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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의 우리
〈침몰가족〉 그리고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모든 이별은 오는구나. 잘 커온 나이와의 이별, 정든 마을과의 이별, 곁을 지켜준 사람과의 이별. 떠나는 이에게 ‘안녕’하며 배웅하는 사람들의 몫은 무엇이었을까. 때로는 가족으로 때로는 아주 친밀한 타인으로 서로를 마주했던 시절의 조각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그리던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침몰가족〉의 감독 가노 쓰치(이하 쓰치)는 ‘침몰가족’이라는 환경에서 자랐다. 명제된 ‘침몰가족’은 홀로 아이를 키우기보다 여럿이 모여 아이를 돌보자는 공동육아로 견고하기도, 유연하기도 한 형태의 가족이다. 시작은 쓰치와 그의 부모가 꾸린 공동체 내 존재하던 불협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적 행동은 외부의 불안과 다를 바 없었고, 어머니 가노 호코(이하 호코)는 단번에 ‘침몰가족’이 되기를 결심한다. 원가족에서 벗어난 뒤 직접 가족을 모집한 호코의 시도는 가히 성공적이다. 쓰치와 가족 모두 여전히 살아가고 있으니.
‘침몰가족’의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그리는 정상성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지만 그에게는 완전한 가족으로 통한다. 혈연과 보편적인 관계성을 넘은 이 가정은 생존으로 시작해 준비된 이별을 맞는다. 아이에게 더 이상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오는 것처럼, ‘침몰가족’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이별을 한다. 〈침몰가족〉은 ‘가족‘이라 명명하는 관계의 의미를 해방시킨다. 선택한 삶 속에서 신념을 담아 연대했던 시간이 한 사람에게 온전한 가족으로서 새겨진다면 이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는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또한 이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을 믿어준 어른’으로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공동육아를 하는 어른들의 삶을 또 어떠한가. 자신의 생계와 아이의 미래를 함께 유지시키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자본과 사회적 인정보다도 ‘나’라는 존재의 필요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공백으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시간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별에도 도토리 마을 방과후 교사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위해 해볼 수 있는 것을 고민한다. 그리고 계속 시도해본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본다는 것. 긴 인생의 아주 찰나일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잊힐 기억일지라도 소중히 머금겠다는 강력한 애정이지 않을까. 간혹 느끼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들은 어찌 됐건 아이에게 주는 모든 것이 희망에 찬 좋은 것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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