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챙이〉리뷰: 낚이는 꿈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내가 낚시꾼인 줄 알았다. 큰 붕어 하나가 발밑을 지나가면 바로 낚아채야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길래 떡밥도 공들여 뭉쳐 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신 차려 보니 나는 물 안에 있고 수면 너머 올려다보이는 낚시꾼의 얼굴은 흐릿하다.
낚시 유튜브 채널 ‘호사마’를 운영하는 ‘호준’의 처지가 그러하다. 구독자 5만 명을 모을 정도로 잘 나가는 덕에 낚시터 사람들은 호준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과 사인해달라는 사람들. 그리고 나름의 비결을 담아 만든 떡밥에 홀리듯 낚여 드는 물고기들까지. 호준의 통발은 낚시터 주변이라면 어딜 가나 묵직하다. 그런데 마음은 왜 이리 썰렁한지.
낚시터 밖의 호준을 들여다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10년 전 독립영화 배우로서 상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일이 끊기다시피 하다. 이제는 ‘호준’보다 ‘호사마’로 불리는 일이 많다. 낚시꾼으로 살 땐 통발이 빌 날 없는데, 배우 호준의 통발에는 찾아와 주는 이 하나 없다. 낚싯대를 쥐고 있길래 낚아채는 쪽인 줄 알았더니, 배우일 때 호준은 그저 입을 벌린 잔챙이 물고기다.
그런 호준의 옆에 우연히 ‘남감독’이 앉는다. 호준이 낚시터에 오기 직전 오디션을 봤던 작품의 감독이다. 주연배우 ‘희진’을 낚은 그는 곳간이 두둑한 낚시꾼 같지만, 낚시터에선 알아보는 이 없고 찾아와주는 물고기도 없다. 호준만이 그의 떡밥을 한 톨이라도 먹으려 달려들지만 남감독의 눈에 호준은 그저 잔챙이다. 통발에 담아놓고 싶지가 않다. 세상에 도전하는 우리가 낚시꾼이라는 착각은 그토록 우습다. 사소한 떡밥에 몸을 내던지고, 크기와 무게와 어종으로 평가받는 우리는 누가 뭐래도 물고기다.
그것이 서글픈 것과 별개로, 눈앞에 나타난 낚시꾼을 모른 체하기엔 배우로서 호준은 너무 배가 고프다. 남감독과 희진의 옆에서 밤을 보내게 된 것이 그에겐 꼭 물어야 할 바늘이다. 오디션장도 아닌 허름한 저수지 비닐하우스에서, 남감독을 앞에 둔 호준은 희진의 상대역으로 리허설을 펼친다. 아무도 시킨 적 없고 남감독의 눈은 취기에 몽롱하지만 호준은 조금이라도 큰 물고기처럼 보이기 위해 힘껏 몸을 부풀린다. 낚이는 꿈을 꾼다.
깨어날 시간이다. 손뼉 치며 호준의 연락처까지 받아 간 남감독의 감동은 다음 날 취기와 함께 증발해 버린다. 떡밥은 흩어져 찾을 수가 없다. 구질구질할 만큼 매달려도 보지만 잔챙이 따위가 물고 있는 낚싯바늘, 그까짓 거 빼서 던져버리면 그만이다. 낚이고 싶다는 꿈은 때로 저주 같다. 무엇도 약속하지 않는 떡밥을 찾아 헤매며,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는 시간을 저 밑에서 잠수하며, 잔챙이는 버티듯 산다.
영화는 잔챙이의 아픔을 겪고 태연한 척 낚시꾼이 되어 앉아 있는 호준의 얼굴을 물에 비춰본다. 분명 잔챙이의 얼굴이지만 애써 낚시꾼인 척한다. 버티는 시간을 인내라는 단어로, 평가받는 시간을 성장이라는 단어로 둥글게 빚어 놓는다. 남감독을 놓아버리기로 한 건지 큰 물고기 희진이 버린 듯한 대본이 호수 위로 넘실거린다. 호준은 본능적으로 낚싯대를 잡아 든다. 낚을 수 있을까? 혹은 낚일 수 있을까? 둘 중 어느 쪽도 결말로 보여주지 않는 영화처럼, 오늘도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정성껏 낚싯줄을 던진다. 낚이거나 낚거나 낚이지 못하거나 낚지 못하거나. 네 구절이 무작위로 재생되며 삶은 흐른다. 잔챙이에게나 낚시꾼에게나 참 잔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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