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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어브로드〉: 나는 여전히 나인지

by indiespace_가람 2025. 6. 23.

〈어브로드〉리뷰: 나는 여전히 나인지

*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몇십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용하는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나라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간도 뒤바뀌고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로가 누적된 몸은 쉽사리 낯선 나라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낯선 이의 사소한 호의나 친절에 감동한다. 또는 작은 불친절이나 냉담함에도 쉽게 무너진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었던 기존의 장소와 달리 전혀 다른 맥락과 문화가 기다리는 장소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어진다. 그 낯섦에는 일상에서 이미 익숙했던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어떤 장소에 놓이는지가 내가 누구인지에 영향을 끼치고, 굳게 믿어왔던 정체성은 그저 다른 장소라는 것만으로 흔들린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가. 어브로드는 여행의 설렘이 있던 자리를 섬뜩한 질문으로 채우며 침입자 이방인이 되어버린 인물을 미스터리 스릴러 속에 담는다.

 

영화 〈어브로드〉 스틸컷

 

낯선 나라에 여자 친구 민지와 도착한 태민은 시작부터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공항 렌터카 업체 직원은 비행기 연착으로 도착이 늦어졌다는 민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다시 오라며 퇴근해 버린다. 애써 밝은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민지가 카풀 서비스를 부르고, 두 사람은 늦은 밤 낯선 사람들과 동승하여 숙소로 향한다. 케이팝 가수를 좋아한다는 동승자가 케이팝 가수 태민의 노래를 크게 틀고, 태민은 자기 이름이랑 같은 가수라며 처음으로 밝게 웃는다. 이국땅에서 한국어 노래가 크게 울리며 묘한 부조화를 만들어내고, 도로에 갑자기 멈춰 선 차를 들이받을 뻔하는 사고로 이어진다. 이때 시작된 균열은 태민의 여행을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남는 일로 바꾸어 버린다.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 친구 민지를 찾는 여정 속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계속해서 바뀐다. 마치 역할극을 하는 것처럼 뒤집어지고 바뀌는 관계 속에서,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공포의 감정이 자라난다.

영화의 초반에는 태민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남자 보안관이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가 되어 태민을 압박한다. 영어로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태민은 존재만으로 의심스러운 용의자가 된다. 여자 보안관의 호의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후에는 실종된 여자 친구 민지를 찾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태민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영화 〈어브로드〉 스틸컷

 

어브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누구인가?’이다. 여자 친구를 갑작스럽게 잃어버리고 낯선 나라에서 차별을 겪는 동양인 남성, 폭력적으로 돌변해 지금까지의 울분을 토해내는 이방인,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존재하는 귀신, 망상에 빠져 인질극을 벌이는 인질범. 변하는 태민의 역할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두려움의 대상 역시 바뀐다. 보안관, 경찰차, 미지의 살인범, 늑대 마스코트가 그려진 차를 타고 다니는 배관공, 그리고 주인공 태민에까지 이른다.

 

여자 친구 민지를 찾아 나서는 줄 알았던 여정은 자기 자신이 이곳에서 누구인지 찾고 반문하는 끝에 다다른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극에 달한 순간에 물리적인 세상뿐만 아니라 내부의 세상 역시 뒤집어진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들리는 케이팝 음악의 가사가 다르게 들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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