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원  한줄 관람평


김윤정 울타리 뒤편, 동물들의 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송유진 | 멀리서, 그러나 가까이에서

김현준 차선의 방식으로 최악을 막아내는 사람들

송은지 지구 위의 모두와 함께 얼마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장소로서의 동물원이 되기 위해









 〈동물, 원  리뷰: 멀리서, 그러나 가까이에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왜 '동물'과 '원' 사이에 쉼표가 붙었을까. 영화를 보기 전에는 멋대로 원(遠)의 의미일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감독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긴 했지만, 기실 나는 동물원을 멀리서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철창 안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지도 않으면서 부정적인 감정만 가득 안고 뭉뚱그려 생각하지는 않았나. 


동물,원의 의미는 그 부제 'Garden, Zoological'에서 알 수 있듯 '동물학의 정원', 혹은 '동물들의 정원' 쯤 되겠다. 영화에는 동물을 위한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동물원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바람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왕민철 감독은 '사실 동물원이 없는 게 제일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호 수의사가 이야기한 노아의 방주처럼 동물원은 야생의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전까지 생명체들을 보존하는 공간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동물과 살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우후죽순 동물원이 생기던 1990년대 말, 청주동물원도 문을 열었다. 유행따라 지어진 탓에 환경은 열악할 수 밖에 없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동물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새 생명을 낳고 치료를 받기도 한다. 영화는 동물들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겨우 생명을 부지한 유황앵무와 사육사의 도움없이는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물범은 동물에게 지속 가능한 삶을 부여하는 동물원의 역할을 보여준다. 그러나 삵의 정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을 시도하는 장면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과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표범은 정형 행동을 한다. 호랑이 박람이가 죽은 이유는 좁은 우리 생활로 생긴 욕창 때문이었다. 


동물원의 사람들은 동물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한다. '모르겠어요. 동물이 그냥 좋아요.' 라는 사육사의 고백과 '동물들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수의사는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감성적이거나 이성적인 시선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영화는 미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 듯, 생각의 균형을 유지한다. 판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파악이 우선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주 섣부르다.





2017년, 청주동물원 사육사와 수의사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표범 방사장이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기 위해 존재할 수 밖에 동물원처럼,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까지 그들은 동물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 삶은 때때로 양가적이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건조함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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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빛 아래서  한줄 관람평


김윤정 풀타임 뮤지션을 향해 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

임종우 지금 독립영화가 줄 수 있는 음악적인 경험

현준 열정의 노예를 자처한 이들이 애써 미소 지은 채 쓴 비망록 

정성혜 '인디'로서 한국에서 살아남기





 〈불빛 아래서  리뷰: '인디'로서 한국에서 살아남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영화 불빛 아래서2012년 세 밴드 로큰롤 라디오’, ‘더 루스터스’, ‘웨이스티드 쟈니스가 밴드로서의 목표를 꿈꾸며 이제 막 도약하려 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이예환 감독은 뚜렷한 개성을 가진 세 밴드의 곁에서 그들의 무대와 무대 아래를 기록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마치 활활 타오르기 직전에 불씨가 조금씩 커지는 그 순간을 바라보는 듯하다. 각각의 밴드는 락스타를 꿈꾸며, 무대 위의 자신들을 보며 쓰러지는 소녀팬을 기대하며, 풀타임 뮤지션을 꿈꾸며 달리기 시작한다. 세 밴드가 각자의 방식으로 성취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은 두근거리기도 했다.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놀랐던 건 그들이 제각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말하자면 각자의 음악만으로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이뤄낸 성취는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러 오디션에서 소개되고,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서 해외 공연을 하고,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그들 나름대로 어떠한 단계를 거쳐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고 믿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인디씬에서 그래도 쟁쟁한 무대를 거쳐 온 팀이니 음악으로 먹고 살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그렇게 허황된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이들의 밴드 인생은, 그리고 영화도 마찬가지로 자꾸만 구간 반복을 하는 듯했다.





대형 기획사 산하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풀타임 뮤지션을 향한 희망을 품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같은 오디션에 끝없이 도전한다. 하지만 밴드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베이시스트 닐스는 결국 밴드를 떠난다. 세 팀 중 가장 관록의 실력을 보여줬으며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던 로큰롤 라디오가 한 영화제의 개막 방송에서 핸드싱크를 해야 했던 상황은 인디씬을 향한 사회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하이라이트 장면이었다. 방송 환경 탓에 실제 연주가 아닌 핸드싱크를 해야 했고 심지어 줄이 끊어졌는데 음악이 계속된 순간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더 루스터스는 세 팀 중 가장 패기가 넘쳤다. 페스티벌의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며 언젠가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 설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더 루스터스는 해체를 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6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세 팀이 현실과 맞닥뜨리고 지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할 때쯤, 영화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어느 가요제 무대에 오른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울어줘라는 곡을 연주한다. 각자의 현재와 노래의 가사는 절묘하게 맞물리는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절규하는 보컬 안지의 목소리는 밴드 그들의 목소리이기도 했고 그들을 바라보는 감독 또는 관객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인디라는 말과 가까운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인디밴드와 불빛 아래서와 같은 독립영화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지탱하는 소수의 사람들. 조금 더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래서 극심한 불안을 견뎌야 하는 모든 인디 예술가들불빛 아래서는 모극장(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과 함께 개봉, 배급의 과정을 진행했다. 개봉 전에 텀블벅 펀딩을 했고 개봉 이후에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다양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

영화 내부적으로는 현실과 타협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지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담고 있지만, 영화의 밖에서 마찬가지로 고군분투하며 독립영화의 자생에 힘쓰는 사람들도 영화의 결을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불빛 아래서의 불빛은 무대 위의 조명 또는 스크린의 영사되는 빛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많은 불빛들 아래에서 독립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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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물어 나가는 상상력이 이끄는 생경한 여행  〈려행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15일(목)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임흥순 감독

진행 정성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 나가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임흥순 감독이 〈려행〉과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선언하는 듯한 강렬한 첫 장면에 이어지는 처연하고도 신비로운 여정은 장면마다 끊이지 않는 생경함을 낳았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예술의 형식으로써 경계를 무너뜨리고 많은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을 비추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과 감상을 남겨주었다. 임흥순 감독이 참석하고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인디토크에서는 〈려행〉을 포함한 임흥순 감독의 여러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 안녕하세요, 〈려행〉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과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하게 된 정성일입니다. 임흥순 감독은 영화감독이자 미술 작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임흥순 감독을 처음 만난 건 〈비념〉(2012)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 기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관찰자적이어야 하며,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며, 그 대상 곁에 어떻게 동반해야 되는 지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 다큐멘터리는 대상과 어떤 거리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늘 따라붙었습니다. 〈비념〉부터 보신 분들이라면 그간 임흥순 감독의 영화에서, 그리고 오늘 〈려행〉에서 연출된 장면을 만났을 겁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재정해내는 작업을 보았습니다. 〈비념〉을 본 당시 이런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틀렸습니다. 2014년에 만든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은 하나의 정식화라고 할까요? 그것을 더 밀고 나간 작품입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들이 소재로써 노동문제를 만나게 되면 관성적인 접근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공단〉은 그 방법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다가가는 방법 자체를 문제화하기까지 했습니다. 2015년에는 〈북한산〉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1층에 내려가시면 라운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보고 올라오신 분들도 있으실 터이고 놓치셨다면 내일 한 번 더 이 장소를 방문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2016년에 오늘 만난 〈려행〉을 완성했습니다. 2018년도에는 〈환생〉, 그리고 〈형제봉 가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 부지런한 연출자는 2019년에 〈교환 일기〉라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늘 본 〈려행〉은 10명의 탈북 여성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이지만 많은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종종 연출된 것은 단지 재연이 아니라 환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꿈결 같기도 하며 마치 우리들이 어떤 컨셉츄얼 아트워크(Conceptual Artwork)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재연의 시퀀스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열 명의 탈북 여성들은 차례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고백의 장면들과 재연의 장면들이 콜라주처럼 서로 이어지면서 우리들에게 방법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매우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흥순 감독께서도 여러분들의 질문이 많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임흥순 감독을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토크에 임하게 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흥순): 특별한 날에 함께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리고요. 그간 영화적인 문법이나 구성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는데요. 오늘은 영화적인 관점에서 〈려행〉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 〈려행〉이라는 작품을 마주하기 전에 우리가 임흥순 감독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 감독에게 북한은 어떤 대상입니까?

 

임흥순: 북한이나 분단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많이 질문을 받았는데요. 2015년도부터 김근태 의원님의 추모전시가 매년 진행되었고, 4주기에는 제가 소무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기획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근태 의원님께서 추구했던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작업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도 일반적으로 북한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통일, 평화라는 것이 굉장히 거대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각엔 북한 자체보다는 분단이라는 원인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고, 그걸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풀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언젠가 작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게 시작점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산〉이라는 단편 영상을 만들었고요. 저도 북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삼대 세습이나 핵과 같은 흔하고 비슷한 것들이었는데요. 제가 많이 바뀌게 된 계기가, 2014년도에 〈환생〉이라는 작품을 베트남에서 촬영하기 위해서 갔던 적이 있어요. 베트남에서 북한 식당을 가서 북한 사람들을 처음 봤어요. 그때의 감정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어요.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2015년도에 제안이 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예술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시작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 갑자기 떠오르거나 찍겠다고 결심하면 바로 작업할 수 있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려행〉은 임흥순 감독께서 찍고 싶다고 해서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의 교감의 시간이 없었다면 카메라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연기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려행〉이라는 영화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시간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고, 아마 꽤 긴 교감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물의 말이나 정보만 아니라 표정과 제스쳐를 지켜보고, 특히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못했을 때의 느낌들이나 감정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북한산〉을 제작할 때 기획자분께 북한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사셨던, 탈북을 하신 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세 분을 만나게 됐는데, 그 세 분 중에 한 분인 첫 장면에서 한복을 입고 나오셨던 김복주 씨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다른 분들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비념〉이나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촬영, 편집까지 한 삼 년 정도 가까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려행〉은 2016년도 2월 정도에 제안이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어떤 식으로 촬영을 할 지 구상을 하다가 첫 인터뷰를 6월부터 하게 된 거거든요. 6월부터 10월까지 한 5개월 정도 작업을 했고요. 관계 맺기가 굉장히 중요한데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할까 걱정했는데요. 저 스스로도 굉장히 궁금해요. 이전 작업은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 작업에서는 제가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이분들이 캐치해주신 부분들도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면서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시기도 했어요. 관계에 있어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가면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는데, 제가 고민스러워 보이거나 우물쭈물할 때 상대방이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더 적극적으로 해주시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관계를 맺기에 넉넉한 시간은 사실 아니었습니다.

 

정성일: 꼭 의식하지 않고 보더라도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 여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여성 등장인물들만 선택해서 결정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여자들만 찍으려고 했습니까? 아니면 작업을 쭉 해오는 과정 속에서 여자들만이 어떤 교집합으로써 화두를 껴안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결정을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처음부터 여성분들만 촬영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업의 전 작품인 〈북한산〉을 작업할 때는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소개를 받은 탈북민 세 분을 만났는데 한 분은 남성이었고, 두 분은 여성이었습니다. 미팅을 하면서 마음이 가고 공감이 가고 이야기가 됐던 분이 김복주 씨였기 때문에 여성과 작업을 하게 됐고요. 김복주 씨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여성 분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우선은 북한이탈주민 중에 여성분들이 훨씬 더 많아서 그 이유가 궁금했고요. 그리고 북한에서 중국에서 넘어올 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여성 분들이 성매매나 인신매매 같은 굉장히 안 좋은 상황들에 많이 처하게 되거든요.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면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인터뷰를 해 주신 분들 중에 탈북 여성들의 처지가 중국에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검정 봉투와 비슷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려행〉을 보면서 두 번째로 든 인상은 등장인물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많은 영화감독들은 일단 맨 처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난 다음에 자신이 찍어야 할 대상을 계속 찾는 거죠. 어떤 사람을 찍을 지 결정이 되면 그 사람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택하기도 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킹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곤 하죠. 아마도 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 진행되는 걸 보셨을 겁니다. 〈려행〉은 두 가지 다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려행〉은 탈북이라는 것 말고는 이 사람들에게 교집합이 없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것도 아니고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넘어온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 넘어온 시기도 다 다른 사람들이고 탈북 여성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제외한다면 딱히 모일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려행〉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명백하게 시나리오를 쓴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장면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제시되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추론하면서 궁금해진 건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 속에서 열 명의 탈북 여성들로 진행을 하겠다고 결정하신 건지, 아니면 열 명 정도의 사람을 결정한 다음에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루즈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신기한 방법으로 찍은 〈려행〉이라는 영화의 작업 과정과 등장인물 사이, 극영화로 따지자면 캐스팅과 시나리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일단 이전의 〈비념〉이나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인터뷰이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위로공단〉 같은 경우는 66명을 인터뷰해서 22분 정도를 선정해서 작업을 했고요. 그런데 〈려행〉은 초반에 이야기 드렸듯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가 않았어요. 기한이나 예산 등에서 제한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점을 활용해서 한 공간에서 촬영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출연해주신 분들이 자주 모일 수 있는 분들이 아니셔서 최소한의 기간으로 작업을 하게 된 거거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려행〉 같은 경우는 딱 12분을 만났습니다. 그 중 두 분만 고사를 하셨고 나머지 열 분은 다 참여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서 한 사람을 뺀다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저희 작품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영화를 위해서 이 분들이 들어오기 보다는, 이 분들의 어떤 이야기나 삶을 위해서 저와 영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조금 더 많이 했어요. 누구를 빼기 보다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 들려 드리는게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열 분을 모두 등장시켰고요. 그리고 이 분들의 이야기를 다른 배우가 재연을 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이야기하듯이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재연했을 때 저에게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고, 그분들도 치유가 되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재연에 의미를 가지고 임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라는 건 사실은 없어요. 〈위로공단〉도 그렇고 〈려행〉도 저에게 시나리오라는 건 없었습니다. 물론 아주 헐렁한, 전체적인 구성안은 있죠. 그런 걸 써 놓더라도 그대로 진행이 되지만은 않아서 쓸모 없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초반에 만들어 놓은 것이 역할을 하고 기초가 되어 주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달라지기도 해서요.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이 분들의 말씀이나 표정들이 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이분들의 사건이나 꿈을 제가 먼저 한 번 재연해보고 이 분들께 이게 어떤 분위기를 가지게 될 지를 생각하면서 장면을 구성하고는 하죠. 그리고 두 분씩 등장하면서 참여하는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만 중간에 가수로 활동하시는 김복주 씨 같은 경우에는 배우도 하고 싶어하셔서 이 영화가 프로필 같은 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산을 올라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에서 본인이 했던 역할을 한 번 연기해보면 어떨지 제안을 하는 등 즉흥적인 부분이 많이 있는 편이었어요. 또는 우연적인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제사 장면 같은 경우도 김복주 씨와 김경주 씨 두 분이 자매이시거든요. 두 분이 남쪽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같이 등산을 하는데요. 정상에 가서 무얼 할 수 있을지를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답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산행을 하기 전에 두 자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산에 올라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여쭤봤는데, 아버지가 환갑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 제사를 지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스태프들을 시켜서 간단하게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소주나 안주를 가지고 와서 즉흥적으로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성일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종종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고는 합니다. 다 찍어 놓고 편집을 하는 감독도 있고 편집을 계속 해 나가면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임흥순 감독께서는 어느 쪽이신가요?

 

임흥순: 다 찍고 편집을 하는 쪽입니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은 추가 촬영을 하기도 하고요. 이 작품 같은 경우는 3년 전 작업한 작품인데 당시에 찍지 못했던 컷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개봉에 맞춰서 드론 촬영을 한 번 더 해서 추가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 찍은 후에 편집을 했습니다.

 

정성일: 대부분 다큐멘터리는 노골적으로 영화를 찍는 쪽과 대상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를 드러내는데요. 〈려행〉은 재연의 장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임흥순 감독이 작업을 하고 있는 탈북 여성과의 거리, 관계에 대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예를 들면나는 이 사람들에게 이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혹은 이 사람들에게 여기까지는 더 밀고 들어간다와 같이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떤 원칙 같은 게 있으셨을 텐데요.

 

임흥순: 작업할 때 원칙 같은 건 두지 않고요.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요청을 받았을 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원칙이기 보다는 내가 만약에 저 사람이라면이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그 사람의 상황이나 심정을 헤아려요. 그런데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다 보면 작업이라는 게 진전이 안 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럴 때는 다른 방법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이 부분은 너무 죄송한데 그래도 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어렵게 꺼내면 상대방이 캐치를 해 주시거든요. 예를 들어서 한영란 선생님이 밤마다 죽은 아기를 업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고민 끝에 꺼냈는데 괜찮으니 해보겠다고 하셨어요.

 

정성일: 임흥순 감독께서 12명을 만났는데 2명은 고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탈북 여성 열 명이라고 하셨지만 유심히 보신 분들은 인터뷰 영상은 아홉 명 밖에 없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갈 때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이향이라는 분이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아코디언을 연주하신 분이셨더라고요. 아마 이분이 어쩌면 인터뷰는 거절하고 아코디언 연주하는 대목에만 나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향이라는 분이 궁금해졌습니다.

 

임흥순: 〈북한산〉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아코디언 연주자로 나오시는 분입니다. 이향 선생님은 김복주 씨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개를 받은 분이에요. 김복주 씨가 북한산 원효봉에서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서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모시게 되면서 알게 된 거죠. 이향 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시고 꺼리신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인터뷰 요청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려행〉을 만들 때 작품의 목적을 말씀드리고 인터뷰이보다는 연주자로 참여하시는 걸로 요청을 드렸고요. 그 이후에 두 개의 채널로 작업한 〈형제봉 가는 길〉에서도 연주를 하셨고요. 최근에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님께서도 이향 선생님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인터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나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연주하는 모습과 표정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인터뷰의 내용을 이향 선생님께도 보내 드렸더니 〈려행〉 작업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제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어서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조금 더 관계가 진전이 된다면 이후의 작업에서는 인터뷰 요청을 드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께는 인터뷰를 요청 드리기가 쉬운데 어떤 분은 몇 년에 걸쳐도 어렵기도 하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인터뷰가 꼭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성일: 〈려행〉은 여러가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수였던 김복주 씨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 자막으로 나올 때 김복주 씨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김복주 씨가 산을 계속 올라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나의 리듬을 이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이런 표현이 오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가수였던 김복주 씨가 마치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김복주 씨를 중심으로 다들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김복주 씨가 이 영화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가 시작한 34분 후가 되어서야 이 분이 원래 가수였고, 성함은 김복주 씨라는 소개를 가장 마지막에 받게 되는데요. 그렇게 배치하고 구성한 이유와 김복주 씨를 쫓아서 산을 계속 올라가는 연출을 설명해주신다면 우리가 〈려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안내가 될 것 같은데요.

 

임흥순일단 김복주 씨를 가장 먼저 만났고, 직업적으로 예인이기도 하시고요. 북한에서의 일상적인 이야기, 넓게는 남북과 통일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가장 많이 하시는 분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여러 명을 인터뷰를 하면서 김복주 씨가 가장 편하기도 했고요. 또 한복을 입으시기도 했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있으셨고요. 그래서 영화에서 비주얼적인 부분을 김복주 씨 중심으로 진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김미경 씨라고 마지막에 일장전기 시절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생각하면서 남북 분단 문제는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분이 언어나 오디오적인 부분을 맡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른 분들께는 연기를 요청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복주 씨 같은 경우는 요청을 드리면 열정을 가지고 해 주셨어요. 사실 물 속에 들어가있는 오프닝 장면 같은 경우는 요청 드리기 힘든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김복주 씨는 해보겠다고 하셔서 전체 화면의 이미지를 끌고 가는 중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김복주 씨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누기는 했어요. 이전 작업을 할 때도 인터뷰와 만남을 많이 가졌고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분의 꿈 이야기나 북한에서의 일상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서 구성을 했습니다.

 

정성일: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실 겁니다. 영화가 가수 김복주씨를 내려다보면서 시작을 하죠. 그리고는 그 장면에서 달을 바라보는데, 그 달이 두 개가 되죠. 이후의 장면들을 다 제외하고 선입견 없이 본다면, 이 장면은 마치 SF영화의 시작 같기도 하고 공포영화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다 알고 준비하고 본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그렇게 보지 마세요.’라고 선언하듯이 전적으로 연출자의 연출로 이루어진 장면인데요. 첫 장면을 그렇게 시작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 일단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만든 장면이고요.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상 깊었던 점이 탈북 여성들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 처해있는 상황들과 문제들이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자연이라는 게 힐링과 여가, 시각적인 여유로움인 반면 이 분들에게는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북한에서 이탈하신 분들에게 자연이란 생존의 대상이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에 죽음의 대상이었거든요. 우리와는 굉장히 다른 지점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고, 물이 가진 여러 가지 중의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물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눈에 보이고 실질적이며 형식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작업들을 중심으로 했는데요. 십 년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영역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비념〉으로 넘어오면서 무의식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을 고민을 많이 했을 때에 꿈을 꾸었어요. 잠을 자고 있는데 천장에서 점 하나가 쭉 떨어지더라고요. 사람 얼굴의 모양이었는데 딱 보니까 제 얼굴이더라고요. 그게 공포이면 공포일 수도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경험이었고요. 그런 연출이 제가 바라보는 북한은 어떤 모습, 또 다른 나와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정성일: 〈려행〉에서 제일 자주 마주치게 되는 장소는 숲의 모습입니다. 물론 북한산에서 대부분 촬영되었고, 북한산에서 북한이라는 방점이 일종의 철자 놀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계속 마주치는 숲은 종종 불가사의해지고,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거운 촬영 장비뿐만 아니라 조명을 설치했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장면으로 신비롭게 보이도록 촬영했습니다. 비평가로서 설명을 요구 받으면 여전히 이들은 남한에 넘어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꿈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혹은 잠재의식 속에서 탈북 중인 상태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려행〉에서 탈북 여성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삶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하죠. 아마도 그건 숲 속을 계속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라고도 읽을 수 있겠죠. 그리고 여전히 숲에서 헤매는 듯한 삶을 영화의 장면이 하나의 알레고리처럼, 또는 상징처럼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의 임흥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가시적인 이 사람들의 마음의 풍경을 영화라는 매체를 동원해서 시각화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 설명하고 나서도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임흥순 감독이 숲의 이미지에 담고 싶었던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자연에 시선이 처음 갔던 건 〈비념〉을 만들 당시에 제주도의 숲과 나무의 풍경을 보았을 때입니다. 4·3항쟁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와 인터뷰, 자료를 보면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저 자신이 헤매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숲과 나무를 많이 찾아 다니던 중에 어느 날은 다른 분들과 같이 다니다가 저 혼자서 간 적이 있는데 공포를 많이 느꼈거든요. ‘숲이라는 게 낮에도 혼자 있으면 무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산 같은 경우에는 삼성산이라는 곳이거든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밖에 없는 제한적인 상황을 활용을 하려고 했고, 산이 가지고 있는 느낌들을 많이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아프거나 무언가 버려야 될 때 저항을 하거나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곳인 상징적인 공간으로써 산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산 자체가 하나의 세트장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과 북을 연결해주는 지점이기도 하고 시각적으로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영원한 매개물이나 타임머신 같은 역할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일: 임흥순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고 흥미진진하다고 느끼는 건,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떤 테마나 주제, 소주제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는데, 임흥순 감독의 영화는 가끔 한 눈 팔 때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영화에서 산을 막 올라가는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을 쫓아 가다 말고 갑자기 바위 위에 있는 문양을 뜬금없이 바라보다가 산신령까지 등장하기도 하고요. 영화의 관심일 뿐 탈북 여성들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임흥순 감독 영화의 미학 중에 하나가 한 눈 팔기라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점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임흥순집중력이 강한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딴 생각을 많이 하고요. (웃음) 사회에서 요구되는 집중력이 많이 없는 편이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 만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앞을 향해서 갈 때 뒤나 옆을 보면서 쓸모 없다고도 느낄 수 있는 작은 곤충들에 집중하기도 하고요. 삶과 역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파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미학적인 성취나 예술이 갖는 사회적인 역할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대중적이거나 공공적인 부분도 찾으려고 합니다.

 




관객: 영화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려행〉이 올해 한국 영화의 발견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목에 대한 의미를 한 번 여쭤보고 싶었고요. 이중적인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해서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극적인 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 중반과 후반부에 촬영을 하고 계신 스태프 분들이 나오는 컷들이 있어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는 벗어난 컷들인 것 같은데 등장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임흥순작품을 만들 때 북한 여행이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냥 북한 여행이라고 하면 재미도 없고 책 제목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어떤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려행이라는 제목을 만들었고요. 그리고 탈북 여성이라고 하면 북한에서 탈출한 여성이라는 의미로 흔히 알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보셨듯이 북한을 탈출한 경우이기 보다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잠깐 갔다가 돌아올 생각을 하셨던 분들이 대부분예요. 이분들은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 되었고, 이런 여정 자체가 여행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여행을 다양한 의미를 가진 탈북의 다른 이름으로 봐주셔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분들이 한국에 오신 다음 정착해서 새로운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데,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을지 생각해보게 됐는데요. 제가 그분들이었다면 저는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적인 보복이 불안해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지, 태어나서 자라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돌아가고 싶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분들에게는 현재의 삶 자체도 끊이지 않는 여정이 될 것 같고, 크게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남북의 끊이지 않는 여정으로 확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태프 분들이 나온 장면은 중반에서는 사실 촬영본이 안 좋아서요. 세 카메라로 촬영을 했는데도 촬영한 컷을 모두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활용을 할까 하다가 후반부에 스태프가 나오는 장면을 미리 조금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일: 첨언해서 질문 드리면 스태프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2번 나오는데 두 장면의 의도가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요. 한 번은 한밤중에 세트장에서 스태프들이 모두 등장한 컷이 있었고, 다른 한 번은 남천교에서 카메라가 귀신을 보여주다가 이동하면서 스태프들을 모두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하나는 처음부터 대놓고 보여주자고 작정한 장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맨 처음에는 영화의 한 장면인 줄 알았더니 스태프로 이동하는 장면인데요. 두 장면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분리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흥순첫 번째 야간에 촬영한 컷은 쓸 만한 컷이 없어서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스태프를 노출시켰고요. 뒤에 스태프들이 나오는 컷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한 번 보여드렸던 거예요. 두 번째로 스태프들이 나오는 컷에서는 관람하시는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 자체가 저와 여러분들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시나리오처럼 계획된 삶이 있고, 계획처럼 되지 않은 부분도 굉장히 많잖아요? 계획처럼 되지 않거나 실패한 삶, 숨기고 싶은 삶. 이런 부분이 다큐적인 부분과 극적인 부분으로 비교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삶의 어떤 형태가 영화 안에서도 형식적으로 활용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한국에서만 찍을 수 있는 로드 무비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감독님께 질문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아까 정성일 평론가님께서 영화에서 여자 등장인물 위주로 등장한다고 하셨고, 〈위로공단〉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나오고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도 할머니들이 나오는데요. 작품에서 여성 분들을 많이 다루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노란 풍선이 영화에 작정한 듯 나오는 것 같은데요. 남한 사람이 갖는 의미와 북한 사람이 갖는 의미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노란 풍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흥순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임대아파트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참여해주신 분들이 대부분 30대나 40대의 여성 주부들이었고요. 그분들과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결혼한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많이 듣게 되었는데 공감이 많이 됐어요. 기존에 남성들을 인터뷰할 때와는 다르게 사적이고 내밀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잘 해 주셨던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돌보며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지혜로움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남성들 같은 경우는 조금은 수직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여성들은 수평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자 하는 부분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수평적인 것이었고, 그런 방식을 선택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의 생각과 시선들을 미술의 형식으로, 혹은 영화적인 방식으로 끌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과 처해 있는 상황에 관심이 가게 되었습니다. 〈위로공단〉을 작업하면서도 저희 어머님이나 형수님, 여동생의 삶의 궤적들을 쭉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삶과 상황들을 조금 더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노란 풍선은 이 작업에 있어서 제사 장면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인 것 같아요. 그때가 휴일이었는데 산에 오르기 전에 입구 쪽에서 어르신 분들이 노래자랑 같은 걸 준비하시면서 풍선을 불고 계셨어요. 노란 풍선 하나가 우연히 저희 쪽으로 흘러왔거든요. 노란 풍선은 저에게 있어서는 세월호를 다루고 이야기하지 못한 미안함 같은 것으로 다가왔어요. 세월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두 분께 노란 풍선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자연스럽게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했어요. 거기서는 그냥 풍선이라고 말씀드리고 노랗다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분께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나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이건 한국사회에 살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맥락상 세월호 이야기를 갑자기 등장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미지로 배치를 했고요. 판문점 세트장에서 찍을 때는 탈북여성자립회 인터뷰를 해 주신 분께 노란색 의상을 요청해서 노란색이 주는 기억과 상처, 회복, 아시아의 근대성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말이나 이야기 구조보다는 이미지나 특히 색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풍경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는데, 그 중에 노란색에는 그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관객: 인터뷰하신 분들 보면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이탈주민’으로 설명이 나오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탈출'하신 게 아니라 잠깐 나오셨다는 의미로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정부나 시기에 따라 명칭이 바뀌기는 하거든요. 이전에는탈북자’, ‘탈북민’,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지금은 통일부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이탈주민으로 표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탈북보다는 이 의미가 조금 더 맞는 것 같아서 사용했습니다.

 


정성일임흥순 감독의 한반도의 슬픈 역사에 관한 여행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귀한 대답해주신 임흥순 감독님께도 감사합니다. 11월달에 나오게 될 새 영화를 위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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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새  한줄 관람평


승문보 삶과 감정의 무게를 응축한 날갯짓

임종우 잘 지내시나요, 당신들의 오늘이 궁금합니다

송은지 각자의 은희를 살았던,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김혜림 소음 속에서 성장하기

현준 불확실한 세상의 중심에서 나 홀로 날갯짓 하기 바빴던 그 시절 은희들에게 전하는 위로

김정은 여전히 부단한 날갯짓으로 신비롭고 생경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은희에게






 〈벌새  리뷰: 소음 속에서 성장하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벌새'를 영어로 부르면 'hummingbird', 그대로 직역하면 ‘콧노래 부르는’, 혹은 ‘윙윙거리는’ 새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은희를 벌새라고 볼 수 있을까? 은희는 가끔씩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지만 왜인지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것은 은희의 소리높은 침묵이다. 은희는 영화의 대부분 힘이 없고 말할 수 없다. 그에게는 듣는다는 행위가 지나치게 많이 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이 영화에 ‘보편성’이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벌새〉는 은희를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과 말들을 감추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그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운드는 의도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은희는 침묵을 지킨다. 그때마다 은희는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얼굴을 보이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눈을 피하거나 커튼을 쳐버린다. 매일 반복되는 저녁식사 자리는 식기들의 소음과 가족들의 기대와 실망, 오고가는 불편한 감정과 말들이 뒤섞여있고 학교는 지나치게 잘 들리는 친구들의 귓속말과 의미 없는 구호들로 시끄럽다. 그런 상황에서 은희에게 안심이 되는 상황과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때, 그리고 그때를 함께하는 그 사람이다.

 




은희를 스쳐지나가는 ‘들어주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 영화는 놀랍도록 조용해진다. 마치 진공상태에 있는 듯이 영화는 은희와 상대방 두 명만을 남겨둔다. 그것은 영화에서 영지를 만날 때 가장 극대화되지만, 남자친구 지완이라든지 후배인 유리를 만날 때도 그러하다. 영화는 이때 상대방과 은희의 소리만을 남겨두고 다른 소리를 모두 의도적으로 배제시킨다. 이 상황에서 은희는 편안하게 말을 시작한다.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묻고, 무언가를 하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소음 이외의 것들, 은희의 작은 눈동자 움직임이라든지 머리카락의 흩날림 등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영지가 자신이 무력해졌다고 느꼈을 때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섬세함의 세계는 영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강조된다. 영지는 향을 피우고 차를 따르며 은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때에서야 은희는 소음이 아닌 다른 소리를 듣는다. ‘얼굴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혹은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진공 상태의 그 세계를 진동시킨다. 이 진동은 영지가 소리 없이 학원을 그만둬버린 시점에서 잠시 멈춘다. 그 진동이 멎었을 때, 은희에게는 이명이 찾아오지만 혹처럼 답답하게 자신을 누르고 있었던 입을 온전하게 열어버린다. 이상하도록 담담하고 눈물 흘리지 않던 은희가 무참하게 부서진 세계를 보고 작은 눈물을 흘린다. 영지는 은희에게 말한다. “누구라도 너를 때리면 어떻게든 끝까지 맞서 싸우라”고. 자신의 진동을 멈춘 것들에게 은희는 자신의 방식으로 맞서 싸운다.

 




영화의 첫 장면, 아무도 없는 집을 자신의 집으로 착각한 은희는 엄마를 소리높여 찾는다. “엄마, 나 왔다고”를 반복하여 외친다. 은희는 자신이 두드리던 집이 902호인 것을 확인하고는 1002호로 올라가 집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줌아웃된다. 902호의 명패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빛이 심하게 바래있다. 사실 902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은희는 아무도 없는 그 집에서 애타게 엄마를 찾았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 은희는 수학여행을 가는 같은 학교 학생들을 응시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응시하는 것. 아무것도 들리지 않음에서 너무 많은 것이 들리는 세상으로의 변화. 은희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소음의 세상으로 나왔다. 다만 자신의 소리를 듣고, 홀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고, 혹을 벗어던지고 나왔다.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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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꾸꾸 2019.09.14 17: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어른이 꼭 되어야만 할까요?  〈어른도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인선 감독

진행 이옥섭 감독 (메기〉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 개봉한지 년이 지나 인디스페이스에서 돌잔치를 열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떠나 결코 완벽할 없는 명의 인간들이 조우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어른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까요. 사실 어른이 된다는 ,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을 조금씩 버려가는 것이 아닐까요? 어른도감 연출한 김인선 감독과 개봉을 앞둔 메기 연출한 이옥섭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김인선 감독(이하 김인선): 어른도감 연출한 김인선입니다.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개봉한 년이 지났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김인선: 작년 8 23일에 개봉해서 이렇게 돌잔치를 하게 되어 기쁘고요. 벌써 년이나 됐다는 기분이 너무 이상해요.

 

이옥섭: 처음 보신 분도 계시고, 재관람하신 분들도 계실 같아요. 저는 어른도감 정도 같은데요, 전에 봤을 때와 지금 봤을 느낀 점이 많이 달라졌어요. 일단 경언이가 저에게 다르게 느껴졌어요. 전에는내가 경언이보다는 어른이고 재민이에 가까우니까, 나는 어떤 어른일’ 이런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그때 제가 어른이 아니었나봐요. 지금은 경언이한테 감정이입이 돼서 곁에 있었던 어른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곁에 분이 계셨는데 나이가 너무 들어서 노쇠한 할머니, 아프셔서 돌아가신 존경하던 선생님, 그리고 좋아했지만 연락을 하게 고모예요. 분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네요.

 

김인선: 처음 만들었을 많이 받았던 질문이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냐는 것이었어요. 대답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때마다 이재인 배우님께 대신 이야기 해달라고 했는데, 재인 배우님이 너무 현명하게책임감 있게 사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말씀해주셨어요. 저도 이옥섭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서 주변에 있었던 좋은 어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어른이 이상 세상에 계신 경우도 있고 멀어진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희망을 갖게 되는 아닌가 싶어요.

 



 

관객: 영화 봤습니다. 캐스팅이 정말 절묘했다고 생각하는데, 특별한 비화가 있나요?

 

김인선:  영화를 2016년에 촬영했어요. 3년이 지나 가물가물한데요. 이재인 배우는 지금은 워낙에 알려진 배우가 되어서 뿌듯한데, 그때는 귀여운 초등학생이었어요. 재인 배우를 보고 경언 역을 먼저 결정하게 되었고, 다음에 재인 배우와 연기 합을 맞출 삼촌 역할을 고민을 했어요. 엄태구 배우님이 가지고 있는 거친 느낌이 어떻게 보면 영화와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의외성이 있어서 오히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캐스팅을 했습니다. 당시에 엄태구 배우님은 밀정(2016)이라는 영화에서 하시모토 역할을 맡은 후 새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어요. 악역이나 강한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이라는 점에서 재민 역할을 선택해주신 같아요. 그렇게 좋은 배우들과 있었다는 것이 돌이켜봐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옥섭:  영화 촬영이 사바하(2019) 촬영 전이었죠?

 

김인선: . 그런데 영화 포스터 촬영 때는 이재인 배우가 사바하〉 촬영을 위해 삭발을 상태였어요. 마침 엄태구 배우도 배역 때문에 삭발을 상태여서 포스터 촬영을 가발을 쓰고 했어요.(웃음)

 


관객: 재민 캐릭터를 보면 분명 나쁜 짓을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어요. 제비’ 짓을 하는지 궁금했어요.

 

김인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생긴 대로 살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재민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사람들에게 환심을 얻어내고 어떤 사람이 힘들어할 본능적으로 느끼고 위로해주는 거예요.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을 되는 대로 활용하면서 그때그때 살다 보니 좋은 방향으로 그런 재능을 쓰게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게 되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고 본인은 외로워질 수밖에 없고요. 자기가 갖고 있는 기질을 다른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그게 되더라고요. 현재 저의 모습도 그렇고. 저의 단점을 너무 아는데도, 똑같은 단점을 일기장에 적고 있는 저를 발견하거든요. 사람이 정말 변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재민의 캐릭터도 그렇게 만들게 되었어요.

 

이옥섭: 재민을 너무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는 아닐까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김인선: 영화를 만들 때는, 재민이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이 미워하고 보기 힘들어하면 영화가 성립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물을 귀엽게 봐주려고 스스로 애를 썼던 같아요. 실제로 배우가 갖고 있는 이상한 진정성 같은 있어서, 많은 분들이 재민이라는 캐릭터를 안쓰럽게 봐주신 같은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경언이에게 가혹한 이야기였던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재민에게 합당한 처벌을 줌으로써 정말 제대로 성장할 있는 기회를 줬어야 하는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옥섭: 엔딩도 원래는 점희까지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 것을 생각하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금 결말을 찍게 되셨나요?

 

김인선: 처음에 시나리오를 쓰면 엔딩까지 구상을 해놓고 써야 하는데, 같은 경우 처음에 엔딩을 정하지 않고 써서 여러 바뀌게 되었어요. 최종 버전 직전의 엔딩이 점희, 재민, 경언 셋이 한 번에 만나게 되는 엔딩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내려고 너무 봉합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엔딩도 다른 느낌이었겠다, 단순히 봉합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확실히 엔딩을 정해놓고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관객: 마지막 부분에서 재민과 경언이 갈등을 빚는데, 재민이 경언이가 점희한테 말을 했다고 착각을 해서 갈등이 시작된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둘의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언의 입장에서는 집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삼촌이 와서 화를 낸 게 되니까요. 갈등이 해소되는 장면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인선: 지금 질문은 처음 받는 질문이에요. 제가 생각을 해봤던 부분이어서 신선해요.

 

이옥섭: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어른의 삶이란 오해를 견디는 것이다라는 말이 저에게는 되게 박혔었거든요. 오해가 언젠가는 풀릴 수도 있고 풀릴 수도 있고. 세상이 그래서 영화에서도 저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김인선 전부터 저에게 그런 마음이 있었던 같아요. 팔순 잔치가 끝난 경언이가 마음이 굉장히 흔들리고 약해져 있고, 그걸 재민이 알게 돼서 같이 보러 가고 했을 때 사실 재민은 직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가 하고 있는 행각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했을 테고, 사실 재민은 이게 거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민의 전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사람은 나쁜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나쁜 짓을 끝까지는 못하는 사람이어서 매번 실패하고 계속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설픈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오해를 풀려는 생각을 아예 못했던 이유는, 재민도 이게 경언 때문만은 아니고 결국 이렇게 거라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소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아닐까 싶어요.

 

이옥섭: 제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강아지는 항상 제가 근처에 있어야 베란다 밖을 보고 있어요. 어느 날 강아지가 베란다에서 밖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바람에 안방 문이 닫히면서 베란다 문이 닫힌 거예요. 순간 강아지가 문을 닫냐는 듯이, 화가 난 듯이 저에게 와서 액션을 취했는데, 제가 그런 아니잖아요바람이 그런 건데. 강아지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건 평생 없는 오해인 거잖아요. 마치 이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와 없는 오해가 생겨도, 어떤 것은 평생 설명할 수가 없구나. 이런 것들이 저한테는 위안이 돼요.

 

 

관객: 작품이 나온 지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작품을 돌아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 부분, 바꾸고 싶은 아쉬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영화가 개봉을 하고, 상영이 종료가 되고 나서 영화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모든 것을 어른도감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아쉬운 , 좋은 , 이런 것들이 너무 뒤섞여 있어서. 거기서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잔치를 한다고 해서 기분이 되게 이상했거든요. 아까 옥섭 감독님이 저한테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 만약 지금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다시 쓰거나 한다면 경언이와 재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경언이와 재민, 그리고 점희 사람의 이야기로 끌고 갔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영화를 만들 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사람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던 당시 저의 마음이었으니까요. 제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생각조차 없었겠죠. 어른도감 특정 장면이 좋다기보다는 저한테는 하나하나 너무 많은 스토리들이 있어서 좋고 아쉬워요. 특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가 저한테 있어서 영화를 계속 있는 이정표가 되어준 같아서 소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옥섭: 경언이가 참을 인(忍)을 손에 써서 계속 삼키잖아요. 저는 장면이 되게 좋은데 장면을 쓰게 감독님의 배경이 있나요?

 

김인선: 제가 어릴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어서 시험기간이나 신경이 쓰이는 새학기 때에는 항상 배가 아파서 학교를 같다고 배를 부여잡고 있었거든요. 그러면 엄마가 손바닥에 참을 인 번을 쓰면 견딜 있다고 하면서 학교를 절대 결석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되게 재미있게 느꼈던 이재인 배우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영화 후반에 삼촌도 자기 손바닥에 참을 인을 써서 먹잖아요. 근데 그게 경언이한테 배워서 아니라 경언의 아버지한테 어릴 배운 경험일 수도 있을 같다고요. 그래서 경언이가 참을 인을 쓰는 보고 싫었을 수도 있었을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런 생각을 못해봐서 정말 깜짝 놀랐죠.

 

이옥섭: 영화 경언이는 1잖아요. 지금은 고등학생인 건가요?

 

김인선: 경언이는 지금 1 됐겠네요.

 

이옥섭: 어떻게 지내고 있을 까요. 경언이는.

 

김인선: 경언이는 살고 있을 같아요.

 

이옥섭소설가들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소설 이후의 시간까지 생각하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영화 속에 있는 인물로 남아있는데.


김인선: 되게 재미있는 같아요, 질문이. 저는 경언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사실 모르겠지만 불안하게 안정적인 상태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항상 있었던 같아요.

 

 



관객:  장면부터 어린 소녀가 상을 당하고, 낯선 남자가 삼촌이라고 하니, 가족도 없는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너무 조마조마하게 보게 됐어요. 아직 약하고 어린 소녀들은 영화나 현실에서 폭력의 대상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영화가 전개되자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역설적이게도 소녀가 정말 어른처럼, 혹은 어른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차일드후드, 보이후드, 어덜트후드도 있는데 걸후드라는 말은 없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립영화에서 연기 잘하고 베테랑 급인 배우들이 조그만 역할로 툭툭 나와서 그것도 너무 놀랐어요. 김새벽 배우가 연기했던 후견인 검토하는 사람처, 어른으로서 그런 기능인들만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나오는데, 약사도 기능인으로서는 어른 같지만 감정이나 생활 면에서는 추스리지 못하는 아이 같은 모습이잖아요. 사이에서 소녀가 나름 자기 중심을 잡아가려고 하는 재미있었어요. 스마트폰으로 굉장히 스마트하게 아저씨를 추적해내는 장면들도 재미있었고요. 처음에는 정말 삼촌일까 의심을 품고 조마조마하며 봤거든요. 예상했던 것들을 영화는 벗어나서 너무 좋았습니다.

 

김인선너무 감사합니다. 소감을 이렇게 말씀해주신 지금 저한테 힘이 많이 되네요. 지금 말씀하신 중에 굉장히 인상적인 , 우리가 직업인으로서 살아갈 때는 시스템이 있고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일종의 역할놀이를 하는데, 가정에 왔을 , 혹은 사적인 영역에서는 그런 시스템이라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어떤 것들도 되게 많고요.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적인 모습을 그렇게 해석해서 얘기해주셔서 지금 되게 신선하고 감사합니다.

 

이옥섭그리고 어른도감 전에 감독님이 찍으셨던 단편 〈수요기도회(2016) 배우 분들이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시거든요. 아빠의 (2014) 그렇고요. 오늘 영화를 재밌게 보셨으면 전작들도 한번 보시면 좋겠어요. 저는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인물들이 나왔을 어찌할 바를 모르거든요. 그런데 김인선 감독님은 수요기도회 어른도감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씬을 너무 찍으세요. 감독님은 어떻게 그런 씬들을 찍어내시는지 궁금해요.

 

김인선: 오히려 영화를 찍을 때는 경언이 혼자만 있는 모습을 찍을 어렵다고 느낀 같아요. 저는 인물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요. 평소에 누구와 깊게 관계 맺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은 같아요. 화면 안에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줘야 그것을 굉장히 집중해서 응시해야 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되게 어렵게 느껴지고,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의 쇼처럼 느껴져서 인물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 자체로 화면 안이 채워지는 재밌더라고요. 좋은 배우 분들은 본인이 해야될 것들을 찾아서 하시는데, 운이 좋게도 너무 좋은 배우 분들이랑 있었고 분들이 화면을 채워서 재미있게 만들어진  같아요. 활력 있게 찍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즐겁다고 느껴서 많은 분들이 나올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이옥섭: 경언이 혼자 있을 찍을 때가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그걸 헤쳐나가는 감독님의 선택이나 방법은 뭐였어요?

 

김인선: 찍을 되게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후에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근에 인물을 다루는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프레임에 어떤 인물이 있을 굉장히 집중하게 되고 인물들이 아주 위엄있게 느껴지는 경험들을 했어요. 어떻게 찍어야할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저도 그렇게 인물을 찍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같아요. 감독님은 어떻게 찍으시나요?


이옥섭: 찍으면 찍을수록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까 즐겼다고 하셔서 너무 부럽다고 느꼈어요. 저는 무서워하는데. 저는 언제 즐길 있을까 이런 생각만 뿐이에요. 그런데 영화는 절대 찍는다고 쉬워지지가 않고 나아지지가 않아서 그게 매력이면서도 무서운 같아요.

 



 

관객: 재민이 경언에게엄마보러 갈래?”라는 말을 번이나 하는데 그게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고, 마지막에 엄마에게 인도해주는 것이 재민이가 생각한 최선의 책임이었는지, 그것 또한 무책임인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재민은 경언이가 아이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애를 책임질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주소도 알아보고 엄마에게 보낼 계획 했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엄마에게 데려다주는 재민에게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그래서 그때 재민이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찍을 때 저희가 견인하면서 찍거나 수가 없어서 배우가 직접 운전을 하면서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엄태구 배우가 뒤를 쳐다보는데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시는 거예요. 앞이 내리막 코너였거든요. 그때 저랑 카메라 감독님이랑 셋이 타고 있었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앞에 봐요!”라고 소리질렀는데도 배우님이 너무 몰입하셔서 계속 뒤를 보시면서 갔어요. 그때 정말 진심으로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재민의 진심이었겠다, 배우가 연기한 그 마음이 재민의 마음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무책임한 사람을 끝까지 감싸주는 거냐는 분도 계셨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은 재민이 조금은 나은 사람이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이옥섭:  배우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을 같아요. 소리는 쳤지만.(웃음)

 

김인선: 매순간 너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하시는데, 아주 진심으로 연기를 하셔서 미안한 적도 많았고, 새로운 지점들도 많았어요. 시나리오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만이 생각할 있는 지점들이 많아서 저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관객: 감독님께서 여자 캐릭터에게 너무 가혹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소설이든 영화든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잖아요. 가상의 인물을 대하는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캐릭터를 다룰 캐릭터를 보는 감상자한테 감정을 전달하려면 굉장히 가혹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야 수도 있잖아요.

 

김인선영화를 준비할 제가 경언이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제로 중학교 3학년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취재의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만났던 친구들은 모두 밝고 장래희망이 분명하더라고요. 장래희망을 분명하게 생각할 있다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버스에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황당하지만, 렇게 행복한 아이들이 많은데, 경언이한테 이렇게 가혹한 상황을 주려고 하는 건지  스스로 질문에 대해 답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들면서 캐릭터에게 연민의 마음이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저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경언이가 이런 가혹한 상황에 처해야 할까. 하지만 사실 경언이보다 가혹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도 많이 있고, 아까 관객 분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영화 초반에 조마조마하게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범죄가 너무 많기 때문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만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방향을 정했던 같아요. 계속해서 경언이가 힘들어지거나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요. 제가 그려내고자 했던 인물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려는 아이였어요. 그런 캐릭터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조금 가혹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은, 그래도 아이한테 뭔가 조금 해소할 있는, 혹은 직접적인 희망을 영화 안에서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같더라고요. 제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지금도 너무 어렵거든요. 인물을 너무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도 사실 좋지 않고요. 한편으로는 시나리오를 너무 착하게 썼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인물의 파워를 만들어줘야 하고.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게 되는 같아요. 어디까지 다뤄야 할 지, 어디까지 배경을 만들어줘야 할 지, 이런 것들은 정말 어려운 지점인 같고, 저도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고민해야 같아요.

 




이옥섭영화를 만들면서 캐릭터를 만들 저도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그린 인물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영화를 보고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지만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어렵고,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아픔을 수도 있겠다 생각 때문에 위축될 때도 있고. 그런 같아요.

 

김인선 영화를 보게 분들이 어떤 분들일까, 이렇게 특정한 그룹을 상정하고 만들지 않잖아요.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게 수도 있고, 같은 것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요.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기준을 맞춰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항상 흔들려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만큼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옥섭: 오늘 뭔가 되게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오늘의 대화는… 이상해요. 그쵸?(웃음)


김인선: 돌잔치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웃음) 사실 두려운 마음도 있었거든요. 영화를 마주하는 두렵기도 하고. 요즘에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뭔가 위안 같은 것을 얻게 되는 같아요. 함께 해주신 관객 분들과 진행해주신 옥섭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이 너무 크네요.

 

이옥섭: 영화가 좋아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만든 후에는 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지잖아요. 영화가 너무 미울 때도 있고, 누군가는 봤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좋은 얘기를 해주시면 사르르 감정이 풀리기도 하고. 되게 롤러코스터 같은데요. 관객분들은 오늘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낀 바처럼 좋은 기분을 가지고 집에 가셨으면 좋겠어요. 또 영화 후기를 써주시면 어떻게든 찾아서 보니까, 집에 가시면서 후기 작성해주시면 영화를 만드는 정말 힘이 같아요. 남겨주시면 찾아보겠습니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이죠. 저는 오늘 좋은 시간이었는데, 다들 좋은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김인선: 그리고 이옥섭 감독의 장편인 메기 9 26일에 개봉한답니다. 지금 너무 좋은 독립영화들이 많아서 충만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요. 극장에서 메기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옥섭: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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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접촉하며 시작되는 몽환적인 영적 여행, 그리고 그 끝 위로‘  

 〈밤의 문이 열린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8월 15일(목)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유은정 감독|배우 한해인, 전소니, 이주영

진행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에는 두 가지 리얼리티가 공존한다. 하나는 삶, 또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산 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 영역만이 진정한 리얼리티이겠지만, 망자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자의 입장에서 죽음의 영역은 또 다른 리얼리티다. 극 중 혜정(한해인)은 유령이 되어 두 가지 리얼리티를 오고 간다. 그녀의 움직임 덕분에 삶과 죽음의 영역이 서로 부딪히면서 몽환적인 여행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처음에 혜정은 갑자기 유령이 된 사실 때문에 좌절감을 느꼈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동안 외면했던 본인의 감정, 타인의 감정 그리고 관계를 점차 마주하게 됐으며, 그로 인해 묵은 체증이 찬찬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가벼워진 마음이야말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한 위로이지 아닐까 싶다. 815일 오후 2시 상영 후 진행된 인디토크에서는 몽환적인 여행과 위로의 관계를 더욱 더 다양한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현민):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김현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감독님과 배우님께서 의상을 다 맞춰서 입고 오신 거 같아요. 전소니 배우님부터 관객 분들에게 인사 먼저 부탁드릴게요.

 

전소니 배우 (이하 전소니): 안녕하세요, 전소니입니다.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효연을 연기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안 좋은데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유은정 감독 (이하 유은정): 안녕하세요. 밤의 문이 열린다를 연출한 유은정입니다. 오늘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해인 배우 (이하 한해인): 안녕하세요.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혜정 역을 맡은 한해인입니다. 오늘 영화 상영 후에 이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주영 배우 (이하 이주영): 안녕하세요. 저는 밤의 문이 열린다를 열렬히 사랑하는 배우 이주영입니다. 오늘이 개봉일인데, 개봉 첫 날에 많이 보러 와주셔서 제가 감사드리고 오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민: 이주영 배우님께서 특별 게스트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셨는데 본인이 밤의 문이 열린다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영화를 언제 보셨는지 궁금해요.

 

이주영: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상영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 봤어요. 그리고 최근에 부산에서 영화 홍보하고 계실 때 저도 마침 부산에 있어서 한 번 더 관람했습니다.

 

김현민: 저도 이 영화를 세 번 정도 봤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들더라고요. 주영 배우님께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이주영작년에 처음 봤을 때는 생각보다 무거운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근데, 이번에 다시 봤을 때는 그렇게 무거운 이야기만 하는 영화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기도 했어요. 볼 때마다 다른 잔상이 남는 영화인 거 같아서 몇 번 더 볼 생각입니다.

 

김현민: 해인 배우님께서는 오늘 관객 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셨잖아요? 어떠셨어요?

 

한해인: 저도 오랜만에 이 영화를 봤는데 계속 울컥하더라고요. 비도 오고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시 보니까 모든 인물들이 가여웠어요.

 

김현민: 저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인물들의 얼굴이 유독 강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느껴요. 효연과 같은 경우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인상적이었어요. 볼 때마다 강도가 강해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약해지는 게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이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혜정의 경우 처음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상대방을 거절해서 보내는 얼굴에서 조금씩 절실해지면서 처음과 다른 마지막 얼굴 변화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감독님께서 이런 이미지를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하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배우들이 들어오면서 이런 이미지가 강력해진 건지 궁금합니다.

 

유은정: 당연하게도 배우들이 들어와서 강력해진 게 있어요. 두 배우 분들께서 에너지를 더 불어넣어주신 거 같아요.


김현민: 배우 분들에게도 이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데요. 해인 배우님은 본인의 캐릭터를 접근할 때 혜정이 어떤 감정 상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는지,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요.

 

한해인: 저는 혜정이라는 인물은 살아있을 때보다 유령일 때 표정이 더 살아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와 어울리지 못하고 떠돌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기에 대화를 할 때도 생동감이 떨어진 무미건조한 반응을 표현하도록 노력했어요. 그리고 유령이 되고 나서야 살아있는 사람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어떤 생명체로 존재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렸어요.





김현민: 해인 배우님은 극 중에서 걷는 장면을 보면 무중력 상태로 걸어 다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해인: , 맞아요(웃음). 걸을 때 으스스하게 걸어 다니려고 노력했고, 몸의 상태도 유령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김현민: 그리고 본인이 처음 깨어났을 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볼을 꼬집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과 상의한 후 그렇게 찍으신 건지 아니면 본인이 즉흥적으로 연기한 건지 궁금해요.

 

한해인: 감독님하고 별 이야기 안 하고 즉흥적으로 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어요.

 

김현민: 어떤 아쉬움이 있었나요?

 

한해인: 시나리오에는 혜정이 물건을 하나하나 만지며 안도감을 느낀다고 적혀 있었어요. 관객 분들이 이 과정을 모르실 수도 있어서 감정선을 천천히 이어갔는데, 너무 천천히 한 거 같아 아쉬웠어요.

 

김현민: 감독님이 보기에는 어떠셨나요?

 

유은정: 저는 그 맥락 안에서 흐르는 속도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도 처음 혜정과 같은 입장에서 이 인물이 죽은 건지 아닌지, 아니면 상상인지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보는 거라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김현민: 효연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무언가에 사로잡힌 연기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소니 배우님께서 연기할 때 심적인 부담감이 있으셨나요?

 

전소니: 아무래도 한 작품 안에 있으니까 효연이라는 캐릭터가 혜정과 비교되다 보니 약간의 부담감은 있었어요. 혜정은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면 혜정은 숨어있어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여기에 있다는 에너지가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제 자신을 생각했을 때 그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디테일 분석이나 계획을 구상하기보다 그 의구심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촬영하면서도 혼자 고립되어 있던 적이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서럽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현민: 방금 배우님께서 감춰져 있지만 존재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로 이 영화에서 효연이라는 인물이 누구보다 살고 싶고, 남들만큼 잘 살고 싶은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주영 배우님은 영화를 보면서 배우님들에게 궁금했던 점이 있었나요?

 

이주영: , 제가 미리 질문을 적어 왔어요. 효연과 혜정이 정반대 느낌을 지닌 캐릭터지만, 두 인물 모두 잘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낀 바로는 여성들은 자기 검열을 많이 하고, 누군가에게 진화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두 인물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두 인물이 역할이나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혜정도, 효연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독님의 캐릭터 활용 방식에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만 않고 드러낸다는 점이 좋았어요.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조금씩 성장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를 위해 감독님께서 신경 쓰신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배우들도 어떤 점을 신경 쓰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유은정: 배우님께서 영화를 잘 봐주시고 잘 해석해주셨어요. 두 인물은 상반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혜정은 자기 자리를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을 피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효연도 잘 살고 싶었는데 그저 미끄러졌을 뿐이에요. 저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두 인물 모두 미움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쓸 때 기본적으로 제가 만든 캐릭터를 제가 좋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한해인: 혜정과 효연이 직접적으로 호흡을 주고받는 장면은 거의 없었어요. 효연은 혜정을 볼 수 없지만, 혜정의 삶에 있어서 효연은 처음으로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끌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효연이 왜 그런 욕망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혜정 스스로 자극되기도 했고요. 커튼 장면 같은 경우 효연의 감정이 드러난 후 혜정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효연이 혜정에게 자극제라고 생각해요. 또한, 효연이 혜정의 무의식 속에 있는 한 부분 혹은 조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혜정은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살아왔지만, 효연을 만나면서 삶의 감각이 되살아났기 때문에요. 그래서 혜정을 연기할 때 효연과의 연결지점을 많이 고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