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5 김세원 배우 인터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꾸밈없는 얼굴, 솔직한 에너지가 빛나는 김세원은 속으로 말하는 배우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인물의 내면을 조용히 쌓아 올린 뒤 자연스레 밖으로 다시 꺼내 보인다. 그렇게 배우 김세원은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한 채, 어느새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연기는 영화가 끝나고도 이들이 어딘가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익숙한 착각을 일게 한다. ‘김세원 배우 특별전’에 상영된 네 편의 영화 속 연주, 수림, 윤희, 지서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열기가 피어올랐던 어느 날, 네 편의 영화, 네 명의 인물을 거쳐 우리 앞에 선 김세원 배우를 만났다. 머지않아 또 다른 자리에서 다시 기쁘게 인사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5에서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 〈수림의 꽃다발〉, 〈에라!〉, 〈울며 여짜오되〉로 ‘김세원 배우 특별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배우로서 특별전이 열린다는 게 굉장히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데요, 이 네 편의 영화들로 특별전의 관객들을 만나게 된 소감을 여쭙고 싶어요.
언젠가는 꼭 ‘김세원 배우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이런 기회가 오게 될 줄은 몰라서 엄청 뜨거운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저에게도 굉장히 기쁜 일이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고요. 오늘 상영하는 작품들은 저의 첫 단편부터 지금까지의 제가 담겨 있는 작품들이라 오늘 오랜만에 다시 보려니 부끄럽기도 한데요, 그래도 앞으로의 대한 기대와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울며 여짜오되〉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오늘 오랜만에 다시 보시겠네요.
맞아요. 촬영했을 때 개인적으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스스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떠올리면서 보게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제가 나온 작품을 보면 제 연기가 어떤지만 보기 바빴었는데요, 오늘은 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작품 그 자체를 보고 싶어요. 관객들 사이에서 함께 보는 만큼, 함께 웃으면서 더 기분 좋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벌써 기대돼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배우님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봤어요. 7월 말부터 연극 〈아르카디아〉에 출연하시더라고요. 그럼 요즘은 한창 연극 준비에 매진하고 계시나요? 올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네, 일요일만 빼고 매일 바쁘게 연습하고 있어요. 〈아르카디아〉가 전에 학교에서 이미 한번 했었던 연극인데 같은 역할로 학교 밖에서 재공연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행복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작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유림〉으로 코리아 프라이드 한국단편경쟁 연기상을 수상하셨어요. 늦었지만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짧게나마 소감 부탁드려요.
〈유림〉을 통해서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아서 함께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커요. 앞으로 연기 생활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과 격려의 의미로 상을 주신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연기에 대한 마음을 다잡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작품 순서대로 질문을 드려볼까 해요. 먼저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에서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인 연주를 연기하셨어요. 특히 연주는 마음속으로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요동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인물이에요. 지금 자신을 휘감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연주의 절제된 감정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가 학교 워크숍에서 찍은 단편을 제외한 저의 첫 단편이었어요. 연주가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인물인데 시나리오에도 연주의 감정이 도대체 어떤 건지 잘 나와 있지 않고 지문도 간략하게만 설명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어떤 감정을 가지고 연주라는 인물을 연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요,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고민을 풀어 나갔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저 스스로 연주의 감정을 쌓아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감독님의 디렉션을 많이 믿고 따라가려고 했었고요. 아직은 연기에 큰 요령이 없던 시기였다 보니 그저 놓인 상황 속에서 솔직하게 반응해 보면서 연기했어요.
장례가 끝난 후,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상실의 슬픔을 다 어루만지기도 전에 현실적인 문제들이 곧바로 밀어닥치는 부분이 정말 현실적이에요. 장례는 절차대로 마무리되어야 하고 학교에서 출석 일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망진단서가 필요한 것처럼요. 시간이 지나면 슬픈 감정도 조금씩 무뎌지고 더는 울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여전히 상실의 시점을 지나고 있고 자신의 요동치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서툰 연주에게는 오히려 이 과정이 더 이해하기 어렵게 다가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인물이 스스로의 감정을 소화해 내기 전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가 영화에서 잘 드러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감내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비로소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요? 연주도 그렇게 성장하게 되는 인물이고요.
자꾸만 연주를 위로하려는 가족에게 “아니, 나 지금도 괜찮아. 오히려 내가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라고 말하는 연주의 대사가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연주의 감정 변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대사를 어떻게 전달하고자 했나요?
저도 이 대사가 너무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해서 촬영 첫날부터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웃음) 감독님께서도 영화의 흐름에서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씀하기도 하셨고요. 막상 연기할 때는 연주로서 이제 더 이상 가족들이 나를 그만 오해해 줬으면 좋겠고 나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열심히’ 저 대사를 전달하려고 했는데요, 나중에 영화를 다시 보니까 이 대사를 잘 들어주라는 듯이 너무 ‘열심히만’ 말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더라고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의 유품을 태우고 난 뒤, 모두가 각자의 슬픔을 저마다의 속도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주는 할아버지의 수첩 속에서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담긴 그림을 발견합니다. 그 후 가족들과 함께 추모관을 찾은 날 연주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요, 연주는 무슨 말을 한 걸까요? 그제야 연주는 다시 밝게 웃어 보여요.
이 장면을 찍을 때 나중에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저에게 그 장면에서 무슨 말을 한 건지 꼭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촬영할 때도 감독님께서 저에게 몰래 여쭤보기도 하셨고요. 감독님께서 뭐라고 말했는지는 일단 우리만의 비밀로 하고 나중에 인터뷰 자리가 생기면 그때 공개하라고 하셨는데요,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됐네요. (웃음)
뭐라고 말했냐면, ‘할아버지, 다음에 더 예쁘게 그려줄게’라고 했어요. 영화 초반에 연주가 그리고 있던 할아버지의 뒷모습 있잖아요. 저는 ‘다음에’라는 말이 미래를 기약하는 약속 같아서 그 말을 함으로써 할아버지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례 이후로 연주는 계속해서 할아버지와 멀어지고 있는 듯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그런 감각들이 전부 해소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웃음도 나왔던 것 같아요.
‘다음에’라는 말이 마음을 울리는데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낼 때 ‘다음에 또 만나자’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저 말 한마디지만,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하면서 남겨진 이들에게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건네는 것 같아요. 어느덧 연주가 되어 있는 배우님을 보고 감독님께서도 굉장히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대사는 현장에서 즉흥으로 생각해 낸 건가요?
전날 할아버지 수첩에서 그림을 발견하는 장면을 촬영했어요. 그런데 그 수첩이랑 할아버지가 그 안에 깊숙이 넣어 두셨을 연주가 그려준 그림을 보니까 마음이 되게 울컥하는 거예요. 동시에 그 그림을 계속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림을 또 그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음 날에 추모관 장면을 촬영할 때 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도 즐거운 순간이었어요.
〈수림의 꽃다발〉은 큰 사건 없이도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잘 포착해 낸 영화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상황들에 서운함은 쌓여가고 큰 문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꽃다발과는 비교될 만큼 화려한 남자친구의 꽃바구니가 고마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감정을 보여주셨는데요, 이런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수림은 서툰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 모든 순간에서 수림은 최선을 다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연기했어요. 수림은 상대에게 사랑을 나눠주면서 마음을 채워 나가기보다는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계속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고 꽃다발을 통해서 상대에게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대사 없이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 되게 많았어요. 이럴 때 제가 그 인물로서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생각들 있잖아요. 이걸 좋아할까, 나를 정말 사랑하고 있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들이요. 동시에 이 속마음을 꺼낼 용기는 없고 두렵기도 한데 그럼에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같이 들어서 이런 내면의 감정들을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되뇌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기보다는 인물이 가졌을 법한 생각들을 저도 같이 마음에 담아두고 스스로 말해보면서요. 그러면 저는 무의식적으로도 저의 표정이나 행동에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림이 새콤달콤을 자주 까먹는 것도 시나리오에 있던 설정이었을까요? 마지막에는 다 먹은 빈 껍질만 남아있는데 저는 이게 모텔 방에 남겨져 홀로 시들어 가는 수림의 꽃다발이자 곧, 수림의 마음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시나리오에 있었어요. 실제 감독님의 습관이 인물에게도 드러났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 수림이 조금 헛헛한 마음이 들 때마다 새콤달콤을 먹으면서 비어 있는 듯한 마음을 채우는 거였어요. 혹은 복잡한 생각이 수림을 괴롭힐 때마다 새콤달콤한 맛으로 잠깐 잊거나 생각을 환기하는 거죠. 수림은 남자친구보다 새콤달콤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마이쮸였는데요, 제가 새콤달콤 포도 맛을 좋아해서 바꾸게 됐어요. 촬영하면서 10통 정도 먹어서인지 턱이 조금 강해진 것 같기도 해요. (웃음)
내 사랑이 초라해 보이는 것만큼 스스로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림은 짧은 하루의 시간 동안 그런 마음을 느끼고 있는 인물 같았어요.
맞아요. 수림 스스로도 큰 성장통을 겪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못난 남자친구였지만 덕분에 깨달음도 있었고요. 아마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 이후로 자신에 대한 발견도 있었으니까요.
〈에라!〉는 오해로 인한 경쾌한 소동을 그려냅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오해가 쌓여도 괜찮은 거야?’ 조마조마해하면서 봤거든요. 평화롭게 수진을 기다리던 윤희 앞에 갑자기 수진의 남자친구 현수가 등장하고 수진에게 들킬까 초조한 윤희와 달리, 현수는 느긋하기만 한데요,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린 오해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돼요. 생각만으로도 머리 아프지만, 실제로 본인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요?
저도 윤희처럼 바로 현수를 내쫓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윤희도 현수의 능수능란함에 걸려들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윤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윤희처럼 요령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자체를 무서워하고 싫어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몰래 수진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부 보고하고 현수를 피해서 밖에 혼자 나가 있을 거예요. (웃음)
현수는 능청스럽게 윤희에게 수진과 싸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이때 현수와 윤희의 ‘티키타카 식의 대화’를 보는 재미가 컸던 것 같아요. 현수 역의 김우겸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촬영 현장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롱 테이크 신이나 티키타카처럼 대화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연기할 때 정말 재밌었어요. 우겸 배우가 되게 예상치 못한 타이밍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지지 않으려고 혼자 한 템포 쉬고 대사를 하거나 우겸 배우가 대사를 하기 전에 제가 먼저 불쑥해버리곤 했는데요, 뭔가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달까요. (웃음) 서로가 서로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비집고 나오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겸 배우가 애드리브를 하다가 스스로 흥에 취해서 NG를 여러 번 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롱 테이크이다 보니 중간에 NG를 내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엄청 긴장하면서 연기를 했는데 오히려 여기서 어떤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대사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긴 호흡을 가진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한,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경험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이 정말 통쾌해요. 지금껏 윤희를 당황하게 했던 수많은 ‘에러’가 ‘에라! 모르겠다’로 뒤바뀐 순간인데요, 영화 속 윤희처럼, ‘에러’들을 뒤로하고 ‘에라! 모르겠다’하며 즉흥적으로 일을 저지른 경험이 있나요?
원래 저는 그렇게 충동적인 사람은 아닌데요, 최근에 한번 즉흥적으로 저지른 일이 있기는 해요. (웃음) 갑자기 당장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한두 달간은 여행을 못 가겠다, 여름 수영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고성 바다에 다녀왔어요. 시원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원래 수영하는 걸 좋아해서 수영도 원 없이 하면서 스트레스를 몽땅 풀고 왔어요. 가리비도 먹고요. (웃음)
사라진 동생의 행방을 알기 위해 단서를 모아 보지만, 〈울며 여짜오되〉의 지서는 동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동생 해준을 찾는 과정은 스스로 동생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며 더 나아가 그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요, 해준을 이해하고 싶었던 지서처럼, 요즘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
작품을 하면서 저도 가족에 대해서 모르는 게 되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가족을 더 이해해 보고 싶어요. 사소한 것들 있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만약 지금 밥을 먹고 있다면 어떤 음식을 가져가서 같이 먹으면 좋아할지… 같은 거요.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도 확실하지 않고 아리송하다 보니까 앞으로 연락도 더 자주 하고 서로에게 관심도 많이 가지면서 지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른들은 해준의 실종을 자극적인 소재로 가져다 쓸뿐더러 오히려 해준을 철없는 아이라며 나무라기만 해요. 그런 상황 속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준을 찾기 위해 몸소 행동하는 인물은 지서뿐입니다. 홀로 꿋꿋이 여러 문제를 헤쳐 나가는 지서는 당차고 야무진 인물 같아 보여요. 이런 지서의 캐릭터를 만들어갈 때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지서는 동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상태로 동생을 찾아 나가면 너무 속상하고 슬픈 감정만 느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최선을 다해서 그런 동생을 꼭 찾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게 지서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찾아다니려 했던 것 같아요.
아들 해준보다는 금덩이가 더 소중한 듯한 아빠에게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전부 터뜨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이처럼 연기를 하면서 평소엔 잘 경험하지 않는 감정을 마주하고 크게 소리도 질러보면서 어떠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지금껏 연기를 하면서 배우님에게 연기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 순간이 있을까요?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엄청 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느낄 수 있는 떨림과 해방된 듯한 기분을 아직 작품에서는 만나지 못했어요. 저는 ‘카타르시스’라는 게 일상적인 상황에서보다는 보통 이상의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언젠가 작품 속에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순간인 만큼 미리 준비를 잘 해봐야겠네요. (웃음)
마침내 해준과 마주하게 된 지서의 첫 마디가 ‘너 핸드폰부터 사자’인 게 너무 좋았어요. 또래 친구들은 다 핸드폰이 있는데 해준에게만 없다는 것을 알고 그걸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거잖아요. 해준은 지서 같은 누나가 있어서 든든할 것 같아요. 앞으로 이 가족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요?
이 가족에게 갑자기 아주 커다란 변화는 생기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사소한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한두 마디라도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해진 대화가 오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서 이전과는 비교될 만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고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네 편의 영화( 〈나는 할아버지가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 〈수림의 꽃다발〉, 〈에라!〉, 〈울며 여짜오되〉 ) 모두 나 혹은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실제 경험이 캐릭터를 이해하거나 장면을 연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찍을 때 가지고 있던 고민이나 생각들이 네 편의 영화 속에 모두 조금씩이라도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을 만나면서 그 고민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도 해서 고마운 마음도 있고요. 저의 실제 경험이 그대로 담긴 장면은 많진 않지만, 제가 살아가면서 쌓아간 시간과 경험이 조금이라도 연기에 녹아든 건 맞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실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요? ‘나 이런 거 잘해!’하고 말씀해 주셔도 되고요.
판타지나 SF 같은 장르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일상적인 상황보다는 배우가 능동적으로 상상해서 연기할 수 있는 상황 속에 놓이는 걸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니는 히어로 같은 역할이요. 제가 몸을 잘 쓰거든요. (웃음)
보통 판타지나 SF 같은 장르물이라고 한다면, 블루 스크린에서 실체가 없는 대상을 마주하는 등 상상에 의존해서 연기해야 하는 장면이 많을 텐데요. 그런 점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요?
물론 현실에서 연기하는 것보다는 배로 어렵고 힘든 작업이겠지만, 저의 상상과 감각에 몰입해 보면서 보통 이상의 연기를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 그런 방식의 연기에서 또 다른 즐거움과 짜릿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두려움과 걱정도 없진 않겠지만, 지금 저로서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더 커요.
마지막으로 하반기에 계획하거나 목표하는 것들이 있나요? 배우 김세원의 다음이 궁금해요.
아직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하반기에 독립 장편영화를 준비하게 될 것 같아요. 또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수학영재 형주〉라는 독립영화가 올해 개봉할 예정이어서 늦지 않게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실 거예요.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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