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더라도 눈부신 빛을 주고받으며

 〈작은 빛〉 조민재 감독, 배우 곽진무, 변중희, 신문성, 김현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가족, 공간, . 언뜻 보면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또 하나하나 연결하자니 고민이 앞서는 것들이다. 영화 작은 빛은 고요하게 이 모든 항들을 작지만 눈부신 빛으로 잇는다.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은 빛은 평범해보이는 한 가족에서 출발해 그들이 갖고 있던 기억과 공간, 그리고 삶에 대해 묻고 답해가는 영화다. 감독 조민재와 배우 곽진무, 변중희, 신문성, 김현을 만나 그들 각자의 작은 빛에 대해 물었다.

 



 


영화 작은 빛123일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그간 영화제와 기획전을 통해 몇 번 소개된 적이 있지만 정식으로 개봉하니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개봉에 대한 감회가 어떠신지 듣고 싶어요.



조민재 감독(이하 조민재): 개봉이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이 가장 커요. 개봉을 하는 것이 배우님들이나 스탭들, 저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에 기뻐요.

 

변중희 배우(이하 변중희): 독립영화 중에 생일이 없는 영화가 많다고 들었어요. 우린 생일이 생기고, 생일 축하도 받고, 또 기념일도 받은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영화가 빛이 날까, 그런 사명감이 생겨요.

 

곽진무 배우(이하 곽진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영화가 소개될 수 있어서 좋고,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 정말 좋습니다.

 

신문성 배우(이하 신문성): 저는 개봉까진 꿈을 꾸지 않았어요.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독립영화는 개봉까지 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아서요. 감독님께서 초지일관 유지하신 자신의 세계관이랄까요?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빛을 발한 것 같아서 상당히 기쁩니다.

 

김현 배우(이하 김현): 작품을 하다보면 보물 같은 작품들이 있어요. 언젠간 그게 빛이 나더라구요. 작은 빛은 작업할 때 색다르고, 감동스러운 지점이 있었어요. 찍고 난 다음 1년은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이렇게 개봉하게 돼서 놀랐죠. ‘내가 잘 봤구나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일 안하고 영화만 작업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감독님께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배우분들은 이 영화에 함께 하게 된 계기를 간단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민재: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휴식이 필요했어요. 1년 정도 쉬어보자는 생각에 퇴사를 했고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한 편 만들어봐야겠다 싶어서 쉬는 동안 만들어보았습니다.

 

곽진무: 저는 조민재 감독과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사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지인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건 아니에요. 작품이 상당히 좋아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를 통해서 글을 쓴 시나리오라서 그런지 한층 깊었어요. 그런 점에서 설레고 같이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현감독님이 우연히 어딘가 올라온 저의 프로필을 보셨나 봐요. 캐스팅 요청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제 연극을 보러 오셔서는 부끄러우니까 끝나고 말씀도 없이 그냥 가셨대요.(웃음)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에 대해 사전조사를 하신 것 같아요.

 

신문성: 김현 배우님이 제 극단 선배님이에요. 김현 배우님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오디션을 보았고 조건에 부합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였죠.(웃음)

 

조민재처음에 신문성 배우님을 만났는데 바로 , 우리 형이다.’하고 생각했어요.(웃음) 말투나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변중희: 저는 저보다 먼저 어머니 역할을 맡아서 하신 분이 계셨어요. 뒤늦게 ‘믿을만 할?’ 이런 의혹 속에 후발주자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웃음)

 

 


배우분들이 맡은 각자의 캐릭터가 어떤 성격인지, 또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감독님이 인물들을 만들면서 참고하거나 반영한 인물이 있으신가요?

 


변중희이 영화는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기 때문에 감독님 어머니를 만났어요. 두 시간 정도 어머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나름대로 설정한 신숙녀는 생활력이 강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싶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의연하게 헤쳐 나가는 인물이라고 봤어요. 그렇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속정이 있는 엄마.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혼자 꿋꿋이 살아가는 그런 엄마. 그런 엄마상을 가지고 작업을 했죠. 감독님 어머니를 만나면서 가족 간의 관계, 가족이 살아온 궤적들을 미리 들은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왜 가족이 친하면 밥을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게 아니라 밥상을 밀어놓고 밤새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말씀을 하신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신숙녀라는 인물이 이렇게 자랐고 이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성격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곽진무: 저는 일찍이 가족 해체를 겪은 어린 남자를 상상하면서 시작했어요. 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들과 단절되고 사회에서도 고립되어 있고, 감정이 점점 사라져가는 듯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병을 얻고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돼요.

 

신문성: 아까도 잠깐 감독님이 말씀하셨지만, 저는 특별하게 어떤 캐릭터를 다시 구성하기 보단 저로부터 출발한 거 같아요. 그런 자연스러움을 감독님이 원하셨어요. 이 작품이 어쩌면 우울하거나 무거워보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삶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고 결국 일상적인 흐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김현: 사실 곽현이란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현은 이혼 경험이 있는 설정이었죠. 그래도 제가 나이가 있으니까 모양도 갖춰졌고 저라는 사람의 성격과 맞닿은 지점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누나 캐릭터를 씌워주어서 어렵지 않게 갔던 것 같아요. 특별하게 제가 현의 이혼이나 과거에 대한 비하인드를 거창하게 가지진 않았어요. 너무 디테일한 감정이나 비하인드는 해로워요.

 

조민재인물 구성에 있어서 물론 제 가족들의 모습을 반영하긴 했지만 최대한 영화에 나오는 분들의 모습을 시나리오에 넣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리딩을 할 때도 대사를 읊기보다는 밥 먹는 모습을 미리 촬영해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보고 연구했고 그걸 시나리오에 반영했어요.

 





 

오늘도 몇 번 언급하셨지만, 작은 빛은 감독님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인 것이 느껴져요. 자전적 이야기를 사적 다큐멘터리의 형식이 아닌 극영화를 통해 담아낸 이유가 듣고 싶어요.

 


조민재일단 첫 번째로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라면, 맥락은 제 이야기일지라도 가족들에게 책임감을 분배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 가족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이 언어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일정부분 져야하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큐멘터리는 무엇이고 극영화는 어떤 것일까, 그런 고민들 사이에서 생각을 하다 보니 대신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다큐나 극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것일까.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생산하는 게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이 핵심이었어요. 그래서 캠코더를 사용했고, 픽션과 논픽션을 계속 뒤섞어나가는 구성으로 만들어나갔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들어가 있으니 면밀히 따지면 픽션이죠.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이 영화에 가장 많이 쏟아진 말 중 하나일 듯합니다. 관객들이 영화 속 진무가 실제 감독일 거라고 추측하거나, 숙녀 역 또한 감독의 실제 어머니일 것이라고 추측한 경우 역시 꽤나 많았던 것으로 알아요. 배우분들이 연기하실 때에는 대본이 명확히 있었는지, 혹은 순간에 맞게 애드리브를 하신 경우도 많았는지 궁금해요.

 


조민재팔십 퍼센트가 애드리브였어요.

 

변중희: 핵심적인 상황은 대본에 있지만 구체적인 언어화는 되지 않은 게 더러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장면인데, 오토바이 타고 가면서 노래하는 장면 있잖아요. 감독님이 어머님, 노래 하나 해보시죠. 아무거나 하세요.’해서 그냥 생각나는 노래 한 거예요. 그리고 끝부분에 사진 보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어머니, 5분만 얘기해보세요.’하셔서 만들어진 장면이에요. 그럴 때 감독님 어머니를 만난 게 도움이 되었어요. 현이가 10살 때 쓴 시 이야기도 그 때 들은 얘기를 한 거예요. 조민재 감독이 굉장히 치밀한 감독이란 걸 이제야 알았어요.(웃음)

 

조민재저도 사실 영화를 찍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배우한테 완전히 맡기게 돼요. 진무 배우랑 어머니가 인터뷰 장면을 찍을 때 , 저 구역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겠다. 배우가 알아서 움직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테이크 한두 번 만에 가고 너무 빨리 찍어서 시간이 남으면 한 번 더 가는 수준이었어요. 중반부터는 배우들이 알아서 잘 움직여서 제가 더 이상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신문성저도 비슷해요. 춤추는 장면은 그냥 한 큐에 갔어요. 약간 당혹스러울 정도로 날 것의 장소, 길가에서 한 번에 찍었는데 낯설고 멋쩍은 모습이 그대로 보여서 좋더라고요.

 

조민재: 신문성 배우는 한 번 만난 뒤에 너무 확신이 들어서 더 이상 리딩을 하지 않았어요. 더 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았죠. 제가 원하는 사람이 딱 나와주셨어요.

 






주인공 진무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일단 배우님의 성함과 배역 이름을 통일시킨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또 이 지점에 있어서 배우님과 감독님 사이에 오간 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조민재: 제가 이 글을 제주도에서 처음 썼을 때는 주인공 이름을 A, B 이런 식으로 썼는데 완성이 되고 나니 한 가지 기억이 번뜩 떠올랐어요. 진무 형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영화모임에서 발제하던 기억이요. 그때 진무 형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해주셨어요. 당시에는 사실 좀 거북했어요. 저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데, 형이 너무 진솔하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니까요. 금요일 밤 즐거운 자리에서 왜 이렇게 무거운 이야길 하나 했는데.(웃음) 그 생각이 나서 다시 환상의 빛을 보게 됐고, 이 영화가 왜 좋은지 알게 되고, 당연히 진무 형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진무 형이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푸시로 주인공 이름을 진무라고 하고 보내드렸죠. 선택은 진무 형의 몫이지만요.

 

곽진무: 부담이었죠. 제 이름으로 온 게.(웃음) 글을 받은 건 너무 좋은데 극 안에 제 이름이 있다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그치만 함께 하게 된 이상 어떤 요구를 한 적은 없어요. 감독의 영역이고, 감독의 세계관이니 감독에게 모두 맡기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저 역시 듣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감독을 믿고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진무는 영화 전체에서 말이 많지 않아 보여요. 말이 없는 인물들이 최근 독립영화 주인공들의 경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왜 진무는 말이 많지 않나요?

 


곽진무: 아까 말했듯 일찍이 가족의 해체를 맛보고 노동 현장에 살면서 당연히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이 닫혔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가족들 만나면서 그나마 정서가 열리기 시작하는 호흡으로 접근했습니다.

 

조민재: 실제로 감정의 서사를 짤 때 어느 쯤에 진무가 감정을 열어줄까 생각해보았어요. 진무는 천천히 하나씩 열 것이라 생각했어요. 호선이를 만날 때는 진무가 마음을 좀 더 열어주는 식으로요.

 

곽진무: 감독이 그걸 연출하고 요구했어요. 목욕탕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요구했었죠. 호선이와 물장난 치는 장면이 저 또한 마음이 열린 계기가 된 거죠.

 

조민재: 가부장제의 어떤 성격유형이 있잖아요. 아버지상이 어떻고 어머니상이 어떻고 하는 것들이요. 진무에겐 좀 더 아빠의 형상을 끼얹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카메라가 머무르는 시간이 특이해요. 인물들이 모두 떠난 이후에도 빈 공간을 3초가량 더 응시하는 씬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어요. 이런 연출을 하신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조민재영화 외적인 건데, 제가 공간을 담아두는 걸 좋아하나 봐요. 제 영화적인 학습이 그런 것 같아요. 공간을 열어준다는 개념으로 컷을 짜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할 때에도 이런 느낌으로 하지 않을까 해요. 영화에 나온 공간은 실제로 제 가족들의 공간인데, 공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좀 다르게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각자의 공간을 만들면서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공간을 최대한 세심하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무가 기억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각자의 꿈이나 과거의 기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배우분들은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이런 꿈에 대한 이야기와 배우로서의 삶이 겹쳐지는 지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춤을 춘다든지, 행복했던 기억을 회상한든지 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드러내고 싶었던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신문성저는 춤을 추면서 과거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이십대 초중반까진 정말 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저는 연극반이었는데 같이 강당을 쓰는 댄스부가 있었어요.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같이 춤도 추고 그랬어요. 성격이 내성적이라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춤을 출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요. 군대 있을 때도 고참들이 앞에 나가서 춤추라고 하면 그때 제일 신났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 , 내가 춤을 참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십대가 되어서 카메라 앞에서 다시 춤을 추게 되니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예전에 많이 하던 건데 뭐 어떠냐는 마음으로 했어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변중희저는 숙녀 역할을 위해서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어요. 제가 남자중학교에 선생님을 해보니까,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쯤 되면 소위 노는 애들이 너나없이 오토바이를 타려고 애를 써요. 그러면 항상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오 킬로미터로 가면서 바람을 느끼는데 무섭기도 했지만 너무 시원한 거예요. 이 맛에 애들이 오토바이를 타려고 하는 구나, 정말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웃음)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또 숙녀가 식당에서 일을 하니까 설거지 장면이 더러 나와요. 내가 평소에 설거지를 잘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잘 되나보다 싶더라고요. 제가 직장 일 하면서도 살림을 다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열심히 살았더니 도움이 된다.

 

김현: 작품을 보면, 되게 남루하고 무겁고 짠하고 그래요. 이렇게 한 구석에 있는 분들이 사실 많이 계시죠. 누구나 아픔과 외로움이 있잖아요. 색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저 역시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그런 감정이 있어요. 관객분들에게도 맞닿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외로움과 아픔을 관통하는 변화의 힘이 영화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캠코더 촬영 화면이 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해요. 실제로 촬영할 때에는 배우가 직접 캠코더를 들고 있었는지,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연출된 것인지 궁금해요.

 


변중희: 캠코더는 다 배우들이 직접 들었어요. 손주도 직접 찍었어요.

 

조민재: 제가 찍는 영화 카메라는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캠코더는 제가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인터뷰 장면은 제가 들어간 경우가 더러 있지만 보통은 지금이에요!” 하면 카메라를 드는 느낌이었죠.(웃음)

 


 

배경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영화예요. 앰비언스 사운드가 특히 강조된 것 같아요. 특별한 의도가 있으셨나요?

 


조민재: 그건 사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요. 공간 사운드로 가득 채우고 싶었는데 독립영화 한계 상 사운드에 큰 부분을 할애할 수 없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컷마다 정서가 다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음악으로 이어버리면 정서가 하나로 묶여버려서 굳이 음악을 사용하지 않은 지점도 있어요.

 

곽진무: 그게 저에겐 좋았어요. 제 병약한 숨소리와 호흡이 가득 담겨있어요. 그 부분이 영화와 잘 맞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조민재믹싱기사님께서 저예산인데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영화 교육을 받지 않으시고 찍으신 첫 연출 영화라고 알고 있어요. 영화를 찍기 전과 후가 몇몇 지점에서 다르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조민재: 영화를 찍고 나서 가족들을 좀 더 만난다는 게 달라진 점 같아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생각하고 있어요. 분명 저에게 휴식이 필요했고. 휴식을 위해 영화를 찍은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잘 쉬었고 이제 마무리 단계가 온 것 같아요.

 



작은 빛은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통해서 삶을 기록하고, 그려내는 것이 감독님과 배우분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조금은 거창하게 여쭙고 싶어요. 영화를 왜 만드는지, 연기를 왜 하는지, 같은 것들이요.

 


조민재: 저 역시 그 질문을 하려고 영화를 찍은 거 같아요. 가족이야기를 왜 해야 하는지, 카메라로 가족이야기를 재현해낸다는 건 어떤 것인지. 결과적으로는 캠코더를 나눠 갖고 서로 찍어주고, 공간을 함께 나누고, 그것이 편집이 돼서 빛으로 쏟아지잖아요. 그렇게 이어지는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간지럽나?(웃음) 저도 사실 영화를 사랑하거든요. 영화를 배우지 않았어도 사랑하기 때문에 찍었고요. 본질을 얘기하자면 내가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있고, 영화는 좋은 매체라는, 그런 생각이에요.

 

곽진무: 저는 연기를 통해서 성장을 하고 있어요. 제가 다른 일은 그렇게 못해도 연기 하나 만큼은 최선을 다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욕망을 확인해요. 무엇보다도 연기를 통해 결핍을 채우는 거 같아요. 저는 되게 내성적인 사람인데 삶에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연기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곤 합니다.

 

변중희: 가끔 혼자 왜 나는 영화배우 일을 좋아할까 생각해보니까 내가 사람을 좋아하더라고요. 배우 하면서, 영화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 실현되는 거, 그게 제 기쁨이 된 것 같아요. 젊어서 데뷔를 했으면 별 볼 일 없었을 텐데 나이 먹고 데뷔를 하니까 더 쓰임이 있다, 나는 늦가을에 피는 꽃인가 봐, 이렇게 스스로 지지를 해주고 있어요.(웃음) 저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배우는 현재진행형의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흔히 카르페 디엠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걸 내가 실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 같아요. 내가 아닌 나를 창출해내는 작업들이 쉽진 않아도 짜릿함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쭉 하려고 해요.

 

신문성: 일단 제가 배우를 하는 건 즐겁기 때문이지만 일종의 사명감은 있어요. 예전에 어떤 공연을 봤을 때 친구랑 그런 이야길 했어요. 요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은데,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걸 보면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영화나 드라마, 연극 모두 마찬가지로 배우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연극이나 영화를 통해 보게 되면 저처럼 내일을 살아가는 기반을 하나씩 얻는 것 같고요. 사람은 서로 소통하는 존재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공감할 순 없어도 그 중에 몇몇 사람이 어마어마한 것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우를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현: 연기는 재밌으니까 해요. 재밌으니까 돈 못 버는데도 하는 거죠.(웃음) 저도 경제적인 고비가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그냥 연극을 했어요.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극복되거나 치유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이 직업이 참 좋은 게,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하잖아요.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젊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아마 최고의 직업인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작은 빛을 접하게 될 관객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변중희: 저는 작은 빛이 가족 관계 회복에 대한 영화라고 정리했어요. 다들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지만 아픔이 없는 가정이 없을 거예요. 작은 빛은 진무의 일련의 행보를 통해서 가족관계의 회복이나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영화예요. 아마 당신의 가족에 대해 반추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자극적이지 않지만 찬찬히 보면 굉장히 큰 덩어리를 주는 영화가 아닐까 해요.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힐링을 받으실 거예요.

 

곽진무: 이 이야기의 발단은 극 중 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위해 호적이 필요해서 신숙녀가 결혼하게 된 것이에요. 호주제 폐지 이전 가족 구성 방식을 반영한 이야기죠어머니들은 가부장제의 어려움 속에서 가족, 또는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어요. 또 아버지들은 가족에 대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그 부조리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성: 이 작품이 무거운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가족에게 함부로 하고 밖에 나가서만 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족이 가장 편하다보니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고요. 방향은 다양하겠지만 이 영화를 본다면 가족을 한 번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보시면 느껴지실 거예요.

 

김현: 저는 개인적으로 아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 영화가 살살 건드리잖아요. 아주 조금씩 건드리다가 막판에 사람을 잡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이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어서 봤는데, 엄청 울었어요. 관객분들도 아버지든 어머니든, 가족의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조민재저는 이 영화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어렵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편하게, 보이는 것만, 휴식처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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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인디돌잔치 〈버블 패밀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30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마민지 감독

진행 박선영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 PD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2017년 전국에 불었던 가상화폐 붐, ‘비트코인투기에 대한 열풍은 내 주변을 뜨겁게 달구었다. 비트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말하는 일명 카더라 통신으로 들리는 비트코인 버블은 현재의 욕망과 미래에 대한 꿈이 뒤엉켜 많은 사람들에게 불을 지폈다. 인간의 욕심 위에 경제의 버블은 반복되고 있다.

2019년을 마무리하며, 인디스페이스 인디돌잔치에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가 상영되었다. 2019년의 우리는 어떤 버블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그 속에서 청년들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야 하는지 감독은 묻는다. 마민지 감독과 이야기 나눈 〈버블 패밀리〉 인디돌잔치 인디토크를 소개한다.

 




박선영 PD(이하 박선영): 안녕하세요. 인디돌잔치 진행을 맡게 된 CBS 팟캐스트 말하는 몸'의 PD 박선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마민지 감독(이하 마민지): 안녕하세요. 〈버블 패밀리〉를 연출한 마민지라고 합니다.

 

박선영: 연말인데 〈버블 패밀리〉 1주년 생일 축하해주시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 한 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민지: 〈버블 패밀리〉 개봉이 1년이 지났다는 게 아직 믿기지가 않네요. 제가 최근에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님들과 함께 하는 연극 공연을 하다가 인디돌잔치 투표가 진행중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투표 해달라고 하니까 어머님들께서 투표 링크를 여기저기 돌려주셨거든요.(웃음) 그래서 선정이 된 것 같아요. 1230일에 시간 내주시고 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박선영: 저도 이 자리가 되게 의미 있어요. CBS에서 말하는 몸이라고 팟캐스트 계의 인디 팟캐스트같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컨셉의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어요.  마민지 감독님이 〈버블 패밀리〉 개봉 당시인 1월 초에 출연을 하시고 1년 만에 뵙는 거여서 영광이고 즐겁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 때 몽골 가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마민지2월까지 〈버블 패밀리〉 개봉을 진행하고 〈리틀 노마드〉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러 몽골에 있었어요. 몽골의 도시화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고, 2019년 여름에 프랑스 가서 편집 마치고 지금은 다음 작업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리틀 노마드〉는 개봉을 하나요?

 

마민지〈리틀 노마드〉같은 경우에는 방송사에 방영할 다큐멘터리로 제작을 했어요. 프랑스 제작사와 한국 제작사가 함께 진행했고 독일의 방송국에 상영되는 다국적 영화입니다. 한국에는 언제 방영할지 미정입니다.

 




박선영: 1년 전 말하는 몸팟캐스트에서 나눈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 싶어요. 그때 어떤 이야기 했는지 기억나세요?

 

마민지: ‘말하는 몸팟캐스트에서 초대해 주셨을 때 여성의 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골라 달라고 하셔서 저는 어머니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어머니께서 텔레마케터로 일을 되게 오랫동안 하셨어요. 어머니가 팔을 다치셔서 갑자기 일을 못하셨을 때의 이야기 등 어머니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습니다.  

 

박선영: 그 당시 말씀해주셨던 것 중에 기억에 남은 게 있어요. 어머니 키가 저랑 비슷하시더라고요. 150cm 정도의 작은 키를 가지신 어머니의 몸에게 온 가족이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가 빙판길에 넘어지셨을 때 온 가족 생계가 마비되었던 이야기가 저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마풍락 님과 노혜숙 님은 잘 계시는지 안부도 궁금합니다.  

 

마민지: 〈버블 패밀리〉 개봉했을 때 아버지랑 어머니랑 인디스페이스에서 GV를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어머니랑 저랑 같이 영화를 본 것은 또 처음이어서 아마 조금 마음이 힘드셨는지 크레딧 올라가는데 갑자기 빠져나가시더라고요. 그래도 아버지와는 계속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 진짜 자주 오셨어요. 언제 한 번은 어떤 중년 여성분이 영화 끝나고 계속 박수를 치셔서 뒤 돌아봤더니 주인공 어머니이셨다는 관객분의 후기가 올라온 적도 있고. 오늘도 축하하고 감사드린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박선영: 저도 비슷한 또래고 IMF 키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니까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인데도 생애사가 너무 똑같더라고요. 유복했던 어린 시절과 홈 비디오로 기록되었던 모습들, 그리고 IMF 이후 몰락한 가정, 그 이후 드러누워버린 아버지. 아버지가 누워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나요? 의도하신 것입니까?

 

마민지: 네, 의도해서 찍고 넣은 장면이었습니다.

 

박선영: 가스가 고장 난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드러누우시고 어머니는 물 끓이고 하시잖아요. 그렇게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영화 개봉할 때도 우리 또래 세대들과 이 시기를 공유하고 기억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개봉 이후 그런 경험들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마민지개봉 이후에 공동체 상영을 많이 진행하면서 청년 공간에서 20, 30대 또래 청년분들이랑  주거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주로 우리 세대의 주거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고요. 또 다른 방향으로 청년세대가 부동산 투기를 이어나가는 중년 세대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관객: 영화 안에 개인 정보가 많이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불편해하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마민지부모님께서 처음에는 촬영하는 것을 되게 부담스러워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3년 정도 촬영을 하니 부모님도 나중에는 익숙해지셨어요.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카메라 있으면 바로 옷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나오는 등 불편해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니 직접 계획을 하셔서 먼저 촬영을 하러 나가자고 하실 정도로 친숙하게 생각을 하셨어요. 서울머니쇼에서 쫓겨나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제가 늦잠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깨우면서 오늘 되게 재밌는 행사장에 일을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셔서 촬영을 하러 간 장면입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니까 스스럼없이 찍었지만 편집을 하면서는 감독으로서 윤리적인 부분이 고민 됐어요.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부담스럽거나 싫은 장면은 빼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어머니가 일하시는 모습, 회사에서의 모습도 촬영했고 더 디테일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부분들은 최종편집에서 걷어냈습니다.  

 

 

관객: 〈버블 패밀리〉를 보면 아버지 소유의 땅이 있는 것으로 나오고, 마지막엔 마민지 감독님 소유의 땅이 있는 상황이잖아요. 이에 대해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마민지아버지 땅 같은 경우에는 마지막에 경매로 넘어가면서 끝이 나는, 사실 무용지물이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고요. 제 땅 같은 경우에는, 사실 오늘 오면서 오랜만에 상영을 하니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시세가 올랐나 확인을 해봤는데요.(웃음) 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버블 패밀리〉 상영 뒤로 관객분들이 종종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천에 개발 호재가 있으니까 팔지 말아라이런 조언도 해주시고, 공무원들이랑 같이 공동체 상영을 하는데 국토부 쪽에 있는 사람들도 팔지 말라고 해주셨어요.(웃음) 저한테 이 땅은 기획 부동산으로 산 땅이라서 무용한 땅이긴 한데, 저는 처음 땅을 보러 갔을 때 되게 비판적이었어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청년세대, 20, 30대는 무언가를 소유해본 경험이 전무하잖아요. 부모님이 땅 투기를 쓸데없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땅을 보러 간 카메라 속에 제 모습을 보니 시종일관 너무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내 땅이구나, 이걸로 나중에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지 않을까상상도 하고, 뭔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려보게 되면서 이런 희망이 욕망을 부추기는구나이런 기분을 느꼈어요. 그때 심정적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박선영저도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작은 박탈감을 느꼈는데(웃음), ‘그래도 마감독님은 땅이 있구나, 뭔가 손에 쥔 것이 있구나하면서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위해서 저렇게 부동산을 알아보지도 않고 왜 이렇게 순수하신가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우리는 안다, 이 땅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같은 시대에서 같은 아픔과 역사를 공유하는 세대라는 동질감을 다시 느끼기도 했어요.

저는 오래간만에 〈버블 패밀리〉를 보고 2019년 한 해를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낙인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낙태죄 판결이나 성폭력 판결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한 사람을 피해자아니면 낙태 경험자이렇게 낙인을 찍는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이런 낙인에서 벗어나고 이 구조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버블 패밀리〉를 보면서는 아버지를 내가 실패자로 낙인 찍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영화를 찍고 나서 아버지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지점이 있었을까요?

 

마민지: 영화 개봉 이후로 아버지랑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최근에는 안부 연락도 자주 해서 저희 관계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 여전히 자신의 고민이나 감정들을 표현하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 2년 전에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아버지랑 처음 영화를 봤는데 그 때 비로소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랑 저는 항상 아버지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건데 아버지께서 그날 영화를 보시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일을 하시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셨고 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되신 거니까 마음이 굉장히 복잡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은 아버지한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마음이 되게 힘들어서 그날 밤에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그날 되게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고, 동시에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고요. 그 뒤로 어머니랑 아버지의 캐릭터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완성하고 나서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를 한 것 같아요. 영화가 나온 후 송파구에서 사시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셨어요. 영화에는 제가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나오는데 3년 정도 부모님이랑 살다가 부모님이 LH 전세 임대 주택으로 들어가게 되셨어요. 그래서 세대분리해서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지금은 강제로 독립을 하게 돼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박선영: 해피엔딩이네요.(웃음) 또 다른 질문 있을까요?

 



 

관객: 저희 큰아빠가 주식을 해서 집안을 말아먹은 적이 있거든요.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잘되면 대박이 될 거다,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망하면 대자본이 이익을 가져가는 식인데, 이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많이 공감했는데 감독님은 앞으로 투자를 하실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마민지: 투자하지 않겠습니다. 돈은 땀 흘려서 벌겠습니다.(웃음) 아 그리고 저도 LH 전세 지원에 선정돼서 곧 이사합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짧게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마민지 감독님은 청년시대 자립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마민지저는 혼자 산지는 오래되었는데, 늘 안전망이 없이 절벽 끝에 떠밀리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지금도 사실 LH 전세 지원으로 집을 구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그 집도 구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서울에 집을 구하려면 귀신이랑 같이 목욕해야 될 것 같은 집 밖에 없고, 또 이사를 하려고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쏟아 부어야하는 처지이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떠밀리고 떠밀려서 경기도 외곽까지 밀려나는 상황인 것 같아요. 이런 시스템이나 도시개발의 분위기들이 투기를 부추기고 안전망들을 파괴한다고 생각해요. 청년세대가 바라는 것은 사회시스템이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는 주거 환경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안 되고 있는 것 같고요. 최근에는 LH 전세 임대가 확장되니까 집주인들이 그것보다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반전세라단지, 몇 천만 원이라도 보증금을 더 올린다든지, 이런 식으로 시장 안에서 흐름이 또 바뀌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이런 것들이 규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프리랜서다 보니까 은행 대출도 안되는 처지라 청년이어도 전세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너무나도 구멍이 많고 아직도 요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공동체 상영을 하러 가서 청년분들과 이런 불안을 같이 나누고 각자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여전히 너무나 많이 불안하다 얘기들이요.

 

박선영: 우리 엄마 아빠들이 버블 세대, 버블 패밀리잖아요. 화려하고 영원할 것 같지만 알고 보니 거품이었던 건데, 저는 우리도 버블 패밀리같아요. 버블 위에 있어서 뭔가 늘 불안하고 늘 깨질 것 같고. 그런 불안 속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게 저는 너무 반가웠거든요. 이게 나 혼자만 겪는 불안이나 나 혼자만 겪은 상처나 이야기가 아니라 공통의 역사라는 걸 생각하면 다시 한번 〈버블 패밀리〉의 탄생과 마민지 감독님께 고마움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공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민지제가 가는 곳마다 재개발을 하더라고요. 을지로에서 4년 작업했는데 지금 을지로가 다 밀리고 있고, 은평구 갔더니 증산구 다 재개발되고, 제가 또 불광동에 사무실을 얻어서 들어갔는데 거기도 또 재개발이 된다고 그러고이제 서울 밖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선영: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너무 궁금해지는데요. 이후에 감독님 어떤 활동하실지 궁금해 찾아보니 매드프라이드 미디어 기록단으로 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그때 경험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민지지금 단원분들이 영화를 보러 많이 오셨어요. ‘매드프라이드는 정신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축제고요. 올해는 1026일에 열렸고, 미디어 기록단으로 활동하면서 정신장애인들이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축제를 만들어 가는지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 있는 감정 폭력이나 정신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뤄보려고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이번에도 〈버블 패밀리〉처럼 개인의 삶과 역사가 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될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기록 작업일까요?

 

마민지: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감정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어서 아카이브 자료들을 활용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취미가 리서치라고 하시더니 역시나 아카이빙을 하고 계시군요. 이제 자리를 정리하고자 하는데요. 〈버블 패밀리〉를 보면서 저 또한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면서 성찰하고 다른 방향에 대해서 상상하게 되어서 소중한 시간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그게 안타까웠어요. 부모님이 IMF를 겪은 후에 망가진 삶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 실패자, 낙오자라고 낙인 찍지 않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2019년 마지막 인디돌잔치이기도 한데요. 올 한 해는 마민지 감독님에게 어떤 한 해였는지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마민지: 사실 오늘 인디돌잔치이고 기쁜 날인데 저는 올 한 해가 많이 아팠어요. 제가 올해 삼재였거든요. (웃음) 개봉하고 나서도 대상포진 걸리고, 목도 다치고, 허리도 다치고, 너무 아팠던 한 해여서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어요. 내년에는 조금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박선영: 저희 팟캐스트 출연자이자 마민지 감독님과 같이 인터뷰하셨던 조한진 선생님께서는 질병권이라는 언어를 만드셨는데요. 건강도 중요하지만 잘 아플 권리도 중요하다, 아프더라도 너무 괴로워하거나 감출 것이 아니라 잘 아프자는 말이얘요. 저는 이 말을 올해 습득하게 되어서 참 좋았어요. 감독님도 새해에는 잘 아프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새해 소망도 한번 얘기해볼까요?

 

마민지: 새해 소망은 하나밖에 없는데 제가 다음 영화 기획안을 못써서 피디님한테 계속 혼나고 있거든요.(웃음) 3월이 되기 전에 새 영화의 기획구성안을 쓰고 피디님 말을 잘 듣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영: 여기서 인디돌잔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성대한 돌잔치에 와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마민지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디토크 기록을 마치며, 이 도시의 버블은 정녕 꺼지지 않는 것일지 질문을 던진다. 이 버블이 꺼지지 않은 것은 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의 버블이 잔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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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검열 그리고 사상의 자유  〈애국자 게임 2 - 지록위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28일(토)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경순 감독 |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진행 장영엽 씨네21 편집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해산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애국자게임2지록위마(이하 지록위마)19년 만에 애국자게임〉(2001)의 속편의 이름으로 찾아왔다. 2014년 당시 제2야당이었던 통진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온 지금, 우리는 무엇을 놓쳤고, 또 놓치고 있을까? 경순 감독은 그 사건에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연원을 찾아 사건을 깊이 파고들어간다. 혐오와 검열의 시대에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헛된 이상일까? 검열을 통해 우리는 과연 이득을 얻고 있을까? 혹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일까? 장영엽 씨네21 편집장과 경순 감독, 그리고 전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 의원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영엽 씨네21 편집장(이하 장영엽): 두 분 관객 여러분께 인사 말씀 먼저 부탁드릴게요.

 

경순 감독(이하 경순): 안녕하세요. 저는 지록위마 영화 만든 감독 경순입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이하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이정희 의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장영엽: 두 분 다 공식석상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나오시는 것 같아요. 특히 극장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나오셨을 텐데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는지 제일 궁금합니다.

 

이정희: 영화는 지난 12월 초에 영화제에 가서 봤고요. 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매우 많은 분들이 등장해서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 질문들이 나에게 유리한 질문인가, 유리하지 않은 질문인가를 떠나 우리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이런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과거에 제가 이만큼 힘들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영화에 나온 분들, 혹은 구속되셨던 분들의 가족들, 또 그 밖의 많은 분들께서 엄청난 고통을 보여주셨고 그 분들의 고통이 저의 것보다 훨씬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은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장영엽: 통진당 해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이정희 대표님 목소리도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통진당이라는 당을 생각했을 때 대표님이 상징적인 아이콘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정희 의원이나 이석기 의원은 등장하지 않잖아요. 캐스팅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감독님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는지요?

 

경순: 캐스팅의 비화가 많습니다. 이정희 대표님도 영화를 만들며 한 번 뵀고, 이정희 대표님이 이야기의 한 장면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만약 영화에 그 두 분이 나왔다면 그 두 명의 이야기로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영화가 대박이 났을 수는 있겠으나(웃음) 일단 환경이 안 받쳐줬잖아요. 이석기 의원도 석방되지 않았고, 이정희 대표님도 건강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드셨고요. 아마 이정희 대표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의 문제라기 보단 10만 당원이 있는 당의 대표로서의 책임감, 이런 진보 정치가 필요하다고 믿어주었던 시민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 크셨을 거라고 봐요. 그걸 소모하는 방식으로 영화가 가는 것보다는 그 사건에 대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용을 쫓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굉장히 비싼 배우들을 놓치게 됐죠.

 




장영엽: 그럼 그때 이정희 대표님은 감독님을 만나 통진당 해산에 관련된 다큐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정희: 어떤 영화가 될지는 그 당시에 예상하기는 어려웠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인터뷰를 담아내신 것에 목적하신 바가 있다고 느꼈어요. 드라마를 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의 회상을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할 수도 있고, 많은 영화적인 기법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힘들 수도 있는 방식으로, 계속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인터뷰로 거의 2시간을 채우잖아요. 그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느꼈어요. 이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나씩은 하게 되었을 테고, 그 당시에 자기 나름대로 어떤 행동들을 했지만 내 생각은 이랬어, 내 행동은 이랬어, 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어,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달리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사건이 그냥 끝나버렸잖아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가 관객들에게는 결코 편안하지 않은 선택일 수 있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고 다시 생각해야 될까, 토론해야 될까 제시하는 꽤 좋은 기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장영엽: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보통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저변의 이야기들이 담긴 다큐 같은 경우에는 관련자들의 인터뷰나 기록 영상 등 정보들이 굉장히 치밀하게 많이 들어가는데,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개인의 목소리들을 담아내신 거잖아요. 그리고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있어 굉장히 다양한 테이블을 만드셨어요. 색다른 관점에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는데요. 감독님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다룬 문영심 작가님의 이카로스의 감옥이라는 책을 읽은 뒤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책의 어떤 점이 특히 마음을 끌었는지 궁금합니다.

 

경순: 제가 통진당 해산 이야기를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 투덜거리고 다녔었어요. 그러다 저희 집에 레드마리아〉(2011) 애니메이션을 작업해줬던 친구가 놀러왔는데, 이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2014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거예요. 20144월에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저는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씨가 진행한 위안부 문제, 3의 목소리라는 포럼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촬영하던 중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듣게 됐고, 그 직전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4.16이 있고,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제가 찍고 있던 영화의 주인공은 고소를 당하고, 국정원 댓글은 계속 시끄럽고, 그런데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사건까지. 그 해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는데, 1219일 통진당 해산이 완전히 방점을 찍어버린 거죠. 그 해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알던 친구들 두 명이 죽었어요. 사회적인 이슈의 슬픔이 너무 크면 개인의 슬픔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더라고요. 이런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겪을 것 같은데, 그런 큰 사건들이 터져 나올 때 저의 개인적인 비애들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굉장히 복잡했던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셔서 내가 너무 슬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월호나 통진당 해산 이야기를 더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뒤풀이든 술자리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요. 그냥 저 혼자 투덜거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던 차에 누군가 제가 알고 있던 문영심 선배의 책이라며 이카로스의 감옥에 대해 말해줬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 책은 주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다루지만 사실상 그 사건으로 인해 통진당이 해산됐기 때문에 기록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저는 당원도 아니었고 통진당에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었던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사건을 주목했다는 사실이 크게 반가웠어요. 문영심 선배와 2년간 서로 바빠서 만나지 못했는데 제가 먼저 연락해서 선배를 찾아갔어요. 저도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문 선배의 북콘서트를 다니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되고 공부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꼭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안 해도 누군가가 기억하고 말하고, 또 그걸 기록으로 표시해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장영엽: 이 영화를 보면 다섯 개의 테이블이 나와요. 언론인, 인권활동가, 전 통진당 의원, 변호사, 구속자들. 이렇게 테이블을 나눌 때 어떤 기준으로 출연진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정희 대표님께서도 이 영화가 새롭게 구성한 테이블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부분이 있었는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경순: 여기도 많은 관객 분들이 계시잖아요. 제가 관객이라고 호명하지만 각자가 속한 집단이 있겠죠. 학교나 회사나 다 각기일 텐데, 각자가 속한 그룹이 가진 문화가 있고 대화의 경향이 있잖아요. 우리 사회 속에서 그런 그룹들이 점점 더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룹마다 목소리가 편향되고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통진당 해산이 터졌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전체적으로 이야기되는 게 아니라 끼리끼리 이야기 되는 느낌. 제가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실제로 많은 관련자 분들, 그러니까 여기서 인터뷰했던 다섯 그룹의 사람들이 처음엔 별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사회가 낙인을 찍은 혐오의 대상에 대해 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사실은 그 혐오에 동참했기 때문에 또 말하지 않게 되고. 가족들도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영화로 잠시 보는 거지만 실제 당하신 분들은... 상상해보세요. 국정원에서 몇 십 명이 찾아와 업무가 마비되고, 며칠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야 하고, 갑자기 집에 쳐들어오고. 다시 상기하는 게 너무 힘드신 거예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기존 방식의 인터뷰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구나. 그래서 함께 상황을 겪었던 분들을 모아서 이야기하게끔 했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거예요. 사실은 사전 취재라고 생각하고 그룹 별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방식이 되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사람을 무작위로 섞는 것이 아니라 같이 친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룹으로 묶어서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원래 일곱 그룹이 있었는데, 편집하면서 다섯 그룹만 나가게 됐습니다.

 

이정희: 당시 한겨레에 있었던 허재현 기자가 2013년에야 통진당 비례경선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사실관계가 완전히 거꾸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건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정당해산결정 이후에 언론사도 해산될 수 있겠다 싶어 서로 불안해하셨다는 이야기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들었죠. 확실히 그 시기가 위태로운 순간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요. 그 상황을 국민들이 어떻게든 극복하고 계속 민주주의를 향해 진전해나가고 있으니 참 대단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큰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나오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가깝게 알고 있다 보니 새롭게 듣게 된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는데요.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 그리고 이태호 선생님의 고민을 들으면서 저는 그 질문에 제가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우리 사회에서 두 분의 말씀과 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가고, 그게 굉장히 의미 있는 탐구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 사태의 중심에 있었던 저로서는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는 단순한 사건의 당사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정치인이었고, 국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이해시키고 어떤 행동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는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했고, 어떻게 이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지 저나 제 주변이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이나 감정의 앙금을 가지신 분들과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오랜 세월을 거치고 가까이 있다 보면 정도 쌓이지만 앙금도 쌓이잖아요. 그 앙금에서 생긴 차이들이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질 때는 큰 절벽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과 어떻게 같이 행동할 수 있을지 접근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을 참 못했다는 점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홍세화 선생님이나 이태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시는 그런 상황(통진당 해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고 다른 감정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들을 이해해가면서 심각한 혐오나 차별, 민주주의 파괴로 나아가지 않도록 어떻게 함께 행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모아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먼저 생각을 해보고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경순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저는 너무 좋아요. 홍세화 선생님의 그 말씀은 두세 시간의 인터뷰를 하던 중 나온 거거든요. 물론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지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홍세화라는 한 사람도 과거에 어마어마한 사건을 겪고 망명생활을 하다가 돌아와서 거의 20년 정도 생활을 하신 거고요. 그 동안 겪으신 일 중에 이 진보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또 빠질 수가 없어요. 그 과정에서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으신 거예요. 좀 더 나은 세상,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끼리 왜 서로에 대한 세심함이 없는가, 라는 부분 때문에 몇 년을 너무 힘들어 하셨던 거죠. 이 영화에서는 통진당 해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 대화를 실었지만 이정희 대표가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말을 공격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 부분을 불편하게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저는 지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 부분들을 관객들이 같이 읽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한 사람과 문제가 생기거나 입장이 달라지면 같은 자리에 모이지 않으려고 하고 굉장히 좋은 취지의 자리가 있어도 나가지 않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그 일상화의 최고치를 보여준 것이 통진당 해산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 문화에서 그런 침묵이 나온 것이고, 그런 일탈이나 빌미에 치를 떠는 사람들이 나온 것이죠.

 

이정희: 누군가는 벽을 낮추고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나아가야 하잖아요. 그 누군가가 나였으면, 우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영엽지금 두 분이 정말 좋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이정희 대표님 말씀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건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어쨌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그냥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 과거의 사건이 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고민거리를 남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다들 깊으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정희 대표님께서 집필하신 저서가 그 고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라는 책을 출간하셨어요. 혐오표현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혐오표현이 어떻게 확산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는 이것이 통진당 해산이라는 사건을 겪었던 이정희 대표님의 현재적인, 그리고 미래적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책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정희: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라는 책을 내게 된 이유는 사건의 과정에서 구속되신 분들, 가족들, 통진당과 함께 일하셨던 분들이 '종북', '빨갱이'라는 공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저 역시 그런 공격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죠. 그것에 대해 소송을 냈고 계속 이기고 있었어요. 현실에서 종북 공격은 사라지지 않지만 적어도 법정에서는 계속 이기고 있었는데 201810월에 이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어요. 너네 정치인이잖아. 잘 알려진 유명인이잖아. 너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종북이나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하고 참아야 해.”라는 내용의 판결이 나온 거예요. 물론 종북, 주사파, 이런 용어들은 정치인으로 하여금 토론의 공간에 함께 있지 못하도록 하는, 배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소수 의견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 이후에 실제로 많은 소송 사건들이 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이어가는 식으로 판결이 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사건에서 판결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 판결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혐오표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조금 더 많은 분들께서 이런 주장을 접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내게 된 것인데요

제가 책에서 정의한 혐오표현은 이렇습니다. 그냥 불쾌한 이야기, 또는 매우 거친 이야기를 모두 혐오표현으로 지칭한 게 아니라, 정확히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소수 집단이나 그 구성원들 우리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진보정당의 당원, 노동조합원, 이전에는 호남 지역 출신 분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는데요. 이렇게 역사적, 구조적으로 형성된 소수 집단에 대해서 다수 집단이 너는 이 사회에 함께 있으면 안 돼. 너는 이 사회에서 축출되어야 할 존재야.라는 내용으로 차별하거나 배제하거나 표시를 하는 것을 혐오표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제가 사건에서 시정을 구했던 것은 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혐오표현만 다뤘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우리는 알죠. 저와 통진당을 구성했던 사람들에게 그런 혐오표현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은 20123월부터였고요. 20124월에 통진당이 국회에 다수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던 때에 당시 이명박 정부, 여당, 국정원, 극우 언론들로부터 쏟아지던 공격이었는데 29개월 만에 정당 해산까지 이어져서 정치적 축출이라는 현실로, 합법적 절차를 동원한 현실의 폭력으로 나타났으니까요. 혐오표현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현실에서 본 것이죠

이런 취지로 혐오표현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이 책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종북이라는, 사상과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혐오표현 논의에서 빼는 것은 또 하나의 배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혐오표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사상이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한국전쟁을 전후로 학살되었는지, 그 역사를 잊고 있습니다. 빨갱이,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 어떻게 조작과 고문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는지 역사는 말하지 않죠. 그래서 혐오표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한국 사회에서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 - 종북, 빨갱이라는 표현을 그 범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또 하나는 혐오표현을 받는 피해자들은 모든 혐오표현의 피해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북이라는 혐오표현의 피해를 받고 있는 자들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을 한다거나 하지 않고요. 혐오표현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 혐오표현으로 이익을 보는 극우정치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두 가지 지점입니다.

 

장영엽: 대표님은 대중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이 분이 법률가라는 것이 많이 느껴져요. 법률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혐오표현에 대해 잘 해석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덧붙여서 질문을 좀 드리자면 제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혐오표현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정희: 저는 법률가이기도 하면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제가 그리는 법적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혐오표현을 말하는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처벌하라는 형사처벌 조항만이 법적 대안으로 제시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 정말 많은 말들이 쏟아지잖아요. 그걸 다 형사처벌로 규제하기도 너무 힘들고요. 제가 아까 모든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이 이 혐오표현을 주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혐오표현을 주도하는 세력은 결국 극우정치세력입니다. 극우정치세력이 일제강점기 이후 종북, 빨갱이 몰이를 시작했던 데에 연원이 있고요. 거기서 많은 혐오표현들이 극우 종교 세력, 사회 세력으로 쭉 이어져 왔던 것이죠저는 그래서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처벌을 집중할 것을 제안합니다. 정치인, 정당의 책임 있는 간부, 책임 있는 등록된 언론사의 언론인, 사실 이 정도만 정확히 규제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건 혐오표현이니까 하면 안 되겠구나하는 사회적 기준이 생길 것이거든요. 그런데 책임자에 집중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다 처벌되어야 할 범죄자로 돌리고 일을 풀어가려고 하면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해법으로 이 일을 풀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 차별금지법 제정 굉장히 필요합니다. 형사처벌은 사유를 한정해서 정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형사처벌의 사유는 최소한으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달리 차별금지법은 말하자면 국가인권위원회나 대학교의 차별 시정 기구, 대학의 인권 기구 같은 곳에서 문제 발언을 한 학생, 혹은 사회 구성원에게 시정을 권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고 그런 일들은 굉장히 폭넓고 활발하게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정확히 처벌하고,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혐오표현인지 아닌지를 가려주고 기준을 정해주는 일은 폭넓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장영엽지금 이렇게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으신데, 계속 변호사로 활동만 하시기에는 좀 아쉽기도 한데요. 혹시 다시 입법 활동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정희: 입법을 할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죠.(웃음) 제가 입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물론 국회의원을 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건 또 많은 시민들의 권리이기도 하잖아요.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리, 그런 권리를 국회의원이 독점하는 것보다 일반 시민이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지금은 더 관심이 많습니다.

 




장영엽이제 2019년이 지나가는데, 다시 2000년대를 돌아보건대 애국자 게임1편이 나온 지 거의 20주년이 된단 말이죠. 그때는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레드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셨어요. 20주년이 다 된 시점에 속편이 나왔는데, 또 다른 방식의 콤플렉스들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감독님께서는 1편과 2편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방향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아요.

 

경순: 가장 큰 건 제가 너무 많이 늙었다는 거죠. 20년 전에는 아주 팔팔했고, 영화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열정과 치기도 있었고, 정치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이젠 20년의 무게라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아주 많이 변화했죠. 한국 사회는 태어날 때부터 계속 격난이었지만요. 97년 IMF가 터졌을 때, 그런 정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에 있는 돌반지, 결혼반지 다 해서 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저는 나라 살리기 광풍이라고 생각하는데, 국민들이 갖고 있는 애국심이 어떤 식의 애국주의로 나가고 어떤 식의 민족주의로 나가는지, 그런 부분들을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애국자게임1편은 유쾌한 영화이기도 하고, 애국가부터 시작해서 다 뒤집어서 한번 보자는 영화였는데 통진당 해산 사건과 문 작가님의 책을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애국자게임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과거 한국 사회는 진보와 우익이 나뉘어서 굉장히 진보적인 토론이나 담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IMF를 거치고 구조조정이 되고 한반도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20년 동안 한국사회가 조각났어요. 단지 노동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계, 문화계, 학술계, 모든 게 다 시장 논리에 던져져 버린 거죠. 영화에서 박래군 선생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지만, 진보 진영도, 운동권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게 된 거죠. 더 많이 당원들을 모으려고 하고. 진보 정당에서 진보 정치를 이야기하시는 분이 정책보다도 당원 확보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거든요. 시민 단체도 그렇고. 진보 진영도 쪽수 모으기에 우선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영화판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영화계도 완전히 초토화가 된 거죠. 서로 경쟁하고 제작비를 공모해서 누군가를 이겨서 받아내는 방식으로. 학교도 그렇게 됐고요. 그러면서 인권 감수성은 떨어지는데 엄청난 혐오표현의 자유는 커지고, 신자유주의 경쟁 문화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죠. ‘내가 이런 발언을 했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하는 식으로요. ‘내가 이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면 이거 지원 못 받고 떨어지는 거 아니야?’ 모든 것들이 작동 방식이 비슷한데 우리가 이걸 감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문화 속에서 진보 진영도 굉장히 분열되고, 자기가 무언가를 발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졌다고 봐요. 사실 서명은 쉬워요. 저 같은 일개 감독한테도 서명 요청이 오고, 저는 늘 제가 동의하는 문제인가 판단을 해보려고 하는데도 자세한 내용은 잘 알 수 없는 채 서명을 하게 돼요. 그 서명이 연대로 올라가고, 그 리스트가 블랙리스트가 되고. 이런 과정들이 사실은 너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그럴 만 해서 블랙리스트가 됐으면 자랑스럽기라도 할 것 같아요.(웃음) 근데 그것도 아니에요. 실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단체, 사람들은 다 그냥 박근혜를 반대해서, 뭐를 반대해서, 이런 이유로 올라가 있는 거예요. 이건 정말 우리의 수준이 누추한 거죠. ‘이렇게까지 초라해질 수가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하나의 당을 해산시킨 사건 속에서 저는 봤던 것 같아요. 단지 법률적인 문제와 다르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가능했던 이유, 이 사건을 용인하게 했던 부분들이 무엇인지 더 세심하게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우리 각자를 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관객 : 반성이 많이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용기 있는 주제를 다뤄주셔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하시면서 원래 그룹을 나누실 때 일곱 그룹을 구성하셨다고 했는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다른 두 그룹들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또 검열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는데, 이 작품을 만들면서도 제작자로서 어디까지 검열해야 하는지 고민하신 부분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경순: 이 사건이 2013512일에 있었던 이석기 의원의 정치 강연이 문제가 된 거잖아요. 그걸 몰래 녹취를 해서 3개월 뒤에 터트린 건데, 변호사님들도 말씀하시지만 그 사건이 만약 정말 문제가 되는 내란 음모 사건이었으면 그때 바로 처리해야지, 나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3개월 동안 묵혀놨다가 터뜨릴 순 없어요. 그러니까 이미 시작부터가 불법이었고 잘못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녹취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그 내용, 그것도 분반토론에서 나온, 그것도 이상호 씨 개인이 갖고 있었던 트라우마와 연관된 이야기를 가지고 부풀린 건데요. 정말 코미디인 거예요. 그래서 강연에 참석했던 분들을 모아서 실제로 강연회가 어땠는지 좀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강연 내용이 파일로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 참여했던 분들이 실제로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서 그 분들을 네다섯 분 모아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강연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사실 굉장히 좋았어요. 그 이야기를 처음에 너무 쓰고 싶었는데, 그러면 이 영화가 굉장히 사건 중심으로 가겠더라고요. 좋은 인터뷰였지만 결국은 마지막에 덜어내게 된 것이죠. 그게 하나의 그룹이었고, 또 다른 한 그룹은 가족들이었죠. 가족들이 당한 일들은 사실 말로 할 수가 없죠. 만약 가족이 없으면 그 수많은 사건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족을 팔아먹는 사회가 대한민국인데. 이 분들이 이 사건의 증인들이라고 생각해요. 사건은 통진당에 관련된 것이지만, 이 사건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목격한 사람들은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필로그에 그 분들을 배치하고 증인석에 앉아 있는 가족들의 증언을 듣듯이 찍은 거예요. 이 분들에게는 어느 한 사건도 북받치지 않는 사건이 없는 거죠. 그때 8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는데 눈물바다였어요. 감정적인 호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신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건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검열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검열을 특별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검열 보다는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자제하고 덜어내는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굉장히 말렸어요. 당사자도 아닌데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다들 우려했어요. 어쨌든 제가 특별하게 영향력이 있는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그런 것들이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 수 있을지, 창작자들이 갖는 고민들을 했죠.





장영엽: 이제 시간 관계상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표님, 감독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이정희: 이렇게 큰 극장일 줄 몰랐어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지금을 살잖아요. 과거의 일을 다시 기억해내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 내일을 살 것이고, 어떻게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까, 어떻게 더 같이 살아갈까에 대한 숙제를 저 스스로 안고 있습니다. 제가 그 숙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고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 어려우나 천천히 노력하고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경순오늘이 계획된 인디토크로는 마지막이지만 지록위마상영은 계속됩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많은 분들께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상영 시간을 찾기 힘들긴 하지만, 인디스페이스나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에 계속 일정이 업로드될 것 같으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지록위마가 하나의 사건을 관통하면서 한국 사회가 고민하는 많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오늘 이정희 대표님이 같이 나와 주셔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잼 다큐 강정이라는 영화를 2011년에 만들었는데, 2촬영 때문에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도청 앞에서 농민들과 어우러지고 연설하시는 이정희 대표님을 뵀거든요. 저는 그때 좀 놀랐어요. 그 전의 이정희 대표님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때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진보 정치가 바뀐 느낌이 들었거든요. 신선함이 있었어요. 진보 정치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바람에 부합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반가움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는 것도 운동권 같지 않고...(웃음)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말도 저렇게 잘하고, 거기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소통하고 서로 예뻐하는 건지. 불과 몇 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진보 정치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말도 안 되는 커다란 일들이 벌어졌는데, 저는 이런 분들이 좀 더 진보 정치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정치를 하시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작가여도 좋고, 변호사여도 좋고, 그런 경험들을 많이 나누면서 진보라는 진영의 개념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마지막 토크를 이정희 대표와 같이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요. 여러분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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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운 나날  한줄평


김윤정 | 이 여행의 끝은 결국 ‘영화로운 나날’

김정은 | 영화로운 우연과 기적 같은 만남이 이끄는 사랑스러운 나날들

송은지 | 둘이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

김현준 | 미처 잊고 지낸 일상의 소소한 달콤함그리고 사랑스러움







 〈영화로운 나날  리뷰: 미처 잊고 지낸 일상의 소소한 달콤함, 그리고 사랑스러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일상의 극적인 순간을 목도했을 때, 우리 입에선 저절로 영화 같다란 말이 나온다. 우리네 일상 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영화에 빗대는 표현은 암암리에 일상을 권태로이 받아들이는 우리의 무의식을 방증한다. 쳇바퀴 마냥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한 일상의 무감각은 현실을 영위하는 데 불필요한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영화영화로운 나날은 작금의 우리처럼, 일상의 가치를 미처 자각 못한 한 인물에게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순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낸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일깨워준다. 

 


마음만은 '천만 배우'지만, 현실은 오디션 보기 급급한 영화는 과학교사로 근무 중인 아현과 나름대로 괜찮은 동거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둘 사이에 발생한 오해와 함께 영화는 집에서 쫓겨나며 이곳 저곳을 배회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가뜩이나 심란한 와중에 기대했던 오디션 마저 낙방했다는 메시지는 영화의 속을 제대로 뒤집어놓는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 온 것만 같던 영화는 학과 선배 석호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이름 그대로 영화로운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영화로운 나날은 지극히 사사로운 우리네 일상이 한 편의 영화로 다가올 수 있다는 순진한 속내를 주저 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영화는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시작과 동시에 소개한다. 자신이 출연한 독립영화 상영회 GV에 게스트로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오디션에서 선보일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집약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에게 있어 지극히 사사로운 일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아현과 저녁식사를 하며 그 날 있었던 일을 가볍게 회고하는 장면을 통해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엇나갈 수 밖에 없는 성격차이를 자연스럽게 묘사한다. 과학교사라는 이유로 아현이 지나치게 이성적이라 지적하는 영화와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아현의 모습은 그 후 벌어질 둘 사이의 갈등을 암시하는 복선인 셈이다. 그렇게 영화는 피치 못할 갈등을 통해 주인공이 맞이할 영화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주인공의 여정은 흡사 어느 무명 배우의 일상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나눈 하나의 단편영화 모음집을 연상시킨다.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학교 선배 석호와의 만남은 무명 배우라는 현실과 맞닿은 '웃픈' 상황들을 나열한 듯하다. 여기서 제논의 역설을 상기시키는 근거 없는 논리(이름하여 안주의 맥주화’!) 후배에게 부탁하기 낯부끄러운 개인사를 일말의 주저 없이 영화에게 부탁하는 석호의 존재는 영화의 분위기를 적재적소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여정, 누나 혜옥과의 일화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영화의 연기력을 십분 활용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극한다. 이와 동시에 그간 잊고 지냈던 고모할머니의 존재를 떠올리며 무심코 지나쳐온 일상이 지닌 값어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영화로운 영화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영화를 배우로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준다. 숱한 좌절을 안겨준 배우의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를 감동적으로 제시한다. 영화는 그렇게 무명배우라는 설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소소한 순간들을 곳곳에 포진시킴으로써 무심코 지나친 일상을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통해 부각시킨다.

 




흥미로운 건 주인공을 둘러싼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흡사 그가 꾸는 꿈마냥 어딘가 현실에 동떨어진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석호의 여자친구는 놀랍게도 영화를 석호로 인식하고, 영화는 여자친구 앞에서 설파한 자신의 배우론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뜻하지 않게 마주한다. 누나와 함께 고모할머니의 장례식을 찾아간 영화 앞엔 돌아가신 고모할머니가 나타나 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자신과 춤을 춰달라는 소원을 말한다.(보기만 해도 폭소가 나오는 조현철 배우의 막춤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잊고 있던 과거를 반성할 기회를 마주한다. 마지막으로 말 그대로 자신을 천만 배우처럼 인식하는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가 등장하며 영화가 그토록 바라는 환상이 현실로 이뤄진다. 이렇듯 현실과 동떨어진 에피소드들을 통해 팍팍한 현실로 인해 미처 실감 못했던 일상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미처 포용하지 못했던 지난 일상들을 가슴에 품기 시작한 영화아현과의 갈등을 봉합하며 종종 마주하는 인위적인 로맨스 영화들에선 쉽게 발견하기 힘든 포근한 감성을 전달한다.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소품들을 통해 일상의 보물 같은 순간들을 소소하게 말한다. 영화와 아현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석호의 가지튀김 일화나 고모할머니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된 근원인 로봇 장난감, 그리고 사인을 요청하는 배우 태경과 휠체어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 등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감성과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더불어 자칫 거창할 법한 이야기를 인물의 특성에 알맞게 각색한 점, 조현철 배우를 비롯한 여러 주조연의 연기는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드는 귀여움을 유발한다. 보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게 만드는 영화는 추위로 인해 얼어붙은 관객의 감성을 포근하게 감싸주며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체감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로운 나날은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일궈낸 한 편의 마법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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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마주할 때, 던져야 할 질문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흥순 감독

진행 이승민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지난 1210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상영 후, 이승민 평론가와 임흥순 감독이 참석한 인디토크가 진행됐다. 임흥순 감독의 이전 작업과 이어지는 결을 가진 이 작품은 이념적 갈등이 극심했던 한국 현대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빨치산이었던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세 인물을 소환하여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제목의 우리갈라놓는 것들이 품고 있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여 임흥순 감독의 작품 속 여성 인물들과 공간의 이미지, 그리고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의 작업의 흐름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

 





이승민 평론가(이하 이승민): 지금부터 감독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무엇이 갈라지고 무엇이 갈라지지 않았는지, 심도 있게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날씨도 춥고, 미세먼지도 엄청난데도 이 자리에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2017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먼저 소개했던 작품이에요어찌 보면 미술관에서는 되게 영화 같은 작품일 수 있고극장에서는 되게 미술 같은 작품일 수 있을 것 같아요극장의 관객으로서도미술관의 관람객으로서도 이 영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난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렇게 양쪽을 넘나들되양쪽 모두의 특성을 받아내는 방식보다는 각각의 공간에서 반대의 지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궁금하고 흥미롭습니다.이 작품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됐는지, 또 영화로 만드실 때 미술 전시와는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두고 만드셨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흥순): 이번 영화가 저의 4번째 장편 개봉작인데요. 항상 장편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미술관에서 펼쳐놓고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현대차 시리즈개인전이 있었어요. 저는 이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이 영상물을 전시로 보여준 이후에 장편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냈어요. 제가 미술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현장이나 일상 공간 등으로 들어가서 일반 시민과 함께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을 좀 더 다양한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미술관을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공간, 연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이나 세트장, 소품실, 의상실 이런 컨셉으로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냈고요.

그렇지만 보신 이 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에 대해 확정적인 건 없었어요. 미술작품 안에서는 전시를 준비할 때는 출연한 배우님들이 자기 얘기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전시의 관람객들은 이분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배우로만 알고 있었어요. 저도 거기까지만 말씀드렸고요. 이분들의 출신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런 맥락이 숨겨져 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전시를 한 이후 배우들의 배경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들의 과거 이야기 또는 분단의 상황을 현재로 끌어오려면 배우들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고 다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지금과 같은 영화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전시 같은 경우는 영화 보다는 파편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지나 사운드 등을 더 중심에 두었어요. 또 전시에서는 영상물을 3채널로 보여줬고 뒤편에는 이분들의 삶이 나열된 그래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앞에서 영상들을 보면서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느낌은 전달이 된다면, 반대편으로 나와서 삶의 그래프를 보면서 보시는 분들이 다시 한 번 편집을 하실 수 있는 거죠. 그렇게 관객이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미술관의 장점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극장은 아무래도 움직임의 한계도 있고 일정 시간 관객들을 가둬놓는 면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서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이승민: 이 영화와 미술 작품을 같이 보다 보면, 제목은 갈라놓는 것들인데 사실은 갈라놓기보다는 분화한 것을 분리하지 않고 계속해서 엮어 나오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속에 미술의 영상이 들어있고 미술의 영상 속에 다시 영화가 들어가 있고 또 전시장 속에 영화의 촬영장이 거의 다 담겨 있잖아요. 그리고 전시를 정식 오픈하기 전에 먼저 전시를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주셨잖아요. 그 과정을 보면서 전시라는 것은 언제나 완결성 있는 완성품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과정 역시 보여줄 수 있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전시 공간에 가서 거대한 영상을 만났는데 영상 안에 등장하는 물품들이 또 그 공간의 설치물로 존재하는 거예요. ‘이것이 다 세트장인가라고 생각하고 보니 김동일 할머니의 옷들이 쫙 펼쳐져서 마치 의상실처럼 있었고요. ‘어떤 게 진짜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경계가 계속 무화되는 상황이 재밌고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 말씀대로 영상을 보고 가면 뒤에는 그분들의 삶의 그래프가 있는데, 오늘 보니 영화에는 그 그래프를 보고 있는 재연배우들이 있어요

마지막 장면들도 정말 인상적인데요. 세 명의 배우들이 각각의 다른 표정을 지으면서 갈라져 있지만 그 배우들을 보여주고 실물의 할머니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가 선명하게 갈라져 있는 것 같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누구의 이야기인지 가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잘 갈라지지 않게끔 감독님께서 안과 뒤를 잘 엮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까 시작하면서 무엇이 갈라지고, 무엇이 갈라지지 않았는지라고 농담처럼 던져보았는데 감독님께도 제목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우리가 무엇인지, ‘갈라놓는 것들이 또 무엇인지, 각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임흥순: 작품 기획을 2017년도 1월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전해 201610월부터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광화문, 서울역 등지에서 두 달 동안 계속 이어졌죠. 저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곳에 열심히 참여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저의 집이 부암동이라 그곳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고 걸어가면서 종종 그 풍경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을 계속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목을 떠올리게 됐어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무엇일까?’ 굉장히 단순한 생각이었죠. 당연히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국가나 분열된 지점들이 있지만, 한국은 극단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심한 것 같아요. 한국은 유독 이념적인 문제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전 작업들을 하면서도 느껴서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거든요. 비념(2013), 위로공단(2015), 려행(2019) 등의 작업을 하면서 그 바탕에는 이념적인 문제가 굉장히 크게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하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그때였죠.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를 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것은 역사이기도 하니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을 생각했어요. 일제강점기, 해방, 미소 통치기, 미소 군정 통치기, 남북으로 갈라진 상황들을 생각하다가 정정화 선생님과 김동일 선생님 두 분을 떠올렸죠. 기획을 하던 시기에 독일에서 그룹전이 하나 있었는데, 북한을 주제로 한 작업을 상영했고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함께 참여했던 작가 중 한 분이 어머님이 빨치산 출신인데 혹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고계연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 분의 이야기가 그려졌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연결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작업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승민: 세 분이 현 시대, 오늘을 돌아보는, 일종의 키워드로 감독님께 오셨잖아요. 그래서 이 세 분을 엮어서 한국 현대사를 보게 만들어 주셨는데요. 기존의 작품 비념, 위로공단에서는 여성을 소환해서 이야기되어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분들의 삶을 역사에 기입하게끔 해주셨는데 이번 작품의 세 분은 감독님의 작품에 나오기 이전부터 이야기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잖아요. 책으로도 기록된 이야기들인데, 기존에 감독님께서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은 어찌 말하면 이름 없는 분들은 아니신데요. 이분들을 소환하신 이유가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임흥순: 지금 이야기하신 대로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분들이 저에게 오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승민: 그렇죠. 때로는 선택하기도 하고 선택받기도 하는 것이 저희의 삶이겠죠

 

임흥순: 세 분은 자서전이나 구술서가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얘기된 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4.3 무장대에 생존자가 거의 없는데 김동일 선생님께서는 생존자 몇 분 중 한 분, 또 여성인 한 분이시거든요. 또 빨치산, 독립운동 경험이 있다 해도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또 일종의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들의 활동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남성들이 해온 것에 비해서 이분들의 활동을 낮게 보아지는 지점들이 있는데 저는 그 지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어 정정화 선생님은 총을 들고 싸우시지는 않으셨지만 그 활동들을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일을 하신 분입니다. 사실 일상이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활동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분들의 삶이 이야기가 되었어도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거든요. 여성으로서 대표적으로 이야기된 인물들이지만, 남성들과 비교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에 완전히 무명의 인물들은 아니겠지만 그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승민: 실제로 거대 역사에서 누군가를 호명하면, 거의 남성들이고 여성들의 존재는 없을 리가 없는데도 잘 보이지 않죠. 그들이 과거에 호명되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호명된 것은 아닐 수 있고요. 또 궁금해지는 것은, 감독님께서 이전 작품에서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당사자의 주변인들, 자식, 동료들의 목소리가 많이 등장합니다. 세 분 중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김동일 선생님 같은 경우는 그 언어를 저희가 명확히 받아들일 수 없고 어느 순간 사라지시고요.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 당사자에게 집중하면 그들이 주인공이 되고 저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파고들게 되는데요. 이 작품의 경우 주요 인물들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고, 또 명확한 목적이 있는 방식의 인터뷰가 아니어서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저분들은 왜 만난 건지 관객으로서 궁금한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구상하면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임흥순: 이야기하셨듯이 과거에는 당사자의 목소리, 표정을 이전에는 많이 보여드렸다면 이번에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이 형식을 만든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변분들, 가족이나 친척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죠. 저는 이전에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그렇고 이런 영화 작업 과정에서는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로공단을 할 때도 금천구 지역 주민분들, 주부님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그러면서 이분들 스스로가 공간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중요했고 이 과정을 보는 제가 느끼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들뿐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할 때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것들이 작업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분들 스스로가 세 인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때 관객분들도 이들의 표정, 제스쳐를 통해 그것을 전달받는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들기 전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 영화로 끝이 아니라 영화의 재현 장면들이 이어질 때 관객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승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당사자의 이야기보다는 주변의 여러 사료와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게 되고, 이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그것들이 모여서 또 다른 역사가 되잖아요. 그래서 영화에서 복원사였던 따님이 어느 순간에 의미가 굉장히 커지는 거예요. 그분이 ‘50년이 지나고 나서 나의 흔적을 없애고 난 다음에 진짜로 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복원사의 역할이라고 하셨을 때, ‘이것이 어쩌면 다큐멘터리 기록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까아니면 오늘날 무언가를 기록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진짜 역사라는 것을 만날 때 어떤 것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기가 막히게 그분이 어머님의 역사를 가지고 책을 복원하시는 것을 보면서 감독님께서 그런 대상을 만나신 운과 영화가 그렇게 이어진다는 사실이 소름이 돋더라고요.(웃음)





관객: 영화를 보며 지금은 잊히고 돌아가신 여성을 알게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또 돌아가신 여성 또는 이전 세대를 살아간 여성과 현재의 여성들이 갈라져 있던 부분을 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요. 숨겨져 있고 잊혀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남성으로서 조심스럽거나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관객분들의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이야기가 대답하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매번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되지만 하면 할수록 너무 뻔한 대답이지 않을까 싶어 더 고민을 많이 하는 질문입니다모든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잖아요. 저도 스스로를 찾아가면서 대학에 들어간 후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삶을 봤던 것 같아요. 그 때 아버지의 삶을 봤는데 재미가 없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고 이런 부분이 슬프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버지 세대가 20, 30대에 했던 일을 찾아봤고,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중동 건설 진출, 파독 광부와 같은 분들이 아버지 세대, 계급에 맞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작업을 꽤 오래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후 다른 여러 가지 작업들을 진행했어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참여해주셨던 분들이 주부님들이셨어요. 주부님들과 함께 하면서 이분들의 생각, 시선 속에서 지혜로운 부분들을 많이 느꼈어요. 이전 작업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럼 대안이 뭐야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게 되었는데 주부님들을 통해 그 대안적인 부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의 시선과 생각이 남성들의 시선과는 다른 면이 있고, 또 넓은 스펙트럼이 있고 다른 감각이 있다고 느꼈어요. 이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지 혹은 이들이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생각하게 됐습니다그런 와중에 비념이라는 첫 장편을 준비하게 되었죠. 그 때 만났던 분들이 할머니들이셨거든요. 중년의 여성들, ‘아줌마라 불리는 분들과 프로젝트 진행을 하고 할머니들과 작업을 하면서, 제가 궁금했던 부분에서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그 후 이를 좀 더 현실세계로 끌어오면 어떨까 싶어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위로공단을 하게 됐는데, 되돌아보니 노동자였던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공단에서 일하시진 않았지만 지역에서 시다생활, 미싱사의 보조 역할을 40년 동안 하셨어요. 살아온 삶의 감수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옮겨왔던 부분이 있고요. 10대를 되돌아보면 어머님과 형수님, 여동생이 제가 하고자 했던 것을 지지해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지원이 고마운 동시에 미안함도 느꼈고요. 이런 여러 가지 감정을 가족에서 사회로 공유하면 어떨까 해서 다양한 작업을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승민: 감독님과 여러 번 이야기해봤는데 오늘만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신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편안하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한편 다음 작품 교환일기(2019)에서는 감독님의 가족사 이야기가 다뤄지는데요. 물론 여러 결이 있는 작품이지만 그 작품 안에서 이 질문의 답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로 표상되는 가정은 실은 어머니가 꾸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순간 감독님의 작품이 여성을 다룬다고 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거나 여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주의적인 시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감독님이 남성으로서 여성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잘 다루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하게 되면 언제나 미끄러지게 되는 것이죠. 한편 여성의 이야기를 남성감독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떤 지점에서 맞지 않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여성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삶은 분명 감각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봤을 때 감각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지점들이 모자이크처럼 엮일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저는 또 갈라놓는 질문을 해보고 싶은데요.(웃음) 위로공단에서 당사자인 중년 여성들의 삶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20대 즈음의 연령대의 여성들이 소환이 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분들의 삶에서 여러 층위가 있었을 텐데 재연배우들을 20대 여성들로 소환했습니다. 중년 여성 또는 할머니들이 재현을 통해서는 일정 연령대의 여성으로, 신비화된 숲의 공간에서 소환이 되는 거죠. 세팅되는 공간, 세팅되는 배우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임흥순: 세 분들이 1920년대쯤엔 배우들의 나이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10대 후반, 20대가 현실세계에서 비현실의 상황을 맞닥뜨리는 시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연령층의 배우들을 선택했던 것 같고 나이를 크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빨치산의 실제 연령을 생각하다보니 그랬던 부분도 있고요. 산에 대해 말하자면, 현재의 산은 여가의 장소이지만, 생존의 공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무명의,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게 산이라는 공간은 피신의 장소였고 이 공간 안에서 투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산이 시공간을 연결해준다는 생각도 했어요. ‘디졸브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과거엔 피신을 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갔는데, 현대사회에서는 피신의 장소조차 없는 것 같아요. 현대 사회에서 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객: 재연 배우 중 두 분의 여성은 탈북의 경험을 가지신 여성분들이셨는데, 섭외할 때 이런 경험을 가지신 것을 알고 계셨는지, 이에 대한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임흥순: 의도가 있었습니다. 일반 시민들과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을 했는데요. 저는 전문 배우들과의 작업이 아직 익숙지 않고, 일반 시민들과 했을 때 더 의미를 느껴요. 아마츄어리즘에서 오는 감동이 크더라고요. 그래서 세 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을 찾기 위해 이분들의 삶의 특징을 봤을 때 북쪽 출신 배우, 남쪽 출신 배우, 재일교포 여성들과 함께 하면 어떨까 구상하게 됐습니다. 분단의 지점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배우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일조선인 분들은 출연이 어렵게 됐고 북쪽이 고향인 두 분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세 선생님의 이동을 보면 김동일 선생님은 제주도에서부터 북쪽으로 이동하셨고 고계연 선생님도 경남 삼천포에서 지리산을 통해 광주로 가셨고 정정화 선생님은 북쪽으로 가면서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이들이 계속 어디론가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북한 이주여성들은 남쪽으로 이동을 하잖아요. 시간은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과거의 분단으로 인해 세 분의 이야기를 시작했듯이, 현재의 분단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분들이라고 생각을 해서 배우를 섭외를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또 재일조선인 섭외가 어려웠던 하나의 이유로는 이념적인 차원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복잡한 지점이 있었죠. 다 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의도와 이야기들이 많이 있죠.

 

이승민: 전반부에서는 세 배우 이미지가 너무 같아서 누가 누구인지 헷갈렸어요. 후반부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가 되어서야 명확하게 갈라져서 보였는데요.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이 모여서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탈북 이주여성인 이 분들이 이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닮은 세 명의 재연배우가 아니라 각자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기가 재현하고 있는 역사처럼 현실에서 만나고 있는 관계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인터뷰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임흥순: 아까 20대 배우들을 왜 소환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뒤늦게 해보자면, 위로공단이후에 시사회 같은 자리가 있었는데, 기륭전자 분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20대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과거의 여성들과 현재의 여성 노동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 영화가 20대를 위한 영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위로공단에 참여해주셨던 많은 인터뷰이들도 자신들이 험난한 길을 건너왔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20대 관객들을 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하고 이들이 어떻게 또 험난한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10, 20대와 계속 호흡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또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니 20대 여성을 계속해서 소환했던 것 같습니다.

 

이승민: 저는 위로공단에서 20대 여성들이 가면을 쓰고, 뒷모습을 보이고, 숲에서 언어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일 때, 이를 대상화하는 그 시선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지나 다른 방식의 고민으로 넘어가셨다고 느꼈는데요. 이번 작품처럼 그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이 말들이 언어가 되고 독립적인 개체가 된 것을 보며 작품마다 어떤 고민을 떠올리고 다시 풀어가는 여정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재연배우들을 제외한 분들의 복장은 재현 당시의 복장인 듯했는데 재연배우들의 복장은 현대식으로 표현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임흥순: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은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재현은 전문 배우들이 다른 영화들에서 많이 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2개의 상황을 겹치게 하고 싶었어요. 세 분의 선생님들을 재현하는 동시에 현재의 탈북하는 상황을 재현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복장을 현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하긴 하지만, 재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질문하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탈북을 하는 과정도 생각하면서 만들어갔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인터뷰를 하실 때 당사자 분들에게 어떤 의도로 질문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승민: 관객 분 질문에 덧대어서 함께 질문을 드리자면, 카메라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이라면 어떤 질문을 해야 저런 답이 나올 수 있을까, 혹은 어떤 관계를 쌓아야 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인터뷰를 해 오신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카메라를 드시고 상대방이 말을 할 수 있게 만드시는지, 어떤 노하우가 있으신지 같이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인터뷰를 할 때는 세대도 중요하고 시기도 중요한 것 같아요. 베트남 참전 분들을 인터뷰할 때 그 분들은 60대셨는데요. 99년부터 민간인 학살 등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아지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안 한 부분도 있었어요. 또 공적인 역사, 국가가 말했던 것들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셨어요. 개인으로 만났을 때는 덜했지만, 사무실 등에서는 자기 얘기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작품을 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지는 않아요.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편하게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상대방의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특히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꿰뚫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가능하면 다 무장해제를 하고, 듣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많이 보여드려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표정에 따라서 인터뷰이도 이야기하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인터뷰어도 상대방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장점이자 단점인데 제가 좀 부족해보이고 느릿느릿한 것도 좋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인터뷰이가 되면 상대방이 상황에 따라서 좀 기다려주고 배려할 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좀 부족하기 때문에 얻는 지점들이 있기도 하고요. 참전 이야기를 할 때는 동질감을 갖게끔 군대 이야기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또 하나를 내려놓으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실 때가 있었고... 그 때 군대 갔다오기를 잘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위로공단같은 경우는 필요할 때 저의 어머니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더욱 편하게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승민: 이전 질문과 비슷한 맥락에서 남성 감독님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질문할 때, 여성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지 물을 수도 있을 텐데요. 다른 것을 떠나서 잘 들을 준비가 돼있는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태도가 감독님의 표정, 제스쳐 안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임흥순: 저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을 어려워하는 면이 있는데 이런 감정은 동시에 존경심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이 존경심, 존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면서 인터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객: 저는 제목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더라고요. 큰 차이는 없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의미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임흥순: 깊게 생각해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은 제목을 떠올릴 때, ‘갈라놓는 것들이 현재 진행형처럼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라놓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위해서 그렇게 제목을 정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전에도 비슷한 질문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늘 더 생각해보게 된 것 같습니다.

 

이승민: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서는 제목이 갈라져서 등장하는데 엔딩에서는 제목의 이미지들이 모두 붙어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를 보면 감독님께서는 갈라놓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갈라졌다는 것은 결국 이전에는 함께 있었다는 것이고 갈라놓은 것은 결국 이어져야 한다는 함의를 표현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놓는다는 말 안에 담긴, 과거에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숙제처럼 고민하게 됐는데요. 엔딩 크레딧에서 제목이 모두 붙어서 올라갈 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재밌게 이야기 나눠주신 관객 분들도 멋진 관객분들이십니다. 또 오늘 재미나게 이야기 해주신 감독님께 박수 드리면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임흥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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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들  〈영화로운 나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2월 13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상덕 감독|배우 조현철, 김아현, 이태경

진행 채소라 전 맥스무비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영화로운 나날은 주인공 '영화'가 연인 '아현'과 다투고 아현이 없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하루 간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아현에게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아현에게 데려다 주는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이 스크린에서 영화와 함께 만들어 내는 각각의 풍경들은 각자가 소중하고, 각자가 따뜻하다. 이상덕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덜 외로워지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한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채소라 기자(이하 채소라): 안녕하세요. 오늘 모더레이터인 전 맥스무비 기자 채소라 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상덕 감독님하고 이태경 배우님, 김아현 배우님이 오셨고, 사전에 안내가 되지 않았지만 조현철 배우님이 깜짝 방문해주셔서 함께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분씩 소개 부탁드릴게요.

 

이상덕 감독(이하 이상덕): . 안녕하세요. 영화로운 나날감독 이상덕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하고,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조현철 배우(이하 조현철): 안녕하세요. 영화로운 나날에서 영화 역을 맡은 조현철 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아현 배우(이하 김아현): 안녕하세요. 영화로운 나날에서 아현 역할을 맡은 김아현 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태경 배우(이하 이태경): 안녕하세요. 태경 역 맡은 이태경 입니다. 반갑습니다.

 


채소라: 2017년 여름, 이상덕 감독님의 첫 장편영화 여자들이 나왔을 때 감독님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감독님은 뮤직비디오 위주로 경력을 탄탄히 쌓아오시다가 첫 장편영화를 개봉하신 거였고, 그래서 축하를 건넸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벌써 두 번째 영화가 개봉했어요. 감독님의 영화적인 고민이 담긴 하소연을 들은 느낌도 들고, 첫 작품에서 많은 부분이 발전하여서 정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상덕: 상업 영상 일을 하면서 다음 시나리오를 써야하는데 잘 안 써졌어요. 그래서 맨 처음에 장편 시나리오 썼던 걸 다시 들춰보니 마음에 드는 한 줄이 나왔어요. 한 문장을 발췌해서 영화로운 나날시나리오를 쓰고 배우 분들 만나면서 보조적인 부분들을 정리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고민,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배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것 보다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생겨나는 감정이나 기억에 더 집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도식이나 표를 영화 안에 많이 넣었는데 촬영 할 때에는 그저 영화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채소라: 2017년 당시 저와 인터뷰를 할 때 이미 두 번째 장편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첫 장편 시나리오에서 발췌한 그 한 줄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해요. 첫 영화 여자들목적 없이 떠도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라는 한 문장에서 시작한 영화라고 하셨는데, 영화로운 나날도 영화가 방황하는 하루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내용이라서 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이상덕: . 그 한 줄이에요. 제가 당시 좀 들뜬 상태여서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때 제가 썼다고 한 시나리오는 영화로운 나날은 아닐 것 같아요. 다만 앞서 말씀하신 한 문장을 맨 처음 써둔 시나리오에서 발견해서 여자들영화로운 나날두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채소라: 배우분들께도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여쭤볼게요.

 

조현철: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바로 읽지 않았어요. 저도 그 때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도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여서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 영향을 받을까봐 안 읽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촬영 들어가기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때 이상덕 감독님과 통화를 하다가 제가 하겠다고 해서 영화 역을 맡게 됐어요. 일단 이 이야기는 환상 같기도 하고 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김아현: 저는 감독님이랑 뮤직비디오 촬영을 통해 처음 만났고, 그때 감독님이 영화 제작 중이라고 하셨거든요. 얼마 뒤에 연락 드려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시나리오를 안 본 상태에서. 제가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은 게 감독님의 연출작이기도 하고, 감독님의 촬영 스타일이나 방식을 알아서 그런지 첫 영화도 감독님과 찍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도 흔쾌히 같이 찍자고 말씀해주셔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태경: 저도 감독님과 첫 만남부터 좋았던 것 같아요. 대화가 잘 통하고 재밌고. 시나리오도 재밌게 봐서 별 고민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가장 감사했던 것은 감독님이 단편영화나 다른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저의 이미지 말고 또 다른 유쾌한 면을 봐주시고 그걸 사용하고 싶다고 해주셨어요. 감사해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던 것 같아요.

 

채소라: 이태경 배우님은 죄 많은 소녀로 얼굴이 널리 알려지게 되셨잖아요. 색다른 느낌의 캐릭터를 만나 반가웠을 것 같아요.

 

이태경: 죄 많은 소녀도 감독님이 저의 어떤 다른 면을 찾아내주신 것인데, 영화를 찍다보면 주로 제가 가진 어두운 성향을 많이 사용하게 되고 밝은 역할이 잘 안 들어오긴 하거든요. 그런데도 그 부분을 봐주시고 믿어주셨다는 게 감사했어요.

 


관객: 무게와 깊이를 혼동하고 살지 말고 사세요.’라는 대사가 있는데요. 이 문장에 대한 이야기나 해석이 듣고 싶어요.

 

이상덕: 영화는 고민이 되게 많잖아요. 예전에는 그 깊이와 무게라는 것이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부분에선 둘 중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한쪽으로 치우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스스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극 중에서 영화가 옛날에 그 말을 툭 내뱉은 적이 있단 말이에요. 그걸 태경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고, 그대로 마음에 남아서 그 말을 곱씹으며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태경은 영화한테 어떤 깨우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왔던 삶의 한 부분을 붙잡을 수 있게 하는 역할이에요.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사가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같은 직업을 가진 저 역시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면서 혼동하지 않기 위해 그 말을 쓰게 됐어요. 제 고민이 많이 들어간 대사 같아요.

 

채소라: 실제 고민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가 방황하기 시작한 건 아현과의 다툼 때문이잖아요. 하루의 종결도 아현과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요. 근데 그 과정은 영화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다양한 고민들이 묻어나 있어요. 어떻게 그런 고민들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드러내면서 위로하는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이상덕: 처음에는 도식표를 엄청 썼어요. 각 인물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 공간, 방향이 전부 드러나고 이미지로, 대사로 그런 것들을 녹여내려고 노력했거든요. 각각의 인물에게 받은 물건으로 마지막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쓰는 장면 처럼요. 누나한테는 가방을 받고 태경한테는 볼펜을 받고 석호한테는 반창고를 받고. 헤어질 때는 영화가 앞으로 오고, 만났던 사람들은 뒤에 서있고 이런 구도를 고민하다가 배우 분들 만나면서 그런 것이 많이 옅어졌어요. 그런 것보다도 영화가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한테 실수를 하고 일상에서 판타지 같은 순간들을 겪으면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 더 집중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영화에게 비치는 그들과 그들에게 비치는 영화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분들께 많이 기대면서 촬영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채소라조현철 배우님은 연기하실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조현철: 딱히 하루 동안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안했던 것 같고요. 순간순간 다른 배우님들 만날 때마다 영화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행동할 지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기본적으로 캐릭터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배우님들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집중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채소라감독님과 시나리오에 대해선 어떤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조현철: 별 얘기 안했어요. 별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제 이전 작품인 초행〉(2017)에서의 모습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만 얘기했어요. 뭔가 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그릇이 작아서 실패를...(웃음)

 

채소라: 감독님은 조현철 배우님의 어떤 모습을 끌어내고 싶으셨어요?

 

이상덕: 현철 배우님이 워낙 매력이 있으니 그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것을 우선으로 했어요. 그리고 연출자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좀 기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씬이 좋은지, 어떻게 찍었으면 좋겠는지 그런 부분도 물어봤고요. 현철 선배의 매력은 다들 아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되게 단단해요. 주변의 영향으로 쉽게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걸 바꾼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요. 있는 그대로 식물처럼 바라보고 가까이서 가꾸고 해야 하거든요. 제가 느낄 때는요. 정말 시나리오 얘기는 많이 안했어요. 그냥 둘이 카페에 있으면서 커피 마시다가 갈 때 되면 가고.

 


관객: 이야기의 챕터가 나뉘어져있고 모두 영화의 시선으로 진행이 되잖아요. 에피소드가 모두 각각의 내용인데 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상덕: 헤어질 때의 모습이나 기억을 떠올리는 플래시백 같은 챕터도 한 컷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흐름을 영화의 시선으로 쭉 이어나갔어요. 중요한 것은 영화와 관객 분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잖아요. 각 인물들이 뭔가를 남기기도 하고 영화가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전체적으로 연결시키려고 했어요. 영화의 기이한 모험을 같이 즐길 수 있게 하려고 끝까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채소라: 영화가 만나는 사람마다 각각 시너지도 다르고, 분위기와 주고받는 감정도 달라지는데 아현 배우님과는 어땠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극중 태경은 독특한 인물이잖아요. 태경과 영화의 독특한 관계를 어떻게 풀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조현철촬영하면서 태경 배우님과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함께 했는데 저는 연기를 하면서도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몰랐어요.(웃음) 태경이 계속 영화의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저도 정보가 없으니까 이게 내 기억인지, 판타지인지 헷갈려서 그냥 그 헷갈린 상태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되게 부끄러움이 많아서 아현 씨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특히 싸우는 장면은 대사가 되게 길어서 아현 씨도 힘드셨을 것이고 저도 헷갈려서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전체적으로는 천문대 장면이나 초반 촬영에서 아현 씨가 많이 리드해주셔서 조금씩 편해진 것 같아요.





채소라: 아현 배우님은 첫 영화 현장이 어떠셨나요?

 

김아현: 제 생각엔 제가 더 훨씬 리드를 많이 받았고, 서로서로 많이 도와줬던 것 같아요. 제가 리드를 하진 않았던 것 같고요. 방금 말씀하신 싸우는 장면은 테이크를 엄청 많이 갔어요. 저도 힘들고 현철 선배도 힘들었을 텐데, 서로 도와가면서 연기했어요.


채소라: 극 중에서 고민을 나누고 함께 극복하는 장면들이 정말 현실 커플 느낌이었어요. 캐릭터에 대해선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조현철: 저희 둘이서요? 캐릭터에 대해서요?

 

김아현: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안 해서.(웃음) 각자 알아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채소라: 태경 배우님도요?

 

이태경: 저는 리딩 없이 시작해서 좀 당황했던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는지 알고 가긴 했지만 사실 여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저도 처음엔 좀 동요를 했어요. 내가 하는 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조현철진짜 몰랐어요?

 

이태경: . 그래서 살짝 당황했는데 감독님께서 태경은 진짜다. 이 자체가 판타지거나 남이 믿지 않는다고 해도 뭐든 간에 태경은 진짜로 영화를 만났었고, 그런 대화를 했었고, 중구난방이지만 그게 맞고, 개연성을 따지지 말자.’고 하셔서 내가 하는 말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떠들었어요.

 

채소라: 말씀처럼 판타지 요소가 있어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은 영화를 정말로 천만 배우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판타지 요소를 어떻게 넣게 되었고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상덕: 판타지로 더 갔어야 되는데 좀 아쉬워요어떤 판타지 상황이 중요하다기 보단 거기서 영화가 어떤 걸 느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집에서 자고 있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지인 분이 뜬금없이 잘 들어갔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소리세요?” 하니까 아니, 아까 나랑 얘기했잖아.” 이러시더라고요. 술 드셨냐니까 아니래요. 그러고 몇 마디 주고받다 갑자기 "잘 지내지?” 이런 안부를 묻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분이랑 저랑 연락을 꽤 오래 안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그냥 전화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를 만나서 이러시는지 헷갈리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분과 함께한 일들이 떠오르고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말 그대로 영화적인 순간이잖아요. 영화로운 순간. 그런 것들이 제가 영화라는 매체에게 느끼는 판타지가 있고, 결과적으로는 그런 순간의 상황 자체 보다는 영화가 무엇을 느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석호 선배나 태경 배우나 다 진짜를 말한 거죠. 할머니랑 진짜 춤을 췄던 것이고. 그랬던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 갑자기 만나는 누나, 그리고 휠체어를 탔다가 걸었다가 오가는 태경. 이별 통보를 대신 부탁하고 가지튀김과 맥주화이야기 모두 환상을 표현하는 아이템이잖아요. 이런 요소들을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감독님께 영화롭다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이상덕: 그런 요소들을 한 번에 쭉 쓰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평소에 많이 써놓는 편이거든요. 배우 분들을 만나면서도 생기고요. 거기에 어떤 의미를 담고 조합을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뭐라고 딱 이유를 대기엔 너무 많은 얘기가 들어있고, 제가 평소에 써둔 메모나 기호 같은 것들을 조합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롭다는 것은, 제가 최근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인데 제가 원해서 생긴 게 아닌 것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별자리나 혈액형이나 이름 같은 것이요. 저는 그런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까 말했지만 깊이와 무게를 너무 맹신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그런 순간들이 되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좀 덜 외로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가까운 사람들한테 최대한 잘 하자는 생각을 해요. 어쩌면 영화롭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관객: 극중에서 영화와 아현이 얼마나 된 연인인지 궁금해요.

 

이상덕: 5~6년 정도 된 관계였어요. 동거한 지는 얼마 안 된 연인인데, 함께 사는 공간은 아현의 취향이 많이 드러나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술자리에서 지인을 통해 만났고, 과학 선생님을 하고 있는 아현과 배우를 하고 있는 영화가 만나서 1~2년간 열심히 싸우고 맞춰 가다가 3~4년차에 안정기를 맞이하고 5~6년차가 되어 서로에게 익숙한 상태인 연인으로 설정하고 싶었어요.

 

채소라: 방황하는 이야기를 처음과 끝을 연애 스토리로 하게 된 계기도 있나요?

 

이상덕: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마지막 편지 내용이 꼭 아현한테 하는 말은 아니거든요. 아현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누나한테 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석호형한테 하는 얘기이기도 해요.

 

 

채소라: 또 음악이 인상적이었어요. 재즈 연주곡이 흘러나오는데 나른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면서 처음 아현이랑 영화가 얘기했던 고전 느낌이 나기도 해요.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해요.

 

이상덕: 우선 음악으로 재즈를 사용하고, 테크노도 써보고 싶었어요. 클래식도 있고요. 제가 재즈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재즈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는 데이비드 보위 곡을 쓰려다가 저작권료 문제로 못 썼어요. 그래서 쓴 곡 제목이 ‘Paradise’인데 제목도 그렇고 템포도 그렇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테오 찾는 장면에선 처음엔 ‘Moon River’를 넣어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저작권료가 얼마든 쓰려고 했는데 금액이 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는 음악감독님이 찾아주신 브라질 가수의 곡을 쓰게 됐는데, 가사 내용도 연인에게 말하는 내용이었어요. 이 곡이 너무 좋더라고요. 음악은 여러 시도를 하면서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관객: 아현의 직업이 과학 선생님인 이유와 둘이 고양이를 키운다는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하고요, ‘작게 살고 작게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왔는데, 저는 제가 세상을 뜰 때엔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줬으면 좋겠거든요. 왜 그런 메세지를 담으셨는지 궁금해요.

 

이상덕: 아현을 과학 선생님으로 설정한 이유는, 1차원적으로 생각했을 때 과학 선생님은 이론적이고 논리적일 것 같고 영화의 직업인 배우는 창의적이고 예술적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 대화에선 서로 반대되는 얘기를 하잖아요. 오히려 영화가 더 이성적인 것을 찾고 아현은 더 판타지적인 것을 찾고요. 그런 반대되는 성향을 영화에서 보여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가 판타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아현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끔 하기 위해서요. 고양이 테오는 맥거핀 같은 거예요. 고양이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나잖아요. 그 자체가 판타지이기도 하고 기호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작게 왔다가 작게 간다는 말의 메세지는 사람이 내 주변에 슬퍼하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라기 보단 삶 자체를 작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어요. 화려한 삶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일상을 소중히 생각을 하자는 의미였어요. 영화의 누나 혜옥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채소라아현 배우님은 캐릭터의 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보셨는지 궁금해요.

 

김아현: 아현의 직업이 과학 선생님이라는 걸 듣고 처음엔 ? 제가 과학 선생님이에요? 내가 선생님도 해보네.” 이런 반응이었고요. 다른 것을 떠나서 아현은 영화의 여자친구라는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니까 감독님하고는 연애 얘기를 많이 했어요. 리딩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순간순간 이럴 땐 어떻게 해요? 저럴 땐 어떻게 해요?” 물어보시기도 하시고. 사실 전반적으로 저는 아현은 영화의 여자친구로서 받아들였어요. 과학 선생님의 모습은 천문대 별자리 보러 가는 장면에서 살짝만 나오잖아요.

 

채소라: 태경 캐릭터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인데 태경 배우님께서 캐릭터를 처음 만나셨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이태경: 태경은 영화와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 인물의 용도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을 하고 연기를 했기 때문에 전사를 생각하기 보단 그 용도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계속 말이 바뀌잖아요. 제가 "이 사람은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네요.” 했더니 감독님께서 . 맞아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하면 돼요.”라고 하셔서 정말 그렇게 했어요. 옷이나 휠체어 같은 설정이 붙여지면서 태경이 더 특별해 보이게 된 것 같아요.


 

관객: 테오가 실제로 누구 고양이인지도 궁금하고, 마지막에 고양이가 집 안으로 알아서 들어가는 씬 있잖아요. 그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해요

 

이상덕: 테오는 제 반려묘고요. 사람을 별로 안 겁내요. 개냥이라고 할 정도로. 촬영을 위해 두 사람의 집을 세팅하고 난 뒤 테오가 낯선 공간이라서 스트레스 받을까봐 이틀 정도 그 집에서 저랑 같이 지냈는데요. 테오는 스트레스 받을 생각 자체가 없더라고요.(웃음) 현철 선배도 고양이를 키우셔서 테오가 현철 선배도 잘 따랐어요. 그리고 테오가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 혹시라도 테오가 문밖으로 도망 갈까봐 스태프들이 다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들어가하니까 진짜 들어갔어요. 촬영감독님이 마지막 엔딩씬 찍을 때도 고민이 많으셨는데 자기가 다 들어가더라고요. 들어가서 현철 선배한테 안기는 모습이 정말 천부적이지 않나 싶네요. 테오한테 감사한 마음으로 잘해주고 있어요.


 



관객: 마무리하는 의미로 감독님이 이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상덕: 결과적으로는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어요. 주변의 가까운 분들을 많이 떠올리시고, 모두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고요. 이제 막 개봉했는데 n차 관람을 하고 싶으셔도 아마 극장 찾기가 쉽지 않으실 거예요. 사실 그것 때문에 좀 상처를 받았는데 이렇게 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해요.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채소라배우 분들도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조현철: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랜 시간 이렇게 자리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아현: 집이 근처이신 분도 계시겠지만, 날씨도 정말 추운데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영화로운 나날은 정말 따뜻한 영화예요. 일상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소중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아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태경: 새삼 영화 하나 만드는 것이 참 어렵고, 영화 한 편 개봉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껴서 이렇게 고생해주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그리고 GV에 끝까지 계시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함께 마지막까지 얘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채소라혼자 영화에 대해 고민하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잘 아는 사람들, 다 아는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면서 위로받는 영화의 모습이 정말 따뜻하게 담긴 영화예요. 좋으신 분들은 또 봐주시거나 주변에 추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자리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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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한줄평


김정은 | 세 여성의 시선과 언어를 담은 내밀한 일상으로 지워지고 감춰졌던 이태원의 맥락과 역사를 복원하다

송은지 | 주변의 자리로 밀려난 역사적 여성들

정성혜 |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

김윤정 | 이태원의 살아있는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기록해내는 방법







 〈이태원  리뷰: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공간을 기록한다는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강유가람 감독이 연출한 다섯 작품 중 <이태원>은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첫 작품인 다큐멘터리 <모래>(2011)와 두 번째 작업인 단편 극영화 <진주머리방>(2015)은 각각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 공간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었다. <이태원> 이후로는 촛불집회의 페미니스트를 담은 <시국페미>(2017)90년대 영페미의 이야기 <우리는 매일매일>(2019)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오고 있다. 연출 시기상 한가운데 위치한 <이태원>은 전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강유가람 감독 작품의 대 주제, 공간과 여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작품으로 보였다. 감독의 모든 작품에서 공간과 여성은 빼놓을 수 없지만, <이태원>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공간을,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적절한 해답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특히 두드러진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의 공간은 너무나 쉽게 붕괴되고, 붕괴된 공간의 기억은 성급하게 기록된다.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재개발의 도시 서울에서 여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지워져 왔다. 이태원 역시 한남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이 결정된 공간이다. 하지만 복잡한 이해관계로 재개발의 진행이 더뎌지고, 낙후되어가는 이태원의 골목길에 청년이 들어와 상권이 형성된다. 이렇게 급격히 변화하는 이태원의 흐름 속에서 영화는 오랜 시간 이태원에 살아온 세 인물, ‘삼숙’, ‘나키’, ‘영화의 시선에 주목한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젊음의 거리’, ‘힙플레이스로 인식되는 이태원의 골목길 사이에는 70년대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던 이태원의 기지촌, ‘후커힐이 있다. 세 인물은 70년대 후커힐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하기 시작하여 이태원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이들의 현재의 일상, 하물며 성격까지, 언뜻 보기에 세 인물은 닮은 부분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세 인물의 현재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삶의 맥락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난다. 각자의 구술에서 이태원의 기지촌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어땠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 주도하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삶이든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삶이든, 결국 여성들의 삶은 제도적, 사회적으로 통제되어 왔음이 세 인물이 추억하는 당시 여성들의 삶으로 증언된다.





감독과 세 인물이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 덕분에 이들 모두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삼숙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기다려왔다는 듯, 그는 자신의 역사와 생각을 풀어놓는다. 영화의 시작도 삼숙이 자신을 찍은 푸티지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화질이 좋지 않은 그 영상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삼숙은 오래도록 자신을 기록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를 다시 보니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삼숙의 또 다른 영상은 영화의 힘이 가장 응축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또 한 번 등장한다. 삼숙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하기까지,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 순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영화 내내 강했던 삼숙은 말로 채 전하지 못할 그의 역사를 자신이 직접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아니었을까? 그 깊은 불안감이 와 닿았다.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 인물은 이태원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동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의 이태원을 바라보고 카메라는 그 시선을 공유한다. 재개발로 인해 삼숙의 클럽 앞 건물이 비싼 값에 팔리고 온 동네가 떠들썩해지지만, 결국 다시 일상이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각자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세 인물이 일을 마치거나 시작하는 현재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태원의 역사를 세 여성의 목소리로 기록함과 동시에,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역사는 계속될 것임을 영화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2019년을 돌아보면,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장했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다. 올 한 해 이어져 온 여성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토록 강렬한 다큐멘터리. 2014년과 2015년 즈음을 담고 있는, 강유가람 감독의 시선으로 세 여성의 역사를 담아낸 이 영화는 201912월에도 전혀 뒤늦다는 감각이 없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을 기다려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 여성의 삶을 전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관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