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억〉리뷰: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고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사를 외우고 몸짓을 따라 하는 행위를 넘어, 인물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인물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어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인물의 두려움이 곧 나의 두려움이 되어 함께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연기라는 행위는 대담하고 용기 있다. 〈최초의 기억〉은 이런 지점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 영화다.

〈최초의 기억〉은 독특한 구조로 조립되어 있다. 1부 〈최초의 기억〉, 2부 〈연기 워크숍〉, 3부 〈모방 독백〉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크게 보면 배우들의 연기 워크숍 과정을 그대로 영화 속으로 가져와 재현해 놓은 듯하다.
1부는 한 커플과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친구의 동반 여행, 그리고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또 다른 동성 커플의 하루를 따라간다. 특별한 서사가 있기보다는 평범한 여행과 일상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인물들은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기억을 이야기한다. 지금 앞에 있는 인물, 서 있는 공간, 심지어 먹고 있는 음식에서부터 어느 순간의 기억과 감정들을 슬며시 떠올린다.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내고 그렇게 평범한 듯 낯선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곧이어 2부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1부가 배우들이 연기 워크숍의 일환으로 촬영한 영화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밝힌다. 이들에게 ‘최초의 기억’이라는 주제의 모방 독백 과제가 주어진다. 자신이 맡은 인물의 마음속에 가장 오래 간직한 기억, 인물의 무의식이 된 기억을 찾아내는 것. 어떻게 보면 타인의 삶에 침투하는 일에 가깝겠다. 두 명, 혹은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서로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경청하고 관찰하며 위로한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나의 최초의 기억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연기 선생님 송문(박종환)의 말처럼, 연기를 하는 행위는 꺼내고 싶지 않은 깊숙한 기억도 용기 내 마주해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앞선 1부와 2부는 3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다. 서로의 옷을 바꿔 입고 등을 맞대고 앉은 인물들은 준비해 온 모방 독백 연기를 꺼내 보인다. 누군가는 담담한 표정으로, 또 누군가는 눈물을 흘려가며 서로의 최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나의 최초의 기억을 연기하는 상대의 감정, 떨림,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침내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어간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은 영화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고 흑백으로 표현된 독백 장면은 그 연기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어느새 영화를 보는 우리도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워크숍 교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

〈최초의 기억〉은 ‘연기’라는 행위를 통해 나와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의 기억을 삼키고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뱉어내는 과정을 그려내며 두 인물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연기를 하는 행위는 나와 누군가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같기도 하다. 서로 다른 타인들이 만나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떠한 두려움까지 함께 포용해 가며 하나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당신의 삶에서 나의 삶을 겹쳐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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