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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구석 마주하기
〈만남의 집〉 그리고 〈백차와 우롱차〉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타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외부 환경에서 각자와 닮은 구석을 자꾸만 찾으려 든다. 때로는 타자에게서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잠은 잘 잤니?”라고 물어본 직후 질문의 까닭이 자신의 불면증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그런 일상적인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다.

15년째 여자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 ‘태저’는 아끼는 후배 ‘혜림’의 제안으로 담당 수용자 ‘미영’의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빈소에서 미영의 중학생 딸 ‘준영’을 만난 태저는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머지않아 준영과 종종 만나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중 교도소에도 태저와 준영이 가깝게 지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태저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규정과 현실 사이의 거리, 차갑게만 보였던 인물의 따뜻한 면모, 〈만남의 집〉은 보편적인 주제의 감동을 과하지 않은 표현 방식으로 전달한다.
태저는 계속해서 준영을 만나면서도 그 이유를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관객 역시 중반부까지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할 따름이다. 휴일에 같이 식당에 간 둘, 태저는 준영에게 잠은 잘 잤냐고 묻는다. 이때 준영의 대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잠을 잘 잤냐고 묻는 건 자신이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한다고. 태저는 여관에서 홀로 지내면서도 당찬 생활을 이어가는 준영을 보며 자기 자신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준영의 방에 드는 햇살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햇살의 마음은 일방적이다. 당연히 준영이 미영을 보고 싶어 하리라 생각했던 태저는 ‘만남의 집’ 허가를 어렵게 얻어내지만 예상과 다른 준영의 반응에 당황한다. 서로의 마음과 고민을 충분히 담아낸 편지가 오간 후에야 준영은 만남의 집에 가기로 한다. 각자의 마음을 전달한 후, 태저가 버스 안에서 미소 짓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녀가 버스를 탄 것은 같은 번호의 버스가 지나칠 때 기사들이 서로 인사한다는 준영의 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준영의 시선을 이해했기에 태저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비로소 볼 수 있다. 네게서 나를 보는 것을 넘어 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타인은 진정한 의미의 거울로 거듭난다.

〈백차와 우롱차〉의 간호사 ‘은재’는 ‘타인’과 더불어 비인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소운’이 운영하는 찻집을 찾은 은재는 차를 마시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백차 ‘백호은침’은 어린잎으로 만들어서 솜털의 텁텁함이 입안에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어리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백차를 마시며 은재는 자신의 신규 시절을 회상한다. 우롱차 ‘동정오룡’은 아주 작게 말려 있지만 물에 들어가면 원래 크기로 펴진다. 구겨져 있지만 사실 온전한 찻잎의 모습은 역시 그러지 못했던 은재의 병원 생활을 상기시킨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차 일기’는 찻잎과 은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백차와 우롱차〉는 우리의 닮은 구석을 싱그럽게 우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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