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리뷰: 오롯이 오독되는 삶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웃고 있는 연인을 볼 때, 왜인지 그에게 드는 낯선 느낌에 심사가 뒤틀린 적이 있다. 우리의 관계에 가득 들어 차 있던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치민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그를 모르는 것 같다는 불안은 연인이라는 관계를 넘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내밀한 관계에 적용된다. 우리는 각 관계에서 솔직하고자 늘 다짐하지만, 다양한 관계 양식에서 불리고 싶은 모양으로 자신을 재정의하며 행동한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하나의 존재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정호를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다. 이렇게 일축할 수 있지만 이게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는 비선형적으로 앞서 제시된 장면들에 또 다른 이야기를 붙이며 나아간다. 영화는 시간을 넘나들며 사건의 인과를 이어 붙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살아내는 이 복잡한 시간성이 선형 구조인 삶을 닮아 있다. 연인과 말다툼을 한 뒤 거리로 뛰어나온 인물은 시계 방에서 나온 다른 인물의 배경이 된다. 인물은 엑스트라가 되고, 누군가의 상대자가 되고, 주인공이 되는 일을 스크린에서 반복한다. 마치 우리가 서로의 삶에서 영향을 쌓고 손실하며, 등장하고 퇴장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장면들을 산발적으로 이어 붙이며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닌, 세밀한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관계 속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둘러싼 서로 다른 시점을 이어 붙이며 모호함은 가중된다. 다른 시점의 장면들은 인물이 들려주는 주관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난 후, 그 관계를 겪어낸 이들의 이야기는 ‘둘’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에게 체화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사건 서술보다는 감정 묘사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렇게 사건의 변두리에서 감정을 서술한다. 이는 고집스레 클로즈업을 사용하지 않는 영화와도 맞닿아 있다.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인물을 둘러싼 관계의 층위를 해명하기보다, 그 층위에서 파생되는 감정의 미묘함을 응시한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관계는 서술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이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끝내 나 자신으로만 남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다른 것으로 알려질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늘 오롯이 오독되는 경험의 연속이다. 영화는 잘못 읽히면서, 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라진 나의 원형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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