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리뷰: 마주 보는 맨얼굴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누군가의 시선 앞에 완전히 솔직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다. 숨길 부분은 적당히 가리고 내보일 부분은 제대로 드러내며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다시 짜맞추는 걸 우리는 사회화라고 부른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일이다. 모든 걸 벗어던지고 털어놓으며 홀가분하기란 어렵다.
우리가 영화를 찾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어딘가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보여주진 못하는 마음들이 ‘영화’라는 명분을 빌려 스크린 위로 떠오른다. 관객은 극장 안에서만큼은, 그 지저분한 마음을 가리켜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다. 대가 없는 솔직함을 누리며 자유로울 수 있다.
영화 〈홍이〉는 그래서 필요하다. 모녀 관계를 다루는 이 영화는 억지로 감동적인 서사를 지어내지 않는다. 대신, 모녀의 내밀한 감정만이 그들의 맨얼굴 위로 어른거린다. 현실의 그늘이 드리운 그 낯은 보기 좋지만은 않다. 딸 ‘홍이’는 빚을 갚기 위해 엄마의 목돈을 목적으로 엄마를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온다. 살가운 딸과는 영 거리가 멀고 비겁한 면모가 많다. 엄마 ‘서희’는 미디어의 흔한 노년 여성처럼 연약하거나 순종적이지 않다. 성격이 불같고 자존심도 세며 말투는 모질다.
보고 있자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어딘가 불쾌하기까지 한 이 모녀는 우리의 발가벗은 모습과 닮았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낱낱이 공개되는 이들의 사생활은 우리의 세상과 겹쳐 보인다. 엄마에겐 투덜대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는 홍이의 이중성을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행한다. 엄마를 종일 돌보기엔 내 일과 사랑과 삶이 너무 바쁜 홍이의 이기심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서희는 또 어떤가. 치매 초기인 걸 알지만 인정하기 싫어 괜히 날 세우는 서희의 두려움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기가 간지러워 매니큐어를 발라달라는 투정으로 감춰보는 외로움을 우리는 겪어 본 적 있다.
그래서 그들이 관객에게 솔직해지기를 넘어 마침내 서로에게 속마음을 토해낼 때 우리 역시 작은 해방감을 느낀다. 알고도 못 본 체했던 서로의 비밀을 꺼내 나눠 가진 그들은 후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행은 어디 가지 않는다. 손에 쥔 불꽃놀이의 즐거움은 짧고 같이 바라본 해는 꺼져가는 노을이다. 홍이는 여전히 가난할 것이고 서희의 치매는 심해질 것이다. 서로를 이해했다는 사실만으로 현실이 친절해지는 일은 없다. 영화는 결말까지 관객에게 솔직하다.
각자의 이유로 하얗게 분칠하기 바쁜 삶이다. 진짜 속마음을 보여주는 건 언제나 두렵다. 나의 더러운 면은 감추고 너의 더러운 면은 피하느라 바쁘다. 영화는 서로의 본모습을 감당하기엔 연해져 버린 우리의 마음 근육을 길러주고 싶은 듯하다. 추한 민낯을 가진 두 여자가 그렇게 영화 속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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