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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귤레귤레〉 / 귤레귤레: 버거운 날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인사

by indiespace_가람 2025. 6. 23.

〈귤레귤레〉리뷰 / 귤레귤레: 버거운 날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인사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때로 새장 안에 갇힌다. 눈을 부릅뜨고 앞을 바라보아도 수많은 창살이 시야를 방해한다. 과거의 상처, 내 옆의 사람, 주변의 시선, 그리고 나의 마음하나하나가 세밀한 창살이 된다. 날개 퍼덕일 힘도 없어 그저 주저앉아 있을 때쯤, “인연이라는 작은 손이 막막한 살 사이를 벌려준다. 함께 날아보자고 날개를 펼쳐준다.

 

 〈귤레귤레〉는 대식과 정화, 두 사람 각자 삶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과거의 포기와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대식은 따발총 같은 잔소리를 내뱉는 상사 곁에서 수발을 드는 직장인이 되었고, 현재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정화는 알콜의존증 전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혼한 여성이 되었다. 영화는 이 지친 새들과 함께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상황은 그리 좋지 않게 흘러간다. 원치 않는 여행이었던 대식은 자꾸만 좋지 못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정화의 전남편 병선은 불평불만투성이에 주변 분위기를 헤집어 놓는다. 심지어 둘은 대학 시절, 정화가 대식을 대차게 까버린 사건이 있는 미묘하고 불편한 관계. 이 모든 불편함은 감독과 배우들의 유치하고 세밀한 말장난으로 풀어진다. 거북한 상황이 길어질 때쯤, 카메라는 상황을 관망할 수 있는 위치로 자리를 옮겨간다. 관객이 사건들을 아니꼽지만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고대하던 열기구가 날씨로 취소된 날, 상사와 떨어진 대식과 전남편을 떠나보낸 정화는 카페에서 독대를 갖게 된다. 공통된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잇는 둘은 그동안 짓지 못했던 커다란 웃음을 보인다. 그동안’, ‘자기야로만 불리던 여자는 대식에게 처음으로정화라 불려본다. 남자구실을 못 한다며 타박받던 대식은 정화 앞에선 누구보다 호탕해진다. 웃고 안으며 낮을 보내고, 울고 키스하며 밤을 보낸다. 사람과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영화는 그간 인물들에게 보지 못한 모습들을 열거하듯 보여준다. 모질었던 삶 속에서 서로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주며, 옅은 빛 안에서 날갯짓을 시작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열기구는 하나둘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연락을 받은 대식은 급히 정화에게 문자를 남기지만, 상사의 재촉에 결국 정화를 두고 떠나버린다. 이미 투어에서 빠지게 된 정화는 다시 돌아온 전남편의 차에 올라타 길을 나서게 된다.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가게 된 순간, 대식은 열기구를 탄 채 하늘 위에서, 소리 없는 날을 이어왔던 대식은 큰 소리로귤레귤레(Güle-Güle: ‘웃으며 안녕이라는 뜻의 튀르키예 말)’를 연거푸 외친다. 하늘을 수놓은 열기구들 아래를 달리던 정화는 차를 세우고, 전남편의 공간에서 벗어나 하늘을 바라본다. 두 사람의 거리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지만, 어쩐지 둘의 모습은 어제와 같이 겹쳐 보인다.

 

영화 〈귤레귤레〉 스틸컷

 

 〈귤레귤레〉는 구질구질하고 갑갑한 삶을 이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갉아먹는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다. 사람 때문에 갇히고, 사람 때문에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은연민사랑안에서 흠뻑 적셔진다. 서툴지만 조금씩, 다시금 발을 내딛기 시작한 대식과 정화처럼, 영화는 우리에게도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모난 부분을 문질러주고, 부족한 자리에 서로의 마음을 덧대어주며, 오늘을 건너갈 힘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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