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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우리의 이름〉: 갈라진 자리에서 돌아보는 그때

by indiespace_가람 2025. 12. 8.

〈우리의 이름〉리뷰: 갈라진 자리에서 돌아보는 그때

*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10대의 마지막 시절을 돌아보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많은 것들에 조바심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20살이 되어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많은 것들은 정해지지 않은 채 변해간다. 하지만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처음으로 친구들과 길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던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때로는 친구에게서 전혀 몰랐던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의 이름〉은 인생의 변화기에 서로의 곁에 있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영화 〈우리의 이름〉 스틸컷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업 고등학교로 전학 온 영현은 같은 반의 또 다른 영현을 만나게 된다. 전학 첫날, 이름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는 담임에게 영현은 자신이 영현 B가 되겠다며 양보한다. 같은 이름을 공유하며 영삐, 영에이가 된 두 사람은 이름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친구가 된다.

19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영현과 친구들은 취업을 준비하며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근처 인문계 고등학생들과 달리,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네 친구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어른,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을 가늠하느라 분주하다.
영에이, 영삐보다 먼저 취업을 결정하고 실습을 시작한 종수와 주왕은 더 이상 교복이 아니라 회사 점퍼를 입고 나타난다. 함께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장난스럽던 그들은 이제 고등학생들은 모른다며 두 영현에게 손사래를 친다. 회사 점퍼를 입으면 담배와 술을 더 쉽게 살 수 있고, 밥벌이를 하는 어른의 얼굴을 한 종수와 주왕은 여전히 같은 친구들이지만, 두 영현이 알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영화 〈우리의 이름〉 스틸컷


그 시간은 두 영현에게도 생각보다 빠르게 닿는다. 추천서가 단 한 장만 나오는 대기업 취업 자리를 두고, 두 사람은 경쟁하게 된다. 단 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이름처럼 A, B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은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며 현실을 정해진 틀에 맞게 재조립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공한다. 결국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들어가고, 두 영현의 관계는 끝이 난 것처럼 끊어진다.
하지만 잘 안다고 믿었던 친구의 의외의 면은, 일상을 살아가던 인물들에게 불쑥 찾아온다. 늘 장난스럽기만 할 줄 알았던 친구의 진지한 얼굴,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진짜 꿈, 보여주지 않았던 어떤 배려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다.


함께했던 시절이 흘러간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의 영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름을 공유했지만 A와 B로 나뉘었듯, 인생의 궤도가 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마냥 아름답지도, 마냥 힘들지도 않았던 그 시절을 각자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A와 B로 나뉘었던 두 사람의 길이 다시 교차하는 날, 각자가 품고 있던 이야기는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말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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