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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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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번째 용의자  리뷰: 영화와 관객 사이의 현실 감각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왜 지금 관객에게 왔을까. 이 영화는 왜 지금 만들어져야 했던 걸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2019년 가을에 개봉했을까. 이러한 일련의 질문은 역사화된 시간을 영화로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 동시대성, 유효성, 현재성 등의 문제로 부과된다. 포스트 세월호 세대의 관객 앞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품고 등장한 벌새〉(2019)처럼, 혹은 박근혜 정권 이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던 공동정범〉(2018)처럼, 아니면 당신의 사월〉(2019)처럼 말이다.





열두 번째 용의자를 위한 지면임에도 양해를 구하고 잠시 벌새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돌이켜볼 때 영지는 영화의 시간 위에 쉬이 발붙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은희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등장하지 않았나. 은희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말한사람이었다. 영지는 감독이 투영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1994년과 2019년 사이의 간격에서 부유하며 영화 속 인물과 오늘날 수용자의 현실 감각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픽션적 재구성물로서 영지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타격을 받지 않고 관객의 보편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다시 돌아와 열두 번째 용의자는 (종영하는 시점까지) 영화가 가진 장치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관객성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다방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다중의 등장인물이 그 안에서 영화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는 인물 어느 누구도 주어진 상황에서 이탈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관객 또한 영화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형성한 연극성에 그다지 반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두 번째 용의자속 인물은 심리적으로 다방의 밀실화를 허용했고, 관객은 작품 안에서 형성된 현실 감각에 동의하고 있다. 어떤 말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 낙인을 체화한 사태랄까.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열두 번째 용의자는 한국사회 블랙리스트의 전사를 구체화한 셈이다. 덧붙여 인물들은 용의자로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추리장르 서사처럼 다른 용의자를 확실한 범인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범인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민스럽다. 홀로 남겨진 박인성의 표정과 몸짓을 2019년의 타임라인에서 번역하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끈질긴 레드 콤플렉스의 유령인 걸까. 그럼 마지막에 열두 번째 용의자는 그것을 향한 대항의 의지를 작게나마 암시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영화가 이 부분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지금 우리의 현실 감각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열두 번째 용의자이후의 시간 위에서.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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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작

<밤치기>,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마담 B>, <영주>

● 투표기간: - 11월 10일(일)

● 상영일정: 11월 26일(화) 저녁 

(관람료: 9,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 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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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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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말하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SIDOF 발견과 주목 〈섹션 2: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영화적 재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권아람, 임철민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SIDOF의 섹션 3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영화적 재현이라는 주제로 권아람 감독의 463 poem of the lost와 임철민 감독의 야광을 엮었습니다. 463 poem of the lost은 잘 알려지지 않은 태국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록입니다. 감독은 한국인 463명을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들의 기억을 찾아 태국으로 떠납니다. 야광6~90년대 남성 성소수자들의 크루징 스팟으로 기능하던 극장들을 찾아갑니다. 극장에 대한 관심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로 확장되고, 기억을 영화적으로 재현해낸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SIDOF 발견과 주목은 최근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관객 분들께 소개드리고 싶은 영화들을 묶어서 기획전의 형태로 상영을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마지막 섹션이고요, 권아람 감독님의 단편 463 poem of the lost와 임철민 감독님의 장편 야광두 편을 엮어봤습니다. 아마 독립 다큐멘터리를 챙겨봤던 관객 분들이라면 생소한 조합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올해 3월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제에서 하나의 포럼을 열었습니다.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적 재현이라는 주제, 이른바 후속세대라고 할까요?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그 이후 세대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영화적 관심인 역사적 사건을 지금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재현하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네 편의 한국 영화 김군, 리틀보이 12725, 나의 노래 메아리, 기억의 전쟁을 중심으로 포럼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상영한 두 편의 영화도 이 포럼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는 기획 의도가 있었구요. 오늘은 그 기획 의도 하에 초점을 맞춰 시작하되 이 영화들이 갖고 있는 큰 장점과 궁금한 점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두 분의 감독님 먼저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권아람 감독(이하 권아람): 안녕하세요, 463 poem of the lost를 연출한 권아람이라고 합니다.

 

임철민 감독(이하 임철민): 안녕하세요, 야광을 연출한 임철민입니다.

 

정지혜: 앞서 들어보니 두 분이 실제로 만난 적이 처음이라면서요. 이 조합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지만 권아람 감독님은 야광을 이미 3번 정도 봤다고 하셨고요, 임철민 감독님도 463 poem of the lost는 오늘 처음 보았지만 권아람 감독님의 전작을 보셨다고요. 두 분 인사 좀 나누세요.(웃음)

 

권아람: 안녕하세요.

 

임철민: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뵀지만 권아람 감독님 전작 퀴어의 방〉(2018)을 재미있게 보았고,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정지혜: 야광의 경우는 극장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있었을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인데요. 저는 야광이 그야말로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굉장히 시네마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SF3D 영화 못지않은 시네마틱한 순간들을 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아람 감독님의 작품은 역사적인 공간과 집단적인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현장에 직접 가서 기록하고,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그 과정에서 감독님의 시적 나레이션이 들어가면서 다양한 구성을 하나로 엮어내는 방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 영화가 굉장히 다른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대담이기도 하니, 두 분이 서로의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권아람: 제가 야광을 세 번 봤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해주셨는데(웃음) 좋아하는 작품이고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화면이 엔딩 크레딧으로 바뀌며 음악이 나올 때의 경쾌함이 좋고,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한테는 중요한 레퍼런스이기도 해서 반복적으로 관람했어요. 저는 어떤 시공간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1차 재료를 모으고, 그것들을 구성하고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임철민 감독님의 작업을 보면서는 그 공간에 얽힌(크루징 스팟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가 없지만, 감각적으로 그 공간의 이야기를 느끼고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특히 음악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경쾌해지면서, 말로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확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임철민: 오늘 영화가 붙어서 상영이 되었잖아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작품이 굉장히 다른 방법으로 대상이나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구체적인 진술이나 목소리들이 쌓이면서 영화가 진행되고, 화면은 바깥을 비추기도 하고 인물들을 비추기도 하는데 굉장히 구체적인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시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좋았어요.

 

정지혜: 인터뷰라는 방식에 대해 얘기해주셔서. 463 poem of the lost의 경우는 직접 역사적 경험이 있는 당사자 혹은 주변인, 목격자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는 익숙한 방식으로 기본 소스를 만들어 주셨잖아요. 반면 야광에서는 단 한 번의 인터뷰도 나오지 않고, 짐작하건대 임철민 감독님은 인터뷰에 큰 관심도 없으셨을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인터뷰라는 방식을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임철민: 처음에 영화를 기획할 때 출발은 극장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예를 들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공간 중 하나인 파고다 극장은 당시에 일반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 위에 다른 층위로 남성 성소수자들이 크루징을 하고 있던 거였으니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차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공간을 경험했던 일반 관객들의 경험 및 체험과 크루징을 하기 위해 그 공간을 찾았던 성소수자들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사실은 아는 사람들만 알죠. 워낙 비밀스럽고 은밀했으니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성소수자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만 했던 상황들, 거기서 선택하게 되는 정치적인 어떤 것들. 이런 공간의 속성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하긴 했었고, 그것들을 직조해서 분명한 어떤 것들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으로는 있었지만, 마냥 서사나 인터뷰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당사자 분들이나 극장 관계자 분들이 굉장히 협조적이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말하고 싶은 게 많고 크레딧에도 남기고 싶지만, 드러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드러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 영화도 공간이나 이 공간을 점유했던 당사자들의 속성에 맞춰서 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긴 했지만 사전 자료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던 부분들을 가이드로 따라가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지혜: 반면 권아람 감독님의 경우에는 인터뷰 대상자가 전하는 말들이 비슷하고 공통된 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다르게 들리기도 했어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그런 지점들을 의도적으로 더 넣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님의 전작 퀴어의 방을 보셨다면 인터뷰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 있고, 다음 작품에서도 인터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 구현했던 인터뷰의 확장된 관심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권아람: 우선 태국에 남아있는 위안소 공간들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얽힌 이야기나 태국에 남아있는 여성의 증언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는 증언이나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반면, 태국에는 남아있는 것들이 많이 없어서 굉장히 제한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위안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연구를 통해 증빙된 장소들을 찾아가고 그 장소와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간이 담고 있는 분위기나 그 공간이 현재 맥락에서 달라진 모습, 단편적이거나 퇴색된 이야기일지라도 그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대부분 그렇게 디테일한 기억이 아니고 그들은 한국처럼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한국과 태국은 온도차가 굉장히 커요. 전쟁 당시에도 태국은 중립국에 가까웠지만 일본 치하에 가까운 입장이었고, 멜로 드라마에 일본군이 멋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그 시절에 대한 감각이 우리와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런 사회적 맥락 위에서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퇴색된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죠. 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어요. 전통적으로 인터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주 오래된 책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기억이라는 것은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갱신되어야 하고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하면서 생동감을 얻게 되는 것인데, 그 기억을 직접 갖지 않은 후속 세대로서는 사회의 맥락에 따라 기억이 점점 다르게 만들어져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또 다른 감각들을 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런데 인터뷰 대상자들은 사실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구성도 책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구성했어요.

 

정지혜: 아까 임철민 감독님께서 다른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공통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혹시 어떤 건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철민: 방금 말씀을 듣고 보니, 단순히 인터뷰를 녹취하고 구성에 따라 배치를 하는 식으로 되어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나 사건을 접하고 한 번 더 아웃풋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부분이 닮아있지 않나, 감각적인 부분에서 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권아람 감독님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권아람: 특히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맞이하게 되는 조건인데, 이 이야기를 드러내서 어떤 영화적인 결과물로써 관객들과 공유하고 그 시대에 있던 일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창작자로서 들지만, 그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화를 도와주고 싶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도 드러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의 전작 퀴어의 방또한 비슷한 조건들이 있어서 그러한 형식이 나온 것이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도 여성 퀴어들의 공간들을 담는 작업이라 이 역시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거든요. 얼굴이 나오고 싶진 않다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있고, 필연적으로 인터뷰를 어떤 방식으로 가공을 하거나 인터뷰 소스에 기반에서 아예 다른 화면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비슷한 점을 느꼈어요. 임철민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감춰지고 그렇지만 드러나고, 전면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감각적으로는 다가오고, 밀면서 당기기도 하는, 그런 시각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고 그런 감독님의 태도가 저한테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정지혜: 야광의 경우에는 다양한 레이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의 전략이 잘 떼어내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라는 것이 배우의 목소리, 화면, 이런 요소들이 결합돼서 하나의 장면으로 구현되고 우리는 합쳐진 장면을 보지만, 야광에서는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그 요소들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거든요. 요소들을 하나하나 잘 떼어낸 이후에 다시 잘 붙여서 충돌하는 방식이라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반면에 463 poem of the lost의 경우는 그 요소들을 잘 붙여보기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붙이는 과정에서의 시적인 나레이션이 그것들을 꿰어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을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철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료 조사, 극장을 찾아가면서 이 영화의 형식이 만들어졌고요. 영화에서 어떻게 공간이나 극장을 재현하고 또 영화를 매개로, 시간이나 공간을 매개로 그 모습을 어떻게 펼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갈래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를 썰어서 요소들이 좀 더 드러나게 배치를 하고 그 과정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었어요. 범위를 좀 더 확장해볼 수 있도록 피디님, 스탭들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떼어내기의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정지혜: 특히 인물에게 같은 구간을 반복하게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나중에는 대사와 목소리, 화면, 이런 것들이 다 따로따로 떨어지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니까 이상한 느낌을 받는 상태까지 가면서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다 보이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권아람: 저는 조각들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억들을 모아보고, 내가 그 기억을 직접적으로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뭘까 고민했어요. 일단 재료들을 모으고 붙여서 한 방향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기억을 기억한다는 게 뭘까.’라는 게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로드 무비를 촬영하며 느꼈던 마음을 나레이션으로 표현했어요. 기억을 기억하는 입장에서, 기억한다는 걸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는 건 아닐까. 기억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이런 질문들로 귀결되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질문들이 텍스트로 제시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었고, 그 경험을 직접적으로 가진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기억을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작업을 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다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의 말과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증언을 딛고 기억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그렇게 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정지혜감독님뿐 아니라 다른 현지인들의 나레이션도 들어가 있잖아요. 그 선택도 독특하고, 또 자막처리의 방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했다.’ 이런 자막 처리가 나오면 몰입해있는 감독님의 위치에서 한 발 떨어져 나오면서, 화면과 거리감을 확 줘버리는 급작스러운 온도차가 느껴졌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얻고자 하는 효과가 있으셨나요?

 

권아람: 각 요소들을 모아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붙여나가는 방식은 맞지만 계속 질문은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것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당연히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저의 뜨거운 마음은 나레이션으로 드러났지만, 후세대 여성으로서 그 경험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또 너무 전형적인 위치는 얻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레이션의 주체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후세대의 젊은 여성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주체를 흐트러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라고 했다.’ 이런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이제 관객 분들께 질문을 받아볼게요. 감상도 좋구요.

 




관객: 야광감독님께 질문 드릴게요. 영화 자체가 크루징 스팟이 됐던 공간들을 보여주며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고, 중간에 형식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분해하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그런 내용과 형식이 어떤 식으로 관계되는 건지 듣고 싶습니다.

 

임철민: 이 영화는 극장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이 상영되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런데 영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빛이나 어둠 같은 것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 영화가 타이트한 구성과 완결된 형식을 가지고 출발한 건 아니었어요. 대략적인 시나리오도 있었고 어떻게 취재를 하고 공간을 다룰지, 이런 기획 정도는 있었지만요. 영화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거나 공간을 직접 찾아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나 감각이 처음에 상상했던 것과는 되게 달라서 처음의 결처럼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 같은 것들을 활용하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공간의 속성에 맞춰서 영화의 형식도 같이 가야 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썼던 것도 스코어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어요. 수행자나 스탭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도록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과정을 드러내기로 판단한 것도 영화가 가지고 있고 다루고 있는 대상이나 속성하고도 연관되어 있고요. 영화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다가 그런 형식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야광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에서 여자가 산 속에서 눈을 감고 있고 그 여자를 향해 빛을 비추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 장면을 볼 때 폭력적으로 느껴졌었는데요. 여자가 정물처럼 서 있고 그 주위를 남자들이 둘러싸고, 그게 영화를 보고 있는 여성 관객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그러했는데, 저는 이 영화의 설명을 보고 오질 않아서 끝나고 나서야 남성 성소수자의 크루징 스팟에 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영화에 여성 인물만 등장한다는 게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임철민: 처음 시나리오에는 남성 성소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방식이 영화와 맞지 않다고 판단이 돼서 걷어내면서 그럼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스코어의 방식을 따르게 됐어요. 간략한 텍스트, 분명한 수행문도 있는 반면 한편으로 모호하고 시적인, 구멍이 난 것 같은 이미지나 텍스트가 함께 있는 스코어였어요. 결국 수행자의 몸을 통해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그러면 이걸 누가 수행할 것인지가 되게 중요해진 거예요. 저희는 영화를 만들 때 어떤 틈들을 만들어내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진행했어요. 말씀해주신 부분들도 그런 틈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어요. 처음 계획은 남성 성소수자를 재연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려고 했는데 영화의 성격이 바뀌면서 다시 고민하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희가 영화를 펼치고 이런 기획, 이런 과정, 이런 맥락들로 영화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주변에 오픈하자 이상하게 여성분들만 관심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생기고, 남성 성소수자들의 공간을 다루는데 여성들이 주로 퍼포먼스를 수행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스탭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어요. 저희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실제로 퍼포먼스를 하는 퍼포머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고, 다양한 계기로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에 제가 어떤 한 가지로 재단하긴 조심스럽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결국 소수자성 같은 것들이 이 영화가 가진 맥락과 공명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런 상황들이나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고, 어떤 게 퀴어한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렇게 가는 것이 영화가 가진 방향성에 맞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저희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번 기획은 역사적인 주체, 당사자성을 넘어서는 작업들에 초점을 맞춰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인디다큐페스티발 포럼에서 다룬 4편의 작품을 보셨거나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혹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떤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면 창작자로서 고민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오늘 섹션 주제에 대해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창작자들의 고민과 돌파 가능성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권아람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463 poem of the lost에 대해 생각해보면, 역사적인 다큐멘터리는 이미 끝나버린 시간이나 이미 사라진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항상 맞닥뜨리는 지점이 있어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제가 생각했을 때 역사적인 트라우마나 사건을 재현할 때는 영화 바깥의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태국에서 아주 짧은 촬영 기간을 가지면서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463명의 명단, 그게 놓여져있는 내셔널 아카이브를 찾아갔어요. 그곳은 태국 군부에 의해 운영되는 국립 아카이브이고, 거기 들어가려면 카메라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신분을 명확히 해야 했어요. 거기 들어가서 빨간 상자 위에 놓인,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 위에 잉크는 사라지고 압력으로만 남아있는 463명의 이름들을 봤어요. 그걸 보고, 만지고 하는 경험이 저한테는 이 작업을 완성하게끔 하는 중요한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기억, 트라우마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주관적이고 순간적인 지점이기도 하지만, 영화 외적인 시간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강렬한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그런 강렬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임철민: 야광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중요한 지점과 지금 포럼의 주제가 맞닿아 있어요. 야광의 경우에는 제가 체험하지 않았던 공간이나 역사에 대해서 영화로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할 때 창작자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방식, 어떤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지금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 다양한 고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르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정지혜: 마무리 말씀 한 마디씩 해주세요.

 

권아람: 다음 작품으로 70년대 여성 퀴어 공간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대 많이 해주시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철민: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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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

 SIDOF 발견과 주목 〈섹션 2: 일장춘몽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김무영, 오재형, 이재임 감독

진행 이완민 감독 (〈누에치던 방〉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정기 상영회 발견과 주목이 지난 10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기획전으로 진행됐다. 그 중 섹션 2. 일장춘몽을 통해서 김무영 감독의 랜드 위드아웃 피플, 오재형 감독의 모스크바 닭도리탕, 이재임 감독의 강릉여인숙세 작품을 함께 상영했다. 세 작품은 모두 낯선 공간에서 떠도는 이방인의 감각 또는 그들이 남긴 흔적에 주목하고 있다. 랜드 위드아웃 피플은 미국 엘에이에 사는 서류미비자 수창과 그의 아내 지은이 어느 날 살던 아파트를 잃을 상황에 처하며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재연의 방식으로 연출했고,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몽롱한 내레이션과 여행지에서의 이질적인 이미지들, 화려한 프레임의 조합이 기이한 감정을 전해주며, 강릉여인숙은 폐광된 이후의 태백에서 감독이 느꼈던 어떤 감정에서 시작하여, 50년이 된 할머니의 여인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개인들의 기억, 옛 시절의 아카이빙 이미지 등으로 공간의 기억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이완민 감독의 진행과 함께 세 작품의 감독들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완민 감독(이하 이완민): 랜드 위드아웃 피플, 모스크바 닭도리탕, 강릉여인숙세 편의 영화 어떠셨는지요. 인디다큐페스티발 그리고 인디스페이스가 준비한 이번 발견과 주목 기획전에서 세 작품은 일장춘몽이라는 타이틀 하에 함께 상영하게 되었는데요. 김무영, 오재형, 이재임 감독님들 모시고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이완민이라고 합니다.

 

김무영 감독(이하 김무영): 랜드 위드아웃 피플연출한 김무영입니다.

 

오재형 감독(이하 오재형): 반갑습니다. 모스크바 닭도리탕만든 오재형입니다

 

이재임 감독(이하 이재임): 강릉여인숙연출한 이재임입니다.

 


이완민: 이미 느끼셨겠지만, 절대적이고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영화들이 아니라 상당히 생각이나 감각의 여지가 열려있는 영화입니다. 그런 만큼 관객분들께서 편하게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공통 질문으로 시작할게요. 어쩌면 연출 계기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이런 질문은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서,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여쭤보겠습니다. 감독님들께서 이 작품을 시작하실 즈음에 사로잡혀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지금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요소들 중에 최초의 조각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아무래도 한 개인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고립감이랄까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느끼는 고립감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마지막 엔딩도 그렇게 개인의 어떤 상황에 맞춰서 끝내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처음의 조각은 초반부에 등장한 마사코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가 저한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오재형: 제가 그 때 느꼈던 감정은 누구나 느낄 법한 가벼운 우울 혹은 무기력이었습니다. 작업하시는 분들은 다 공감할 텐데, 외부적인 일이 없는 시기에 그런 지난한 날들이 지속되면 뭔가 좀 우울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느꼈고요. 그 때 마침 부모님께서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같이 가자고 해서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내내 버스를 타고 잠깐 내려서 식사하고 관광하고 이런 식인데. 어르신들은 한국음식을 꼭 먹어야 하잖아요. 여행에서 처음으로 간 곳이 모스크바였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갔던 지하 식당에 닭도리탕이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그걸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렇게 써서 올렸는데 그게 최초의 조각이 됐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은 너 지금 어디야, 장난 치지마이런 식으로 반응하여서 제가 계속 헬싱키 제육볶음이런 식으로 먹었던 음식 사진을 올렸어요.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 하는 게 재밌기도 했는데요.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은 그 당시에 없었고, 그 패키지여행에서 저만의 재미를 찾고자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라는 놀이를 시작한 게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재임: 영화를 찍은 계기 이전에,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없어질 것 같다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도 없어질 것 같고, 공간도 없어질 것 같고. 이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 기억들이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고 또 어떤 식으로 남을까, 이런 아쉬운 또는 아까운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처음에 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을 해볼까 고민할 때, 제가 선전영화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 옛날 뉴스 클립들, 흑백뉴스 클립들을 취미삼아 찾아보는데 거기서 태백의 선전영화 혹은 선전뉴스들을 보게 됐어요. 강릉여인숙에도 나오는 사택 앞에서 풀 뜯는 소녀와 같은 이미지를 보고 태백에서 자랐던 저 혹은 할머니, 엄마,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미지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최초의 조각들에 대해서, 또 사로잡혀있던 감정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연출 계기를 묻는 질문을 달리 여쭤본 것은 각 영화가 각자의 방식으로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로 활성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인데요. 구체적으로 한 영화씩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랜드 위드아웃 피플의 김무영 감독님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감각했던 혹은 충격을 받았던, 영화로부터 뛰쳐나온다고 느껴졌던 순간들은, 다른 분들도 많이들 느끼셨겠지만 슬레이트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또 슬레이트보다는 좀 덜 명확하게 지나가지만 붐마이크가 교회씬에서 등장하고요. 그리고 인물이 프레임 아웃한 후에 카메라가 교회를 향해 팬하는 샷도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서 인물 동선을 따라가거나 하는데, 자의적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데서 오는 충격을 받았어요. 이 세 가지 요소들에 있어서 재밌는 점은 이들이 다른 것들과 공존한다는 것이었어요. 음이 소거된 상태의 수창과 수창의 아내 지은의 뒷모습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샷들이 각각 존재하는 데요. 이 뒷모습을 통해서는 인물들의 감정을 느끼고 극 안에 몰입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는데,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는 여기로부터 오히려 벗어나는 느낌을 받게 되어서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교과서적으로 얘기하자면 모큐멘터리 혹은 페이크 다큐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한편으로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가지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양자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고 느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는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글쎄요. 저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하나의 주제를 리서치하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고요.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보는 사람들이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정서를 보여주고도 싶었고, 다양한 생각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관객의 몰입을 최대한 방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연이란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 모스크바 닭도리탕의 오재형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프레임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림의 프레임이 보이지 않도록, 즉 그림이 화면 안에 가득 차도록 찍는 지점이 있는 반면에 인위적인 액자를 씌우는 장면이 공존하는데, 이 두 가지가 배치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차이점이 있다면, 액자가 씌워진 부분에서는 내레이션이 들리지 않아요. 그 외의 순간들은 끊임없이 내레이션이 등장을 하고요. 이건 제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그림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내겐 그게 없었다. 짐승 시체 같은 것그리고 화염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때의 감정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정신분석을 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전체적으로 영화 속 마음의 목소리는 지금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 뭔가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액자 안에 담겨진 풍경들이고. 여행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런 전쟁 같은 상태에 오히려 몰입하고 있는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웃음) 당연히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요.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런 프레임을 그렇게 구성하는, 그림 안에 그림을 화면 가득 담는 것에 있어서 감독님의 기준, 원칙이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오재형: 우선 해석이 재미있네요.(웃음) 영화를 만들고 나서 몇 분이 글을 써주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은 이 영화는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에 대한 영화라는 평을 해주셔서 재밌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재밌는데요. 내레이션은 어느 날 자다가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꿈이 너무 생생하고 재밌어서 녹음을 했어요.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옆에 핸드폰이 있어서 바로 녹음을 했고 그게 저 내레이션이에요. 사실 아무 뜻이 없어요.(웃음) 의미를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도 몰라요. 그냥 제가 잠에 취해서 중얼거린 내레이션을 저기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삽입한 것이고요. 푸티지를 찍을 때 원칙은, 보통 여행가서 사람들이 찍는 이미지의 핵심은 장소성이잖아요. ‘나는 다른 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찍는 게 핵심인데요. 저는 당시 사로잡혀있던 무기력, 우울 이런 감정과 패키지여행의 노잼인 부분, ‘모스크바 닭도리탕포스팅처럼 그런 허무한 이미지, 농담 같은 이미지처럼 여행지지만 장소성이 제거된 이미지들을 찍었어요. 미술관에 그림이 있으면 일부러 햇빛에 반사되어서 얼굴이 안보이게 찍는다든지 아니면 관광객분들이 한국 노래를 떼창을 하는 곳이 코펜하겐 운하라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게 찍는다든지. 그런 허무한 이미지들에 이끌렸고 농담 같은 풍경을 찍으면서 중간부터 이건 작업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더 열심히 찍었는데요. 나중에 편집할 때 인위적인 프레임을 갖고 온 건, 그냥 이렇게 하면 더 재밌겠는데? 어딘지도 모를 풍경을 화려한 액자 속에 넣어두면 더 허무해보이고 더 재밌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도였어요. 그 외에 내레이션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편집한 건, 그 전의 영화들은 힘을 주고 계획에 맞춰 의도대로 넣었다면 이번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꿈 얘기를 하는 거니까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되고, 그냥 이쯤에 어울린다 싶은 걸 넣어보자 해서 만들었어요. 부담 없이 만들었고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원칙 없는 게 원칙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완민: 강릉여인숙의 이재임 감독님께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복잡하게 얘기하기 이전에 딱 다가왔던 건 변기였어요. 이불에 감싸져 있는 변기 이미지가 강렬했고, 어떤 아카이빙 이미지와 같이 병치되었을 때 받는 어떤 쾌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하자면 강릉여인숙의 경우에는 개인의 기억, 그러니까 텍스트로 풀어진 나의 기억들, 외할머니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구술적인 기억들, 공공 아카이브에서 드러나는 공동의 기억들이 동시에 존재하죠. 근데 동시에 존재하면서 뜬금없는 순간에 최소한의 연관성을 가지고 그것들이 교차 편집되거나 사후침투하는 순간이 보였습니다, 마치 감독님께서 연출의도에 쓰셨던 검정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라는 표현을 연상케 했는데요. 계속 묻어난다는 거죠. 개인의 서사 속에서 계속해서 공공의 이미지가 드러나는데, 재밌는 것은 최소한의 연결로 인해서 공공의 기억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약간의 저항감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느껴졌는데요. 여성 노동자의 이미지 등 태백 역사에 있어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존재가 폐기되지 않길 바라는 느낌도 받았고 한편으로는 공공 아카이브 이미지의 신화에 대한 반기를 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재밌는 것은, 현재에 있는 어떤 아카이브성 이미지, TV로 뉴스 화면이 보이는 것도 재밌었는데요. 같은 질문으로 기준과 원칙에 대한 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런 개인과 공동의 기억들을 배치함에 있어서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재임: 원칙과 기준이라기보다 말씀하신 그대로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되게 뜬금없잖아요. 할머니 인터뷰는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할머니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으면서 예전 기억 혹은 자기가 계속 앉아 있는 방 이야기만 하는데, 어떻게 여기서 그 이야기들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겪었던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그 흉흉한 태백의 모습과 대거 실업자인 아버지를 두고 가정불화를 겪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 엮을까 고민하다가 발견한 이미지들이 그런 아카이브의 한 귀퉁이였던 것 같고요. 선전영화라는 게 되게 명확한 메시지와 문장을 전하려고 만든 것이긴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 속에 트레이닝 되지 않은 미숙한 연기자들과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잡히는 모습들이 재밌다고 느껴져서 어쩌면 이런 모습이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엄청 오래전에 작업한 영화지만 돌이켜 보자면 그런 계기들로 만들고 엮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 제작기간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앞선 질문에서도 구성에 관한 이야기가 간단하게 나왔지만, 전반적인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 전체적인 제작기간과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배치했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만큼은 꼭 넣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라든지, 반대로 소극적으로 빼고 빼다가 남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제작기간은 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만든 영화라서, 학교 다니면서 시간 날 때 마다 조사를 많이 했죠. 영화에는 많이 안 나오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도시계획 기관에 계신 분도 인터뷰를 했고 찍기도 다 찍었어요. 그렇지만 맥락에 맞지 않아서 뺐어요. 그리고 제가 사실은 교회 측 입장과 시 측 입장을 모두 찍으려고 계획하고 준비도 마쳤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당시에 에너지도 많이 떨어지고 돈도 없어서 거기까지는 못 갔던 것 같아요. 지금 봐도 그 장면들이 있어야 마무리가 되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완민: 그럼 구성안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세우고 가셨는지요? 전체적인 구조(수창에서 수창으로 끝나는 구조)라든지 어떤 음악을 사용하고 매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먼저 하셨는지 아니면 후반 작업을 통해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무영대부분 촬영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정했던 것 같아요. 오래 전에 만들었다보니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나긴 하지만 처음에 정하고 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촬영하고 리서치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원래 영화를 음악을 거의 쓰지 않고 만들고 롱테이크로 많이 찍는 스타일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기존에 해왔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좀 많이 움직이고 컷도 이전보다는 많이 가고 음악도 많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이완민: 오재형 감독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전체적인 제작기간, 푸티지 등의 배치는 언제 어떻게 하게 됐고. 또 푸티지들을 어떻게 찾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내레이션 역시 잠에서 깨어나서 한 녹음을 사용한 것인지 여러 날에 걸쳐 작업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재형: 우선 내레이션도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데, 전작에서 내레이션을 해보니까 저는 안 되더라고요. 연기하는 것도 너무 어색하고 말하는 것도 잘 안 돼서 잠결에 녹음한 게 더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다음에 한 번 더 자고 일어나서 해볼까 싶었는데, 다시 하려니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좀 꾸미게 되기도 하고요. 재녹음을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내레이션은 최초의 녹음을 그냥 쓴 것이고요. 제작 기간은 패키지여행을 갔던 2주 동안 촬영하고, ‘이 때쯤 되면 인디다큐페스티발 공모가 슬슬 오겠구나라고 생각하고(웃음) 편집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렸을까요. 되게 빨리 만든 편이었습니다. 영화 처음과 끝에 줄에 매달린 사람들은 서울거리예술축제라고 가을마다 하는 축제의 한 장면인데, 제가 그곳에서 촬영하는 일을 했어요. 공중에 사람들이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매달려서 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제가 SF물을 좋아해서, 나중에 그런 영화를 만들면 어딘가에 인서트로 쓰지 않을까 싶어서 찍어두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 어울릴 것 같아서 사후적으로 앞뒤에 배치를 했습니다.

 

이완민: 영화 속에서 외계인 마스크를 쓰고 계신 분들은 실제로 그 가면을 쓰고 계셨던 건가요?

 

오재형: 크루즈 안이었고 실제로 갑자기 코스튬하시는 분들이 아빠한테 악수를 청하기에 너무 웃겨서 찍었습니다.

 

이완민앞뒤 이미지가 우주선 같은 느낌을 줘서 그 분들이 등장이 그 이미지와 재밌게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재형: 제가 외계인들을 좋아하거든요. 전작도 외계인이 나오는 다큐멘터리고요.(웃음)

 

이완민: 하나 더 질문이 있는데요. 내레이션 관련해서 다른 사람을 캐스팅해서 내레이션을 할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오재형: 제가 다큐멘터리를 주로 하는 이유가, 혼자 다 퉁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거든요.(웃음)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방에서 혼자 뭔가를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타입이라서요. 부족하면 혼자 연마해서 작업을 한다든지 그런 식의 작업을 즐깁니다. 또 남에게 맡기면 다 돈이 들기 때문에(웃음)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혼자 하려고 합니다.

 


이완민: 이재임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강릉여인숙에서 텍스트가 등장할 때 4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무지, 무음을 배경으로 나의 기억을 서술하는 듯한 텍스트, 하단에 해쉬태그 형식으로 쓰여진 텍스트, 그리고 노란 텍스트, 이는 아마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이미지 한 가운데에 등장하는 듯한 텍스트입니다. 보고 있으면 각각 텍스트들의 어떤 차이가 짐작되지만 관련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 구성과 연관 지어서, 제작기간과도 연관 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특히 해쉬태그 같은 경우는 영화를 네 부분으로 나누는 기능도 하는 듯한데, 그런 구성은 처음부터 정하고 작업하신 것인지 후반작업 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재임: 명확한 기획을 가지고 태백을 찾고 촬영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저도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촬영한 걸 바탕으로 1년 반 동안 방학 때 집중적으로 촬영했어요. 할머니가 50년 동안 해왔던 여인숙을 중심으로 주로 할머니를 찍지만 할머니가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어쨌든 태백의 역사나 설명이 필요하니까 동시에 이것저것 촬영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폐광이 되고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강원관광대라는 대학교를 하나 지어줬는데 카지노딜러학과가 있어요. 그런데 제 친구들이 거기에 많이 진학을 한 거죠. 그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실제 여인숙에 거주하시던 분들에게 어쩌다 태백에 왔는지 등의 인터뷰를 따기도 했는데요. 그런 것들이 들어가면 다른 영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설명적인 부분을 텍스트로 처리를 하고 심플하게 여인숙이 광산이나 도시의 역사에 따라 변모해가는, 여인숙에 오는 사람 또는 기능의 변화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아주 예전에 탄광이 부흥했을 때는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도시의 기능, 예컨대 성매매, 유흥업이 발달했고 그 안에서 여인숙 거리라는 게 존재를 했거든요. 이런 기억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을 때 할머니가 여인숙으로 돈을 벌어서 엄마 대학을 보냈다는 이야기나, 폐광이 되면서 찾는 사람이 없고, 관광지라고는 해도 아무도 허름한 여인숙에 오지는 않는 상황에서 여인숙이 도시의 빈민들의 쪽방이나 주거 외 거처로서 기능하는 모습들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관객: 저는 고등학생인데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싶고 연출하고 싶어서 많이 보고 있는데요. 항상 보면서 카메라에 인물을 담을 때 대상화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재형: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왜냐면 영화를 찍는 사람, 특히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번 그것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자기 검열을 하는데요. 매번 대상화하지 않는 것에서 실패하고 결국 자책을 하거나 내가 작품을 이용했다는 마음을 감독들은 가지게 돼요. 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계속 토론해야 할 문제이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질문하신 게 다큐멘터리의 핵심인 것 같긴 해요. 어떤 소재가 있고 이를 찍고 싶을 때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사체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고 진솔한 답을 얻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는 몇몇 친구들 이야기를 하자면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의 삶을 찍기 위해 찍기 전부터 1년 동안 거주를 했고요. 또 제주 강정마을을 찍은 김성은 감독은 꼭 작품 촬영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제주에 이주를 해서 5년 동안 산 뒤에야 겨우 카메라를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태도들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하나의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완민: 관련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강릉여인숙에는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목소리가 가끔 등장을 하는데요. 충분히 뺄 수도 있었을 텐데 빼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재임: 사실 제 목소리는 최대한 뺄 수 있는 부분은 다 뺀 것인데요. 할머니란 존재는 찍기 쉬운 존재잖아요. 너무 죄송한 말이지만, 제가 할머니를 찍는다고 해서 할머니는 스스로 변호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요. 저와의 친밀감을 떠나서 그런 부분 때문에 아주 많은 생각이 들었고 저도 그런 고민과 항상 마주하는 것 같아요. 저는 찍을 때마다 할머니에게 보여드렸어요. 모든 컷, 편집을 할머니에게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적극 반영했고요. 오히려 저는 할머니가 어떻게 그려지는지 명확히 밝히는 것이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가 엄청 불쌍하게 그려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가편집본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이런 말들을 좀 무게감 없이 전달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별로 신경은 안 쓰셨지만.(웃음)

 

이완민: 할머니가 최종본도 보셨나요?

 

이재임: 최종본도 보셨는데 그냥 소리가 작다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무영: 저는 개인적으로 재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대상화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재현하는 사람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만들지만 내가 신처럼 어떤 것을 재현하는 형식이 아니라 내가 어떤 위치에 어떻게 존재하면서 이 이미지들을 재현하는지를 더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화에 대한 죄의식은 끝까지 가지고 가야 되는 것 같습니다. 이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관객: 랜드 위드아웃 피플마지막에 흐르는 노래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가사를 보면 이해가 가는데 다른 비슷한 노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왜 그 노래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사실 노래를 선택한 것은, 이 상황에 대한 제 코멘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코멘트를 하는 것보다 노래로 코멘트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완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됐는데요. 끝으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지금 작품에 대해 느끼는 감정, 이후의 활동, 차기작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무영: 영화를 다시 보면서 어설픈 면도 있고 제 생각대로 다 못한 부분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차기작으로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고 있고 픽션도 디벨롭하고 있는 상태이고요. 밤빛이라는 작품을 1030일에 이곳에서 인디포럼 월례비행으로 상영을 할 예정이니 보러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재형: 작업 끝나고 느꼈던 감정은 이번 작업도 되게 재밌고 즐거웠다는 것이었고요.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당분간 없을 것 같아요. 요즘에 매진하고 있는 건, 제가 몇 년 전부터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됐어요. 매일 피아노를 세네 시간씩 치고 있는데 그냥 취미만은 아니고 영화를 틀고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요. 이를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올해 저의 단편영화와 피아노 연주를 함께 하는 단독공연을 했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고요. 모스크바 닭도리탕배경에 흐르는 모차르트 곡을 직접 치면서 상영하는 공연도 있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웃음) 앞으로 공연을 좀 더 많이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재임: 2014년에 촬영했던 영화인데 제 머릿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편집본이 있어서 보면서 뒤에 다른 푸티지가 올 거라고 예상하거나 다른 텍스트가 올 줄 알았던 순간이 많았어요. ‘저렇게 찍었구나, 지금이라면 다르게 찍었을 것 같기도 하다이런 생각도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계속 찍고 있지는 않고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최근에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활동에 관련한 내용을 전하는, 짧은 호흡의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각오가 있습니다.(웃음)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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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이미지와 소리에 대하여 

 SIDOF 발견과 주목 〈섹션 1: 멀리서 들려오는 이곳의 목소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건희, 장윤미, 조용기 감독

진행 강상우 감독 (김군〉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1011, 인디다큐페스티벌과 인디스페이스가 공동주최하는 ‘SIDOF 발견과 주목에서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흥미로운 젊은 세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김건희 감독의 당산, 장윤미 감독의 콘크리트의 불안, 그리고 조용기 감독의 투명한 음악이 그것이다.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 감독이 인디토크를 진행했다. 공간과 이미지, 소리라는 세 요소가 공명하며 만들어내는 영화의 하모니에 대해 네 명의 감독이 이야기를 나눴다.

 





강상우 감독(이하 강상우): 이번 인디토크에서는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에 관해 독특한 접근을 시도한 세 가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당산을 연출한 김건희 감독, 콘크리트의 불안을 연출한 장윤미 감독과 투명한 음악의 조용기 감독이 함께 하겠습니다. 저는 영화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입니다. 세 작업이 모두 2017년에 작업한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건희 감독(이하 김건희):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동안 저희가 원하는 걸 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는데, 저에게는 그 중 하나가 '당산'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한다면 내 마음 한 편에 빈 구석이 있을 것 같아서 당산이라는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산이 제 고향이고, 처음에는 그리움 때문에 다시 찾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그리움보다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마주했어요. 이전과 달라진 당산의 모습 때문이었죠. 이 불안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영화가 출발했습니다.

 

장윤미 감독(이하 장윤미): 콘크리트의 불안은 정릉동 스카이 아파트가 배경인데, 스카이 아파트에 대해서는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때 주민들이 위험한 환경과 쫓겨날 위기 때문에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인권단체 활동을 하면서 알고 있었죠. 10년간 잊고 살다가 여전히 무너지지 않은 스카이 아파트에 대한 기사를 봤고, 아파트 자체에 관심이 갔어요.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이고, 위험등급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아파트의 입장에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조용기 감독(이하 조용기): 투명한 음악은 제목도 공연을 연출한 김지연 씨가 발매한 음반에서 따왔고, 김지연 씨께서 해당 공연을 기획하면서 기록영상을 제안하셔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게 단순히 기록영상으로 남지 않고 조금 더 확장된 영상물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러닝타임도 길어진 것 같습니다.

 




강상우: 김군의 음악을 김지연 뮤지션이 담당해주셔서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세 작품이 소리와 연관된 고유한 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 나름대로 공통점을 찾아보았는데요. 세 영화 모두 사라진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콘크리트의 불안의 스카이 아파트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이고, 투명한 음악에는 공연 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질 순간들을 포착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당산역시 개인적으로 시작할 때 막막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어떤 지표적인 거점 없이, 감독님의 불안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 같아서 오히려 이미지와 소리에서 다양한 결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각자 작업 초기부터 했던 고민이 무엇인가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윤미: 총 작업 기간은 1년이었고, 스카이 아파트가 철거될 때까지 찍겠다는 계획을 갖고 갔습니다. 계속 아파트의 물질성을 강조하면서 찍었는데 한편으로는 재미없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왜 이 공간을 좋아하고 왜 배회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했는데, 저 역시 소규모 아파트가 많을 때에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꾸 어릴 적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나레이션을 결합하자는 결심을 했어요. 영화에 나온 나레이션은 7-8년 전에 젖니에 관해 써둔 에세이가 있어서 바로 진척이 있었어요. 스카이 아파트는 제가 살았던 공간은 아니라서 제 어린 시절의 레이어와 겹쳐도 괜찮을까 고민했지만, 결심을 하고 실행했던 것 같아요.

 

조용기: 저는 투명한 음악이라는 공연 자체가 가지는 기술적인 체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성도 있고, 녹음하는 공간과 듣는 공간이 다르다는 개념도 있는데, 영상을 통해서 관객분들이 느꼈을 체험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었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키보드의 소리와 바깥에서 들려오는 생활의 소리가 디지털 신호를 거쳐 스트리밍으로 들리는 것에 대한 간격과 시간성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공연 자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느껴졌던 공기나 분위기를 담는 것에도 집중했어요.

 

김건희: 저는 초기 구성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 주제를 끌고 갈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서 이라는 이야기를 넣었어요. 그리고 자막은 초기에 결정이 된 것이었어요. 물론 제가 이야기한 것은 당산의 이야기이지만 당산동 일대의 공적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이게 초반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결정했습니다. 공간 위주로 기록을 많이 했었고 이를 이야기와 시간 배치에 따라 구성했어요.

 

강상우: 당산은 초기에 생각하셨던 구성과 마지막 편집 이후 최종 결과물이 다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땠나요?

 

김건희: 전혀 달랐어요. 1차 편집본에서 영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느껴져서 이것들을 관통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넣게 된 게 눈 이야기에요. 실제로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공장 아저씨들의 눈이 진짜 무서웠어요. 불안을 주는 감정은 다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사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공간에서 마주친 무의식적 역사가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초기에는 제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는지, 혹은 공간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는지 비중을 둘 곳을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강상우: 당산을 보면서 느꼈던 건 다양한 이미지의 계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때로는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텍스트이고 인용부로 어떤 표현들이 등장하고 다른 작가님의 글이나 사진도 등장하고요. 감독님이 태어나신 1993년 이전의 이미지들이 나오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의 텍스트가 나오고 1997년 비디오가 나오는데, 4살 된 아이가 어디 있을까 찾았는데 안 보이더라고요. 점점 더 감독님으로 보이는 의 이야기로부터 다른 계열의 이미지와 영상이 들어오면서 확장된다고 생각했어요.이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김건희: 일단은 제가 조사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그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공간을 파헤쳐보자고 생각했었고, 조사를 하다보니 일제강점기까지 갔어요. 그때 '이런 공간이 있었는데 전혀 기록된 바가 없겠구나, 그러면 그 기억도 사라질 텐데, 내가 있었던 이곳의 기억도 사라지겠구나'하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디오 푸티지 같은 경우에는 명확하게 97년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는 아이로 제가 있어요. 2000년대 초반에 찍은 건데 동시에 가족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이 되게 묘했어요. 그 푸티지가 97년 이후의 여파를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텍스트와 엮은 것이었어요. 몇 가지 불안의 단상과 기억들을 파편화하고 분류해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입히면서 작업했었고 인용구는 제가 가진 언어를 정확하게 전달해줄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이 들어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일종의 실존 레퍼런스 같은 글들이었죠.

 




강상우: 콘크리트의 불안을 보면 나레이션이나 아파트 풍경을 보여주는 방식이 건조하지만 한편 감독의 시선은 생활의 자취라던가 강아지, 고양이를 팔로우하기도 해요. 패닝을 훑을 때의 느낌도 인상적이었어요. 카메라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새로운 요소를 비추고 감독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면서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이야기가 되는 순간들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말과 이미지의 배치에 있어서 고민도 깊으셨을 것 같아요또 촬영하실 때 고정 샷과 몇 번의 틸트 말고는 패닝인데, 그렇게 선택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장윤미공간을 촬영하기 전에 사전 탐방 식으로 공간을 돌아다녔는데 그때 제가 보았던 시선에서 그대로 찍었어요. 처음에 현관에 서서 주변 풍경을 보는데, 생각보다 카메라를 360도 돌리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시선이 아파트 입장에서 보는 시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레이션과 이미지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결합하자고 생각한 게 아니어서 느슨한 상태로 남아있었어요. 아파트를 이라고 비유할 생각도 없었는데, 아파트-이를 환유적으로 붙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썼어요. 개인적으로 이미지에 대해 딱 맞는 이야기보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재미있고 좋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최소한의 연결장치는 마련하기 위해서 지점들을 찾아서 연결고리를 만들었던 것이고, 촬영했던 리듬감을 그대로 살리려고 했어요.


강상우: 가장 극적인 순간이 마지막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파트가 철거되는 순간인 것같아요. 그 전까지는 불안감이 느껴지기 보다는 감독님께서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고 느껴졌고, 이가 뽑히는 순간의 나레이션과 철거되는 순간을 같이 보여주면서 되게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따듯한 어투로 건물 철거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그 결정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장윤미사실 무너지는 것도 따듯하게 바라봤어요. 스카이 아파트의 낡은 모습과 좋은 풍경도 좋아했고, 그래서 카메라도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건 꼭 무너져야 하는 건물이라서 깨끗하게 잘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면서 마지막 장면을 찍었던 것 같아요.

 

강상우: 조용기 감독님께서는 처음에 김지연, 이강일, 송명규 님께 어떻게 작업 제의를 받으셨나요? 공연이 공기로는 전달되지 않는 소리와 헤드폰을 껴야 들리는 소리의 격차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그것을 영화로 푸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세 분과 만나게 된 계기와 영화적 형식에 대해서 어떻게 가닥을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용기공연을 하신 분들이 선유도에서 한 작업이 있는데 그 작업을 촬영하게 되면서 세 분과 알게 되었어요. 그를 계기로 투명한 음악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연 자체가 스트리밍을 통해 듣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한 공간에서 들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에 다 같이 모여 들으면서 공연장 안의 소리와 공연장 뒤의 소리, 바깥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을 듣는 생경함을 느끼길 원했어요. 생경함이라는 단어와 공연장 자체의 분위기를 영화에 담는 것이 공연 자체를 설명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상의 구성도 1-2-3부를 나누려고 했고, 영상 중간 중간 녹음된 소리와 촬영된 소리가 어긋나는 부분들을 넣어서 거리두기를 하려고 했어요. 이것이 공연의 매체성, 기획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주위의 것을 건드려서 연상시키는 방법을 좋아해요. 아웃풋은 보기 편하게 관조하는 형식이 되었으면 해서 망원렌즈를 많이 사용했고 패닝을 통해서 연결점을 만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강상우투명한 음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김지연 씨의 피아노로 사운드가 꽉 차있다가 중간에 헤드폰을 벗었을 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처럼 고요한 소리만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비추는 장면인데요. 실제 공연 당시의 엠비언스 사운드인가요?

 

조용기: 해당 부분은 당시에 녹음되었던 소리가 맞아요. 나머지는 스트리밍을 통해서 들었던 소리예요.

 

강상우: 그 외에는 같이 녹음되어도 함께 들려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조용기: 공연에도 딜레이와 시간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영상을 제작하는 방식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강상우영화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관객 분들의 질문이 있다면 받아볼까요?

 

 



관객: 투명한 음악은 사운드 편집에 굉장히 공이 들어간 것 같고 사운드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구현하고 싶었으나 실제 영화에서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조용기: 스트리밍과 키보드 때문에 공연 자체의 사운드에 시간차가 존재해요. 그 부분을 제가 제대로 구현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촬영을 카메라 한 대로 하다보니까 공연장의 분위기를 생각했던 대로 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관객: 장윤미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어요. 영화를 열고 닫을 때 쓰셨던 눈---입 텍스트가 말씀하신 대로 건물의 감각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귀가 늘어진다거나 입이 벌어진다거나 하는 것들이 감각적인 것인데, 영화를 편집하고 촬영하시면서 도시에 대해 생각할 때 그 감각이 묻어있었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텍스트를 나중에 엇갈리게 마무리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텍스트는 이미 이전에 써둔 것을 결합한 것이지만 건물을 찍으면서 그때의 감각을 많이 떠올린 것 같아요. 문장들은 그냥 그런 느낌들이 몸에 간질간질하게 떠올라서 썼던 건데 마음에 들어서 시동을 거는 식으로 앞과 뒤에 배치를 했어요.

 

강상우: 저는 당산을 보면서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2017)라는 영화가 떠올랐는데요. 시대를 초월하면서 유영하는 귀신의 시점에서 쓴 의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의도하신 바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결의 이미지와 소리를 접합한 점에서 흥미로웠고, 목소리가 아닌 텍스트로만 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유령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건희: 제가 의도한 건 건조함이었어요. 실제로 시니컬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구요. 텍스트에 쓴 소설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줬는데 그런 끔찍한 것 그만 좀 읽어라라고 하셨어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이라서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기억이 혼재되는 이야기예요. 저도 당산에서 느꼈던 바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공간이 계속 떠돈다는 감각이어서 감정적으로 이입했던 텍스트였어요.

 

강상우: 장윤미 감독님께서 한 톨의 거짓말도 없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쓴 나레이션이 굉장히 우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김건희 감독님의 텍스트로 된 에 대한 이야기는 중간으로 갈수록 믿을 수가 없어져서 끊임없이 재미있는 거짓말을 펼쳐 간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대해 의도하신 바가 궁금했습니다.

 

김건희대부분은 사실이기는 했어요. 다만 너무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강상우: 콘크리트의 불안의 경우 현장 촬영에서 채취한 소리를 동시에 채취한 이미지와 같이 쓰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당산은 적극적인 음악의 삽입이 있었어요. 영화 시작할 때 이국적인 음악이 쓰이고, 후반부부터는 애상에 젖은 어쿠스틱 기타 음악이 중요한 기점에 배치가 돼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따라가는데 가이드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의 결정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고, 장윤미 감독님께는 동시 녹음된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서 감독님께서 가지고 계신 태도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가졌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김건희: 음악은 덴마크 음악가의 음악을 썼어요. 언제인가 이 분의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영상을 보여드리고 음악을 제작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자막을 결정하고 나서 편집을 하면서 소리가 없는 게 조금 어색했어요. 그러나 엠비언스 사운드 말고는 채울 수 있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현장음 말고도 불안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장윤미: 제가 음악을 잘 몰라서 쓸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만약 음악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언젠가는 쓸 것 같아요. 또 현장에서 우연히 만들어지는 소리를 좋아하기도 해요. 아파트 전경을 찍는데 학교에서 종소리가 난다거나, 오르막길을 찍는데 야채 파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그런 것들이요. 저는 그런 소리들에 만족감을 느껴서 현장음을 살리고 싶기도 해요.

 

강상우: 두 영화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다가 당산콘크리트의 불안이 각각 눈과 이빨이라는 매개로 이질적인 것들을 잇는 영화적 해결책을 쓴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산감독님에게는 그레인이 보이는 눈의 이질적인 이미지를 쓰기로 한 결정과 눈을 택한 이유를 들어보고 싶구요, 장윤미 감독님 역시 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쓰게 되신 건지에 대해 묻고 싶어요.

 

김건희눈에 대한 이야기는 편집하면서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공장에서 짖는 개들이랑 매섭게 쳐다보는 아저씨들의 눈이 무섭다는 기억이 컸어요. 그래서 그 기억을 축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신문지에 나오는 매서운 눈들을 다 오려서 스캔하고 흑백 필터를 입힌 것이에요.

 

장윤미: 스카이 아파트는 69, 박정희 정권 때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여서 매우 부실한 공사였어요. 그리고 젖니도 빠졌다가 다시 새 이가 나야 튼튼하죠. 이 정도의 가벼운 연결점을 생각하면서 작업하니 더 잘 풀렸어요. 글 같은 경우에는 작업실에 앉아 있다가 정말 문득 젖니가 빠질 듯 말 듯 할 때의 간지러운 느낌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신기하게도 A4 7-8페이지를 한 번에 다 써내려갔어요. 사실 모두 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반 허구적인 에세이라고 할 수 있죠.

 




강상우: 모든 작업이 2017년 작업이라 2년간 새 작업을 발표하신 분도 계시고, 작업 중인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본인 작업에서 소리의 사용에 대해서 바뀐 부분이 있을지, 혹은 계속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고 이후 작업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건희지금 새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1920년대와 40년대의 여성 공장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산에서 잠깐 나온 여성들이 일하는 공장의 사진에서 출발하게 된 영화에요. 이번에도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할 예정인데 무기력하게 풍경을 바라보기보다는 기억이든, 흔적이든 누군가에게 남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작업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인물을 촬영할 계획입니다. 푸티지와 사운드, 자막같은 경우의 톤앤매너는 계속 지키지 않을까 싶네요.

 

장윤미: 저는 콘크리트의 불안이후에 두 편의 다큐를 했어요. 하나는 아버지의 건설 노동에 대한 작업 공사의 희로애락〉(2018)이고 최근에 구미에 있는 노동조합에 다녀와 한 편을 더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당장 없지만, 이미지와 맞지 않는 나레이션을 쓰는 것과 현장음을 넣는 것은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조용기: 저는 자전적인 다큐먼트를 활용해서 픽션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투명한 음악은 협업의 과정이었고 그래서 투명한 음악에서 가져왔던 촬영적 측면과 이전에 했던 개인 작업의 면면을 융합하는 형식의 작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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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인 신체와 주체적인 삶에 대하여  〈아워 바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한가람 감독|배우 최희서, 안지혜

진행 이화정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선선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시월의 첫째 날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 아워 바디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아워 바디의 자영은 달리기를 통해 감각을 일깨우고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오롯이 느끼고 탐구한다. 어떠한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표현하고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여성 캐릭터를 오랜만에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은 다른 결을 가진 영화를 관람한 뒤에 주체성을 회복한 자영의 선택과 결정들에 대해서 감독과 배우, 관객들의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가람 감독과 배우 최희서, 안지혜가 참석하였고 이화정 기자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이화정 기자(이하 이화정):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이화정입니다. 지금 밖에 비가 와요. 영화 분위기와 오늘의 날씨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실천으로 옮겨지지가 않아요.(웃음아워 바디 보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영화들이 성장영화라는 이름을 달거나, 사건을 통해 변하는 인물을 보여주는데요. 이렇게 욕망의 지점을 하나하나, 몸의 어딘가를 누르는 듯이 짚어주는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새로움을 만들어 가신 세 분께서 이 자리에 오셨어요. 영화 연출하신 한가람 감독님과 배우 최희서님, 안지혜님 모시고 토크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들어오시면 큰 박수 부탁드려요.

 

한가람 감독(이하 한가람): 안녕하세요, 저는 아워 바디를 연출한 한가람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아워 바디를 보시고 머릿속이 복잡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같이 풀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최희서(이하 최희서): 주중 저녁에 저희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영화는 GV를 통해 이야기해보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웃음) 영화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안고 나가실 수 있도록 열심히 GV에 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 안지혜(이하 안지혜): 안녕하세요아워 바디에서 현주 역할을 맡은 안지혜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화정: 제가 먼저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런 영화들을 만들 때는 보통 감독이 그 소재에 굉장히 친밀하거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를 보고 난 뒤 제일 먼저 감독님이 달리기를 잘 하시거나 달리기를 통해 몸이 변화한 경험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본격적인 달리기 액션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감독님을 처음 만나서 달리기를 하시는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달리기를 잘 안 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왜 달리기 영화를 만드신 건가요?

 

한가람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 저는 목격자였던 것 같아요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목격자, 그러니까 화영의 입장 정도에서 그들을 따라서 뛰어봤어요. 그들이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관찰을 열심히 했어요. 저도 조금 달려보긴 했지만 촬영 때는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항상 모니터 앞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제외한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이 살이 쭉쭉 빠졌는데 저만 살이 불어나있더라고요.(웃음)

 

최희서: 조감독님이 살이 진짜 많이 빠졌어요.(웃음)

 




이화정: 제가 아워 바디 촬영할 즈음에 최희서 배우님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이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물론 이차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일단은 몸을 만들지 않고서, 연마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연기잖아요?

 

최희서: , 실제로 저희 영화에 클로즈업이 많고 자영이의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니까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없는 거죠.(웃음) 그런데 좋았어요. 일 분 뛰고 일 분 걷는 것부터 시작해서 삼십 분 내리 뛸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겪고 촬영을 시작하니 좋았고요. 그 외에는 식단을 관리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영화에서 달리는 장면이 잠수교 장면 빼고는 다 밤이거든요. 사람이 있으면 촬영하기 어려우니까 밤 11시부터 해 뜨기 전까지 찍었어요. 밤샘 촬영도 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저는 달리지 않지만 주변에 러닝 동호회 분이 있어요. 그분들께 최희서 배우는 얼마나 잘 달리는 건지 물어봤는데, 정말 수준급이라고 하시면서 몇 개월 동안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놀라시더라고요. 그 전에는 안 달리신 거죠?

 

최희서: 오래 달리기를 별로 안 좋아했고요, 100m 달리기를 선호해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요.(웃음) 고등학생 때 육상부였는데 100m를 뛰었고, 가장 길게 달린 게 200m였거든요. 이건 성질이 너무나 다른 달리기다 보니까 아예 초보자로 시작했어요.

 

이화정반면에 현주라는 역할은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프로페셔널이어야 했잖아요? 그래서 캐스팅을 운명적으로 굉장히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기계체조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운동으로 단련된 몸인 거죠?

 

안지혜그렇죠.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기계체조를 했고요. 그 이후에도 몸이 굳지 않게 만들려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어요. 그리고 마라톤도 기회가 되면 참가해보고 싶어서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는데요. 감독님께서 그때 찍힌 사진을 보시고 캐스팅을 하셨어요.

 

최희서: 하프 마라톤이라고 하면 21km예요. 21km를 지혜가 뛰었다는 이야기죠.


이화정: 차로 달려도 엄청난 거리네요. 감독님께서 캐스팅을 하실 때 두 가지 조건의 배우를 만나야 하는 거였잖아요? 자영은 못 달리다가 달리는 사람, 그리고 현주는 굉장히 잘 달리는 사람. 캐스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이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감독님이 최희서 배우가 〈박열(2017)에서 어마어마한 연기를 한 배우였다는 걸 아예 모르셨다면서요.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요.(웃음)

 

한가람몰랐어요. 자영이는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일상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현이 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희서 배우님 프로필이 저희 학교에 있었는데 한 사진 속 얼굴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자영이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님께서 출연하신 작품을 전혀 못 봤는데 연기를 잘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화정: 제가 알기로는 보통은 감독이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제안할 때 최대한 조사를 많이 해서 애정을 드러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었군요. 달리기도 안 하고 작품도 보지 않으셨지만 최고의 캐스팅과 엄청난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웃음)

 

한가람: 나중에 작품을 봤어요.(웃음) 안지혜 배우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사진을 보고 연락을 드렸고요. 사진 한 장 밖에 단서가 없어서 조금 힘들었어요. 연출부에서 조사를 해서 이 분이 배우라는 걸 알아냈고, 소속사 정보를 알아내서 어렵게 프로필을 받았는데요. 프로필 맨 앞에 체대를 졸업했다고 써있는 거예요. 이 작품에 정말 적절한 분이실 것 같아서 만나 뵙게 되었죠.

 




이화정: 자영이 만약 행정고시에 합격했다면 그 이후에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하고 있겠죠. 달리기를 평생 안 했을 것 같은 자영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고 그 여자를 방 안에서 끄집어내서 달리게 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한가람: 우선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가 관찰자 같이 바라봤던 운동중독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럼 그 사람이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지를 고민했는데요. 그냥 제 또래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백수일 때 달리기를 조금 해봤는데 그 때의 경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달리기라는 운동이 좋았던 이유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또 혼자 조용히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고요. 혼자 무엇인가를 해냈던 그 시간이 저에겐 기억에 깊이 남아있어요. 백수였던 시절에 이상한 사람처럼 동네를 많이 뛰어다녔거든요. 그러면 저처럼 백수 같아 보이는 사람들 몇 명이 같이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웃음) 그 때의 경험에서 자영이가 출발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저는 안 달려봤다고 했는데, 좀 망설여지는 것이 다들 운동복을 잘 갖춰 입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만 약간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는데요. 자영이 용기를 가지고 뛰쳐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친구한테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까지 듣고 난 뒤 사회적으로 쌓은 게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달리기를 만난 거잖아요? 그래서 자영이라는 캐릭터의 절박함을 보며 최희서 씨라는 비슷한 동년배의 여성이 느끼는 지점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최희서: 남자친구가 자영에게 사람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라고 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자영이 훅 들어온 순간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나눈 대화였어요. 엄마가 자영이 먹던 밥공기를 싱크대에 집어던질 때, 고시를 패스하지 못하면 딸로서 취급을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보다 연기를 할 때 마음이 더 아팠어요. 남자친구, 엄마, 그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한참 어린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자영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 같아요. 다들 처음에는 응원을 하다가 나중에는 궁금해하며 지켜봤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영이 어느 순간부터는 절박함도 느끼기 힘든 무감각한 상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자영이가 뛰게 된 건 굉장히 본능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현주라는 사람이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나갔을 때 아주 오랜만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을 거고요. 그 본능으로 인해서 헌 운동화를 꺼내서 나갔다고 생각해요. 초반에 그런 자영의 복잡한 캐릭터 설정이 있었어요.

 

이화정: 어떤 대상에 매혹이 되는 순간이잖아요? 제가 영화를 여러 차례 보면서 신기했던 건, 보통은 그런 순간엔 가슴부터 시작해서 잘록한 허리와 길게 뻗은 몸을 잡으려고 할 텐데 이 영화에선 사람들이 잘 안 쓰는 근육을 잡더라고요. 자영이 현주한테 육체적으로 매료되는 지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장면을 어떻게 찍고자 하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한가람제가 이렇게 찍고 싶다고 이야기하니까 촬영감독님은 중요한 순간인데 강조를 너무 안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나타내고 싶었던 건, 자영은 화석처럼 굳어 있던 사람인데 그와 달리 현주는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생동감이 나타나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몸의 아름다움 보다는 그 순간에 현주가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 숨소리를 잡아내려고 했습니다.

 




이화정: 그래서 오히려 빠져드는 순간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저는 영화에서 달리기가 심경의 변화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달리기 선이 두 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영이 달려가는 길은 서서히 변화해가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데, 현주가 가는 길은 오히려 자영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멈칫하면서 후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출발이 달랐을 수는 있지만 현주도 자영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공허함을 안고 있는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미스터리한 현주의 상태를 연기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안지혜: 현주를 처음 봤을 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 불안한 청춘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살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고,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자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면서도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있었고, 자신의 목표도 점점 흐려진다는 상실감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을 거예요. 그래서 자영이 와도,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잡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신의 힘든 마음을 털어 내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지만, 달리기도 얇은 끈 정도의 느낌이고요. 무언가 해소해보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실의에 빠지면 운동을 하면 좋아진대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요. 이 영화는 그 시점에서는 운동만이 해결책은 아니고, 그 이상의 고민이 있고 그걸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저 건전한 성장영화가 아니라 급격한 미스터리물로 빠지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아요.

 

한가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에 다루고 싶었던 소재가 운동 중독이었는데요. 운동이 강박이 되는 순간에 관심이 갔어요. 운동을 적당히 하면 당연히 좋은데, 왜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는지 궁금했고요. 너무 집착하게 되면 운동이 해방감을 주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구속이 되고, 또 다른 집착을 낳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도 있거든요. 내가 무언가를 이뤄내고 가시화된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심리가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현주가 처음에는 되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잖아요? 겉으로는 건강해 보여도 사실 사람의 속마음은 복잡한 거고 단순히 운동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 현주라고 생각을 했어요. 현주는 그 한계점을 자영이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자영이는 그걸 몰랐고 자기가 매료되었던 건강한 현주의 모습에만 집중했던 거고요. 관객들도 현주를 자영이의 입장에서 보기를 원했어요. 그러다보니 현주의 죽음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다음 자영이가 겪는 일들을 통해서 현주의 삶도 관객분들이 짐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자영이는 현주와 다른 사람이고, 결과적으론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화정: 굉장히 리얼한 소재, 그리고 굉장히 리얼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아온 또래의 여성, 혹은 이상하게 여겼던 주변사람들의 모습 등 여러 가지 지점들이 자영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바탕이기는 하지만 자영의 안에 너무 많은 결들이 있잖아요?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러 가지 복잡한 순간을 거치면서 자영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셨는데요. 그 부분의 톤을 어떻게 잡으셨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최희서: 이 영화가 어느 평범한 여성이 단 한 번도 본인의 삶에 주체성과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비로소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에 옮기게 되는,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현주를 만나기 전 자영은 완전히 전자인 거죠. 저는 자영이 고시 공부를 시작했던 것도 분명히 본인 의견보다는 어머님과 주변의 권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현주가 자영에게 너는 해보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어서라고 대답하잖아요? 자영이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였는데, 주변에서 고시 공부, 공무원, 정규직, 입사 원서, 아르바이트와 같이 수많은 세상의 잣대들로 윤자영이라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거죠. 거기에 옥죄이다가 처음으로 마음을 먹고 선택한 것이 달리기였고요. 현주를 따라서 뛰다가 울음이 터져버리고 그 후 자영의 복잡한 선택들이 이어지는데요. 어떤 분들은 의문을 가지고, 어떤 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기하면서 느끼기에, 현주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큰 상태에서 현주가 갑작스럽게 죽어버렸을 때, 이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더 알고 싶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거예요. 왜 죽음을 택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현주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도기를 겪고요. 그런 과도기에 상사와의 잠자리나 동호회 남자와 하룻밤 등을 겪으면서 본인의 삶과 몸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기도 있고요. 마지막에는 호텔에 가서 본인의 몸을 오롯이 탐구하는 자영의 모습이 있거든요. 스스로의 욕망에 대해서 충실하게 이행하게 된 다음부터는 자영이 꽤나 결단력 있는 사람이 되었고 강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연기하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이화정여성의 욕망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영화에 다양한 성적인 행위들, 아니면 성적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구가 등장해요. 그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이 의도하신 바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가람: 제목이 아워 바디고 몸에 대한 고민을 담은 영화잖아요? 섹스도 몸으로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하나이고 일상적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자영의 욕망을 솔직하게 들여다본다고 생각했어요. 자영이는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평범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용감하고 솔직한 사람일 수도 있거든요. 엄마한테 시험 안 보러 갔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웃음) 밥상머리에서 면전에서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화가 나실 것 같기도 했어요. 저라면 시험을 보러 갔을 것 같은데,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자영이가 현주에게 솔직하게 다가가잖아요? 현주에게 꽂힌 다음에는 앞뒤 안 가리고 현주에게 가는 것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걸 발견했을 때 끈기 있게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것이 자영이가 현주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맥락에서 베드신도 자영이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는 다른 멜로영화처럼 서로 사랑해서 감정을 교류하면서 섹스하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서는 자기를 확인하는 행위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고 싶었을 수도 있고,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서 자영이의 감각이 깨어나는 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해서요. 베드신도 그런 맥락에서 달리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화정: 문제적 장면일 수도 있고 굉장히 매혹적인 장면일 수도 있는데요. 자영이 자신의 몸을 보면서 현주의 몸과 비교하는 판타지 같은 장면을 두 분이 촬영하실 때 어땠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현주가 꿈결 같이 찾아오는 장면 같은 경우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장면에서 두 분의 촬영 비하인드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배우들은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을 지요.

 

최희서: 자영이가 현주에게 갖고 있는 동경의 마음을 여러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요. 사랑으로 볼 수도 있고, 선망이나 우상의 대상으로도 볼 수 있고요. 혹은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다음에는 내가 저렇게 되고 싶다는 질투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던 자영과 현주의 우정은 대단히 특별했어요. 이 영화가 퀴어 요소가 있는지 여쭤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희가 퀴어를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요. 하지만 분명히 자영이는 현주를 어떤 의미에서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그게 잘 나타나는 장면이 현주의 몸을 사랑하는 자영이의 마음이 꿈으로 나타났을 때예요. 현주가 죽는다는 건 실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육체에 대한 동경이 더 짙어진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그런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어떻게 찍힐지 굉장히 궁금했던 장면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름답게, 특히 지혜가 아름답게 찍힌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안지혜: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스태프 분들께서 배려를 많이 해 주셨던 게 기억이 나는데요. 자영이 현주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부러워했기 때문에 현주의 죽음이 너무 충격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자영에게 다가가서 눈을 아름답게 떴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름다운 게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주도 자영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챙겨주는 그런 느낌도 있었고요. 혼자 달리면 힘들잖아요? 둘이 달리면 훨씬 수월하니까 잘 챙겨 주기도 했고. 세상에 나아가기 전에 한 템포 쉴 수 있게 여유를 주는 그런 느낌으로 현주가 자영에게 다가갔어요. 그런 마음에서 자영의 꿈에 나타난다고 생각을 했죠.

 

이화정: 정말 미스터리의 극점에 도달한 문제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이 여성의 욕망을 계속 이야기를 하셨는데 영화에 몸을 향한 클로즈업이 많은데요. 그 중에서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요. 자영이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있고 자영의 동생 화영도 흘긋흘긋 낯선 여자처럼 쳐다보잖아요? 그런 시선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시선들이 가지는 중요함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한가람초반에는 자영이가 누군가를 보는 게 더 많거든요. 자영이가 화영이를 보고, 현주도 보고, 민지도 보고, 계속 다른 사람들을 봐요. 그 시선이 나중에는 자영이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한 자영이를 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시선들이 있기에 우리가 무엇인가에 계속 매달리게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마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 친구의 시선도 신경 써야 하고요. 운동을 하고 몸이 좋아져서 모임에 나갔을 때 친구들이 알아봐주면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고 내 삶이 좋아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생각났던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이 세세하게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영화 정말 파격적이고 신선했어요.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신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영이의 존재가 눈에 많이 들어왔거든요. 자영이가 현주를 동경하는데 나중에는 화영이가 언니를 따라 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영이가 현주에게 가졌던 감정을 화영이가 언니에게 갖는 건지, 화영이의 심리를 어떤 마음으로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가람사실 화영이의 존재가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아까 기자님의 첫 질문에도 저는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는데요. 제가 목격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화영이에게 저의 생각을 많이 넣었어요. 변화하는 사람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면서 낯설다고 느꼈던 제 감정을요. 그런데 운동을 강박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도 저렇게 달려보고 몸이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단지 나의 몸이 따라주지 않고 의지가 없을 뿐이지 대단해보이고요. 자영이가 처음에 현주를 쫓아갔던 것처럼 화영이가 자영이를 보고 나도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요. 그런데 언니가 너무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하잖아요? 밤에 갑자기 나가서 자기를 놔두고 뛰어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나중에 자영이도 그 눈길을 느껴서 내가 이상해?’라고 질문을 하게 되는 게 중요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영이는 나도 오늘 밤에 뛰어보려고라고 대답을 해요. 이 영화에서 명쾌한 게 사실 하나도 없는데, 좋고 나쁨을 말할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 속 시선을 보면 자영이가 쫓아가는 것들은 모두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자신의 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섹스를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되어요. 그리고 자영이 사회적으로 현주가 원했던 어떤 것을 따라가고 싶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한가람: 우선은 앞선 욕망은 현주와 연결 지어서 설명 드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자영이가 현주를 보고 부러워 한 부분이 확실히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욕망의 상대가 결정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단순하게 설명을 드리면 자영이는 현주가 성적으로 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했고요. 생명력과 건강한 육체,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을 본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감정은 단순하게 우정이나 사랑으로 선 그을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더 이상해지는 게 많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이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현주가 꿈속에 나왔던 것도, 만약에 자영이가 죽은 현주가 그저 안타깝거나 그리운 마음이었으면 그렇게 현주가 옷을 벗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자영이가 현주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현주의 무엇이 좋았는지 당연히 연관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자신을 확인하는 길이 왜 남자와의 베드신이었냐고 하신다면, 자영이에게는 여태까지 자기와 같이 섹스를 했던 상대방이 남자였고 이 이야기가 자영이의 성정체성이 바뀌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관객: 예고편을 보고 고시 공부를 하던 제 얘기 같아서 봤는데요. 영화 중반까지도 달리기를 통해서 주인공이 성장하고 극복하는 영화여서 힘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간부터 갑자기 틀어지는 거예요. 주인공이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자꾸만 꼬여가는데, 달리기라는 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감독님께서 표현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또 자영이가 현주를 돌아보면서 달릴 때 무슨 생각해?’라고 말하는데 현주도 자영이를 보며 그런 질문을 한 게 아닐까 궁금해요. 첫 번째 질문에서 달리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두 번째 질문으로 답한 것이 아닐지 추측하면서 질문을 드립니다.

 

한가람우선 이 영화는 예고편과 포스터를 보시면 달리기 영화라고 생각을 하실 수 있지만, 사실은 달리기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는 달리기 영화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자영이의 고민과 욕망,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만약 이 영화를 자영이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제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자영이처럼 취업준비생 시절을 오래 겪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 때는 그게 인생의 전부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내 삶을 완전히 무너지게 하는 게 아닌데, 안 되면 내가 크게 실패한 것 같고 좌절감이 엄청났어요. 그런 엄청난 좌절감은 당장 오늘밤에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순간만은 해방되는 느낌이 들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이 깨어나요. 내가 노력해서 내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인 거지만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서 근본 없는, 나도 잘 알 수 없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제가 했던 고민들과 질문들이었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갑자기 우리가 운동에 매달리게 되는지, 우리에게 몸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말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고, 그게 타인의 시선과 관계되어 있다고 느껴져서 거기서 벗어나는 인물이 자영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자영이가 하는 선택들이 계속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이 자영이의 노력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보는 노력이요. 그래서 이 영화가 달리기의 한계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달리기는 달리기대로 긍정적인 면이 있고, 다만 삶은 단순히 이걸 하면 좋고 저걸 하면 나쁜 게 아니라고 이해하면서 이야기를 썼어요. 그래서 되게 애매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저는 민지 입장에서도 굉장히 공감하면서 썼거든요. 정규직이 되어서 적당한 직장에 다니는 게 괜찮은 건지 민지도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사는 것도 전혀 나쁜 게 아니니까요. 모든 인물들이 다 자신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고, 저는 그들의 고민이 각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뭐가 더 좋고 나쁜 지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화정자영이에게 현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시점에서 민지를 되게 부러워했을 것 같아요. 서른한 살에 대리 직함도 있고, 자상한 남편이 있고 서로 사이도 좋아 보이니까요. 영화에 다양한 모습의 여성이 나오고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자영이 고시를 포기한 게 아니고 하지 않는다고 선택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릴 때 무슨 생각하는지 현주와 자영이 물어보는 장면은 영화에서 정말 중요했는데요. 서로의 눈빛에서 주고받는 무언의 대사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배우 분들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최희서: ‘달릴 때 무슨 생각해?’라는 질문 자체를 던지기까지의 과정이 이 영화의 70% 정도인 것 같은데요. 그런 질문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자영이가 달려갔다는 뜻이고, 감독님께서도 이야기하셨지만 달리기란 양가적인 측면이 있어서 어느 정도 뛰다보면 어마어마한 고비가 오고, 죽을 것만 같은 상태를 넘어서면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갑자기 골반 아래가 가벼워지면서 뛰고 있는 건지 날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기분 좋은 지점이 오더라고요. 고비 끝에 희열을 느끼게 된 자영이가 달리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다다랐을 때, 그 질문이 사는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자영은 현주한테 확답을 바랐던 건 아닌 것 같고요. 나와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사람이니까 물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현주를 봤을 때 내가 보이고 현주도 자영이를 봤을 때 자신이 보이니까요. 비슷한 궤도 안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일어나서 뛰었던 삼십 대 초반의 여성들이 서로에게 달릴 때 무슨 생각해? 살면서 무슨 생각해? 사는 게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어요.

 

안지혜: 현주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달리기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집착에 가까운 정도로요. 힘든 상태를 빠져나가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데, 달리기를 통해서 그게 다 괜찮아진 것도 아니고요. 달리기를 하면서 오로지 그 순간의 나 자신, 내 호흡에 집중하는데 달리고 나면 공허함이 두 배로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달리기를 해도 나아지지 않는 내 자신의 나약함이 더 느껴졌던 거죠. 현주는 자영을 보면서 분명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래서 자영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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