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기억하기  〈작은 빛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2월 23일(일) 오후 2

참석 조민재 감독배우 곽진무, 이민지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어린 나이에 노동시장으로 뛰어들어 가족과 감정적으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진무는 뇌수술을 앞두고 의사로부터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가 캠코더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 춤을 추는 형의 모습, 때로 자신의 모습도. 카메라가 기록하는 기억의 꼬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형상이 남아있다. 조각나 있던 가족들의 기억이 맞춰지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되살아난다. 기록을 통해 짙어지는 기억은 진무로 하여금 마음에 깊이 박힌 뿌리를 뽑아내도록 이끈다.





김일권 대표(이하 김일권): 안녕하세요. 오늘 자리 참석해주신 조민재 감독님, 그리고 곽진무, 이민지 배우님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조민재 감독(이하 조민재): 안녕하세요. 〈작은 빛〉 연출한 조민재입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GV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곽진무 배우(이하 곽진무): 안녕하세요. 〈작은 빛〉에서 막내아들 역을 맡은 곽진무라고 합니다.


이민지 배우(이하 이민지): 네, 안녕하세요. 저는 〈작은 빛〉에서 뭘 한 건 없고, 관객 중 한 명인 이민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일권: 저희가 극장 상영을 마무리하며 굿바이 작은 빛〉’ GV를 하려던 차에 이민지 배우님께서 SNS에 훌륭한 소감을 올리신 것을 보고 섭외해서 같이 인디토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관객과의 대화이니까, 조민재 감독님께 〈작은 빛〉을 어떻게 연출하게 되셨는지 여쭤 봐야 할 것 같아요.


조민재: 제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어떻게 잘 쉴까 하다보니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갔고 간 김에 8년 만에 아버지 산소를 오랜만에 보았거든요. 그 때 . 내가 아버지를 왜 이렇게 미워했을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고민을 글로 적기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영화입니다.


김일권: 진무 배우님께서는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으로 보셨는지.


곽진무: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이렇게 깊은 글이 나올 수 있나, 싶었어요. 감독님한테 물었더니 자전적인 글이다 보니까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그걸 바탕으로 썼다고 하더라고요. 고맙게도 저와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작업하게 되었고요. 그런 시나리오를 받으면 저 같은 경우는 광기 같은 게 생겨요. 화면에 나오지 않았지만 공장 장면에서 위험한 상황이 있었어요. 주변에서 말리는데 불구하고 찍어보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크게 부상당할 수 있다고 겁을 줬는데 그래도 저는 찍고 싶더라고요.


김일권:이민지 배우님은 영화 어떻게 보셨고 어느 지점이 좋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민지: 같은 회사에 있는,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우지현 배우가 이 영화가 너무 좋다고 추천을 하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작품 준비 중이고 어떻게 보면 백수인 상태였는데 우연히 집 근처 영화관에 맞는 시간대가 있더라고요. 저는 영화볼 때 포스터 전단지에 있는 글을 잘 안보고 이미지만 보는 편이거든요.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가족이 다 같이 있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맨 처음에는 영화도 너무 독특하고 홈 비디오 느낌도 나고 재밌더라고요. 그러다가 포스터 속에 있는 장면은 언제 나오는 거지, 설마 안 나오는 건가, 이러면서 보다가(웃음) 제일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깊은 감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운이 많이 남았어요. 최근에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영화이기도 했고, 주는 메시지도 너무 좋아서 추천해준 배우에게 너무 감사했죠.





김일권: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저 사람들 배우 맞아? 실제 친척 아니야?’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민지 배우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민지: 제가 감히 뭐라고 이야기를 할 짬은 안 되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대사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시나리오가 궁금해졌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가족이 다같이 모이는 장면이 엔딩에 가서야 나오잖아요. 진무 배우님이 각자 따로따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진짜 가족처럼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 분들이 사전에 만나서 얘기를 많이 하거나 가족처럼 지내왔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곽진무: 실제로 저 같은 경우는 가장 먼저 준비를 시작했고 다른 배우분들과 7개월 정도 만나면서 얘기를 많이 했죠.


김일권: 원래 시나리오에도 대사가 이렇게 대화하듯이 쓰여있었나요?


곽진무: 저로서는 조금 왜곡되어있는 기억인데요. 처음 시나리오가 지금 영화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배우들이 꾸려지면서 재구성 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같이 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반영됐다고요. 저는 인식을 잘 못하고 이 부분은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았어요.


조민재오래 만나게 되니까 배우들이 말하는 투나 행동, 성격을 영화 안에 많이 넣고 싶어서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리딩을 하면 그걸 촬영해서 집에 와서 보면서 그 사람이 쓰는 언어들을 시나리오에 넣는 방식으로 담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혼자 대사를 썼다기 보다 배우님들이 잘 연결해주신 것 같아요.


김일권이 영화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사실 기승전결, 커다란 사고 내지는 파국, 치닫고 해결되고 또 다른 정국을 맞는 이야기가 아니란 건데요.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결과적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냐면요… 왜 그랬을까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영화적인 것은 인과성이 뚜렷한 서사를 밀고 나가는 것 보다 사건들이 블록처럼 일어나고 모아서 보았을 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삶을 살아가고 작은 사건들이 쌓이면서 가만히 고민해볼 때 무언가 의미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이러니가 쌓이는 것들, 그런 것들을 수집해서 보다 보면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 같고 이게 제 창작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일권사실은 배우들도 정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면 연기할 때 수월하거나 캐릭터를 잡을 때 편했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식으로 이 영화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나요?


곽진무: 아무래도 저의 삶이 영화와 닮은 부분이 있었어요 아버지에 대해서. 그렇다고 해서 그 유사성이 인물을 표현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거나 그렇기 보다는 감독과의 소통에 있어서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정말 가족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였는데 감독님이 연기 디렉팅할 때 지시한 부분이라든지, 감독님 입장에서 제어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에 배우님께서도 각본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 어느 부분에 참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곽진무: 제가 시나리오 과정에 참여하진 않았어요. 감독님께서 저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도움 받은 지점이 있다고 해요. 저는 글 한 톨도 쓰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올려주셨습니다.


조민재: 연기에 대해 제가 딱히 한 것은 없어요. 워낙 배우님들 경력이 대단하시고 연기하는 모습을 제가 알고 있어서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디렉팅이라면 디렉팅인데, 저는 배우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모습을 변형시켜서 난 이만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은 원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온전히 제 영화로 들어왔으면 했고, 그렇다면 공간만 열어주고 통제할 이유가 없죠. 이 영화에서 제가 아쉬운 부분이라면, 제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불이 깜빡이는 장면은 순전히 형식적인 결정이 들어가서 배우들을 통제해야 하는 순간들이에요. 제가 카메라 뒤에서 그 모습을 봤을 때 좀 아쉽기도 했는데, 이건 제가 앞으로 가지고 가야하는 짐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을 통제하면서도 어떻게 생명력이 죽지 않게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관객: 가족들이 진무가 아프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어느 지점인가요? 어머니가 울고 나서 부터인지 아니면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어느 지점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조민재: 저는 매표소에서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짰고요. 그 부분이 제가 세운 절정 부분이에요. 그 이전에 얘기가 나왔고 버스터미널까지 연결된 거죠.



관객모자가 함께 영상을 보는 장면 등을 원테이크로 촬영을 했는데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관객이 이런 느낌을 받도록 의도하신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민재굳이 컷을 나누지 않은 것은 캠코더 때문이에요. 어떤 순간의 공간을 열어줄 때에 이걸 작게 쪼개면 한 공간에서도 정서가 계속 갈라지거든요. 한 뭉텅이의 상황이 있는데 그걸 잘라버리면 그 공간을 이루는 정서들이 잘리는 거예요. 그 상황을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건 카메라거든요. 하나의 카메라는 제가 들고 있고 하나의 카메라는 영화 속 진무, 진무 형이 들고 있는 거예요. 두 카메라의 간극이 어떻게 벌어지고 가까워지는지에 대한 컨트롤이 제가 이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원테이크가 부담스럽긴 해도 저한테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작업 형식 중 하나였어요.





관객밥 먹는 장면들이 너무 리얼했습니다. 소품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곽진무: 대부분의 소품은 조민재 감독님이 다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이민지: 그럼 촬영 전에 요리를 하셨나요?


조민재아뇨. 대부분 즉석조리식품이나 배달음식이에요. 음식이 어떻게 공간마다 변할지를 고민하면서 찍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누나 집에서는 답답하게 먹으려고 닭도리탕 같은 걸 먹는다든지, 이런 식으로 설계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각본에 없는 즉흥적인 연기가 있었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에 진무가 아버지의 카메라로 무엇을 찍었을지, 감독님은 어떻게 설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조민재: 일단 뒤의 질문부터 답하면, 진무가 찍은 게 아니라 아버지의 플래시예요. 플래시백이 어디로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딱 그 위치에 아버지의 빛이 날아오는 것처럼 들어가는 걸로 설정을 했죠. 진무가 사진을 찍었다기 보다 아버지의 빛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연기는, 카메라 돌아가기 전에 계속 리허설을 했어요. 카메라 앵글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이런 고민들을 했고요. 배우님들이 우리가 완전히 즉흥적으로 만들어냈어요.이런 얘기를 하셔서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까 정말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호흡들이 있거든요. 호선이가 반찬을 먹는데 옷깃에 반찬이 묻으니까 진무 형이 팔을 들어주는 그런 것들은 제가 설정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상투적인 호흡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정보전달을 위한 표현이 있고 순간의 정서를 위한 표현들이 있는데 저희는 정보전달 보다는 좀 더 정서 쪽의 표현들을 많이 찾아나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일권: 현장에서 즉흥연기를 자주 하시거나 즐기는 배우들도 많고 정확한 디렉팅을 원하는 배우도 있는데 두 분은 더 선호하는 방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곽진무: 저는 즉흥 연기를 즐기지는 않고요. 아까 감독님이 얘기한 것처럼 감각을 최대한 열어놓고 그 순간에 계산한 행동을 하는 건데 그 행동에 있어 제 호흡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야기가 잘 전달되면 편집에서 살아남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리듬감 등에 맞지 않아서 편집되는 경우가 있어서 되도록이면 애드리브를 안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민지: 상황마다 다른 것 같은데 저는 즉흥연기라고 했을 때 말을 만드는 건 못해요. 아무래도 행동에 있어서는 상대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현장의 주변 환경을 보고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대사를 만들거나 그런 건 못하거든요. 그런 애드리브는 지양하는 편인 것 같고, 행동에 있어서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텍스트를 따르는 편입니다.





관객: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배우 분들이 캠코더를 각자 드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은 배우 분들에게 맡긴 것인지 대략적인 상황을 정해주신 건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계속 카메라를 들게 하고 제가 훔쳐봅니다. 이 장면이 잘 나온 것 같으면 슬쩍 다시 얘기하죠. 최대한 스탭들은 밖에서 쉬고 배우들이 촬영했고요. 그렇게 다시 찍을 때도 있고 진짜 즉흥적으로 찍을 때도 많았습니다.


김일권: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간다든지, 형에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게 한다든지. 일상 같지 않은 일상들이 나옵니다. 영화를 보면 흔히 특정 장면이 나와야 하는 부분 다음에 아예 다른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굉장히 독특하면서 일상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쌓기 위해서 이렇게 구성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일상적이지만 제가 원하는 분위기를 내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들어갈 때도 열쇠를 찾아서 들어가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고민했는데, 멈춘 공간에 진무가 파동을 일으키며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담을 한 번 넘어볼까 생각하게 됐고요. 오래된 역사의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기 때문에 진무라는 인물이 그 공간으로 훅 점프해서 들어오면서 파동을 일으키는 듯한 형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일상적인 가장 작은 움직임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움직임에 감각을 많이 열어두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저 순간의 호흡, 혹은 움직임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가 있어요. 거기도 캠코더가 나와요.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앉아서 캠코더로 영상을 찍는데 그 안에 비닐봉지가 날아다녀요. 그 장면이 진짜 평범한데, 굉장히 마법 같은 순간이에요. 그 비닐봉투가 허공에 떠다닐 때는 바람과 같은 에너지가 있고 시공간이 뒤섞이면서 날아다니는 것이거든요. 그게 정말 아름답고 느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단지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에너지들이 가득 차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민지정도 형이 춤을 추잖아요. 원래 배우님이 춤을 추시는 분인가요?


조민재저의 형이 춤을 췄고요. 저도 늘 춤을 꿈꿉니다. 그래서 넣은 장면인데 저도 정도 형님 춤을 이전엔 본 적 없고 현장에서 처음 본 거예요. 제가 처음 생각한 건 박남정 댄스라든지, 이런 수준이었는데 너무 움직임이 격하신 거예요.(웃음) 이 정도까지는 안 바랐는데 나중에 촬영감독님이랑 그 장면을 보면서 이게 맞을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곽진무: 준비과정에서 자꾸 정도형이 춤을 잘 춰야 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현장에서 놀랐습니다.





김일권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주는 압도적인 정서적 느낌이 있어요. 산소 에피소드 같은 경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히 빛이 정 가운데에 있는 그 장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민재: 그 장면은 제가 완전히 가공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겪은 일을 메모해 두었다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그 분이 살면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존재하더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이 영화도 제가 해결해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에는 내가 아버지와 마주하는 것까지만 해야겠다. 그 순간까지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미지를 마주치게 한다든가, 그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계속 그 이상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저씨가 말해준,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행위 자체가 엔딩으로 들어온 거죠. 그 장면에서 진무가 과감하게 파헤치는 것이 제가 영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여있던 것을 파내서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시 정리하는. 제가 아버지 사진을 다시 발견한 지점이 이장이라는 행위와 비슷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의 환영을 정리하고 기록한다는 느낌이 그 장면과 딱 떨어지더라고요. 빛과 어둠은 필름이나 영상에서 중요한 요소고, 그렇기 때문에 빛을 최대한 세밀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했어요. 그 장면에서도 사전 디자인에 따라 그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민지산소 장면 전까지는 감정이나 정서가 다 설명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진무가 수술을 받는 계기도 말로 설명하지 않잖아요. 그런 게 오히려 감정적으로 격하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크림을 바르는 장면에서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 한 번에 확 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산소장면에서는 유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잖아요. 그 전까지 관객이 서브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하다가 그 장면에서 굉장히 놀랐거든요. 그것도 감독님이 의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조민재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 당시 체감했던 아버지의 형상, 혹은 기억들의 형상이 그것과 너무 닮아있어서 일단 찍고 나중에 빼자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편집과정에서 그 장면을 넣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알리바이를 준 것은, 그로 인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게끔 설계를 한 것 같아요. 그 이전까지의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관계들이 뒤섞이면서 증폭되는 방식이라면, 마지막 장면은 오로지 진무의 환영처럼 보여지는, 혹은 꿈 같은 순간이고 진무한테 확 집중되어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죠. 영화를 찍고 나서 결국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곽진무: 주변에서 그 장면 넣지 말라고 권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일권: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인사말씀 해주시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민지귀한 주말에 〈작은 빛〉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는 드라마 하나와 책, 또 독립영화로 만나뵐 수 있을 것 같으니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곽진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아마 마지막 GV일 것 같은데 이민지 배우님, 김일권 대표님 자리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도 이 영화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제가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가족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보게 된 영화예요. 관객 분들과 많은 부분 공유하면서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민재: 오늘로 정말 끝이구나 싶네요. 마지막 자리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더 좋은 영화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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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에게  리뷰: 사랑하는 시리아의 미래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2011 3, 시리아 남부에 있는 한 학교 담에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혁명 구호를 적은 학생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시리아 정부는 폭력을 수반한 과잉 대응으로 일관하였고, 이에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렇듯 시리아 내전은 민주화를 향하는 그들의 미래가 되어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했다.

 

격동의 시기 속 알레포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와드는 낙관적인 분위기의 시위 초기부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무차별적인 폭격이 거세지는 전쟁의 참상과 알레포의 사람들을 카메라를 들어 기록한다. 그간 대부분 타자의 입장에서 포착한 난민의 이미지를 보아왔지만, 관객은 <사마에게>를 통해 당사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내밀한 일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일상은 고통과 비극에 울부짖는 모습만이 아닌, 웃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삶의 면면이 공존한다. 그리고 죽음의 기운이 익숙한 도시에서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도 함께한다. 태어난 사마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과 사별하는 아픔을 떠올리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서있던 아기의 울음이 터져 나오는 기적을 느끼기도 한다.




 

알레포를 지키는 이들의 희망 어린 행보가 무색하게도, 하늘에서 내려본 알레포의 상황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악화되어만 간다. 좁혀지는 포위망과 계속되는 폭격 속에서 일상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납득할 수 없는 희생이 늘어간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던 이들의 얼굴에도 근심과 불안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언론에 소식을 전하고 알레포를 담은 영상의 조회수가 높아졌지만, 외부로부터 유의미한 답변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와드의 카메라는 알레포의 투쟁과 함께 계속되었다. 생존에 있어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절박한 현장에서 어쩌면 촬영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를 붙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드는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참혹한 비극의 이미지로 남게 될 순간들 마저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목격자가 된 관객들은 극장 밖을 나서면 알레포의 참상과는 무관한 듯한 세상을 다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릅쓰고 만들어진 창작물을 만난 이상, 당시의 알레포를 보고 듣고도 외면했던 이들처럼 또 다른 방관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를 관람한다는 경험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고찰하게 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궁지에 내몰린 와드와 그의 일행은 결국 삶의 터전이 되었던 알레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알레포에서의 세월이 담긴 카메라는 와드에게 다음의 길을 열어주었다. 함께 투쟁하고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알레포를 둘러싼 세상에게 전하는 부탁을, 영문도 모르는 채 알레포에서 위태로운 삶을 시작한 사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아 미래에게 보내는 영화-편지를 완성한다. 사마를 업고 폐허가 된 알레포를 걷는 영화 속 와드의 마지막 모습에서, 영화는 막을 내리더라도 시리아를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올곧고 단단한 다짐을 읽을 수 있었다. 시리아의 미래로부터 도착할 자유와 평화의 답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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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치열한 관계의 역학  인디포럼 월례비행 〈에듀케이션  대담 기록


일시 2020년 1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참석 김덕중 감독배우 문혜인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복잡다단하고 난해해 질수록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형태의 문제들은 나날이 새롭게 등장한다. 비단 특정 분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과 사의 영역은 갈수록 애매모호해지고, 그에 따른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고민하고 갈등하게 된다.

 

2020년 첫 번째 인디포럼 월례비행의 상영작 에듀케이션은 이러한 관계 속의 내밀한 역학을 들여다본다. 장애인 활동 지원 일을 하는 주인공 성희는 중증장애인을 어머니로 둔 현목의 집으로 배정받게 된다. 각각 다른 조건과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인물의 잔잔하지만 치밀한 관계를 그린 영화 에듀케이션상영 후에 진행된 대담에서는 영화 안팎의 현실과 관계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갔다. 김덕중 감독과 성희 역을 맡은 문혜인 배우가 참석하였고, 정지혜 평론가가 비평 및 진행을 맡았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정지헤입니다. 올해 첫 번째 인디포럼 월례비행이고요. 김덕중 감독님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에듀케이션이 오늘의 상영작이었습니다. 작년에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굉장히 화제가 되었어요. 김준형 배우와 문혜인 배우가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덕중 감독님과 문혜인 배우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덕중 감독(이하 김덕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에듀케이션을 만든 김덕중입니다.

 

문혜인 배우(이하 문혜인): 안녕하세요, 에듀케이션에서 성혜를 연기한 배우 문혜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지혜: 아마 들어오시면서 비평지를 받으셨을 거예요. 영화에 대한 짧은 글인데 함께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허용치를 시험하는 기막힌 훈육이라는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감독님께서 주목했던 부분들은 관계 속 힘의 역학일 것 같은데요. 단순히 선하고 악하거나, 피해와 가해라는 이중의 구획이나 구분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는 무용한 것 같고요. 그 사이에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주목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사건으로 전개되는 스펙타클하고 강렬한 드라마이기 보다는, 성희와 현목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관계가 켜켜이 발전하고 증폭해 나가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엔딩에서 폭발적인 응징을 보여주는 방식이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의문스러운 관계여서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하나하나 쌓아가 마지막 순간에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실제로 장애인 활동 보조를 하신 적도 있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의 경험이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이러한 관계에 대해 주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스토리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김덕중: 영화에 나오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자 자립센터는 제가 십여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곳이었어요. 일한 기간이 한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도 인연은 이어졌어요. 나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해보자는 취지에서 예전의 기억들을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곤궁 같은 것을 느꼈어요. 평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같은 문제의식이었는데요. 주관적으로 조금 더 곤궁한 삶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의지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제 의지가 불쾌할 수도 있고, 제 방식이 그들에게는 필요로 하지 않은 형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장애활동지원일을 하다보면 일의 경계에 대한 모호함도 있거든요. 업무 경계가 서로 간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삶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이 완전히 소거될 수도 없고, 동시에 타인과 타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완전히 맞닿아 있을 수도 없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영화에서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지혜: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의 매뉴얼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상황별로, 사례별로 적용을 할 때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면 개인이 순간순간 판단하고 선택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시스템 안에서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인지에 대해서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성희와 현목의 관계에 기본적인 차이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성인과 청소년, 서비스를 이용하는 쪽과 공급하는 쪽, 그리고 또 영화에서 중요한 차이라면 젠더가 있고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런 차이들을 두고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주인공 성희는 타인과 단절하고 싶고,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고 싶어하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기도 한 캐릭터인데요. 활동보조인이라는 속성과는 맞지 않는 주인공이 타인과 엮여서 같이 있게 될 때 누군가가 완전한 우위를 차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할 공간이 없는 어지럽고 작은 집에서 힘의 균형이 확 쏠려 버리는 건 성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미성년이기는 하지만 젠더적으로 남성인 현목이라는 인물을 설정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고, 누군가가 조금 더 불쌍해 보이죠. 성희와 현목 모두 내가 더 불쌍하니까 나를 더 챙겨 달라고 외치는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 팽팽함이 유지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쓰실 때부터 문혜인 배우님을 염두에 두고 쓰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여러모로 어려운 연기였을 것 같아요. 두 인물이 계속해서 촘촘히 감정을 주고받는데, 가만히 보니까 성희가 어떤 면에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대부분 현목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관계의 역학에 불씨를 지필 때도 거의 현목이 불씨를 당기는 쪽인 것 같아요. 성희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계속 우왕좌왕하며 여러모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요. 문혜인 배우님께서는 인물에 대한 어떤 그림이나 욕심을 갖고 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문혜인: 일단 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개인적인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이전에 못나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어떤 인물을 연기하면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쉽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에듀케이션대본을 받아서 성희라는 인물을 보았을 때도 뭐 이런 못난 사람이 다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이기적이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무책임해지기도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배우로서 고민을 갖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못나고 못되고 모가 난 인물을 연기해서 설득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안에서 성희의 어떤 특징들이 부각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안에 성희의 못난 모습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성희의 역사 안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성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성희의 약한 모습이나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서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하고,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힌트들을 영화에 조금 더 넣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성희가 이 영화 안에서 많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가장 와 닿았고 유일하게 진심이라고 느껴졌던 대사는 처음에 박 코디에게 활동보조 일을 달라고 이야기할 때 왜 그렇게 절실하게 일을 구하냐는 질문에 숨 좀 쉬고 살려고요.’라는 대답이었어요. 다른 말들은 성희가 진심을 회피하거나 어떤 수단으로써 하는 말이었다면, 이 말만큼은 진심이라고 느꼈어요. 그만큼 숨 쉬고 살기에도 버거운 현실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대사와 다른 것들이 작용을 해서, 저에게는 성희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때 물이 자박자박하게 남아 있는 어항 안에 있는 금붕어의 이미지, 물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는 수조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 이미지가 작업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정지혜: 저는 성희가 못난 사람,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물론 끝까지 상황을 회피하거나 다른 선택을 했던 성희가 마지막 장면에 앞서 현목의 어머니를 보고 아마도 연민 어린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요. 혜인 배우님께는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문혜인일단 영화의 시작에서 성희가 허리를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제 흐름으로 보았을 때, 나름의 치열함을 가지고 긴 시간동안 알바를 하며 고시 준비를 하던 자신의 상황 안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이 찾아왔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 불친절한데 내가 왜 세상에 친절해야 하냐는 생각으로 내 한 몸만 챙기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영화 안에서 사건과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들이 많이 편집되었는데, 자신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은진이 알아서 잘 하는데, 이라는 생각으로 졸거나 자기도 하고요. 현목과의 관계에서도 현목의 요구를 거부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는 태만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가장 결정적으로는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을 때, 성희가 한 번에 모든 변화를 만난다고 했어요. 현목과 기싸움을 했던 전반부의 과정이 있다면, 어머니가 죽을 뻔한 상황을 겪고 튕겨 나가서 활동보조일을 당분간 하지 않기도 하잖아요. 쉽게 생각하고 편한 알바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내가 무책임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걸 느끼고 역시 나는 안 돼, 나는 못났어라는 생각 속으로 스스로 굴러 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잠깐동안 일을 하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하다고 느꼈어요.

 

정지혜감독님께서 현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현목의 성희에 대한 관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현목이 굉장히 우왕좌왕하고, 원하는 바가 명확해 보이지도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애매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조금 과하게 말하면 성희를 계속 건드려보고 놀잇감처럼 보는 듯한 선택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덕중현목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인물은 엄마 뿐인데, 엄마와 소통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고 자신이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예요. 고립된 상황이라 현목은 성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오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 같고, 상대가 남자더라도 관심을 얻으려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이끌어냈을 것 같아요. 청소년기에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마음으로요. 그런데 우애로운 관계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이성간의 연애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미성년의 코드를 가져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애정전선이기 보다는, 청소년기에 상상하는, 지속적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이성애적 관계라서 성희에게 불쾌할 수 있는 장난을 치는 걸로 그렸습니다.

 

정지혜: 성희 입장에서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성희가 아니어도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남거든요. 성희라는 인물이 현목에게 주는 건 매혹일 수도 있고 호기심일 수도 있는데요. 현목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서 현목이 보이는 반응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문혜인: 기본적으로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관계의 형태가 많이 작용을 했던 것 같아요. 여성과 남성의 코드나 갑과 을의 관계와 같은 것들이 미묘하게 전복이 되는데요. 많은 경우에 현목은 을의 입장에 있었지만, 성희와의 관계에서는 갑이 되기도 하고요. 연기를 하면서 전반부에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기싸움에 조금 더 집중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성희가 현목에 대해 방어하고 계속 밀어내기 때문에 현목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걸 수도 있어요. 사실 성희는 많은 부분에서 일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둘 안의 관계에서는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둘의 관계가 거리가 좁혀지는 듯한 순간들이 있기도 하지만, 성희는 끊임없이 현목을 밀어내고 거리를 두려고 해요. 마지막이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이들이 만난 것은 현목의 엄마 때문인데요. 엄마를 그리는 이 영화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 또는 나름의 성취 혹은 아쉬웠던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엄마를 연기한 배우 분이 고난의 연기를 보여주셨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 영화에서 엄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또 영화의 이미지로도 계속 중간에 있기도 하고요.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고정적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심지어 평상에서의 장면 같은 경우는 대화가 이어지다가 현목이 뒤로 물러나면서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드러나는데요. 있지만 보지 못했던, 가시화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엄마를 이 영화가 보여주었는데, 감독님께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현목의 엄마는 이 상황을 만들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나 전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시나리오 때부터 제일 마음에 걸렸던 인물이기도 해요. 인물로서 다른 사람과 소통이나 갈등, 감정적인 교류를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함에도 나타나야 했는데,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고민이 되었어요. 장애인 캐릭터가 영화에서 소비되어 왔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이 부분을 바꾸었을 때 이미 설정한 성희와 현목의 캐릭터나 상황에 맞춰서 대응할 만한 여유가 솔직히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현목 엄마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장애인 캐릭터가 아니고 또 다른 각양각색의 모습을 담고자 노들장애인야학을 보여주고자 했거든요. 얼마나 만회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기도 하고, 현목 엄마가 어떻게 다가갈지에 있어서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정지혜: 은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혜인 배우님께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실 게 많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은진을 연기한 배우님과 이전에도 같이 연기하신 적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문혜인: 이 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예전에 장애인들과 같이 연극을 했던 경험 덕분이기도 했어요. 장애인이 영화 안에 등장한다면 내가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게 된 것도 있는데요. 그래서 은진이라는 인물을 읽고 배우를 추천했고요. 영화의 유일한 웃음포인트인 내가 스페인에서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버려 버려야지라고 통역기가 대신 말을 해주는 장면이 있죠. 유일하게 성희가 편하게 느끼고 웃게 해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성희와 되게 다른 입장에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진이라는 인물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고요. 사실 감독님께 드린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었는데 반영되지는 않았어요.(웃음) 이를테면 은진에게 남자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은지와 같은 이야기요. 편견 속 장애인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불쌍한 모습이거나 어떤 어려움을 극복한 영웅적인 모습, 양극단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런 식으로 영화 안에서도 많이 비춰지지만, 그 사이 정말로 살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정지혜: 대부분 집이라는 공간에서 감정이 오고 가는데요. 흔치 않지만 몇 차례 야외로 나가기도 해요. 숲으로 가는 장면도 있고, 아치형의 터널 같은 공간으로 나가는 장면이 영화에서 잠깐의 환기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해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숲길을 통과하고 술을 마시면서 영화의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연출에 대해서 감독님께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김덕중: 그 장소는 시나리오에서 원래 팔당댐이라고 명칭이 되어 있었거든요. 현목이라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서울 근교로 소풍을 가려고 하는데, 아주 멋진 곳이기 보다는 조금 의아한 느낌이 나는 이색적인 공간을 찾고 싶었어요. 물이 있는데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시나리오에 적어뒀어요. 그런데 실제로 팔당댐 근처를 돌아보니까 댐이 워낙 커서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어요. 그래서 팔당댐 근처의 공원을 돌다가 영화 속 장소를 발견했는데요. 마을주민들이 관광객을 모으고자 꾸며 놨는데 아무도 잘 오지 않고, 뮤직 박스 같은 것에서 클래식이 장엄하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음악이 싱크가 맞지 않아서 메아리치듯이 여기 울렸다가 저기 울렸다가 하는 이상한 곳이었어요. 노력과 성의는 들였는데 잘 안 돼서 안타까운 공간이면서도 마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공간에 가면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지면서도, 나름대로 이탈한 느낌이 들겠다는 생각해서 그 공간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관객: 장애활동보조에 대한 지식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잘 모르다 보니까 명확히 알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성희와 현목이 카드 같은 것을 만날 때마다 찍고, 잘 안 맞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다른 보조인으로 교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보였어요. 활동보조인이 집에 도착하고 떠날 때까지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항목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김덕중우선 활동보조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한 번씩 체크를 하게 되어 있고요. 요새는 단말기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어플로도 가능하다고 해요. 계약서를 써서 하는 노동의 형태가 아니다 보니까 활동보조 이용자를 집에 두고 이탈하는 행동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조항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현목의 엄마가 혼자서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대응할 수 없는 상태여서, 성희와 현목이 서로 그 점을 이용해서 못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고요. 활동보조인은 코디네이터가 시간대 등을 고려해서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교체는 어려운 상황예요. 지자체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활동보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들었거든요.

 


관객: 저는 영화가 좋았어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부분들이 있었고요. 영화의 초반에는 미성숙한 두 인물을 내세워서 사회적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한계 안에서 부딪치는 과정들과 대상화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틈새를 파고들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어요. 초반부에는 켄 로치 감독이 영화에서 다룰 만한 사회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후반부로 넘어가면 두 인물의 관계가 많이 부각되는 영화의 흐름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덕중: 초반에 활동보조인의 직업적인 궁금함이 있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했는데,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해결책을 향해서 가야하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결론에서 그친 것 같고요. 제가 조금 더 관심이 있었던 건 청년의 마음가짐이었어요.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돌이켜봤을 때, 맞지 않는 사람과는 단절하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과연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완전한 사람은 없고,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정서적인 교류가 필요하니까요. 사회 안의 구성원과 살아가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극단화된 형태의 성희라는 캐릭터가 조금이나마 타인에게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아까 평론가님과 배우님께서 말씀하셨던 은진과의 관계를 감독님께 다시 여쭤보고 싶은데요. 감독님께서 성희는 타인과 단절을 원하고 활동보조사 일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은진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은진이 그린 그림을 안 준다고 하니까 서운해 하기도 해요. 은진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조금 더 있었을 것 같아 궁금합니다.

 

김덕중: 원래는 야학에서 은진과 성혜의 장면들이 조금 더 있었고, 촬영한 부분도 있었어요. 이건 제 책임인데 촬영본이 실수로 날아간 적이 있었거든요. 지금 보신 야학에서의 촬영본 대부분은 빡빡한 스케쥴 안에서 재촬영을 해서 살린 건데요. 은진과 다른 수업에서 조금 다른 풍경으로 관계 맺음을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스토리에서 크게 발전하진 않지만 성희가 은진과 있을 때는 현목과 있을 때처럼 긴장 상태는 아니고 은진이 성희를 불쾌하게 하지도 않으니까요. 졸업을 위해 실습 시간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성희도 은진에게는 조금이나마 무장해제를 했던 순간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요. 은진 뿐만 아니라 야학의 다른 수업의 광경이나 분위기가 날아가버려서 함께 만드신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저도 야학 장면 중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악기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수업 장면이 있었는데요. 성희가 원래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가 지도하시는 분께서 일으켜 세웠는데, 억지로 일어난 듯 하지만 이내 춤을 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출을 하셨는지, 그리고 배우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덕중그 장면을 초반에 기획했을 때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을 했어요. 성희라는 캐릭터에게 야학이라는 공간이 불편하거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인 친절의 형태로 수업에 함께 임하는데, 성희는 그런 모습을 띄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야학에서 성희에게 참여를 요구했을 때 성희가 어떻게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지를 보여주고자 그 춤에 나쁜 춤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단순하게 연결이 될 지 의구심이 들었고, 여러 생각이 겹쳤던 것 같아요. 촬영에 앞서서 문혜인 배우님께서 준비를 많이 해 주셨는데, 실질적으로 야학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있고 그 춤이 오묘한 감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촬영을 하면서는 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는데, 편집을 하면서 그 춤이 그저 나쁜 춤으로 성립한다면 너무 단순해질 것 같았어요. 그 상황을 만들어낼 때 느꼈던 다른 감정들까지 가져가고자 하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정답을 정해 놓고 이 편집본을 선택한 것은 아니어서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성희가 이번만큼은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성희의 애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연민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수업보조라는 일이 그 수업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박자를 맞춰주는 차원인데 자신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모습에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문혜인: 대본에는 나쁜 춤이라고 단순하게 써있었어요. 성희가 춤을 추는 동작이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 내기 때문이거든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 순간 우월감을 느끼고자 했던 치기 어린 마음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저는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심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기는 했어요.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으로 성희가 현목과의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가는 시점이기도 해서 이 안에서의 해방감으로 표출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쁜 춤의 형태를 띌 수 있도록 섹시한 춤을 추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 같다고 대본에 적혀 있었거든요. 충실하게 준비했던 것과 즉흥적인 부분이 함께 들어갔지만, 디렉션 속의 성희의 감정과 제가 이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섞여서 영화 안에 표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도식적인 이분법일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의 상황에 몰아넣은 채 시작되고 전개되는 영화라고 느꼈어요. 현목의 어머님은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현목도 그런 어머니가 있고 고등학생 신분이고 고시생이기 때문에 집과 책상 앞에 묶여 있어야 하는 인물이고요. 성희라는 캐릭터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문제를 심어 주셨는데요. 저는 윤리라는 게 어떤 행동이나 실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윤리적인 행위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입장에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각 인물에게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의도하고 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성희가 스페인으로 갔는지도 궁금해요.(웃음) 성희를 움직이게 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아니면 이 상황에 성희를 묶어 놓고 어떤 다른 행동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궁금하고요

혜인 배우님께도 질문이 있는데요. 옛날에 배우님께서 출연하신 나가요: ながよ(2016)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 영화에서 랩을 하셨는데, 달걀을 사 들고 가면서 하는 랩이 진짜 귀엽고 쫀쫀하거든요.(웃음) 성희가 무기력하고 지쳐 있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툭툭 던지는 대사 때문에 되게 얄밉게 보이는데요. 일을 달라고 조를 때나 은진을 대할 때, 그리고 현목한테 이것저것 시킬 때 배우님 특유의 말투나 톤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발화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조절을 하신 건지 궁금해요.

 

김덕중: 현목 엄마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강하게 적용이 되었고,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목과 성희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 했어요. 공무원 준비는 두 인물이 어떻게 시간을 같이 보낼 지를 고민했을 때 필요로 했던 것이고,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 현목에게는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이는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했고요. 그리고 성희가 허리 디스크에 걸린 건 신체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한 번 손상되면 어떻게 복구가 될지 잘 모르는 극한의 상황을 위한 장치였던 것 같아요. 성희가 스페인으로 떠나는 건 영화에서는 도저히 유추할 수 없게끔 되어 있기는 하거든요. 관객들이 성희가 스페인으로 떠날 지 말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유도하려고 하진 않았는데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유추해보자면 아마 스페인으로 갔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영영 살지는 못하고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해요. 로망이 있어도 막상 그 나라에 가서 살아보면 어려운 지점도 많고 외국인이 정착하기 나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스페인으로 설정했습니다.

 

문혜인: 먼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나가요: ながよ라는 영화를 봐주신 관객 분이 계셔서 굉장히 반갑고요. 말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드는데요. 한 가지는 제가 실제로 스페인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스페인어를 오래 공부한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스페인어의 어조가 단조롭지 않고 후루룩 말하는 특징이 있거든요. 제가 말을 할 때도 그런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는 영화에서는 편집이 되었지만 성혜의 가족이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타인이고 남이라는 생각하는 인물이라, 그 만큼의 먼 거리감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굳이 그들에게 친절하려고 하지 않고, 마음이나 에너지를 쓰지 않고 건조하게 말을 툭툭 내뱉는 것이 성희의 말하기 방식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영화에서 현목이 어머니를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피가 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리고 엔딩에서 성희가 현목의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성희가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여주는 표정을 비감이라고 표현을 해봤는데요. 죄책감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도망쳐 온 것에 대한 자기반성 혹은 죄의식, 동시에 현목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일부러 표현하고 분출하는 표정이 아니라 처연한 듯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 때의 성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배우님에게 여쭤보고 싶었어요.

 

문혜인: 말씀하셨던 감정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상황 안에서 방황하는 감정들을 하나씩 규정하거나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현목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현목의 엄마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존재로 그려지면 어떨지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저 장애인으로 장치나 수단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쉬울 것 같다는 것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요. 은유적으로 엄마를 비유해보면 고양이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식물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같이 하기도 했어요. 편집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엄마가 빛을 보면 깨어나는 설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현목이 슬쩍 지나가면서 햇빛 드는 곳에 어머니를 모시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빛을 본 다음에 현목 엄마가 깨어난다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도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어머니의 반응을 재차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정지혜앞선 대사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성희로서는 불을 켜는 게 아니라 꺼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암울한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처음으로 성희가 현목에게 나름의 응징을 가하거나 맞대결을 하는, 정면으로 현목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던져가면서 싸워보는 첫 번째 순간인데요. 굉장한 육탄전을 벌이는 그 상황이 어떤 분께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 같고, 성희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 장면을 촬영하실 때도 쉽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육체적인 방식으로 가격하는 것을 택한 감독님의 의도를 먼저 여쭤보고 싶고, 연기를 하신 혜인 배우님께도 그 장면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엔딩은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정해졌고, 그것을 향해 가자고 생각을 했고요. 성희라는 캐릭터가 올바른 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이 튀어나오는 순간, 꽤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방식으로 삶이 뒤엉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서 육탄전을 선택했거든요성희라는 캐릭터가 이전까지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왔고 몸이 다쳤기 때문에 모가 난 부분이 있는데  물리적인 힘에 있어서는 현목이 우위에 있을 텐데도 그를 감수하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은 조금 더 촬영된 부분이 있거든요. 더 과격해지는 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면서 무리가 될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배우 분들은 촬영하는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있고, 스태프들은 오케이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는 똑같은 포지션이 절대 아니라는 걸 느꼈거든요. 배우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후의 동선에서 사실 사고가 있었어요. 배우님이 실제로 다치시고,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현목을 연기한 배우는 청소년 배우인데, 저희가 사고에 대한 안전장치나 대비를 충실히 하지 못했고 배우가 문제제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일 거란 걸 체크하지 못했어요. 영화를 만들자고 요청했던 사람으로서 도저히 핑계를 댈 수도 없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요. 조금이나마 위험한 순간에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히 준비하고,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문혜인: 저는 여러모로 힘든 촬영이었거든요. 좁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일종의 액션씬이고 긴 동선이 있는 촬영이었어요. 감독님과 조감독님이 짜 놓은 합을 저와 김준형 배우가 연습해서 진행했는데요. 실제로 물리력이 가해지면 그것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동선을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고 실제로 제가 다쳐서 긴 시간 동안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치유가 필요했어요. 그런 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 많은 상상력이 들어가게 되죠. 인물과 상황, 사건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와 같은 과정에 대한 상상도 필요해요. 어떠한 인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이 더욱 더 예민하게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촬영될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고, 안전을 위한 액션 전문가가 현장에 필요했어요. 물론 처음이고 서툴기 때문에, 예산 등 그 밖의 부족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반복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추후에 감독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고 충실한 사과를 받고, 동의에 이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배우와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더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성희와의 몸싸움에서 현목이 성희에게 맞게 되는 동선이 있었는데. 물론 준형 배우의 합의가 있었고 팔이나 다리에 보호장비를 했지만 실제로 배우가 물리력을 몸으로 감당해야 했고, 가학을 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괴로운 경험이었고요. 지금은 그 선택이 준형 배우에게 있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도 함께하는 동료로서 그 순간에 더 예민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성인 연기자라면 그런 폭력을 사용해도 괜찮은지에 대해 물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해요. 실제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네요. 앞서 말했던 관계 사이의 미묘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시스템으로써 설명이 되지만, 우리가 잘 모르거나 무감하거나 놓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밖의 현실적인 문제와 연동이 되면서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관객 분들께도 같이 느끼고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엔딩을 보면서 성희와 현목의 관계는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진행될 수 없을 것이고, 관계의 실패라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요. 성희 식의 응징 혹은 훈육이라고 표현을 했을 때, 그것 역시도 실패라고 봤거든요. 이들의 관계가 다른 방식으로 진척이 될 수 없기도 하고, 성희에게도 충격을 가한 만큼의 힘 혹은 그 이상이 쏠렸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성희의 응징 역시 긍정적인 신호이기 보다는 실패의 방식으로 끝이 났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엔딩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층적인 관계 내의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되고요.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 안팎으로 고민거리를 던져주네요. 감독님과 배우님께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고민들을 용기 있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뀌어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고 해결의 지점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무리 인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문혜인: 되게 이상한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웃음)

 

정지혜이 영화를 배우로서 여러 고민을 하던 시기에 만났다고 하셨는데요. 이상함이 나쁜 의미만은 아니고, 때로는 기분 좋기도 하고 다른 의미의 칭찬이 될 수 있기도 하죠. 그 때의 고민과 작업을 마치신 지금의 고민이 달라지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문혜인: 너무 복잡다단하고, 평범한데도 특이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고, 디테일한데 거칠기도 한 이상한 느낌을 말한 거였어요. 저는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서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화 안에 쌓여 있는 많은 것들이 덩어리로 다가와서 이상함을 느꼈던 것 같거든요. 저는 디테일한 대본의 설정을 모두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는 하나하나가 다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희한한,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아하는 영화예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화가 영화로도 존재하지만 그 밖의 시간을 같이 경험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안에서 상충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 이상해지는 지점이 생기기도 하고요. 영화의 제목이 에듀케이션인데 영화가 저에게 준 교육 내지는 교훈은요. 그 이전의 저는 워커홀릭이었고 일에 모든 것을 내어 던지는 타입의 배우였다면, 그 이후의 저는 어떤 경우에도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 것만큼 삶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요. 그 사이에서 좋은 균형을 잡으면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흉흉한 상황에 극장으로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덕중: 찾아와 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영화는 처음 아이템 기획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상영에 이르기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영화가 우리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과 맺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두 우리라고 할 때, 이 과정이 오롯이 좋은 기억들로 남을 수 잇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지혜: 늦은 시간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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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빛  한줄평


정성혜 | 당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한다는 것

오윤주 | 사적인 기록에서 영화의 의미를 탐구하다 

송은지 | 카메라는 대상과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흔들리면서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현재에 가져다 놓는다

김혜림 |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작은 빛  리뷰: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왜 드는가? 누군가는 현재를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해 들 것이다.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담는다. 당시의 사람, 감정, 분위기, 향기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에 포함되어 있고, 카메라는 당연히 그 시간을 살고 있다. 여기 곧 기억을 잃을 남자가 있다.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는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 혹은 미래에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자신을 위해 카메라를 든다. 작은 빛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가 그렇다.



 


진무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을 소란스럽게 맞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혹은 예상해왔던 일이라는 듯, 영화는 꾸준히 조용하고 희미한 분위기를 지속한다. 진무의 병을 둘러싼 가족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의도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진무의 병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병원에 함께 있거나 진무의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멋쩍게 응할 뿐이다. 가족에게 오히려 큰 사건은 부재한 아버지의 산소에 나무뿌리가 타고 들어와 박힌 것이다. 영화의 종반부, 가족들은 아버지가 모셔진 묫자리로 찾아가 미라처럼 굳건히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기억의 사라짐과 부재한 아버지의 굳건함, 이 사이에서 조민재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가족들과 진무의 사소한 움직임이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듯 카메라를 피해다니는 어머니 신숙녀의 모습이나, ‘사는 게 즐겁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현의 복잡한 모습이나, 활기를 띄지 않았던 진무가 조카인 호선을 만날 때에 옅은 미소를 띄는 것, 혹은 정도가 집 앞에서 눈치를 보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 등이다. 가족들은 익숙하고 따듯한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다. 이 영화의 힘은 오히려 사소한 움직임과 미묘한 표정에 있다. 기억 상실과 아버지는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작은 빛은 이 두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닌 사건 주위의 인물과 빛을 바라보면서 작고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요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종반부, 아버지의 미라가 화면 전체를 메우는 것은 낯선 감각을 불러온다.



 


계속해서 숙녀의 입이나 가족 모두가 잡히는 씬에서 은유적으로만 이야기되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해당 씬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씬이 낯선 이유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굳어버린 아버지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가족들을 에워싸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민재 감독과 곽진무 배우는 작은 빛이 무엇보다 호주제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고 그 아이를 사회활동의 범주에 넣기 위해 숙녀는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부터 비롯된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픔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듯 오목조목 조합되어 있다. 이 아픔의 굴레에서 진무의 가족들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기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또 이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조금씩 그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진무는 카메라를 왜 들었는가? 진무의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았다. 어머니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나 형의 춤 솜씨, 누나의 삶의 흔적 등. 진무가 기억을 잃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저장된 영상 파일을 스크린 전체로 확대하면서 튀어나온 픽셀 조각 하나하나는 마치 진무의 기억과 같은 틈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가족을 형상화하는 듯 보인다. 그 속에는 미라가 되어버린 아버지도, 굳세게 살아가는 가족들도, 자신을 미소짓게 하는 무뚝뚝한 조카도 있다. 진무는 기억을 담지만 동시에 현재를 직시하게 되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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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과 위기를 오가는 한 젊은이의 문제적 선택  〈성혜의 나라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2월 2일(일) 오후 2시

참석 정형석 감독배우 송지인, 강두

진행 김영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현 시국에서 마주한 젊은 세대들의 가장 큰 비극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처지에 기인할 것이다. 성혜의 대기업 인턴 이력은 되려 족쇄로 작용하며 그녀를 일용직 세상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비단 주인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성혜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서로의 처지를 비관한 채 꿈과 희망이 하나도 없는 넋두리를 허심탄회하게 내뱉는다. 더불어 그들이 모이게 된 주된 이유, 한 달 동안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한 친구의 고독사는 그 자체로 오늘 날 젊은 세대가 처한 벼랑 끝 위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화는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고통을 성혜라는 인물로 의인화시킨 듯,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그녀이 일상을 잔인하리만치 생생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담아낸다. 그 어디에도 위안 받을 곳 없던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사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선택 하나를 안겨준다. 과연 그녀의 눈앞에 도래한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어떤 변화를 안겨줄 것인가

22일 일요일에 진행된 성혜의 나라인디토크는 성혜라는 인물의 선택이 세대에 따라 위안과 위기를 오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세대 별로 전혀 다르게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이전과 다른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충격을 전 세대들에게 안겨준다. 영화 성혜의 나라는 그야말로, 문제적 선택에 관한 작품이다.

 




 

김영진 평론가(이하 김영진): 진행을 맡은 김영진 평론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옆에는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계시고요. 각자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형석 감독(이하 정형석): 안녕하세요, 정형석 감독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삼가라는 지침이 있는 상황에 이렇게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지인 배우(이하 송지인): 안녕하세요, 성혜 역할을 맡은 송지인입니다. 시국이 흉흉한 가운데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강두 배우(이하 강두): 승환 역할을 맡은 강두입니다. 많이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진영화 잘 보셨습니까? 이 영화는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요, 제가 그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하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개봉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감회가 어떤 지 여쭤보겠습니다.

 

정형석: 개봉까지 2년이 넘게 걸렸는데, 어렵게 극장에 걸려서 다행이고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텀블벅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아 개봉하게 되어 더 기쁘고 좋습니다. 주변에 영화를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진배우분들께도 여쭤볼게요. 송지인 배우께는 이 영화가 첫 주연작인데 벅차오르는 감정을 말씀해주시죠.

 

송지인: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고요. 몇 번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이 영화가 영화제에 갈수 있을까 생각했었고, 또 영화제 가도 상을 탈 수 있을까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대상도 받고 개봉까지 하게 돼서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김영진: 찍을 때는 어떠셨어요? 왠지 고난의 행군이었을 것 같은데.

 

송지인: 201712월에 찍었는데 정말 추운 겨울이었어요. 7회차 정도로 찍어서 다들 힘들었던 여정이었지만, 잘 만들어서 어떻게든 전주국제영화제 출품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현장에 임했어요. 그래서 초청 됐을 때 정말 기뻤어요.

 

김영진: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에요.(웃음영화 찍으면서 전주국제영화제 출품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송지인: 처음 저한테 감독님이 출연 제의를 하셨을 때,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이 목표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속으로 웃었거든요. “감독님 꿈 깨세요, 저랑 어떻게 가요.”라고요.(웃음다른 훌륭한 배우들 놔두고 저랑 찍으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저는 속는 셈 치고 영화에 참여하게 됐어요.


김영진: 강두 배우님은 어떠셨나요?

 

강두: 적은 예산, 적은 회차라는 여러 열악한 상황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완성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당시 프로그래머였던 김영진 평론가님 계시니까 대상 받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희가 이상한 괴성을 지르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있어서 정말 좋았고 이렇게 개봉까지 하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극장에서 GV까지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감개무량합니다.

 




김영진: 이 영화는 대상을 타기는 했지만, 그에 반해 관심이 덜 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 질기게 계속 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뒷얘기를 드리자면 백 몇 십 편의 출품작들 중 크로스체크를 하는데 이 작품이 최종 본선에 안 올라와 있길래 이야기를 나눈 뒤 초청작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출품된 상태로 영화제에서 대상 수상까지 한 건데요. 당시 외국인 심사위원이 강하게 밀었던 작품이라 국제적으로도 집중 받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왜냐면 굉장히 많은 독립영화들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자주 다루거든요. 이 영화는 초반 15분 동안 빨려 들어갔어요. 왜 그런가 하니, 다른 극영화와 달리 시간과 공간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주된 호흡을 밀고 나가는 게 놀라웠어요. 굉장히 현대적인 터치가 눈에 보였고요. 예를 들어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의사와 만나고 난 후 주인공의 각박한 노동의 일상을 진중하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을 보며 요즘 영화 중 이렇게 끝까지 영화적으로 호흡을 관철시키는 영화는 흔치 않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 전작인 여수 밤바다〉(2016)랑 비교하면 연출 스타일이 대조적이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작과정이 궁금했습니다. 호흡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런 과정들을 설명해주시죠.

 

정형석: 말씀하신 호흡과 관련해서는 사실 어려웠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끌고 가는 게 맞나 저 스스로도 좀 걱정이 됐고, 요즘 관객들에게 먹힐까 싶었습니다. 여수 밤바다도 그렇고 주변에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편집해라, 길다, 지루하다는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그런 부분에서 제가 흔들릴 법도 했어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공연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그런 부분들에 단련되었기 때문이었어요. 무대에서는 길게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무대 작업을 하면서 그런 연출 방식에 확신도 있었고, 이런 방식을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화제 이야기를 계속 했는데, 이 영화는 애초에 상업성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일단 하자는 식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독립영화는 감독이 중심이 되어 작업하는데, 이럴 때라도 감독 마음대로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겠냐고 스스로 다짐했던 게 또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러닝타임이 이렇게 길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큰 사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18분 가량의 러닝타임인데요. 3, 4시간짜리 영화도 있는데 뭐 어떠냐고 생각했습니다. 촬영이 7회차라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모든 장면을 한두 번 만에 촬영을 끝내야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3일씩 모여서 사전에 리허설처럼 두 달 정도 맹연습했습니다.

 

김영진배우 분들께 물어보겠습니다. 성혜가 이동을 많이 하잖아요. 그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모티브를 형성하더라고요. 오토바이 시동이 안 걸리는 거, 자전거 타는 거, 걷는 거까지.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행동의 단일을 이루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설정과 관련해 듣고 싶고, 더불어 밑단이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닌 건 본인의 설정이었나요?

 

송지인영화 속 의상은 다 제 옷이에요. 따로 의상팀이 없어서 제가 가진 옷 가운데 성혜랑 어울리는 걸 찾아봤어요. 지금은 입지 않는 오래된 옷들을 가지고 갔는데 감독님께서 오케이 사인을 내리셨어요. 낡은 옷이라 그런 것 같아요.(웃음바지는 촬영을 앞두고 너무 추우니까 기모 바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실수로 짧은 게 왔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성혜로서 너무 완벽하다고 하셨어요. 운동화도 매쉬 소재라 엄청 시렸는데 그것도 인물과 잘 어울린다고 하셔서 다행이었고요. 신문 보급소 촬영하기로 한 날 그 가게가 문을 닫아서 급하게 다른 보급소를 현장에서 찾아 촬영했는데, 거기 있던 오토바이가 제가 배운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끌고 가는 식으로 현장에서 수정했습니다. 현장이 열악했던 게 오히려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영화 보시면 제가 끙끙 앓는 소리도 내는데, 이게 사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어요.(웃음)


정형석: 1,2회차 때 찍은 영상을 봤는데 움직일 때마다 에이, !” 소리가 계속 나와가지고(웃음), 다시 찍으면서 좀 참으라고 이야기했어요.

 





김영진강두님께 질문 드리자면, 애인한테 순대 주는 첫 장면부터 캐릭터가 꽉 잡힌 게 느껴졌습니다. 압권은 헤어질 때 딱 나가려는 순간, “먹고 가한 마디에 다시 돌아와서 고기를 먹던 순간인데요. 화룡점정이었습니다. 확실히 밉지 않은 캐릭터였어요. 눈치는 없긴 하지만 선의가 있는 캐릭터였는데, 본인은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하셨나요?

 

강두: 어떻게 보면 승환이라는 캐릭터는 좀만 과해도 너무 밉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대를 먹는 첫 등장을 제일 많이 연습했습니다. 대사나 동선, 순대를 어떻게 먹을지에 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연습했습니다. 모텔씬 같은 경우에도 정말 욕이 나올 법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선을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고민하며 준비했습니다. 의상도 다 제가 입던 의상이었고, 패딩도 제가 지금은 안 입는 오리털이 쭉쭉 빠지는 패딩이었는데 평소에도 계속 입어가면서 캐릭터에 몰두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의상 이야기하는 도중에 감독님이 마이크 드셨는데 좀 두렵네요.(웃음)

 

정형석: 의상과 관련해서 강두씨의 자세가 좋았던 게, 첫 장면에 입었던 츄리닝을 지겨울 정도로 끝까지 입고 나와줬어요.

 

김영진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장면이 다 나왔나요? 아니면 현장에서 우연에 의해 바뀌고 수정된 부분들도 꽤 있었나요?

 

정형석: 중간에 로케이션이 어긋난 순간이 많았는데요. 오프닝과 엔딩 모두 기획한 장소와 다른 곳에서 촬영했습니다. 촬영지로 기획했던 어린이대공원에서 강아지 때문에 허가가 안 나서 그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농구를 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을 일단 담자는 결정과 함께 현장에서 수정해서 엔딩을 찍게 됐습니다. 신문 보급소 장면도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30분간 우격다짐으로 찍고 그랬죠. 그런 즉흥적인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김영진: 이 영화가 겉으론 심심해 보이지만 텐션이 있고, 그 이유는 반복이 두터운 무언가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성혜가 일하다가 죽지 마라라고 승환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정작 본인이 공황장애 발작이 오죠. 그런 식으로 반복과 대조가 층층이 있습니다. 이런 건 현장에서 즉석으로 기획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정형석: 말씀하신 부분들은 처음부터 의도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성혜의 일상을 담아야 하는데 이 사람의 24시간을 어떻게 구성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인물의 나이 때 겪은 경험과 요즘 친구들의 고민들을 시나리오에 녹여서 성혜의 24시간을 만들게 됐습니다.

 




김영진: 배우분들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송지인처음에 시나리오 없이 감독님과 만났는데, 그 때 당시엔 5줄짜리 시놉시스가 전부였습니다. 간략하게 성혜는 이런 친구이고 이런 선택을 나중에 할 거다라는 부분이 정해진 상황이었고요. 짧았지만 캐릭터의 처지와 설정에 마음에 갔습니다. 저도 그렇고 주변 친구도 그렇고 요즘 주변에서 많이 겪는 현실이라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강두나중에 들어보니 감독님이 제 생각하면서 승환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당연히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나와 유사한 캐릭터를 제대로 어필하는 게 좋은 도전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택과 관련한 부분은 저도 평소 많이 생각한 부분인데, 예전에 저도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모습을 걱정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영진: 선택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해보자면, 대중문화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게 약자주의라 해서 소외계층의 이야기들입니다. 청년이 소외계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영화는 결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위축되고 도덕적 강박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예측 못한 선택을 하며 기성세대의 삶의 규칙을 과감히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음악도 장중하게 깔아서 처음 볼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 영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하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엔딩을 보는데, 상당히 문제적이고 어쩌면 도래할지도 모르는 경향을 예측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정형석: 엔딩을 먼저 정한 다음에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청년 이야기를 다루는데 저는 청년세대가 아니기에 제 생각을 말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이유는, 극중에도 비슷하게 나오지만 고독사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면서 안타깝고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는 분들마다 엔딩에 대한 의미나 느낌이 다 다를 것 같은데요. 한 가지는 공통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게 말하면, ‘모든 세대를 향한 협박이라는 것입니다. 청년세대가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어떡할 거냐는 것이죠. 딱 성혜가 처한 상황을 상상하시면 돼요. 한참 사회에서 일할 세대가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안한다고 말하는 상황 자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엔딩을 던져 놓고서 모두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나이든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부분을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송지인: 저는 성혜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렇게 어른들은 이 세대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만, 그런 거 다 떠나서 난 지금까지 고생했어, 그래서 쉬고 싶다. 우리 세대가 열심히 해야 되고 사회가 좋아지는 거 다 뒤로한 채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입장이 이해가 됐습니다. 성혜가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는 그 돈을 받아서 뭘 하더라도 진짜 행복할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무슨 호사를 누리든 마음 한편은 분명 불안하고 불행할 테니까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게 성혜에게 어쩌면 위로와 휴식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처음 엔딩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젊은 애가 무슨 그런 선택을 해라고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면서 성혜에게 설득 당했습니다.

 

강두이 영화 찍은 지 벌써 2년이 넘게 지났는데, 그 사이에 세상이 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2년 전만 하더라도 이게 말이 되나란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보면서 충격을 받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생각을 해보니 이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점점 더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을까 두렵기도 하고요. 점점 성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청년들의 생각이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은데, 좀 두렵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관객: 카메라가 고정되지 않고 시종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데 의도가 궁금합니다.

 

정형석: 의도적인 부분인데, 모든 게 불안정한 성혜의 삶을 좀 더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그 안에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동시에 제3자가 들여다보는 듯한 연출을 기획했습니다.

 

 

관객: 극 중 편의점에 소거라는 포스터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전부터 걸려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형석: 촬영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포스터도 준비한 건 아니었습니다. 뗄 수도 있지만 볼수록 구도가 괜찮은 거 같아서 그냥 포스터를 부착한 채 촬영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얻어걸리는 상황이 생각보다 괜찮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김영진: 이런 사례들을 듣다 보면 얻어걸리는 운은 항상 잘 준비하는 팀에게만 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엉망인 팀에게는 이런 경우가 없는데.

 

정형석이 영화의 첫 촬영을 남양주에 위치한 병원에서 시작했는데, 제가 2년 전 칸 영화제에 출품된 단편영화에 출연했을 때 그 병원에서 촬영을 했거든요. 그래서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을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이 기분이 좋아서 제작진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강두: 저희는 비웃었거든요.(웃음)

 

송지인: 무슨 소리 하시는 거냐고 했어요.(웃음)

 

정형석: 그래서 주변에 항상 그 병원 추천하고 있습니다. 그 병원이 명당이라고요.(웃음)





김영진: 공간 덕을 많이 보셨군요.(웃음이제 GV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두 배우님부터 마지막 인사 해주시죠.

 

강두: 오는 길에 지하철에 빈자리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봤거든요. 이런 상황에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개봉 2주차 되는데, 친구, 애인 일가친척 분들과 함께 같이 오셔서 영화 봐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송지인: 찾아보기 쉬운 영화도 아닌데 이렇게 끝까지 자리에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마음을 알아요. 주변에 추천하기 쉬운 영화가 아니거든요.(웃음) 2시간 가까이 제 얼굴이 나와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주변에 영화 추천 많이 부탁드립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형석저도 송지인 배우와 같은 마음으로, 이 영화가 그리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해도 다른 재미있는 영화도 있는데 이렇게 힘든 영화를 봐주실까 싶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할 영화라 생각합니다. 세상이 항상 재밌을 수 없고, 이 영화가 사회를 향해 제기하는 것들이 있고 그게 가치가 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년문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봐주신 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 생겼으면 합니다. 힘들더라도 주변에 추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영진: 오늘 오신 관객분들은 다 극강의 관객들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학의 멘트로 마무리를 하시나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볼만해요.(웃음앞으로는 너무 겸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극장에서만 걸리는 게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도 상영이 될 예정이니 앞으로 많은 분들께 이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감독님 배우분들께 큰 박수 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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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를 뛰어넘는 영화적 상상력

 〈성혜의 나라〉 정형석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현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헬조선'으로 부정되는 사회에서 세대와 젠더를 불문하고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문화예술계의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정형석 감독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청년 세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영화 성혜의 나라를 완성하였다. 성혜의 나라는 무미건조하면서도 비관하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항상 걷고 뛰며 어딘가를 향하지만 목적지는 없는 스물아홉 여성 성혜를 전면에 내세운다. 단조롭지만 위태로운 성혜의 일상을 따라가며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마주하게 하고,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통해 현 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남긴다. 성혜의 나라의 개봉을 앞두고 언론배급시사회를 마친 정형석 감독을 만났다.

 




성혜의 나라개봉을 축하드립니다. 개봉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은 감개무량합니다. 작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기 참 어렵거든요.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만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을 텐데, 개봉에 이르기까지 참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영화 성혜의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성혜의 나라는 청년 세대인 스물아홉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의 일상을 쭉 따가라면서 삶을 들여다보는 영화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건에 의해서 큰 돈을 만지게 되고, 그 돈을 통해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스물아홉 여성, 성혜라는 인물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청년 세대가 아니고, 저와 다른 세대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어요.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쁘니까요.(웃음) 그런데 어느 날 고시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청년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당시에 그 청년의 죽음이 자살인지 아닌지에 대한 추측이 많았는데, 저는 자살이든 아니든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청년 세대가 빈곤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살을 한다는 건 드문 경우라고 생각해요. 빈곤으로 죽음을 결심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이미 나이가 있거나 사회에서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젊은 세대가 자살을 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저 가난해서가 아니라 내가 왜 이렇게 밖에 안 될까? 내가 왜 이렇게 밖에 못 하는 거지?’와 같은 생각 때문일 것 같아요. 나이가 든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다고 하는데, 젊은 세대는 무력해지면서 고통을 받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그 나이대의 성혜라는 인물을 구상했고, 성혜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성혜라는 인물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했어요. 어디엔가 존재할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 중에서 이 이야기가 현실적이기 보단 특별한 경우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여쭤보니 요즘 청년들 중에 정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느껴보지 못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혜라는 인물을 구상할 때 단순히 일각에 비춰진 비극적인 사건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자존감 문제를 들여다보셨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성혜의 나라를 흑백으로 촬영하신 이유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 지 생각을 했는데요. 성혜라는 인물의 일상이 정말 단조롭거든요. 하루 24시간동안 기계처럼 밥을 먹고, 씻고,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요.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듯이요. 그 삶은 자신도 사회도 원하는 삶이 아닌데,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갇혀 있는 거죠. 어느 순간부터 돈을 쓰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당장 하루만 일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거죠. 사실 성혜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거든요. 흑백의 단조로운 톤이 성혜의 삶과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가 전체적으로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흑백으로 일상의 단조로움을 표현하셨다면, 핸드헬드 기법으로 표현하시고자 했던 부분도 듣고 싶어요.

 

성혜의 삶이 단조롭지만 안정적이지는 않거든요. 하나라도 끊어지면 완전히 끝날 것 같은, 굉장히 불안하고 긴장되는 삶이죠. 극 중에서 약을 모으는 성혜의 행동에서 어떤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할 텐데요. 그런 불안정한 삶을 묘사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습니다.

 

 

다른 영화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결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선택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결말을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 결말이 관객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가기를 바라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결말을 먼저 구상했어요. 처음에 모티브가 된 건 앞서 말씀드린 고시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한 청년에 대한 기사였고, 이걸 영화로 풀어가고자 했을 때 어떤 지점부터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결말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어요. 돈 때문에 고민하는 청춘들이 큰돈을 갖게 되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궁금해서 주변에 많이 물어봤어요. ‘너한테 갑작스레 목돈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열이면 열 명이서 다 비슷한 대답을 해요. 그런데 제가 설정한 결말로 답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고요. 아직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에 대부분의 젊은이가 영화 속 성혜와 같은 선택을 하는 건 심각하다고 봐요. 중년이나 장년 세대는 결말에 대해서 상당수가 공감을 하거나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해요. 세대마다 결말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게 다르더라고요. 사회를 떠받치는 청년 세대가 그런 선택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을 하는 시스템에 균열이 생길 것 같았고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던져 놓은 결말이지만 관객들이 경고 차원의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성혜의 나라는 한국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 성혜와 성혜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바라보는 이 시대의 청춘과 사회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인생을 하나의 망망대해라고 놓고 보았을 때, 청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대에는 등대가 없는 것 같아요. 등대를 인생의 방향이나 꿈, 목적지를 향한 과정으로 본다면, 청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꿈이라는 화두를 가질 수가 없어요. 시대적인 담론이나 화두 같은 것이 있잖아요. 지금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청춘들이 전체적인 방향이나 큰 틀을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극심한 경쟁 사회에 청춘들은 자꾸 내몰리고 있어요. 이제는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유일한 화두인 거죠. 그 안에서 꿈이나 도전 같은 표현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개념처럼 흘러가버리고요. 그런데 특정 세대가 어떠한 꿈을 가지고 있어야만 새롭고 창의적이고 신선한 무언가가 나오잖아요. 그들이 먹고 사는 데에만 급급하면 사회 자체가 탄력이 없어지고 발전할 가능성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생기가 사라진 사회가 되는 거죠. 사회나 국가가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투자를 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고 있거든요. 기성세대인 제 입장에서 한 청년의 죽음을 접하고 그에 대한 고민, 청춘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아 이 영화를 완성했어요.

 

 

감독님께서는 극단에서 연기 생활을 하시다가 방송 작가와 영화 각본가로 활동하셨습니다. 현재는 영화계에서 연기와 연출을 하고 계시는데요. 성혜와 비슷한 나이였던 감독님의 청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당시에 어떤 꿈을 꾸면서 도전하셨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서 20대를 다 보냈어요.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개인적인 욕심이 생기니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40대, 50, 60대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를 그려보니 이대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물론 그 삶 속에서도 쌓아가는 것들이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30대에 대학로를 벗어나게 된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어느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성취할 수 있는 부분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저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글을 써보자는 결심이 섰고, 영상작가교육원에 들어가서 시나리오 및 방송 드라마 작가로 글을 쓰게 된 거죠. 그 일을 하다 보니까 또 다른 욕심이 생겨서 연출을 시작했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도전해보고 부딪쳤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20대 때가 오히려 가장 안주했다고 봐요. 극단 안에서 1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그 시스템 안에서만 쌓아가려 했거든요. 물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고 배우로서 인정을 받기도 했죠. 제가 있었던 극단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시스템이 괜찮았던 곳이라 연극을 하면서 크게 고생을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그 이상의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배우로 출발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계속 도전을 하다 보니 작가도 되었다가 연출자도 되고, 현재는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어요. 분명히 남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내가 하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직접 부딪친 거예요. 실패를 한 번 해보면 그 이후에 새로운 방법이 생겨서 실패가 두렵진 않았는데, 도전을 하기 위해 지금 가진 것을 놓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었어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놔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매번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새로 도전합니다.

 



 

연기와 연출을 모두 경험하신 감독님께서 성혜의 나라에 출연한 두 주연배우의 캐스팅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대사가 많지 않아요. 사건도 복잡하지 않고 단조롭게 흘러가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배우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리고 118분 내내 얼굴이 많이 나오거든요. 성혜라는 인물을 담아낼 수 있고, 관객이 질리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가 필요했어요. 저는 송지인 배우를 몰랐는데 배우인 지인의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미지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캐스팅을 참 잘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고, 영화를 보신 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영화에서 캐스팅은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성혜의 남자친구 승환 역을 맡은 강두 배우는 그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강두라는 사람이 가진 이미지가 원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소 찌질한 승환의 느낌은 아녔잖아요. 처음 봤던 당시에는 철없고 허세도 있어서 어깨가 잔뜩 올라가있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 속에서 약간 승환 같은 모습을 봤어요. 어느 순간 본인도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인 고민도 하게 되었고요. 영화에 나오는 옷이 실제로 본인의 옷이에요. 강두가 가진 두 가지 면을 보고 캐스팅을 했죠. 두 배우 모두 만족스러운 캐스팅입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두 주연배우의 디렉팅에 있어서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촬영 때는 디렉팅을 별로 안 줬어요. 저는 연극 작업을 오래 했는데, 연극은 사전 연습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찍은 영화 세 편 모두 촬영 전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성혜의 나라같은 경우도 촬영 두 달 전부터 미리 만나서 계속 연습했죠. 연습 과정에서 계속 디렉팅을 주었기 때문에 사전에 숙지가 된 상태이다 보니까 현장에서는 디렉팅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저희 영화가 작은 저예산 영화라 현장에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빨리 찍어야 했어요. 테이크를 여러 번 갈 수 없어서 거의 다 원 테이크였고, 많아 봐야 투 테이크였어요.

 



 

감독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성혜의 나라이후 전주 지역의 공연팀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담은 앙상블〉(2019)을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차기작 연출이나 연기 활동을 진행 중이신가요?

 

앙상블5월 정도에 개봉 예정이고요. 1년에 영화를 한 편은 찍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첫 영화 여수 밤바다〉(2016), 두 번째 영화 성혜의 나라, 그리고 앙상블을 촬영했는데 작년에는 준비하던 영화를 못 찍었어요. 이전의 영화들은 제가 직접 자비를 들이더라도 제작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도 한계가 있다 보니 어느 정도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 작품은 사회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그런지 투자가 잘 안 되더라고요. 올해는 어떻게든 하려고 다른 시나리오로 작은 영화를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기획 중인 상업영화도 한 편 있어서 두 편 정도가 준비 단계에 있고요. 연극은 제가 원래 해오던 일이고, 1년에 두 세 편 만들거든요. 올해도 두 편을 만들게 됐어요. 하나는 제가 연출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어요. 아직은 수입원이 연기여서 배우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아시겠지만 이런 영화로 돈을 벌 수가 없어요.(웃음) 영화도 연극도 돈을 까먹는 일이어서 유일한 수입원인 연기를 해야 돈이 들어와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멀티플레이어라고 하는데, 생계형 멀티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좋아서 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쉬지 않고 이것저것 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성혜의 나라가 관객 분들께 어떤 영화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일단 기억하려면 보셔야 하니까요.(웃음) 극장으로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고요. 이 영화의 제목이 성혜의 나라인데, 성혜의 나라는 대한민국예요. 영화 속 115분은 영화적인 상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고, 마지막 3분 정도만 제가 설정한 상상이죠. 그 상상은 제가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 같은 것이고요. 이 영화를 보고 그 경고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자칫하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는 문제이니까요. 그래서 성혜의 나라를 청년 세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가를 운영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그 분들이 더 느껴야 하니까요. 청년 문제가 지금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성혜의 나라가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각성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길 바라요. 성혜의 나라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 사회의 청춘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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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살풍경

 〈성혜의 나라〉 송지인 배우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80년대에 김지영이 있다면 90년대에는 성혜가 있다. 이른바 'N포 세대'라 불리는 취업준비생인 성혜가 살아가는 세계는 흑백의 살풍경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성혜는 청년 계급 속에서도 또다른 몇 겹의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과 체념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찌꺼기도 남지 않은 성혜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성혜의 얼굴을 끝내 보아야 함을, 우리가 함께 보아야 함을 송지인 배우는 안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외면할 수 없는 기묘한 빛을 내는 성혜의 나라 송지인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성혜의 나라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2년이 지나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개봉을 위해 진행한 소셜 펀딩도 성공하였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개봉을 맞이한 배우님의 소감도 남다를 것 같아요.

 

개봉하기까지 많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에 펀딩을 할 땐 개봉을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의외로 이 영화를 궁금해 하고 보고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담아 개봉을 지원해주신 거라 너무 소중하고 믿기지 않았어요. 저도 소셜 펀딩을 하면 후원해본 적 있는데, 지지해준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 성혜의 나라〉 속 송지인 배우님이 연기한 인물 성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성혜의 나라의 성혜는 20대 후반의 취업준비생이에요.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취업준비를 하던 도중 좋지 않은 일들을 당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친구예요.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열심히 사는 젊은이고요. 감독님은 어떠한 선택을 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성혜와 같은 인물을 만드셨다고 해요. 저도 연기를 하면서 성혜에게 깊게 이입을 하게 됐어요.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주연으로 출연하는 첫 장편영화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과정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단편영화 작업은 해봤지만, 이 영화는 긴 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저만 나오는 영화니까 부담감이 컸죠. 처음에 감독님이 우연히 어딘가에 나온 저를 보고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서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다섯 줄짜리 시놉시스를 주시면서 이런 영화를 제작할 건데 열악하다고,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냥 하겠다고 했죠. 그 짧은 시놉시스 속 이야기가 저나 제 친구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겪고 있는 일이어서 하고 싶었어요. 드라마에도 다양한 역할이 많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기도 한데 이 영화는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꼭 참여하겠다고 했죠.

 




영화가 성혜의 감정선을 오롯이 따라가는데, 송지인 배우님이 끌고 가는 힘이 엄청난 영화였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사실 연기할 때 무언가를 일부러 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연기적으로, 캐릭터적으로 어떤 디테일을 준비할 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은 그저 그대로 성혜를 보여주길 원하셨어요. 어떤 기교나 연기적인 디테일을 원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배우의 욕심으로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을 보여주어야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덕분에 감정적으로 깊게 이입이 됐어요. 그리고 이 작품 준비하면서 거의 두 달 동안 매일 만나서 리딩을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이었어요. 매일 만나서 리딩을 하고 동선 리허설까지 전부 다 했어요. 사실 예산이 한정적이니까 본 촬영에서 NG를 최소화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두 달간 연습했던 시간 덕분에 성혜와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성혜의 나라는 흑백 화면이 인상 깊은 영화이기도 한데요. 흑백 영화는 배우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흑백 영화이기 때문에 표정 등 외적인 모습에 있어서 특별히 신경 쓴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흑백 작품은 처음 찍어봐서 어떻게 보일지 전혀 상상이 안 됐어요. 흑백이면 조명이나 촬영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한 것들은 감춰질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게 감춰지면 저는 부담이 큰 거예요. 제가 더욱 잘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만 감독님이 성혜의 고단함이나 단조로운 삶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흑백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연기를 하면서도 그냥 믿고 맡겼던 것 같아요.

 


영화 초반부는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가는데요감독님께 영화를 10분 정도 자르라고 농담도 했다고 하시던데 이런 흐름이 걱정되셨나요?

 

제 입장에서는 자르면 아깝죠.(웃음) 영화가 절대 넘친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그런데 길고 지루한 영화라는 편견이 앞설까봐 좀 걱정되긴 했어요초반에 성혜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길게 나오잖아요그렇게 성혜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오롯이 그 삶의 과정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요.

 


그런 구성 자체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이 사람에게 어떤 서사가 있는지 앞에서 보여주니까요.

 

그런가요저는 첫 주연 작품이니까 부담이 있었던 거예요내가 저렇게 길게 자전거 타는 장면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그런 생각도 들고.(웃음)


 

찍으면서 힘들었던 장면도 있나요?

 

힘들다기보단 사실 모든 장면이 아쉬워요이미도 배우께 특별출연을 부탁드려서 카메오로 출연해주셨는데 너무 얄밉게 연기를 잘 해주시는 거예요현장에서 너무 화가 났거든요.(웃음좀 더 감정을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실제로 열 받았던 것만큼 나오진 않은 것 같아서.




 

성혜의 나라는 힘겨운 현실을 좀비처럼살아가는 여성이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닫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시던 때에 이 영화를 만나게 되셨나요?

 

사실 굉장히 힘들 때 이 작품을 하게 됐어요. 전 소속사에서 나오게 되면서 작품을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배우를 그만하게 되는 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감독님 연락을 받은 거예요. 독립영화라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서 영화제에도 출품할 예정이라고 제안해주셨을 때 저는 그게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 절박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성혜에게 더 이입할 수 있었어요.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저는 사실 이전에 독립영화는 거의 하지 않았고 TV 드라마나 광고 출연을 주로 했어요. 예전 같으면 이 작품을 하면 차기 드라마나 광고에 지장이 있을지 따져보았을 텐데 그때는 전혀 고민이 되지 않더라고요. 사실 소속사가 있으면 이런 독립영화를 하기 힘들거든요. 금전적인 이유가 가장 크고요. 그러니 참 적기에 만난 작품인 거죠. 저한테는 이 작품이 큰 복이에요.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해서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가 커요.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도 있으신가요영화 속 성혜처럼 인턴이나 취업준비를 해보신 적이 있는지성혜의 삶과 맞닿는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성혜와 비슷하게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교에 친구가 없었어요계속 아르바이트만 하느라고요공강 때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알바하고끝나면 카페나 레스토랑 가서 알바하고쉬는 날에 과외 알바하고그래서 성혜에게 많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성혜가 기껏 하는 게 편의점 가서 낮에 햇살 받으면서 도시락 먹는 거잖아요그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는 거예요저도 그때 크게 바라는 거 없이 그냥 공강 시간에 학교 식당에서 밥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항상 이동하면서 삼각김밥을 먹으니까요졸업할 즈음부터 취업을 준비하는데제가 국어국문학과라 작가의 꿈이 있었어요그래서 방송국에서 작가님들 심부름하는 알바를 하다 우연히 캐스팅이 되어서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그 땐 그냥 카메라 앞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면서 했죠방송국에서도 거의 집에 안 들어가고 숙식실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일을 했어요그래서 성혜의 끝없는 일상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배우님께서 생활인으로서의 연기를 보면서 실제로 이런 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디테일이 느껴졌어요. 편의점 알바를 할 때 쓰레기를 치우는 손짓이라든지, 능숙하게 삼각김밥을 먹는 모습이라든지.

 

불행 배틀처럼 나의 불행을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저도 대학 다닐 때 어머니가 아프셨어요. 그래서 알바를 그렇게 많이 했던 거예요. 성혜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죠. 그런데 정작 성혜를 연기할 때는 그런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았어요. 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일할 때 물론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지만 사실 그냥 노동을 하는 것뿐이거든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우님께서 성혜에게 정말 이입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배우님은 청년이자 여성의 위치에 계십니다. 영화 속 성혜가 가깝게 다가왔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영화 속 성혜의 에피소드가 다양하잖아요. 직장 내 성희롱도 겪었고요. 사실 영화에서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신문 보급소 사장님이 성혜에게 가불을 해주잖아요. 그 장면을 찍는데 자꾸 혼자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나에게 흑심을 품고 이러는 거 아닐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아닐까?’.

 


맞아요. 저도 그 장면에서 조마조마 하더라고요.

 

배우 생활 하면서도 그런 애매한 상황이 많거든요. 나에게 결과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불쾌한 여지를 남긴다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가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실 저는 여성으로서 약자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성혜에게 이입이 되었어요. 과거의 저뿐만 아니라 현재의 저도 그렇고, 제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고, 배우라는 직업은 매우 불규칙하기도 하니까요. 여전히 누군가 나를 찾아주지 않으면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국문과를 나왔지만 우연한 계기로 캐스팅이 되어 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 영화를 연출하신 정형석 감독님도 배우를 하다가 연출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송지인 배우님도 나중에 글을 쓰실 생각이 있나요?

 

사실 전공을 살려 일하기가 쉽지 않아요. 책 보고 글 쓰는 게 좋아 국문과에 갔는데 말 그대로 어쩌다보니 배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앞서 말했듯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배우라는 자각 없이 내가 하는 수십 가지 아르바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죠. 그래서인지 항상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에는 다들 꼭 등단하자!’는 말을 하곤 했거든요. 사실 그 꿈이 아직 있어요. 언젠가는 내 글을 쓰고 싶고요. 기회가 없더라도 혼자 평생의 숙원처럼 안고 갈 꿈이 아닐까 해요.

 


그렇게 아르바이트처럼 배우 일을 시작하셨으니, 연기도 따로 배우시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신 건가요?


영화 속 성혜를 보면 알바 중에서도 저임금 알바만 해요. 효율을 따지고 도덕성을 차치한다면 고수익 알바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만 하는 것이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일만 하다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무서웠어요. 서울 사람들은 눈 뜨고 코 베어 간다고 하는데 방송국 사람들은 더 할까봐.(웃음) 겁이 나니까 처음에 시작할 땐 기획사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게 가능한 광고 쪽으로 간 거예요. 혼자 사진을 찍어서 에이전시에 프로필을 다 넣었어요. 지금이야 아닌 걸 알지만, 그 땐 연기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고, 광고는 짧은 시간 동안 웃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그렇게 광고 일을 하다가 회사를 만나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배우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딱히 거창한 원동력은 없었어요. 유혹도 많았지만, 성혜처럼 일단 그냥 열심히 하는 거예요. 원대한 포부 같은 것 보다는 그냥 나 자신을 잃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했어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송지인 배우님의 생각도 궁금해요.

 

성혜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만, 이 선택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지치고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내린 결정일 뿐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을 얻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돼요. 그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역할인 것 같아요.



송지인 배우님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많이 고민했는데, 영화를 찍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영화의 결말에 설득된 것 같아요. 이게 맞는 거 아닌가 하고.(웃음) 그렇지만 사실 저는 성혜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공부도 하고, 학위를 따기보단 책 좀 실컷 보고, 또래들의 삶을 살아보고. 그런 부분은 성혜랑 비슷한 것 같아요. 여유를 좀 느끼고 싶다고 해야 할까요.

 


성혜의 선택에도 공감이 가요. 영화가 조금 일찍 개봉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고요.

 

공감해주셔서 좋네요. 얼마 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러 갔을 때 정말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삶의 궤적이 달라서 '김지영'의 삶을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입해서 볼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좋은 영화요. 그럴 때 새삼 영화가 위대하다고 느껴져요.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고 공감을 끌어내니까요. 성혜의 나라도 조금이나마 그런 영화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에서부터 단편, 장편 영화까지 적지 않은 수의 작품에 출연하셨어요. 송지인 배우님은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으세요?

 

우선 연기 하는 보람을 주는 작품들을 찍고 싶어요. 톱스타로서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고서야 성혜의 나라처럼 개인의 서사만 가지고 있는 작품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행복하다고 느꼈고,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영광스러웠어요. 아주 작은 역할의 한 장면을 연기하더라도 개인의 서사는 있는 법이잖아요. 연기하는 본인은 그 이야기를 알지만 극 중에는 다 보이진 않을 때도 있죠. 앞으로는 관객들이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서사가 있는 역할을 더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신지도 듣고 싶어요.

 

성실한 직업인으로서의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대체로 직장인들은 9시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하듯, 저도 계속 연기하는 성실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성실한 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정말 좋았어요. 내가 연기할 캐릭터가 있고,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꾸준하게, 이왕이면 발전하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성혜를 보면서도 스스로 좀 반성을 했어요.(웃음)

 


다른 독립영화에 출연하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사실 너무 하고 싶어요. 성혜의 나라를 계기로 독립영화를 더 많이 찍고 싶어요.

 


성혜의 나라를 관람하러 오실 관객분들께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성혜의 나라가 선택하기 쉬운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자체로도 위로가 되어주는 영화거든요.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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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할 만한 지나침  리뷰: 움직이는 시간 속에, 기억해야 할 순간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때때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며 지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운지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겨 흘러가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멈춰 서곤 한다. 그리고 기억해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지나쳐온 기억할 만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기억할 만한 순간을 두드리며 가는 것, 그 지독한 인간의 고독함에 대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스크린을 통해 마주하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김은 시인이다. 그에게 처한 삶은 버거울 정도로 무겁다. 곁을 떠난 애인,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작품, 가족의 죽음. 가족과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김은 그의 가족과 철저히 분리되어 이미지화된다. 그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 자기 자신166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주인공 김의 서사를 따라가며 긴 시간 동안 긴 호흡의 이미지와 마주한다. 영화의 긴 시간과 호흡은 어쩌면 주인공 김의 고독의 시간들을 따라가기 위한 지당한 애도의 시간이자 우리의 안에 고독을 살펴볼 수 있는 비어있는 시간일 것이다. 감독이 제공한 이 시간들에 대해 관객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독의 서사를 입혀가는 과정이야말로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완성되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의 고독과 소외감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주인공 김에게 반복되는 누군가의 죽음과 부재는 점점 그를 벼랑 끝으로 떠밀고 있다. 괴로운 그에게 한줄기 위로처럼 찾아오는 것은 그의 이미지와 교차되어 반복되는 자연이다. 흘러가는 물줄기, 하늘에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 고독의 시간들을, 고독한 존재들을 위로하듯 자연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존재한다. 자연의 소리와 대화를 나누며 그 속에서 얻는 위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곁을 내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이다. 우리의 인생이 늘 그렇듯 말이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느끼며 사는 것, 움직이는 시간들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리뷰를 마치며 기형도 시인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의 고독을, 어둠을, 슬픔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시의 전문을 옮겨 적는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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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더라도 눈부신 빛을 주고받으며

 〈작은 빛〉 조민재 감독, 배우 곽진무, 변중희, 신문성, 김현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가족, 공간, . 언뜻 보면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또 하나하나 연결하자니 고민이 앞서는 것들이다. 영화 작은 빛은 고요하게 이 모든 항들을 작지만 눈부신 빛으로 잇는다.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은 빛은 평범해보이는 한 가족에서 출발해 그들이 갖고 있던 기억과 공간, 그리고 삶에 대해 묻고 답해가는 영화다. 감독 조민재와 배우 곽진무, 변중희, 신문성, 김현을 만나 그들 각자의 작은 빛에 대해 물었다.

 



 


영화 작은 빛123일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그간 영화제와 기획전을 통해 몇 번 소개된 적이 있지만 정식으로 개봉하니 느낌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개봉에 대한 감회가 어떠신지 듣고 싶어요.



조민재 감독(이하 조민재): 개봉이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이 가장 커요. 개봉을 하는 것이 배우님들이나 스탭들, 저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에 기뻐요.

 

변중희 배우(이하 변중희): 독립영화 중에 생일이 없는 영화가 많다고 들었어요. 우린 생일이 생기고, 생일 축하도 받고, 또 기념일도 받은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영화가 빛이 날까, 그런 사명감이 생겨요.

 

곽진무 배우(이하 곽진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영화가 소개될 수 있어서 좋고,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는 점이 정말 좋습니다.

 

신문성 배우(이하 신문성): 저는 개봉까진 꿈을 꾸지 않았어요.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독립영화는 개봉까지 하는 게 그리 쉽지 않아서요. 감독님께서 초지일관 유지하신 자신의 세계관이랄까요? 그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빛을 발한 것 같아서 상당히 기쁩니다.

 

김현 배우(이하 김현): 작품을 하다보면 보물 같은 작품들이 있어요. 언젠간 그게 빛이 나더라구요. 작은 빛은 작업할 때 색다르고, 감동스러운 지점이 있었어요. 찍고 난 다음 1년은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이렇게 개봉하게 돼서 놀랐죠. ‘내가 잘 봤구나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일 안하고 영화만 작업했으면 좋겠어요.(웃음)

 



감독님께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배우분들은 이 영화에 함께 하게 된 계기를 간단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조민재: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휴식이 필요했어요. 1년 정도 쉬어보자는 생각에 퇴사를 했고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영화를 한 편 만들어봐야겠다 싶어서 쉬는 동안 만들어보았습니다.

 

곽진무: 저는 조민재 감독과 오랜 시간 알고 있었던 사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지인이기 때문에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건 아니에요. 작품이 상당히 좋아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인터뷰를 통해서 글을 쓴 시나리오라서 그런지 한층 깊었어요. 그런 점에서 설레고 같이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현감독님이 우연히 어딘가 올라온 저의 프로필을 보셨나 봐요. 캐스팅 요청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제 연극을 보러 오셔서는 부끄러우니까 끝나고 말씀도 없이 그냥 가셨대요.(웃음)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저에 대해 사전조사를 하신 것 같아요.

 

신문성: 김현 배우님이 제 극단 선배님이에요. 김현 배우님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오디션을 보았고 조건에 부합하여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였죠.(웃음)

 

조민재처음에 신문성 배우님을 만났는데 바로 , 우리 형이다.’하고 생각했어요.(웃음) 말투나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변중희: 저는 저보다 먼저 어머니 역할을 맡아서 하신 분이 계셨어요. 뒤늦게 ‘믿을만 할?’ 이런 의혹 속에 후발주자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웃음)

 

 


배우분들이 맡은 각자의 캐릭터가 어떤 성격인지, 또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감독님이 인물들을 만들면서 참고하거나 반영한 인물이 있으신가요?

 


변중희이 영화는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기 때문에 감독님 어머니를 만났어요. 두 시간 정도 어머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나름대로 설정한 신숙녀는 생활력이 강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싶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의연하게 헤쳐 나가는 인물이라고 봤어요. 그렇지만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속정이 있는 엄마.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혼자 꿋꿋이 살아가는 그런 엄마. 그런 엄마상을 가지고 작업을 했죠. 감독님 어머니를 만나면서 가족 간의 관계, 가족이 살아온 궤적들을 미리 들은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왜 가족이 친하면 밥을 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게 아니라 밥상을 밀어놓고 밤새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말씀을 하신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신숙녀라는 인물이 이렇게 자랐고 이렇게 살았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성격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곽진무: 저는 일찍이 가족 해체를 겪은 어린 남자를 상상하면서 시작했어요. 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가족들과 단절되고 사회에서도 고립되어 있고, 감정이 점점 사라져가는 듯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병을 얻고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돼요.

 

신문성: 아까도 잠깐 감독님이 말씀하셨지만, 저는 특별하게 어떤 캐릭터를 다시 구성하기 보단 저로부터 출발한 거 같아요. 그런 자연스러움을 감독님이 원하셨어요. 이 작품이 어쩌면 우울하거나 무거워보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삶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고 결국 일상적인 흐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김현: 사실 곽현이란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현은 이혼 경험이 있는 설정이었죠. 그래도 제가 나이가 있으니까 모양도 갖춰졌고 저라는 사람의 성격과 맞닿은 지점이 많았어요. 감독님이 저에게 누나 캐릭터를 씌워주어서 어렵지 않게 갔던 것 같아요. 특별하게 제가 현의 이혼이나 과거에 대한 비하인드를 거창하게 가지진 않았어요. 너무 디테일한 감정이나 비하인드는 해로워요.

 

조민재인물 구성에 있어서 물론 제 가족들의 모습을 반영하긴 했지만 최대한 영화에 나오는 분들의 모습을 시나리오에 넣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리딩을 할 때도 대사를 읊기보다는 밥 먹는 모습을 미리 촬영해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보고 연구했고 그걸 시나리오에 반영했어요.

 





 

오늘도 몇 번 언급하셨지만, 작은 빛은 감독님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인 것이 느껴져요. 자전적 이야기를 사적 다큐멘터리의 형식이 아닌 극영화를 통해 담아낸 이유가 듣고 싶어요.

 


조민재일단 첫 번째로는 자전적인 다큐멘터리라면, 맥락은 제 이야기일지라도 가족들에게 책임감을 분배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 가족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이 언어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일정부분 져야하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큐멘터리는 무엇이고 극영화는 어떤 것일까, 그런 고민들 사이에서 생각을 하다 보니 대신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다큐나 극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자전적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것일까.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생산하는 게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이 핵심이었어요. 그래서 캠코더를 사용했고, 픽션과 논픽션을 계속 뒤섞어나가는 구성으로 만들어나갔습니다. 다큐멘터리라는 것도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들어가 있으니 면밀히 따지면 픽션이죠.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이 영화에 가장 많이 쏟아진 말 중 하나일 듯합니다. 관객들이 영화 속 진무가 실제 감독일 거라고 추측하거나, 숙녀 역 또한 감독의 실제 어머니일 것이라고 추측한 경우 역시 꽤나 많았던 것으로 알아요. 배우분들이 연기하실 때에는 대본이 명확히 있었는지, 혹은 순간에 맞게 애드리브를 하신 경우도 많았는지 궁금해요.

 


조민재팔십 퍼센트가 애드리브였어요.

 

변중희: 핵심적인 상황은 대본에 있지만 구체적인 언어화는 되지 않은 게 더러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장면인데, 오토바이 타고 가면서 노래하는 장면 있잖아요. 감독님이 어머님, 노래 하나 해보시죠. 아무거나 하세요.’해서 그냥 생각나는 노래 한 거예요. 그리고 끝부분에 사진 보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어머니, 5분만 얘기해보세요.’하셔서 만들어진 장면이에요. 그럴 때 감독님 어머니를 만난 게 도움이 되었어요. 현이가 10살 때 쓴 시 이야기도 그 때 들은 얘기를 한 거예요. 조민재 감독이 굉장히 치밀한 감독이란 걸 이제야 알았어요.(웃음)

 

조민재저도 사실 영화를 찍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배우한테 완전히 맡기게 돼요. 진무 배우랑 어머니가 인터뷰 장면을 찍을 때 , 저 구역에는 내가 들어갈 수 없겠다. 배우가 알아서 움직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테이크 한두 번 만에 가고 너무 빨리 찍어서 시간이 남으면 한 번 더 가는 수준이었어요. 중반부터는 배우들이 알아서 잘 움직여서 제가 더 이상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신문성저도 비슷해요. 춤추는 장면은 그냥 한 큐에 갔어요. 약간 당혹스러울 정도로 날 것의 장소, 길가에서 한 번에 찍었는데 낯설고 멋쩍은 모습이 그대로 보여서 좋더라고요.

 

조민재: 신문성 배우는 한 번 만난 뒤에 너무 확신이 들어서 더 이상 리딩을 하지 않았어요. 더 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았죠. 제가 원하는 사람이 딱 나와주셨어요.

 






주인공 진무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일단 배우님의 성함과 배역 이름을 통일시킨 이유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또 이 지점에 있어서 배우님과 감독님 사이에 오간 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조민재: 제가 이 글을 제주도에서 처음 썼을 때는 주인공 이름을 A, B 이런 식으로 썼는데 완성이 되고 나니 한 가지 기억이 번뜩 떠올랐어요. 진무 형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을 영화모임에서 발제하던 기억이요. 그때 진무 형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길 해주셨어요. 당시에는 사실 좀 거북했어요. 저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데, 형이 너무 진솔하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니까요. 금요일 밤 즐거운 자리에서 왜 이렇게 무거운 이야길 하나 했는데.(웃음) 그 생각이 나서 다시 환상의 빛을 보게 됐고, 이 영화가 왜 좋은지 알게 되고, 당연히 진무 형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진무 형이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푸시로 주인공 이름을 진무라고 하고 보내드렸죠. 선택은 진무 형의 몫이지만요.

 

곽진무: 부담이었죠. 제 이름으로 온 게.(웃음) 글을 받은 건 너무 좋은데 극 안에 제 이름이 있다는 건 부담스러웠어요. 그치만 함께 하게 된 이상 어떤 요구를 한 적은 없어요. 감독의 영역이고, 감독의 세계관이니 감독에게 모두 맡기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저 역시 듣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감독을 믿고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진무는 영화 전체에서 말이 많지 않아 보여요. 말이 없는 인물들이 최근 독립영화 주인공들의 경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왜 진무는 말이 많지 않나요?

 


곽진무: 아까 말했듯 일찍이 가족의 해체를 맛보고 노동 현장에 살면서 당연히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이 닫혔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가족들 만나면서 그나마 정서가 열리기 시작하는 호흡으로 접근했습니다.

 

조민재: 실제로 감정의 서사를 짤 때 어느 쯤에 진무가 감정을 열어줄까 생각해보았어요. 진무는 천천히 하나씩 열 것이라 생각했어요. 호선이를 만날 때는 진무가 마음을 좀 더 열어주는 식으로요.

 

곽진무: 감독이 그걸 연출하고 요구했어요. 목욕탕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요구했었죠. 호선이와 물장난 치는 장면이 저 또한 마음이 열린 계기가 된 거죠.

 

조민재: 가부장제의 어떤 성격유형이 있잖아요. 아버지상이 어떻고 어머니상이 어떻고 하는 것들이요. 진무에겐 좀 더 아빠의 형상을 끼얹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카메라가 머무르는 시간이 특이해요. 인물들이 모두 떠난 이후에도 빈 공간을 3초가량 더 응시하는 씬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어요. 이런 연출을 하신 특별한 의도가 있나요?

 


조민재영화 외적인 건데, 제가 공간을 담아두는 걸 좋아하나 봐요. 제 영화적인 학습이 그런 것 같아요. 공간을 열어준다는 개념으로 컷을 짜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할 때에도 이런 느낌으로 하지 않을까 해요. 영화에 나온 공간은 실제로 제 가족들의 공간인데, 공간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좀 다르게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각자의 공간을 만들면서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공간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어요. 공간을 최대한 세심하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무가 기억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각자의 꿈이나 과거의 기억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배우분들은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 이런 꿈에 대한 이야기와 배우로서의 삶이 겹쳐지는 지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춤을 춘다든지, 행복했던 기억을 회상한든지 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드러내고 싶었던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신문성저는 춤을 추면서 과거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이십대 초중반까진 정말 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저는 연극반이었는데 같이 강당을 쓰는 댄스부가 있었어요.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같이 춤도 추고 그랬어요. 성격이 내성적이라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춤을 출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아요. 군대 있을 때도 고참들이 앞에 나가서 춤추라고 하면 그때 제일 신났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 , 내가 춤을 참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십대가 되어서 카메라 앞에서 다시 춤을 추게 되니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예전에 많이 하던 건데 뭐 어떠냐는 마음으로 했어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변중희저는 숙녀 역할을 위해서 오토바이를 배워야 했어요. 제가 남자중학교에 선생님을 해보니까, 중학교 2학년 올라갈 때쯤 되면 소위 노는 애들이 너나없이 오토바이를 타려고 애를 써요. 그러면 항상 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오 킬로미터로 가면서 바람을 느끼는데 무섭기도 했지만 너무 시원한 거예요. 이 맛에 애들이 오토바이를 타려고 하는 구나, 정말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어요.(웃음)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또 숙녀가 식당에서 일을 하니까 설거지 장면이 더러 나와요. 내가 평소에 설거지를 잘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잘 되나보다 싶더라고요. 제가 직장 일 하면서도 살림을 다 했거든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열심히 살았더니 도움이 된다.

 

김현: 작품을 보면, 되게 남루하고 무겁고 짠하고 그래요. 이렇게 한 구석에 있는 분들이 사실 많이 계시죠. 누구나 아픔과 외로움이 있잖아요. 색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저 역시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그런 감정이 있어요. 관객분들에게도 맞닿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외로움과 아픔을 관통하는 변화의 힘이 영화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캠코더 촬영 화면이 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해요. 실제로 촬영할 때에는 배우가 직접 캠코더를 들고 있었는지,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 연출된 것인지 궁금해요.

 


변중희: 캠코더는 다 배우들이 직접 들었어요. 손주도 직접 찍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