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소소대담] 2025. 9 시작되는 가을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영화들
*소소대담: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의 정기 모임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기록입니다.
참석자: 새송이, 표고, 느타리, 목이
9월을 지나서 10월에 도착하며 우리가 감상한 영화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찾아온 영화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관객으로서의 자리를 가늠한 시간이었다.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대화의 조각들을 나누어본다.
*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표고: 저는 〈겨울날들〉이라는 한국 영화를 봤는데, 최승우 감독의 신작이고 전작으로는 〈지난 여름〉이 있어요. 프로그램 노트(정성일 선생님)에서 “어떤 사건도 생기지 않고, 누가 주인공인지도 알기 어렵고, 대사도 없고, 묵묵히 겨울 한 철을 지낸다. 노동의 출퇴근…” 같은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궁금해서 봤는데, 진짜 90분 가까이 대사가 한 마디도 없어요. 크게 세 인물이 나오는데, 서울역 부근 어딘가에서 먹고 자고 씻고 출근하고, 다시 퇴근해서 먹고 자고 씻고 출근하는 일상이 무한 반복돼요. 기교는 전혀 없고, 고정된 카메라 안에서 겨울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여주죠. 다 우리 또래의 청년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개인의 사색적인 삶처럼 보이기도 해요. 셋의 직업도 달라서, 해 뜨면 나가고 해 지면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각자 다릅니다. 다만 대사도 없고, 영화가 뭘 말하려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호불호가 크더라고요. 왓챠피디아 평점도 0.5점부터 5점까지 극단적이었고요. 저는 5점을 줬던 것 같아요.
느타리: 전작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고, 이번 작품에는 ‘겨울’이 들어가네요.
표고: 맞아요. GV 때 질문이 끝없이 나왔는데, 질문하는 분들이 전작을 보고 온 분들이더라고요. 동질감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남도영화제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것 같더라고요. 특이했던 건, 출근 장면에서 버스나 지하철이 꽉 차 있는데, 버스에서 어떤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거예요. 영화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GV에서 누가 “그 장면 서사적 의도로 넣으셨나요?”라고 묻자 감독님이 “그런 장면은 넣은 적 없다”고 하시고, 진행하시던 선생님도 “없는 걸로 안다”고 하셨어요. 저도 분명히 들었거든요. 해석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이건 뭘까요? 좋은 영화적 체험이었어요.
새송이: 좀 무서운데요.
느타리: 관객분이 실제로 우셨을 수도 있겠네요. 〈올파의 딸들〉 감독인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신작〈힌드의 목소리〉가 이번 베니스에서 화제가 됐잖아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가져가는 지점을 전작에서도 좋아했는데, 이번에도 희생자에 대한 존중과 애도가 충분히 느껴지더라고요. 스포라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고, 제 옆에서 어떤 분은 오열하시기도 했어요. 저도 울먹였고요. 부산 상영관에서 관객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으로 나오는 건 처음 봤어요. 영화는 정말 좋았고, 개봉도 한다고 하네요.
목이: 저는 차이밍량 감독의 〈집으로〉를 봤어요. 차이밍량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다큐멘터리고 대사가 아예 없어요. 현지의 집을 보여주기만 해서 연출자의 개입이 전혀 없다고 느껴지니 해석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현지어가 두세 마디 나오는데 자막도 없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남았어요. 왓챠피디아 평에는 ‘따뜻한 영화’라는 반응이 많은데, 저는 그 풍경들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아 공감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새송이: 따뜻하게 느낀 분들은 왜 그렇게 느꼈을지 궁금하네요.
느타리: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좋아해요. 곧 사라질 극장의 이야기를 천천히 보여주는데, 그냥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담아도 왠지 울림이 있더라고요.
새송이: 마민지 감독님의 〈착지 연습〉 정말 좋았어요. 성폭력 생존자 여성들이 연극·무용 치료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치유하며 자립하려는 워크숍 과정을 담았는데, 그 과정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시행착오와 갈등까지 솔직하게 담아 현실적이었어요. 생업과 자신을 살리는 활동 사이에서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도 또렷이 드러나고요. 회복의 과정을 반짝이게 포장하지 않고, 삐뚤빼뚤한 길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좋았어요. 촬영도 훌륭했고, 움직임 워크숍에서 타인의 몸과 접촉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GV에서도 질문이 많았는데, 울먹이며 질문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마민지 감독님이 부산국제영화제 성폭력 사건도 언급하셔서, GV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구나 생각했어요. 이 작품도 어딘가에서 또 상영할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추천드립니다.
느타리: 라두 주데의 〈드라큘라〉도 인상적이었어요. 상영 중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가는 걸 처음 봤고, 작은 관이었는데 80석 남짓 중 절반 가까이가 나간 듯했어요. 그런데 멋진 영화였어요. 전에 부산에서 라두 주데 감독 영화를 봤을 때도, 보통 감독 인사 영상 대신 한국의 노동 문제를 다룬 짧은 영상을 붙여와서 독특하다고 느꼈거든요. 이번 작품은 모두가 아는 ‘드라큘라’를 찍으려는 한 감독이 각본 각색을 AI에 맡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이렇게 바꿔봐” 하면 그 버전이 에피소드처럼 나오고, 또 다른 변주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묘사도 과감하고 성적 이미지의 활용에 대한 비판, AI 활용에 대한 비판, 노동 문제까지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상영 3시간 가까이 지나 마지막 20분쯤에야 비로소 ‘영화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까지 버틴 사람만 볼 수 있는 장벽이 있죠.
표고: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주인공은 영사 기사인 후세인 할아버지인데요. 주인공 후세인이 일하는 극장은 광주극장 같이 정말 오래된 극장인데, 독일에서 젊은 사람이 와서 “이 극장을 지역민들과 함께 재개발 프로젝트로 다시 살려보겠다”고 해요. 장비도 인력도 전부 현지 시스템에 맡기자고 해서, 후세인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진두지휘를 해요.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영사기만큼은 현대식으로 들여와야 해서, 그 독일인이 독일에서 엄청난 전문가를 데려옵니다. 할아버지 눈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자본가로 보이는 사람이죠. 독일어로 영사기를 들여와 세팅을 하는데, 여기서 세대 갈등도 생기고, 돈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도 생기고, 필름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갈등도 빚어져요. 영사기가 아주 좋은 필름 영사기라 둘이서 안내판을 보며 맞춰보는데, 할아버지는 언어가 안 돼서 모르겠고, 그 사람은 언어는 되지만 방식은 모르겠는 상황인 거예요. 충돌이 잦아질 수밖에 없죠.
결국 부품이 없어서, 할아버지가 팔레스타인 전역을 돌며 부품을 빌려달라고 극장들을 찾아다니는데, “안 돼요, 버렸어요, 이미 끝났어요”라는 답만 돌아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 쪽 어떤 극장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부품이 있다더라. 가져와야겠다” 하고 넘어가려 하는데,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국경을 넘기가 너무 힘든 거죠. 결국 국경수비대에서 언어가 안 통해서 못 알아듣고 못 가요. 그렇게 영화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개관 준비를 해가고, 결국 “할아버지의 도움이 없어도 되겠다”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영화를 상영해버립니다. 옛 시대의 사람이 옛 영화인으로 잊혀져 가는 거죠.
이 장면들을 리클라이너 좌석에 누워 보는데, 기분이 참 묘했어요. 요즘은 영사실도 없이 컴퓨터로 재생 버튼만 누르면 바로 영화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영사기가 아니라, 직원이 패드를 들고 다니며 재생을 누르면 상영관에서 바로 상영되는 그런 시스템이라고 하더라고요. 재개장 과정에서 우당탕탕하는 장면들, 순간들이 모두 세대의 끝과 단절을 상징하는 듯 영화적으로 표현돼서 흥미로웠어요.
* 2025년 9월 극장에서 만난 영화들
〈비밀일 수밖에〉
[리뷰]: 세공한 마음을 애써 찾지는 말자(박은아)
[단평]: 상처를 줄 만큼은 알고, 받아들일 만큼은 모르는(안소정)
[뉴스레터]: Q. ⏱️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 (2025.10.1)
새송이: 마지막에 음악과 미러볼이 돌 때 약간 아쉬웠어요. “정말 저렇게밖에 마무리할 수 없었을까?” 싶어서요. 다만 ‘제니 아버지’ 역 배우(박지일)의 연기는 정말 리얼해서 놀랐어요. 영화 자체는 의아한 지점이 많았고, 요즘은 부모가 자녀에게 역으로 커밍아웃하는 이야기가 늘어난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장르 톤이 산에서의 추격전으로 스릴러처럼 가다가 다시 가족극으로 마무리되는 등,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마무리를 잘 짓지 못한 듯했어요. 예고편을 보고 기대했는데, 결말에 완전한 악인이 없고 결국 어머니와 아들이 얼싸안고 끝나는 방식이어서,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노래방 전주와 미러볼 이미지, 그리고 “제니 아버님 연기 좀 살살하세요”라는 왓챠피디아 댓글뿐이었어요. 아쉬움이 큰 영화였습니다.
〈THE 자연인〉
[리뷰]: 없는 진짜(강신정)
[단평]: 정체를 바꾸는 공포(안소정)
[뉴스레터]: Q. 📹 좋댓구알 부탁드려요? (2025.9.3)
새송이: 〈THE 자연인〉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더라고요. 재미있었던 건, 〈THE 자연인〉에 이란희 감독님과 신운섭 프로듀서님이 나오고, 신 프로듀서님이 〈3학년 2학기〉에서는 마지막에 사장으로도 나오세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들에 같은 인물이 겹치니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고, 중장년 남성 역할의 바리에이션도 흥미로웠어요.
표고: 〈THE 자연인〉의 주제는 ‘의심’이라고 생각해요. 상대의 괴이한 행동을 보며 “가짜로 연기 중인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지막 반전에서 새로운 레이어가 생겨요. 유튜브 산업과 최근 사회를 풍자하는 큰 영화 같달까요.
새송이: 되게 웃겼다가 섬뜩했다가, 집에 와서 곱씹으니 레이어가 다양하더라고요. 신기한 영화에요.
느타리: 서독제에서 그 영화가 대상을 받았잖아요. 1인 제작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유튜브 같은 1인 콘텐츠 시대와도 맞물려요.
새송이: 배경이 숲과 자연인데, 전기 끌어오고 촬영하려면 고생이 많았을 텐데 1인 제작이라니, 정말 신기했어요.
〈3학년 2학기〉
[리뷰]: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남홍석)
[단평]: 지워진 이름들의 세계(강신정)
[뉴스레터]: Q. 🏭 아이들은 (공장에서) 자란다? (2025.9.24)
새송이: 〈3학년 2학기〉는 캐스팅이 탁월했어요. 겉으론 크게 변화가 없는 인물 하나를 집요하게 따라가는데,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줘요. 공장 안 납땜 과정이나 몸의 움직임 같은 디테일도 좋았고요. 공장 노동자를 다룬 극영화가 흔히 환경의 열악함이나 산업재해 위험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는 ‘노동하는 몸’의 리듬과 생각을 비춘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풀칠하는 거야”라며 손목 돌리는 연습을 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여긴 미래가 없어”라고만 하지 않고, 그 사이 어디쯤에 닿은 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준 점도 좋았고, 말랑한 인상의 배우가 잘 어울렸어요.
표고: 제가 다니던 학교는 부모 직업의 절반이 노동자, 절반은 화이트칼라였어요. 입시를 앞둔 시기에 격차가 예민하게 느껴졌고, SNS 활용이 흔해지면서 비교는 더 심해졌죠. TV에서는 화려한 삶만 비추고, 내가 아는 세계,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안 나왔어요. 〈3학년 2학기〉를 서독제에서 보며 이런 영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능 끝나고 단체관람 하러 온 선생님과 학생들도 봤었는데, 무척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새송이: 초반에 공장을 그만두고 아버지 편의점으로 들어간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았어요. “놀기 좋아하는 애” 같은 단정이 아니라, 그도 나름의 생각과 선택이 있다는 걸 보여줘서 편안했어요.
느타리: 배경이 인천이라 더 와닿았어요. 서울 외곽에 공단 도시들이 많잖아요. 감독님이 그 지역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하신 것도 느껴졌고요. 악역이 없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노동 관련 작품에서 전형적 악성 고용주가 등장하곤 하는데, 여기선 모두 인간적인 면모가 있어요. 월급날 다 같이 기뻐하고요. 청소년 노동자들이 그라인더 같은 위험한 장비를 다루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보는 내내 불안했어요. 실제 사고는 그런 ‘전조’가 쌓여 일어나는 것인데, 영화가 그 감각을 지속적으로 전달한 점이 섬세하다고 느꼈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합니다.
표고: 공장들이 수능 끝난 고3들을 한 철 쓰고 보내고 다시 새로 데려오는 풍경이 떠올라요. 우리 지역도 그랬거든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랑처럼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씁쓸하죠.
새송이: 맞아요. 1년 먼저 일한 선임 두 명이 설명회에 와서 “일하러 가봐야겠습니다” 하고 떠나던 그 표정, 아직 학생인데 노동의 피로가 누적된 얼굴이 너무 섬세하게 포착돼 있었어요.
표고: 엄마 캐릭터도 좋았어요. 빠듯한 형편에 큰아들이 공부했으면 좋겠지만, 둘째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양보하고, 너는 정규직 되고 실습 통과하면 보너스로 보증금 마련하자는 이야기… 그 현실감이 좋아요.
새송이: 서사를 위한 갈등을 억지로 만들지 않은 점이 가장 좋았어요. 어머니와의 대립, 공부 잘하는 동생과의 경쟁 같은 전형적 장치를 건드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내면의 변화와 선택에 집중했어요. 굳이 비교하자면 〈비밀일 수밖에〉가 갈등을 긁어모아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해야 할 이야기에 집중했달까요.
느타리: 저는 평일 저녁에 봤어요. 관객분들이 ‘퇴근 후 노동에 대한 영화를 보러 온’ 직장인 포스라, 좁은 공간에 모인 그 순간 자체가 멋졌어요.
목이: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다음 소희〉나 〈해야 할 일〉 같은 영화들이 매년 한 편씩은 나오잖아요.
〈3670〉
[리뷰]: 우리의 모든 처음(서민서)
[단평]: 시간의 지리학(문충원)
[뉴스레터]: Q. 📱 종로3가 6번 출구, 7시에 만나? (2025.9.17)
[인디토크]: 문화기술지로서의 영화(남홍석)
새송이: 〈3670〉은 추천을 많이 받아 보러 갔는데, 사소하지만 아쉬운 지점이 있었어요. 클럽 장면에서 ‘아기 오리’ 대사를 꼭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했어야 했나 싶었고, 코인노래방 장면에서도 이미 장면들로 느낀 감정을 굳이 말로 또 설명하는 느낌이었어요. 관객을 좀 더 믿고 대사를 덜어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해요. 다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좋은 대사도 많았고,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장면은 배우의 연기와 함께 괜찮았어요. 가사가 내용과 너무 직결되어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요. 전반적으로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목이: 캐스팅이 정말 좋았어요. “북한 남자들 잘생겼냐”에 “우리 장군님을 봐라” 같은 농담도 재미있고, 맨날 “이모 보러 간다”는 설정도 웃겼어요. 저는 ‘인생의 회전목마’를 부르는 장면은 좀 견디기 힘들었지만요.
표고: 〈3670〉을 보고 제 취향을 알게 됐어요. 절박한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좋아하더라고요. 남한에 건너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고,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첫 모임에서 설레고 쭈뼛대며 따라 하다가 갈등을 겪고 해결하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새송이: 원래 지내던 집단과 멀어진 후, 만남 앱에서 종로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터민을 만나 ‘선배’처럼 함께 가는 장면에서 “이 인물이 이렇게 성장했구나” 하는 아릿함이 있었어요.
느타리: 저는 ‘아기 오리’ 대사를 한 번에 못 알아듣긴 했어요. 그래도 영화는 좋았고, 올해 본 GV 중 가장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인디스페이스가 꽉 찬 것도 오랜만이었고, 영화를 여러번 보신 관객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이해영 감독님이 함께한 GV였는데, 감독님이 박준호 감독님도 생각 못 한 디테일을 짚고, 배우들도 주관이 뚜렷한 분들이라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이 영화가 문화인류학적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종로·이태원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해 영상화한 작업이라는 게 영화와 GV에서 모두 느껴졌거든요. 2만 명을 넘겼고, GV도 꾸준히 하고, 조사 과정에서 가게들과의 합의도 원활했다고 들었어요.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닐까 싶어요. 술자리 게임 등 문화를 다큐처럼 그려서 인류학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느꼈어요. 클럽이 인상적이라 실제로 클럽에 가봤다는 관객분도 있었고요.
표고: 〈3670〉은 소수자들을 공적인 자리로 호출하는 느낌이 있어요. 관객들에게도 그런 세계가 있음을 알고 한 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느타리: 감독님이 원래 새터민 교육 기관에서 봉사하셨대요. 새터민 커뮤니티와 퀴어 커뮤니티의 공통점을 느껴서, 두 커뮤니티를 함께 다루려 한 시도 자체가 인상적이었어요.
새송이: 공동체·소속감과 외로움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를 이렇게 세세하게 다룬 영화가 드물다 보니, 반가워한 관객도 많았을 듯하고요.
느타리: : 마케팅이 잘되어있어요. 전주 때부터 어디서나 〈3670〉 포스터를 봤어요. 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포스터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존재감이 일찍부터 쌓였고, 전주·디아스포라에서도 인기가 많았어요.
* 비디오 게임과 다큐멘터리
느타리: 게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다큐 영화제에서 주기적으로 화제가 되죠. 저도 그 흐름이 흥미로워서 보려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았어요. 작년에 DMZ에서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이 인기였잖아요. 넷플릭스에도 게임 안에서 만든 다큐〈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있었고요. 게임과 다큐가 만날 때 흥미로운 지점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번 DMZ 온라인에서는 단편 〈근무 중 이상 무〉를 봤는데,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NPC들을 탐구하며 노동과 마르크스적 사고를 이야기하더라고요. 목수 NPC가 하루에 13곳을 다니며 못을 박는 루틴 같은 것들요. 유튜브에도 있더라고요.
새송이: 저도 비디오게임을 좋아해서, 다큐에서 게임을 다루면 흥미로운 포인트가 꼭 생겨요. 매년 한 편은 나오는 것 같고, 나올 때마다 반가워요.
느타리: 코로나를 기점으로 더 확산된 느낌도 있어요. 대면 촬영이 어려워지며 온라인이라는 장소로 넘어간 흐름이랄까요.
새송이: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은 메타적인 순간들이 계속 발생해요. 누가 햄릿 대사를 하는데 다른 플레이어가 와서 총을 쏴 죽여버린다거나, 게임 캐릭터 외형을 각자 기괴하게 꾸민 채 오디션을 보러 온다거나. 목소리는 플레이어 본인의 목소리인데 아바타는 아니니까,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가 드러나는 게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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