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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림의 미학
〈귤레귤레〉 그리고 〈이어지는 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평생 함께할 것처럼 사랑하던 연인들은 종종 이별이라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함께 남긴 발자국은 옅어지고 완전히 엇갈리며 서로가 없던 일처럼 지워진다. 〈귤레귤레〉와 〈이어지는 땅〉은 그렇게 지나간 연인들이 재회하면서 또다시 엇갈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 8,000km 떨어진 낯선 튀르키예 풍경 속, 우리에게 익숙한 외모의 한국인 남자 ‘대식’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한국인 여자 ‘정화’의 이야기가 번갈아 교차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각자의 상사에게, 연인에게 연신 고통받는 두 남녀의 모습은 거울처럼 닮아 있다. 교차 편집으로 구분되어 있던 대식과 정화의 프레임이 여행지에서 우연처럼 합쳐지자 비로소 관계가 유추되고, ‘저 둘, 영화가 끝나기 전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타지에서 우연처럼 재회한 옛 연인이 또 떠오른다. 〈이어지는 땅〉 속 런던에서 만난 ‘호림’과 ‘동환’의 이야기. 다시 예전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순간 부딪히는 눈빛과 풀리는 분위기에 잠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두 영화는 ‘혹시...’라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호림은 동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눈치지만 동환은 곁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대식과 정화는 계속해서 엇갈린다. 반가워하다가도 말다툼하고, 다시 이어지려나 하면 불청객이 끼어들어 훼방을 놓고. 대망의 튀르키예 투어 하이라이트, 열기구 체험에서 그 엇갈림의 정점을 찍고 만다. 대식은 홀로 열기구에 탑승해 상공을 가로지르며 외친다. “귤레 귤레!”
지나간 연인에게는 그들만의 감질맛이 있다. 시절인연은 결국 시절인연으로만 남는 것일까. 한 번 엇갈리면 그때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잘 살아”라는 뻔한 말보다는 낯선 언어로 전하는 “귤레 귤레”가 이들에게는 더 깔끔한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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