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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케이 넘버〉: 불합리를 마주하며

by indiespace_가람 2025. 5. 21.

〈케이 넘버〉리뷰: 불합리를 마주하며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디아스포라적 초상

 몇 년 전 야구팬들 사이에서 미국의 스타 야구선수 애런 저지가 한국계 입양아인 형에 대해 언급한 것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현역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만큼 형제 역시 매체의 주목을 받을 법한데,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어린 시절 사진 외에는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어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해외 입양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케이 넘버〉는 살면서 한두 번은 어렴풋이 접했을 한인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파고드는 다큐멘터리이다. 카메라는 친부모를 찾으려는 입양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그들에게 가해진 국가의 폭력을 밝히려 한다. 두 시간에 가까운 추적의 과정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나 자신이 될 수 없는” 디아스포라적 초상이다.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이미지의 감각

 감독과 활동가들은 6~7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중년의 여성 미오카 밀러, 김미옥의 생모를 찾아 헤맨다. 그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을 회복하고,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 그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다는 암시다. 책상, 차창, 유리 등에 미오카의 얼굴이 비친다. 쉽게 흐트러지는 거울상은 어디서도 뿌리내릴 수 없는 해외 입양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추적의 과정에서 의사소통은 대부분 한국어로 이루어진다. 누군가 입을 열 때마다, 미오카는 일말의 희망을 기대하며 활동가들을 쳐다본다. 그는 자신의 삶을 찾는 과정에서 언어적으로 배제된다. 희망적이거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와도 때늦은 감정의 파도는 번역되어 찾아올 뿐이다. 대신 미오카는 자신이 과거에 걸었을지도 모르는 공간들을 사진으로 남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이미지가 주는 감각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이름을 찾아서

 제목인 ‘케이 넘버’는 대리 입양 과정에서 입양인들에게 부여된 일련번호를 말한다. 영화는 새로운 입양인을 소개할 때마다 그들의 케이 넘버를 함께 제시한다. 어떤 입양인은 자신들을 번호로 표기한 과거 서류에서 보스턴의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떠올린다. 희생된 이들의 일련번호가 빼곡하게 적힌 구조물은 인간을 숫자와 데이터로 보았던 나치의 만행을 상기시킨다. 입양인들은 자신들이 국가에 의해 버려지고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홈쇼핑 입양, 위안부, 인신매매 등의 단어가 제도의 폭력과 함께 소환된다. 해외 입양을 최소화하겠다는 협약은 십 년 넘게 비준되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푸티지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영화는 이 모든 폭력을 ‘불합리(absurd)’라는 단어로 치환한다. 연대와 회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그들은 결국 미오카의 생모를 찾지 못한다. 그럼에도 〈케이 넘버〉는 끝까지 ‘합리’로 나아가려 한다. 미오카는 촬영 중 자신의 원래 이름을 확신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얻게 된다. 크레디트에서 미오카를 비롯한 입양인들은 케이 넘버 대신 각자의 두 가지 이름으로 표기된다. 영화는 숫자로 표현되었던 이들의 이름-정체성을 찾아주는 과정이다. 크레디트의 마지막, 감독은 ‘다른 익명의 입양인들(other anonymous adoptees)’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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