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 반짝이는
어느 관객의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개막식 후기
언젠가부터 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 중,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건 다큐멘터리였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려가지 않는 이야기를 카메라를 통해 꺼내놓는 사적 다큐멘터리부터, 반드시 기록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가거나 타인의 삶의 현장을 담은 작품들까지. 형식도, 소재도, 접근 방식도 모두 다르지만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은 결국 실재하는 삶과 세상이다. 특정한 시선으로 연출과 편집을 거쳐도, 그 뿌리는 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그 안에서 각자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반짝다큐페스티발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3일간 개최되었다. 국내외 단편 다큐멘터리 총 30편이 상영되었고, 이 중에는 선정작 27편과 해외 초청작 3편이 포함되었다. 짧다면 짧은 3일의 기간이었지만, 개막식과 몇 편의 작품을 관람하면서 ‘반짝다큐페스티발만의 고유한 반짝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 단편 다큐멘터리를 이처럼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드물기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그 자체로 설레는 기회였다. ‘짧지만 반짝이는’이라는 모토와 함께, 경쟁 없는 국내 유일의 중·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점도 이 페스티발만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했다.
개막식은 고(故) 신나리 감독님을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되었다. 제1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의 특별 초청작 감독이자, 제2회에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신나리 감독님은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하시며 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던 분이었다. 신나리 감독님의 유작인 〈도반〉을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고, 추모의 순간이 영화제의 시작을 더욱 의미 있게 해주었다.
이후 상영된 해외 초청 개막작 세 편은, 우리가 마주한 두 개의 처절한 현실을 담고 있었다. 〈사월의 마지막 날들〉은 1949년 4월 이스라엘 군대로부터 바띠르 마을을 지켜낸 주민들의 기지를 보여주며 오늘날의 가자 지구 학살을 상기시켰다.
〈오아시스〉는 전쟁의 계속되는 한복판에서 임시로 만든 초등학교에서 ‘성 니콜라스의 날’을 맞이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는 1930~40년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가 촬영한 팔레스타인의 야생화와 풍경, 사람들의 모습에서 조상과 그들이 쫓겨난 팔레스타인 땅을 바라보며 현재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비췄다.
세 편의 다큐멘터리 모두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이자 현재를 보여주었다.
영화제에 관객으로 함께 하는 동안 인상 깊었던 점은 상영 및 행사 전반에 걸쳐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이 함께 제공되었고, 모든 작품에 해설 자막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장소에서 수어 통역을 본 적은 있어도, 영화제 GV 현장에서 통역사가 함께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에게 열린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주최 측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제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기념품인 만큼, 반짝이는 작품들을 보고 나오는 길에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양말과 프로그램 북을 구매했다. 상영작들의 여운에 젖어 프로그램 북을 넘기면서, 내년에도 이 반짝임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P.S. 반짝다큐페스티발의 기념 양말은 매우 쫀쫀하고 튼튼해서, 야외 운동을 하거나 일정이 긴 하루에도 믿고 신을 수 있는 든든한 아이템이 되어주고 있다. 무엇하나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는 영화제의 진심을 기념품 양말에서까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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