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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만남의 집〉: 서로의 방에 건네주는 볕

by indiespace_가람 2025. 10. 28.

〈만남의 집〉리뷰: 서로의 방에 건네주는 볕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냉철하게 보였던 사람이 손길을 건네주는 순간. 얌전해 보이던 사람이 소란스러운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사람을 평면에서 벗어나게 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많은 방 안을 옮겨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할 때, 그들은 서로에게 같은 방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렇게 너에게서 나를 보고, 나에게서 너를 본다. 〈만남의 집〉은 서로의 닫힌 마음의 방을 비추는 ‘볕’ 같은 관계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영화 〈만남의 집〉 스틸컷

 

태저는 냉철하고 반듯한 교도관이다. 규율을 명확히 하는 그에게 수용자들은 늘 욕지거리를 뇌까린다. 눈썹을 찡그리는 듯하더니 금세 다시 표정을 없애고 앞으로 걷는다. 수많은 문들을 지나며 아랑곳하지 않고 수용자들을 확인한다. 그런 그에겐 정반대의 직장 동료, 혜림이 있다. 432번 수용자의 모친상 소식을 듣고, 혜림은 태저에게 빈소를 찾아갈 것을 제안한다. 떨떠름하게 빈소를 찾게 된 태저는 그곳에서 432번 수용자, 미영의 딸 준영과 만나게 된다. 늦은 시각 홀로 빈소를 지키는 어린 준영을 마주한 태저는 왠지 모를 연민 감에 준영에게 그의 번호를 남긴다.

 

영화 〈만남의 집〉 스틸컷

 

준영은 호기심 많은 평범한 중학생이다. 같은 번호를 가진 버스의 기사들이 서로에게 인사하는 것을 궁금해하고,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알림이 어느 위치에서 뜨는지 확인하고 싶어 전봇대를 빙빙 돌기도 한다. 그런 그가 평범에서 약간 멀어지는 부분은 수용자의 딸이라는 것, 엄마의 친구가 운영하는 여관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이후로는 엄마와 만나보지도 않아 엄마가 보고 싶은지, 아니면 엄마가 좋은지 싫은지 본인의 마음을 헷갈려 한다. 여관에 들어갈 때에는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눈치를 살핀다. 준영이 태저의 번호를 받아 들고 메시지를 보낸 날, 준영의 안에서 작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태저와 준영은 서로와의 만남으로 늘 같던 일상에서 작은 변화를 주게 된다. 태저는 준영과 대화하며 본인에게 불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늘 주위를 살피며 여관으로 들어가던 준영은 태저와 나란히 걸어서 여관에 도착한다. 의도했든 안 했든 각자의 삶에 있어서 자물쇠를 굳게 걸어놨던 곳들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만남이 이어진다. 영화는 둘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히 보여주며 둘의 관계가 깊어지는 순간들을 목격시킨다. 서로가 서로에게 볕이 되어주고, 나를 더 잘 챙길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인연이 되어준다.

 

영화 〈만남의 집〉 스틸컷

 

일상에서의 균열은 둘이 떨어져 있을 때에도 나타난다. 항상 휴일에 도서관을 찾던 태저는 도무지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매 순간 차렷 자세 하듯 말하던 그는 미영과의 면담에서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낸다. 엄마에게 편지 한 통 쓰지 않던 준영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태저에게 엽서를 쓴다. 누군가로 인해 자신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이 있을 땐 그들은 언제나처럼 또 나란히 어딘가로 향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는 혼자 있을 때의 각자를 비출 때 보다 확연히 따뜻하다.

 

앞이 보이지 않던 만남의 집이 극적으로 성사되고, 고민 사이를 헤매던 준영도 태저의 편지, 자신의 직장에 놀러 와 주었으면 한다는 마음을 읽고 엄마와의 만남을 결정한다. 엄마 미영과 딸 준영은 서로를 마주한다. 철창 사이로 상대를 바라본다. 어색하지만 슬그머니 설렘이라는 기류가 흐른다. 겨울바람은 차갑지만, 따뜻한 햇볕이 그들을 비춘다. 미영을 먼저 안아보는 준영에게서도 해가 보인다. 엄마를 비춰본다. 미영도 조용하고 완전하게 준영을 안아본다. 그 모습을 보는 태저에게서도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쩐지 공기조차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영화 〈만남의 집〉 스틸컷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태저는 만남의 집에 자물쇠가 잘 걸려있는지 재차 확인한다. 자물쇠는 방어와 두려움의 역할보다는 모녀의 관계를 다시금 단단히 묶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태저는 둘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에 따뜻한 뜨개를 입혀준다. 차갑고 무거운 금속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알록달록한 뜨개는 무채색이었던 영화의 온도를 올려준다. 끝까지 느릿하고 차분한 방식으로 햇볕 같은 따뜻함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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