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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THE 자연인〉: 없는 진짜

by indiespace_가람 2025. 9. 1.

〈THE 자연인〉리뷰: 없는 진짜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아지가 별안간 두 발로 저벅저벅 걷더니 개다리춤을 춘다. AI로 만든 허무맹랑한 이 영상을 보고 가짜라며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왜일까. 진짜인 척하는 가짜만은 거부감이 든다. 모 먹방 유튜버는 음식을 먹는 척만 하고 사실은 전부 뱉었다는 먹뱉 논란으로 크게 비난받은 바 있다. 그러나 어디 그 한 명뿐이겠는가. 흡입력 있는 재미와 자극이 없으면 소비되기 어려운 콘텐츠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가짜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THE 자연인〉스틸컷

 

영화 〈THE 자연인〉 역시 가짜 콘텐츠에서 영화의 단서를 얻었다고 한다. 노영석 감독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마트에서 사다 둔 나물을 심어놓고 그걸 채집하는 식의, 누가 봐도 조작된 장면이 연출되는 광경을 발견한 게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인공 인공도 이름답게 가짜를 만들어낸다. 귀신 찾는 유튜버지만, 정작 귀신이라는 건 없다고 믿는다. 조회수와 구독자만이 그에겐 진짜다. 숲속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어느 자연인의 제보를 받고 친구 병진과 그곳을 찾아가는 것도 그저 조작된 영상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인공은 영화가 첫 번째로 비추는 진짜인 척하는 가짜인 셈이다.

 

진짜가 진짜를 알아보는 법이라면, 가짜가 가짜를 알아본다는 명제도 유효할 것이다. 인공의 눈에 제보자 자연인은 매 순간 가짜 같다. 자연인의 말에 따르면 그가 홀로 살아가는 산골짜기는 휴지도 없어 볼일을 보고 나면 계곡물로 뒤처리를 해야 한다. 자연인이 만든 소금잼이 유일한 반찬이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새벽에 몰래 짜장면을 비벼 먹는 그를 인공은 발견한다. 관객은 인공을 따라 자연인을 의심하게 되지만 문제는 이런 황당한 장면들이 음산한 숲속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진짜로정성껏 공포스럽게 조성된 영화 속에서 관객은 길을 잃는다. 어딘가 모순적인 자연인의 언행을 의심하면서도 고조되는 음악과 연출에 이끌리다 보면 어느새 다음 장면을 긴장한 채 기다리는 내가 있다. 영화는 틈틈이 공포의 문턱을 세워놓고 그 앞에 선 모든 의심과 기대를 의도적으로 비껴간다. 불길한 순간마다 자연인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배치해 실소를 부른다. 미스터리와 코미디를 정신없이 오가는 동안, 그래서 자연인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레 흐려진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 피식거리는 객석의 소리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THE 자연인〉스틸컷

 

이리저리 튀는 알찬 줄거리에 비해 진실은 허망하다. 사실 자연인은 대규모 미디어 제작사의 대표였고, 이 모든 상황이 제작사의 기획 아래 꾸며진 깜짝 카메라 콘텐츠였던 것이다. 인공과 병진은 그 콘텐츠의 여파로 채널 구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행운을 누린다. 자연인을 가짜라며 의심했던 인공은 화를 내긴커녕 늘어난 구독자에 환호할 뿐이다. 결국 영화 내내 진실을 찾아다녔을 관객만이 덩그러니 남아 헛웃음을 친다.

 

〈THE 자연인〉스틸컷

 

영화는 가짜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진짜를 찾는 일이란 얼마나 무의미한지 묻기 위해 의도적으로 길을 돌아가는 셈이다. 그 덕에 관객의 허망함은 배가 된다. 맥 빠지는 결말이지만 그런 결말만이 이 영화에 어울릴 테다. 가짜를 꾸짖지도 진짜를 찾아다 주지도 않는 영화 끝에 남는 건, 상영관 곳곳에서 들려오던 10번은 족히 넘었을 관객들의 코웃음 소리뿐이다. 적어도 그 소리만큼은 진짜 같다. 허무할 만큼 가짜투성이인 세상에서도 관객은 모두 본능적으로 진짜를 좇았을 테니. 우리가 살려낼 수 있는 불씨는 고작 그런 거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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