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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리셋〉: 영화적 타임머신

by indiespace_가람 2025. 5. 19.

〈리셋〉리뷰: 영화적 타임머신

* 관객기자단 [인디즈] 문충원 님의 글입니다.

 

  그곳에 아직 사람들이 있다. 무안 공항에서, 이태원 골목에서,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약이고 언젠가 다시 날은 갠다지만 그날 하루에 영영 갇혀 버리는 누군가도 있다.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11년이 넘도록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아파하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기약 없는 싸움을 지속해야 한다. 왜 구하지 못했고, 대체 왜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알아내기 전까지 내일로 건너갈 수 없다. 영화 〈리셋〉은 그런 시간을 붙잡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참사 당일부터 9년간, 축축하고 시끄러운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 〈리셋〉 스틸컷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고 문지성 양의 아버지 문종택 씨는 유튜브 채널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를 운영하고 있다.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소명처럼 쥐어 들며 그 이후의 시간을 기록한다.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 수는 1,400편이 넘는다. 긴 시간의 흐름을 방증하는 숫자처럼 느껴지지만, 그 모든 영상은 단 하루를 가리키고 있다. 촬영하고 기록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과거와 이어내며 저만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다른 유가족 유경근 씨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 그날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뻔하고 불가능한 소망임을 알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절실한 마음이 있다. 그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춰 세우는 쪽을 택한다. 열한 번의 봄을 지났지만 모든 봄이 그해 봄 같다.
  영화는 기록하는 힘으로 잠시나마 시간을 돌려세운다. 근본적인 질문을 거듭하며 지난날을 연대기 순으로 하나하나 되짚는다. 유가족, 연구자, 활동가, 정치인 개개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날의 진실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300여 명이 물에 젖고 말아야 했을 사건”이었다는 한 연구원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 그러지 못했는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모호하다. 유가족들은 11년째 같은 말을 외치고 있다.

 

영화 〈리셋〉 스틸컷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서

  영화 속 누군가가 서명을 부탁하면서 곧 공소시효가 끝난다고 외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4년 10월 15일, 세월호 참사의 공소시효가 정말로 만료됐다. 정부 책임자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받은 채로 범죄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 304명이 목숨을 잃고 142명이 다친 사회적 참사에 책임을 묻는 사람은 몇 없다. 단지 공무원의 무능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더 어렵다는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무능력으로 치부할 수 없는 진실들이 아직 남아있다. 인양된 세월호도 시간에 따라 부식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세월호의 내외관을 주의 깊게 담아낸다. 참사의 물적 증거이자 기억의 장소가 검붉게 타들어 가고 있다. 문종택 씨는 해양수산부 목포 사무실에서 담당자들에게 “세월호 선체를 체크한 다음에 어떻게 할 거냐”고 소리친다. 돌아보고 되돌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아주 더디게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서 누군가는 망각하고 또 누군가는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다.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 영화도 있다. 그림자가 드리운 곳으로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극장에 앉아 적극적으로 시간의 궤도를 벗어나는 관객도 있다. 유가족과 감독과 관객의 시간이 뒤섞인 타임머신을 타고 이 날 저 날을 오고 간다. 진도로 내달린 카메라와 함께 그날로 돌아가고, 누군가의 정지한 시간 앞에서 함께 멈춰 서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다시 정면을 응시한다. 목포에 잠들어 있는 배 한 척과 격동하는 지금 시국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전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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