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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세요
〈내가 누워있을 때〉 그리고 〈솧〉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조심히 가. 헤어질 때마다 나는 친구에게,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말하면서도 우리는 안다. 조심히 가라고 했다고 조심히 갈 순 없다. 조심한다고 조심할 수 있는 건 뜨거운 냄비를 옮길 때 정도의 위험이다. 팔팔 끓는 물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이 세상 곳곳에는 어쩌지 못할 불안이 도사린다. 이를테면 맞은편 저 남자가 갑자기 나를 때려죽이면 어떡하지 하는. 그런 불안은 감정보다 구조에 가까워서 조심 따위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영화 〈솧〉의 ‘미경’도 구조 아래에서 무력하다. 배우 미경은 오디션을 본다. 살해당한 동거인에 대해 심문을 받는 배역이다. 신기하게도 극 중 동거인의 이름도 ‘미경’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우연이 감독의 입을 빌려 운명처럼 미경에게 다가온다. 감독의 전 여자친구 이름도 미경이었단다. 미경이 불안할 때마다 단추를 쥔다고 하니, 대본에서도 미경의 단추가 하나 없어진단다. 또 마침 대본이 수정되었단다. 노출 장면이 추가되었단다. 우연일지 의도일지 모를 불안이 하나둘 미경의 목을 졸라온다. 초커가 이렇게 답답했었나. 감독이 원하는 모양으로 주물러지는 기분에 벌떡 일어나 보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영화라는 작은 세계. 그곳에서 감독은 조물주다. 구조의 꼭대기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신의 손길을 일개 배우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라는 기울어진 관계에서 절망이 아래로 굴러오는 건 중력만큼 당연한데. 〈내가 누워있을 때〉의 ‘선아’와 ‘지수’, ‘보미’ 역시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절망을 바라본다. 더 위로 올라가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유리천장에 머리를 찧고 마는 회사원 선아. 벽장 밖에서도 당당하고 싶은 성소수자 지수. 애는 둘이 만들었는데 사산의 아픔은 홀로 짊어져야 하는 보미. 제각기 절망을 업은 세 사람은 어쩌다 하나의 자동차로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여정 곳곳 튀어나오는 새로운 절망에 대처하면서 깨달아간다. 각자의 절망조차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는 걸. 같은 구조 안에 살아가는 그들이 나눠 가지는 교집합은 정확히 세상만큼 드넓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흠칫하고, 밤늦게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몸이 굳고, 혼자 밖을 나가는 네가 걱정돼 재빨리 뒤따라 나간다. 언제 문을 따고 쳐들어올지 모를 폭력에 맞서 나란히 선다. 몸부림치는 일에 신물이 났는데 옆을 보니 같이 버둥대는 너희가 있다. 그걸 목격한 세 사람은 다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세 사람 옆에는 또 누가 있는가. 두 영화를 보는 내내 미경과 선아와 지수와 보미가 크게 다칠까 긴장한 내가 있다. 〈내가 누워있을 때〉를 보고 인물들과 동행한 듯 몸이 피로했다던 내 친구가 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조심히 가”를 주고받는 우리가 있다. 이 지점을 휴게소 삼아 잠시 몸을 뉘어 눈을 붙였다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조심히 가”만큼, 떨어져 나온 단추만큼, 기름 없는 자동차만큼 연약한 우리지만 그래도 우리 100m만 더 가볼까? 세상 참 기울어졌대도 우리라는 무게를 실어 조금씩 수평을 맞춰볼까? 근데 알지? 밤늦게 혼자 운전할 땐 조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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