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영재 형주〉리뷰: 현재 네 옆엔 내가 있고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알고리즘은 가령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끝엔 원하는 결말이 있을지 아직은 헤아릴 수 없지만 가능성을 열어둔 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는 수학으로 설명된다’고 단언하는 수학영재 형주는 엄마를 먼저 떠나보낸다. 형주의 계산으로 엄마는 16년을 더 살 수 있었지만 세상의 이치는 정확한 결괏값도 무심히 비틀어버리는 잔혹스러운 면이 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선 작아진다. 신체에 고립된 비애, 그것을 이겨내려는 열여섯 소년 형주는 어머니의 유전병을 물려받았다. 형주의 삶에 내려앉은 50% 유전 확률은 그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다. 생의 50% 그리고 사의 50%. 형주는 혹시 모를 경우의 수를 대비해 신장 공여자를 찾아야 한다. 엄마에게 맞지 않았던 자신의 신장으로 인해 불안감이 컸던 형주는 더욱더 확률에 빠져 들었고, 평생을 함께 살아왔으나 닮은 곳 하나 없던 아빠 민규의 머리카락을 뽑아 친자 검사를 의뢰한다.
어쩐지 닮은 점이 없더라니. 형주는 친자 확률 0.01%라는 수치를 확인한 뒤, 홀로 친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생존을 위한 여정이자 엄마가 남긴 잔상을 좇아가며 세 명의 친아버지 후보를 만난다. 확실한 답을 얻고 싶어 했으나 역설적이게도 형주의 입가엔 우물쭈물한 망설임이 가득하고, 그들을 만나며 알고리즘에 또 다른 오류가 발생한다. 모두가 아버지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 그리고 아빠로 살아온 민규가 쫓아온 것. ‘나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야’와 ‘내가 왜 네 아빠가 아니야’의 차이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지,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형주는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간다.

형주는 오류로 인한 공백을 메꿀 방법을 아직은 모른다. 병세에게서 꿈과 내일을 뺏어오는 일이 오직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라면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찾아 나서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떠나버린 자신을 지금, 옆자리에 붙들어 매주는 또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을 알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그리고 민규는 주장한다. 네가 태어날 때부터 나는 네 옆에 있었는데 왜 친아빠를 찾으려 하냐며, 그깟 신장 하나 못 구해주겠냐며 큰소리를 낸다. 더불어 민규는 가족을 안다. 형주처럼 멋진 능력은 없어도 관계를 믿고 나아가는 방법을 안다. 길고 긴 물음 끝에 형주는 결국 친아버지를 찾아내진 못했으나 여태껏 ‘민규 씨’라 칭해왔던 민규를 ‘아빠’라고 부르기로 마음을 정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망 또한 자연스럽다. 열여섯 소년에게 설정된 유전병은 비극적이었고 급진적 행동에도 당위성이 있었다.
“내 인생에는 수학이 통하지 않는다.”
형주의 대사를 통해 영화 전체를 슥 엿볼 수 있다. 내내 형주의 모든 선택에는 오류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주는 전보다 더 편안한 얼굴로 아빠와 마주 앉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마음 깊이 담아보았다면 〈수학영재 형주〉가 그리는 철딱서니 없는 반항에 딱밤 한 대 때려주고 싶고, 혼내는 말에 못 이기는 척 입을 삐죽 내밀며 밥을 먹고싶어진다. 포용에 매료되는 영화는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며 그 시간을 담아내는 캐릭터와 방식을 통해 언젠가, 누군가를 그리워할 관객에게 비슷한 결의 그리움을 선사한다. 아주 애틋하진 않더라도 흐릿한 기억을 모아 적당히 따듯한 감정을 가진 채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과거의 시간을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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