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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구름이하는말〉: 구름이, 사람이, 세상이

by indiespace_가람 2025. 12. 8.

〈구름이하는말〉리뷰: 구름이, 사람이, 세상이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하늘 안에 사는 구름은 연약하다. 작은 바람에도 부서지고, 모르는 새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허공을 유영하며 이곳저곳을 떠돈다. 흩어지고 떠도는 생에 지치기도 하지만, 다시금 돌아보면 늘 새롭게 정의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스레 나를 새로이 만들어 가고 다른 구름의 부분과 닿아가며 세상과 조화된다. 단순히 세상에 맞추어지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을 드러내며 균형을 맞추게 된다. 장태구 감독의 〈구름이하는말〉은 얕은 인물들이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와 연결되며 깊어지는 과정을 편안히 관찰한다.


대개의 사람은 보통 매일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낸다. 지봄도 마찬가지이다. 반복적으로 화면에 비치는 길고양이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그렇지만 그 일상을 지겨워하기보다는 세상을 세밀히 관찰하며 주변을 살핀다. 공원에 피크닉을 온 가족과 그들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는 사람을 바라보기도 하고, 풍경을 촬영하는 할아버지에게 슬며시 다가가 그 모습을 촬영해 보기도 한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를 둘러싼 것들이 내는 여러 소리가 그의 말을 대신한다고 느껴진다. 그가 자신을 발화하는 방식의 또 한 가지는 바로 글이다. 그는 시를 쓰며 본인이 느껴온 것들, 마음에 비춰 본 것들을 글로 옮겨낸다. 어딘가에 보여준 적 없던 글은 “한수와 선희”라는 작은 노래 공연에서 드러나게 된다. ‘지봄’이라는 구름이 다른 구름과 맞닿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 〈구름이하는말〉 스틸컷


 선희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에겐 노래가 있고, 우리는 모두 노래하듯 말할 수 있다고 읊는다. 선희는 그 문장 그대로이다. 본인이 세상을 살며 겪는 불안, 걱정거리, 나름의 행복을 음으로 대신한다. 선희의 주변에서 나는 악기 소리, 피워내는 담배 연기, 그리고 작은 녹음실에서 레코딩을 할 때 느껴지는 공기의 답답함과 그만큼의 안락함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묘사해 낸다. 지봄과 같이 구름처럼, 길고양이처럼 떠도는 삶이지만 외롭지는 않다. 외로운 구름 옆에는 외로운 구름이 있기 때문일까? 지봄의 시를 노래로 옮겨내는 순간에는 마치 그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선희”라는 구름은 지봄과도 맞닿게 되지만, 그 옆의 구름인 “준상”과도 연결되게 된다. 중심에 선 구름이 옆의 외로운 구름들을 불러낸 것이다.

 준상은 조용하고 무심한 화가이다. 세상살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앞의 두 구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말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얀 캔버스 위로 지나다니는 연필의 소리, 러프한 스케치의 모습, 바다와 노을을 느끼는 준상의 뒷모습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준상이 발화하는 방법인 그림은 선희와 닿게 되며 세상에 더 드러난다. 결국 그의 그림은 선희의 앨범 커버를 장식하며 커다란 구름을 만들어낸다. 드넓고 높은 하늘에서 힘껏 자신들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 안의 ‘나’를 보며 서로와 연결된다.

 

영화 〈구름이하는말〉 스틸컷


 〈구름이하는말〉의 주인공은 세 사람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부산의 풍경, 바닷속에서 돌을 붙잡고 기어 나오는 문어, 시장 속의 문어, 길바닥에서 생을 끝내게 된 고양이, 공원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갑자기 춤을 추는 사람들처럼 일상적이고 비일상적인 쇼트를 끼워 넣는다. 구름들이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상징이 아님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 각각의 생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연대하게 되는지, 그리고 현재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과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이 택한 발화 방식인 ‘조용함’과 ‘느림’이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과 자연히 교감하도록 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 다시 한번 세 사람이 모인 예술을 한 자 한 자 느껴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표류하는 나에게
보이는 것이라곤
애처로운 초승달뿐
감은 눈을 떠보면
온통 뿌연 안개뿐
흐릿한 내 발등만
한참을 바라보네
역류하는 기억들
여전히 나에겐
이것들이 현실일 뿐인데
바람은 내 등을 밀어
침묵의 바다를
정처 없이 떠다니게 하네
애잔하지 않기를
초라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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