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홍이〉 인디토크 기록: 아주 보통의 여자, 그가 엄마와 공존하는 방법

by indiespace_가람 2025. 10. 22.

아주 보통의 여자, 그가 엄마와 공존하는 방법

〈홍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5년 10월 10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황슬기 감독, 장선, 김선영 배우

진행 장성란 저널리스트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기록입니다.

 

 

엄마와 삶의 한때를 오래 보내 본 사람은 안다. 사랑을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모녀 관계가 얼마나 위태롭고 고달픈지. 그 안에서 얼마나 서로를 갉아먹기도 하는지. 그 관계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홍이는 치매 증상을 보이는 엄마와 어떻게 공존할까. , 앞으로도 엄마가 있을, 그리고 없을 수 있는 세상에서 홍이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많은 물음표를 던져준 영화와 함께 〈홍이〉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곁을 지켜본 사람이 인디스페이스에 많은 이야기를 안고 찾아왔다.

 

 

장성란 저널리스트(이하 장성란): 오늘 비가 오는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네요. 함께하는 소감이 어떠신지 한 분씩 여쭙고 시작하겠습니다.

 

김선영 배우(이하 김선영): 안녕하세요. 〈홍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장선 배우랑 감독님 개봉 축하드리고요.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보셨기를 바랍니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짧은 시간 동안 재미있는 얘기 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장선 배우(이하 장선): 비가 오는 날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오랜 인연이고 감사한 인연인데,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하게 돼서 (김선영) 선배님께도 너무 감사합니다. 자리 만들어 주신 분들께도 너무 감사하고요. 오늘 많은 이야기 나누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황슬기 감독(이하 황슬기): 안녕하세요. 〈홍이〉 연출을 맡은 황선영이라고 합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는데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는 김선영 배우님과 장선 배우님 모두의 팬이라 지금 팬심의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너무 떨리고 또 영광입니다

장성란: 김선영 배우님께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영화를 보셨는데, 오늘 이 자리를 위해서 어제 또 다시 영화를 보셨대요. 영화 어떻게 보셨는지 그리고 장선 배우님 연기도 어떻게 보셨는지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영: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0편을 몰아서 보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요. 어제 다시 봤는데 더 재미있었습니다. 〈홍이〉를 나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을까, 어젯밤에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제목이 〈홍이〉인데 엄마 이름은 홍이가 아니잖아요. 근데 엄마도 홍이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각자의 홍이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서로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유를 찾고 또 앞으로 나아갈 그들의 삶을 기대해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치매가 걸렸으니까 곧 돌아가실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어머니도 자유를 찾아서 살았으면 좋겠고, 홍이도 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선 배우는 제 극단의 수석 여자 배우로서 작품을 같이 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오디션을 통해 만나 지금까지 같이 작업을 하면서 남편(이승원 감독) 영화에도 출연했었어요. 그 길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도 받았고요. 장선 배우를 안고 막 소리 지르면서 울었던 게 엊그제 같네요. "선아, 넌 뜰 거야." 하면서요. 어떻게 보면 장선 배우의 팬이 많은데 제가 1호 팬이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장선 배우가 처음 우리 극단에 왔을 때, 차원이 다르게 잘했어요. 언젠가는 장선이 나보다 훨씬 유명해져서 제 얘기를 할 날이 올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이런 훌륭한 배우를 담을 수 있고 더 빛낼 수 있는 그런 감독을 만나기를, 그리고 우리나라에 더 많이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장성란: 배우님 진짜 부럽네요.

장선: 오늘 생일인가 봐요. 죽기 전에 이 날이 떠오를 것 같은데요. 사실 선배님과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됐냐면, 20살 때 학교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공연을 보러 갔을 때, 유일한 여자 주인공이셨어요. 그때 제가 '와 미쳤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하시지'해서 매일 따라했었어요. 친구들이 '제발 그만 따라 해' 라고 할 정도로요. 매일 연기 하시는거 숨어서 지켜보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 오디션을 보려고 앉아 있는데 심사위원으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오디션이라는 것보다 선배님 앞에서 연기하는 게 더 떨린다.'라고요. 그날 그 이력서에 존경하는 배우를 쓰는 칸이 있었고 저는 선배님을 썼었거든요. 정말 오래 전 일인데 그 후에 함께 많은 작품을 하고, 많은 분들 앞에서 감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여러 생각들이 흘러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성란: 역시 두 분의 얘기가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아마 영화 보시면서 느끼셨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를 쓰고 연출하신 황슬기 감독님도 '이 역할은 장선 배우님한테 맡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드셨다고 들었거든요. 이 역할은 한 단어로 규정하라고 하면 너무 규정하기 힘든 인물이잖아요. 그리고 흔히 모녀 드라마, 특히 가정사가 좋지 않았던 것 같은 인물을 보면 보통은 안쓰러워지기 마련인데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좀 애매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는 '사랑하기엔 애매하고 미워하기에도 머쓱한 인물을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드셨대요. 감독님이 실제로 어머님 병간호와 생활을 꾸려가는 걸 같이 하면서 갈등과 약간의 힘듦과, 또 한편으로 거기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겪으셨대요. 그게 영감이 돼서 이 영화를 만드셨다고 하는데, 저는 홍이가 다른 영화들의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쓰고 연출할 때도 어려우셨을 듯해요. 왜냐하면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관객이 '너무 이상한 거 아니야?' 이렇게 느끼고 또 조금만 이렇게 온정적으로 그려도 너무 불쌍하다고 느낄 것 아니예요. 그래서 이 애매하고 머쓱한 인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감독님에게도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황슬기: 처음에 홍이 캐릭터를 구상하고 시나리오 쓸 때 한번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다른 영화들이나 작품에서 잘 보이지 않는, 조금은 독특하고 정의롭지는 않더라도 용기가 무쌍하고 자기만의 삶을 나름대로 살아가는 아주 보통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했어요. 다소 좀 삐그덕거리더라도 그런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개인사와 더불어 '홍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써서 장선 배우님께 보여드리고 첫 미팅을 했을 때, 다소 의기소침해 있었어요. 그전까는 시나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다들 홍이가 비호감이라고 하는 말씀을 많이 들었거든요. 근데 그 당시에 장선 배우님께 "홍이가 미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되게 나름 용기 있게 얘기를 드렸는데, 그때 제게 뭐라고 답해주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장선: 저는 '읽으면서 홍이가 미웠던 적이 없다'고요.

황슬기: 딱 이 말씀을 해 주셔서 제가 너무 힘이 났어요. 이 인물을 나쁘거나 좋거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배우님이고, 그 사람의 어떤 면들을 봐주신다고 생각을 해서요. 힘과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나고 꼭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 〈홍이〉 스틸컷

 

장성란: 장선 배우님은 시나리오 읽으면서 이 인물을 어떻게 느끼셨어요

 

장선: 감독님이 저에게 '미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가여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읽으면서 배우로서 좀 신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입체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엄마 돈으로 계산하고 보여주듯 기부함 안에 넣는 장면, 이러한 여러 장면들에서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홍이가 기본적으로 본인이 바라는 모습과 지금의 본인이 괴리가 크고,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고굉장히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또 홍이는 그 나름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그게 남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이해가 안 되는 노력일지라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이 남자가 떠나갈 것 같고, 잡고 싶은 욕망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순간들이 저에게도 있었던 것 같고, 완전히 똑같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서도 스스로 '나 왜 그랬지'하는 모순적인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는 게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또 응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친구한테 '일어나 보자. 그래도 걸어보자' 이런 정도의 위로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되게 용기 있고 멋지지 않아서, 그 점이 더 우리랑 닮아 있는데요, 관객 분들은 이런 사람을 거의 1시간 반 동안 꼼짝없이 보시는 거잖아요. 그 시간 동안 응원하기 어려웠던 홍이를 조금 응원하거나 이해하게 되면, 결국엔 또 나를, 또 옆에 있는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장성란: 이승원 감독님의 〈해피뻐스데이〉나 〈소통과 거짓말〉 같은 영화에서도 장선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역할들이 '홍이'보다는 더 파격적인 면이 있긴 하잖아요. 그 인물들에게도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가 있지'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었거든요.

김선영: 두 분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되게 의기소침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독립영화를 볼 때에는 그 기준이 없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여기에 계신 여자 분들이 대부분 '홍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도 '홍이'고요. 장선 배우는 입체적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입체적이라는 것은 '진짜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홍이'는 너무 저에요. 저는 제가 비호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비호감일 때가 너무 많죠. 그런데 호감일 때도 너무 많은 거고요. 여러분들도 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그 남은 삶에 콩나물국 한 그릇 정도 건네는 영화이지 않나 싶어요. 이거 먹고 정신 좀 차려, 좋은 의미로요. 이 영화는 홍이의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영화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게 감독님의 마음이라고 저는 느꼈어요.

장성란: 우리의 모습이죠. 저는 남한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는 나의 부끄러운 면들 같은 것들이 떠올랐어요. 내가 그런 짓을 한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나오는 영화 같아요. 저는 영화에 대한 감상이 말씀하신 것처럼 '홍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운이 느껴지면서, 감상이 달라지는 면이 있었어요. 또 제가 영화를 보다가는 감독님이 되게 무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첫 부분에 유부남 연인 동호가 홍이한테 그러잖아요. '넌 사람이 왜 이렇게 음침해'라고요. 영화 볼 때 저런 말을 사람한테 쓸 수가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김선영: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중에 하나예요.

장성란: 게다가 모녀가 그래도 가장 애틋한 추억을 좀 만들어 보겠다고 에어로빅 땡땡이 치고 가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감독님은 화약이 끝까지 탈 시간조차 허락을 하지 않잖아요. 저게 엄청난 추억도 아니고, 영화에서 진짜 딱 한 번 나오려고 그러는데 말이에요.  그 장면에서 감독님 되게 냉철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들은 감독님은 엄청 다정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인데 말이에요.

황슬기: 제가 홍이인가 봐요.

장성란: 홍이가 안 보이는 순간에도 다 우리가 '쟤 너무 착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어야 홍이가 잘 살기를 바랄 자격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 이 생각도 들었어요. 근데 어쩌면 좀 모자라고 이상하고, 서로 완벽하게 좋은 순간을 공유했다고 할 수 없더라도, 잘 살길 바라고 인간으로서 그래도 살 만하고 괜찮다고 얘기해 주는 게 오히려 인간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는 거 아닐까 싶었어요.

황슬기: 불꽃놀이 장면을 연출할 때는 홍이와 서희가 가장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지만, 외부의 어떤 침입 때문에 그 순간이 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은 사실 영화가 곧 끝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모녀 입장에서는 이 둘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던 뜻이기도 하고요. 이 둘의 행복이 외부의 방해에 의해서 단절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동호의 대사는 동호가 충분히 홍이한테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솔직한 얘기를 해주길 바라면서, 계속 다가가는데 자기 마음에 와 닿는 얘기를 끝내 해주지 않는, 전 여자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 〈홍이〉 스틸컷

 

장성란: 장선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은 건데, 홍이는 사랑하기에 애매하고 미워하기에도 좀 머쓱한 그런 인물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홍이 입장에서 보면 홍이에게 세상이 그런 것 같아요. 영화에서 홍이는 '너 최악이다.' 이런 얘기도 듣고, 또 공사장 감독님도 처음에는 '왜 이렇게 설렁설렁하게 사냐?’고 하죠. 이런 것도 마치 나를 위해서 해주는 얘기인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게 다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고요. 학원 원장님도 물론이고요. 세상이 나한테 호의를 베푸는 건지 아닌지, 너무 헷갈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홍이한테는 세상이 자기한테 애매하게 군다고 느낄 것 같았어요. 어떤 면에서는 홍이 자신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너 뭐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홍이를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했어요.

 

장선: 보면 옆에 있는 분들이 굉장히 기다려주거든요. 그러니까 공사장 감독님도 핸드폰 사용을 기다려줬고, 이모도 홍이를 기다려줬고, 돈도 돌려주고사실 홍이의 주변도 홍이를 굉장히 많이 이해해 주고 있는데, 홍이 입장에서는 가슴이 너무 답답한 구석이 있었어요. 연기 후 집에 와서도 뭔가 나는 계속 나아가고 싶은데 그 발을 누가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물이 찰랑찰랑 차서 조금 내려가면 다시 차고, 다시 차고계속 헐떡이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근데 홍이를 붙잡고 있는 가난과 실패의 경험들이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에 지금 내 상태는 어떻다고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마음이 작아질 때는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랑도 어떻게 보면 닮아 있는 얼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에는 '엄마는 나랑 얘기가 안 통한다. 정말 이 와중에도 저런 얘기를 하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엄마가 눈으로 응원하고 있었구나. 엄마가 엉망이지, 뭐 그래도 사는 거지.' 모두 엄마의 응원이었구나 싶었어요. 촬영할 때 홍이로서는 너무 서운했거든요. 계속 몰리고 있다고 느끼면서 촬영을 계속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평론가님께서 이런 평을 해 주셨어요. 누구나 실수를 하고 삐끗하는데, 그 실수가 그 사람을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만든다면,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 자체가 위태로웠던 건 아닐까라고요. 그런 감상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을 볼 때, 어떨 때는 너무 절망적이고 또 어떨 때는 희망적으로 느끼고 매번 감상이 달라져요. 그래도 뭔지 모르지만, 엄마처럼 자신의 복을 기원할 수 있게 된 게,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콩나물국밥 하나 먹을 수 있는 정도, 스스로한테 사줄 정도의 그런 힘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보면서 했습니다.

 

김선영: 이 영화 되게 좋은 영화군요. 저랑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데, 제가 장선 배우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래서 어떤 배우가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서 연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겠다' 싶었어요. 저는 완전히 다르게 봤거든요. 아까 '사람들이 기다려주거든요.'라고 말했을 때 제가 웃었어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서요. 일하면서 핸드폰할 수 있죠. 그리고 핸드폰을 했으면 정확하게 얘기를 하는 게 맞죠. 공사장 감독 그 사람은 굉장히 무례했습니다. 그 남자친구 될 뻔한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저 약속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홍이를 함부로 대한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홍이는 항상 웃으니까요. 남한테 싫은 소리를 잘 못해요. 홍이는 나름대로 다 아픔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홍이를 굉장히 함부로 대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근데 장선 배우가 지금 홍이한테서 아직 안 나온 건지 아니면 장선 배우가 원래 그렇게 읽었는지정말 궁금한데요. 기다려 줬다고 말하는 순간 '이렇게 다르게 분석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서 연기는 달라지는 거죠. 이게 너무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아요. 장선 배우의 의견에 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홍이 역할을 했다면 저는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지네요.
, 감독님이 배우에게 전사를 주셨잖아요. 완전 소설 형식으로요. 저는 너무 훌륭한 것 같거든요. 사실 우리가 다 만들어야 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걸 소설을 써서 주셨대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것들이 모두 담겨있는 소설이요. 저는 그걸 상상했어요.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굉장한 폭력을 받았겠거니 하는 상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말보다 생존자라고 저는 말을 하고 싶어요. 가정폭력이라는 것은 그 강도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생존한 피해자들, 저는 두 명 다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나를 응원해 주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피해자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끼리 더 피해를 많이 줘요. 엄마는 거의 학대에 가깝게 비아냥거리거든요. 정서적 학대죠. 비아냥이 굉장히 공포스러운 거예요. 영혼을 좀먹습니다. 주 양육자 엄마로부터의 비아냥은 그 인간의 삶을 지배해요. 자존감을 지배하고요. 그래서 엄마는 학대에 가까운데, 장선 배우가 아까 얘기하기를 엄마가 자신을 응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니까시선이라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저는 서희도 피해자였기 때문에 각자의 삶에서 자유롭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기 생존자들 두 명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데, 제가 봤을 때 엄마가 가정폭력의 더 큰 피해자였던 것 같아요. 홍이에게 학대 수준에 가까운 비아냥을 계속하더라고요.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끊임없이요. 그런데 홍이는 평생 그 비아냥을 받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감지해 낼 수 없죠. 이게 일상이었기 때문에요.

 

장선: 너무 정확하게 봐주셨어요. 전사에도 이런 내용이 되게 많았어요. 홍이가 계속 어른이 됐음에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고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연기했거든요. 이제는 내가 이기고 싶은, 위에 있고 싶다는 어떤 욕망도 있었고요. 전사 중에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게,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를 실망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는 지점이었어요. 근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엄마는 홍이를 비꼬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사실은 두 사람이 같은 피해자고, 그 사진 이야기할 때는 또 작은 연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함께 노출되었던 기억,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이였던 홍이가 오랜 시간 어떤 이유에서든 받아왔던 것들이 지금 홍이의 많은 부분에,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성란: 〈홍이〉절반 이상이 얼굴 클로즈업으로, 표정으로 전달하는 영화예요. 근데 시나리오에 적힌 그대로 표정을 지으신 건 아닐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카메라가 절반 이상 내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있으니까, 배우로서는 약간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또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면서 보여줘야 하는 책임 같은 게 있었을 것 같고요. 장선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고, 한편으로는 김선영 배우님께서는 영화 보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표정이나 얼굴 같은 모습이 있으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장선: 클로즈업이 많을 때 어떤 부담이라기 보다는, 그런 느낌을 좀 받았던 것 같아요.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가까이 잘 보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냥 있으면 된다는 느낌이요. 오히려 좀 더 가까이 있으니까 '잘 잡아주겠지', '잘 바라 봐주겠지.'하는 믿음이 있었어요.

김선영: 개인적으로 정말 신기했어요. 카메라가 저렇게 있는데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생각도 들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표정은 글쎄요, 다 기억이 나요. 그런데 배우님들이 참 좋으시더라고요. 모든 배우님들이 적재적소에 위치해 있었어요. 〈홍이〉를 빛나게 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저는 이 배우들인 것 같아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장성란: 사실 홍이랑 서희를 중심으로 보게 되기도 하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다 어떤 면에서 조금씩 이상한 것 같거든요. 근데 저는 그 중에서 진우 역할에 시선이 갔어요. 회계사였는데 회사 그만뒀다, 따돌림 당했다고 하잖아요. 근데 약간 묘했거든요. 근데 '제가 회복 탄력성이 있어서 괜찮아요.'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 남자는 뭘까, 회복 탄력성은 뭘까 싶었어요. 썸타는 관계라고 하지만, 계속 사진 보내면서 얘기하는 것도 조금 이상한 것 같고요

황슬기: 진우는 오픈 채팅으로, 지역에 있는 싱글 남녀 만남을 통해서 일대일 만남까지 간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서로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자기를 감춰가면서 만나다가, 이제 실제로 만났다는 설정이었는데요. 진우가 되게 솔직한 것처럼 보이려고 그 순간 자신을 부풀렸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홍이가 그 순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친구도 본인의 유머러스함을 뽐내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진짜 안 웃긴데 실패한 유머거든요. 그래서 실패한 유머에서 홍이가 안 웃거든요. 그런 약간 뻔뻔하기도 하고 허세도 있는 그런 면을 좀 그리고 싶었으나, 이제 홍이의 어떤 과거를 다 알고 난 이후에는, 사실 이 앞에서 한 얘기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실토하는 장면이 삭제됐지만 있었어요.

장성란: 마지막에 엄마 요양원에 다시 보내주는 길에 진우를 부른 거잖아요. 그게 어떤 면에서는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는 건데, 홍이의 입장에서는 저 남자에게 자신의 진짜를 보여주려고 용기를 냈나 보다 싶었어요.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엄마는 홍이를 계속 바라보지만 곧 죽어도 다정한 말을 못하는 사람이죠. 그게 엄마만의 사랑 방식이기도 하고요. '집에 가고 싶다.', '집에 도둑이 있다.' 고 얘기하시는데 그게 치매 초기이시라 온전한 정신으로 하시는 건지 헷갈리긴 하지만, 홍이가 당신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 주는 엄마의 마음일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게 또 너무 따뜻하지만은 않게 도둑이라고 한 것도 같고요. 그 대사를 쓰시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황슬기: 굉장히 노골적인 대사여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사람의 병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홍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복잡할 것 같았거든요. 단지 엄마의 병 때문이 아니라, 엄마의 돈을 몰래 쓰고 있었던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여러 면에서 홍이를 되게 아프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도둑이라는 말이, 뭔가를 훔친다는 말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 대사가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다 알고 있지만, 아는 맥락에서 그 도둑이라는 표현을 한 것인지 혹은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도둑이라고 말을 한 건지, 맥락보다는 언어로 내뱉어서 상대방에게 닿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서희의 상태가 불안한 상태인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그보다 이 사람한테 닿는 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홍이〉 스틸컷

 

장성란: 오늘 함께하신 소감을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선영: 이 자리가 굉장히 감동스럽습니다. 장선 배우가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이렇게 게스트로 GV를 하는 날이 와서 개인적으로 감동스러운 순간이고요. 주변에 소문을 많이 내주셔서 관객 분들이 영화 많이 보실 수 있게 댓글도 가득 달아주세요. 감동의 순간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선: 선배님께서 감동적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감동, 감동, 감동, 감동, 감동적인 순간 이고요. 저는 이 작품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 촬영을 끝내고 제 지인과 '홍이가 어떻게 하면 잘 살지 우리가 회의를 해보자'며 정말 긴 토론을 했었거든요. 그건 아마 삶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듭니다.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주변에 많이 입소문 내주시고, 오늘 마음 속에 남은 질문이 있다면 다음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슬기: 저는 오늘 GV가 짜릿했고, 두 배우님과 기자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영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배우님들이 해주신 말씀, 그리고 오늘 여기 보여주신 여러분의 눈빛들, 제가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서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