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여버린 매듭
〈어브로드〉 그리고 〈캐쉬백〉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이들이 있다. 결코 한 프레임 안에 머무를 수 없는 인간들은 끊임없이 달리고 숨 고르기를 반복한다. 이 게임적 세계는 불안의 감각이 늘 산재해 있는 공간이다. 끊임없이 숨통이 죄어올 때,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일단 달려야 한다.
‘태민’과 ‘민지’ 커플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미국 미네소타로 떠난다. 이들의 여정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마감 시간을 놓쳐 렌터카를 빌리지 못하고,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가까스로 피한다. 불운의 반복과 피로 누적은 결국 다툼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태민이 화해를 청하려던 순간, 샤워 중이던 민지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실종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지 경찰은 무턱대고 태민을 의심한다. 영어에 능하지 않고, 모든 계획을 여자 친구에게 맡겨 아는 정보도 거의 없던 태민은 배타적 편견에 의해 재단된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것뿐이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한 매듭은 좀처럼 풀기가 쉽지 않다. 손을 쓰면 쓸수록 더 단단히, 얼개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켜 버린다. 잃어버렸던 실마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정에서 다시 나타나기도, 불현듯 손에서 풀려버리기도 한다. 〈어브로드〉는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관객을 태민의 무의식 속으로 인도한다. 사라진 것들은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다. 영웅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야기가 말해주듯이, 벗어날 수 없는 지옥도의 실마리는 지나쳐 버린 순간들에 있다.
한편 〈캐쉬백〉의 ‘고우’는 6시간 안에 모든 거래를 성공시켜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숏의 잦은 분리와 계속해서 남은 시간을 환기하는 타이머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으로 관객과 고우, 모두를 몰아붙인다. 이번에도 이유 같은 건 주어지지 않는다. 제한된 시간 안에 과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사실만이 던져질 뿐이다. 왠지 수상해 보이는 고객들과 불편한 친구와의 동행을 어렵사리 헤쳐 나간 그는 마침내 최후의 관문에 다다른다. 조금씩 꼬이는 것 같다가도 어찌저찌 풀려나가던 매듭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자취를 감춘다. 이번에도 사라진 물건은 다시 나타날까? 어쩌면 이미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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