셨어요. 서로 관계가 있고 친밀감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잘 녹아든 것 같아요. 배우들께서 잘해주셔서 제가 거의 숟가락을 얹었죠.

 




송효정대사들이 각 배우의 이미지에 착착 붙어서 환상의 팀워크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분들께도 질문을 드릴게요. 맏딸 혜영을 맡으신 장리우 배우님께선 참석예정이셨으나 몸이 안 좋아지셔서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하셨어요. 둘째 이선희 배우님부터 질문 드릴게요. 영화를 통해 이 자리에 와계시지만 연극도 하고 계셔요. 주로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그리고 이번 영화 촬영 때는 어떠셨는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선희: 저는 원래 연극을 주로 했어요. 단편영화로 처음 인사를 드렸던 것이 상콤한 그녀의 참신한 오후(2007)라는 영화였는데, 거기서 커피를 정말 못 만들고 배달가면 욕을 먹는 다방 커피배달원 역을 했어요. 아무래도 주로 연극을 하다보니 영화는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변호인(2013)이라는 작품에 짧게 출연하면서 장리우 배우와 친해졌어요. 그래서 이 작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소개를 받아서 미팅을 했는데 대본을 집에 가서 읽어보겠다고 하고는 한 시간도 안돼서 바로 하겠다고 전화를 한 것 같아요. 대본을 너무 착착 붙게 써놓으셔서 에드리브도 사실 거의 없고요. 그냥 대본에 써있는 대사 그대로 했어요.

 

송효정: 다음으로 공민정 배우님, 최근 홍상수 감독 영화를 비롯 다양한 곳에서 활약하고 계신데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촬영하는 동안 어떠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민정: 저도 마찬가지로 감독님께 연락이 와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도 시나리오 보고 그날 밤에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제 역할이 무엇인지 말씀 안 해주셔서 몰랐거든요. 그렇지만 바로 들어간 작품이고 둘째 언니(이선희 배우)가 말씀하신 것처럼 대본이 너무 잘 써져있어서 딱히 더 뭘 할 것이 없었어요. 리허설도 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가족간의 온도를 잘 형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첫 리허설 리딩 때 참고로 봤던 한 가족사진이 있었는데, 오묘하게 배우들과 닮아있어서 재밌었어요. 촬영하면서는 언니들이 너무 잘해주셨고, 워낙 잘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니 저는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밌었어요.

 

송효정곽민규 배우님은 지난 달 월례비행에 이어 또 방문해주셨어요. 거의 월간 곽민규로 매달 찾아주시는 것 같은데요.(웃음) 이 영화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잖아요. 아주 고난이도의 연기를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이 됩니다.

 

곽민규: 저도 정승오 감독님께서 막내 역할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이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대사가 별로 없죠. 없을 수밖에 없죠. 죄책감이나 말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대사가 많진 않았고요. 그냥 그 답답한 공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습니다.

 

송효정: 다음 배우분은 막내의 헤어진 여자친구, 윤하 역의 송희준 배우님인데요. 듣기로는 모델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고 어떠셨는지 소감 부탁드릴게요.

 

송희준: 저의 전공은 미술이어서 원래 그림을 그렸어요. 히스테리아〉(2018)라는 단편영화에 참여한 적이 있고요. 정승오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같이 하자고 하셔서 시나리오를 읽고 고민을 하다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영화에서처럼 자매 언니들과 너무 재미있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고요, 같이 하는 곽민규 배우님이 제가 경험이 없어서 어색할 때에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즐겁게 했습니다.

 




송효정: 제가 감독님 이전의 단편들을 쭉 봤는데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도 그렇고 이장도 그렇고 비가 내리는 장면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같은 경우는 비가 내리고 가족들이 바로 흩어지고, 이장에서는 비가 내리니까 가족들이 처마로 나오는 아주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는데요. 특별하게 날씨라든지 계절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하고요. 감독님 영화의 특징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하고 설득한 다음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그 의미를 생각하게끔 하시는데, 동백꽃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정승오: 일단 장면 안에 자연 현상이 들어가면 그 장면이 주는 정서가 좀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비가 와서 어디로 가지 못하는 어떤 상황에서 여섯 명이 각자의 고민을 한 공간에서 떠올리고,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몸짓으로 나타나는 순간들이 카메라에 담기길 바랐어요.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게 아니더라도 이 순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비가 내리지만 온기가 느껴지게 하고 싶었어요. 동백꽃 같은 경우에는 죽은 아버지가 딸들에게 보내려고 했다가 보내지 못했던 메시지에 사진으로도 등장하는데요, 이것을 딸들에게만 보냈을 때 자기 스스로 가장으로서의 위신과 권위가 떨어지는 것처럼 느끼고 검열을 했기 때문에 보내지 못한 거잖아요. 그런 마음과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존하지만 결국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는데, 셋째 딸이 그걸 발견하고 간직하는 것이죠. 가부장으로의 존재와 아버지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할 때 동백꽃으로 아버지의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송효정: 그렇다면 동민이 잠시 들어갔던 빈 집이 과거에 부모님이 살고 계셨던 곳인 거죠?

 

정승오: 그렇게 의도했는데, 캐치해주셨다면 너무 감사하죠.

 

송효정: 조금 전에 영화에 자연 현상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갈 때 반달이 등장하고 중간에도 몇 번 달이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반달이나 낮달을 영화에 넣으신 의도도 궁금해요.

 

정승오: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막연하게 삼대(三代)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 나이대로 삼은 오 남매를 중간 세대로 두고 그 위아래 세대를 두어 삼대를 조망하고 싶었는데요. 윗사람인 큰아버지, 큰어머니로 상징되는 세대는 어떻게보면 가부장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떤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잖아요. 저희 세대로 표현되는 중간 세대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요. 그 아래 세대인 동민이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 가장으로 성장하기보다는 괜찮은 남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가 있어요. 이 삼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겐 동생이고, 누군가에겐 아버지이며 누군가에겐 할아버지인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표현 중 몇 가지가 달과 동백꽃,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중년 남자입니다.

 




송효정: 그 중년 남성분은 어딜 가나 나오시더라구요.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으신 배우분이시죠?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보면 모든 십계시리즈에 한 번씩 지나가시는 분이 있는데 약간 그런 분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와 같이 부재하는 존재에 대한 상징으로 보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배우분들을 통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먼저 첫째 딸은 이혼을 한 것인지 사별을 한 것인지 그런 부분이 궁금했는데 장리우 배우님이 안 계시니 이선희 배우님이 함께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둘째 딸 같은 경우에는 다 말해주지는 않지만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딸이 하나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의 바람을 목격했을 때 그 집 아이가 남자아이라는 걸 유심히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두 자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선희첫째딸은 시종일관 짜증을 많이 내고 있긴 한데 어려서부터 책임감을 가져야 했고 장녀라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남편은 사별이라는 설정이고 남편의 죽음을 아직 아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태예요. 어수선한 아이를 보면서 남편의 부재를 더 강하게 느끼는 인물인 것 같아요. 둘째라는 인물은, 제가 실제로 결혼을 한 지 3년밖에 안됐어요. 저는 아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어요.(웃음) 다른 GV에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끝나지 않는 일을 계속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둘째는 그 와중에 딸을 하나 가지고 있고,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가족도 있잖아요. 이에 대한 자괴감도 있는데다가 남편이랑 관계도 틀어졌는데 저는 되게 불쌍한 여자 같거든요. 감독님과 이야기 할 때 둘째는 철두철미하고 나에게 떨어질 잇속을 항상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인물이 볼수록 너무 불쌍한 거예요. 과연 이 여자가 이혼을 할까 생각해보면 절대 못 할 것 같고. 그냥 이렇게 살 것 같은 거예요. 아까 제가 힘들다고 한 건 물리적으로 힘든 거지만, 둘째는 육아나 가사에 지쳐있어요. 큰아버지가 여자가 집구석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고 하니까 눈이 확 돌아가잖아요. 농담도 치고 실없는 소리도 하고 목소리도 크고 떼도 쓰지만 둘째라서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는 역할이라서 저는 힘없고 간이 콩알만 하다는, 안쓰러운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송효정: 첫째와 셋째는 둘 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잖아요. 그런데 서로 다른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셋째가 화상통화하는 남자친구 역은 실제로는 영화감독님이시던데요. 공민정 배우님께서 셋째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셋째가 생각하는 결혼관에 대해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공민정: 먼저 셋째와 곧 결혼을 하려고 준비 중인 남자친구로 나온 분은 엄태화 감독님이에요. 엄태화 감독님이 영상을 여러 개 찍어서 보내주셨고 저는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너무 잘해주신 거예요. 너무 실감나게 찌질한 남자친구 역을 해주셔서 저도 너무 편하게 했어요. 금희는 셋째잖아요. 가운데에 있는 인물이고 현실주의자이면서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했어요. 나름대로 정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지만 건들면 안 되는 선을 넘으면 밀고 나가는 인물인데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엄마, 아빠, 승락이, 언니들 비위를 가장 많이 맞추면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알게 모르게 다섯 명을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잘 이끌어가려고 노력했던 인물이고요. 그래서 승락이도 셋째 누나에게 가장 연락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어요. 금희는 이 가족의 가운데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에요. 금희가 생각하는 결혼은 현실이고, 최소한의 것은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것을 상대방이 제시하니 답답하죠.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500만원이 굉장히 중요했고, 언니들이 양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또 당연히 결혼을 하니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누군가 그 마음을 건드리고 뜻대로 안되니까 돈도 돈이지만 빈정이 상한 것 같아요. 그동안 자신이 해온 게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싶고요. 결혼에 있어서도 현실적이고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송효정: “그 돈 나 줘.”라고 하지 않고 나 주면 어때?”라고 하면서 미안해하는 성격에서 셋째의 성격이 잘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곽민규 배우님께서 맡으신 막내인데요. 사실 저희는 다섯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직장을 관두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컴퓨터 옆에는 백일장 사진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인물은 어떤 인물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곽민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설명해주셨던 것이 기억이 나요. 승락이는 가부장제를 이어받고 싶어서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물이 들어서 누나들과 다툼이 생기는 인물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직업 설정은 글을 쓰는 작가지망생이었고 누나들과는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상태예요. 그나마 금희 누나한테만 가끔 연락을 해서 용돈을 받고 하는 인물이에요.


송효정: 마지막으로 송희준 배우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이 여성의 캐릭터는 흔한 듯 하면서도 흔하지 않거든요. 승락에게 돈을 요구하고 그것을 계기로 남자의 가족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나는 여성이에요. 이 캐릭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요, 500만원은 아버지의 이장 보상금으로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아이를 어떻게 할 지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이에요. 이 여정이 끝난 이후 그 사이의 조화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을 감독님은 주지 않으시거든요.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송희준: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함께 하기로 했을 때 윤하라는 인물이 어떤 마음일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가 가장 걱정이 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보는 관객분들로 하여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송효정: 사실 굉장히 부담되는 상황이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할머니는 태몽을 꿨다고도 하고 눈앞에 어린 꼬마가 나타나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상황도 있고요.

 

송희준: 영화에서 승락이와 윤하의 연애가 어땠는지 심도있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굉장히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울컥할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너무 아쉽다거나 이 연애가 그립다는 마음인지는 고민이 되었어요. 단편적으로 보여지기에는 윤하는 영악하기도 하고 심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간의 시간들에 쌓인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관객: 전주국제영화제에서부터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많이 들어서 기대를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캐릭터도 정말 좋고, 가족을 다룰 때에 버거울 수 있는 부분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서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 남자는 사실 셋 밖에 안 나오잖아요. 넷째도 여성주의 활동을 하고 한편으로 남자들은 무능력하고 찌질한 껍데기처럼 보여지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설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고민되는 지점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송희준 배우님은 다른 가족들을 따라서 끝까지 간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승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가부장제가 죽어가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윗세대는 이를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굉장히 단단한 껍데기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알고 보면 깨부술 수 있는 껍데기라고 생각해요. 이것을 다섯째인 승락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승락은 이 껍데기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동민이 같은 경우에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로워 보이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여기에 나오는 남성들이 찌질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답답하고 이상한 가족제도 안에 있는 여성들이 껍데기를 부수면서 서사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기를 바랐어요. 또 가족 안에 남성과 여성이 있잖아요. 남성과 여성이 결합하여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면 이 둘의 존재를 가부장제가 갈라놓기 보다는 같이 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아버지, 승락이, 동민이 모두 미약하게나마 따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통해 조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이런 엔딩을 만들었습니다. 가족적 봉합 보다는 서로 어떻게든 공존하면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점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송효정: 그것이 감독님의 영화적 입장인 거죠. 또 윤하는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가족 바깥의 인물이잖아요. 여행까지 함께 가는 설정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정승오: 처음부터 따라가는 설정은 아니었어요. 수정을 거치고 스텝분들과 배우분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따라간다기보다는 같이 가겠다는 결정을 윤하가 스스로 내리는 것으로 읽히길 바랐어요. 윤하의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내성적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필요한 순간에는 할 말을 다 하는 인물로 보여졌으면 했어요. 이 영화에서 가장 힘들고 코너에 몰려있는 인물이 윤하라고 생각했고 저도 윤하의 선택 과정과 변화에 대해 좀 더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담고 싶었어요. 윤하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잘 표현되는 것에 포커싱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를 이번에 세 번째로 관람했습니다. 볼 때마다 마지막에 다시 떠나기 전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울컥하는데요.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큰어머니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들은 후에 돌아가는 차안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각각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배우분들게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송희준: 윤하는 '이게 끝일까? 이제 정말 끝인 건가?'하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승락의 몰랐던 가족사와 새로운 경험들, 또 자신의 선택에 대해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단 단정한 감상을 떠올렸을 것 같아요.

 

곽민규: 한 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잖아요. 벌에 쏘이기까지 하고 병원에도 다녀오고, 병원에서 윤하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도 하고요. 그 후 돌아와서 촬영할 때 느꼈던 건데, 제가 앞좌석에 앉잖아요. 이건 누나들의 결정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승락이에게 엄청나게 큰 의미로 와닿진 않았겠지만, 그동안 누나들에게 연락도 안하고 도망쳐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겪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들이 엉켰을 것 같아요.

 

송효정: 또 궁금한 것이, 문자를 셋째가 혼자 보잖아요. 가족들에게 보여줬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혼자서만 봤을까요? 공민정 배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요.

 

공민정: 그게 아빠가 보내려고 했던 문자였잖아요. 항상 잘해줘서 고맙다, 자랑스럽다 이런 내용인데요. 그 때 셋째의 마음은 아빠, 그래도 우리 잘했지?”하는 마음이었어요. 아빠가 보고싶다는 마음, “우리 그냥 이렇게 같이 잘 살고 있어라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딱히 보여준다, 숨긴다의 차원보다는, 유품을 셋째가 가지고 있었지만 딱히 그것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아마 서울에 올라가서 보여줬을 것 같아요.

 

송효정: 둘째는 큰 짐을 싸들고 나왔는데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선희: 내려올 때는 집안에 큰 행사를 치르는 느낌으로 왔을 것 같고요. 올라갈 때는 생각이 좀 복잡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계속 문자들이 오고, 집에서 항아리도 깼고, 본의 아니게 자매들끼리 마음도 확인했고요. 단순하게 내려왔다가 마음이 많이 복잡해졌을 것 같은데, 저는 그 순간에는 사실 아빠를 생각했어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금옥이의 가부장적이던 아버지와 실제 저의 아버지 생각이 좀 많이 났어요.

 


관객: 윤하는 동민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배우님께 들어보고 싶어요.

 

송희준동민이를 보면서는 물론 뱃속의 생명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그때 촬영하면서 모순적인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예쁘고 슬프고 귀엽고 미안하고. 나의 시간들은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렇지만 많이 단단해져 있는 상태고, 잘 견디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송효정: 어려운 문제네요. 윤하가 동민이나 강아지와 있을 때 죄책감을 느끼거나 슬프거나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배우분도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말씀해주셨네요.

 

송희준: 그리고 윤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나 가족들 틈에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가족들 틈안에서 느끼는 것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많이 외로웠을 친구라서요.

 




송효정: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배우분들에게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지금 하시고 계신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끝내겠습니다. 15년 정도 전에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는, 가족이 해체되거나 새로이 탄생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장과 같은 영화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하지 않고 특이한 지점에서 가족을 다시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승오 감독님께서는 이장을 촬영하면서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정승오: 한 가족의 군상을 통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가부장제 안에 누구도 개인의 의지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대안가족의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변곡점의 시기에 평생을 가부장제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선희연극은 쉬고 있어요.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하반기에 나올 것 같고요, 집중해서 찾아봐야 저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결혼을 하면서 오히려 남편을 더 자주 못 만나고 있는 현실이나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고요. 그리고 저희 모두 정말 가족처럼 느껴졌고, 모두가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정서가 많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습한 날씨에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어머니 아버지한테 전화하세요.(웃음)

 

공민정: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랑 옆의 곽민규 배우가 출연한 한낮의 피크닉이 지금 상영중이에요. 아직 못보신 분들은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곽민규: 이 영화는 저도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예요.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될 것 같거든요. 저는 가족에 대해 그렇게 생각이 많았던 사람은 아닌데 최근 가족에 관련된 작품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을 보니까 이제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한테 속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가족 문제가 다들 있을 테고,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이장개봉하면 입소문 많이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송희준: 이렇게 궂은 날씨에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열심히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요. 내년 이맘때쯤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이전에 출연했던 단편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말복이 다가오는데 백숙을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고요, 늘 건강하시고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송효정: 감사합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들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관객과의 대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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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배우

 〈밤의 문이 열린다〉 한해인 배우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삶에서 작지만 빛나는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발견하고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개봉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밤의 문이 열린다〉의 한해인 배우를 만났다. 배우로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얼굴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과 생생함이 느껴졌다. 그는 나긋한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한해인은 인간의 삶과 유령의 삶을 오가는 혜정 역을 소화했다. 1인칭 시점과 관찰자 시점을 번갈아 가면서 호흡을 유지하는 동시에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섬세하면서도 신선한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는 내 안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믿는 한해인은 자신의 고유한 내면에서 다채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배우이다. 그녀의 단단한 내면은 연기자로서 지금에 오기까지 탄탄한 기틀이자 원동력이었다.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배우, 그가 가진 철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극장의 문이 열리고 〈밤의 문이 열린다〉가 상영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개봉을 맞이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개봉이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던 터라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막상 개봉이 이렇게 다가오니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저에게는 너무 새로운 경험이고, 처음이다 보니까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다음주에 개봉을 하고 GV를 하면 어떨지 모르겠네요. 너무 기쁜 일이라서 믿기지 않을 것 같아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어떤 영화인지, 한해인 배우님께서 연기하신 혜정은 어떤 인물인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혜정이라는 인물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한 이후 유령이 되어 자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혜정이라는 인물은 꿈꾸는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하고 거리를 두며, 자기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는데요. 삶의 다양한 경험이나 감정들을 즐기려 하기 보다는 꿈도 없이 굉장히 건조하게 살아가는, 살아있지만 유령처럼 살아가던 혜정이 유령이 되고 나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촬영을 마친 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영화를 연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연출하신 영화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을까요?

 

어디서 들으신 거죠? 부끄럽네요.(웃음) 제가 연출한 작품은 작년 여름에 촬영을 했고요. 조금 무거운 소재를 다뤘어요. 임신 중단이라는 소재를 통해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입장 차이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배우로서 욕구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연출 욕구도 평소에 가지고 계셨나요?

 

아니요, 원래는 없었고요.(웃음) 막연하게 영화라는 매체를 좋아하니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연출자가 되고 싶거나 대단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요. 어쩌다가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던 중에 친구가 그러면 정말 한 번 써봐. 우리끼리 한 번 만들어보자고 해서 소규모로 진행을 하게 되었어요. 정말 친한 친구들과 같이 스태프도 없이 일기 쓰듯이 작업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우연한 기회로 연출도 시작하게 되었네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장르물이잖아요? 한해인 배우님의 필모그래피 상 첫 장르물인데요. 미스테리, 판타지 장르 연기를 소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참고하신 작품이나 레퍼런스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 영화가 장르 연기라고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하지는 않았고요. 그 인물의 상황이나 상태, 심리나 감정에 집중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레퍼런스도 어떤 특정한 캐릭터에서 따오기 보다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거칠 때 감독님께서 우리 영화가 이런 식으로 혜정이라는 인물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런 구도로, 이런 톤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퍼스널 쇼퍼〉(2016)라는 영화를 몇 장면 보여주셨어요. 그 영화를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보고, 영화 속에서 유령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서 우리 영화에서는 어떻게 유령을 다루게 될지 고민하며 진행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의 개수를 따지자면 단편 영화를 더 많이 해오셨어요. 이번에는 장편작 〈밤의 문이 열린다〉로 관객분들을 만나 뵙게 될 텐데요, 연기자로서 단편과 장편을 임할 때 연기와 마음가짐, 부담감 같은 것에서 차이가 있으셨나요?

 

본질은 같은 작업이지만, 아무래도 장편 영화 같은 경우는 긴 호흡으로 상황을 끌고 나가야 하잖아요. 장편 작업은 처음 하는 경험이다 보니 감정과 호흡이 끊기지 않고 연결된 채로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부담감이 없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씬별로 정리를 많이 했고요. 특히 이 영화는 시간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관객 분들께서 혼란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제가 시간 개념을 더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순으로 한 번 더 정리를 했습니다.

 




삶이나 사회 속에서 유령이 된 혜정처럼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요? 혹은 촬영을 하면서 문득 떠오른 경험이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어떤 한 시기는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 남들과 교류를 끊고 혼자 숨어 지내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친구들도 잘 안 만나고 일만 하면서 지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유령 같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 때 그 순간에는 버텨내기 급급했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벅찼던 것 같아요. 혜정은 그런 시간을 너무 오래도록 보내와서 몸에 배어있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혜정은 혼자 있고자 하는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연기자의 측면에서 봤을 때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감을 얻는 외향적인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혜정처럼 혼자 내면을 파고들면서 캐릭터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면, 한해인 배우님은 스스로를 어느 쪽에 가깝다고 느끼셨나요?

 

저에게는 분명히 두 가지 면이 모두 존재하지만, 후자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제 안의 감정을 연구하고 깊게 생각한 후에 극대화하거나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일치되는 부분을 끄집어내서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캐릭터로서 내 안에서 자리 잡히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타인을 관찰하면서 따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내 안에서 출발한다고 믿는 편이어서 저의 내면에 더 집중하는 편인 것 같아요.

 


과거에 혼자 숨어있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시기도 연기자로서 내면을 파고드는 작업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나요?

 

. 사실 그때는 연기를 쉬고 있었어요.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연기에 대한 꿈은 버리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는데요. 그 시기가 연기를 하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였거든요. 연기라는 작업은 어떤 인물을 마주하게 되면서 감정을 파고드는 작업인데, 연기를 쉬게 되니까 감정이 너무 허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도 그런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연기가 아니더라도 깊게 제 감정에 파고들 수 있는 작업을 무엇으로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그림을 그려 보기도 했고요. 그런 활동들이 연기의 연장선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시간의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 맞아요. 그때 버텼던 힘이 지금도 버티게 해주는 힘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면서 미스터리하고 스산한 분위기에서 묻어나오는 따스함이 신선하고 인상깊었습니다. 배우님께서 촬영에 임하셨을 때나 영화를 관람하셨을 때 비슷한 느낌이 든 장면이 있거나, 마음에 유난히 오래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는데 볼 때마다 달라져요. 어느 날은 효연과 지연 자매가 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리고, 어느 날은 수양이가 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려요. 사실 제가 연기한 혜정이라는 인물은 저와 너무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볼 때는 다른 인물들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타인의 대사에 더 울컥하기도 하고요. 제가 나오는 장면에서 기억을 하나 떠올려보자면, 엔딩 장면에서 민성이라는 캐릭터가 혜정한테 해주는 말이 시나리오를 볼 때나 촬영을 할 때 너무나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무언가를 실행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수양이랑 같이 버스를 타고 경찰서로 향하는 과정에서, 혜정이 수양에게 수양아, 너는 정말 씩씩하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수양이를 보면서 혜정이도 힘을 얻었고, 저도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영화의 플롯을 보면 혜정의 현재 시점과 유령의 시점을 오가기도 하고, 시간이 분절되거나 거꾸로 흐르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부분에서 흐름을 따라가거나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을 고려하면서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관객 분들께서 이 흐름을 따라와주실지, 혜정이 죽음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주실지, 그리고 지금이 어느 시간이라는 걸 아실지 고민이 됐어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시나리오만 보고 확신을 하기가 조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듯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과거의 혜정을 나열해서 정리하기도 했고, 현재의 모습만 나열해서 정리해보기도 했어요. 시간 순서대로 배열을 해서 과거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유령의 시점까지 정리를 하고, 시간을 여러 방향으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머리 속에서 여러 번 굴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혜정이라는 인물이 살아있을 때와 유령으로서 과거로 돌아가서 살아갈 때, 인물의 행동이나 모습이 크게 변화하지 않고 평범한 혜정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부분을 포인트로 삼고, 과거의 모습과 유령이 되고 나서의 모습을 동일선상에 두고 혜정의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면서 감정선을 연결시켰어요. 그렇게 호흡을 연결하려고 했어요.

 


영화에서 혜정을 볼 때보다 타인을 바라볼 때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다른 배우 분들과 호흡이 어땠는지 궁금해졌어요. 혜정은 수양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봤을 것 같은데요. 극중 수양 역을 맡은 감소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 상호적으로 소통하는 장면은 없지만 효연 역의 전소니 배우와의 호흡도 어땠는지 궁금해요.

 

수양은 혜정에게 있어서 굉장한 원동력이 된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수양이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많이 떠올리고, 큰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가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지켜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 같아요. 이 아이 만큼은 내가 걸었던 삶처럼 살지 않게 지켜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을 수양 역할을 맡아준 감소현 배우가 잘 해주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도 정말 씩씩하고, 수양 캐릭터보다 더 활발한 면도 있어서 같이 있으면 재미있었어요. 솔직하기도 해서 저에게 굉장히 기분 좋은 존재였고요. 연기를 할 때도 집중을 잘 해줘서 서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리고 전소니 배우님이 연기하신 효연은 혜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혜정이 처음으로 큰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만큼 자극을 주는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라고 생각을 했어요. 혜정이 효연의 욕망 같은 것들을 계속 들여다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욕망까지 비추어 보게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소니 배우님과 직접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없었지만, 제가 효연으로부터 그런 에너지를 자극 받아서 움직여야 하는데 소니 배우님이 그 역할을 굉장히 잘 해주었다고 생각을 해요. 저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고 혜정이 잘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준 인물인 것 같아요.





한 인터뷰에서 오디션 당시 유은정 감독님께서 죽음에서 깨어나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해달라는 미션을 주셨다는데, 그러한 모습이 반영된 장면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오디션을 볼 때 받았던 시나리오에는 죽음에서 깨어났을 때 혜정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디테일하게 적혀 있었어요. 굉장히 깜깜해서 앞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몸이 너무 무거워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설명되어 있었거든요. 오디션 장에서 그걸 즉흥적으로 표현해주시길 원하셨고요. 실제로 그 자리에서 죽음에서 깨어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다가 점점 소리가 들리고, 몸도 잘 움직이지 않다가 점점 풀리면서 움직이게 되는 과정들을 연기했고요. 그런데 그게 영화 속에 들어가지는 않았고 영화에선 더 단순하게 표현되었어요. 영화의 톤을 깨지 않고 캐릭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던 것 같아요. 오디션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 재미있었어요. 이런 연기를 할 기회가 없잖아요? 오롯이 저의 상상만으로 표현을 하는 거라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리얼리티를 뛰어넘는 연기다 보니까 훨씬 재미있는 작업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언론시사회에서 유은정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섬세하고 사려 깊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배우들을 많이 배려하시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함께하는 작업이 어떠셨나요?

 

저는 너무 좋았어요. 감독님과 같이 있을 때 이상하게 편안하더라고요. 현장에서도 워낙 차분하시고 말수도 적다 보니까 처음에는 감독님께서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데 말씀을 못 하시고 그냥 넘어가시는 걸까?’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말씀해주실 부분이 있으면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주셨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감독님 말을 믿고 가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겨서 그 이후로는 편하게 작업했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항상 저에 대해 잘 물어봐 주셨어요. 촬영 스케줄이 급박하다 보니까 감독님께서 저와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게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나서라도 항상 어땠는지 얘기할 시간을 가지려고 하셨어요.

 


영화 후반부에서 "과거의 저에게 못한 말이 있어요."라는 혜정의 나레이션 대사가 나옵니다. 혜정이란 인물이 유령이 되어서 시간을 거스르는 인물이잖아요. 과거를 마주함으로써 또 다른 인물에게 손길을 내미는 치유의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결국 그 과정이 자신을 치유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해인 배우님도 과거의 '', 혹은 또 다른 혜정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내가 완전히 혼자 사는 것 같아도 우리는 타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고, 거기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도 있고, 또 손을 내밀어서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과거의 저와 지금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을 혜정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혼자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당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뻔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니까, 완전히 혼자라고 느껴지는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한 번만 옆을 보면 분명히 달라지는 시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배우님의 연기활동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거창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한해인 배우님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가요?

 

항상 스스로 고민하는 지점인데요. 제 삶을 잘 살아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라는 것에 완전히 몰입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의 공간을 남겨 놓고 내가 지금 어떤 길로 걸어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것이 결국에는 연기 활동에 있어서도 삶에 더 열려 있을 수 있고, 다양한 감정에 더 열려 있을 수 있는 좋은 자세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을 항상 잃지 않으려고 생각을 많이 해요.

 


연기자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분리시켜서 개인으로서의 삶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연기자로서의 삶이 너무나 중요해지고 저의 전부가 되어 버리거든요. 그래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을 잘 살아야 배우 활동도 더 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개봉 첫 날 인디스페이스 인디토크는 매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될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감사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오네요. 한 분, 한 분 극장에 찾아와 주신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요.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와주셨는지 신기하고,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요.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주시는 거니까요. 제가 영화를 보러 다닐 때는 그런 감정을 못 느끼면서 살았는데, 누군가가 나의 영화를 보러 와주신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감사하고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삶에서 작지만 빛나는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발견하고 위로를 얻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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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과 살고 싶은 유령이 건네는 위로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일상적인 공간에 깊이 들어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비일상적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고통을 관객의 눈 앞에 가져다 놓지 않고도 서늘한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동시에 삶에 대한 무기력한 태도를 가지고 유령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보이는 혜정을 통해 극장을 나서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도록 만든다. 유은정 감독은 자신이 만드는 장르영화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 미션이라며 말했다. 그 미션을 첫 장편으로 성공적으로 해낸 유은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개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령처럼 살던 혜정이라는 인물이 어느 날 진짜 유령이 되면서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 이야기고요, 그러면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상황들을 만나고 삶의 용기를 얻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어떤 영화를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평소에 판타지 미스테리 장르에 관심이 많아서 유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러던 중 김희천 작가의 바벨〉(2015)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 작품 속 “요즘은 죽지 않으려고만 하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라는 대사가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정서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로부터 밤의 문이 열린다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라는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밤은 혼자 있는 시간이고, 낮에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이고, 그러면서 자기가 지나온 것들을 후회하기도 하는 시간이라 생각했어요. 혜정이라는 인물은 유령이 되어서 계속 과거로 되돌아가면서 자기가 지나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데, 후회로 점철될 것만 같았던 시간이 끝에 이르러서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밤의 문이 열린다로 제목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또 다른 의미로는, 자기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들을 유령이 된 후 할 수 있게 되면서 밤이 끝나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뜻으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이전 단편 낮과 밤이나 캐치볼싫어 를 보면 주로 서울 변두리에서 살아가거나 노동의 현장에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으시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인물들에 주목을 하게 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제가 겪은 경험이나 인상들이 쌓여서 어느 순간 영화의 이야기에 녹아드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사회가 말하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서 계속해서 아웃사이더처럼 밖에 있는 인물들에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유령이라고 하면 원한을 품고 누굴 괴롭히거나 사람들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부유할 것 같은데, 혜정은 유령이 되고 난 후에야 주변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줘요. 그런 점에선 영화에서 가장 악인이라 할 수 있는 효연도 혜정과 완전히 다른 성격이지만 결국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큰 인물이기에 겹쳐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두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하셨고 두 인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혜정의 경우에는 이야기를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정해진 인물이에요. 혜정은 삶에서 큰 비전이 있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돌진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마음이 가는 인물이고, 그래서 오히려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자신은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버려질 것 같다고 느끼는 인물들.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보기도 했는데요. 사람들이 20대 청년이라고 하면 전부 대학교에 다니고 취업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닐 것처럼 이야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요. 자신은 공장에서 일하는 20대인데 사람들은 젊은데 왜 이런 데서 일해? 더 좋은 데서 일 해야지라는 식으로 말할 때 자기가 유령 같다고 느꼈다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런 구체적인 레퍼런스들이 모여서 혜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효연은 이 반대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효연도 마찬가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고, 자기 안에 혜정의 모습이 있어도 저항하고 싶기 때문에 밖으로 에너지를 분출하고 악을 쓰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벽에 머리를 박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거나, 방의 문이 열렸을 때 낮은 보폭으로 재빠르게 숨고, 커튼을 둘둘 말고 그 안에 들어가는 등의 장면들이 이상하게도 계속 기억에 남아있어요. 끔찍하고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이런 일상 속의 비일상적인 장면들을 통해 장르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이런 연출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되게 현실적인데 기이하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장면들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가를 발산하는 느낌 보다는 약간 비틀어진 느낌을 주는 장면들을 저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포영화는 아닌데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3)에서 하숙집 아들이 아버지 방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어요. 엄청나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영화인데 그렇게 튀어나온 장면들이 더 선연하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분위기들에 영향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어요. 구체적으로 이런 것을 의도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처음 밤의 문이 열린다를 구상할 때 이 영화를 저와 너무 다른 결로 만들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밤의 문이 열린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한해인 배우님과 전소니 배우님 모두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것 같았습니다. 또 독립영화 인터뷰매거진 NOW 18호에는 한해인 배우님께서 직접 감독님을 인터뷰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요, 영화의 싸늘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단란하고 화목했을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배우님들, 현장에 계신 스탭분들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대형제작사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다 보니 스탭들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구멍이 나는 빠듯한 일정이었어요. 영화를 잘 완성하기 위해 다들 서로를 믿고 진행한 감이 없지 않았어요. 주로 메인 스탭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저희 촬영감독님이나 피디님이나 팀장급 스탭분들이 다들 조용조용하게 웃으면서 일하는 분들이라 분위기여서 좋았어요. 아카데미 동기인 촬영감독님과 제가 처음 이 장편을 같이 만들기로 했을 때, 우리 이 영화를 통해서 사람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 영화를 찍음으로 인해서 누구를 상처주지 말자는거였어요.


 

배우 분들의 인상깊은 연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감독님께서 연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디렉팅을 하셨는지 혹은 배우분들께 맡긴 부분이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혜정도 효연도 어떤 부분은 디테일하게 디렉팅을 주고, 어떤 부분은 아예 맡기기도 했어요. 혜정은 앞서 얘기 드렸던 것처럼 구체적인 레퍼런스들이 있어서, 한해인 배우님과 연기의 초반에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혜정이라는 캐릭터가 사실 감정을 이입하기 어려운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입을 할 부분도 많지 않은 캐릭터예요. 수양과 방에서 만나는 장면이 초반에 찍었던 장면인데 모두 그런 역할은 처음인 거잖아요. 해인 배우도 자신이 유령이라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하고, 소현 배우도 눈 앞의 유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하고, 저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가야 해서 사전에 디테일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던 것 같아요. 효연의 경우엔 배우와 함께 만들어가야 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전소니 배우님께 맡겼어요. 소니 배우가 생각하시는 대로 한번 해보고 나서 얘기해나가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효연은 감정적인 상태에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순간에 집중을 하도록 했고, 많은 디렉션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피했어요.

 


그렇다면 캐스팅은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보시고 진행하셨나요?

 

이 사람의 분위기가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실 가장 머릿속에 그리기 어려웠던 장면이 혜정이 깊은 어둠에서 깨어나는 장면인데, 해인 배우님께서 오디션 때 그 장면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보여주셨어요. 그래서 혜정이라는 인물에 주어진 미션을 굉장히 잘 해내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소니 배우님은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는 인상을 받았어요여자들〉(2016)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 굉장히 자기 중심이 있는 연기를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드리고 효연 역을 맡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배우님께서 효연이라는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을 너무 알 것 같고 효연에게 애정이 간다고 말씀하셔서 꼭 같이 하고 싶었어요.

 




투자를 받은 후 촬영에 들어가기까지 시나리오의 수정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수정을 하셨는지, 초반 시나리오와 최종 시나리오의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예산에 맞춰서 규모를 줄이기 위해 시나리오를 수정했는데, 사실 시나리오의 3분의 1이 줄어들었어요. 90씬에서 60씬이 됐는데 없어진 30씬은 혜정이 관심 갖지 않았던 인물들을 만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풍부한 전사(前史)였어요. 민성이 어떤 가족들과 살고있는지, 그들의 부모는 어떠한 사람들인지. 효연과 지연이 어떤 관계인지, 지연은 효연의 어떤 점을 품어주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요. 하우스메이트인 미숙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있었어요. 미숙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 직장에선 어떤 모습을 하고있고 어떤 연애를 하고 어떤 미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지들을 쳐내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미숙이가 일하는 곳은 직업소개소인데,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다시 외국으로 일을 알선해주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효연은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미숙에게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했고, 혜정이 그 직업소개소를 갔을 때 많은 여성들이 일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어요.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 버전과 개봉 버전에 작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을 거스르는 시점부터의 날짜 표기 방식과 같은 부분인데요. 영화제 버전과 이번 극장개봉 버전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콘티 외의 장면은 거의 찍지 않고 타이트하게 계획대로 찍어서 편집이 바뀌진 않았어요. 다만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서, 공간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또 대사도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사운드 믹싱을 다시 한 부분이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날짜 자막의 경우 분위기는 잘 맞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어서 영화의 컨셉을 살릴 수 있는 플립 달력 형식으로 바꿨어요.





지난 6월 서울독립영화제가 주최한 토크포럼 ‘우리는 어떻게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는가’에 참석하셨던 유은정 감독님과 김보라 감독님, 안주영 감독님, 한가람 감독님 모두 공통적으로 하셨던 말씀이 여성감독들은 사실 굉장히 잘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검열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을 극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장편 밤의 문이 열린다를 개봉하기까지 유은정 감독님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겪으셨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여성감독들에게 주변의 지지가 박하다는 생각을 해요. 이야기를 들고 오면 격려하기 보단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싶은 거야? 그게 재밌어?” 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내가 이해하기가 어렵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건가? 내가 사람들과 소통을 잘 못하나?’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는 잘하는 사람이 만들 필요가 없고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해왔지만 사실 그런 고민은 참 쓸데없으니, 내가 영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상 계속 만들면 되겠다 싶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모든 기간 동안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사회적 자본들이 투자돼서 만들어질 가치가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나 자신의 재능은 둘째치고 여기에 투자되는 물적, 인적, 심적 자원들을 공중분해시키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야겠다, 소박하더라도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식으로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영화제 상영 이후 지금까지 극장에서 관객들을 직접 만나시면서 소감이 어떠신지, 인상 깊었던 관객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듣고싶습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전에 의욕이나 욕망이 없는 캐릭터, 복잡한 이야기 구성을 보고 사람들이 외면할까 두렵기도 했어요. 또 어떤 것들은 너무 얕게 다뤄진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영화를 보고 공감해주시는 리뷰를 볼 때마다 정말 고맙고 기뻤어요. 그런 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광주여성영화제에 갔을 때 어떤 관객분이 이 영화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밤길이 무섭다는 것밖에 없는데 왜 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틀고 싶다고 하셨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자리가 끝나고 극장을 나왔는데 다른 관객분이 자기는 여성영화가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재밌게 느끼신 설정들을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쪽으로 인상깊은 질문은, 어떤 관객분께서 그렇다면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여쭤보신 적이 있는데 제가 그때 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답을 못했어요. 그게 좀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밤의 문이 열린다를 관람하신 관객분들이 어떤 마음을 안고 극장 밖을 나섰으면 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위안이 된 순간들을 생각해봤는데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는 게 팍팍하고, 내 코가 석자라서 내 일을 챙기는데 급급하고, 외롭다고 생각하다가도, 극장을 나설 때는 사람에 대해서 신뢰를 회복하게 되는 영화들을 언제나 좋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내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든 멀리 있는 사람이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희망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과 비슷해요. 가끔 인생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제가 만들거나 레퍼런스로 삼는 영화랑은 다르게 허공에의 질주(1988)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그 영화가 결국 저한테 주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주는 신뢰,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다뤄서 앞으로 사는 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공포영화로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을까요? 그게 저의 미션인 것 같아요. 장르영화를 좀 더 찍어보고 싶긴 해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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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게, 사실대로  〈굿바이 썸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7월 29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주영 감독|배우 이도하, 이건우

진행 이화정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십대의 청춘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하자면 밝은 희망 내지는 도약이다. 그러나 굿바이 썸머는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대로풀어낸다. 담담하게 영화의 담백함에 오히려 의문을 가지게 되고, 그것들을 의식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는 그 이외의 것들을 마주보게 된다. 굿바이 썸머의 인디토크는 씨네 21 이화정 기자와 박주영 감독, 그리고 이건우 배우와 이도하 배우가 함께했다.

 



이화정 기자 (이하 이화정): 안녕하세요. 저는 씨네 21이화정 기자입니다. 이번 태풍은 피해 없이 잘 지나간 것 같습니다. 태풍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하는 이 시기에 굿바이 썸머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감독님과 배우 분들 인사 듣고 시작할게요.

 

박주영 감독 (이하 박주영): 안녕하세요. 저는 굿바이 썸머연출한 박주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건우 배우 (이하 이건우): 안녕하세요. 굿바이 썸머에서 지훈 역을 맡은 이건우라고 합니다.

 

이도하 배우 (이하 이도하): 안녕하세요. 병재 역을 맡은 이도하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정: 저는 마지막에 누군가 사라지는 영화를 보면서 슬퍼하지 않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순간, 순간 미래를 생각하게 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계속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주영: 굿바이 썸머는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과는 다른 구조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요. 서사구조, 즉 기승전결이 있는 다른 영화들처럼 사건을 따라가면서 이 영화를 보시기보다 영화 안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대사나 표정, 행동들을 보면서 감정적인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라고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화정: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된 이야기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어떤 누군가의 경험이 드러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가요?

 

박주영: 영화 안의 천사와 악마에 관련된 물음은 제가 어렸을 적에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퀴즈를 내보며 무시도 당했고, 그런 와중에 답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질문입니다. 이것이 영화 안에 재미있게 녹아들어가기를 바라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이화정지훈 역의 이건우 배우님께 질문 드릴게요. 현재와 친한 친구였지만 상황으로 인해 그 관계가 소원해지는 역할이잖아요. 오랫동안 친했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캐스팅 되었을 때 무슨 기분이었는지, 혹은 감독님께서 캐스팅 당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건우: 저는 원래 병재를 생각하면서 잡았던 톤이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보시더니 그런 느낌으로 지훈 역할을 연기하면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잡은 톤에 지훈 만의 색깔을 입히면서 작업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이번 영화에서 배우들이 모두 십대를 연기하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배우들을 발견 내지는 발굴하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굿바이 썸머의 배우 분들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나요?

 

박주영: 지훈이란 캐릭터의 연기를 보았을 때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훈은 그렇게 어리숙해 보이지 않으면 인물 자체가 못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친구는 죽는데, 수민에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진지하게 혹은 거칠게 표현이 되면 이 나이 또래의 모습보다는 성인의 느낌이 나서 치정극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 부분들이 어색하게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감정 표현이 서툴게 보일 수 있게끔 그 역할을 잘 소화해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화정: 그 장면에서 주고받은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수민이 나 너무 쓰레기 같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니까 지훈이 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는 어떻게 해.”라고 하잖아요. 첫 사랑의 절절함이 느껴지는 와중에 친구에게 쌩까자.”는 이야기도 해요. 어떤 마음으로 그 장면을 연기를 하셨나요?

 

이건우:쌩까자.’는 대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 부분이기도 해요. 최대한 순수하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지훈이란 아이가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해서 하게 된 선택 혹은 배신, 그러한 배신으로 받은 감정들을 순수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화정: 십대들이 자아에 눈을 뜨고 자기중심으로의 세상을 마주하며 나타나는 이기심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계시는 이도하 배우님이 맡으신 병재는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계속 밑에서 등장을 하시더라고요. 캐스팅 되신 후에는 이게 무슨 캐릭터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이처럼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접근하시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이도하: 대본을 받고 처음 이 인물이 상징하는 게 무엇일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하면서 문득 병재라는 인물은 세 명의 친구들에게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완화시켜주거나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신 전해주는 매개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연기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인물들 사이에서 병재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영화를 다시 보면서 찾아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소 목소리와 다르고, 절묘하고 이상한 연기를 하세요.

 

이도하: 원래 병재는 영화 속에서 보시는 것과 같은 정도의 이상한 말투를 쓰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병재는 유학생인데, 저 또한 유학 생활을 해봤고 그러다보니 주변 친구들도 유학생이었어요. 그러한 경험을 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한 번 해보자고 하셔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이화정: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연기를 한 새로운 얼굴의 등장인데, 처음에는 어떤 캐릭터를 의도하고 캐스팅하셨나요?

 

박주영: 병재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특이한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우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만의 것이 캐릭터에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하 배우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었고, 교포로 생활하며 지내던 때의 이야기라고 하니 그렇게 만들면 이 캐릭터의 특이한 지점이나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지점들을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했어요. 되게 좋은 지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나왔던 것 같아요.

 




이화정영화 속에 어두운 장면들이 없었기 때문에 촬영할 때 혹은 영화의 톤을 잡을 때부터 설계를 잘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십대’, ‘성장’, ‘시한부’, ‘멜로이런 것들을 코드로 가진 영화들이 몇 개 떠오르는 게 각자 있으실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러한 부류의 영화들을 모두 보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영화들을 보셨고, 그 안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주영: 10, 20대 청춘을 다룬 영화들을 원래 좋아합니다. 대부분 이전에 봤던 영화들을 굿바이 썸머를 준비하며 다시 꺼내보게 되었는데, 그 안에 있는 캐릭터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설정들이 자칫 식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다면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가장 컸습니다. 그러려면 이 영화의 내용보다 구조적인 지점들에 변화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의 순서와 실제 시간의 순서를 섞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에 앞의 내용을 한 번 더 곱씹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이화정: 멜로드라마 장르의 경우에는 자칫 잔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러 장치들을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곱씹어서 보고 싶게끔 만드는 지점이 많은 것 같은데, 촬영할 때 배우 분들도 감독님의 이런 세심한 부분들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촬영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순간들이 이었나요?

 

이건우: 감독님께서 병재가 가지고 가야할 연기 톤이나 어눌한 지점들을 많이 잡아주셨어요. 한창 더운 와중에서도 현장이 즐거워서 재밌게 찍었던 것 같습니다.

 

이도하이 영화가 저의 데뷔작이어서 촬영현장 자체가 저에게는 생소했는데, 감독님께서 배우가 즐기면서 연기하고, 역량을 더 끌어올릴 수 있게끔 편하게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했죠. 처음에는 못해서 혼날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동네 형 같은 느낌이랄까요, 정말 말랑말랑하게 촬영했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감독님도 첫 장편이어서 이 영화현장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감독님은 이전에 김종관 감독님의 작품에도 참여를 하셨고요. 티끌모아 로맨스라고 흥행은 크게 안 됐지만 멜로, 로맨스 영화 역사에서 한 번쯤 꼭 봐야 할 그런 작품에 연출부로 참여하셨어요. 멜로에 일가견이 있으시고, 이러한 부분에서 어떠한 소신을 가지고 있으신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주영: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했던 생각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내일이라도 찍을 수 있는 장르, 작품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전부터 고민해왔던 지점에 있는 영화를 쓰면서 작업한 게 이 영화입니다. 멜로드라마는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장르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더 만들고 싶은데 멜로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나 여건들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멜로드라마를 찍으려면 글이 정말 좋고, 인기가 많은 배우가 캐스팅이 되고, 감독이 유명해야 하는데, 이번 작품을 발판 삼아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관객: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숙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감독님께서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주영시나리오 상에서부터 오토바이 노숙자의 실체에 관해 스텝들도 배우들도 궁금해했는데요. 저는 일단 이렇게 궁금함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가 영화 안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작용한다기보다 병재와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사용되기를 원했어요. 두 사람을 이어주는 장치 혹은 재밌는 이야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굿바이 썸머라는 영화를 보면서 지나온 어떤 시절의 감정들을 지금 생각했을 때 그냥 설익었던 한 때로 치부하고 지나가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 때를 생각하며 나도 의미 있었던 시절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관객: 영화가 경계에 서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계절도 여름에서 다른 계절로 이동하고요.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고 성인으로서의 대학을 준비하는 인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인물, 외국에서 와 한국의 생활을 시작하는 인물, 사랑을 시작하는 인물들에게서 그러한 경계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또 시한부라는 설정을 하면 죽음을 앞둔 인물의 슬픔을 파고드는 영화들이 많은데 굿바이 썸머는 매순간 죽음이 있다는 느낌을 담담하게 그려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건, 병재라는 인물을 통해 건넨 천사와 악마이야기의 의도입니다.

 

박주영: 어떤 면에서 병재라는 캐릭터는 제가 연출자로서,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많이 반영된 인물이에요. 병재는 항상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주변인들한테 들려주면서 반응을 기다리거든요. 그래서 천사와 악마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담는다기 보다는 병재라는 캐릭터가 어떤 인물이고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듣는가가 저에게 중심이 되는 질문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배우들이 하는 어떤 대사나 행동이 영화 안에서 중심이 되는 이야기인지 고민해볼 수 있길 바랐습니다.

 




관객: 병재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것이었는지, 또 어떤 의미를 담으시고 싶었는지, 아니라면 캐릭터를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였는지 궁금합니다.

 

박주영: 두 가지 모두 맞습니다. 병재가 그 공간에 등장하거나 빠져나오기 위한 장치로 쓰이기도 했고, 의미를 담고 싶기도 했어요. 인물 자체가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물들과 관객들이 가진 궁금증을 병재가 그 공간에 들어가면서 해소시켜주는, 대신 경험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현재가 학교에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면서 수민의 사물함 자물쇠를 열려고 했다가 결국 가져가지 않는 것, 그리고 병재와 현재가 교실 밖을 창문으로 나가면서 이건 왜 이렇게 힘들게 나가?”, “원래 이렇게 되어있었으니까.”라는 대사를 주고받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주영: 현재는 자신이 줬던 그 자물쇠를 가져가고 싶어 했어요. 현재가 풀지 못했던 자물쇠를 병재가 나타나서 풀어줬죠. 자물쇠가 풀리는 순간 현재는 이미 병재와의 어떤 관계에 대해 관심이 갔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원래 하려고 했던 행동들, 이 자물쇠를 가져간다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아요. 지금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생겼고, 그건 병재와의 앞으로의 관계겠죠. 영화 안에서 둘 아니면 셋의 대화 장면들이 이어지잖아요. 이 대화들은 이들이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동안 굉장한 고민을 한 후에 내린 결론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대화를 하고 나서도 집에 가서 생각하면 후회하기도 하고 다른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러면 다음에 또 만나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는데, 자물쇠를 놓고 집에 가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야 , 놓고 왔네.’라고 생각하며 다시 학교에 가게 되는 거죠. 자물쇠를 가져와야겠다는 그 상황을 잊고 바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어린 시절의 특징을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화정: 인간은 모두가 완성형은 아니겠죠. 매순간 바뀌고 성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십대들의 치열했던 순간을 굉장히 싱그러운 톤으로 그려낸 것 같아요. 운동장, 방학, 고민하고 자책하고 자신을 내보였던 모든 순간들을 담은 영화인 것 같아서 여러 번 보시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배우님들의 소감 들으며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도하: 여름이 다가오고 곧 갈 텐데요. 그렇게 뜨거운 여름을 굿바이 썸머와 함께, 여러 번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러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건우: 이렇게 관객 분들과 대화를 나눈 시간이 뜻깊고 행복했습니다. 굿바이 썸머는 여러 번 볼수록 새로운 느낌을 찾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주영: 영화를 개봉하고, 관객 분들께서 이러한 자리에 와주시고 영화를 봐주시는 것 자체가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개개인들에게 의미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혹여 나중에라도 한 번쯤 더 생각이 나는 영화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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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장  한줄 관람평


김윤정 숨 쉴 틈 없이 내려치는 총알 없는 전쟁터

최승현 뒤틀린 민족주의의 누추한 민낯

승문보 감정을 내세우는 것보다 더 날카로웠던 탄탄한 '논점 제시-반론-재반론'의 구조

송은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이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이성현 | '위안부'에 대한 가장 분명한 저널리즘

오윤주 |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주전장  리뷰: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지난 10, 한국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에 대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조치를 명령했다. 20198, 그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일본은 수출 규제 강화에 이어 결국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양국의 긴장감이 극에 달한 지금, 영화 주전장이 한국에서 개봉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주전장은 분명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일본 극우 세력이 왜 이러한 문제를 감추고자 그토록 애쓰는지 파헤치는 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제를 완전한 으로 이미 상정하고 일본군 위안부개인의 고통을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여타 영화들과의 다른 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주전장은 좀 더 객관적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의견들을 수집한 뒤 그 사이에서 진위를 밝히려 노력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러한 특징은 영화의 한계이자 의의다. 왜냐하면 어떤 이야기는 신파여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주전장은 부정의를 향한 순수한 분노나 고통, 슬픔보다는 객관적 지식 싸움에서 승리한 듯한 기분을 남긴다. ‘객관적이라는 수사에는 사실 허점이 많다. 반박 당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감독의 목소리를 전면적으로 강력하게 반영함으로써 이러한 허점을 극복하고 있다. 감독이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정체성 또한 대변한다. 감독은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모든 진영(여성, 한국, 일본, 미국)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쉬웠으리라.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권력 계층으로서의 반성보다는 탐구심이 이 영화의 동력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워낙 빠르게 양 진영을 오가는 탓에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면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일본 극우세력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야 해당 발언이 틀린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인터뷰 배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관객의 경우 매우 쉽게 오해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일본 극우 세력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한 것을 보면, 적어도 그들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에 등장한 극우 세력들의 인터뷰 중에는 너무 수준이 낮아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발언들도 많다. 예를 들면, 일본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국인 유튜버 토니 머라노의 경우 미국 글렌데일 시에 설치된 소녀상의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운 뒤 조롱하는 영상을 찍었다. 흔하디흔한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그의 발언에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발언으로 인해 그의 모든 주장에는 신뢰성이 사라졌다. 가세 히데야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은 일본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내용을 모조리 삭제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과서에는 즐겁고 좋은 내용만 담고 싶잖아요?” 그와 대립하는 역사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하며, “나는 타인의 책은 읽지 않습니다. 내 책만 읽어요.”라는 소름끼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라는,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할 법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연히 깨닫게 된다. 감독은 이런 멍청한 이야기에 하나하나 반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주장을 펴는 켄트 길버트의 발언에는 꽤 긴 시간을 들여 반박한다. 우민화된 지 오래인 일본 사회를 계몽시키려는 영화 같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리고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일본 국민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서는 한국의 입장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는 부분이나 한국인 전문가의 입장은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히려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이야기할 때 미국이 끼어야만 할까? 언뜻 보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일본과 한국이 지금까지도 일제강점기 치하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나 강제징용 등의 문제에 대해 일본은 늘 이미 해결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사실 그것은 냉전시대 미국의 압력 하에서 정권 대 정권끼리 체결한 협약일 뿐, 피해자 개인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다. 또한 돈으로 배상하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끝은 아니다. 독일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지 않은가. 진정성 있는 사과라는 것은 단순히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가 아니다.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도 않고, 버젓이 전범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일본군 위안부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일본 국민을 둔 현 정부가 사과는 끝났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코미디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박근혜 정권 당시 일본과 위안부 협정을 체결한 한국 외교부장관에게 피해자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너네끼리 도장 찍고 지금 다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냐며 울부짖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그 모든 문제들은 단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영화 말미에서 감독은 일본 극우 세력이 노리는 것이 메이지 헌법 복원이자 재무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분명하지 않다. 한국을 동등한 국가로 바라보지 않는 우월 의식이나 자기방어 만으로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일본의 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고 복합적인 논의가 필요하지만, 영화 장르나 러닝타임의 한계로 인해 그 과정이 몇 사람의 인터뷰로 축소되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단순히 일제가 주도한 성노예 문제라거나 전쟁 중 일어난 한 국가의 여성 폭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 돌아온 피해자들이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피해 사실을 은폐해야 했던 역사를 떠올렸을 때, 그것은 가부장제의 폭력이자 여성혐오의 역사이며 단지 일본과 한국의 문제만도 아니다. 영화는 그러한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타자의 입장을 자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주전장역시 한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국에 꼭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전쟁은 끝난 적이 없으며 우리가 무엇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모든 문제를 단순히 일본의 것으로 돌리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무엇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싸움인가?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인가?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관객은 각자의 싸움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주 전장(主戰場)은 어디인가?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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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값진 상영회!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투표로 선정해주세요.

지난해에 아쉽게 놓친 작품이 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 말고 투표해주세요:-)


자, 2019년 7월의 '인디돌잔치'의 영광은 어떤 작품에게 돌아갈까요? (두구두구 두근두근)


>> 투표하기 <<




● 후보작

<22> <소성리> <어른도감> <오장군의 발톱> <대관람차> <살아남은 아이>


● 투표기간: - 8월 11일(일)

● 상영일정: 8월 27일(화) 저녁 

(관람료: 8,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 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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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썸머  한줄 관람평


김윤정 어떤 것을 따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여름날의 시간들

최승현 평범하지만 온기 가득한 풍경과 정서

성혜미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대로

송은지 기분 좋은 이별을 봤다 

이성현 | 투명한 자기감정으로 채색된 10대의 계절







 〈굿바이 썸머  리뷰: 투명한 자기가정으로 채색된 10대의 계절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현 님의 글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똑 부러지는 우등생 수민은 수능을 앞두고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한 현재의 고백을 거절하며 말한다. “나는 뭐가 중요한 지 알거든.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그리곤 다부지게 덧붙인다. “나중에 가면 이 모든 걸 보상 받을 거야.” 그 나중이란 언제일까. 입시 후의 꿈꾸는 미래만이 전부인 수민과 달리 현재는 나중의 시간을 상상할 수 없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눈앞의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계절에 서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여름에 또렷하게 자리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중인 고3 현재와 친구들의 한 여름 날을 그리는 10대 청춘물 굿바이 썸머는 그동안 매체에서 숱하게 다뤄온 시한부라는 소재적 피로감과 하이틴 로맨스가 지니는 전형적인 감성에서 굳이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에게 닥친 비극에 기대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10대의 끝자락에서 서투르게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투명한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영화가 주인공 현재의 시간적 현재를 보여주는 방식은 담담하다. 텅 빈 교실의 뒤편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하나 둘 꺼내 주저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현재. 정리를 끝내고 하교하는 현재의 배경으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비춰준다. 또 새로운 전학생에게 망설임 없이 자신의 교복을 건네주기도 한다. 현재는 내년이면 다른 친구들이 평범하게 누릴 대학생활도 자신에게만큼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좋아하는 수민을 이제 다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상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뿐이라 생각해 친구들에게마저 투병 사실을 숨긴다. 이처럼 현재는 다른 이가 보기에 답답할 만큼 속 깊고 배려심 강한 애어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진심만큼은 오롯이 수민에게 전할 줄 아는, ‘지금 이 순간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열아홉 살 남자아이기도 하다.


 



앞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게 뭐야?”라며 우등생다운 대사로 현재의 고백을 어른스럽게 타박한 수민 역시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백을 거절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과 좋아한다는 자기 자신을 나중까지 배려하지 않은데서 느끼는 분노,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에게 이끌리는 마음, 그 모든 처음의 감정에 뒤섞여 혼란스러워하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 좋아한다며, 그럼 더 생각했어야지!”, “너 죽고 나면, 나는 어떡하라고.”, “좋아해.” 관객들은 한 치의 때 묻음도 없이 발화되어 화면에 담기는 주인공들의 투명한 자기감정 앞에서 무장해제가 되어버린다.

 




결국 굿바이 썸머현재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시간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이 느낄 주제적 무게감을 최대한 덜어내고 전하고자 하는 진심만을 싱그러운 감수성으로 물들인 화면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마음에는 잔잔한 여운이,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는 하나의 궁금증이 자리할 것이다. “악마는 과연 지옥에 온 나쁜 사람을 좋아할까?” 현재와 친구들에게 찾아온 독특한 성격의 전학생 병재의 난 데 없는 질문이 왜 영화 속에 등장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비웃고 넘긴 다른 친구들과 달리, 현재가 유일하게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은 것을 떠올린다면 우리도 곧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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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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