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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작

<강변호텔>, <예수보다 낯선>, <오늘도 평화로운>, <파도치는 땅>, <한강에게>

● 투표기간: - 4월 12일(일)

● 상영일정: 4월 28일(화) 저녁 

(관람료: 9,000원 /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 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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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살아가는 자에게 복을 내려주고 싶은 무해하고 다정한 마음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3월 18(수오후 7

참석 김초희 감독배우 강말금

진행 셀럽 맷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진행)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 님의 글입니다. 



 

전직 영화 프로듀서 찬실은 마흔 살에 인생의 위기를 제대로 맞는다. 실직을 하고, 산동네로 이사를 가고, 가사 도우미 일을 한다. 그래도 굳세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찬실의 모습은 그가 생활을 지속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런 찬실을 중심으로 모인 무해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주문처럼 외우게 된다. 찬실이는 복도 많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 지나온 추운 계절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에 모인 관객들의 웃음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웃음이 지금 얼마나 필요한 위로였는지 실감하게끔 한다. 동시에 그 유쾌함 이면에는 생을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톺아보는 진중한 태도가 존재한다. 이날 진행된 인디토크에서는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미혼으로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다.

 

 

 



진행 셀럽 맷(이하 셀럽 멧): 오늘 찬실이는 복도 많지GV 모더레이터를 맡게 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진행하고 있는 셀럽 맷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초희 감독(이하 김초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든 김초희입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해요.

 

강말금 배우(이하 강말금): 안녕하세요. 찬실 역 맡은 강말금입니다. 반갑습니다.

 

셀럽 맷: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해 볼까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관객이 2만 명을 향해 가고 있어요.(인디토크 당일 기준) 코로나19 때문에 사실 극장에 찾아주시기가 어려운 시기인데 이렇게 와주셔서 기쁘실 것 같아요.

 

김초희: 기쁜 마음이 얼마나 크겠냐마는 안 보이시겠죠. 이 기쁨이. 보여드릴 수 없지만 진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극장에 와달라는 말을 하기 힘든 시기에 이렇게 오시니까 훨씬 더 기쁘네요. 자기 전에 오늘은 어떤 평을 남겨주셨는지 훑어보거든요. 좋은 평들을 보면, 힘들었지만 영화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죠.

 

셀럽 맷강말금 배우님께서도 첫 장편영화 주연을 맡으셨잖아요. 기분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강말금: 저도 습관처럼 리뷰를 봅니다. 얼굴이 빨개지죠. 좋아서. 꿈인지 생신지.

 

셀럽 맷: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으신가요?

 

강말금: 개봉 초반에 봤던 리뷰가 생각이 나는데요. ‘오늘같이 슬픈 날에 나한테도 장국영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리뷰가 참 좋았습니다. 저희 언니도 리뷰를 남겨주었는데 나랑 찬실이랑 비슷한 거 같다. 아니, 내가 더 심한가.’ 이것도 마음에 남습니다.(웃음)

 




셀럽 맷: 저희 팟캐스트 방송에도 두 분이 나와주셨는데, 두 분의 입담을 청취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두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찬실이라는 캐릭터가 감독님과 배우님을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와 닮은 부분이 있나요?

 

강말금: 찬실이처럼 도시락을 싸 가진 않겠습니다.(웃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도 이성과의 연애에선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 닮은 것 같아요. 그래도 도시락을 갖고 가진 않을 것 같지만요. 저는 사실 찬실이만큼 에너지가 많지는 않은데요. 닮은 점이라면, 황무지에서 힘을 내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저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을 때 희망의 싹을 찾는 면이 있어요. 마흔이고, 집도 없고, 산꼭대기 살고, 결혼도 안 하고, 아이가 없고, 처지가 굉장히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초희: 저도 처지가 비슷합니다. 그래도 요즘처럼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셀럽 맷: 감독님께서는 본인에게는 없는 부분이지만 찬실이는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넣은 부분이 있나요?

 

김초희: 찬실이는 엉뚱하고 단순하고 심플한 성격이잖아요. 저는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셀럽 맷: 생각이 많으신 편인가요?

 

김초희: 뒤끝이 심하죠. 예민하고. 찬실이랑 닮은 점을 꼽자면 저도 청소를 잘해요. 요리를 잘하고, 사람들한테 요리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찬실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찬실이보다도 직진인 스타일이라 저라면 도시락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웃음) 영화에 대한 진지한 마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강말금: 저는 찬실이에게 닮고 싶었던 점도 있는데요. 찬실이는 주인집 할머니한테 잘하는데, 저는 할머니께 그렇게 스스럼없이 못 할 것 같아요.

 

김초희: 전 그 부분은 닮은 것 같아요. 전 찬실이보다 더 살갑고요. 만나면 다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셀럽 맷: 감독님은 인싸의 느낌이 있어요.(웃음) 감독님께서 찬실이가 엉뚱한 면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찬실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보통 사람들이라면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안 내뱉을 것 같은 말을 찬실이는 다 해요. 예를 들면, 영이와 정전기를 일으켰을 때 왜 그랬을까요?”라고 하거나,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뺨을 때리면서 모기가 있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게 보였거든요. 그런 귀여운 장면에 대해 시나리오 작업하실 때 떠올린 사람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김초희: 저도 귀여운 캐릭터가 아닌데, 강말금 배우가 연기를 잘해줘서 귀여움으로 발현된 부분들이 있죠. 속으로 할 법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웃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사로 써봤던 것 같고요. 모기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모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요. 다들 모기를 싫어하고, 저도 모기가 물면 싫어하긴 하지만, 10년도 전에 제가 좋아했던 누군가와 함께 있었는데 모기가 막 날아다녔어요. 그 사람이 '저 모기보다 네가 더 귀엽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일동 웃음) 그런 조그만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경험으로부터 그런 대사를 떠올린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들 때 모기 생각이 나더라고요.

 

셀럽 맷: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이런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보통 4, 50대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며느리로 나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혼이고 일을 하면서 꿋꿋한 삶을 살아나가는 40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비혼주의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40대도 찬실이랑 그렇게 다를 것 같지 않거든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초희: 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제가 41살이었어요. 저는 결혼이라는 걸 딱히 해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30대 초반에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하기 힘듭니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제도거든요. 제게 운명적인 사랑이 몇 번이나 오겠냐마는 그런 사랑이 와도 기꺼이 사랑으로 오롯이 남으려면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랑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또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기다리다 보니 안 오더라고요.(웃음) 결혼을 안 해서 후회하진 않았지만 41살에 실직했을 땐 쓰리고 아팠습니다. 제 직업은 프로듀서였는데, 신념을 가지고 매진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일로 연결되지 않았을 때 드는 충격이 컸어요. 제 직업을 굉장히 사랑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에는 숙명적으로 아프다는 말이 결부된 것 같아요. 그만큼 마음을 쏟을 가치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팠습니다. 청춘은 한 번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빛나던 청춘을 안일하게 보냈다는 안타까움이 컸어요. 빛나던 시절엔 빛나는 걸 해야 하는데, 그걸 안하고 저는 일을 했거든요. 그 후회를 제가 참 많이 했어요. 삶이라는 건 다 중요해요. 뭐 하나 더 중요한 걸 위해서 다른 걸 유보하면 후회로 남거든요. 그래서 마흔 살의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것, 제가 후회했던 것, 절박하게 매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그리다 보니 사람들이 잘 다루지 않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분(강말금 배우)이 '복댕이' 같이 잘해준 거죠. 이 분을 만난 건 복이라고 생각하고요.

 

강말금: 저 같은 경우는 결혼을 안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결혼을 안했고요.(웃음) 서른여덟 됐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이대로 자식이 없는 건가 싶어서 소개팅도 했는데 좋은 분이셨지만 잘 되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제가 정말 결혼할 생각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 있겠죠. 여차여차 마흔셋이 되어버렸는데, 그냥 세상에, 이렇게 되어뿟네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런 기분이 찬실이를 연기할 때 생각났던 것 같아요.

 

김초희: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가 봅니다. 저는 자식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남의 아이를 봐도 예쁜데 왜 내 애를 낳아 어려운 과정을 겪나 하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거겠죠. 하지만 어른이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지 않습니까.

 

강말금: , 맞습니다.(웃음) 저 같은 입장의 여성분들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시대의 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요.

 




셀럽 맷: 영화에 좋은 대사가 많았어요. 저에게 인상 깊었던 대사는, 찬실이가 영이에게 묻잖아요.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을 거 같냐고. 그러니까 영이가 좋아하는 걸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삶에 작은 부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대답을 해서 놀랐어요. 감독님은 지금 영화를 하고 계시지만, 감독님께서도 영화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김초희: . 전 살 수 있습니다.

 

셀럽 맷: 그걸 깨달은 지점, 그리고 그걸 깨달은 이후 영화를 할 때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초희예전에 저는 영화를 안 하는 저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요. 근데 영화라는 걸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는 열심히 살았어요. 그때부터 영화에 많이 기댄 거죠. 종교는 없지만, 영화가 저를 지탱하고 살려준다는 느낌이 강했어요순정이 있었거든요. 근데 영화는 혼자서는 못 찍고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영화 현장을 32살에 처음 경험했는데,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보다 경험하니까 더 좋더라고요. 실직하고 생각해보니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랑 같이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살아가면서 갖가지가 다 중요한데 사람들은 제일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고 소소한 것들은 유보하면서 살거든요. 제가 그렇게 살았던 거죠. 영화만 만들어지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러다 실직을 하고 나니, 잘못 생각했더라고요.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런 계획이 없었던 거죠. 제가 가장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어떻게 살 건지 알 텐데, 그런 물음을 할 시간을 스스로 안 줬더라고요. 마흔 한 살에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고 돌이켜보니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거, 우정을 나누는 거,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 거예요. 그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 마음으로 김영이라는 인물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셀럽 맷: 채팅방에 남겨 주신 질문들을 읽어볼게요. 강말금 배우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찬실이가 할머니 시를 읽고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연기를 할 때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강말금: 제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고 싶었던 장면이었어요. 이 영화의 명대사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장면의 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이 장면을 너무 잘하고 싶었던 나머지 현장에서는 눈물이 안 났어요. 윤 선생님(윤여정 배우)께서 사전에 리딩을 할 때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너는 여기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싶으냐고. '선생님, 저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눈물만 또르르 흘리겠습니다.'하니까 선생님께서 나중에 감독님께 '쟈는 못운다' 하시더라고요.(웃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고 현장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급박해지던 걸 잊을 수가 없어요. 배우 속에는 청개구리가 있거든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셀럽 맷: 원래 하고 싶으셨던 것과는 달리 영화에선 온 몸으로 우시잖아요. 그 때 찬실이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질문입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만의 장국영이 있나요? 힘들 때 위로해주고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강말금제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정 같은 존재가 굉장히 많은데요. 제가 '천사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이 사람이 항상 나한테 장국영인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장국영 역할이 부여되고 사라지는 존재들이 인생을 통틀어서 많았어요. 제가 영화의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분은 권지숙 배우님이라고, 제가 출연한 단편 자유연기(2018)에서 연예인 역할 맡으신 분이에요. 저와 김도영 감독님이 힘이 빠질 때 계속 힘을 주셨던 게 지금 딱 떠오르네요.

 

김초희: 권지숙 배우님을 소개해주셔서 인사 한 번 나눴거든요. 참 좋으신 분이더라고요. 세상에 악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리 좋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아이러니 아닙니까.

 




셀럽 맷: 그리고 또 '국영씨는 왜 벗고 다니나요?'라는 질문이 있어요. 그 추운 계절에 김영민 배우님께서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김초희: 제가 생각했을 때 장국영의 가장 상징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복장은 아비정전(1990)의 '아비' 모습이더라고요. 장국영은 모든 작품마다 매력적이지만 아비정전에서 왜 그렇게 멋있는지 생각해보면 그의 맘보춤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영화 속에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사건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로 극을 계속 예측할 수 없게 밀고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찬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들이 주연만큼이나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에서도 장국영은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죠. 시치미 뚝 떼고 판타지를 연기해야하는 인물이니까요. 과감하게 장국영을 불러와야 관객들이 신선하고 재밌다고 생각할 거라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을 가지고 그 인물을 끌어들였어요. 그러니 그 옷을 추워도 입혀야죠.(웃음) 그래도 매번 그 옷을 입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심장마비가 걸릴 만큼 추운 날씨였거든요. 강렬하게 등장하실 때만 입어주셔도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튼튼하고 건강하시다면서 쭉 입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절충안을 찾은 게 지금 여러분이 보신 버전입니다.

 

셀럽 맷저는 아직 집시의 시간(1989)을 못 봤는데 실제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인가요?

 

김초희: 비디오 가게에서 6년 반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처음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홍콩 영화나 소위 오락 영화만 보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글을 썼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습작을 보여주니 친구들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그렇게 상처일 수가 없었어요. 철이 없을 때니 쉽게 그 꿈을 접었고, 꿈이 없어지니까 시름을 잊으려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비디오 가게에 꽂혀있는 순서대로 영화를 봤어요. 그렇게 우연히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죠.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집시들의 삶에 대해 담은 영화거든요. 얼마나 질곡의 삶입니까. 그런데 엄청난 슬픔 속에서도 굉장히 매혹적인 판타지가 있었어요. 이게 영화가 아니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됐죠. 누군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그 영화를 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요.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고통의 고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괴로움이 순환하는데 그 와중에도 빛나는 귀여움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슬픈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끔 겪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감정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사람들하고 막 웃고 떠들면 제가 겪었던 힘듦이 일순간에 확 날아가는 기분을 느껴요. 그런 것처럼, 집시의 시간에서 보기 괴로울 정도로 안타까운 삶의 연결고리를 보고 있다가도 귀여운 장면들을 보면서 이런 건 영화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어서 감독이 되고 싶었죠.

 

셀럽 맷영화에 연주곡은 집시의 시간에서 나온 노래인가요? 단편 자유연기에서도 강말금 배우님이 아코디언 연주하신 게 떠올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강말금: 음악은 희망가라는 작자 미상의 노래에요. 그 곡은 제가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을 하면서 아코디언을 처음 접할 때 했던 음악이에요. 집시의 시간은 저도 좋아하는 영화인데, 영화에서 집시가 슬플 때마다 연주하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을 저도 몇 번 연주해봐서 조금 더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곡을 저작권 비용 때문에 쓸 수가 없었어요. 자유연기에서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곡을 연주했는데, 저작권이 문제 되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김초희덧붙여 이야기하면 초반 시나리오에 집시의 시간은 있어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면은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강말금 배우가 자유연기에서 아코디언 연주하시는 장면을 봤죠. 많은 사람들이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모르더라도 집시하면 아코디언이라는 이미지를 상상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면 조금 더 친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희망가라는 곡을 쓰게 된 건 저작권 영향도 있지만, 그 곡이 영화랑 어울리지 않았다면 안 썼을 거예요.

 

강말금: 감독님께서 다른 노래를 들려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러다 제가 연극 때 연습했던 이 곡을 녹음해서 들려드리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초희영화에서 한 곡을 다 연주하는데요. 보통 그러면 지루하거든요. 그런데 제 영화의 특징이 인서트가 많지 않은 거예요. 인서트가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영화가 쉬었다 가는 부분이 잘 없어요. ‘희망가연주를 가만히 보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관객들이 자기 감정을 소화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관객에 따라 각자의 감정을 널브러뜨릴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한데 그 장면이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셀럽 맷: 찬실이가 소피의 서재에서 읽고 있던 책 제목은 뭔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쓰신 이유도 궁금해요.

 

김초희: 찬실이가 읽고 있는 책은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이라는 책입니다. 실제로 읽어 보시면 재미없으실 거예요.(웃음) 많은 불자들이 임제 스님의 글을 읽고 공부하거든요불자는 아니지만 위로를 많이 주는 책이었어요.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은 내가 어디에 가나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참된 자리이다, 이런 뜻인데요. 제가 뭐라도 해서 살아가야할 때에 저를 지킬 수 있는 말인 것 같았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면 어떻고 반찬을 팔면 어떻습니까.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번다는 거, 굉장히 떳떳하고 필요한 일인데, 남들이 생각하는 그럴싸한 일을 안 하면 무시당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찬실이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느낌을 가지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만큼 좋은 말이 없더라고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셀럽 맷시간상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좀 있으면 관객 2만명이 되는데 공약을 하나 거셨어요.

 

김초희: 2만명이 넘으면 제가 난닝구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강말금: 저도 입는다고 했습니다.(웃음)

 

김초희: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위기를 뚫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운이라는 걸 무시 못 하거든요. 보이지 않는 기운은 세상을 움직입니다.

 

셀럽 맷: 여러분은 세상을 움직이는 중이십니다.(웃음)

 

강말금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자리 지키고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얘기가 들을만한 것이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시고요. 제가 요새 제 영화를 제가 보는 것과 관객분들이 보는 것 사이의 차이가 커지는 것 같아서 나는 이제 관객이 될 수 없나하다가, 이제 영화를 다르게 보는 눈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10년 후에도 영화배우를 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뀐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초희: 10년 후에도 보게 해주이소.

 

강말금: 노력할게예.(웃음)

 

셀럽 맷: 오늘 다들 감사드립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궁금하다면?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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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naver.com/jhd159 BlogIcon 악어알 2020.03.31 12: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인디토크 참석 못해서 아쉬웠는데 글 읽으며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한 기분! 영화를 풍성하게 틔워주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2. Favicon of https://cmmn.tistory.com BlogIcon nomarch 2020.03.31 12: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영화 너무 잘봤습니다. 인디토크 기록도 잘 읽었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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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오늘을 애써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보라 예술이자 노동으로서의 영화, 그 안에서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든든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마음을 담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엄청난 복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왠지 낯 간지러워서 영화를 꽤 오래 좋아하고도 그에 대해 자신감 있게 내뱉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옛 기억을 헤집어 보면 역시, 영화를 좋아하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도 영화 좋아하는 게 다 뭐라고, 남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영화에 대한 일방통행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영화란 건 언제나 특별했지만 동시에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항상 마음이 괜히 더 동했다. 영화에 대한 영화는 그 자체로 감독이 영화에 보내는 편지 같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들이 좋았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말하자면 아주 직설적인, 영화에 대한 영화다. 영화와 감독을 너무 깊이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찌 됐건 이 영화는 김초희 감독과 오래도록 함께해온, 혹은 그를 괴롭혀 온 영화에 대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주인공 찬실이를 빌어 쏟아내 버린 이야기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서 받은 인상은 좋은 의미로뻔뻔하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사랑해온 나에 대해 담은 영화라니, 이보다 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되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영화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조금은 뻔뻔한 영화의 톤은 속 시원하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그간 보아온, 감독인 를 내세운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자기연민 혹은 찌질함과는 다른 결의 뻔뻔함은 대안적 방식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본 적 없는 새로운 시선에 가까웠다.





영화는 찬실의 삶이 갑자기 멈추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일을 해온 그가 PD로써 줄곧 함께 작업해온 감독이 회식 자리에서 돌연사하고, 이 사건은 찬실에게 생각보다 큰 타격을 준다. 영화 PD로서의 일이 한순간에 사라진 찬실의 삶은 기약 없이 멈추는 듯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그 영화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찬실은 일이 사라지자 직업이 사라졌고, 직업이 사라지자 자신의 인생에서 영화가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지경까지 다다른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은 이의 치명적인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 좋아서 하는 영화만을 열심히 하며 산 찬실의 삶에서 영화가 존재하던 자리는 순식간에 허공에 붕 떠버리게 된다.


찬실의 친구 소피는 백수가 된 찬실을 보며 차라리 연애라도 하라고 말한다. 찬실에게 영화라는, 오랜 짝사랑의 상대가 갑자기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 때마침 이라는 인물이 타이밍 좋게 찬실의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찬실은 미련 없이 그동안 쌓아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분리수거해버리려고 하는데, 의문의 인물 장국영이 그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찬실의 의문에 누구도 찬실이를 대신하여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아온 삶 자체로 시가 되는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나를 위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다는 새삼스레 꿈결 같은 순간까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찬실의 시선이 또다시 그를 영화로 향하게끔 만든다. 찬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다가 어떻게 나이가 들지 가끔 궁금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있을까? 지금 좋아하는 영화를 그때도 좋아할 수 있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세계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낭만 어린 마음을 대변해주는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이 영화를 핑계로 영화를 오래도록 좋아하고 싶은 마음을 새삼스레 고백해본다. 뻔뻔하게 이런 지면을 빌려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이 영화를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영화 후반부의 찬실이가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순간과 겹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잘, 온전히, 마음을 담아 사랑할 수 있는 을 누리며, 이 이야기를 뛰어넘어 해줄 김초희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고 싶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궁금하다면?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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