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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받는 몸
〈우리 둘 사이에〉 그리고 〈내 차례〉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몸은 정직하게 존재한다. 사라지고 싶은 날에도, 날아갈 것 같은 날에도 여기에 있다. 내 기분과 무관하게 묵묵히 살아있는 몸이 때론 초대한 적 없는 덩어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몸 그 자체로 환영받지 못한다면 더욱 그렇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존재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을 때.
영화 〈우리 둘 사이에〉의 ‘은진’도 내내 허락을 구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몸인지라 자주 가로막힌다. 가파른 계단과 꽉 찬 엘리베이터는 은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혼자 걸을 수 없는 두 다리를 막는 건 많다. 그래서 아기가 찾아왔을 때, 남편 ‘호선’은 우려가 앞서고 은진 역시 아이를 낳는 건 욕심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인은 아이를 낳아 길러도 되는가? 또 한 번 허락을 구하는 은진에게 영화는 틈틈이 대답한다. 작은 문제에도 자신의 몸을 탓하는 은진을 위로한다. 같은 병실에서 만난 ‘지후’는 “나도 그랬어”라고 말해준다. 의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토닥인다. 영화적 기교 없이 편지처럼 오고 가는 대사를 따라, 영화의 시선은 장애의 몸을 넘어 여성의 몸으로 나아간다. 임신 근처에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무사히 낳기까지 무탈하기를 암묵적으로 요구받는다. 그들은 재생산이라는 커다란 임무를 잘 해내야만 스스로 당당히 존재할 수 있으리라 느낄지 모른다. 또 하나의 몸을 책임지는 동안, 여성의 존재는 우선순위에서 비켜난다. 생명의 탄생 뒤에는 자신의 존재에 끊임없이 허락을 구해야 했던 몸이 있다.
영화 〈내 차례〉는 보다 직접적으로 임신의 양면성을 다룬다. 간호사 ‘현정’은 3교대 근무를 한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임신을 하려면 정해진 순서대로 해야 하는 임신순번제가 관행이다. 그런 관행에 따르자면 현정은 임신했다기보다 임신해 “버렸다.”
허락 없이 임신한 대가는 가혹하다. 직장은 임신 중절을 권한다. 시험관 시술로 임신을 준비 중인 현정의 선배는 잔뜩 화가 났다. 현정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서 유산시키겠다며 수술을 회피해도 보지만,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는 현정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겠냐고 묻는 듯이. 결국 시험관 시술에 성공한 선배 앞에서 현정은 가로막힌다. 임신은 축복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정말 그렇다면, 세상을 잃은 듯한 현정의 표정과 그런 현정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선배의 목소리는 다 무엇이냐고.
임신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음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임신할 자격이 있는가. 임신해도 무사한 상황인가. 임신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건 무엇인가. 임신 도중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가.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내 몸 탓은 아닌가. 내 몸 탓이라고 해도 나는 당당해도 되는가.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지워지는 이가 없는 것도 중요하다. 임신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의 몸을 검열해야 했던 은진도, 임신의 타이밍까지 고려하길 강요당한 현정도 많이 지쳐 보인다. 세상에 존재하기를 허락받아야 하는 몸은 없다고 그들에게 말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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