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술지로서의 영화
〈3670〉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5년 9월 24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해영 감독, 박준호 감독,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배우
진행 김효정 영화평론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기록입니다.
어떤 영화는 현실을 기록하는 섬세한 손길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3670〉은 서로 다른 두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공통점을 찾고, 그들만의 문화를 영상 매체로 기록한다. 상영 전부터 인디스페이스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며 영화, 그리고 기록의 힘을 다시금 고민했다. 무엇이 그들을 극장으로 이끌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웃음이 가득했던 인디토크 현장을 부족하게나마 기록해 보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이하 김효정): 안녕하세요. 점유율이 어마어마하네요. 제가 지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왔는데 빈자리가 부국제보다 더 적은 것 같아요. 여러분이 재미나게 보셨을 이 주옥같은 영화 연출을 맡으신 박준호 감독님, 게스트 이해영 감독님,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배우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박준호 감독(이하 박준호): 평일에 인디스페이스를 이렇게 뜨거운 분위기로 꽉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영화를 응원하러 와주신 이해영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해영 감독(이하 이해영): 굉장한 화제작의 GV에 오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요. 영화 굉장히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조유현 배우(이하 조유현): 안녕하세요. 〈3670〉에서 철준 역을 맡은 조유현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오는 평일에 이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목 배우(이하 김현목): 안녕하세요. 영준 역을 맡은 김현목입니다. GV를 여러 번 했는데 누구랑 같이, 또 어떤 관객분들과 함께하는지에 따라서 매번 색다른 질문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오늘 GV도 최대한 떨지 않고 잘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대희 배우(이하 조대희): 안녕하세요. 현택 역을 맡은 조대희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객석을 많이 메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효정: 저는 〈3670〉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좋았어요. 생각해 보면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망설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다른 선택지도 있었는지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준호: 제가 2017년에 처음 단편으로 시나리오를 썼었는데 그때는 제목이 ‘철준’이었고요. 2022년 영진위 제작 지원을 했을 때는 ‘이방인의 이방인’이라는 아주 참담한 제목으로 제출해서 바로 탈락했습니다. 지금 제목은 영화에 나오는 367 문화가 게이 커뮤니티 내의 축구 모임에서 실제로 쓰인다고 해서 가져온 것이고요. 〈3670〉으로 했을 때 모임에 아무도 오지 않게 되는 상황이 주는 씁쓸함과 외로움도 느껴지고, 0이라는 열려 있는 숫자가 주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어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목만 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하는 궁금증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저희 배급사에서 전주국제영화제 때부터 사방에 “종로3가 6번 출구 7시에 만나”라는 문구를 붙이면서 제목을 인지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김효정: 사실 독립영화 같은 경우 캐스팅으로 마케팅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서 제목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이해영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이해영: 저도 사실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그 문구를 보고 이해를 했죠. 영화를 보면서 절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서구권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했습니다.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었던 건 전작 단편도 탈북자가 주인공이었고 이번에도 그런데 이 이야기의 시작이 어디부터였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박준호: 영화에 나오는 영어 선생님처럼 제가 갓 넘어온 탈북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가끔 자기소개서를 봐주기도 했거든요. 제가 영화를 하게 되면서 그때 만났던 소중한 학생들의 삶을 대신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야심차게 3부작을 구상했었고요. 탈북자들의 과거나 탈북 과정에서의 어려움보다는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꿈꾸는 미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김효정: 조유현 배우는 첫 주연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촬영 중 ‘내가 진짜 주연이구나’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조유현: 거의 매 순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웃음) 기억에 남는 건 2회차까지 저희가 편의점 씬을 주로 찍었었는데 그 씬에서 저 혼자 찍을 수 있는 분량을 모두 찍었을 때 ‘이거 내가 진짜 주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뭔가 평가받는 것 같고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분들이 모두 영화를 함께 만들기 위해 나를 돕고 있는 동료라는 생각이 들고 그다음부터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아마 미숙함을 극복하는 철준의 경험과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해영: 철준은 영준을 정말 좋아했다고 보시나요?
조유현: 저는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이 조금 미숙하고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요. 클럽씬에서 영준을 돌려서 춤을 같이 추겠다고 하는 장면이나 러브레터를 다시 전해주는 장면 등에서 좋아하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사랑인가 아닌가는 철준이 좀 헷갈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김효정: 저는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고르라면 영준을 꼽을 것 같아요. 오늘 영화를 다섯 번째 보니까 영준이 입을 내밀고 있는 뾰로통한 표정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김현목 배우가 해석한 캐릭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현목: 말씀해 주신 표정 같은 제스처는 이야기상 영준의 러블리하고 큐티한 느낌이 잘 묻어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이게 영준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바이브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요. 영준이 억지로 쾌활한 척하고 커뮤니티에서 안정권에 들어가 있는 구성원인 양 행동하는 것이 사실은 그 안에서 버티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조금씩 있었으면 싶었거든요. 후반부 코인 노래방 장면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 감정 변화가 갑작스러워 보이지 않게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해영: 사실 영화에서 가장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였던 것 같아서 실제로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굉장히 섬세한 감정의 결들을 정말 긴 호흡 안에서 표현을 잘하셔서 관객분들께서 영준 쪽에 이입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늘 2등 같고 뒤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굉장히 많이 배려해 준 것 같아서 영준 캐릭터의 연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영준이 어학연수 가는 캐리어가 너무 비어 있지 않아요?
김현목: 비자 신용카드 하나 들어있습니다. (장내 큰 웃음)
김효정: 조대희 배우님은 어떻게 보면 이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맡으셨는데 그럼에도 거기에서 오는 소외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균형을 어떻게 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조대희: 연기적으로 철준과 영준에 붙어버리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송아지 멤버들처럼 연기하기에도 너무 튀어버릴 것 같아 계속해서 중간 지점을 달려가려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서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서 공허해 보이는 눈빛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고 그런 지점을 가장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이해영: 이 캐릭터도 레이어가 단순하지 않고 속에서 표현해야 하는 게 많다 보니까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철준을 만나 담배를 피우면서 영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의 미묘한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효정: 사실 제 가까운 지인 중에 낙원동의 퀴어 역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쓴 분이 있어요. 그게 되게 재밌어서 언젠가는 그런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가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해준 게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낙원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감독님께서 로케이션 선정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박준호: 이 이야기를 통해서 종로3가와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그곳에 있는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를 담고 싶었어요. 술집마다, 모임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들을 영화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대한민국이 성소수자 이슈에 있어서 제도적으로 무척 척박한 상황임에도 이런 역동적인 퀴어 컬쳐를 가지고 있다는 게 사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되게 놀라운 것 같아요. 이런 문화가 공적 영역에서 기록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고 제가 할 수 있으면 너무 영광스럽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장소들을 섭외해서 찍으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모든 사장님들과 커뮤니티가 너무 많이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김효정: 어려울 것 같다는 분도 계실 법한데 그렇지 않았나 봐요.
박준호: 정말 단 한 분도 없었고요. 놀랍게도 가장 어려웠던 건 철준이 사는 집을 구하는 작업이었어요. 정했다가도 일주일 후면 또 상황이 바뀌고 그래서 거의 촬영 일주일 전에 이 집으로 확정됐고 겨우겨우 찍었습니다.
이해영: 저는 클럽 장면 등에서의 보조 출연자들을 어떻게 꾸리신 건지 궁금했어요.
박준호: 저희가 예산상 업체를 부를 수 없고, 평일 촬영에 남성 배우분들만 계셔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스태프와 배우들 지인의 지인까지 모집하고 광고도 내고 연기학원 통해서도 구했는데도 클럽 장면에 한 20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돌려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날 제가 가장 예민했던 것 같아요.
이해영: 보조 출연은 200명을 불러도 똑같이 화면이 비고 같은 사람이 반복해서 나오는 게 힘들더라고요. 전 사실은 댄스 플로어에 있는 분들보다 어두운 방에 있던 보조 출연자들이 진짜 궁금했거든요.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준호: 그분들은 바텐더 분들처럼 보조 출연 이외에 따로 섭외한 분들이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조금 더 딥한 키스를 해주셨으면 했는데 제가 그때 그분들께 디렉션을 줄 정도의 정신이 없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김효정: 통일전망대에 갔을 때 철준과 친구들이 도시락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잖아요. 아마 오랜만에 먹은 북한 음식으로 추정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더라고요. 그게 뭐였나요?
박준호: 그건 ‘두부밥’이라는 북한의 시장 음식이에요. 두부를 튀겨서 그 안에 밥을 넣고 매콤한 양념장을 발라 먹는 대형 유부초밥 같은 느낌? 스트릿 푸드인 만큼 탈북자분들의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라 제가 자원봉사 할 때 명절에 같이 만들어 먹기도 했거든요. 북한 식당 같은 곳에 가면 팔기도 하고요.
이해영: 학민 캐릭터도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학민은 아직은 북한 때를 철준보다 훨씬 못 벗고 있는 인물인데 계속해서 버버리 목도리를 한 모습으로 나오거든요. (장내 큰 웃음)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요?
박준호: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네요.
이해영: 정말 버버리가 90년대 대학생들한테 굉장히 힙한 아이템이었잖아요. 그래서 그 목도리를 하고 명동을 걷거나 압구정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우리들의 힙함의 외침이었거든요. 그래서 이건 그냥 세팅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다.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유현: 그렇다고 하세요.
박준호: 제가 거짓말을 못 해서. (웃음) 의상 감독님께서 스웨터와 함께 학민 의상을 세팅해 주셔서 봤는데 저는 그 모습이 그냥 너무 학민이라 목도리에 그런 사회적 맥락이 있는 줄 몰랐어요.
이해영: 저는 사실 학민이라는 인물이 남한의 자본주의에 자신도 잘 녹아들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고른 목도리인데 사실은 2025년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90년대 구식 자본주의의 흔적을 뒤늦게 달고 다녀서 그게 사실은 부적응을 보여주는 짠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김효정: 의도를 하셨든 아니든 궁극적으로 그렇게 읽힌 거잖아요. 그 캐릭터를 더 배가 한 거고, 그러니까 더 잘 된 거네요. 이제 첫 질문의 영예를 여기 앞에 계신 관객분께 드리겠습니다.
관객: 영화 후반부에서 학민의 부모님이 드디어 한국에 왔다고 표현되는데 그 이후로 학민 서사가 날아갔잖아요. 그래서 그 생략의 이유가 궁금하고 또한 철준은 본인의 부모님 상황을 북한 친구들에게 일부러 숨긴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준호: 마지막에 학민이 수업을 안 오잖아요. 그게 이제 부모님께서 넘어오신 후 하나원 같은 곳에 계셔서 학민이 면회 간 상황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그곳에 몇 개월 있다가 나오시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철준이 학민의 부모님을 뵐 수 있는 시기는 없었을 것 같아요. 철준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듯이 생사가 불분명하고 돌아가신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오는데 철준은 그걸 믿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런데 이모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철준은 계속 부모님 소식을 알고 싶어서 돈을 써가며 브로커를 통해 연락을 시도하는데 이모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셔서 돈을 그대로 모아 뒀다는 설정인데요. 철준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굳이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영화를 보고 ‘이글’이라는 장소가 너무 인상 깊어서 가보기도 했는데요. 클럽 장면에서 배우분들의 연기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 분께서 어떻게 감정 조절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유현: 사실 클럽에 보조 출연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해서 좀 부산하긴 했어요. 대사가 있다 보니까 실제 촬영 때는 음악을 못 틀어서 감독님께서 저희에게 먼저 보내주셨고, 계속 그 음악 리듬을 타면서 연습했습니다. 촬영할 때는 음악이 나온다고 상상하면서 현목 배우가 목으로 타는 리듬에 맞춰서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박준호: 실제로 제가 비트 안 맞는 걸 너무 못 참아서 되게 작게 틀어놓고 찍기도 했어요. 150 bpm에 딱 맞출 수 있게요.
관객: 조유현 배우님께서 예전에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정도로 노래 실력이 출중하신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 실력을 숨기면서 연기하실 때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유현: 정말 그 영상이 점점 파묘가 되고 있어서 부끄럽습니다. 마지막 회전목마 장면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께서 “너무 잘 불러도 안되고 너무 못 불러도 안된다”라고 디렉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노래 기술은 다 빼고 최대한 생목으로 열심히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회전목마 노래 자체가 원래 어렵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너무 못 부르면 관객분들께서 중간에 나가실 수도 있으니까 박자는 최대한 맞게끔 해서 불렀습니다.
관객: 철준의 커밍아웃 장면에서 학민은 어떻게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박준호: 저희가 따로 설정하진 않았고 제가 글을 쓴 사람으로서 생각했던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두 커뮤니티를 영화에 같이 다룬 이유 중 하나는 탈북민과 게이가 자기 자신들을 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당당하게 북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는 한편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 어떤 분들은 굳이 물어보지 않으면 숨기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더 예민하게는 자기 자식들에게도 말 못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점들이 성소수자분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학민은 철준을 지예와 엮어주려고 하는데 철준은 정말 여성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 같고, 그런 모습을 가족 같은 관계에서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봐왔을 텐데 최근에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영준을 마주치기도 했고. 이런 퍼즐들이 어느 순간 맞아떨어져서 알아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고맙고 이상적인 상황이 우리의 바람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조유현: 약간 첨언하면 다른 GV에서 학민을 연기한 전두식 배우가 어쩌면 영준을 만난 이후로 학민이 계속 철준의 집을 찾아갔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집에 찾아가서 철준이 영준과 계속 어울리는 것을 봤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효정: 갑자기 생각났는데 오늘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님의 교집합이 있네요. 나중에 나오는 또 다른 탈북자 게이를 연기한 한상조 배우가 너무 매력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이해영: 네. 사실 〈애마〉에서는 대사가 별로 없어서 이 영화에서 보면서 대사 잘하는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네요.
박준호: 실제로 〈애마〉 촬영 기간이 저희랑 겹쳐서 캐스팅하려고 하면 다 〈애마〉 팀에 가신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관객: 현택과 영준의 전사에 대해 따로 쓰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고, 철준이 쓰고 있는 모자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박준호: 저도 의상 감독님께 여쭤봤는데 그 모자가 실제 하버드 대학교 굿즈입니다. 그 굿즈가 빈티지가 되어 돌아다니던 것을 의상 감독님께서 소장하고 계셨거든요. 시나리오에 제가 버건디색 모자라고 지칭을 해둬서 의상 감독님께서 하버드 모자도 괜찮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대입 준비하는 인물이 하버드 모자 쓰는 게 약간 재밌는 것 같아서 그걸로 정했고요. 영준과 현택은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일 것 같아요. 그런데 사귀고 헤어지는 순간 한 명은 친구들 다 버리고 나가야 하잖아요. 그걸 감수할 만큼 저 친구와 사귀고 싶진 않지만 서로가 각자의 연애에 헛헛함을 느끼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이면서 잠재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게이 커뮤니티의 특성인 것 같아요.
관객: 철준과 영준이 사는 동네는 목동으로 보이는데 다른 퀴어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장소인지 궁금합니다.
박준호: 일단 시나리오를 쓸 때 ‘철준’이라는 이름을 빌려온 학생이 목동에 사셨고요. 주거 지역이면서 아파트와 빌라촌이 섞여 있는 동네라는 점이 영준과 철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종로, 이태원에서 놀다 가려면 한강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택시 타고 다리 건너는 장면 넣기도 좋을 것 같고, 공항버스 정류장 구조물도 적절하게 있어서 목동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관객: 직설적이고 꾸며내는 말을 하지 않던 철준이 이태원 장면 이후로 영준의 성격을 닮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영준은 후반부에 들어 철준이 그랬던 것처럼 타국으로 떠나는 큰 결정을 내리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서로를 닮게 되는 설정을 의도하신 건지, 배우분들은 연기하시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준호: 네. 서로 닮아간다고 생각했고 특히 아기 오리가 엄마 오리를 닮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영준이 철준에게 네 덕분에 용기 내서 캐나다 간다고, 너처럼 적응할 수 있게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는 대사는 진심일 것 같아요. 철준이 영준의 삶에 들어와서 준 자극이 충분히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유현: 철준 입장에서는 영준이 시작을 함께해준 친구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기도 얻게 되고 철준의 삶에 영준이 스며든 게 아닐까 싶어요. 둘이 완전히 똑같아진다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현목 배우는 어떤가요?
김현목: 영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영준은 철준을 만났을 때 되게 비슷한 점들이 많이 보여서 반가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쭉 같이 지내며 영준이 철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자신보다 더 나은 모습들, 다른 환경에 겁을 먹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철준의 모습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모습을 선망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각본 중반부를 읽으면서는 영준이 철준의 비슷한 모습에 안도한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게이 커뮤니티에 오려고 자신의 다름을 인정한 영준은 더 이상 남들과 달라지고 싶지 않아 하는데, 그래서 타인과 자신의 공통점을 자꾸 찾아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거죠. 그렇기에 캐나다로 떠나는 영준의 선택은 도전의 외침처럼 느껴졌고, 그 외침은 철준이 남긴 자극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효정: 그럼 감독님부터 오늘 마지막 말씀 나눠주시겠어요?
박준호: 인디스페이스가 저희 집에서 10분 거리라 오는 게 너무 편했는데요. 오늘 관객분들도 많이 와주셨는데요. 지금 정부 할인권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3670〉뿐만 아니라 좋은 영화들 많이 상영 중이니까 인디스페이스에서 많이 영화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조유현: 오늘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이해영 감독님과 함께 GV 하면서 확실히 감독님께서 보는 영화의 시각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저희가 이제 2만 관객을 앞두고 있는데 저는 흥행을 떠나 〈3670〉을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꾸준하게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현목: 역시 이렇게 GV를 할 때마다 〈3670〉을 더 알아갑니다. 저는 오늘 두부밥이 매콤하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버버리의 사회적 맥락도요. (장내 큰 웃음) 〈3670〉이 이렇게 깊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대희: 오늘 진짜 디테일이 많이 나온 역대급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디테일 많이 찾아주세요. 계속 와주시고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해영: 퀴어 영화의 맥락을 떠나서 그냥 좋은 영화로서 굉장히 즐기면서 관람했고요. 저는 영화 연출의 포인트는 어떤 캐릭터에 어떤 배우를 매칭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간만에 이 주파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캐스팅이 있었던 영화였고 그래서 캐릭터들의 연기와 앙상블이 굉장히 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n차 관람 더 즐겨주시고 극장에서 끝까지 이 영화를 지켜주세요. 저도 같이 응원하겠습니다.
김효정: 제가 영화 다섯 번 봤는데 여기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여러분들의 엄청난 애정 덕분이죠. 앞으로도 〈3670〉 더 사랑해 주시고 안녕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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