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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우연이라는 장치

by indiespace_가람 2025. 5. 26.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우연이라는 장치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그리고 〈이어지는 땅〉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상점에 들어갔더니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나를 반기고 있고, 버스를 놓쳐 걷게 된 길에서는 잊고 지내던 오래된 친구를 만나게 되는 날. 이렇듯 우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우연을 만들어내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우리 앞에 꾸며낸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와 〈이어지는 땅〉은 모두 우연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다.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스틸컷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젊은 시인의 우연한 어느 하루를 담는다. 동화(하성국)는 여자 친구 준희(강소이)를 집에 데려다주다 집 구경을 하게 된다. 동화의 오래된 차가 준희의 아버지 오령(권해효)의 관심을 끌며 계획에 없던 집 구경은 우연한 하루의 머무름이 되고 동화도, 준희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하루의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령과 산 중턱의 벤치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탄한다. 준희와 그녀의 언니 능희(박미소)와 점심을 먹은 뒤, 근처 불교 사찰에 방문하고 저녁에는 준희의 가족과 함께 닭백숙을 먹으며 술을 마신다. 

이때, 영화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과 미묘한 진실을 스크린 위로 불러온다. 스스로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 쉬이 의지하려 하지 않는 동화는 ‘물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아버지가 뒤에 있지 않냐’는 능희의 말에 술이 잔뜩 취한 채 발끈하며 순식간에 자리를 망쳐 버린다. 동화가 읊은 짧은 시 또한, 준희의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고는 동이 트자마자 도망치듯이 그 집을 빠져나온다.

 

영화 〈이어지는 땅〉 스틸컷


〈이어지는 땅〉도 우연이 인물의 동선을 이끌어 가는 영화다. 1부는 런던에서 유학 중인 호림(정회린)이 길을 걷다 우연히 주운 오래된 캠코더 속에서 낯선 여자의 초상을 마주하며 시작한다. 얼마 뒤, 우연히 공원 벤치에서 전 애인이었던 동환(감동환)을 만나고 그의 새로운 여자 친구인 경서(김서경), 그리고 경서의 친구이자 캠코더 속 여자인 이원(공민정)을 만난다. 그리고 이들은 한 장소에 모이게 된다. 2부도 마찬가지다. 밀라노에서 이원은 우연히 마주한 낯선 한국인 남자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얼마 뒤, 그 남자 화진(류세일)을 또 우연히 만나게 되지만 어느 순간 길이 서로 엇갈린다.

호림은 우연히 재회한 동환에게 미련이 남아 있어 보이고 이원은 동환을 향한 호림의 미련을 눈치챈 듯하다. 이원과 화진에게서 피어났던 신기함과 설렘 사이의 감정 또한, 우연 속에서 움텄다가 한순간에 파편처럼 흩어진다. 사물과 사람을 매개로 한 우연한 만남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조용히 들추어낸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와 〈이어지는 땅〉처럼, 우연은 평범한 일상에 스며들어 의식적으로 감춰 온 진실과 애써 외면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우연은 신이 꾸며낸 짓궂은 장난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진심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화는 우연이라는 장치를 통해 소란스럽기도 조용하기도 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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