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워있을 때〉리뷰: 우리가 서로의 용기가 될 때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누구에게나 불면의 밤은 존재한다. 저마다의 크고 작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고요한 어둠 속에 외로이 가둬둔다. 〈내가 누워있을 때〉 속, 선아(정지인), 지수(오우리), 보미(박보람)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분명 문을 잠갔지만, 계속해서 현관을 의식하게 된다. 잠에 들어보려 애써도 이내 텔레비전을 켜고 무의식적으로 채널만 넘길 뿐이다. 무엇이 이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걸까.
선아(정지인)는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직장에서 시끄러운 소문의 중심이 되었고 부모님의 죽음 이후, 사촌 선아의 부모님 집에 얹혀살던 지수(오우리)는 독립을 준비 중이다. 지수의 친구 보미(박보람)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계속 대화하고 있는 것만 같다. 영화는 이 세 사람을 한 차에 태우고 출발한다.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차 사고가 나면서 어쩔 수 없이 근처 카센터에 도움을 청하지만, 사장과 직원은 이들을 얕잡아보며 위협하기까지 한다. 온종일 길 위에서 여러 차별과 부조리함을 겪어야 했던 선아, 지수, 보미는 근처 모텔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좁고 낡은 방 한구석에서, 이들은 둘러앉아 마음속 묵혀뒀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인다.
이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과거의 사연을 하나 둘 들춰낸다. 입사 초, 남성 중심적인 회사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며 무시당해야 했던 선아, 정체성에 대한 남모를 상처가 있는 지수, 사산의 아픔을 겪고 트라우마가 환각으로 발현되어 버린 보미까지. 어색한 화해와 위로가 오가며 마음을 열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던 찰나, 카센터 사장과 직원은 또다시 찾아와 이들을 겁박한다. 쉽게 무너져 내리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 단단해지는 법을 알게 된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 위협에 맞선다.
〈내가 누워있을 때〉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택함으로써 인물들이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새로운 인물, 낯선 환경,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리며 각자의 속도로 내면의 변화를 응시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동시에 외면하기만 했던 상처를 직접 마주하며 내면의 성장을 함께 이뤄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혼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서로를 향한 애정을 가진, 때로는 진심 어린 쓴소리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곁에 필요하다. 선아, 지수, 보미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듯 말이다.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뜬다. 각기 다른 이유로 긴 어둠 속을 헤맸던 세 사람은 서로의 용기이자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편안한 상태로 서로의 곁에서 잠이 든다. 영화 내내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이들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단단해졌을 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매일 같이 평안한 잠에 들 수 있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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