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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케이 넘버〉: 함께라는 희망만으로

by indiespace_가람 2025. 6. 2.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함께라는 희망만으로

〈케이 넘버〉 그리고 〈침몰가족〉 

 

*관객기자단 [인디즈] 문충원 님의 글입니다.

 

 

  국가가 개인을 버릴지라도 개인은 또 다른 개인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 개인과 개인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룬다면, 그 정도의 안락함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리 호화롭지 못한 인생이더라도 함께라는 희망만으로 그럭저럭 살아질 수 있다. 영화와 밀착하는 날이면 자꾸 이런 말들을 믿게 된다.

  그러나 의심을 거두고 싶지도 않다. 거대한 시스템에 순응하는 일을 경계하고, 나서서 균열을 내야 할 것만 같다. 광장에 나가고 진실을 요구하면서 국가가 앗아간, 혹은 뺏겼는지도 몰랐던 무언가를 되찾아야 한다. 누군가도 이런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두 시간 남짓을 보내다 보면, 다시 마음은 바로 곁의 공동체로 귀가하고 만다. 그건 국가나 시스템보다 작은 규모지만 개인에게 와닿는 가치는 무엇보다 크며, 어쩌면 유일한 의무 같기도 하다. 영화를 찍는 일과, 보는 일 자체도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영화 〈케이 넘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상영된 〈침몰가족〉을 보면서 어렴풋이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

 

홀로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

  영화 〈케이 넘버〉는 해외 입양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2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김미옥)’ 역시 그중 하나로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그러한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한국의 입양 시스템을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해체한다.

  기억을 더듬고 한국을 방문하며 고군분투하던 미오카는 해외 입양인을 돕는 사회적협동조합 ‘배냇’을 만나게 된다. 해외 입양인을 대신해 정보를 수집하고, 잃어버린 가족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그들은 기꺼이 동행자를 자처한다. 결정적인 대화가 오가도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탓에 걱정 어린 얼굴로 지켜볼 뿐인 미오카에게 현장의 맥락에 참여하고 상호적인 소통을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감독 역시 그 옆에서 한 팀 한마음이 되어, 묵묵히 카메라에 담고 영화로 세상에 내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한 개인에게 중대하고 역사적일지 모를 과업에 힘을 보태주는 공동체가 거기에 있다. 그 덕분에 미오카는 부박한 현실에도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과거 정부는 사고파는 물건처럼 아이들을 거래하며 막대한 이윤을 챙겼고, 2023년의 서울중앙지법도 국외 입양 관련 소송에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어딘가에, 곤경에 처한 이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누군가도 있다는 희망 역시 〈케이 넘버〉는 보여준다.

 

영화 〈침몰가족〉 스틸컷

 

다시 소환하고 이어지는 사람들

  영화 〈침몰가족〉은 그날의 공동체를 다시 소환한다. 가노 쓰치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침몰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을 알아간다. 자신의 어머니를 도와 공동육아를 하던 그들을 찾아다니며 당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번갈아 가며 작성한 육아 노트를 읽으며 자신의 유아기를 상상한다. ‘침몰가족’이라는 이름은 당시 어느 정치인이 배부한 팸플릿에서 따왔다. 누군가는 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이 사라진다면 일본은 침몰하고 말 것이라 떠벌리고 다니지만, 그 말에 웃으며 ‘그렇다면 우리는 침몰가족’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그 연대 의식은 1970년대 히피공동체에서 침몰가족으로, 다시 지금 영화 앞에 모여 앉은 관객들로 이어진다. 영화가 끝나고 남은 한 움큼의 희망이 각자 꾸려낼 공동체로 널리 널리 이어지는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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