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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풀〉: 균열 내 보기

by indiespace_가람 2025. 6. 30.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균열 내 보기

〈풀〉 그리고 〈피의 연대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無知)에서 샘솟는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파고들어 똑바로 마주하기 두려워진다. 무지가 낳은 두려움, 두려움에서 비롯된 회피, 회피가 모여 만들어 낸 사회의 거대한 인식과 편견. 지독하게 자리를 꿰차고 있는 뿌리 깊은 통념을 완전히 깨부수지는 못하더라도 조그마한 균열은 낼 수 있지 않을까. 피의 연대기는 이런 작은 균열을 내보고자 하는 영화다.

 

영화 〈풀〉 스틸컷

 

대마는 마약이라는 한국 사회 속 당연시되는 명제에 의문을 던진다. ‘유명 연예인의 대마초 흡연과 같은 헤드라인과 그에 따른 단속 및 예방에 관한 뉴스 기사를 자주 접한 탓인지 대마초하면 풀의 이미지보다는 마약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저 한해살이 풀일 뿐인데 왜 대마초는 불온한 존재가 되었을까. 이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한 영화는 지금껏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대마초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하나씩 풀어내며 사회적 공포와 혐오에서 비롯된 인식을 바꿔보려 한다.

 

대마초 재배는 무조건 불법인 줄 아는 이들에게 비무장지대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농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마초가 지구 생태와 의학용 약물에 이로운 풀이라는,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대마초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도움을 주는 풀이지만, 이런 효능을 모른 채 전부 마약류로 묶여 금기시되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기에 이들은 계속 문 두드린다. 계속 씨를 뿌린다.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피의 연대기는 편견과 금기의 영역이었던 여성의 생리와 몸에 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부수고자 한다. 왜 한국에서는 패드형 생리대가 일반적일까. 외국처럼 탐폰과 생리컵이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가 삽입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보람 감독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는 질문에 질문을 물고 여전히 여성들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로 남아있던 여성의 생리와 몸에 관해 두루 탐구한다. 같은 여성임에도 잘 알지 못했던 생리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고 다양한 생리용품의 존재를 인지하며 낯설더라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은 결국 우리, 여성의 몸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고 약한 금이라도 여러 군데 생기면 결국에는 와장창 깨져버리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사회도, 우리도 조용히 진동하고 있다.

 

* 영화 보러 가기: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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