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리뷰: 일상의 균열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아주 작은 균열이 기분을 흐트러뜨리곤 한다. 처음엔 미묘해서 잘 모르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아슬아슬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자극이 가해지는 순간, 툭 끊어지며 살갗에 빨간 생채기를 낸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그런 균열의 순간을 담고 있다.
영화적이지 않은 영화
8개의 챕터로 구분된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답게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보지만, 단조로운 사건과 원테이크 촬영 기법이 감독의 특징이라는 점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가 시작한 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눈이 적응하지 못했다.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까지 매일 현실에서 보던 풍경과 다를 게 없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컷의 분절 없이, 카메라의 움직임 없이 그저 모든 상황을 한 곳에서 지켜보게 하는 연출 방식은 관객을 생생한 참여자로 만든다. 내가 그 상황에 들어가 인물들과 한 발짝 거리를 두고 함께하는 듯한 기분. 그래서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와 인물의 눈빛 하나까지 더욱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주인공 준희의 남자친구인 동화는 우연히 준희의 집에 방문한다. 처음엔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서글서글한 아버지의 주도로 준희의 가족에게 점점 더 깊이 합류한다. 마당에서 집안으로, 산속으로, 산꼭대기의 아지트로. 처음 만난 것치곤 꽤 급격하게 친밀한 대화가 오간다.
산속에서 취해가는 동화와 아버지, 동화에게 자꾸만 불편한 질문을 하는 은희. 조용히 표정이 일그러지는 준희.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마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위적인 줌 인과 줌 아웃.
이 모든 것이 일상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쌓이던 미묘한 균열은 화기애애한 술자리에서 요란하게 깨져버린다. 은희가 또다시 동화를 불편하게 만들자, 늘 고요했던 남자는 이성의 끈을 내려놓고 막말을 내뱉는다. 순식간에 되돌릴 수 없이 이방인으로 밀려나는 순간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포착하는 영화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평화롭던 일상에 금이 가는 순간과, 길고 긴 원테이크 속에서 어느 순간 연기라는 걸 잊은 듯 몰입하는 배우들. 그리고 어느새 초반의 어색함과 눈앞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한 나.
처음 맛본 홍상수 감독 영화의 맛은, 영화적이지 않기에 더 감칠맛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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