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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수학영재 형주〉 : 가장 가까운 타인

by indiespace_가람 2025. 10. 25.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

〈수학영재 형주〉 그리고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엄마와 나는 똑 닮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모녀임을 알아볼 정도여서, 닮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정작 나는 그 말에 크게 공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찍은 나의 증명사진을 봤을 땐 엄마의 젊은 시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라는 타자의 눈을 통해 본 엄마와 나는 낯설고, 이상하리만치 일치해서 모녀라는 느낌이 강하게 살아 있다.

그런 엄마가 타인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분명 타인인데, 이상하게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닌 무엇이라는 감상이 있다. 엄마의 컴퓨터에서 열어 본 그의 사진에서는 내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왜소하고, 더 선한 인상으로 존재했다. 우리 엄마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모르는 여인으로 보인 짧은 순간이었다.

 

영화 〈수학영재 형주〉 스틸컷


까까머리의 고등학생 ‘형주’는 아빠를 타인으로 호명하는 인물이다. 아빠라는 그 흔하고 당연한 호칭도 입에 담지 않고 “민규 씨”라고 부르지만, 이들 부자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그리고 여느 사춘기가 그렇듯 형주가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부모를 의심하고 타자화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혈연이라는 직감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민규의 친자가 아님을 확률로써 확인한 형주는 뿌리를 증명하고자 나선다. 후보는 세 사람이다. 엄마가 자신을 잉태했을 시기에 만난 ‘병준’, ‘범호’, ‘동섭’. 공교롭게도 이들은 1년이 넘게 백수 생활 중인 민규와는 다르게 멋들어진 직업을 가졌다. 학예사, 대학 교수, 바텐더. 당장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여정 속에서, 언제나 숫자를 곧 진실처럼 믿었던 형주는 직감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형주는 ‘저 멋진 남성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라는 작은 기대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스틸컷


그렇다면 부모와 정말 철저한 타인이 될 수 있을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격렬히 타인으로 분리되고자 하는 모녀, ‘수경’과 ‘이정’의 이야기다. 제목처럼 그저 같이 살아내야 하는 숙명으로 얽혀 있다.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상처로 점철된 남만도 못한 관계인데도 이정은 고장난 것처럼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한다. 서로를 거울처럼 반사하는 이 모순적인 애증 관계는 '타인화'가 결코 쉽지 않은 혈연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자식만큼,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 부모의 일부분이 있다. 타인에겐 아주 작고 사소한 일부일지라도 서로에겐 크게 다가온다. 형주에게도, 이정에게도, 그리고 한때 엄마가 부끄러웠던 나에게도. 돌이켜보면 부모를 향한 타자화는 나를 낳아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연결된) 그들이 오점 없이 그저 멋진 사람으로만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 영화 보러 가기: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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