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리뷰: 돌아가도 좋아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짧은 여행을 다녀온다. 일출만 보고 오기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로. 마음 깊이 간직한 소원을 그곳에 둔 채 떠오를 해마다 반짝반짝 빛이 나길 바라며 설희와 화정은 동해로 달려간다. 예상보다 춥고 어두운 동해 바다는 낭만과는 먼 흑백의 그림이었지만 그마저도 둘이기에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청춘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어느새 이십대 중반이 된 설희와 화정은 막막한 취업의 길에서 헤매인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고, 번번이 탈락만 하는 둘은 그런 일상에 지쳐만 간다. 심지어 함께 사는 집도 계약이 종료되어 또 한번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과제까지 생겨버렸다. 이동에 필요한 힘을 찾아야만 하는 설희와 화정. 어깨에 내려온 막중한 현실에도 둘은 가벼이 ‘잘 될 거야‘라며 웃음과 함께 형태 없는 희망을 믿어보기로 한다. 뜬금없이 모래에 박혀있는 깨진 거울과 버려진 박스. 원래의 자리를 잃어버린 듯한 것들이 널린 동해는 설희와 화정의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로 가득했고, 잠시 잠든 사이 해는 완연히 떠올라 버렸다. 생각한 소원은 빌지 못했고, 하려던 말은 꺼내기 어려워졌다.
화정은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이유 없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별일 아니라는 듯 털어놓는 화정의 고백에 설희는 마음이 상하고, 이내 둘은 균열을 붙이지 못하고 갈라져 동해 어딘가에서 혼자가 된다. 떨어진 둘의 시선은 각자가 향하고 싶은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낯선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공황장애가 있는 지안을 도와 집까지 배웅을 해주는 설희와 키우던 앵무새를 잃어버린 학생과 함께 여기저기 발걸음을 함께 해주는 화정. 동해로 온 목적을 잊어버린 채 ‘지금’에 집중한 둘은 여행보다 더 좋은 환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홀로 유영하던 네 사람은 서로의 퍼스널 스페이스의 경계를 허물고, 헝클어트리며 가까워진다.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다정스런 움직임들이 영화에 넉넉히 등장한다. “동정심이면 어때요.“라는 설희의 말. 나를 보는 듯한 기시감에 마음이 가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에 자연스레 동조된다. 혼자이고 싶은 마음과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동에 번쩍 서에 번쩍〉에서는 심리적 거리감을 유연히 다루며 네 사람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외로움과 동정심, 증오와 회피. 대칭되는 설희와 지안, 화정과 학생은 혼자였을 때보다 함께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본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어떤 일을 당장 하고 싶은지. 망설이는 순간도 잠깐. 쿵, 쿵 당찬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직면해야 할 일을 남겨둔 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설희와 화정이 화해를 했을 수도, 앵무새를 찾았을 수도, 직장을 구했을 수도 있다. 동해에서 생겨난 미지수를 꼭 붙잡는 영화는 따스한 해가 비추는 아침에 눈이 부신 반짝임을 포착한다. 그런 내일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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