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 수밖에〉리뷰: 세공한 마음을 애써 찾지는 말자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은아 님의 글입니다.
모두에게는 정당한 비밀이 있다.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꼭 밝혀내고 싶은 것. 혹은 그 사이 미심쩍으나 애써 모른 척하는 것. 비밀의 이유는 비밀일 수밖에 없는 데에 있고, 비밀의 바운더리는 좁을수록 상처 주기 쉽다. 〈비밀일 수밖에〉는 ‘너와 나’로 규정되는 관계 속 지켜지는 비밀들에 대해 얘기한다. 엄마 정하와 아들 진우, 진우와 연인인 제니, 그리고 다시 정하의 룸메이트인 지선. 누구 한 명 소외되는 사람 없이 딱 맞게 모여지는 그들의 비밀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정하의 건강 악화로 인한 휴직, 진우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과 함께 예정에 없던 제니 부모님의 귀국까지 사건이 겹쳐지고, 멀리 떨어져 남인 줄만 알았던 이들은 운명처럼 정하의 집으로 모이게 된다. 집으로 그리고 다시 둘씩 방으로. 명확한 관계성을 보이는 그들의 동거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는 정상성이다.
본인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아빠 문철 그리고 그를 거부하는 제니.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불안정한 유튜버의 길을 가려는 진우와 만류하는 정하. 그리고 또다시 진우를 탐탁치 않아 하는 문철과 애써 좋게 해결해 보려는 정하까지. 현실을 꽤나 닮은 강렬한 인상에 못내 시원함마저 느껴질 즈음, 거짓말이 시작된다. 정하의 약속은 병원 진료였고, 진우는 이미 퇴사를 했다. 제니 부모님의 사업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고, 룸메이트 지선은 정하의 연인이다.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
끊임없는 문철의 무례함으로 정하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 비밀로 인해 다른 비밀이 드러난다. 상황과 맥락을 용인하는 방식에서 정하와 문철은 극명히 대비된다.
먼저 정하는 명백히 불륜을 저질렀다. 진실을 알게 된 남편의 사고사로 비밀이 지켜졌고 이후 진우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저 성실한 ‘엄마’라는 인물이었다. 중학교 미술 교사인 정하가 늘 하는 말은 ‘하고 싶은 일은, 하자!‘. 그녀의 말로 하여금 행위를 판단하게 만드는 메시지는 암시적으로 작용하며 곧 이야기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과연 정하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삶의 유지였을 것이다. 자신이 지탱해 온 가정과 사랑, 건강과 직업까지 삶의 구도를 잃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없듯이. 그렇다면 정하는 못할 짓을 저지른 걸까? 이 물음에는 긍정이다. 가정이 있음에도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찾았고, 엄마와 아내라는 기존 역할의 책임을 배반했다. 그러나 책임 소재를 떠나 정하가 하는 사랑 자체가 그릇된 것인가에 대답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반면, 문철은 남녀가 사랑해야 하고, 번듯한 회사에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어야 하며 남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하는 성질을 정상성이라 착각한다. 그저 사랑하고, 일을 하고, 삶을 살고 있는 데에도 오차가 생기면 죽을 듯 난리를 친다. 그런 문철의 눈에 동성애자인 정하는 납득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와 삶을 멋대로 폄훼한다. ‘교회를 가던 병원을 가라’며 본인의 행위에 쉬지 않고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정하는 감내해 낸다. 사회에서 비밀을, 굳이 밝히지 않는 진실을 견디는 자로서가 아닌 그저 정하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비밀로 인해 지적 당할 이들을 위해 순간 회피했으나 이내 ‘맞다’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알고 싶은 것.
악착같이 숨기는 비밀에는 여린 면이 있다. 바짝 날이 선 태도와 미묘한 거리감, 행여 들킬까 조마조마하는 마음들.
결국 궁극적으로 이들이 얻고 싶은 건 마음이다. 쉬이 이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겠다’며 받아주는 마음과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섭섭함에도 불구하고 오래 묵혔던, 꺼내려 몇 번씩 시도했던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비밀의 대상에 나는 없겠지, 그 정도로 상대방에게 자신은 특별하고 편안한 존재이겠지라며 애정을 암묵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비밀이 다 털어져 버린 때에 ‘아,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걸’하는 그런 끔찍한 사태에도 그들은 꾸역꾸역 서로를 찾고, 부른다. 아버님, 진우야, 제니야, 어머님, 언니, 지선아.
그래서 달라진 게 없더라도 적어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숨의 트임에서 조금은 기뻐도 되지 않을까?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단평] 〈비밀일 수밖에〉: 상처를 줄 만큼은 알고, 받아들일 만큼은 모르는 (0) | 2025.09.19 |
---|---|
[인디즈 Review] 〈슈퍼소닉〉: 온 몸으로 들이키는 오아시스 (0) | 2025.09.16 |
[인디즈 단평] 〈3학년 2학기〉: 지워진 이름들의 세계 (0) | 2025.09.16 |
[인디즈 Review] 〈3학년 2학기〉: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0) | 2025.09.16 |
[인디즈 단평] 〈3670〉: 시간의 지리학 (0) | 2025.09.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