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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WDN 영화제] 〈단편 섹션 2〉 스페셜토크 기록: 하고 싶은 사람들

by indiespace_가람 2025. 6. 26.

하고 싶은 사람들

 여성감독네트워크 WDN 영화제〈단편 섹션 2〉 스페셜토크 기록

 

일시 2025년 6월 14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부제 분투에 관하여 - 몸과 관계들 

참석 김나영, 임선애, 이주영 감독

진행 황미요조 프로그래머
상영 확장기〉(김나영 감독), 그거에 대하여〉(임선애 감독), 왓 더 케이크!〉(이주영 감독)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기록입니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시선,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가치 사이에서 세 편의 영화 속 여성들은 모두 꾹꾹 눌러왔던 어떠한 욕구를 밖으로 분출하고자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주고받는 여러 형태의 관계들 속에서.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하나로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사진: 여성감독네트워크 @women.dir.network

 

황미요조 서울동물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황미요조):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황미요조입니다. 방금 보신 세 단편의 공통점을 생각해 봐 달라는 여성감독네트워크 측의 부탁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성 자신의 욕구와 사회적인 시선이 경합하고 분투하는 장소로서 여성의 몸과 관계들’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영화를 묶어보았는데요,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합니다. 앞서 보셨던 영화 세 편을 연출해 주신 감독님들께 먼저 인사 부탁드릴게요.


김나영 감독(이하 김나영): 안녕하세요. 〈확장기〉 연출한 김나영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선애 감독(이하 임선애): 안녕하세요. 〈그거에 대하여〉를 찍고 이렇게 큰 상영관에서 영화를 본 게 처음인데요, 6mm 필름으로 찍어서 중간에 영화가 끊기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봤어요. (웃음) 오늘 많은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주영 감독(이하 이주영): 안녕하세요. 〈왓 더 케이크!〉 연출한 이주영입니다. 귀한 시간 내서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왠지 모르게 그 어떤 GV보다 WDN 상영회가 제일 떨리는 거 같아요. 조금 떨더라도 많은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웃음)

황미요조: 제가 먼저 질문드려볼까 해요. 먼저 임선애 감독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오늘이 〈그거에 대하여〉의 첫 극장 상영인데요,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감독님의 최근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점이나 달라진 점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임선애: 〈그거에 대하여〉를 2007년에 만들었어요. 그때 제가 학부를 졸업하고 영화 현장에서 스토리보드 작가로 한창 일을 할 때 돈을 모으면 단편 영화를 찍는 식의 패턴이었는데요, 영화아카데미를 가려고 포트폴리오로 2004년에 찍은 졸업 작품을 내려고 했는데 만든 지 2년 이내의 작품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다른 걸 만들어서 내야겠다, 생각했죠. (웃음) 그때 제가 MBC 극본 공모에 썼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거에 대하여〉가 그것들을 압축한 이야기거든요. 그렇게 영화를 완성하고 배급하고 지금은 사라진 서울국제영화제라는 온라인 영화제에 출품이 됐었죠. 온라인 영화제다 보니까 극장에서 상영할 일이 없었어요. 오늘 최초 시사회 이후로 오랜만에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다시 본 건데요, 사실 만들고 나서 몇 번을 다시 봐도 너무 낯 뜨거운 거예요. 내가 이런 걸 만들었다고? (웃음) 사실 오늘은 영화 내용 자체보다는 영화가 중간에 끊기고 버벅거려서 영사 사고 나면 어쩌지 하는 긴장감으로 보기도 했고 관객분들이 중간중간에 많이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황미요조: 저도 관객분들이 웃으시는 걸 보면서 감독님이 참 기쁘시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동시에 감독님께서는 처음에 이 시나리오를 TV 단막극용으로 생각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TV 단막극으로 생각하셨던 것에 비해 어떻게 보면 물론 그 당시인 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에 섹스 코미디 같은 소재가 한국영화에서 굉장히 유행하기도 했었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몸에 대해서 말하는 이 시나리오를 원래는 TV 단막극용으로 생각하셨다는 게 오늘 새로 알게 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네요. 동시에 카메라 움직임이라든지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이 나왔을 때 만들어내는 웃음의 리듬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김나영 감독님께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 제목이 ‘확장기’인데 한자로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영제(Time to Dilate)를 보면 확장기의 ‘기’가 시간의 의미로 쓰였어요.

김나영: 말 그대로 확장기라는 소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확장되는 시간의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결말에서 주인공의 몸이 모조리 다 부서지게끔 의도했는데 플라스틱의 부서짐이라는 게 소멸이 아니라 부서지고 나서도 미세하게 남아 있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서짐이 또 다른 확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황미요조: 보통 몸과 플라스틱은 부정적인 의미로 함께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처음 플라스틱 이야기가 나올 때는 몸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요, 〈확장기〉 속 플라스틱에 대한 발상의 전환, 영원히 남아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의미가 전환되는 것을 보면서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그 플라스틱이 영영 썩지 않는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부서지면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까지 제목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구상하시게 된 계기도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나영: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공감할 수 없는, 낯설게 느끼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로의 책』 속의 「퀴어 자손」이라는 짧은 글이 구상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는데요, 인상 깊었던 게 요즘 바다에 미세 플라스틱이 너무 많아서 해양 생물들의 생식기를 변형시키고 있대요. 이런 생물들이 돌연변이로 분류되고 생태계의 재앙처럼 여겨져서 사람들이 우려한다는 내용인데요, 결국 중요한 점은 그런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계속 태어나고 우리의 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그런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존재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존재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황미요조: 이주영 감독님께도 질문드릴게요. 주인공 은지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인데 그런 은지 앞에 몸이 없는 귀신인 지우가 나타나요. 이런 설정을 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이주영: 그때 당시 제가 엄청난 무속 신앙에 빠져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무속인 유튜브 편집을 했었어요. (웃음) 그래서인지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 우리가 감각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어딘가 존재한다고 누군가 증언하는 그런 존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동시에 몸에 대한 고민은 저 스스로도 평생을 해오던 고민이기도 했고요. 지우처럼 몸이 없는 귀신은 몸에 대한 고민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흔히 뱃살이 조금 있는 사람들은 ‘살을 이만큼만 도려내고 싶다’는 식의 말을 되게 자주 해요. 그런데 몸이 없는 귀신이 들었을 때는 이 말이 얼마나 아프게 다가올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 소재를 잘 연결해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겠다 생각했어요.

황미요조: 실제로 몸이 없는 존재인 귀신의 몸을 형상화하는 데에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배우 캐스팅이랄지 아니면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다든지요.

이주영: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귀신을 귀신처럼 투명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웃음) 그래서 ‘뻔뻔하게 가자’가 제 목적이었고 뻔뻔하게 처음부터 ‘난 귀신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귀신이 등장하게 하자고 정하고 시작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페어리〉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거기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전혀 요정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제가 요정이에요’라고 선언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선언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어요. 그래서 우리 영화의 귀신도 그렇게 등장하게 해보자, 오히려 낯설고 신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싫다는 데도 은지를 계속 쫓아다니면서 케이크 한 입만 먹어달라고 하는 그런 지우의 뻔뻔함과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그거에 대하여〉 스틸컷

 

관객: 먼저 세 영화 모두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고요, 〈그거에 대하여〉에서 토마토가 자주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서 토마토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와 〈왓 더 케이크!〉에서 배우 지망생 은지가 자신이 뚱뚱해서 캐스팅이 엎어 졌다는 식의 말을 하는데 실제로도 이런 일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임선애: 주인공 윤으로 나오신 정제후 배우님과 제 첫 단편을 같이 찍었는데요, 배우님이 안내상 배우님, 우현 배우님과 친분이 있으셔서 택시 기사로 특별히 출연해 주셨어요. 그리고 토마토의 의미를 말씀드리자면, 일단 제가 토마토를 좋아하고요. (웃음) 어떤 형태의 욕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성욕, 식욕, 수면욕 여러 가지의 욕구가 있잖아요, 알아차리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곳곳에 붉은색을 많이 상징 해놨거든요. 당시에 제인 캠피온 감독의 〈인 더 컷〉에 빠져있었는데 그 영화에 붉은색 상징이 되게 많이 나와요. 그래서 나도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침 식욕을 대체하는 음식을 토마토로 설정했고요, 초반 애니메이션이 끝나고도 빨간색 토마토가 나오는데 그 모양이 마치 가슴 같기도 하고 또 여성의 생리와도 연결 지을 수 있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어쩌다 굳이 집 근처도 아닌 거기서 뺑소니가 났을까, 많이 상상 해봤는데요, 영화 후반부 장면에서 힌트를 얻는다면 토마토를 훔쳐 먹으러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윤은 어떤 욕구를 해소하는 데 굉장히 적극적인 여자고, 동시에 그걸 토마토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상징을 넣어봤습니다.

황미요조: 〈그거에 대하여〉에서 가장 해방적인 장면이 마지막에 토마토를 탁 먹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나온 김에 영화에 애니메이션이 들어가 있어요. 작품에서도 과감한 표현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표현도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삽입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임선애: 처음부터 영화 시작 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키치하게 가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실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이기도 했고요. 학교 후배이기도 한 김영근, 김예영 애니메이터가 도와주셨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높은 수위로 콘티를 짜 오셨어요. (웃음) 그래서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황미요조: 영화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수단으로 압축적이면서도 독특하게 드러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윤이 굉장히 하고 싶은 여성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여기 나오는 남성들의 개별성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게 참 재밌었어요. 오히려 정말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털어놓는 상대는 여자인 친구들이라는 그 관계성도 흥미롭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왓 더 케이크!〉 이주영 감독님께도 영화의 전반적인 캐스팅과 함께 실제 영화에는 비교적 통통한 사람도 나올 수 있는데 이런 이유로 캐스팅이 엎어지는 경우도 정말 있는지 질문을 주셨는데요, 이 질문은 젠더 차가 조금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이주영: 맞아요.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 그 고민을 했었는데 실제로 정말 은지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날씬한 배우로 캐스팅을 다시 했을까 생각해 본다면, 저는 그 이유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기라는 게 사람마다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은지의 연기하는 방식이 어쩌면 제작사나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금 은지는 본인의 몸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쓰고 있고 그걸 많이 탈피해 보려 했지만 잘 안됐기 때문에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그쪽으로 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은지 스스로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조금 두려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캐스팅이 엎어진 이유를 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어느 정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스토리를 설정한 게 이 영화판에서 유효한 생각일까 라는 고민도 해본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특히 여성 배우에게는 너무 천편일률적인 몸매의 캐릭터를 요구하기도 하거든요. 사실 오늘 은지 역할을 해주신 우연 배우님이 오셨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면서 은지를 연기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은지는 정말 스스로 뚱뚱하다는 이유로 역할에서 잘린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우연 배우: 100% 그렇다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그 점이 이유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뚱뚱한 배우도 뚱뚱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확실히 젠더 차가 있어서 남성이 뚱뚱할 경우와 여성이 뚱뚱할 경우에는 맡을 수 있는 역할의 차이가 실제로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 배우가 조금 더 본인의 몸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황미요조: 지우 역할을 맡아주신 임해리 배우님도 객석에 계시죠? 관객분들께 인사하시는 김에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몸이 없는 귀신 역할을 하셨는데 연기를 할 때 몸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고민하셨던 부분이 있을까요?

임해리 배우: 아무래도 제가 은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여서 촬영 전에 저 스스로 안 보이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많은 거리를 자주 걸었어요. 그러면서 그런 감각을 많이 믿으려고 노력했고 지우는 죽었으니까 몸을 잃었잖아요, 어떤 신체적인 감각 같은 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정신적으로 지우가 살아생전에 갈망했던 부분에 대해 더 집중하면서 역할을 준비했습니다.

영화 〈확장기〉 스틸컷

 

황미요조: 〈확장기〉도 캐스팅 과정이 궁금해지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캐스팅 과정과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과의 교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나영: 일단 명기 역할을 연기해 주신 한초원 배우님은 제가 예전부터 혼자 좋아했었던 배우예요. 참여하셨던 영화나 연극, 다른 활동들의 결이 제 취향에 맞아서 같이 작업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연락을 드렸는데 너무 하고 싶다고, 특히 논 바이너리로 명기 캐릭터를 설정했는데 한초원 배우님이 그런 역할을 너무 해보고 싶었다고 하셔서 같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도 역할을 하신 송하진 배우님은 학교에서 캐스팅했는데요, 저랑 같은 학교 연기 전공이신데 오디션을 보러 와주실 분을 구할 때 따로 연락받았어요. 도의 남자친구 산 역할을 해주신 박범규 배우님은 저랑 같은 수업을 들었을 때 말투나 행동이나 표정이 너무 역할이랑 잘 어울려서 같이 하자고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관객: 〈확장기〉의 명기가 산을 죽이고 성기를 자르는 장면을 보면서 자르는 행위를 하는 게 정확히 어떤 동기를 가진 건지, 성기와 자신의 부서진 확장기가 비슷한 형태이기 때문에 산이 자신의 확장기를 부숴버린 것처럼 똑같이 그걸 잘라내 버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동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합니다.

 

김나영: 단순하게 생각하면 말씀하신 것처럼 산이 먼저 명기의 확장기를 부쉈기 때문에 ‘그러면 나도 똑같이 부숴줄게’ 하면서 부숴 버린 건데요, 동시에 명기는 자기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잘린 산의 성기는 시간 안에 다시 붙이지 않으면 평생 없는 채로 살아가야 하는데 확장기는 아무리 잘게 부셔도 다시 붙이기만 하면 되는, 썩지 않고 미세하게라도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명기는 그걸 통해 오히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관객: 여성의 몸과 관련된 세 작품 모두 너무 흥미롭게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임선애 감독님께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관련한 포럼을 하셨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직은 초기 도입 단계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여성의 몸에 대해 다루는 영화에서 직접적인 노출 장면이 없더라도 현장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동행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인지 감독님의 견해가 궁금하고요. 김나영 감독님의 〈확장기〉가 비교적 노출 범위가 제일 넓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면을 찍었을 때 배우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땠을지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나영: 안 그래도 그런 장면을 찍을 때 걱정이 돼서 인천영상위원회에서 제작 지원 받을 때 멘토셨던 감독님께 자문을 많이 구했어요. 성적인 장면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신체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 하는 영화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는데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배우분들께 의견을 물어봤을 때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으시고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셔서 나름 용기를 가지고 촬영에 들어갔기는 했는데요, 막상 현장에서 찍으려고 하니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배우분들은 괜찮다고 하시지만 오히려 제가 더 부담스럽고 힘든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장면을 찍을 때 도와주시는 전문가분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의 저는 그런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나중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하는 특강을 듣고 이런 분들이 영화 현장에 많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임선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 여성영화인모임 주관으로 ‘인터머시 코디네이터는 불청객이 아닌 동반자입니다’의 포럼을 했었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저 말고도 배우님과 우리나라 최초 인터머시 코디네이터분이 패널로 계셔서 할리우드 영화계의 상황도 듣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아직 인터머시 코디네이터라는 용어조차 모르시는 분도 많으시잖아요. 노출 장면이나 신체 접촉이 있는 촬영에 투입돼서 배우의 안전을 보호하고 서로의 소통을 도와주는 역할인데 저는 초긍정이에요. 왜냐하면 실제 감독님들도 이런 장면을 찍을 때 되게 어려워하시거든요. 저도 최근에 찍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베드신과 비슷한 장면을 찍었는데 많이 어려웠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연기하는 배우들, 분장팀, 의상팀 등등 모두 각자의 고충이 있어요. 또 현장 분위기도 되게 중요하잖아요, 인터머시 코디네이터분들이 투입되면 서로 간에 존중하는 태도나 민감한 부분을 어떻게 조율해 가는지를 저희도 현장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단순히 노출 장면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 스태프와 스태프 간의 소통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인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조금씩 개선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제가 다음 영화를 찍게 될 때 그런 직업군이 정착돼서 스태프 고용에서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면 일을 같이 너무 해보고 싶어요.

황미요조: 어떤 것이 규격화되고 제도화되고 산업화되는 것에 대해 반감도 있겠지만, 사실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문제의식이 확장되고 그 점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면서 왜 이것이 필요했는가의 질문을 공유하고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걸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제도나 사회 문화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게 이런 문제를 바꿔 나가는 데에 목말랐던, 어떻게 보면 영화산업 안에서 소수자였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반가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오늘 와서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던 게 상영 전에 임선애 감독님을 만났을 때 영화가 너무 야한데 어떡하냐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웃음) 〈69세〉와 〈세기말의 사랑〉에서 모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문제화하고 주제화하셨잖아요. 사실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는 영화에서 많이 볼 수는 있거든요, 그런데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정형화되고 여성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여성의 섹스와 섹슈얼리티가 나왔던 거죠. 그래서 이런 주제들이 등장할 때 오히려 선언적으로 우리가 너무 판단하게 되는 위험이 있기도 한데 감독님은 계속 그런 문제들을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여성을 다룰 때 이런 문제까지도 다루는 게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 이런 고민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선애: 10대 때 고민하는 게 있고 20대 때 고민하는 게 있고 세대별로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아까 제가 그렇게 말했던 건 20대 때 나의 어떤 생각의 총집합을 이제 와서 다시 보니까 조금 유치하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69세〉나 〈세기말의 사랑〉 모두 제가 의도하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해야겠다, 이런 건 사실 아니었는데 이렇게 묶일 수도 있겠구나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 ‘그거에 대하여’잖아요, 여자들끼리 있을 때 우리끼리도 ‘오늘 그거 할 때 됐어’, ‘그때 내가 그걸 느꼈잖아’ 이러면서 왜 우리도 대명사로 쓸까? 생리, 오르가슴, 섹스와 같은 고유 명사가 있는데, 생각해 봤는데 그것조차 우리끼리도 말하기는 조금 어색한 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거‘라는 대사로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 대입을 해보면 알게 되겠지만 실제로 그게 생리를 말하는 거였는지, 오르가슴을 말하는 거였는지, 섹스를 말하는 거였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문제의식에서 불편함과 곤란함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그래서 〈69세〉에서 여성 노인의 성에 대해서 다룬 것도 어떤 면에서는 똑같이 피해를 본 피해자인데 왜 또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거였고 〈세기말의 사랑〉에서도 장애인 여성 자체가 그 소재라기보다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장애 여성을 질투하는 비장애인 여성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그냥 이렇게 일반적인 생각을 비틀어 보는 걸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두 영화를 만들게 된 거고요.

 

관객: 우연한 기회로 작년에 다른 영화제에서 〈확장기〉를 보고 너무 좋아서 이번에 또 보러 왔어요. 영화를 처음 보게 되면 아무래도 주인공 명기에게 먼저 시선이 가게 되는데 저는 두 번째로 보는 만큼 도에게 더 눈길이 가고 도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도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구상하실 때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 도가 매번 지겨운 게 싫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으로 명기가 플라스틱이 된 게 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만족스러운 결말인 건지 그 부분에 대한 감독님의 해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나영: 도의 이름은 칼 도(刀)자에서 따온 건데요, 관계를 칼같이 잘라내는, 끊어버리는 성격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구체적으로는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인물로 설정했는데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일부러 지겹다면서 상처 주게 행동하고 그 행동을 또 용서받음으로써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 식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반복하는 거죠. 그리고 결말에서 명기가 플라스틱이 되는 건 자신이 미세 플라스틱이 돼서 바다에 퍼지게 되면 도가 어디에 있더라도 자신을 떠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걸 나름 의도한 거라고 봤는데요, 사실 도는 그걸 전혀 이해할 수 없겠죠. 그래서 명기의 의도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명기는 그냥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시도하고 사랑받으려고 애를 쓰긴 하는데 계속해서 어긋나고 실패하고 결국은 관계가 틀어져 버리는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왓 더 케이크!〉 스틸컷

 

관객: 〈왓 더 케이크!〉에서 귀신인 지우가 살아있을 적 본인의 삶을 회상하면서 바쁜 와중에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다가 제대로 다 못 먹고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은지에게 너라면 이런 배고픔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우린 조금 닮아있다는 말을 해요.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 괴로운 것과 먹는 걸 피하고 싶은데 자꾸만 먹게 되는, 어떻게 보면 서로 반대되는 모습인데 결국에는 식욕이라는 공통점으로 고민이 많았던 두 인물을 이어지게끔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주영: 너와 내가 닮았다는 맥락과 배고픔을 연결 지었을 때, 음식에 대한 연결이라기보다는 꿈에 닿고 싶은데 결국은 가닿지 못한 두 인물이 서로를 닮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은지도 배우 지망생으로서 상업 장편영화에서 데뷔하고 싶고 지우도 자기만의 케이크 가게를 차려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손님에게 내보이고 싶은 각자의 꿈이 있는데 결국은 그 꿈에 가닿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배고픔이 저는 물리적인 배고픔보다 훨씬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마 우리가 닮았다고 하는 지우의 말은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합니다.

 

관객: 〈확장기〉의 명기가 신체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도에게는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혼자만의 비밀이 있던 거였는지 약간의 모호함이 있었는데 이런 모호함을 의도하신 건지 궁금했고요. 그리고 명기는 어쨌든 자기 신체에 대해 자기 긍정이라기보다는 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가 더 1순위의 목적에 있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명기가 인간으로서의 신체가 아닌 플라스틱 소재의 몸을 갖게 되면서 오히려 ‘몸’, ‘신체’라는 것에 대해 탈피해서 결국에는 부서지는 것에 대해 저는 명기 자신도 자유를 얻고 해방감이 들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김나영: 명기는 굳이 신체의 비밀을 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썼어요. 명기는 도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지 않으면 도가 자신을 떠나버릴 것만 같은 불안이 되게 큰 인물인데 그 비밀을 알게 되면 도가 자신을 그냥 포기해 버릴 것 같아서 부담감 속에서 계속 숨겨왔을 거라고 생각했고 이걸 일부로 모호하게 표현하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이 인물이 어떤 신체적 특징이 있는지 일일이 설명하는 식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그렇게 연출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렇게 해석해 주셔서 저는 정말 기쁘고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명기가 플라스틱이 돼서 다 부서지는 결과가 도의 곁에서 계속 있고 싶어서, 있을 수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저는 설정을 했고 결국에는 스스로도 행복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해방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황미요조: 오늘 흥미로운 영화들과 재밌는 대화 나눴는데요, 앞으로도 여성감독네트워크 영화제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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