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날〉리뷰: 꿈 꿔볼 일들이 아직 남았다면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일'과 '날', '일과' 그리고 '날', '일'이 나를. 낱말들을 이리저리 잇다가 생각해 본다. 오늘 하루를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그러나 때로는 피로에 젖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을 평생토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복잡한 물음 속에서 〈일과 날〉은 시작한다. 천칭에 나란히 올려진 일과 날이라는 무게는 각자가 원하는 만큼 기울고, 그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려 부단히 움직이는 아홉 명의 사람에게서 삶의 의미가 밀려온다.
〈일과 날〉 속 사람들은 일을 한다. 근로, 노동, 직업, 꿈으로 부르는 행위를 해내고 그것이 그들의 상태가 되고 현재가 된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내는 그들의 날은 어떠한 맥락도, 대화도 등장하지 않은 채 내레이션으로 진행되어 그저 담백하다. 화려한 미술과 연출 없이도 빼곡하게 잘 채워진 스크린은 삶을 가장 온전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뻐근해진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아홉 개의 시퀀스와 함께 철저히 각자가 맡은 숏 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에서 어떠한 메시지도 읽히지 않지만 이내 이들을 묶고 있는 지점으로 정확히 향해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들의 관계성은 날로 얽힌다. 언젠가부터 출생률 저하, AI 대체, 경쟁 사회, 기후 위기는 연속적인 사건으로 삶을 휘청이게 하는 위협이 되었고 이로 인해 미래의 날들이 자꾸만 옅어져갔다.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지고, 해야 할 일은 많아지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성장의 성취를 원할수록 더 고되게 일에 몰두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서 새삼스레 서러워하지 않는다. 묵묵히 감내할 수 있게 된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감수성이 되려나 하는 씁쓸함은 평범이라는 의미에 더없이 물들어간다.
그럼에도 생동을 꿈꾸며 ‘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스크린 안에 존재한다. 피하지 않고 불안에 맞서는 그들에게서 미래를 본다. 나의 반경을 넓히다 보면 언젠가 서로에게 가닿아 무수히 큰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바라게 하는 〈일과 날〉은 그렇게 보여준다. 아홉 명의 모습을 영화로 담아내어 서로에게 서로가 존재함을 선물하는 고요한 위로라고. 여기에도,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오늘의 해가 져 물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곧 스크린도 암전 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들과 나는 다시 잠에 들어 꿈을 꾸며 내일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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