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잠〉리뷰: 한 칸 차이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느낌이 얼마나 씁쓸한지 잘 알 것이다. 한참 동안 남는 공허함과 '한 번만 더 시도하면 잘될 텐데'라는 사소한 희망은 패배의 순간을 집요하게 회상하게 만들고, 일어나지 않을 긍정적인 '만약'을 상상하게 한다.

'서로 엇비슷할 정도의 아주 작은 차이'라는 의미의 관용구인 간발의 차이. 〈통잠〉의 주인공 ‘지연’은 이 간발의 차이를 뒤엎으려 온몸을 다해 몸부림친다. 반복되는 불임에도 어떻게든 아이를 갖겠다는 욕망은 지연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발현된다. 처방전 없이 유산 방지 약을 구하려 약사와 씨름하고, 남편과의 관계 직후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며, 심지어는 무당의 말을 듣고 기운이 좋다는 장소에서 관계를 시도한다. 온갖 미신과 민간요법을 믿어서라도 임신을 시도하지만, 초음파 기기로 탐색한 자궁에서 태아의 인기척은 끝내 들리지 않는다.
부부 모임을 위해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행하는 지연과 도진. 목적지에 다다르자 투명한 앞유리 너머 가득 보이는 화목한 4인 가족은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목적지가 바로 그것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겉보기엔 다른 부부와 엇비슷하지만, 아이가 없는 지연 부부에게 딩크족이냐는 질문이 던져지자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지연의 표정은 원하는 가족 구성원의 모습에 도달할 수 없는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임신에 대한 집착은 곧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두 사람이 먹을 양보다 한참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든 후 쓰레기통이 넘칠 만큼 버리는 공허한 몸짓에서는 지연이 욕심을 가진 게 아니라, 욕심이 그녀를 집어삼킨 것처럼 연출된다. 욕심의 끝은 약자를 표적 삼아 난자를 요구하는 것으로 치닫는다. 작고 허름한 미용실에서 일하는 젊은 외국인 여성에게 접근한 후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는 장면은 관객을 충격에 빠트린다.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젖은 꼴로 쫓겨난 지연의 눈빛에서는 여느 영화의 악역과도 같은 형형함이 느껴진다.

빈 임산부석을 바로 옆에 비워둔 채, 냉동 배아가 보관된 탱크를 안고 공허한 표정으로 앉는 지연. 딱 한 칸 차이다. 그녀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만 넘으면 될 것 같으니까, 한 번만 더 노력해 보자는 생각. 그러나 넘을 수 없는 그 간발의 차이가 시리도록 차갑다.
미쳐가는 아내를 외면해 버리고 싶은 순간과 버티며 밤을 지새우는 도진도, 살아가는 목적이 오직 임신인 듯 산송장처럼 살아가는 지연도 통 잠에 들지 못한다. 이 부부는 온전한 생명이 찾아와야만 통잠에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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