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전야>  한줄 관람평


송은지 | 처음부터 과격했던 운동은 없었다

이성현 | 제작, 상영, 관객 모두가 용감했던 투쟁의 영화

김윤정 |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노동의 굴레

최승현 | 노동영화의 전설,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김정은 | 어두운 시대를 비추는 빛으로서의 영화라는 예술






 <파업전야>  리뷰: 노동영화의 전설,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제129주년 노동절을 맞이해 <파업전야>가 개봉했다. 30년 만의 정식 개봉이다. 이 영화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1990년 정부는 <파업전야> 제작진에 대한 전국 수배령을 내렸고 필름을 압수하기 위해 헬기와 전경을 동원했다. 무엇이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맞서서 노조의 결성 과정을 그려내는 이 영화로부터 88올림픽 이후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뤄내던 노태우 정부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씨네21'의 이화정 기자의 말처럼 노동자의 참상을 너무 잘 그렸다는 이유가 크나큰 죄명이 됐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있어서 <파업전야>는 독립영화의 전설로 불린다. 명작이라고 불리기엔 덜 세련된 작품이지만 전설이라고 불리기엔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87년 가을 허름한 건물의 금속 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동성 금속의 단조반. 이들은 기름때가 묻는 얼굴로 기름밥을 먹는다. 잔업은 많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형편없다. 작업반장은 생산량에 혈안이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철야 작업이 끝나면 시간은 새벽 1시가 된다. 그렇게 일해서 받는 월급은 20만원을 겨우 넘는다점심시간엔 족구, 쉬는 시간엔 담배, 퇴근 후엔 소주다. 족구로 몸을 북돋고 담배로 몸을 태우고 소주로 몸을 녹인다. 노동자들의 일상이다. 몸을 쓰는 노동자들에겐 몸을 위로하는 일이 최선이다. 퇴근 후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작업반장 뒷담화를 나누는 것이 이들의 삶의 낙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괴롭다. 작업량은 늘지만 월급은 늘지 않는다. 비인간적인 노동과 대우를 받는 이들은 결국 노조를 결성하기로 다짐한다. 회사가 어용노조로 맞대응하면서 노동자들의 내부 갈등과 혼란은 가속된다.

 




<파업전야>가 영화로서 지닌 힘은 미학적인 성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영화의 미학은 투박하다. 여러 대학 동아리 출신 사람들이 모여 동료, 후배, 선배들의 후원금으로 제작했던 영화인 만큼 편집, 촬영, 음향, 조명의 측면에서 기술적인 완성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미숙한 연기와 후시 녹음은 눈과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영화의 힘은 노동자의 실상을 정공법으로 그려내는 우직함과 정직함에 있다. 삶의 보편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순수한 힘으로 영화는 줄곧 밀고 나간다. 삶의 보편성을 담아내는 영화에서 미학은 사실상 무력하다. 켄 로치의 영화가 그렇듯이 삶의 보편성은 투박하고 담백한 형식에서 빛을 발할 때가 많다. 예술이 진실을 성취하려 할 때 그 방식이 화려하고 미학적이라면 오히려 진실은 퇴색된다. 우리가 예술로부터 진정성을 절감하는 이유는 그것이 세공되고 꾸며진 형태여서가 아니라 정교하지 않고 생생한 형태여서 그렇다. 정직한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정직한 아름다움은 모든 인간의 내면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영화가 회사 경영진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앙각(low angle)으로 비추는 것은 투박하지만 정직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주인공 한수의 내면적 각성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 한수는 별 탈 없이 열심히 사는 것이 꿈이다. 자신 대신 대학을 가려는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붓는다. 그래서 그는 노조원이 되기를 거부했다. 노조원이 된다는 것은 해고를 감당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고뇌한다. 회사의 억압에 의해 자신과 친한 동료들이 해고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수는 스패너를 움켜잡는다. 회사가 부른 용역 업체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는 노조원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안정적인 삶이 아닌 인간답게 사는 삶을 택한다는 점에서 한수는 <1987>(2017) 연희의 원형격처럼 보인다. 노동자로서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자신의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은 숭고하고 존엄한 삶이다. 한수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택한다.

 

1990년 노동영화가 오늘날에 정식 개봉한 것은 3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달라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1990년 <파업전야>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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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평화로운>  한줄 관람평


승문보 | 백승기 감독은 진정한 일류다

송은지 | 독립영화는 스크린 앞에서 웃지 못하는 소수를 돌아보는 지점이 되기를

김정은 |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영화

이성현 | 없는 게 없는 백승기표 키치 코미디

김윤정 | 어디선가 많이 본, 영화들의 겉핥기 모음

 





 <오늘도 평화로운>  리뷰: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진 영준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려는 로망을 품고 하루하루 벌어가며 돈을 모은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발견한 노트북을 사려다 사기를 당해 150만원을 잃은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무작정 중국으로 떠난다. <오늘도 평화로운>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노트북을 거래하려 하다가 사기를 당한 감독의 실화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인터넷에서 오늘도 평화로운그 중고거래 사이트라는 제목을 달고 무수히 떠돌던 사기 사건이 뼈아픈 실제 경험이 된 것이다.

 




비록 백승기 감독은 150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잃었지만 그만의 개성과 열정을 살린 유쾌하고 발칙한 영화를 탄생시킨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감독의 과감한 도전과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힘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감독은 SNS에 짧은 시놉시스를 포함한 모집 공고를 올려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사람들을 찾았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예산 속에서도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재능기부로 완성된 영화는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에 이어 개봉에까지 이르게 된다.



 


영화 <오늘도 평화로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중문화 텍스트가 꾸준히 등장하고, 일차원적이지만 즉각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로 가득하다.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마음이 닿는다면 제작에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창작과 수용에 열려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귀중하다. 그렇기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옥상 전투 장면은 영화에 향한 애정과 열정을 바탕으로 고군분투하는 영화인의 모습을 구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작품에 참여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모여 영준과 벌이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린 역동적인 전투는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축제의 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부 영화들의 스크린 독점 현상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관객들을 찾아온 <오늘도 평화로운>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완성시킨 영화는 근근이 버텨내는 일상 속에서 개성과 취향을 잃어 가게 되는 가혹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용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놀라운 행보를 보여준 <오늘도 평화로운>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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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지만 단단한 눈빛과 걸음으로  <히치하이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3월 30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정희재 감독 | 배우 노정의, 김보윤(김고은)

진행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개봉을 하고 보름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 <히치하이크>가 인디토크와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인디토크가 있었던 당일 눈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는 정애가 마주한 시련과 한계의 온도와 비슷했다. 그러나 흔들릴 지언정 꿋꿋하게 걸어 나가는 정애를 보며 뜨거운 마음의 동요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도 있었다. 두 소녀의 여러 표정 속의 다양한 마음을 비추어 주는 장면들은 희미해져 가는 어린 시절의 감정들과 추억들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기도 한다. 끊임없이 선택하고 포기해야 하는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신이 잊은 지도 몰랐던, 놓치고 있었던 귀중한 무언가를 상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정희재 감독과 노정의, 김보윤 배우가 참석하고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장성란): 안녕하세요.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이 영화를 위해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요즘 같은 시국에 두 소녀가 길 위에서 역경과 위험을 만나도 이렇게 건강하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영화를 만난다는 것이 귀하게 느껴졌어요. 여러분도 오늘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셨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영화를 만들어주신 세 명의 아름답고 멋진 여성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쓰고 연출하신 정희재 감독님과 노정의 배우님, 김보윤 배우님 모시겠습니다.

 

정희재 감독(이하 정희재): 저희가 오늘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관객 분들께서 많이 안 오실까봐 걱정 많이 했어요.(웃음)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히치하이크>를 연출한 정희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노정의 배우(이하 노정의): 안녕하세요. <히치하이크>에서 정애 역을 맡은 노정의입니다.

 

김보윤 배우(이하 김보윤): 안녕하세요. 저는 <히치하이크>에서 효정 역을 연기한 김보윤입니다.

 

장성란: 오늘 중대한 소식을 발표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드는데요. 김고은 배우님이 앞으로 활동명을 김보윤으로 변경하신다고 들었어요.

 

김보윤: 어쩌다 보니까 바꾸게 됐는데요,(웃음) 앞으로 김보윤이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할 예정입니다. 활동명을 바꾸고 나서도 저를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성란: 감독님이 아버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포기라는 단어에서 모티브를 얻고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한 쪽 부모를 찾아 나서는 두 소녀의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라는 주제와 두 소녀가 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어떻게 연관짓게 되셨는지 먼저 여쭤보고 싶더라고요.

 

정희재: 영화가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순간부터 개봉하는 지금까지 영화에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게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이 변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주변 분들의 이야기들도 있고 제가 실제로 겪어왔던 일들, 그리고 어머니, 그런 많은 것들이 계기가 되었는데요. 아버지로부터 포기하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던 시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고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서른이 되기 직전이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정애나 효정처럼 청소년 시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실질적으로 많이 고민하던 때에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뒤늦게 났어요.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그 시기로 다시 돌아가서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매듭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장성란: 이런 설정은 어떻게 생각을 하신 거예요? 감독님 실제 사연인가 싶을 정도로 되게 세세하다고 느꼈거든요.


정희재: 실제로 제 지인께서 본인의 친어머니를 찾아가려는 시도를 했던 이야기를 해주신 적 있는데 그 이야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었던 것도 있고요. 그 이야기가 왜 인상이 깊게 남았는지 생각을 해보니, 제가 가진 두려움 중에 하나가 나의 본성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어요.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사람과 관계 맺고, 일을 하고, 뭔가를 꿈꾸면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쪽 부모만 계셔서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지금 내가 관계 맺지 못하고 있는 다른 한 분의 모습이 아닐지, 그런 생각도 하면서 두 친구의 가족 상황을 설정했던 것 같아요.

 

장성란: 이 원대한 모험은 중대한 목표를 가지고 떠나는 굳건한 의지의 길이기도 한데, 영화가 그리는 분위기를 보면 두 소녀한테는 재미있는 모험이기도 하고 소풍 같은 느낌도 들어요. 두 소녀가 되게 용기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하셨는지 두 배우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노정의: 일단 제가 실제로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잘 표현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어요.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 한 분을 찾아서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지만 아직 보지 못한, 제가 상상해온 사람을 찾아 떠난 것이기 때문에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김보윤: 처음에는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청소년이고 겁 없이 도전하는 나이이다 보니까 일단 별 생각하지 않고 아빠를 찾아 떠나는데, 떠나서는 이제 고민을 시작하는 거죠. 버스에 타고 아빠를 찾으러 가는 길에서야 어떻게 생겼을까? 만약 나랑 동갑인 다른 자식이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들을 하는 것으로 설정해서, 처음에는 천진난만한 모습들이 담긴 것 같아요.

 




장성란: 그런 이미지들이 이 영화가 소녀들을 한쪽 방면으로만 보려고 하지 않고 여러 가지 마음들을 살펴준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어요. 특히 정애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계속 길 위를 떠도는 영화잖아요? 경쾌하게 떠날 수 있었던 여정이지만 처음부터 세상이 두 소녀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고 훨씬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경험하는데요. 그 후 두 소녀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왜 그 이야기를 먼저 경험하게 하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정희재: 사실 요즘 사회면 기사만 봐도 너무 험악한 일들도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실에는 조금 더 가혹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에 집중하려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앞으로의 여정이 굉장히 막막하고 어떤 길이 펼쳐질 지 모르는 불안한 느낌을 짧은 에피소드 안에 이미지로 같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구상하게 된 장면이 트럭에 올라타서 안 좋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치는 장면입니다. 사실 그런 그 장면을 찍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후회도 많이 했는데요.(웃음) 구현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런 의도를 가지고 구성했습니다.

 

장성란: 엄청난 긴박감과 스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두 배우님 현장에서 고생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오늘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노정의: 보윤이가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웃음)

 

김보윤: 제가 도망가다가 넘어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처음에 딱 넘어지고 나서 , 나 리얼하게 잘 넘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점점 촬영을 반복하면서 마지막에는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효정이는 왜 여기에서 넘어져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가?(웃음) 무엇보다도 이렇게 넘어지면서 영화 찍고 집에 가서 씻고 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장성란: 사실적인 장면을 표현하기 위한 눈물 어린 사연을 들었습니다.(웃음) 노정의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은 건, 영화에 나오는 편지만 봐도 어머니가 되게 기구한 사연으로 병원에 계신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는데요. 누군가 옆에서 엄마 지금 아프셔서 병원에 계신 거 아냐?’라고 물어보면 정애는 자꾸 아니라고 부정을 하잖아요? 저게 어떤 마음일까 궁금했거든요. 배우님은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노정의: 조금이나마 나 자신을 방어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사춘기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평범한 가정의 딸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두 분 다 편찮으신데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쉽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장성란: 효정이가 진짜 아빠와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면, 현웅이 그때 그 순간에 효정의 전화를 받았다면. 효정이는 더 담대하게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보윤 배우님은 효정의 입장에서 한 번 상상해 보셨을 것 같아요.

 

김보윤: 제가 효정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저는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정애한테 나는 가서 아빠라고 부를 거야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어떻게 보면 나는 아빠 만나도 아무렇지 않아라고 일부러 과시를 하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았을 때, 정말 내가 아빠를 볼 자신이 있고 아빠라고 부를 자신이 있었다면 한 번쯤 더 전화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효정이는 한 번 전화해보고 나서 빠르게 포기를 하는 걸 보면, 아빠라고 못 불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성란: 그랬군요.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 정애와 정애의 아버지인 영호의 관계도 흥미로운데요. 사실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둘이 갈등도 빚잖아요? 삶에 관한 태도에 있어서 갈등을 겪는데도 깨지지 않는 끈끈함이 있는 부녀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정애에게 갈등과 고난을 짊어지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그렇게 그리신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정희재: 처음에 아버지 영호라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어요.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에서 가정을 꾸린 아버지의 모습은 대부분 폭력적이고 폭력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더라고요. 오히려 지금 와서는 그게 너무 흔하고 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런 설정에 가려져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이나 현실적인 갈등이 주목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딸에게 진심을 다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만 상황의 한계 때문에 딸인 정애 입장에서는 그게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혹은 조금 거부하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성란: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영화의 무늬로 고착화된, 인물들을 가혹하게 쓰는 지점들을 피하려는 노력이 이 영화에서 많이 보여서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면 때문에 인물 한 명 한 명을 더 들여다보게 되는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의 후반에 더 눈독 들여서 보게 된 게 현웅과 정애의 관계예요.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 미묘한 마음이 현웅을 바라보는 정애의 마음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두 분께서 어떻게 상의하고 만들어 내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정희재: 정의 배우가 기억할 지는 모르겠는데 실제 제가 겪었던 짧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어요. 고등학생 때 영화를 공부하고 싶고 꿈꾸고 있었는데 보수적인 아버지께서 반대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강원도에 여행을 가서 우연히 묵었던 민박집 사장님이 과거에 영화를 하셨던 분인 거예요. 그 분께 얘기했더니 영화 꼭 하라고 지지도 받고, 너무 친절하시니까 어린 마음에 잘 따랐는데요. 그러고 나서 5~6년 뒤 영화학교 졸업작품을 찍으러 그 민박집을 갔어요. 사실 단편영화든 독립영화든 촬영을 한다는 건 공간의 주인을 되게 괴롭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촬영을 하면서 차가운 눈빛도 느끼고.(웃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정애 배우는 아마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는데, 쉬운 예로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사실 부모를 대체할, 자신의 자아가 기대설 수 있는, 이렇게 심리적으로 접근하자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낯선 분이지만 저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것에 대한 기대로 혼자만의 착각으로 가까이 다가서려고 했을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노정의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빨리 이해할 수 있었고요. 그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정리했던 것은, 현웅은 정애가 생각했던 정상적인 아빠의 모습이고, 내가 저 아빠의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효정이의 아빠라는 생각이 한꺼번에 들면서 솔직히 욕심이 났을 것 같아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인데, 효정이 아빠이기 전에 내 아빠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런 작은 욕심과 친구와의 우정 사이를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장성란: 어렸을 때는 우리 엄마아빠도 완벽한 사람인 것 같고 멋있어 보이는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이 우리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우리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하잖아요? 저도 그런 순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났는데요. 누구나 느끼는 이런 미묘한 감정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니까 옛날에 서랍 넣었던 내 마음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엄청난 마음의 동요가 있더라고요. 그게 되게 이 영화 안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한 게, 현웅이 누가 봐도 멋있는 아저씨는 아니잖아요? 특히 정애 눈에만 인자한 아저씨고 자기 아들한테 괜찮은 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설정을 하셨어요?

 

정희재현웅이라는 캐릭터도 어떤 면에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에 있을 법하고 결핍이 있는 사람이어야 조금 더 입체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멋있는 면모도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고, 현웅이 겪는 결핍이 있어서 정애의 입장에서도 마음의 빈자리로 들어가고픈 욕망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박희순 배우와 대화를 나눌 때도 자기 자식과의 갈등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정애를 바라볼 때 단순히 호의를 베푸는 것 이상으로 더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장성란: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조마조마했던 순간 중에 하나가 정애가 마지막으로 현웅을 보면서 찾아가는 장면이었어요. 현웅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차가운 얼굴로 정애를 맞이하는 데, 먼저 정애가 제발 "아빠"라는 대사만은 하지 말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효정이가 이 장면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은 효정이가 자기가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친구에게 내어준 것인데, 우리의 정애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현웅에게 정애가 내 친구가 당신의 딸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가진 본심, 뜨거운 마음을 느꼈어요. 특히나 효정을 연기하신 김보윤 배우님께서 어떤 마음이었을 지 궁금해요.

 

김보윤: 효정에게 거짓말을 하는 정애의 심리에 대해 저희 엄마랑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순간 효정이가 정애에게 되게 고마워했을 것 같고, 조금 더 믿음이 갔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거짓말을 한 거잖아요? 전화번호를 지우기도 하고요. 그래도 효정이는 그걸 모르니까 정애에 대한 믿음이 아직 끈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장성란: 제가 이 영화를 정희재 감독님이랑 함께 영화를 공부하신 분들과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영화가 딱 희재 같이 나왔어.’ 캐릭터가 감독님처럼 곧고 바르고,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마음을 다해서 한다고요. 혹시 두 배우님도 영화 촬영하시면서 이 영화가 가진 곧고 바른 마음이 감독님이랑 닮았다는 마음이 든 적 있으셨나요?

 

노정의: 너무 똑같은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거짓말을 정말 못하세요.(웃음) 그래서 계속 마음에 드는데, 딱 한 번만. 진짜 딱 한 번만. 미안해.’ 이러시는 거예요. 한 번만 다시 찍자고 하시면 꼭 한 번만 찍고요. 다른 감독님들께서는 촬영하면서 사과를 잘 하시지는 않는데, 정희재 감독님께는 미안해라는 말을 한 백 번 이상은 듣지 않았나 싶어요거짓말하시지 않고 저희를 진심으로 대해 주셨고 그게 와닿았기 때문에 밤을 새도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보윤이와 힘들게 촬영했지만 감독님께서 진심으로 대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보윤: 정의가 다 이야기해줘서 저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요. 감독님한테는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가끔 감독님과 개그코드가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웃음) 이야기하면서 감독님이 , 이거 웃기지 않아?” 하실 때 저희는 그냥 , .”(웃음) 그렇지만 개그코드가 잘 맞지 않는데도 꾸준히 개그를 하시는 감독님의 곧은 마음이 잘 담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성란: 개그코드가 맞으면 천생연분인 거죠. 맞기 진짜 어려운 거예요.(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노정의 배우님이 연기하신 정애가 참 바르고 곧은 아이라는 게 눈빛에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요?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차분하게 노력하는 단단한 소녀의 눈빛에서 잘 드러난 것 같아요.

 

노정의: 그렇게 보였다면 너무 다행이고요. 감독님께서 영화를 찍기 전부터 부탁하신, 제일 중요한 부분이 그 부분이었어요. 아무리 슬퍼도 남들 앞에서 울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티내지 않고 이겨내려는 정애의 모습을 위해서 연기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거나 감정이 차오른다 싶으면 감독님께서 조금만 추슬러 달라고 부탁하시거나 호흡으로 나타내보자고 계속 디렉션을 주셔서 더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장성란: 이 영화의 결말에서 우리의 정애한테 저만큼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다면 너무 슬퍼서 제대로 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이런 결말이 너무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결말을 두고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정희재: 시나리오 단계부터 촬영하고 편집을 마무리하고 심지어 개봉을 앞둔 시점까지도 결말을 다르게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현실적으로 이 아이가 돌아서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어요. 농담이 아니고 정의 배우를 다시 불러서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라는 분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힘겨운 현실의 해결점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문제기 해결되기는 어려울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를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된 이야기예요. 물질적인 어려움도 해결될 수 없고 든든한 보호자가 생기기도 어려운데, 앞으로 비슷한, 더 심한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이 아이가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희망적인 결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저도 모험을 하면서 그려 나갔던 것 같아요.

 

장성란: 효정이가 마지막에 이야기해주잖아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인사로 별거 없어도 포기하지 말라고요. 그 순간 아마 여러분들 모두 각자 포기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떠올리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가 그런 응원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조건들 사이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찍으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영화를 찍은 이후에도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기도 한데요.

 

노정의: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한 일 년 반 정도 연기를 쉬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제일 행복한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욕심이 많기 때문에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고 연기도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8살 때부터 연기를 했는데도 공부도 하고 싶어서 예술고가 아닌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요즘 쓰는 말로 현타가 오는 거예요.(웃음) 다들 공부를 너무 잘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동안 나는 뭘 했나 싶고. 나는 그동안 연기를 했는데 지금은 연기도 쉬고 있으니 슬럼프가 왔어요. 그럴 때에 이 영화를 하게 되면서 감독님께 많은 이야기도 듣고 조언도 많이 들으면서 , 나는 연기 아니면 안 되겠구나.’, 그런 결론을 얻었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보윤정의가 저런 생각을 할 때 저는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항상 후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포기해서 아쉬운지에 대한 생각 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포기했는데 그걸 후회했는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도 제가 포기해서 아쉬웠던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장성란: 두 분 모두 너무 멋있네요. , 이제 감독님의 차례가 왔습니다.

 

정희재: 저는 시작하면서도 말씀드렸지만,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가지고 이 시나리오를 열심히 썼는데요. 시간이 지나서 그런건지 그 말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더라고요. 처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나는 시도하고 싶은데 왜 포기하라고 하는지 단순한 분노 같은 게 있었는데, 지금 와서는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너무 애쓰면서 무언가를 무리해서 극복하려고 하는 것 또한 마냥 좋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무언가를 극복하고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그런 부분이랑 연결될 때는 안 좋은 의미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를 만들고 나서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말의 의미를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장성란: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산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일인데 그에 대해 이 영화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어린 나이에 정말 아름다운, 누구보다 성숙한 결과물을 남기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일단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영화 만들어 주신 감독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훌륭한 말씀해주신 배우님들과 기자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내내 울면서 영화를 봤어요. 사실 정애와 효정이가 저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되게 중요한 키워드잖아요? 감독님께서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짐하게 되는 것이 있는지 알려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정희재: 제가 개인적으로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요. 20대 초반에는 여행을 가면 최대한 많이 보려고 무리하면서 다녔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공간에 들어서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충분히 소통하고 즐기고 관찰하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포기라는 단어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서른이 되기 직전 저는 모든 걸 시도하고 싶고 포기라는 것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스스로가 소진되지 않는 선에서 주변사람들과 작업을 즐기면서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오래갈 수 있는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포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감독님하고 배우님들께 질문이 있는데요. 효정이가 아빠를 찾으면서 아빠한테 자기하고 똑같은 나이의 애가 있으면 어떡하냐고 하는데 오히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있잖아요? 그런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하고요. 노정의 배우님께는 정애라는 캐릭터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보신 게 있다면 여쭤보고 싶어요. 그리고 효정 역을 맡은 김보윤 배우님께는 만약에 아빠가 정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면 어떻게 반응을 했을 것 같은 지 궁금합니다.

 

장성란: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마치 속편을 만들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네요.(웃음)

 

정희재: 박희순 선배님과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조금 안타깝지만 현웅은 효정이라는 자신의 딸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고요. 그리고 대사에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 가족과 떨어져서 근무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설정이 있었어요. 다루기 조심스럽지만 아주 특수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단지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부분까지 책임지고 회피하지 않을 것이냐는 이야기를 적게나마 이야기해보고 싶었고요.

 

노정의: 제가 바라는 건, 정애라면 아무리 언니에게 실망을 했어도 엄마를 책임지기 위해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 것 같고요. 그리고 온전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할 것 같습니다.

 

김보윤: 아까 제가 효정이라면 현웅을 만나서 아빠라고 못 부를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드렸잖아요? 효정이가 겉으로 보기엔 밝은데 속으로는 사람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 부분이 부동산 아저씨랑 같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3시간을 같이 있었는데도 아무 말도 못했다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었어요. 그런 걸 보면 효정이는 아빠를 만났어도 아무런 수확이 없이 돌아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객: 저는 지인이 영화를 추천해줘서 보러왔는데 정말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애가 어린 시절에 대한 꿈을 꾸는데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하는 듯 하다가 다시 물에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부분이 궁금합니다.

 

정희재: 제가 아까 저의 본성을 알아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살면서 느끼는 한계가 제가 앞으로 느끼게 될 한계와 어쩔 수 없이 닮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경제적인 여건도 비슷하고 가족관계나 인맥도 비슷하기 때문에요. 김학선 배우님과 그 계곡 장면을 찍을 때 얘기했던 부분은 자살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호의 입장에서는 물이 어느 정도 깊이인지 한 번 들어가보면서 자기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리적으로 체험해보는 기이한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이 부녀에 관련한 이야기에서 어떤 또 다른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의도가 있었습니다.

 


관객: 우선 영화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이나 사회의 주변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소녀에게 불행을 씌우는 느낌을 받았는데 감독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상황을 설정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희재: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설득력을 갖게 되고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 다른 측면은 포기라는 화두를 이야기할 때 한계 상황을 마주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관계나 사건이 단초가 되지만 그 연장선의 극한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상상하면서 끌어당겨온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예를 들어 집이 불타는 부분은 제가 어린 시절부터 전월세를 오가면서 거주공간에 대한 불안이 항상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영화에서 물리적으로 구현된 것이기도 해요. 집이 안정적이지 않은 걸 넘어서 아예 사라진다면 나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고 어디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그런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설정으로 접근하게 됐고요. 그런 식으로 많은 설정들이 한계 상황을 설정하려는 의도와 만나 정도가 세진 부분도 있어요.

 

장성란: 제가 말하는 게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최근에 영화를 볼 때 어떤 인물이 겪는 고난을 영화가 어떤 태도로 그리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주인공이 겪는 고난을 하나의 장르로 소비하고, 영화 안에서 인물이 겪는 고통이나 그것을 헤쳐 나가는 마음을 고민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쓰는 영화들이 있고요. 고난을 통해서 인물의 어떤 마음을 비춰서 보여줄지, 고통을 보여줌으로 인해 관객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마음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요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모든 영화들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 영화만큼은 두 소녀들이 겪는 고난만큼이나 그걸 잘 극복하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삶의 찬란한 용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고, 용기내서 이 영화를 더 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이 영화의 태도에 대해서 곱씹는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아마 앞으로 다른 영화들을 보거나 이 영화와 맞닿는 어떤 순간들을 마주할 때 이 영화의 태도나 가치가 다시 한 번 증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고요. 끝으로 세 분의 마지막 인사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희재: 개봉하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이후 관객분들과 만나는 첫 자리예요. 앞으로도 많은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고 얘기 나눌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웃음) 안 좋게 보신 부분도 있겠지만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요. 영화에 나오는 배우분들, 그리고 영화에 함께 해준 스태프분들께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리곘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정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저희 영화 입소문 많이 내주시고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심히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김보윤: 영화 개봉하고 나서 습관적으로 히치하이크쳐서 관객 수를 보는데요.(웃음) 참 씁쓸하게도 잘 안 올라가더라고요. 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힘들 것 같은데 저희 영화 두 번 보면 더 좋고 세 번 보면 더 좋으니까요. 또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오늘 눈 온다고 하니까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

장성란: 이 영화의 소중한 관객 한 분 한 분이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 같이 일어나서 인사하는 걸로 마무리할까요? 감사합니다. (박수)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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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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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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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값진 상영회!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투표로 선정해주세요.

지난해에 아쉽게 놓친 작품이 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 말고 투표해주세요:-)


자, 2019년 5월의 '인디돌잔치'의 영광은 어떤 작품에게 돌아갈까요?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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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작

① 해원 (감독 구자환 | 2018년 5월 10일 개봉)

② 5.18 힌츠페터 스토리 (감독 장영주 | 2018년 5월 17일 개봉)

③ 서산개척단 (감독 이조훈 | 2018년 5월 24일 개봉)

④ 오목소녀 (감독 백승화 | 2018년 5월 24일 개봉)

⑤ 홈 (감독 김종우 | 2018년 5월 30일 개봉)


● 투표기간: - 5월 12일(일)

● 상영일정: 5월 28일(화) 저녁 

(관람료: 8,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 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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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호텔>에서 펼쳐지는 기묘한 모든 것에 대해  <강변호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25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배우 기주봉, 신석호

진행 남다은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강변에 있는 공허한 어느 호텔에서 펼쳐지는 <강변호텔>상실의 감정을 가진 두 인물을 따라 흘러간다. 두 인물의 이야기는 공허한 공간을 오가고, 그 사이에서 홍상수 감독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홍상수 감독이기에 던질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의 시작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한다. 본인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사유하고 객관화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만들기는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관객들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해당 인디토크를 통해 <강변호텔>에서 펼쳐지는 홍상수 감독의 이야기에 대해 소개한다.

 




남다은 평론가(이하 남다은): 인사말씀 먼저 듣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주봉 배우(이하 기주봉): 비도 오는데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배우 기주봉입니다.

 

신석호 배우(이하 신석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영화 후반부에 시 속에 등장했던 소년 역할 맡은 신석호입니다.

 


남다은: <강변호텔>은 홍상수 감독님의 23번째 작품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오늘 홍상수 감독님의 처음 영화를 접하시는 분들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매우 이례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본 날 큰 충격을 받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차차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이 이렇게 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라는 감독님의 데뷔작에 죽음이 굉장히 끔찍한 사건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죽음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번 <강변호텔>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주봉 배우님께서 이번 영화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십니다. 저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같이 작업한 배우분들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 지가 항상 궁금했거든요. 두 분께서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 지 궁금합니다.

 

기주봉: 늘 그렇듯 현장에 가면 대본 받고 그에 따른 연기를 하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감독님이 저희 집까지 오셔서 사는 모습도 다 보시고 방에 와서 이야기도 나누시기에 나한테 이제 좀 관심을 가지시나 생각했어요(웃음). 처음부터 주인공인지도 몰랐고 현장에 가서 항상 늘 하듯이 연기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는데 계속 나오는 바람에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강변호텔>을 처음 봤을 때가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였는데, 8천 명 정도의 관객들하고 다 같이 봐서 관객들의 많은 호응에 기분이 매우 들떴던 것 같아요. 한국에 두세 번 다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요.

 

신석호: 사실 저는 배우보다는 스태프 역할을 더 크게 맡았던 사람으로서처음 로케이션을 알아볼 때 본 이 호텔과 영화에 등장하는 호텔이 굉장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희끼리 재미로 하는 이야기인데, 이 장소에서 어떤 배우가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예측을 했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고 늘 그렇듯 예상을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영화가 주는 느낌이 다른데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결론짓자면 <강변호텔>은 저한테는 포근한 느낌이었어요. 현장에서는 날씨도 춥고 몸도 아파서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평화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다은: 홍상수 감독님이 기주봉 배우님을 찾아가셔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 게 이 영화 안에 많이 투영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홍상수 감독님이 아버지 생각도 했고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기주봉 배우님께서도 그날을 기억하실 텐데, 그날 어떤 기운들이 오고 갔는지가 궁금합니다.

 

기주봉작년에 <풀잎들>(2017)을 찍을 때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웠는데 그때 감독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고, 아직까지도 그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때 두 번째로 <강변호텔>이라는 작품이 찾아왔어요. 작은 역할을 언제든지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감독과 배우의 관계인데도 집에까지 찾아와주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그 고마움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남다은: 신석호 배우님은 홍상수 감독님과의 작업을 연출부로 시작하셨잖아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부터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연출부로 들어가서 첫 현장에 갔을 때 감독님의 작업 방식이나 배우들의 연기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신기하고 색다르셨을 것 같은데 첫 기억이 궁금합니다.

 

신석호홍상수 감독님하고는 교수님과 학생이라는 인연을 통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때 감독님 수업에서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혹시 사무실로 한번 올 수 있냐는 연락이 왔어요. 가보니 작업을 한번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좋은 기회이기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현장을 나가기 전 들은 바로는 시나리오가 당일 나오고 스태프 규모가 작다고 했는데, 정말로 학생 영화보다 스케일이 작았고 그날그날 나오는 대본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일 나온 대본을 보며 스태프분들과 배우분들이 준비를 하시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배우 분들이 연기하시는 것을 보면서 혹시 미리 대본을 줬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나하나 다 충격이었고 신기했습니다.

 

남다은: 당일 나오는 대본을 보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하셨는데, <풀잎들>에서 김민희 배우 남동생 역할로 나오잖아요. 풀잎들에서도 비중이 적은 역할은 아니었는데 연기를 준비하시는데 어떠셨나요?

 

신석호: 작업을 하면서 홍상수 감독님이 기회가 되면 출연을 해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항상 불발이 되니까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어요. 불발이 되는데 면역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풀잎들>에서 진짜 대본을 받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담을 가지고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요(웃음).

 




남다은: <강변호텔>의 여러 장면들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설마 아닐 것이다, 심지어는 이게 꿈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죽음이라는 사건이 감독님 영화에 언젠가는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죠. 해당 장면을 촬영했을 때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그 죽음에 대한 힌트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촬영 당일에 알게 되셨나요?

 

기주봉죽음에 대한 힌트는 미리 받지 않고 당일에 들었습니다. ‘죽어야 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홍상수 감독님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기승전결 연결이 너무 선명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극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 또한 감독님의 스타일과는 다른 것 같아서요. 순간적으로 난감했죠. 그래도 작품이라는 건 감독과의 호흡이니까 왜 이렇게 죽어야만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남다은: 죽음을 바라보는 두 아들, 유준상 배우님과 권해효 배우님께서 울부짖듯이 우는 연기를 하시기 때문에 대본을 보시고 더 의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장작을 패면서 나레이션 나오는 장면 같은 경우는 어떻게 만들어진 장면인지 궁금해요.

 

기주봉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감독님께 여기서 장작을 패는 것이 어떨까라고 제안했던 것 같아요. 홍상수 감독님 작품을 촬영하면 역할과 그때그때의 상황에 연구를 하다 보니까, 무료하게 강변호텔에 살고 있다 보면 이 인물이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며 장작도 패고 산책도 하며 나름대로의 적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보이는 것에 충실하고 부딪혀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다은: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 현장이 부러워지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순간 이 장면이 영화에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모를 때인 것 같아요.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장면이 영화의 어디에 들어가서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데, 그 어떤 영화보다 장면이 어울려서 마치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가장 아름답고 슬픈데 잔혹한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기주봉 배우님께서 시를 낭독하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에서 감독님이 기주봉 배우님께 어떠한 디렉팅을 주셨는지, 그리고 그 장면을 연기하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급합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께서는 배우의 느낌을 영화에 가져오셔서 작업을 하시는데, <강변호텔>에 나오는 소년이 굉장히 우울하고 어둡고 슬프잖아요. 신석호 배우님께서는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셨고 또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기주봉시를 두 여자분 앞에서 읽는 장면을 찍을 때는 진짜 술을 마셨었고 술에 취해 있었어요. 실제로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찍었고요.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연기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 죽음에 대해 예감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 흘러가지 않고 매듭을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영화 끝에 가서 죽게 되고요.

 

신석호홍상수 감독님 수업의 일환인데, 감독님께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물어보세요. 작업을 하기 전에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고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 이야기한 부분을 크게 보셨던 것 같아요. 제가 홍상수 감독님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전달해드렸던 것 같아요. <강변호텔> 속 캐릭터를 그리실 때 이런 저의 모습을 많이 생각하셨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주유소 씬을 촬영할 때 마지막 날 촬영이었고 밤샘 촬영이었어요. 식당씬이 다 끝나고 새벽 4,5시쯤 촬영하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죠. 그때 감독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말 하려고 할 필요 없고 지금 힘든 것을 그대로 표현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주유소에서 걸어가는 장면은 행동 하나하나 다 디렉션을 주셨어요. 감독님께서 배우들과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으시면서 영화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캐치 해주시는 것 같아요.


남다은주유소 장면이 굉장히 묘한 게 기주봉 배우님께서 시를 읽고, 주유소 장면이 나오고 죽게 되는데, 굉장히 슬픈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아들은 권해효 배우, 유준상 배우, 즉 경수와 병수지만 완전히 고립된 두 남자(시인과 소년)가 마치 부자처럼 느껴졌습니다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강변호텔이죠. 이 공간이 특이한 게 영화 속 인물 모두가 저 호텔 안에 있는데 분리되어 있고 공간 전체가 조망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두가 어딘가로 들어가 있어 연결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이 서로 반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호텔에서 숙박을 하시면서 찍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공간의 느낌이 어땠나요?

 

기주봉변두리에 있는 호텔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지 않으면 누가 있는지 모르는 분리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변호텔>을 찍으면서 감독님하고 눈하고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호텔 밖 촬영을 할 때 분명 휑한 공간에 잔디만 있었는데 그 다음날 눈이 쌓여버리니까 그 공간이 묘하게 변하더라고요. 순간순간 지나고 보니까 작업을 하면서 묘한 현상이 생기는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남다은: 신석호 배우님께서는 연기를 하면서 연출부 역할도 하셨잖아요. 눈이 오면 그 상황에 맞춰서 눈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는 이 작업이 영화를 찍는 과정 안에서는 힘들겠지만 기적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신석호많은 분들이 느끼고 계시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눈이 갖는 영향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촬영을 하다가 밤에 눈이 오면 스태프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내일 시나리오는 잠깐 사이에 눈이 왔다로 시작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웃음). 감독님 영화 안에서 눈이라는 소재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휘몰아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남다은영화 속에서 눈 속에서 두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인의 장면이 굉장히 아름다웠는데 눈이 없었다면 더 처참한 느낌이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이라는 소재가 영화 속 기주봉 배우님께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강변호텔>에서 시인이 아들 둘과 술을 먹는 장면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는데요.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미묘한 지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대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고 많은 준비를 해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찍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신석호 배우님께서 이 장면을 스태프의 입장에서 지켜보셨을 텐데 어떻게 바라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기주봉제가 나이가 있고 대사 외우는데 어려움이 있어 대사를 한 번에 쭉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었어요. 그럴 땐 감독님께서 배려를 해주셨어요. 이 장면에서는 끊어서 가자고 해주시고, 컷을 한 뒤 다음 대사를 이어서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영화와 인물에 집중해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려도 안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굉장히 민감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석호: 배우분들이 그날의 대본을 받으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기운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대본보고 계실 때 말 걸거나 여쭤보는 것도 조심스럽죠. 근데 리허설 겸 첫 테이크 들어가면 무엇 하나 맞춰본 것이 없는데 튀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다들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고 계시는데, 누구 하나 방해하는 선을 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배우분들의 그런 연기를 보면서 엄청난 내공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다은작은 궁금증이 있어 질문 드립니다. 권해효 배우님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두 여성 캐릭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주봉 배우님께서는 상희와 연주라는, 송선미 배우와 김민희 배우의 캐릭터 이야기를 얼마나 알고 계셨나요?

 

기주봉제가 만나는 장면만 알고 두 분의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남다은서로의 이야기를 전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이야기를 가진 영화가 이렇게 잘 붙어서 나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기주봉 배우님께서 <강변호텔>에서 연기를 하셨을 때 홍상수 감독님의 디렉션이 많지 않았다고 해주신 것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서 작업할 때의 공간과 다른 작품에서 작품 할 때 연기하는 공간의 차이가 기주봉 배우님께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 안에서 어찌 보면 자유롭게 연기를 함으로써 해방감이 있는지, 즐거움이 있는지 혹은 어떠한 다른 감정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기주봉연극 같은 경우 극본을 분석하고 캐릭터 구축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다른 영화 작품 같은 경우도 이 영화 속 인물이 어떠한 인물인지 준비하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홍상수 감독님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작업 방식이 저한테는 나름대로의 호기심, 즐거움을 주죠. 다른 영화 작업 같은 경우는 슛 들어가기 전에 잡담 나누다가 슛 들어가면 찍고 그러는데 홍상수 감독님 영화 같은 경우는 영화를 찍는 내내 그 상황에 맞춰서 머리가 돌아가니까 온전히 영화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 영화는 영화를 찍는 하루 종일 그 상황과 인물 속에서 살아야 하는 두근거림과 염려 모든 게 섞여있어서, 이 상태가 가장 창조적인 상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다은: 마무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앞으로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 계속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이 있으실까요?

 

기주봉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어떤 영화든지 내가 필요한 곳에서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신석호저 또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요, 기회가 있다면 더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화 보러 오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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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상처받은 개인들의 이야기  <파도치는 땅>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11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태규 감독배우 박정학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개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과 세월호 참사. 구체적인 이름은 다르지만 국가로부터 희생된 무수한 개인들을 낳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희생자들은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뉴스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그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를 해체한다. 하지만 파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친다. 이 땅 위에서. 되물림되는 상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파도의 소리에, 이제 귀를 기울여 보자.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입니다.

 

임태규 감독(이하 임태규): 안녕하세요, <파도치는 땅>을 연출한 감독 임태규입니다.

 

박정학 배우(이하 박정학): 안녕하세요, 문성 역을 연기한 배우 박정학입니다.

 


이은선: 박정학 배우님 마이크 잡으시자마자 굉장히 환해지는 한 줄이 있었거든요. 흐뭇한 얼굴로 다들 보고 계신데요. 바쁘신 와중에도 촬영팀과 동료들과 함께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단 영화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파도치는 땅>이라는 제목을 언제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궁금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임태규 감독님의 전작이 <폭력의 씨앗>이거든요. 다른 제목을 고민하다 도저히 안 돼서 그 제목을 쓴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제목은 조금 직설적인 느낌이 있는데, <파도치는 땅>은 시적인 느낌이 있는 제목인 것 같아요.

 

임태규: 있어보이잖아요.

 

이은선: , 확실히 있어보여요. 단번에 떠올린 제목인가요?

 

임태규전작의 제목이 개인적으로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이긴 했어요. 좀 직접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고심을 했어요. 그때는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정해둔 가제를 바꾼 건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제목을 미리 정해 놨어요. 제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심상이 이 제목과 잘 맞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시나리오를 쓰며 혼자 군산에 장소들을 보러 다녔어요. 군산 새만금 방조제에 갔는데,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이상한 콘크리트가 바다를 양분하고 있더라고요. 그 장소는 과거에 어업에 종사하신 분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장소가 변해왔을 텐데 지금은 황폐한 느낌의 이상한 구조물로 되어 있잖아요. 시간들이 느껴지더라고요. 거기 한참 앉아있었는데, 겨울이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때 제가 들었던 파도 소리가 언젠지는 모를 다른 시간에 다른 이들이 들었던 파도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장소는 변했지만 파도는 계속 쳤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 제목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이번에는 뚜렷한 공간성이 있어서 그런지, 이미지들로 많이 접근이 된 것 같아요. 포스터에 보시면 헤드라인이 있어요. ‘일렁이는 상처의 소리.’ 이것도 감독님이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임태규: 제가 보낸 카피를 홍보사에서 괜찮다고 해주셔서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하고 소리로부터 시작한 영화이기 때문에 저는 좋았죠. 상처를 보는 것보다는 듣는 느낌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보통은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잘 묻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간결하게 쓰여 있을 터인데 전체적인 영화의 이미지나 심상을 떠올리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배우님께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박정학: 처음에 시나리오는 안 들어오고 감독님이 쓰신 편지를 먼저 읽었어요. A4용지에 편지를 길게 써서 보냈더라고요. 진정성을 느껴서 시나리오를 보게 됐는데 시나리오는 별로 와닿진 않았고요.(웃음) 사실은 저희 영화가 좀 무겁죠. 이게 대본을 가지고 찍은 영화가 아니에요. 첫 씬부터 배우와 감독이 상황을 만들어가고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할까, 이런 부분들이요. 가장 좋았던 건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에요.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기본적인 토대는 있지만 시나리오 없이 작업하면서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죠. 테이크 열 번을 가도 대사가 다 달랐어요. 첫날 촬영하는데 감독님이 선배님, 연기하지 마십시오.” 이러더라고요. 2~3일 지나면서 적응이 됐어요.

 

이은선: 배우분께서 무대에서의 경험도 많고 현장에서 바로 호흡하는 식의 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믿고 가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박정학 배우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도였을 것 같기도 하고요.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주인공의 모습이에요. 평범한 아파트 같은데, 카메라가 돌면 서울의 랜드마크인 잠실 롯데타워가 보여요. 이 영화는 군산이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한 영화인데, 잠실이라는 또 다른 공간성을 주면서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잠실이라는 공간에서 평소에 어떤 인상을 받으세요?

 

임태규: 아까 말씀드렸던 새만금 방조제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한 욕망이라든가, 저게 꼭 있어야만 할까이러한 생각들? 그런데 주인공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과장하자면 삶의 이유일 수도 있거든요. 그것이 보잘것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이며 사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잠실의 롯데타워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후반부에 나오는 불꽃놀이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즐기고 있다고 하는데, 그 순간에는 행복하겠지만 늘 그렇게 행복하진 않을 거잖아요. 그것도 가짜 같다는 생각? 그런 속성들을 영화에 사용하면 의미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영화에는 현 시대가 담길 수밖에 없잖아요. 이 영화를 몇 년 전에만 찍었어도 롯데타워는 담길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 롯데타워를 찍었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상징이 있는 것이고, 그걸 활용하는 감독이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풍경들이 영화에서 남달리 보이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우리가 문성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되는 점이 사실 많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국가폭력 피해자의 가정에서 자랐을 것이고, 어떤 이유로 학원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잘 안 되는 것 같고, 잠실 부근에 살고 있든지 그곳에 자주 가는 사람인 것 같고, 아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고. 이 정도로 이 인물을 짐작할 수 있는데, 조금 더 많은 전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왜 하필 학원을 운영하는지, 아내와의 관계는 어떤지, 이런 것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이 배우에게 어떤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을지, 혹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박정학: 사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국가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런 경험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문성도 그런 역할이었죠. 아버지와 나와 아들, 그 삼대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들이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고 치유해가느냐에 대한 영화인 것 같아요. 가정이 편안해지면 사회도 좋아지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봤고요.(웃음)

 

임태규: 캠페인 같은데요.

 

이은선: 문성이라는 인물에게 숨겨진 전사는요?

 

임태규: 글에는 어느 정도 있었어요. 저에게도 여러 가지의 버전이 있었죠. 이를테면 문성은 고등학교 때쯤 아버지와 절연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꾸 안기부에서 찾아오고, 연좌제라는 것이 있어서 자기 인생에서 걸림돌이 되니까 아버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겠죠. 아마 군산을 떠나 서울, 혹은 수도권 어딘가에 삶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을 것이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분들은 과거 연좌제 때문에 선생님은 물론이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잖아요. 그게 결핍으로 작용하면서 대신해서 하고 싶었던 게 학원 사업이 아니었을까 싶었고요. 경제적인 큰 이득이 자신에게 보상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이 모두 영화에서 설명되지 않은 것은 약간 사족 같은 느낌도 있고, 또 하나로 규정하기 시작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열어두는 것이 제가 영화를 만나는 방식이고, 더 윤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부재하잖아요. 저는 GV마다 그에 대한 질문을 받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그 질문이 한 번도 없었어요. 문성이란 사람은 보수적인 의미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일 테고, 그게 그 사람의 결핍 중 하나가 되었겠죠. 그 결핍이 작용해서 가족 체제에 더 목을 매는 인물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가정생활이 더 안 좋아지게 되잖아요. 아마 미국에 보내놓고 이혼했을 수도 있고, 별거 중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은선: 저는 문성과 아들 도진의 관계가 흥미롭더라고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의 상황들을 반대하는 것 같기는 한데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느낌은 없잖아요. 폭력적인 묘사긴 하지만 때려서라도 말린다거나, 그 여자와 애를 못 만나게 한다거나, 이런 행동을 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박정학 배우님이 아들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데면데면하고 어려워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느낌이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박정학 제 생각에 문성은 살면서 아버지에게 느낀 섭섭함과 원망 등이 있었을 테고 내 아들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을 것 같아요. 내 아들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 같고. 모든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렇듯이 말은 잘 못하고 데면데면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들이 자신과 너무 닮아 있잖아요. 아버지를 대하는 방법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래서 더욱 본인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은선관객 분들은 영화를 보셨을 때 카메라의 위치가 궁금하지 않았나요? 카메라가 늘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처박혀있는 등 프레임을 가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어떤 인물의 얼굴은 과감하게 잘려서 볼 수 없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아예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고정된 상태로 굉장히 불안정한 화면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카메라가 갑자기 패닝을 하는 장면이 세 번 정도 있었는데, 그게 전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가 처음 움직이는 순간은 병실에 누워있는 문성의 아버지에서 문성의 모습으로 옮겨갈 때, 두번째는 부자가 목포의 높은 어딘가에 가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마지막으로 부자가 호텔에 들어갔을 때 방 풍경을 비출 때예요. 카메라의 위치를 어떻게 고민하셨을지 궁금해요. 고정했던 카메라가 움직이는 데는 분명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 같은데.

 

임태규왜 고정된 카메라로 찍었는지 많이들 물어보세요. 전작은 백 퍼센트 핸드헬드로 찍었잖아요. 움직임이 많은 카메라 워킹을 사용하다가 왜 갑자기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시는데, 그것의 답은 명쾌하게 방금 기자님이 말씀하셨듯이 몇 번의 움직임들을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고정된 카메라를 썼어요. 두 사람의 관계를 가로지르는 듯한 이상한 패닝이죠. 영화에서 잘 쓰지 않는, 카메라가 느껴지는 정도로 굉장히 느린 패닝이잖아요. 특히 목포라는 공간에 대해서 문성과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그 공간에서 마치 시대를 가로지르고 세대가 바뀌는 듯한 패닝을 사용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전략이 있었던 야심한 패닝이었죠.

 

이은선야심찬 세 번의 패닝이었군요. 박정학 배우님은 카메라의 위치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인물이 운전할 때 보조석의 아래에서 위로 인물을 찍거나, 이런 식으로 잘 쓰지 않는 희한한 각도들이 많았잖아요. 그리고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배우들만 계속 움직이게 하는 카메라 작법이 배우에게 자유로움을 주었을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주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박정학: 두 가지 다 느껴졌어요. 어느 순간에는 카메라가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불편해지기도 했죠. 갑자기 엉덩이만 나오기도 하고특이한 감독을 만났구나 싶었죠. 결과적으로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감독의 의도와 생각이 있었을 테니 현장에서는 최대한 맞춰서 따라가야겠다 싶어서 최선을 다했죠.

 

이은선문성이 군산으로 가서 은혜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를 고발했던 선장의 손녀로 등장하잖아요. 어쩌면 가장 불편한 관계죠. 그 집안 때문에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이 은혜라는 여성의 생활을 돌봐주었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두 집안이죠. 이런 관계들은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임태규: 아버지를 보러가는 서사의 영화로 출발을 했는데, 그 아버지를 만났을 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자신도 숨겨놓았던 상처를 훅 불러오는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인물이 조금 미스터리하고 한 번에 확 캐치가 안 되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마 문성은 그 여인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고 보고 싶지도 않았을 테고 배의 이름도 듣기 싫었을 텐데,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툭툭 내뱉는 알 수 없는 젊은 여자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그것은 복잡다단하고 한 마디로 형언할 수 없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이은선: 문성의 표정이 별로 변화하지 않잖아요. 또 원래 박정학 배우가 가진 얼굴 자체가 좀 서늘한 느낌이 있다 보니, 무표정으로 있으면 저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더라고요. 이를테면 문성이 극강의 무표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다른 국가폭력의 사례를 들을 때거든요. 군산 내려갈 때 차 안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40년 전의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누명을 벗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도 아주 무표정해요. 더 직접적인 장면은 호텔에서 세월호 미수습자 추모식에 대한 뉴스를 볼 때도 오른쪽 구석에서 굉장히 무표정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떠한 반응도 없이 무미건조한 표정이어야 한다는 합의가 혹시 현장에서 있었나요? 아무런 표정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거든요.

 

박정학: 그런 이야기는 없었지만, 아까 말했듯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것들에서는 좀 빠져나와있고 싶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뉴스가 나올 때도 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분들 참 답답하겠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좀 다른 부분일 것 같았어요.

 




이은선그 장면들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 사람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에요. 채널을 돌리거나 볼륨을 줄이거나 텔레비전을 끄는 등의 액션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흥미로웠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임태규: 두 가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첫 번째로 뉴스가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일단 아버지가 임종을 하셨고 아들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런 개인적인 생각을 하며 텔레비전은 아무거나 틀어놓고 딴 생각하는 정도의 순간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과는 또 다르게 그 뉴스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거대한 사건이니까 문성도 역시나 보긴 보겠으나,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을 두지 않았을까 해요. 그 두 가지 생각이 나란히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 정도의 구도와 거리감이 제가 실제로 어떤 사건을 대하는 거리감인 것 같아요. 우리도 분명 애도하고 슬퍼하지만, 늘 그것을 애도하며 살아가진 않잖아요. 딱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사건들을 대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장면에서 뉴스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인다든가 감정을 표현하는 건 딱 그 정도가 적절했다고 생각해요.

 

이은선: 방금 말했듯, 다른 국가폭력에 대한 문성의 반응은 늘 무언가 하나를 끼고 가는 방식으로 보여주는데, 저는 얼마간 당혹스러웠던 이유가 앞에서는 은유하고 돌려 말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후반부에 갑자기 너무 직접적인 것들을 쏟아내요. 자료화면들도 등장하고 더 직접적인 것은 문성의 아버지가 잠든 아들의 침대 옆에 앉아서 너무 억울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봐요. 이건 엄청난 직설화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영화가 앞에서 보여준 톤을 전부 깨버리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과감한 시도이자 한편으로는 위험한 시도죠. 그렇게까지 후반부에 직설화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뭐예요?

 

임태규: 그건 아마 뉴스 장면을 찍으면서 바뀐 것 같아요. 시나리오 단계서부터 고민을 엄청 많이 해서 찍은 장면이기도 하고. 간단히 말씀드리면 은유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 영화가 톤이 바뀌면서 자료화면을 보여드리고, 스토리를 지금까지 따라오신 관객이라면 직접적인 화면을 보셨을 때 느끼는 어떤 영화적인 감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은선: 마지막 장면을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내잖아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직설적인 방식이죠. 그 다음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레이어가 은근히 복잡해요. 아이가 하필이면 배를 만들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 그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라는 복잡한 레이어로 마지막 장면이 구성되어 있어요. 아까 박정학 배우님이 말씀하신 걸 들으면 그날그날 현장에서 뭔가가 반영되고 수정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 엔딩은 처음부터 지정된 엔딩인가요?

 

임태규엔딩을 완전히 정하진 못했어요. 이 영화를 열어두고 찍은 이유도 엔딩을 확실히 정하지 못해서이기도 해요. 그런데 아이와 배가 나오는 건 확실히 제 머릿속에 있었고, 그 아이가 도진과 문성 사이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갈지, 거기서 뭘 할지에 대한 디테일은 정하지 않았고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촬영 이틀 전에 디테일을 정했죠. 아이가 병원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아이가 만약 없었다면 그렇게 길게 찍을 수 없는 장면이에요. 아이가 없었다면 어른들이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대화를 나누거나 화를 내거나 어떤 액션과 리액션이 오고 갔을 텐데 아이가 있기 때문에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아이가 존재함으로써 그 상황이 바뀌고 아이가 상황을 이끌어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존재만으로 그냥 희망적인 것이 있다고 할까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이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받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아주 중요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 쪽으로 카메라가 다가가고 그것을 바라보는 문성의 얼굴로 끝나는 결말을 기획 단계부터 생각한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질문이 두 가지 있는데요. 한 가지는 이 영화가 어부 간첩조작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잖아요. 어떻게 이 사건에 주목해서 영화를 찍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두 번째로는 저도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 깊었는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참 복잡하면서도 미묘해서 배우 분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해요.

 

임태규: 2017년에 <폭력의 씨앗> 편집할 때쯤에 한겨레에서 이 사건에 대해 특집 기사로 다뤘었어요. 50년만의 재심에서 간첩 누명을 벗고 무죄 판결을 받으신 분들에 대해 많은 분량의 좋은 기사가 났어요. 납북어부 간첩조작이라는 사건이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디테일하게 찾아본 적은 없었는데, 주간지 표지에 나온 그 분의 얼굴이 참 와닿았어요. 법원 앞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직후에 변호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울먹울먹하시며 기쁜 듯 슬픈 듯한 오묘한 표정과 주름. 그 얼굴이 제게 어떤 감정으로 남았어요. 그래서 찾아보다가 또 다른 피해자 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게 됐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억울하게 사셨는데 이젠 뭘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그 분이 한참 고민하시다가 아들이 보고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순간 이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죠.

 

이은선: 박정학 배우님은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감정으로 연기하셨나요?

 

박정학: 문성이라는 인물은 경직된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태 닫혀 있던 문이 그 아이를 통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라고 할까요. 닫혀 있고 경직되어 있던 마음들이 조금씩 열리는 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둘은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서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갈등이 있는데, 아이는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경직된 그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관객: 저는 질문보다는 제 감상을 좀 나누고 싶은데요. 뉴스에서는 사건들을 다룰 때 돈(배상금)에 대한 것들만 부각되지만 사실 그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들의 어떠한 관계가 깨졌는지, 그리고 그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잠식시킬 만큼 얼마나 지배적인 영향을 가지는지에 대해, 그런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면을 영화가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비극적으로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힘들어서 멀어졌다가, 그 아버지가 남긴 재산으로 그 관계를 다시 가지지만 시간의 공백이 너무 커서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이 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아들과도 관계를 제대로 맺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아들이 자신의 애인의 자식을 돌보는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그 아이와 소통을 하기보다는 애써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치도 보이는 느낌? 그리고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 아들을 지켜보는 장면에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어요. 또다시 나도 아버지처럼 아들과 좁힐 수 없는 그 거리를 가지게 되었구나.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곁에서 자꾸 멀어져서 애인과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모습이 비극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이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국가가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임태규말씀해주시는 것이, 혹시 감독님 아니신가요.(웃음) 전격 희망으로 끝나는 영화는 아니에요. 그런 영화를 제가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러나 일말의 희망은 있죠. 장소를 헌팅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문이었어요. 문 바로 앞에 문성이 서 있고, 문 바로 밖에 아이와 아들이 있는 구도가 중요했어요. 그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면 전격 희망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그 문지방 바깥에 머문다면 그 정도의 거리감이 계속 유지되는 관계일 것이고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정도 거리감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화해할 뻔 하다 멍게 먹으면서 다시 틀어지잖아요. 순간 화해할 수는 있지만 다시 그 정도의 거리감은 항상 가지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비극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왔다갔다하며 사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은선생각해보니 주인공이 그 장면으로 뛰어들어서 같이 넉살을 발휘하지는 않네요. 그 문이라는 장치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던 장면이군요. 해석이 멋졌습니다. 다른 분 질문 받겠습니다.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주인공 문성과 문성의 아버지, 그리고 문성의 아들이라는 삼대의 세대차이나 부자간 갈등을 많이 느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어떤 모습에 중점을 두고 연출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초반에 박은혜라는 역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흐지부지 됐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혹시 시나리오에 있었는데 표현이 잘 안 된 장면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임태규: 단순히 말씀드리면 주인공과 아버지, 주인공과 아들의 관계가 반복된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을 디테일하게 보여드리진 않지만 그것이 유추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국가폭력이 반복되면서 비슷한 시스템으로 피해자를 양산하듯이 부자 관계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은혜 같은 경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고민을 많이 했던 캐릭터예요. 이를테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혜가 군산에 내려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만약 여러분들께서 상처가 아예 없으시거나 행복하게만 살아왔다면 이 영화에 이입하지 못했겠지만, 우리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어떻게든 영화와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하나로 규정되면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관객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며 무언가 떠오르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지만, 각자 가지고 있던 상처를 한 번씩 끄집어내서 보는 계기를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은혜가 하나로 규정되며 끝나지 않은 이유겠죠.

 

이은선: 그러면 은혜라는 캐릭터를 구상한 것에서 빠진 내용은 없나요?

 

임태규: 저 혼자 구상한 전사는 있지만 여기서 발언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은선: 제가 질문 하나 더 드려도 될까요? 전작인 <폭력의 씨앗>은 군대폭력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해자가 아니었던 사람이 어떻게 군대폭력 안에서 가해자가 되는가를 쫓아가는 영화였거든요. 그건 좀 더 미시적인 종류의 폭력이죠. 그 사람이 그 폭력의 씨앗을 가지고 사회로 나와 어떻게 발화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감독님께서 폭력이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기에는 피로감이 있는 소재일 수도 있는데 왜 자꾸 구조적 폭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나요?

 

임태규: 그러게요. 연출하고 시나리오 쓰는 사람은 촉을 세우면서 살 수밖에 없잖아요. 24시간 뭐 하나 재밌는 게 없을까 생각하며 살죠. 저의 촉수가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들이 어떤 사회 현상을 볼 때인 것 같아요. 그게 우연히도 폭력에 대한 것이었던 것 같고. 저는 폭력적이지도 않고, 폭력을 좋아하지도 않지만요. 저에게 그냥 그런 것들이 끌리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어쩌면 젊은 작가들에게 이런 것들을 계속 말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갑자기 황정은 소설가의 단편집 아무도 아닌이 생각나네요. 인물들이 슬프고 폭력적인 상황에 계속 노출되는 이야기들이 묶여 있거든요. 왜 이렇게 폭력적인 이야기만 하느냐고 물었을 때, 작가가 요 몇 년 사이 꾸준히 이 세계가 폭력적이었다고 말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분명 젊은 작가들이 이런 현상들을 계속해서 영화로, 이야기로 풀어내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태규: <파도치는 땅>은 가족 영화라고 생각해요.(웃음)

 

이은선 : 아름다운 가족 영화입니다. 그럼 여기서 마무리할까요? 저녁 시간에 영화를 보고 토크까지 듣는다는 게 얼마나 애정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 내셔서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박정학 배우님부터 오늘 와주신 관객 여러분께 끝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박정학: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거운 영화 무겁게 잘 마무리해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태규: 원래 저는 완벽주의자라서 시나리오도 촬영도 완벽하게 진행하려고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제 성격과는 조금 다르게 찍었어요. 이렇게 찍고 나니까 좀 재미있는 건, 완성을 극장에서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들에게 각기 다른 영화로 각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영화를 극장에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와주셔서 감사하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은선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연기로 연출로 계속해서 작품들을 선보이실 테니까 두 분께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 조심히 돌아가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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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호텔>  한줄 관람평


최승현 | 유머는 여전하지만 갈수록 먹먹해진다

승문보 | 동어반복이라는 비판을 비웃듯이 홍상수 감독은 태연하게 진화한다

송은지 | ‘죽을 것 같다’에서 ‘죽어도 좋다’고 말하게 되기까지

성혜미 | 불화의 무대, <강변호텔>

이성빈 |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말하는 이의 영화

김윤정 | 하나의 공간, 분리된 인물들, 하나의 영화







 <강변호텔>  리뷰: 불화의 무대, <강변호텔>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불화무대화에 비유해 감성의 분할을 설명한다. 여기서 불화는 공동체 구성원 각각에 배분된 자격, 지위, 역할, 시간과 공간 등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뒤섞이며 빚어내는 갈등과 대립을 의미하며, 곧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인 것이란 공동체의 조화를 위해 특정 구성원을 배제하는 치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앞선 배제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해 논쟁을 일으킴으로써 불화를 유도한다. , 배제되었던 구성원들이 등장하여 보이지 않던 자신의 존재를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자신의 말을 들리게 할 때 불화가 연출되는 것이다.[각주:1] 이 글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여 <강변호텔>이라는 불화의 무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환(기주봉)이 전화를 받으며 호텔 방바닥에 앉아있다. 창문으로 다가간 영환의 모습 너머에는 상희(김민희)가 보인다. 한 화면 안에 분리된 채 자리하는 두 사람은 방을 나선 후에도 만나지 못한다. 영환이 계단 아래를 내려가면 카메라는 옆으로 돌아서 복도에 서 있는 상희를 비춘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인물들 각각의 세계는 마치 닿지 못할 것처럼 펼쳐져 있다.

그런 영환에게는 두 아들, 경수(권해효)와 병수(유준상)가 찾아온다. 그러나 세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조우하지 못한 채 어긋남을 반복한다.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내던 영환은 새하얀 눈밭 위에 있는 두 여인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 말을 건넨다. 그러나 경수와 병수는 후경에 배치된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발견할 만도 한데, 투명한 유리창은 이들을 각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마냥 분리시킨다. 이야기를 마친 영환이 호텔 레스토랑 근처에 다가와 두 아들을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세 사람은 만나게 된다.

 

이들과 달리 상희와 연주(송선미)의 세계는 순조로우며 평화롭다.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만나 함께 하며, 서로의 아픔에 공감한다. 이때, 이들의 눕는 행위는 꽤 중요해 보인다. 처음 침대에 두 사람이 눕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상희가 쉬고 싶다고 먼저 눕는다. 그 후 연주는 상희에게 등을 보이며 눕지만, 이내 곧 상희를 바라보는 자세로 고쳐 눕는다. 이후의 장면에서도 서로 바라보고 누워있는 두 사람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이 두 사람의 세계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들을 위해,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수북이 쌓일 만큼의 눈이 내린다.





여전히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머물고 있는 영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환은 시들어버린 식물을 보며 물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두 아들에게 꼭 죽을 것만 같다고 말한 후, 다시 식물을 보며 이거 물을 안 줬나보다. 많이 말랐네.”라고 이야기한다. 곧이어 병수의 이름에 대해 언급하는데, 잠시 후 대화는 보이스 오버되며 호텔 주변을 걷는 영환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아도 죽은 것이며, 이는 땅을 걷는 마음처럼 사람다운 행동과 공존해야한다고 말한다.

영환은, 꼭 죽을 것만 같다고 말하는 영환은, 하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상태로 지금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는 두 아들을 집에 빨리 보내고 싶어진 영환이 잠시 자리를 떴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방으로 올라온 영환은 두 아들에게 줄 것을 찾다 이내 인형을 들고 나온다. 그 인형을 들고 바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영환은 호텔의 여러 방 문 앞에 다가가 귀를 대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곧 상희와 연주가 머물고 있는 호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끊임없이 아름답다고 말했던 두 사람의 방을 찾아내려는 듯 서성였던 그 시간은 마치 낯선 세계를 유영하는 듯한 기시감을 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그 뒤에 바로 잠자고 있는 상희와 연주의 모습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담아내면서 유연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문 앞에 서있을 영환이 계속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후 레스토랑으로 내려간 영환은 두 아들에게 인형을 건네주며 꽤 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호텔 사장의 호출로 영환은 다시 자리를 비운다.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보여주지는 않지만, 순두부집에서 나눈 세 사람의 대화로 짐작해볼 수 있다. 영환이 말한다. “사장이 마지막에 나한테 말하길, 덮어두겠다는 거야.”, 이에 아들은 아버지가 거기서 뭐 실수하신 거 있으세요?”라고 묻는데, 왜인지 인형을 들고 서성였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다시 한 번 불편함이 스친다.

 




그 순두부집으로 상희와 연주가 들어온다. 영환과 경수, 병수 이 세 사람은 이미 술이 꽤나 취한 상태다. 영환이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를 뜨고, 경수와 병수 또한 일어나 계산을 마친다. 그러다 이내 먼저 걸어간다는 아버지의 문자를 받고 그 공간을 벗어난다.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영환이 다시 등장해 아직 식사를 마치지 않은 상희와 연주에게 자신이 직접 쓴 시를 읽어준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그 시를 낭독하는 공간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전환이다. 인적 없는 주유소를 혼자 지키는 소년은 그 주유소 앞을 서성이거나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 분명 그 소년을 보고 있지만 도무지 그 소년에 대해 알 수 없다. 영환의 낭독과 그가 만들어낸 세계 중 우리는 어떤 곳으로의 진입도 망설여진다.

이후 낭독을 마친 영환은 두 사람에게 저 죽어도 됩니다. 두 분만 있으면이라고 말한다. 이에 상희는 너무 아름다운 말이네요.”라고 답한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일까, 죽어도 된다는 말이 아름답다는 것일까. 전자라면 한 박자 늦은 타이밍으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후자라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인가 하는 의문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한 채 영화는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순두부집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경수와 병수의 모습이 아니라 영환이 처음 자리를 뜨겠다고 했던 레스토랑의 그 장면으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리를 비운 채 오래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가 걱정이 된 두 사람은 아버지의 방을 찾아간다. 한사코 알려주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의 방호수를 어떻게 알고 그 둘은 찾아간 것일까. 어떻게든 찾아간 그 곳에서 두 사람은 아버지, 영환의 죽음을 목도한다.

 

필자가 불쾌하다고 말했던 그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새롭게 영화를 봐야할 필요가 생겼다. 마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전부 진짜가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감성을 분할한다. 다시 말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인물 각자의 세계가 평행선을 이루듯 펼쳐지는 이 영화 안에서, 순서를 따라가던 시간은 재배열되고, 죽음을 통해 앞선 사건들의 의미를 다시 조직화하며 영화는 곧 불화의 무대로 바로 선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화의 무대가 또 다른 조화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랑시에르의 말을 빌려, 이 무대는 반드시 이해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눈밭이 될 것이다.





  1. 이사민, 「자크 랑시에르의 관점에서 본 연극의 정치성 – 로버트 윌슨의 연극을 사례로 -」,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석사 학위논문, 2016.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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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좀 더 솔직해져 본다면  인디피크닉 2019 <잠시 쉬어가도 좋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4월 6일(토)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강동완 감독, 김한라 감독, 임오정 감독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빈 님의 글입니다. 



 2018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잠시 쉬어가도 좋아> 독립(independent)’이라는 키워드 아래 뭉친  감독의 가족과 친구그리고 청춘에 대한 관계 고찰 보고서다우리네 일상 속에서 꿈틀거리는 다양한 관계의 민낯을 개성 있게 드러낸  개의 단편은 짧은 준비 기간풍족하지 않은 재원수많은 변수들로 가득한 촬영 환경에서 탄생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저 영화를 찍을  있어서 감사했다.’ 말을 전한다그래서일까솔직하고 거침없는  영화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뭇 조심스럽고 따뜻했다영화를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꿋꿋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낸 강동완김한라임오정 감독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하 김동현): 안녕하세요. 오늘 GV 진행을 맡은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김동현입니다. 영화를 만드신 세 분의 감독님들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편안히 관객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강동완 감독(이하 강동완): 안녕하세요. <돌아오는 길>을 연출한 강동완입니다.

 

김한라 감독(이하 김한라): 안녕하세요. <대풍감>을 연출한 김한라입니다.

 

임오정 감독(이하 임오정): 안녕하세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연출한 임오정입니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후 처음 선보이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상영입니다. 크레딧에서 보셨겠지만 이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가 제작·지원을 했어요. 때문에 그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오늘 감독님들께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간략하게 이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드릴게요. 서울독립영화제는 지난 2009년부터 독립영화 창작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재원이 풍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편을 각각 제작·지원하고 그것을 장편 옴니버스로 발전시켜서 배급과 개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프로젝트 재원을 마련하는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결정이 늦어지면서 굉장히 짧은 기간 내에 작품을 완성시켜야 했어요. 시기적으로나 제작 예산이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감독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수락하셨으며 수락 이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배신감을 느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강동완: 프로듀서를 맡은 다른 장편 영화를 작업하는 중에 연락을 받았었는데요, 제작비 지원을 처음 받아보는 거여서 연락을 받자마자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배신감이랄 것은 없고, 날씨를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날씨마저 좋았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편인데 준비하는 기간이 짧아서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김한라: 저는 날씨에 배신감을 많이 느꼈습니다(웃음). 태풍이 와서 울릉도로 배가 들어갔기 때문에 포항에 며칠 묶여 있었던 힘들었던 같아요.

 

임오정: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집에 앉아서 계절이 흘러가고 있구나.’하며 감상하고 있을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을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김동현다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한데요, 사실 김한라 감독님께서는 감독님의 작업 스타일상 영화를 만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제안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을 하셨었어요(웃음). 어려운 여건이었음에도 수락해주셨던 감독님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시나리오를 탈고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감독님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민이 재료가 되어 시나리오에 투영되었을 같은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