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게 살아가는 자에게 복을 내려주고 싶은 무해하고 다정한 마음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3월 18(수오후 7

참석 김초희 감독배우 강말금

진행 셀럽 맷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진행)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주혜 님의 글입니다. 



 

전직 영화 프로듀서 찬실은 마흔 살에 인생의 위기를 제대로 맞는다. 실직을 하고, 산동네로 이사를 가고, 가사 도우미 일을 한다. 그래도 굳세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찬실의 모습은 그가 생활을 지속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런 찬실을 중심으로 모인 무해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주문처럼 외우게 된다. 찬실이는 복도 많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 지나온 추운 계절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극장에 모인 관객들의 웃음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웃음이 지금 얼마나 필요한 위로였는지 실감하게끔 한다. 동시에 그 유쾌함 이면에는 생을 지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톺아보는 진중한 태도가 존재한다. 이날 진행된 인디토크에서는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미혼으로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들어볼 수 있다.

 

 

 



진행 셀럽 맷(이하 셀럽 멧): 오늘 찬실이는 복도 많지GV 모더레이터를 맡게 된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진행하고 있는 셀럽 맷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초희 감독(이하 김초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든 김초희입니다. 여러분 너무 감사해요.

 

강말금 배우(이하 강말금): 안녕하세요. 찬실 역 맡은 강말금입니다. 반갑습니다.

 

셀럽 맷: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해 볼까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관객이 2만 명을 향해 가고 있어요.(인디토크 당일 기준) 코로나19 때문에 사실 극장에 찾아주시기가 어려운 시기인데 이렇게 와주셔서 기쁘실 것 같아요.

 

김초희: 기쁜 마음이 얼마나 크겠냐마는 안 보이시겠죠. 이 기쁨이. 보여드릴 수 없지만 진짜 감사하게 생각해요. 극장에 와달라는 말을 하기 힘든 시기에 이렇게 오시니까 훨씬 더 기쁘네요. 자기 전에 오늘은 어떤 평을 남겨주셨는지 훑어보거든요. 좋은 평들을 보면, 힘들었지만 영화 만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죠.

 

셀럽 맷강말금 배우님께서도 첫 장편영화 주연을 맡으셨잖아요. 기분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강말금: 저도 습관처럼 리뷰를 봅니다. 얼굴이 빨개지죠. 좋아서. 꿈인지 생신지.

 

셀럽 맷: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으신가요?

 

강말금: 개봉 초반에 봤던 리뷰가 생각이 나는데요. ‘오늘같이 슬픈 날에 나한테도 장국영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리뷰가 참 좋았습니다. 저희 언니도 리뷰를 남겨주었는데 나랑 찬실이랑 비슷한 거 같다. 아니, 내가 더 심한가.’ 이것도 마음에 남습니다.(웃음)

 




셀럽 맷: 저희 팟캐스트 방송에도 두 분이 나와주셨는데, 두 분의 입담을 청취자분들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두 분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찬실이라는 캐릭터가 감독님과 배우님을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와 닮은 부분이 있나요?

 

강말금: 찬실이처럼 도시락을 싸 가진 않겠습니다.(웃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도 이성과의 연애에선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점이 닮은 것 같아요. 그래도 도시락을 갖고 가진 않을 것 같지만요. 저는 사실 찬실이만큼 에너지가 많지는 않은데요. 닮은 점이라면, 황무지에서 힘을 내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저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을 때 희망의 싹을 찾는 면이 있어요. 마흔이고, 집도 없고, 산꼭대기 살고, 결혼도 안 하고, 아이가 없고, 처지가 굉장히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초희: 저도 처지가 비슷합니다. 그래도 요즘처럼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셀럽 맷: 감독님께서는 본인에게는 없는 부분이지만 찬실이는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넣은 부분이 있나요?

 

김초희: 찬실이는 엉뚱하고 단순하고 심플한 성격이잖아요. 저는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셀럽 맷: 생각이 많으신 편인가요?

 

김초희: 뒤끝이 심하죠. 예민하고. 찬실이랑 닮은 점을 꼽자면 저도 청소를 잘해요. 요리를 잘하고, 사람들한테 요리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찬실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찬실이보다도 직진인 스타일이라 저라면 도시락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웃음) 영화에 대한 진지한 마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강말금: 저는 찬실이에게 닮고 싶었던 점도 있는데요. 찬실이는 주인집 할머니한테 잘하는데, 저는 할머니께 그렇게 스스럼없이 못 할 것 같아요.

 

김초희: 전 그 부분은 닮은 것 같아요. 전 찬실이보다 더 살갑고요. 만나면 다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셀럽 맷: 감독님은 인싸의 느낌이 있어요.(웃음) 감독님께서 찬실이가 엉뚱한 면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찬실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보통 사람들이라면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안 내뱉을 것 같은 말을 찬실이는 다 해요. 예를 들면, 영이와 정전기를 일으켰을 때 왜 그랬을까요?”라고 하거나,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뺨을 때리면서 모기가 있다고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게 보였거든요. 그런 귀여운 장면에 대해 시나리오 작업하실 때 떠올린 사람이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김초희: 저도 귀여운 캐릭터가 아닌데, 강말금 배우가 연기를 잘해줘서 귀여움으로 발현된 부분들이 있죠. 속으로 할 법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웃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사로 써봤던 것 같고요. 모기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모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요. 다들 모기를 싫어하고, 저도 모기가 물면 싫어하긴 하지만, 10년도 전에 제가 좋아했던 누군가와 함께 있었는데 모기가 막 날아다녔어요. 그 사람이 '저 모기보다 네가 더 귀엽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일동 웃음) 그런 조그만 칭찬에 기분이 좋았던 경험으로부터 그런 대사를 떠올린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사랑받는 느낌이 들 때 모기 생각이 나더라고요.

 

셀럽 맷: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이런 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보통 4, 50대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며느리로 나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혼이고 일을 하면서 꿋꿋한 삶을 살아나가는 40대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비혼주의자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40대도 찬실이랑 그렇게 다를 것 같지 않거든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초희: 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제가 41살이었어요. 저는 결혼이라는 걸 딱히 해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30대 초반에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결혼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하기 힘듭니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제도거든요. 제게 운명적인 사랑이 몇 번이나 오겠냐마는 그런 사랑이 와도 기꺼이 사랑으로 오롯이 남으려면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랑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데, 또 너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기다리다 보니 안 오더라고요.(웃음) 결혼을 안 해서 후회하진 않았지만 41살에 실직했을 땐 쓰리고 아팠습니다. 제 직업은 프로듀서였는데, 신념을 가지고 매진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다음 일로 연결되지 않았을 때 드는 충격이 컸어요. 제 직업을 굉장히 사랑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에는 숙명적으로 아프다는 말이 결부된 것 같아요. 그만큼 마음을 쏟을 가치가 있었지만 그래도 아팠습니다. 청춘은 한 번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빛나던 청춘을 안일하게 보냈다는 안타까움이 컸어요. 빛나던 시절엔 빛나는 걸 해야 하는데, 그걸 안하고 저는 일을 했거든요. 그 후회를 제가 참 많이 했어요. 삶이라는 건 다 중요해요. 뭐 하나 더 중요한 걸 위해서 다른 걸 유보하면 후회로 남거든요. 그래서 마흔 살의 여자가 느낄 수 있는 것, 제가 후회했던 것, 절박하게 매달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그리다 보니 사람들이 잘 다루지 않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분(강말금 배우)이 '복댕이' 같이 잘해준 거죠. 이 분을 만난 건 복이라고 생각하고요.

 

강말금: 저 같은 경우는 결혼을 안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결혼을 안했고요.(웃음) 서른여덟 됐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이대로 자식이 없는 건가 싶어서 소개팅도 했는데 좋은 분이셨지만 잘 되진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제가 정말 결혼할 생각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수 있겠죠. 여차여차 마흔셋이 되어버렸는데, 그냥 세상에, 이렇게 되어뿟네하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런 기분이 찬실이를 연기할 때 생각났던 것 같아요.

 

김초희: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가 봅니다. 저는 자식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남의 아이를 봐도 예쁜데 왜 내 애를 낳아 어려운 과정을 겪나 하는.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거겠죠. 하지만 어른이 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지 않습니까.

 

강말금: , 맞습니다.(웃음) 저 같은 입장의 여성분들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시대의 덕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요.

 




셀럽 맷: 영화에 좋은 대사가 많았어요. 저에게 인상 깊었던 대사는, 찬실이가 영이에게 묻잖아요.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을 거 같냐고. 그러니까 영이가 좋아하는 걸 나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삶에 작은 부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영화 없이도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대답을 해서 놀랐어요. 감독님은 지금 영화를 하고 계시지만, 감독님께서도 영화 없이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김초희: . 전 살 수 있습니다.

 

셀럽 맷: 그걸 깨달은 지점, 그리고 그걸 깨달은 이후 영화를 할 때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초희예전에 저는 영화를 안 하는 저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요. 근데 영화라는 걸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서부터는 열심히 살았어요. 그때부터 영화에 많이 기댄 거죠. 종교는 없지만, 영화가 저를 지탱하고 살려준다는 느낌이 강했어요순정이 있었거든요. 근데 영화는 혼자서는 못 찍고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영화 현장을 32살에 처음 경험했는데,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보다 경험하니까 더 좋더라고요. 실직하고 생각해보니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랑 같이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살아가면서 갖가지가 다 중요한데 사람들은 제일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고 소소한 것들은 유보하면서 살거든요. 제가 그렇게 살았던 거죠. 영화만 만들어지면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맹렬하게 돌진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러다 실직을 하고 나니, 잘못 생각했더라고요. 무엇을 할 것인가 만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런 계획이 없었던 거죠. 제가 가장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어떻게 살 건지 알 텐데, 그런 물음을 할 시간을 스스로 안 줬더라고요. 마흔 한 살에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고 돌이켜보니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거, 우정을 나누는 거, 사랑하고 사랑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 거예요. 그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 마음으로 김영이라는 인물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셀럽 맷: 채팅방에 남겨 주신 질문들을 읽어볼게요. 강말금 배우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찬실이가 할머니 시를 읽고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연기를 할 때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강말금: 제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고 싶었던 장면이었어요. 이 영화의 명대사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 장면의 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이 장면을 너무 잘하고 싶었던 나머지 현장에서는 눈물이 안 났어요. 윤 선생님(윤여정 배우)께서 사전에 리딩을 할 때 저한테 물어보셨어요. 너는 여기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고 싶으냐고. '선생님, 저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눈물만 또르르 흘리겠습니다.'하니까 선생님께서 나중에 감독님께 '쟈는 못운다' 하시더라고요.(웃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고 현장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으니까 마음이 너무 급박해지던 걸 잊을 수가 없어요. 배우 속에는 청개구리가 있거든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데.

 

셀럽 맷: 원래 하고 싶으셨던 것과는 달리 영화에선 온 몸으로 우시잖아요. 그 때 찬실이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또 다른 질문입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만의 장국영이 있나요? 힘들 때 위로해주고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강말금제겐 나타났다 사라지는 요정 같은 존재가 굉장히 많은데요. 제가 '천사의 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이 사람이 항상 나한테 장국영인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장국영 역할이 부여되고 사라지는 존재들이 인생을 통틀어서 많았어요. 제가 영화의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분은 권지숙 배우님이라고, 제가 출연한 단편 자유연기(2018)에서 연예인 역할 맡으신 분이에요. 저와 김도영 감독님이 힘이 빠질 때 계속 힘을 주셨던 게 지금 딱 떠오르네요.

 

김초희: 권지숙 배우님을 소개해주셔서 인사 한 번 나눴거든요. 참 좋으신 분이더라고요. 세상에 악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리 좋은 사람도 있더라고요. 아이러니 아닙니까.

 




셀럽 맷: 그리고 또 '국영씨는 왜 벗고 다니나요?'라는 질문이 있어요. 그 추운 계절에 김영민 배우님께서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김초희: 제가 생각했을 때 장국영의 가장 상징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복장은 아비정전(1990)의 '아비' 모습이더라고요. 장국영은 모든 작품마다 매력적이지만 아비정전에서 왜 그렇게 멋있는지 생각해보면 그의 맘보춤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영화 속에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사건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캐릭터로 극을 계속 예측할 수 없게 밀고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찬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들이 주연만큼이나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에서도 장국영은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죠. 시치미 뚝 떼고 판타지를 연기해야하는 인물이니까요. 과감하게 장국영을 불러와야 관객들이 신선하고 재밌다고 생각할 거라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을 가지고 그 인물을 끌어들였어요. 그러니 그 옷을 추워도 입혀야죠.(웃음) 그래도 매번 그 옷을 입히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심장마비가 걸릴 만큼 추운 날씨였거든요. 강렬하게 등장하실 때만 입어주셔도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튼튼하고 건강하시다면서 쭉 입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절충안을 찾은 게 지금 여러분이 보신 버전입니다.

 

셀럽 맷저는 아직 집시의 시간(1989)을 못 봤는데 실제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인가요?

 

김초희: 비디오 가게에서 6년 반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처음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홍콩 영화나 소위 오락 영화만 보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글을 썼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습작을 보여주니 친구들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그렇게 상처일 수가 없었어요. 철이 없을 때니 쉽게 그 꿈을 접었고, 꿈이 없어지니까 시름을 잊으려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비디오 가게에 꽂혀있는 순서대로 영화를 봤어요. 그렇게 우연히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죠.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집시들의 삶에 대해 담은 영화거든요. 얼마나 질곡의 삶입니까. 그런데 엄청난 슬픔 속에서도 굉장히 매혹적인 판타지가 있었어요. 이게 영화가 아니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됐죠. 누군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그 영화를 보면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요.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어요. 고통의 고리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괴로움이 순환하는데 그 와중에도 빛나는 귀여움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슬픈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끔 겪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감정을 전환시켜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사람들하고 막 웃고 떠들면 제가 겪었던 힘듦이 일순간에 확 날아가는 기분을 느껴요. 그런 것처럼, 집시의 시간에서 보기 괴로울 정도로 안타까운 삶의 연결고리를 보고 있다가도 귀여운 장면들을 보면서 이런 건 영화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어서 감독이 되고 싶었죠.

 

셀럽 맷영화에 연주곡은 집시의 시간에서 나온 노래인가요? 단편 자유연기에서도 강말금 배우님이 아코디언 연주하신 게 떠올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강말금: 음악은 희망가라는 작자 미상의 노래에요. 그 곡은 제가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을 하면서 아코디언을 처음 접할 때 했던 음악이에요. 집시의 시간은 저도 좋아하는 영화인데, 영화에서 집시가 슬플 때마다 연주하는 곡이 있어요. 그 곡을 저도 몇 번 연주해봐서 조금 더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곡을 저작권 비용 때문에 쓸 수가 없었어요. 자유연기에서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곡을 연주했는데, 저작권이 문제 되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김초희덧붙여 이야기하면 초반 시나리오에 집시의 시간은 있어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면은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강말금 배우가 자유연기에서 아코디언 연주하시는 장면을 봤죠. 많은 사람들이 집시의 시간이라는 영화를 모르더라도 집시하면 아코디언이라는 이미지를 상상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연결고리를 만들면 조금 더 친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희망가라는 곡을 쓰게 된 건 저작권 영향도 있지만, 그 곡이 영화랑 어울리지 않았다면 안 썼을 거예요.

 

강말금: 감독님께서 다른 노래를 들려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러다 제가 연극 때 연습했던 이 곡을 녹음해서 들려드리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초희영화에서 한 곡을 다 연주하는데요. 보통 그러면 지루하거든요. 그런데 제 영화의 특징이 인서트가 많지 않은 거예요. 인서트가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영화가 쉬었다 가는 부분이 잘 없어요. ‘희망가연주를 가만히 보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관객들이 자기 감정을 소화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관객에 따라 각자의 감정을 널브러뜨릴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한데 그 장면이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셀럽 맷: 찬실이가 소피의 서재에서 읽고 있던 책 제목은 뭔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쓰신 이유도 궁금해요.

 

김초희: 찬실이가 읽고 있는 책은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이라는 책입니다. 실제로 읽어 보시면 재미없으실 거예요.(웃음) 많은 불자들이 임제 스님의 글을 읽고 공부하거든요불자는 아니지만 위로를 많이 주는 책이었어요.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말은 내가 어디에 가나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참된 자리이다, 이런 뜻인데요. 제가 뭐라도 해서 살아가야할 때에 저를 지킬 수 있는 말인 것 같았어요. 가사도우미를 하면 어떻고 반찬을 팔면 어떻습니까.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번다는 거, 굉장히 떳떳하고 필요한 일인데, 남들이 생각하는 그럴싸한 일을 안 하면 무시당하기도 하잖아요. 저도, 찬실이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 스스로가 주인이라는 느낌을 가지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만큼 좋은 말이 없더라고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셀럽 맷시간상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좀 있으면 관객 2만명이 되는데 공약을 하나 거셨어요.

 

김초희: 2만명이 넘으면 제가 난닝구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강말금: 저도 입는다고 했습니다.(웃음)

 

김초희: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위기를 뚫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운이라는 걸 무시 못 하거든요. 보이지 않는 기운은 세상을 움직입니다.

 

셀럽 맷: 여러분은 세상을 움직이는 중이십니다.(웃음)

 

강말금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자리 지키고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얘기가 들을만한 것이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시고요. 제가 요새 제 영화를 제가 보는 것과 관객분들이 보는 것 사이의 차이가 커지는 것 같아서 나는 이제 관객이 될 수 없나하다가, 이제 영화를 다르게 보는 눈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10년 후에도 영화배우를 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뀐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을 것 같아요.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초희: 10년 후에도 보게 해주이소.

 

강말금: 노력할게예.(웃음)

 

셀럽 맷: 오늘 다들 감사드립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궁금하다면?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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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naver.com/jhd159 BlogIcon 악어알 2020.03.31 12: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인디토크 참석 못해서 아쉬웠는데 글 읽으며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한 기분! 영화를 풍성하게 틔워주는 포스팅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2. Favicon of https://cmmn.tistory.com BlogIcon nomarch 2020.03.31 12:3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영화 너무 잘봤습니다. 인디토크 기록도 잘 읽었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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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왠지 낯 간지러워서 영화를 꽤 오래 좋아하고도 그에 대해 자신감 있게 내뱉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옛 기억을 헤집어 보면 역시, 영화를 좋아하긴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도 영화 좋아하는 게 다 뭐라고, 남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영화에 대한 일방통행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영화란 건 언제나 특별했지만 동시에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를 다루는 영화를 보면 항상 마음이 괜히 더 동했다. 영화에 대한 영화는 그 자체로 감독이 영화에 보내는 편지 같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들이 좋았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말하자면 아주 직설적인, 영화에 대한 영화다. 영화와 감독을 너무 깊이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어찌 됐건 이 영화는 김초희 감독과 오래도록 함께해온, 혹은 그를 괴롭혀 온 영화에 대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주인공 찬실이를 빌어 쏟아내 버린 이야기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서 받은 인상은 좋은 의미로뻔뻔하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사랑해온 나에 대해 담은 영화라니, 이보다 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되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영화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그 사랑을 이야기하는 조금은 뻔뻔한 영화의 톤은 속 시원하기도 신선하기도 했다. 그간 보아온, 감독인 를 내세운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자기연민 혹은 찌질함과는 다른 결의 뻔뻔함은 대안적 방식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본 적 없는 새로운 시선에 가까웠다.





영화는 찬실의 삶이 갑자기 멈추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일을 해온 그가 PD로써 줄곧 함께 작업해온 감독이 회식 자리에서 돌연사하고, 이 사건은 찬실에게 생각보다 큰 타격을 준다. 영화 PD로서의 일이 한순간에 사라진 찬실의 삶은 기약 없이 멈추는 듯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그 영화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찬실은 일이 사라지자 직업이 사라졌고, 직업이 사라지자 자신의 인생에서 영화가 다 무슨 의미인가 하는 지경까지 다다른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은 이의 치명적인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 좋아서 하는 영화만을 열심히 하며 산 찬실의 삶에서 영화가 존재하던 자리는 순식간에 허공에 붕 떠버리게 된다.


찬실의 친구 소피는 백수가 된 찬실을 보며 차라리 연애라도 하라고 말한다. 찬실에게 영화라는, 오랜 짝사랑의 상대가 갑자기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 때마침 이라는 인물이 타이밍 좋게 찬실의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던 찬실은 미련 없이 그동안 쌓아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분리수거해버리려고 하는데, 의문의 인물 장국영이 그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라는 찬실의 의문에 누구도 찬실이를 대신하여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아온 삶 자체로 시가 되는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나를 위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 내 곁에 있다는 새삼스레 꿈결 같은 순간까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찬실의 시선이 또다시 그를 영화로 향하게끔 만든다. 찬실은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다가 어떻게 나이가 들지 가끔 궁금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좋아하고 있을까? 지금 좋아하는 영화를 그때도 좋아할 수 있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세계는 점점 좁아져만 간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낭만 어린 마음을 대변해주는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이 영화를 핑계로 영화를 오래도록 좋아하고 싶은 마음을 새삼스레 고백해본다. 뻔뻔하게 이런 지면을 빌려서 말이다.


운이 좋게도 이 영화를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그 순간이 영화 후반부의 찬실이가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순간과 겹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잘, 온전히, 마음을 담아 사랑할 수 있는 을 누리며, 이 이야기를 뛰어넘어 해줄 김초희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기다리고 싶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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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정이 가는 정가영 감독의 발칙한 일기장   하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321() 오후 2

참석 정가영 감독배우 이석형

진행 배우 박종환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유진 님의 글입니다. 




비치온더비치〉(2016), 밤치기〉(2017)에 이어 '비치 삼부작'을 완성하는 정가영 감독의 하트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영화 하트는 가영이 유부남인 성범에게 갑자기 찾아가 자신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시작된다. 줄거리만큼이나 발칙한 대사와 장면들이 매력적인 영화다. 더불어 영화 작업을 지속하며 정가영 감독이 마주해온 공허한 느낌을 세심하게 녹여내고 있다. 321일 진행된 하트인디토크에는 박종환 배우, 이석형 배우, 정가영 감독이 함께했다.




 

박종환 배우(이하 박종환): 진행을 맡은 배우 박종환입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자리 참석해 주신 관객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게스트를 모시고 영화 하트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정가영 감독(이하 정가영): 안녕하세요. 하트연출과 정가영 역을 맡은 정가영입니다.

 

이석형 배우(이하 이석형): 안녕하세요. 이석형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종환: 영화 하트비치 삼부작을 종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것들이 기획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아니요.(웃음) 처음부터 기획된 건 아니었어요. 운이 정말 좋았고, 감사하게도 살면서 에피소드가 꾸준히 생겼어요. 영화로 안 남기면 손해일 것 같은 일들이요.

 

박종환: 최근에 인터뷰를 봤는데, 하트까지 하면서 영화 1막이 끝났다는 말을 하시면서 ‘20대에 나를 지배했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즐거웠는지, 어떤 점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그냥 이렇게 영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어요. 영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게 믿기지 않아요. 개봉하고, 한 곳에 모여서 영화를 본다는 거 자체도요. 연기하면서 즐겁기도 했고요.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느꼈던 지점은, 최근에 제가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감사하고, 운이 좋은 거죠.

 

박종환: 석형 배우에게도 궁금합니다. 비치 삼부작의 정가영의 남자 후발 주자로 나서는 게 부담되지는 않으셨나요.

 

이석형: 정가영 감독님은 얼굴만 알고 있었어요. 감독과 배우 일을 같이 하시는 걸 신기하게 봤고요. 저도 옛날에 연출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항상 대단해 보이고 흥미로웠어요. 영화 밤치기는 시사회에서 봤는데, 함께 작업하기로 했을 때 밤치기참 재밌는데.’ 정도의 느낌만 있었지 부담은 없었어요.

 

박종환: 지금 오픈채팅으로 질문을 받고 있는데요, 질문들이 많이 올라와서 이 중에 하나를 골라볼게요.

 

이석형그럼 종환 배우님이 질문 고르시는 동안 저도 감독님께 질문 하나만 할게요. 제가 최근에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를 봤는데 비치 시리즈와 영화 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녀가 계속 얘기를 하면서 영화가 진행되는 지점이요. 비포 시리즈의 영향을 받으셨나요?

 

정가영: 제가 엄청 좋아해요. 영향을 당연히 받았겠죠? 남녀 둘이 대화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박종환: 관객분 질문입니다. ‘영화 속 제섭이 가영에게 하는 말이 실제 감독님이 들으셨던 말인가요?’라고 질문 해주셨네요.

 

정가영: 누가 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제가 저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작업들로 공허함이 채워질까 싶고, 그런데 아무도 저를 혼내주지 않으니까 나라도 나한테 이런 질문을 던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생기고 인기 있는 인물이 나를 따뜻하게 혼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봐요.

 

박종환: 제섭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잖아요. 저는 정가영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런 질문은 안 해 본 것 같아요. 그냥 너무 재밌게 읽었죠. 이 감독이 궁금하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 궁금증이 작품이 끝나도 해소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요. 하트를 보고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고요.

 

정가영: 이번엔 제가 질문을 한 번 질문 골라볼게요. ‘삼부작 남자 배우들과는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되셨나요?’ 일단 잘생긴 배우들에게 눈길이 가고요. 그 당시 꽂히는 배우들께 연락을 드려요.

 

이석형: 요즘 감독님께서는 어떤 관계에 관심이 있으신지도 여쭤보시네요.

 

정가영: 저는 요즘 심리 공부, 마음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저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요. 내가 먼저가 아니라 상대방이 먼저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렇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그런 게 재미있어요.

 

이석형: 저는 고용 관계에 관심이 있어요. 사람을 쓰는 마음은 뭘까. 고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계속 고용을 당하는 입장으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해요.

 

박종환: 다음 질문 골라볼게요. ‘가영과 성범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각각 빨강색, 파랑색 상의를 입고 있어요. 이 두 색이 섞일 듯, 섞이지 않을 듯한 이미지를 주는데 미리 생각해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여성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그냥 빨강과 파랑 조합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석형 배우가 입었던 빨간 티는 비치온더비치에도 나온 티예요. 그 색이 주는 이미지가 그냥 좋았던 것 같고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발랄하고 말 많이 하고 자기주장 잘 하면서도 건강한 여성상 보여주고 싶어요.

 




박종환: ‘대사를 쓰다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대사를 바로바로 배치를 하시나요, 아니면 쓰고 싶었던 말들을 품어놨다가 필요한 장면들에 배치를 하시나요?’ 감독님의 시나리오 작법 방식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정가영: 저는 시나리오 쓸 때가 제일 재밌어요.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일 때 기분이 좋거든요. 제가 대사 많은 리처드 링클레이터, 홍상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외울 정도로 많이 봤어요. 일상에서도 대화가 주는 긴장을 좋아하고요. 그런 영향인 것 같아요.

 

박종환: ‘비치 시리즈에 나오는 극중 정가영이 나쁘다고 생각하나요?’라고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죄를 짓는 인물이죠. 그런데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인지 없이 막 사는 거죠. 최근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죄를 짓고 나면 죄책감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이라면. 대신 죄를 짓고 곧바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곧바로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불어나 버리니까요.

 

박종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비치 삼부작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뭐냐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이 과정이 분명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자기 욕망에 대해 충실한 영화를 찍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나를 잘 알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아니거든요. 나쁜 욕망들에 대해 저 역시 혼란스런 상태로 살고 있었고.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 작업이 저에게 일기장이 돼 준 것 같아요. 그리고 직접 출연까지 했잖아요. 제가 지은 죄들, 제 상처들을 다 기록하고 마주하니 도움이 됐어요.




 

박종환어떻게 보면 흔하고 유명한 음악들이 감독님 영화에서는 독창적으로 쓰이는 것 같은데,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는지, 혹은 음악감독으로 함께 작업해 주신 분이 있는지 질문해 주셨어요.

 

정가영: 저는 사실 김동률의 엄청 오랜 팬이에요. 그 분이 영화 음악을 전공하기도 하셨고. 영화에서 꼭 김동률 씨 곡을 쓰고 싶어요. 언젠가 한 번 김동률 씨와 작업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이석형: 감독님, 오늘 영화 같이 보셨잖아요. 감독님이 원래 하트를 극장에서 잘 안 보시는데 어떠셨나요.

 

정가영: 하트가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 것 같아서, 첫 공개될 때부터 반응이 무서워서 극장에서 못 봤어요. 그러다 최근에 마음 공부를 하다보니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관객 입장에서 보자는 마음으로 관람했는데 힘들지 않고 괜찮았어요. 노출신 보니까 조금 힘들긴 했어요. 그래도 키스신이 되게 예쁘게 나온 것 같아요. 공포신도 재밌게 봤고, 좋았어요.

 

박종환: 어떤 분이 감독님 다음 작품에 대한 질문도 해주셨어요.

 

정가영요즘은 그런 고민을 해요. 제가 철들면 내 작품이 재미가 없어지려나. 발칙한 상상을 덜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써놓은 게 있어서 그 자체로는 많이 발칙해요. 형성하는 느낌도 좋고요.

 

박종환: 굿즈의 일환으로 시나리오집을 팔 생각이 없는지도 궁금해 하시네요.

 

정가영: , 안 그래도 비치 시리즈 세 편의 시나리오를 묶어서 내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박종환촬영하실 때 콘티도 그리시냐는 질문을 해주셨어요.

 

정가영비치온더비치밤치기는 콘티가 없었고, 하트는 촬영감독님이랑 의논한 콘티와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또 앞으로 다른 장르 영화도 기다려도 될까요?’라는 질문이 있는데, 저는 계속 멜로를 할 것 같고요. 근데 무서운 신도 찍으면서 재밌었어요. 이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공포 장르에 관심이 많아요.

마지막에 심장을 때리는 장면은 덕통사고 같은 건가요?’라고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아까 제가 말했던 애교스럽게, 따뜻하게 혼내주는 행동인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하지?’라고 생각을 했을 때 나온 장면이에요.

 




박종환: 이제 마칠 시간이 됐는데요. 정가영 감독님과 이석형 배우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가영: 제 차기작은 서른이라는 제목의 로맨스코미디 상업영화고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찍게 될 것 같아요.


이석형: 저는 넷플릭스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찍었어요. 그리고 독립 액션 영화 액션 히어로를 찍었습니다. 현재 찍고 있는 건 없고, 알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박종환: 오늘 채팅창을 이용해 질문을 받고 답을 했는데요. 저희가 이렇게 답을 하면 또 질문을 달아주셔서 생생하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정가영 감독님과 이석형 배우님 대신해서 이 자리 함께해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고요. 귀한 시간 내주시고 끝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살펴 돌아가시고 당분간 건강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코로나19의 여파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시간이었다. 관객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는 대신 부득이 오픈 채팅에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인디토크를 진행했으나 오히려 그 덕분에 원활하게 질문과 답이 오갈 수 있었다. 영화 속 가영처럼 정가영 감독은 발랄하고 솔직했다. 이석형 배우와 박종환 배우, 그리고 정가영 감독의 유쾌한 대화는 영화 속 케미를 그대로 재연했다. 앞으로 세 사람의 활동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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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전쟁  리뷰: 향 연기가 자욱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에 주목함으로써 재현 불가능한 것의 재현을 대신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은지 님의 글입니다.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첫 작품 로드스쿨러(2008)는 감독 자신을 포함한 탈학교 청소년들이 제도권 교육 바깥에서 길을 찾고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차기작인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에서는 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자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주목하여 청인의 사회와 농인의 사회를 모두 경험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앞선 두 영화를 통해 감독은 '정상성'의 범주에 벗어난 사람들에 주목하며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붙들고 너무 많은 설명을 바라오지 않았나 묻는다. 반면 기억의 전쟁에서는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외면해 오진 않았는가 질문한다.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에 참전 용사이자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을 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의 간극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정체성과 자전적 경험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앞선 두 작품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감독이 일인칭 화자인 나레이터 또는 인터뷰어로서 개입하거나 화면 안에 직접 등장했다면, 기억의 전쟁에선 제작자가 영화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이자, 각자 여성,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증언하며 개별화된 기억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있었던 2018년 4월의 한국과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베트남의 마을을 오가는데, 이 때 일견 목가적으로 보이는 베트남 마을 풍경을 자주 비춘다.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럽, 딘 껌 세 사람의 증언을 거치고 나면 이러한 장면들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있을 전장의 시간들을 환기시키며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인다. 또한 전쟁으로 수난 당한 과거의 어린 몸에 주목하는 대신 전쟁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매년 위령제를 지내며 향 연기가 자욱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현재를 주목함으로써 재현 불가능한 것의 재현을 대신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길보라 감독의 고엽제 피해자 3세라는 정체성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듯,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의 피해란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 피해보단 국내참전 용사의 고엽제 피해 서사로 더욱 쉽게 떠올려질 것이다. 한국 사회 내에서 고엽제 피해자를 포함한 베트남 전쟁의 국내 피해자에 대한 논의 또한 경제의 고도성장과 군사력 증강이라는 국가의 이념적 정당성 앞에서 밀려나 집단적 치유의 과정이 부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전쟁은 영화가 끝난 이후 더욱 많은 논의가 오가게 될 영화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베트남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문제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영화는 지금껏 더욱 외면 받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당시의 한국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며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 문제 또한 '전쟁 범죄'의 일부로 쉽게 치환하고 보편사의 프레임 안에서 다룰 때 발생하는 선과 악의 단순한 구조화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기억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 와 가해자의 자리에서 피해자의 시간을 마주하도록 하는 영화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에 대한 두 가지 축, 한국의 참전군인들과 베트남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을 모두 비추되 그들이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모의법정인 시민평화법정의 증언대에 서서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응우옌 티 탄의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가해자성이 지금까지의 한국의 태도였음을 보여줌으로써 사유와 성찰의 필요성을 알린다. 눈물 없이 내 삶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제사를 챙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라고 말하게 되기까지 응우옌 티 탄의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무너짐이 있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지만, ‘가해자됨을 마주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영화를 보고 난 우리에게 남겨진 삶일 것이다.

 

 

 









기억의 전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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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  리뷰: 같지만 또 다른 정가영식 사랑하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원 님의 글입니다. 





하트밤치기〉(2017), 비치온더비치〉(2016)에 이은 또 다른 정가영식 사랑 영화다. 하트〉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가영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준다. 감독 특유의 솔직함을 살리며 말이다.

 

영화는 가영이 유부남 성범을 찾아가며 시작한다. 과거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그에게, 가영은 관객들로 하여금 귀를 쫑긋이게 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단순한 연애 고민일 것이라 생각한 말들은 듣다보니 예사롭지 않다. 성범이 아닌 또 다른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가영과 성범의 대화가 오가며 서사는 진행된다.

 




가영이 던지는 솔직한 물음과 함께 영화는 2부를 맞이한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드려는 가영이 제섭과 나누는 대화는 또 다른 집중을 만든다. 한 발짝 떨어진, 마치 삼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제섭은 가영에게 여러 말들을 건넨다. 의미를 찾기도,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제섭, 그리고 이에 맞서는 가영.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그 어떤 것보다도 진솔하게 다가온다. 진지하면서도 위트있는, 자유로우면서도 특징있는 말들은 액자식 구성을 통해 펼쳐지고 이는 관객에게 묘한 재미와 긴장을 준다.

 




하트는 온전하게 가영을 보여준다영화는 가영의 사랑 방식을그녀의 사고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다감독 정가영이 영화 속 가영을 연기하며 관객에게 건네는 말들은 솔직하게 다가온다주인공 가영이 완전한 허구의 캐릭터인지감독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순수한 기록인지 고민할 만큼 보는 이들에게 숨김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웃음과 함께 했다.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연출과 서로 다른 영역의 선을 넘나들며 선보이는 면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귀엽기도 하다. 정가영 감독 특유의 어투는 영화에서 날 것으로 존재하며 유니크함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트가 던지고 있는 물음은 그저 가볍지만은 않다. 온전한 무거움을 지니진 않지만, 가영의 사랑엔 깊이가 있다. 그녀가 생각하고 펼쳐내는 사랑을 바라볼 때, 관객은 집중과 재미를 동시에 느낀다. 감독은 하트를 통해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말들을 끌어올리며 거짓 없이 말을 건넨다.

 




하트는 정가영 감독의 입체적인 연출이 좋았던 영화다. 영화 속 가영이 사고하는 바에 대해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영화는 진솔함을 지닌다.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감독이 어떤 길을 걸어가고 싶은지를 투명하게 말하고 있는 영화, 하트의 매력에 많은 분들이 빠져보길 바란다.









하트〉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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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기억하기  〈작은 빛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2월 23일(일) 오후 2

참석 조민재 감독배우 곽진무, 이민지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어린 나이에 노동시장으로 뛰어들어 가족과 감정적으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진무는 뇌수술을 앞두고 의사로부터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가 캠코더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담는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 춤을 추는 형의 모습, 때로 자신의 모습도. 카메라가 기록하는 기억의 꼬리에는 아버지에 대한 형상이 남아있다. 조각나 있던 가족들의 기억이 맞춰지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되살아난다. 기록을 통해 짙어지는 기억은 진무로 하여금 마음에 깊이 박힌 뿌리를 뽑아내도록 이끈다.





김일권 대표(이하 김일권): 안녕하세요. 오늘 자리 참석해주신 조민재 감독님, 그리고 곽진무, 이민지 배우님 인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조민재 감독(이하 조민재): 안녕하세요. 〈작은 빛〉 연출한 조민재입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GV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곽진무 배우(이하 곽진무): 안녕하세요. 〈작은 빛〉에서 막내아들 역을 맡은 곽진무라고 합니다.


이민지 배우(이하 이민지): 네, 안녕하세요. 저는 〈작은 빛〉에서 뭘 한 건 없고, 관객 중 한 명인 이민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일권: 저희가 극장 상영을 마무리하며 굿바이 작은 빛〉’ GV를 하려던 차에 이민지 배우님께서 SNS에 훌륭한 소감을 올리신 것을 보고 섭외해서 같이 인디토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조민재 감독님께 〈작은 빛〉을 어떻게 연출하게 되셨는지 여쭤 봐야 할 것 같아요.


조민재: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어떻게 잘 쉴까 하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갔고 간 김에 8년 만에 아버지 산소를 보았거든요. 그 때 아, 내가 아버지를 왜 이렇게 미워했을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고민을 글로 적기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시작된 영화입니다.


김일권: 진무 배우님께서는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 어떤 마음으로 보셨는지.


곽진무: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이렇게 깊은 글이 나올 수 있나 싶었어요. 감독님한테 물었더니 자전적인 글이다 보니까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그걸 바탕으로 썼다고 하더라고요. 고맙게도 저와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작업하게 되었고요. 그런 시나리오를 받으면 저 같은 경우는 광기 같은 게 생겨요. 화면에 나오지 않았지만 공장 장면에서 위험한 상황이 있었어요. 주변에서 말리는데 불구하고 찍어보겠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크게 부상당할 수 있다고 겁을 줬는데 그래도 저는 찍고 싶더라고요.


김일권이민지 배우님은 영화 어떻게 보셨고 어느 지점이 좋았는지 궁금합니다.


이민지: 같은 회사에 있는,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우지현 배우가 이 영화가 너무 좋다고 추천을 하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작품 준비 중이고 어떻게 보면 백수인 상태였는데 우연히 집 근처 영화관에 맞는 시간대가 있더라고요. 영화 볼 때 전단지에 있는 글을 잘 안보고 이미지만 보는 편인데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가족이 다 같이 있어요. 영화는 너무 독특하고 홈 비디오 느낌도 나고 재밌더라고요. 그러다가 포스터 속에 있는 장면은 언제 나오는 거지, 설마 안 나오는 건가, 이러면서 보다가(웃음) 제일 마지막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깊은 감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운이 많이 남았어요. 최근에 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영화이기도 했고, 주는 메시지도 너무 좋아서 추천해준 배우에게 너무 감사했죠.





김일권: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저 사람들 배우 맞아? 실제 친척 아니야?’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민지: 제가 감히 뭐라고 이야기를 할 짬은 안 되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대사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시나리오가 궁금해졌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가족이 다같이 모이는 장면이 엔딩에 가서야 나오잖아요. 진무 배우님이 각자 따로따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진짜 가족처럼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 분들이 사전에 만나서 얘기를 많이 하거나 가족처럼 지내왔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곽진무: 실제로 저 같은 경우는 가장 먼저 준비를 시작했고 다른 배우분들과 7개월 정도 만나면서 얘기를 많이 했죠.


김일권: 원래 시나리오에도 대사가 이렇게 대화하듯이 쓰여 있었나요?


곽진무: 저로서는 조금 왜곡되어있는 기억인데요. 처음 시나리오가 지금 영화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배우들이 꾸려지면서 재구성 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같이 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들이 반영됐다고요. 저는 인식을 잘 못하고 이 부분은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알았어요.


조민재오래 만나게 되니까 배우들이 말하는 투나 행동, 성격을 영화 안에 많이 넣고 싶어서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리딩을 하면 그걸 촬영해서 집에 와서 보면서 그 사람이 쓰는 언어들을 시나리오에 넣는 방식으로 담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혼자 대사를 썼다기 보다 배우님들이 잘 연결해주신 것 같아요.


김일권이 영화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사실 기승전결, 커다란 사고 내지는 파국, 치닫고 해결되고 또 다른 정국을 맞는 이야기가 아니란 건데요.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결과적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냐면요… 왜 그랬을까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영화적인 것은 인과성이 뚜렷한 서사를 밀고 나가는 것 보다 사건들이 일어나고 모아서 보았을 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삶을 살아가고 작은 사건들이 쌓이면서 가만히 고민해볼 때 무언가 의미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이러니가 쌓이는 것들, 그런 것들을 수집해서 보다 보면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 같고 이게 제 창작 원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일권사실은 배우들도 정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면 연기할 때 수월하거나 캐릭터를 잡을 때 편했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식으로 이 영화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나요?


곽진무: 아무래도 저의 삶이 영화와 닮은 부분이 있었어요, 아버지에 대해서. 그렇다고 해서 그 유사성이 인물을 표현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감독과의 소통에 있어서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정말 가족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였는데 감독님이 연기 디렉팅할 때 지시한 부분이라든지, 감독님 입장에서 제어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에 배우님께서도 각본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데 어느 부분에 참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곽진무: 제가 시나리오 과정에 참여하진 않았어요. 감독님께서 저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도움 받은 지점이 있다고 해요. 저는 글 한 톨도 쓰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올려주셨습니다.


조민재: 연기에 대해 제가 딱히 한 것은 없어요. 워낙 배우님들 경력이 대단하시고 연기하는 모습을 제가 알고 있어서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디렉팅이라면 디렉팅인데, 저는 배우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모습을 변형시켜서 난 이만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식은 원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온전히 제 영화로 들어왔으면 했고, 그렇다면 공간만 열어주고 통제할 이유가 없죠. 이 영화에서 제가 아쉬운 부분이라면, 제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불이 깜빡이는 장면은 순전히 형식적인 결정이 들어가서 배우들을 통제해야 하는 순간들이에요. 제가 카메라 뒤에서 그 모습을 봤을 때 좀 아쉽기도 했는데, 이건 제가 앞으로 가지고 가야하는 짐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을 통제하면서도 어떻게 생명력이 죽지 않게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관객: 가족들이 진무가 아프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어느 지점인가요? 어머니가 울고 나서 부터인지 아니면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어느 지점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조민재: 매표소에서 알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짰고요. 그 부분이 제가 세운 절정 부분이에요. 그 이전에 얘기가 나왔고 버스터미널까지 연결된 거죠.



관객모자가 함께 영상을 보는 장면 등을 원테이크로 촬영을 했는데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관객이 이런 느낌을 받도록 의도하신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민재굳이 컷을 나누지 않은 것은 캠코더 때문이에요. 어떤 순간의 공간을 열어줄 때에 이걸 작게 쪼개면 한 공간에서도 정서가 계속 갈라지거든요. 한 뭉텅이의 상황이 있는데 그걸 잘라버리면 그 공간을 이루는 정서들이 잘리는 거예요. 그 상황을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건 카메라거든요. 하나의 카메라는 제가 들고 있고 하나의 카메라는 영화 속 진무, 진무 형이 들고 있는 거예요. 두 카메라의 간극이 어떻게 벌어지고 가까워지는지에 대한 컨트롤이 제가 이 영화에서 할 수 있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원테이크가 부담스럽긴 해도 저한테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작업 형식 중 하나였어요.





관객밥 먹는 장면들이 너무 리얼했습니다. 소품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곽진무: 대부분의 소품은 조민재 감독님이 다 직접 준비하셨습니다.


이민지: 그럼 촬영 전에 요리를 하셨나요?


조민재아뇨. 대부분 즉석조리식품이나 배달음식이에요. 음식이 어떻게 공간마다 변할지를 고민하면서 찍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관객: 각본에 없는 즉흥적인 연기가 있었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에 진무가 아버지의 카메라로 무엇을 찍었을지, 감독님은 어떻게 설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조민재: 일단 뒤의 질문부터 답하면, 진무가 찍은 게 아니라 아버지의 플래시예요. 플래시백이 어디로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딱 그 위치에 아버지의 빛이 날아오는 것처럼 들어가는 걸로 설정을 했죠. 진무가 사진을 찍었다기 보다 아버지의 빛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연기는, 카메라 돌아가기 전에 계속 리허설을 했어요. 카메라 앵글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이런 고민들을 했고요. 배우님들이 우리가 완전히 즉흥적으로 만들어냈어요.이런 얘기를 하셔서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까 정말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호흡들이 있거든요. 호선이가 반찬을 먹는데 옷깃에 반찬이 묻으니까 진무 형이 팔을 들어주는 그런 것들은 제가 설정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상투적인 호흡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정보전달을 위한 표현이 있고 순간의 정서를 위한 표현들이 있는데 저희는 정보전달 보다는 좀 더 정서 쪽의 표현들을 많이 찾아나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일권: 현장에서 즉흥연기를 자주 하거나 즐기는 배우들도 많고 정확한 디렉팅을 원하는 배우도 있는데 두 분은 더 선호하는 방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곽진무: 즉흥 연기를 즐기지는 않고요. 아까 감독님이 얘기한 것처럼 감각을 최대한 열어놓고 그 순간에 계산한 행동을 하는 건데 그 행동에 있어 제 호흡을 발휘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야기가 잘 전달되면 편집에서 살아남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리듬감 등에 맞지 않아서 편집되는 경우가 있어서 되도록이면 애드리브를 안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민지: 상황마다 다른 것 같은데 저는 즉흥연기라고 했을 때 말을 만드는 건 못해요. 아무래도 행동에 있어서는 상대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현장의 주변 환경을 보고 만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대사를 만들거나 그런 건 못하거든요. 그런 애드리브는 지양하는 편인 것 같고, 행동에 있어서는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텍스트를 따르는 편입니다.





관객: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배우 분들이 캠코더를 각자 드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은 배우 분들에게 맡긴 것인지 대략적인 상황을 정해주신 건지 궁금합니다.


조민재: 계속 카메라를 들게 하고 제가 훔쳐봅니다. 이 장면이 잘 나온 것 같으면 슬쩍 다시 얘기하죠. 최대한 스태프들은 밖에서 쉬고 배우들이 촬영했고요. 그렇게 다시 찍을 때도 있고 진짜 즉흥적으로 찍을 때도 많았습니다.


김일권: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간다든지, 형에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게 한다든지. 일상 같지 않은 일상들이 나옵니다. 영화를 보면 흔히 특정 장면이 나와야 하는 부분 다음에 아예 다른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굉장히 독특하면서 일상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쌓기 위해서 이렇게 구성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조민재일상적이지만 제가 원하는 분위기를 내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들어갈 때도 열쇠를 찾아서 들어가는 방법 등을 다양하게 고민했는데, 멈춘 공간에 진무가 파동을 일으키며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담을 한 번 넘어볼까 생각하게 됐고요. 오래된 역사의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기 때문에 진무라는 인물이 그 공간으로 훅 점프해서 들어오면서 파동을 일으키는 듯한 형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일상적인 가장 작은 움직임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움직임에 감각을 많이 열어두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저 순간의 호흡, 혹은 움직임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아메리칸 뷰티〉(1999)라는 영화가 있어요. 거기도 캠코더가 나와요.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앉아서 캠코더로 영상을 찍는데 그 안에 비닐봉지가 날아다녀요. 그 장면이 진짜 평범한데, 굉장히 마법 같은 순간이에요. 그 비닐봉투가 허공에 떠다닐 때는 바람과 같은 에너지가 있고 시공간이 뒤섞이면서 날아다니는 것이거든요. 그게 정말 아름답고 느꼈어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단지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에너지들이 가득 차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민지정도 형이 춤을 추잖아요. 원래 배우님이 춤을 추시는 분인가요?


조민재저의 형이 춤을 췄고요. 저도 늘 춤을 꿈꿉니다. 그래서 넣은 장면인데 저도 정도 형님 춤을 이전엔 본 적 없고 현장에서 처음 본 거예요. 제가 처음 생각한 건 박남정 댄스라든지, 이런 수준이었는데 너무 움직임이 격하신 거예요.(웃음) 이 정도까지는 안 바랐는데 나중에 촬영감독님이랑 그 장면을 보면서 이게 맞을까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곽진무: 준비과정에서 자꾸 정도형이 춤을 잘 춰야 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현장에서 놀랐습니다.





김일권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주는 압도적인 정서적 느낌이 있어요. 산소 에피소드 같은 경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특히 빛이 정 가운데에 있는 그 장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민재: 그 장면은 제가 완전히 가공한 이야기는 아니고, 제가 같이 일하던 아저씨가 겪은 일을 메모해 두었다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그 분이 살면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존재하더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 이 영화도 제가 해결해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에는 내가 아버지와 마주하는 것까지만 해야겠다. 그 순간까지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미지를 마주치게 한다든가, 그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계속 그 이상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아저씨가 말해준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행위 자체가 엔딩으로 들어온 거죠. 그 장면에서 진무가 과감하게 파헤치는 것이 제가 영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고여 있던 것을 파내서 정면으로 바라보고 다시 정리하는. 제가 아버지 사진을 다시 발견한 지점이 이장이라는 행위와 비슷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의 환영을 정리하고 기록한다는 느낌이 그 장면과 딱 떨어지더라고요. 빛과 어둠은 필름이나 영상에서 중요한 요소고, 그렇기 때문에 빛을 최대한 세밀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했어요. 그 장면에서도 사전 디자인에 따라 그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민지산소 장면 전까지는 감정이나 정서가 다 설명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진무가 수술을 받는 계기도 말로 설명하지 않잖아요. 그런 게 오히려 감정적으로 격하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크림을 바르는 장면에서 말로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 한 번에 확 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산소 장면에서는 유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잖아요. 그 전까지 관객이 서브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하다가 그 장면에서 굉장히 놀랐거든요. 그것도 감독님이 의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조민재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 당시 체감했던 아버지의 형상, 혹은 기억들의 형상이 그것과 너무 닮아있어서 일단 찍고 나중에 빼자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편집과정에서 그 장면을 넣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알리바이를 준 것은, 그로 인해 다른 시공간으로 넘어가게끔 설계를 한 것 같아요. 그 이전까지의 감정을 느끼는 방식은 관계들이 뒤섞이면서 증폭되는 방식이라면, 마지막 장면은 오로지 진무의 환영처럼 보이는, 혹은 꿈같은 순간이고 진무한테 확 집중되어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죠. 영화를 찍고 나서 결국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곽진무: 주변에서 그 장면 넣지 말라고 권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일권: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인사말씀 해주시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민지귀한 주말에 〈작은 빛〉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는 드라마 하나와 책, 또 독립영화로 만나뵐 수 있을 것 같으니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곽진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 아마 마지막 GV일 것 같은데 이민지 배우님, 김일권 대표님 자리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도 이 영화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제가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가족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보게 된 영화예요. 관객 분들과 많은 부분 공유하면서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민재: 오늘로 정말 끝이구나 싶네요. 마지막 자리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더 좋은 영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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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에게  한줄평


김윤정 | 이 편지의 끝이, 끝이 아니길 기도하며

정성혜 | 이토록 죽음과 탄생이 가까이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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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림 | 카메라는 울분 속에서도 가족을 보고, 웃음을 본다

김정은 | 사랑하는 시리아의 미래에게






 〈사마에게  리뷰: 사랑하는 시리아의 미래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2011 3, 시리아 남부에 있는 한 학교 담에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혁명 구호를 적은 학생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시리아 정부는 폭력을 수반한 과잉 대응으로 일관하였고, 이에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렇듯 시리아 내전은 민주화를 향하는 그들의 미래가 되어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했다.

 

격동의 시기 속 알레포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와드는 낙관적인 분위기의 시위 초기부터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차 무차별적인 폭격이 거세지는 전쟁의 참상과 알레포의 사람들을 카메라를 들어 기록한다. 그간 대부분 타자의 입장에서 포착한 난민의 이미지를 보아왔지만, 관객은 <사마에게>를 통해 당사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내밀한 일상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일상은 고통과 비극에 울부짖는 모습만이 아닌, 웃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는 삶의 면면이 공존한다. 그리고 죽음의 기운이 익숙한 도시에서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도 함께한다. 태어난 사마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들과 사별하는 아픔을 떠올리지만, 생과 사의 경계에 서있던 아기의 울음이 터져 나오는 기적을 느끼기도 한다.




 

알레포를 지키는 이들의 희망 어린 행보가 무색하게도, 하늘에서 내려본 알레포의 상황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악화되어만 간다. 좁혀지는 포위망과 계속되는 폭격 속에서 일상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납득할 수 없는 희생이 늘어간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던 이들의 얼굴에도 근심과 불안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언론에 소식을 전하고 알레포를 담은 영상의 조회수가 높아졌지만, 외부로부터 유의미한 답변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와드의 카메라는 알레포의 투쟁과 함께 계속되었다. 생존에 있어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절박한 현장에서 어쩌면 촬영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를 붙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드는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참혹한 비극의 이미지로 남게 될 순간들 마저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목격자가 된 관객들은 극장 밖을 나서면 알레포의 참상과는 무관한 듯한 세상을 다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릅쓰고 만들어진 창작물을 만난 이상, 당시의 알레포를 보고 듣고도 외면했던 이들처럼 또 다른 방관자로 남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를 관람한다는 경험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고찰하게 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궁지에 내몰린 와드와 그의 일행은 결국 삶의 터전이 되었던 알레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알레포에서의 세월이 담긴 카메라는 와드에게 다음의 길을 열어주었다. 함께 투쟁하고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존경과 애도를, 알레포를 둘러싼 세상에게 전하는 부탁을, 영문도 모르는 채 알레포에서 위태로운 삶을 시작한 사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담아 미래에게 보내는 영화-편지를 완성한다. 사마를 업고 폐허가 된 알레포를 걷는 영화 속 와드의 마지막 모습에서, 영화는 막을 내리더라도 시리아를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올곧고 단단한 다짐을 읽을 수 있었다. 시리아의 미래로부터 도착할 자유와 평화의 답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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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지만 치열한 관계의 역학  인디포럼 월례비행 〈에듀케이션  대담 기록


일시 2020년 1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참석 김덕중 감독배우 문혜인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복잡다단하고 난해해 질수록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형태의 문제들은 나날이 새롭게 등장한다. 비단 특정 분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도처에 널려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과 사의 영역은 갈수록 애매모호해지고, 그에 따른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고민하고 갈등하게 된다.

 

2020년 첫 번째 인디포럼 월례비행의 상영작 에듀케이션은 이러한 관계 속의 내밀한 역학을 들여다본다. 장애인 활동 지원 일을 하는 주인공 성희는 중증장애인을 어머니로 둔 현목의 집으로 배정받게 된다. 각각 다른 조건과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인물의 잔잔하지만 치밀한 관계를 그린 영화 에듀케이션상영 후에 진행된 대담에서는 영화 안팎의 현실과 관계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갔다. 김덕중 감독과 성희 역을 맡은 문혜인 배우가 참석하였고, 정지혜 평론가가 비평 및 진행을 맡았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정지헤입니다. 올해 첫 번째 인디포럼 월례비행이고요. 김덕중 감독님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에듀케이션이 오늘의 상영작이었습니다. 작년에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굉장히 화제가 되었어요. 김준형 배우와 문혜인 배우가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덕중 감독님과 문혜인 배우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덕중 감독(이하 김덕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에듀케이션을 만든 김덕중입니다.

 

문혜인 배우(이하 문혜인): 안녕하세요, 에듀케이션에서 성혜를 연기한 배우 문혜인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지혜: 아마 들어오시면서 비평지를 받으셨을 거예요. 영화에 대한 짧은 글인데 함께 읽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 허용치를 시험하는 기막힌 훈육이라는 제목을 달아봤습니다. 감독님께서 주목했던 부분들은 관계 속 힘의 역학일 것 같은데요. 단순히 선하고 악하거나, 피해와 가해라는 이중의 구획이나 구분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는 무용한 것 같고요. 그 사이에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주목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사건으로 전개되는 스펙타클하고 강렬한 드라마이기 보다는, 성희와 현목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관계가 켜켜이 발전하고 증폭해 나가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엔딩에서 폭발적인 응징을 보여주는 방식이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의문스러운 관계여서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하나하나 쌓아가 마지막 순간에는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실제로 장애인 활동 보조를 하신 적도 있고, 노들장애인야학에서의 경험이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이러한 관계에 대해 주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스토리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김덕중: 영화에 나오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이자 자립센터는 제가 십여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곳이었어요. 일한 기간이 한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도 인연은 이어졌어요. 나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해보자는 취지에서 예전의 기억들을 반추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곤궁 같은 것을 느꼈어요. 평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같은 문제의식이었는데요. 주관적으로 조금 더 곤궁한 삶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의 의지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제 의지가 불쾌할 수도 있고, 제 방식이 그들에게는 필요로 하지 않은 형태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장애활동지원일을 하다보면 일의 경계에 대한 모호함도 있거든요. 업무 경계가 서로 간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삶에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이 완전히 소거될 수도 없고, 동시에 타인과 타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완전히 맞닿아 있을 수도 없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영화에서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지혜: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의 매뉴얼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실제 상황별로, 사례별로 적용을 할 때는 계속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면 개인이 순간순간 판단하고 선택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시스템 안에서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인지에 대해서 계속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성희와 현목의 관계에 기본적인 차이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성인과 청소년, 서비스를 이용하는 쪽과 공급하는 쪽, 그리고 또 영화에서 중요한 차이라면 젠더가 있고요.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런 차이들을 두고 두 사람의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주인공 성희는 타인과 단절하고 싶고,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고 싶어하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기도 한 캐릭터인데요. 활동보조인이라는 속성과는 맞지 않는 주인공이 타인과 엮여서 같이 있게 될 때 누군가가 완전한 우위를 차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할 공간이 없는 어지럽고 작은 집에서 힘의 균형이 확 쏠려 버리는 건 성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미성년이기는 하지만 젠더적으로 남성인 현목이라는 인물을 설정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고, 누군가가 조금 더 불쌍해 보이죠. 성희와 현목 모두 내가 더 불쌍하니까 나를 더 챙겨 달라고 외치는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 팽팽함이 유지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쓰실 때부터 문혜인 배우님을 염두에 두고 쓰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여러모로 어려운 연기였을 것 같아요. 두 인물이 계속해서 촘촘히 감정을 주고받는데, 가만히 보니까 성희가 어떤 면에서는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대부분 현목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관계의 역학에 불씨를 지필 때도 거의 현목이 불씨를 당기는 쪽인 것 같아요. 성희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계속 우왕좌왕하며 여러모로 내적 갈등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요. 문혜인 배우님께서는 인물에 대한 어떤 그림이나 욕심을 갖고 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문혜인: 일단 이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개인적인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이전에 못나고 부족한 부분이 있는 어떤 인물을 연기하면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쉽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에듀케이션대본을 받아서 성희라는 인물을 보았을 때도 뭐 이런 못난 사람이 다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이기적이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무책임해지기도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배우로서 고민을 갖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못나고 못되고 모가 난 인물을 연기해서 설득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안에서 성희의 어떤 특징들이 부각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안에 성희의 못난 모습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성희의 역사 안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성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성희의 약한 모습이나 힘들었던 시기에 대해서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하고,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힌트들을 영화에 조금 더 넣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성희가 이 영화 안에서 많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가장 와 닿았고 유일하게 진심이라고 느껴졌던 대사는 처음에 박 코디에게 활동보조 일을 달라고 이야기할 때 왜 그렇게 절실하게 일을 구하냐는 질문에 숨 좀 쉬고 살려고요.’라는 대답이었어요. 다른 말들은 성희가 진심을 회피하거나 어떤 수단으로써 하는 말이었다면, 이 말만큼은 진심이라고 느꼈어요. 그만큼 숨 쉬고 살기에도 버거운 현실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대사와 다른 것들이 작용을 해서, 저에게는 성희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때 물이 자박자박하게 남아 있는 어항 안에 있는 금붕어의 이미지, 물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는 수조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 이미지가 작업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저에게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정지혜: 저는 성희가 못난 사람,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물론 끝까지 상황을 회피하거나 다른 선택을 했던 성희가 마지막 장면에 앞서 현목의 어머니를 보고 아마도 연민 어린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요. 혜인 배우님께는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문혜인일단 영화의 시작에서 성희가 허리를 다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제 흐름으로 보았을 때, 나름의 치열함을 가지고 긴 시간동안 알바를 하며 고시 준비를 하던 자신의 상황 안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이 찾아왔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이렇게 불친절한데 내가 왜 세상에 친절해야 하냐는 생각으로 내 한 몸만 챙기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영화 안에서 사건과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들이 많이 편집되었는데, 자신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은진이 알아서 잘 하는데, 이라는 생각으로 졸거나 자기도 하고요. 현목과의 관계에서도 현목의 요구를 거부하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저는 어떤 면에서는 태만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가장 결정적으로는 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을 때, 성희가 한 번에 모든 변화를 만난다고 했어요. 현목과 기싸움을 했던 전반부의 과정이 있다면, 어머니가 죽을 뻔한 상황을 겪고 튕겨 나가서 활동보조일을 당분간 하지 않기도 하잖아요. 쉽게 생각하고 편한 알바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내가 무책임하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걸 느끼고 역시 나는 안 돼, 나는 못났어라는 생각 속으로 스스로 굴러 들어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잠깐동안 일을 하지 않는 모습이 무책임하다고 느꼈어요.

 

정지혜감독님께서 현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현목의 성희에 대한 관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현목이 굉장히 우왕좌왕하고, 원하는 바가 명확해 보이지도 않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애매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조금 과하게 말하면 성희를 계속 건드려보고 놀잇감처럼 보는 듯한 선택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덕중현목이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인물은 엄마 뿐인데, 엄마와 소통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고 자신이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예요. 고립된 상황이라 현목은 성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오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 같고, 상대가 남자더라도 관심을 얻으려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이끌어냈을 것 같아요. 청소년기에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마음으로요. 그런데 우애로운 관계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이성간의 연애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미성년의 코드를 가져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애정전선이기 보다는, 청소년기에 상상하는, 지속적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이성애적 관계라서 성희에게 불쾌할 수 있는 장난을 치는 걸로 그렸습니다.

 

정지혜: 성희 입장에서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성희가 아니어도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남거든요. 성희라는 인물이 현목에게 주는 건 매혹일 수도 있고 호기심일 수도 있는데요. 현목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서 현목이 보이는 반응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문혜인: 기본적으로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관계의 형태가 많이 작용을 했던 것 같아요. 여성과 남성의 코드나 갑과 을의 관계와 같은 것들이 미묘하게 전복이 되는데요. 많은 경우에 현목은 을의 입장에 있었지만, 성희와의 관계에서는 갑이 되기도 하고요. 연기를 하면서 전반부에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기싸움에 조금 더 집중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성희가 현목에 대해 방어하고 계속 밀어내기 때문에 현목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걸 수도 있어요. 사실 성희는 많은 부분에서 일방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둘 안의 관계에서는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둘의 관계가 거리가 좁혀지는 듯한 순간들이 있기도 하지만, 성희는 끊임없이 현목을 밀어내고 거리를 두려고 해요. 마지막이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이들이 만난 것은 현목의 엄마 때문인데요. 엄마를 그리는 이 영화의 방식에 대해서 고민 또는 나름의 성취 혹은 아쉬웠던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엄마를 연기한 배우 분이 고난의 연기를 보여주셨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이 영화에서 엄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심정적으로, 또 영화의 이미지로도 계속 중간에 있기도 하고요.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고정적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심지어 평상에서의 장면 같은 경우는 대화가 이어지다가 현목이 뒤로 물러나면서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드러나는데요. 있지만 보지 못했던, 가시화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엄마를 이 영화가 보여주었는데, 감독님께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현목의 엄마는 이 상황을 만들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나 전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시나리오 때부터 제일 마음에 걸렸던 인물이기도 해요. 인물로서 다른 사람과 소통이나 갈등, 감정적인 교류를 적극적으로 해내지 못함에도 나타나야 했는데,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고민이 되었어요. 장애인 캐릭터가 영화에서 소비되어 왔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이 부분을 바꾸었을 때 이미 설정한 성희와 현목의 캐릭터나 상황에 맞춰서 대응할 만한 여유가 솔직히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현목 엄마라는 캐릭터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장애인 캐릭터가 아니고 또 다른 각양각색의 모습을 담고자 노들장애인야학을 보여주고자 했거든요. 얼마나 만회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기도 하고, 현목 엄마가 어떻게 다가갈지에 있어서 답을 내리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정지혜: 은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혜인 배우님께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실 게 많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은진을 연기한 배우님과 이전에도 같이 연기하신 적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문혜인: 이 영화를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예전에 장애인들과 같이 연극을 했던 경험 덕분이기도 했어요. 장애인이 영화 안에 등장한다면 내가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하게 된 것도 있는데요. 그래서 은진이라는 인물을 읽고 배우를 추천했고요. 영화의 유일한 웃음포인트인 내가 스페인에서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버려 버려야지라고 통역기가 대신 말을 해주는 장면이 있죠. 유일하게 성희가 편하게 느끼고 웃게 해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성희와 되게 다른 입장에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진이라는 인물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고요. 사실 감독님께 드린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었는데 반영되지는 않았어요.(웃음) 이를테면 은진에게 남자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은지와 같은 이야기요. 편견 속 장애인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불쌍한 모습이거나 어떤 어려움을 극복한 영웅적인 모습, 양극단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런 식으로 영화 안에서도 많이 비춰지지만, 그 사이 정말로 살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정지혜: 대부분 집이라는 공간에서 감정이 오고 가는데요. 흔치 않지만 몇 차례 야외로 나가기도 해요. 숲으로 가는 장면도 있고, 아치형의 터널 같은 공간으로 나가는 장면이 영화에서 잠깐의 환기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해 어떤 선택이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숲길을 통과하고 술을 마시면서 영화의 절정에 이르기 직전의 연출에 대해서 감독님께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김덕중: 그 장소는 시나리오에서 원래 팔당댐이라고 명칭이 되어 있었거든요. 현목이라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계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서울 근교로 소풍을 가려고 하는데, 아주 멋진 곳이기 보다는 조금 의아한 느낌이 나는 이색적인 공간을 찾고 싶었어요. 물이 있는데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시나리오에 적어뒀어요. 그런데 실제로 팔당댐 근처를 돌아보니까 댐이 워낙 커서 돗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없었어요. 그래서 팔당댐 근처의 공원을 돌다가 영화 속 장소를 발견했는데요. 마을주민들이 관광객을 모으고자 꾸며 놨는데 아무도 잘 오지 않고, 뮤직 박스 같은 것에서 클래식이 장엄하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음악이 싱크가 맞지 않아서 메아리치듯이 여기 울렸다가 저기 울렸다가 하는 이상한 곳이었어요. 노력과 성의는 들였는데 잘 안 돼서 안타까운 공간이면서도 마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공간에 가면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지면서도, 나름대로 이탈한 느낌이 들겠다는 생각해서 그 공간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관객: 장애활동보조에 대한 지식을 영화가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잘 모르다 보니까 명확히 알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성희와 현목이 카드 같은 것을 만날 때마다 찍고, 잘 안 맞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다른 보조인으로 교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보였어요. 활동보조인이 집에 도착하고 떠날 때까지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항목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김덕중우선 활동보조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한 번씩 체크를 하게 되어 있고요. 요새는 단말기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어플로도 가능하다고 해요. 계약서를 써서 하는 노동의 형태가 아니다 보니까 활동보조 이용자를 집에 두고 이탈하는 행동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조항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현목의 엄마가 혼자서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대응할 수 없는 상태여서, 성희와 현목이 서로 그 점을 이용해서 못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고요. 활동보조인은 코디네이터가 시간대 등을 고려해서 사람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교체는 어려운 상황예요. 지자체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활동보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고 들었거든요.

 


관객: 저는 영화가 좋았어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부분들이 있었고요. 영화의 초반에는 미성숙한 두 인물을 내세워서 사회적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한계 안에서 부딪치는 과정들과 대상화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 틈새를 파고들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좋았어요. 초반부에는 켄 로치 감독이 영화에서 다룰 만한 사회적인 시스템에 관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후반부로 넘어가면 두 인물의 관계가 많이 부각되는 영화의 흐름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덕중: 초반에 활동보조인의 직업적인 궁금함이 있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했는데,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해결책을 향해서 가야하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결론에서 그친 것 같고요. 제가 조금 더 관심이 있었던 건 청년의 마음가짐이었어요.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돌이켜봤을 때, 맞지 않는 사람과는 단절하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과연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완전한 사람은 없고,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정서적인 교류가 필요하니까요. 사회 안의 구성원과 살아가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극단화된 형태의 성희라는 캐릭터가 조금이나마 타인에게 한 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아까 평론가님과 배우님께서 말씀하셨던 은진과의 관계를 감독님께 다시 여쭤보고 싶은데요. 감독님께서 성희는 타인과 단절을 원하고 활동보조사 일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은진과 관계를 맺어 가면서 같이 춤을 추기도 하고 은진이 그린 그림을 안 준다고 하니까 서운해 하기도 해요. 은진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조금 더 있었을 것 같아 궁금합니다.

 

김덕중: 원래는 야학에서 은진과 성혜의 장면들이 조금 더 있었고, 촬영한 부분도 있었어요. 이건 제 책임인데 촬영본이 실수로 날아간 적이 있었거든요. 지금 보신 야학에서의 촬영본 대부분은 빡빡한 스케쥴 안에서 재촬영을 해서 살린 건데요. 은진과 다른 수업에서 조금 다른 풍경으로 관계 맺음을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스토리에서 크게 발전하진 않지만 성희가 은진과 있을 때는 현목과 있을 때처럼 긴장 상태는 아니고 은진이 성희를 불쾌하게 하지도 않으니까요. 졸업을 위해 실습 시간을 채우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성희도 은진에게는 조금이나마 무장해제를 했던 순간들이 있고,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요. 은진 뿐만 아니라 야학의 다른 수업의 광경이나 분위기가 날아가버려서 함께 만드신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저도 야학 장면 중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악기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수업 장면이 있었는데요. 성희가 원래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가 지도하시는 분께서 일으켜 세웠는데, 억지로 일어난 듯 하지만 이내 춤을 춰요. 감독님께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연출을 하셨는지, 그리고 배우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덕중그 장면을 초반에 기획했을 때는 단순한 의도에서 시작을 했어요. 성희라는 캐릭터에게 야학이라는 공간이 불편하거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적극적인 친절의 형태로 수업에 함께 임하는데, 성희는 그런 모습을 띄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야학에서 성희에게 참여를 요구했을 때 성희가 어떻게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지를 보여주고자 그 춤에 나쁜 춤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단순하게 연결이 될 지 의구심이 들었고, 여러 생각이 겹쳤던 것 같아요. 촬영에 앞서서 문혜인 배우님께서 준비를 많이 해 주셨는데, 실질적으로 야학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있고 그 춤이 오묘한 감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촬영을 하면서는 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는데, 편집을 하면서 그 춤이 그저 나쁜 춤으로 성립한다면 너무 단순해질 것 같았어요. 그 상황을 만들어낼 때 느꼈던 다른 감정들까지 가져가고자 하는 욕심이 들더라고요. 정답을 정해 놓고 이 편집본을 선택한 것은 아니어서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성희가 이번만큼은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성희의 애절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연민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수업보조라는 일이 그 수업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박자를 맞춰주는 차원인데 자신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는 모습에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문혜인: 대본에는 나쁜 춤이라고 단순하게 써있었어요. 성희가 춤을 추는 동작이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 내기 때문이거든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 순간 우월감을 느끼고자 했던 치기 어린 마음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저는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심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기는 했어요.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으로 성희가 현목과의 관계 안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가는 시점이기도 해서 이 안에서의 해방감으로 표출되는 것이 조금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쁜 춤의 형태를 띌 수 있도록 섹시한 춤을 추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장애인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 같다고 대본에 적혀 있었거든요. 충실하게 준비했던 것과 즉흥적인 부분이 함께 들어갔지만, 디렉션 속의 성희의 감정과 제가 이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섞여서 영화 안에 표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도식적인 이분법일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의 상황에 몰아넣은 채 시작되고 전개되는 영화라고 느꼈어요. 현목의 어머님은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고, 현목도 그런 어머니가 있고 고등학생 신분이고 고시생이기 때문에 집과 책상 앞에 묶여 있어야 하는 인물이고요. 성희라는 캐릭터도 허리디스크 때문에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문제를 심어 주셨는데요. 저는 윤리라는 게 어떤 행동이나 실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윤리적인 행위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입장에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으로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각 인물에게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의도하고 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성희가 스페인으로 갔는지도 궁금해요.(웃음) 성희를 움직이게 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아니면 이 상황에 성희를 묶어 놓고 어떤 다른 행동으로 나아가게 해주고 싶으셨던 건지 궁금하고요

혜인 배우님께도 질문이 있는데요. 옛날에 배우님께서 출연하신 나가요: ながよ(2016)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 영화에서 랩을 하셨는데, 달걀을 사 들고 가면서 하는 랩이 진짜 귀엽고 쫀쫀하거든요.(웃음) 성희가 무기력하고 지쳐 있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툭툭 던지는 대사 때문에 되게 얄밉게 보이는데요. 일을 달라고 조를 때나 은진을 대할 때, 그리고 현목한테 이것저것 시킬 때 배우님 특유의 말투나 톤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발화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조절을 하신 건지 궁금해요.

 

김덕중: 현목 엄마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강하게 적용이 되었고, 그래서 아쉬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현목과 성희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 했어요. 공무원 준비는 두 인물이 어떻게 시간을 같이 보낼 지를 고민했을 때 필요로 했던 것이고,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 현목에게는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이는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했고요. 그리고 성희가 허리 디스크에 걸린 건 신체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한 번 손상되면 어떻게 복구가 될지 잘 모르는 극한의 상황을 위한 장치였던 것 같아요. 성희가 스페인으로 떠나는 건 영화에서는 도저히 유추할 수 없게끔 되어 있기는 하거든요. 관객들이 성희가 스페인으로 떠날 지 말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유도하려고 하진 않았는데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유추해보자면 아마 스페인으로 갔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영영 살지는 못하고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해요. 로망이 있어도 막상 그 나라에 가서 살아보면 어려운 지점도 많고 외국인이 정착하기 나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스페인으로 설정했습니다.

 

문혜인: 먼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나가요: ながよ라는 영화를 봐주신 관객 분이 계셔서 굉장히 반갑고요. 말투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드는데요. 한 가지는 제가 실제로 스페인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스페인어를 오래 공부한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스페인어의 어조가 단조롭지 않고 후루룩 말하는 특징이 있거든요. 제가 말을 할 때도 그런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는 영화에서는 편집이 되었지만 성혜의 가족이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타인이고 남이라는 생각하는 인물이라, 그 만큼의 먼 거리감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굳이 그들에게 친절하려고 하지 않고, 마음이나 에너지를 쓰지 않고 건조하게 말을 툭툭 내뱉는 것이 성희의 말하기 방식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영화에서 현목이 어머니를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피가 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리고 엔딩에서 성희가 현목의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성희가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여주는 표정을 비감이라고 표현을 해봤는데요. 죄책감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일 수도 있고, 도망쳐 온 것에 대한 자기반성 혹은 죄의식, 동시에 현목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일 것 같아요. 그런데 일부러 표현하고 분출하는 표정이 아니라 처연한 듯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 때의 성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배우님에게 여쭤보고 싶었어요.

 

문혜인: 말씀하셨던 감정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상황 안에서 방황하는 감정들을 하나씩 규정하거나 설명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현목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현목의 엄마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존재로 그려지면 어떨지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저 장애인으로 장치나 수단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쉬울 것 같다는 것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요. 은유적으로 엄마를 비유해보면 고양이와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를 마주하는 장면이 있기도 했고요. 그리고 식물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같이 하기도 했어요. 편집되긴 했지만 그런 점에서 엄마가 빛을 보면 깨어나는 설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현목이 슬쩍 지나가면서 햇빛 드는 곳에 어머니를 모시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빛을 본 다음에 현목 엄마가 깨어난다는 설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도 불을 껐다 켰다 하면서 어머니의 반응을 재차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정지혜앞선 대사들과 같이 생각해보면 성희로서는 불을 켜는 게 아니라 꺼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암울한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는데요.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처음으로 성희가 현목에게 나름의 응징을 가하거나 맞대결을 하는, 정면으로 현목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던져가면서 싸워보는 첫 번째 순간인데요. 굉장한 육탄전을 벌이는 그 상황이 어떤 분께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 같고, 성희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해요. 그 장면을 촬영하실 때도 쉽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육체적인 방식으로 가격하는 것을 택한 감독님의 의도를 먼저 여쭤보고 싶고, 연기를 하신 혜인 배우님께도 그 장면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엔딩은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정해졌고, 그것을 향해 가자고 생각을 했고요. 성희라는 캐릭터가 올바른 방식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이 튀어나오는 순간, 꽤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방식으로 삶이 뒤엉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을 만들고 싶어서 육탄전을 선택했거든요성희라는 캐릭터가 이전까지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왔고 몸이 다쳤기 때문에 모가 난 부분이 있는데  물리적인 힘에 있어서는 현목이 우위에 있을 텐데도 그를 감수하는 순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은 조금 더 촬영된 부분이 있거든요. 더 과격해지는 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면서 무리가 될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배우 분들은 촬영하는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있고, 스태프들은 오케이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는 똑같은 포지션이 절대 아니라는 걸 느꼈거든요. 배우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후의 동선에서 사실 사고가 있었어요. 배우님이 실제로 다치시고,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고요. 그리고 현목을 연기한 배우는 청소년 배우인데, 저희가 사고에 대한 안전장치나 대비를 충실히 하지 못했고 배우가 문제제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일 거란 걸 체크하지 못했어요. 영화를 만들자고 요청했던 사람으로서 도저히 핑계를 댈 수도 없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요. 조금이나마 위험한 순간에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히 준비하고, 함께 만드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문혜인: 저는 여러모로 힘든 촬영이었거든요. 좁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일종의 액션씬이고 긴 동선이 있는 촬영이었어요. 감독님과 조감독님이 짜 놓은 합을 저와 김준형 배우가 연습해서 진행했는데요. 실제로 물리력이 가해지면 그것이 어그러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동선을 수정하는 과정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고 실제로 제가 다쳐서 긴 시간 동안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치유가 필요했어요. 그런 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 많은 상상력이 들어가게 되죠. 인물과 상황, 사건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와 같은 과정에 대한 상상도 필요해요. 어떠한 인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상상이 더욱 더 예민하게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촬영될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했고, 안전을 위한 액션 전문가가 현장에 필요했어요. 물론 처음이고 서툴기 때문에, 예산 등 그 밖의 부족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반복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추후에 감독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고 충실한 사과를 받고, 동의에 이르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배우와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더 예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성희와의 몸싸움에서 현목이 성희에게 맞게 되는 동선이 있었는데. 물론 준형 배우의 합의가 있었고 팔이나 다리에 보호장비를 했지만 실제로 배우가 물리력을 몸으로 감당해야 했고, 가학을 하는 입장에서도 너무 괴로운 경험이었고요. 지금은 그 선택이 준형 배우에게 있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저도 함께하는 동료로서 그 순간에 더 예민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성인 연기자라면 그런 폭력을 사용해도 괜찮은지에 대해 물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모든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해요. 실제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네요. 앞서 말했던 관계 사이의 미묘함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시스템으로써 설명이 되지만, 우리가 잘 모르거나 무감하거나 놓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밖의 현실적인 문제와 연동이 되면서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관객 분들께도 같이 느끼고 계실 것 같아요. 저는 엔딩을 보면서 성희와 현목의 관계는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진행될 수 없을 것이고, 관계의 실패라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요. 성희 식의 응징 혹은 훈육이라고 표현을 했을 때, 그것 역시도 실패라고 봤거든요. 이들의 관계가 다른 방식으로 진척이 될 수 없기도 하고, 성희에게도 충격을 가한 만큼의 힘 혹은 그 이상이 쏠렸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성희의 응징 역시 긍정적인 신호이기 보다는 실패의 방식으로 끝이 났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충격적인 엔딩이라고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다층적인 관계 내의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되고요. 오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영화 안팎으로 고민거리를 던져주네요. 감독님과 배우님께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고민들을 용기 있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뀌어 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고 해결의 지점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무리 인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문혜인: 되게 이상한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웃음)

 

정지혜이 영화를 배우로서 여러 고민을 하던 시기에 만났다고 하셨는데요. 이상함이 나쁜 의미만은 아니고, 때로는 기분 좋기도 하고 다른 의미의 칭찬이 될 수 있기도 하죠. 그 때의 고민과 작업을 마치신 지금의 고민이 달라지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문혜인: 너무 복잡다단하고, 평범한데도 특이하고, 일상적이면서도 낯설고, 디테일한데 거칠기도 한 이상한 느낌을 말한 거였어요. 저는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서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화 안에 쌓여 있는 많은 것들이 덩어리로 다가와서 이상함을 느꼈던 것 같거든요. 저는 디테일한 대본의 설정을 모두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는 하나하나가 다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희한한,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아하는 영화예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화가 영화로도 존재하지만 그 밖의 시간을 같이 경험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안에서 상충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관객으로서 영화를 봤을 때 이상해지는 지점이 생기기도 하고요. 영화의 제목이 에듀케이션인데 영화가 저에게 준 교육 내지는 교훈은요. 그 이전의 저는 워커홀릭이었고 일에 모든 것을 내어 던지는 타입의 배우였다면, 그 이후의 저는 어떤 경우에도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 것만큼 삶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요. 그 사이에서 좋은 균형을 잡으면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흉흉한 상황에 극장으로 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덕중: 찾아와 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요. 영화는 처음 아이템 기획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상영에 이르기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영화가 우리와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과 맺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모두 우리라고 할 때, 이 과정이 오롯이 좋은 기억들로 남을 수 잇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지혜: 늦은 시간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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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빛  한줄평


정성혜 | 당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한다는 것

오윤주 | 사적인 기록에서 영화의 의미를 탐구하다 

송은지 | 카메라는 대상과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흔들리면서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들을 현재에 가져다 놓는다

김혜림 |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작은 빛  리뷰: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것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혜림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왜 드는가? 누군가는 현재를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해 들 것이다.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담는다. 당시의 사람, 감정, 분위기, 향기까지도 담아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에 포함되어 있고, 카메라는 당연히 그 시간을 살고 있다. 여기 곧 기억을 잃을 남자가 있다.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또는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 혹은 미래에 기억을 잃을 수 있는 자신을 위해 카메라를 든다. 작은 빛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가 그렇다.



 


진무는 갑작스레 찾아온 병을 소란스럽게 맞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혹은 예상해왔던 일이라는 듯, 영화는 꾸준히 조용하고 희미한 분위기를 지속한다. 진무의 병을 둘러싼 가족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의도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진무의 병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병원에 함께 있거나 진무의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멋쩍게 응할 뿐이다. 가족에게 오히려 큰 사건은 부재한 아버지의 산소에 나무뿌리가 타고 들어와 박힌 것이다. 영화의 종반부, 가족들은 아버지가 모셔진 묫자리로 찾아가 미라처럼 굳건히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기억의 사라짐과 부재한 아버지의 굳건함, 이 사이에서 조민재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가족들과 진무의 사소한 움직임이다.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부끄러운 듯 카메라를 피해다니는 어머니 신숙녀의 모습이나, ‘사는 게 즐겁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현의 복잡한 모습이나, 활기를 띄지 않았던 진무가 조카인 호선을 만날 때에 옅은 미소를 띄는 것, 혹은 정도가 집 앞에서 눈치를 보며 즐겁게 춤을 추는 것 등이다. 가족들은 익숙하고 따듯한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다. 이 영화의 힘은 오히려 사소한 움직임과 미묘한 표정에 있다. 기억 상실과 아버지는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작은 빛은 이 두 사건 자체를 자극적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닌 사건 주위의 인물과 빛을 바라보면서 작고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요청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종반부, 아버지의 미라가 화면 전체를 메우는 것은 낯선 감각을 불러온다.



 


계속해서 숙녀의 입이나 가족 모두가 잡히는 씬에서 은유적으로만 이야기되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해당 씬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씬이 낯선 이유는 그것이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굳어버린 아버지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가족들을 에워싸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민재 감독과 곽진무 배우는 작은 빛이 무엇보다 호주제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고 그 아이를 사회활동의 범주에 넣기 위해 숙녀는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부터 비롯된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픔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듯 오목조목 조합되어 있다. 이 아픔의 굴레에서 진무의 가족들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기억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또 이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조금씩 그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진무는 카메라를 왜 들었는가? 진무의 카메라는 많은 것을 담았다. 어머니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나 형의 춤 솜씨, 누나의 삶의 흔적 등. 진무가 기억을 잃었을 때, 기억할 수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저장된 영상 파일을 스크린 전체로 확대하면서 튀어나온 픽셀 조각 하나하나는 마치 진무의 기억과 같은 틈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가족을 형상화하는 듯 보인다. 그 속에는 미라가 되어버린 아버지도, 굳세게 살아가는 가족들도, 자신을 미소짓게 하는 무뚝뚝한 조카도 있다. 진무는 기억을 담지만 동시에 현재를 직시하게 되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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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과 위기를 오가는 한 젊은이의 문제적 선택  〈성혜의 나라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2월 2일(일) 오후 2시

참석 정형석 감독배우 송지인, 강두

진행 김영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현 시국에서 마주한 젊은 세대들의 가장 큰 비극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처지에 기인할 것이다. 성혜의 대기업 인턴 이력은 되려 족쇄로 작용하며 그녀를 일용직 세상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비단 주인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성혜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서로의 처지를 비관한 채 꿈과 희망이 하나도 없는 넋두리를 허심탄회하게 내뱉는다. 더불어 그들이 모이게 된 주된 이유, 한 달 동안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한 친구의 고독사는 그 자체로 오늘 날 젊은 세대가 처한 벼랑 끝 위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화는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고민과 고통을 성혜라는 인물로 의인화시킨 듯,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그녀이 일상을 잔인하리만치 생생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담아낸다. 그 어디에도 위안 받을 곳 없던 그녀에게 찾아온 뜻밖의 사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선택 하나를 안겨준다. 과연 그녀의 눈앞에 도래한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어떤 변화를 안겨줄 것인가

22일 일요일에 진행된 성혜의 나라인디토크는 성혜라는 인물의 선택이 세대에 따라 위안과 위기를 오갈 수 있음을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세대 별로 전혀 다르게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이전과 다른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충격을 전 세대들에게 안겨준다. 영화 성혜의 나라는 그야말로, 문제적 선택에 관한 작품이다.

 




 

김영진 평론가(이하 김영진): 진행을 맡은 김영진 평론가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옆에는 감독님과 배우님들이 계시고요. 각자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형석 감독(이하 정형석): 안녕하세요, 정형석 감독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삼가라는 지침이 있는 상황에 이렇게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지인 배우(이하 송지인): 안녕하세요, 성혜 역할을 맡은 송지인입니다. 시국이 흉흉한 가운데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강두 배우(이하 강두): 승환 역할을 맡은 강두입니다. 많이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진영화 잘 보셨습니까? 이 영화는 2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고요, 제가 그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하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개봉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감회가 어떤 지 여쭤보겠습니다.

 

정형석: 개봉까지 2년이 넘게 걸렸는데, 어렵게 극장에 걸려서 다행이고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텀블벅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후원을 받아 개봉하게 되어 더 기쁘고 좋습니다. 주변에 영화를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진배우분들께도 여쭤볼게요. 송지인 배우께는 이 영화가 첫 주연작인데 벅차오르는 감정을 말씀해주시죠.

 

송지인: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고요. 몇 번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이 영화가 영화제에 갈수 있을까 생각했었고, 또 영화제 가도 상을 탈 수 있을까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대상도 받고 개봉까지 하게 돼서 정말 감개무량 합니다.

 

김영진: 찍을 때는 어떠셨어요? 왠지 고난의 행군이었을 것 같은데.

 

송지인: 201712월에 찍었는데 정말 추운 겨울이었어요. 7회차 정도로 찍어서 다들 힘들었던 여정이었지만, 잘 만들어서 어떻게든 전주국제영화제 출품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현장에 임했어요. 그래서 초청 됐을 때 정말 기뻤어요.

 

김영진: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에요.(웃음영화 찍으면서 전주국제영화제 출품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요?

 

송지인: 처음 저한테 감독님이 출연 제의를 하셨을 때,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이 목표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속으로 웃었거든요. “감독님 꿈 깨세요, 저랑 어떻게 가요.”라고요.(웃음다른 훌륭한 배우들 놔두고 저랑 찍으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저는 속는 셈 치고 영화에 참여하게 됐어요.


김영진: 강두 배우님은 어떠셨나요?

 

강두: 적은 예산, 적은 회차라는 여러 열악한 상황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완성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하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당시 프로그래머였던 김영진 평론가님 계시니까 대상 받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저희가 이상한 괴성을 지르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있어서 정말 좋았고 이렇게 개봉까지 하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극장에서 GV까지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감개무량합니다.

 




김영진: 이 영화는 대상을 타기는 했지만, 그에 반해 관심이 덜 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 질기게 계속 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뒷얘기를 드리자면 백 몇 십 편의 출품작들 중 크로스체크를 하는데 이 작품이 최종 본선에 안 올라와 있길래 이야기를 나눈 뒤 초청작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출품된 상태로 영화제에서 대상 수상까지 한 건데요. 당시 외국인 심사위원이 강하게 밀었던 작품이라 국제적으로도 집중 받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왜냐면 굉장히 많은 독립영화들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자주 다루거든요. 이 영화는 초반 15분 동안 빨려 들어갔어요. 왜 그런가 하니, 다른 극영화와 달리 시간과 공간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주된 호흡을 밀고 나가는 게 놀라웠어요. 굉장히 현대적인 터치가 눈에 보였고요. 예를 들어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의사와 만나고 난 후 주인공의 각박한 노동의 일상을 진중하게 보여주는 연출 방식을 보며 요즘 영화 중 이렇게 끝까지 영화적으로 호흡을 관철시키는 영화는 흔치 않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독님 전작인 여수 밤바다〉(2016)랑 비교하면 연출 스타일이 대조적이라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제작과정이 궁금했습니다. 호흡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런 과정들을 설명해주시죠.

 

정형석: 말씀하신 호흡과 관련해서는 사실 어려웠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끌고 가는 게 맞나 저 스스로도 좀 걱정이 됐고, 요즘 관객들에게 먹힐까 싶었습니다. 여수 밤바다도 그렇고 주변에서 많이 들은 이야기가 편집해라, 길다, 지루하다는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그런 부분에서 제가 흔들릴 법도 했어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공연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그런 부분들에 단련되었기 때문이었어요. 무대에서는 길게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무대 작업을 하면서 그런 연출 방식에 확신도 있었고, 이런 방식을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영화제 이야기를 계속 했는데, 이 영화는 애초에 상업성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일단 하자는 식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독립영화는 감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