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우리 둘 사이에〉: 한숨과 새숨 사이

by indiespace_가람 2025. 8. 12.

〈우리 둘 사이에〉리뷰: 한숨과 새숨 사이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여느 때처럼 밖으로 나선다.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힘껏 들이킨다. 이동을 위해 계단을 타고 내려가 지하철에 탑승한다.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눈에 불을 켜고 본인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분홍색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는 남성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한숨을 쉬며 지하철 손잡이를 잡는다.

 

내가 여기서 겪는 불편함은 단 두 가지뿐이다. 내가 앉을 자리가 없는 것, 임산부 좌석에 임신이 불가능한 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 비장애인의 삶이다. 은진은 좀 다르다. 방지턱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는 것,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로 가득한 지하철 입구를 지나쳐 가는 것,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에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는 것, 임산부임에도 임산부 좌석에 앉지 못하는 것. 장애인으로 살아온 지 17년, 임신 8주 차가 넘어가는 은진은 여러 불편함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은진의 곁에는 그의 또 다른 바퀴, 호선과 엄마가 있다. 호선은 어느 불편함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고, 중요한 것은 우리 둘 사이에 있다고 늘 말해준다. 엄마 또한 무엇이든 은진이 우선이라며 힘을 건넨다. 배려는 임신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선은 은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축하보다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마주한다. 은진의 몸은 물론이고,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한 돈 문제, 늘어날 병원비, 태어날 아이의 생활…. 그를 마주하는 은진에게도 마음의 짐이 하나둘 쌓여만 간다. 그 둘의 사이에는 ‘쪼꼬’라는 생명과 함께 균열이 생겼다.

 

호선과 모든 것을 공유하던 은진은 균열 사이에 비밀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호선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서로보다는 의사 선생님에게 먼저 털어놓게 된다. 본인 자신을 더 압박하고 묻어버리고 만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불편함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은진 또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신 혼자만의 관계로 옮겨 간다. 잠시 만났던 산모 친구 ‘지후’를 가상의 인물로 만들어 그와 잦은 만남을 갖는다. 두렵고 스스로를 갉아내는 마음은 언제나 그와 공유하게 된다. 말하지 않아도 은진의 마음을 알아주고, 언제나 묵묵히 은진의 선택을 지켜주는 지후는 임신 생활의 또 다른 바퀴가 되어주었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지후와의 관계는 출산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지후가 가상의 인물임을 안 호선은 그간 은진의 ‘괜찮다’는 말을 그저 믿고 싶었음을 깨닫는다. 은진도 마찬가지다. 지후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울지 않던 은진은 크게 요동친다. “네 말이 맞아. 나 아픈 것 같아. 내가 아파.” 스스로의 아픔을, 서로의 아픔를 인정하는 순간. 그렇게 둘은 각자의 한숨을 공유하게 된다. 지후가 사라짐과 동시에 균열 사이의 비밀 또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달콤하지는 않았던 임신 생활 속에서, 안정을 찾은 둘의 사이. 그 안에서 쪼꼬는 작은 숨소리와 함께 태어난다. 앞으로도 여전히, 은진과 그 주변에는 여러 어려움이, 어쩌면 훨씬 더 큰 고비가 닥쳐올 것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은진의 눈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숨과 용기를 공유한 은진 자신과 호선의 사이에서, 우리는 그들이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확신을 갖고 마음 편히 영화를 떠나보낸다. 결코 끊기지 않을 그 셋의 앞날을 오래도록 응원하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