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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영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그리고 〈미망〉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보민 님의 글입니다.
‘세상 참 좁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지인 중 접점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아는 사이였다든지, 심지어는 과거 연인이었다든지. 그런 의외의 사실을 우연찮게 알게 될 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작은 세계들이 맞물려 바삐 굴러가고 있음을, 또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새삼스레 느낀다.
〈이어지는 땅〉으로 장편 데뷔 후, 두 번째 연출작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내보인 조희영 감독은 사람과 관계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결하는 힘이 있다. 관계의 매듭을 정교하게 엮은 후, 모르는 이의 무결한 시선으로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모든 게 우연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대사와 장면 속에서 데자뷔가 발생한다.
이 데자뷔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길거리를 떠도는 검은 개다. 연극배우 ‘유정’의 대사에서 처음 언급되는 개는 곧 회화 작가 ‘인주’의 시야에도 등장하고, 갈등을 쏘아 올리는 문젯거리가 되며, 접점이 없는 낯선 인물과 인물을 매개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상징을 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봐도 이 개에게는 정해진 의미가 없다. 도시를 거닐며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인물들을 한 번씩 거치고, 영화가 순환하는 데 힘을 실어줄 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인물들이 교차로 등장하는 편집 방식이나 관조적인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떠돌이 개의 눈으로 그들을 관망하게 되는 미묘한 경험이 일어난다.
〈미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순신 동상도 떠돌이 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광화문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3장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모든 장에 등장한다. 인물들의 대화 속에, 시야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며 오래전에 세워진 동상을 둘러싸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간다. 왜 이토록 주요하게 등장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겠으나, 분명한 것은 동상이 조금씩 다른 시공간에 있는 세 쌍의 인물이 연결되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서울이라는 배경 속에서 인물들은 동상 주변을 거닐고, 동상을 응시하고, 한 프레임 속에 담긴다. 불 꺼진 방에 앉아 영화를 관람한 나는, 역시 동상과 동일시되어 인물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로 돌아가서,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열어두려는 작품의 태도는 결말에서 더 명확하게 함축된다. 인주가 공들여 완성했던 캔버스 위의 회화작품은 전시장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벽에 걸리기를 의도했던 회화에서, 바닥에 놓인 깨어진 조각 하나하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설치미술로. 창작자의 의도는 깨졌지만 관람하는 이는 더욱 골몰하게 된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로 명명된 엔딩 속 작품은 그 이름처럼 영화 자신과 서로 닮았다.
떠돌이 개와 이순신 동상, 앞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장면들. 이것들은 연속되고 쌓이면서 하나의 순환을 만든다. 의도가 명확하게 펼쳐지지 않은 스크린 앞에서, 관객은 아는 것과 알아가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영화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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