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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바꾸는 공포
〈THE 자연인〉 그리고 〈어브로드〉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소정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공포감에 대해 말할 때 등장하는 요소들이 있다. 세상의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귀신, 타인에게 악의를 가지고 해를 끼치는 사람, 그리고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 농담처럼 셋 중에 무엇이 더 무서운지 말하곤 하지만, 많은 공포 상황에서 세 가지는 함께 오기도 한다.
〈THE 자연인〉은 마치 셋 중에 뭐가 더 무서운지 물어보며 건네는 농담과도 같은 상황들을 보여준다. 10만 구독자 달성이 코앞인 공포 유튜버 귀식커 인공, 1000명이 채 안 되는 구독자를 보유한 댄스 유튜버 병진. 두 사람은 인공의 유튜브 채널을 위해 귀신 목격 사연자를 만나러 인적이 드문 숲속으로 향한다. 사실 그동안의 귀신 목격 사연은 전부 거짓말에 가까웠고, 인공은 유튜브 채널의 부흥을 위해 병진에게 귀신 연기를 시킬 생각으로 데려간다.
유튜버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두 사람은 사연자를 만나기도 전에 휴대전화가 고장 난 채로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사연자와 만날 수단이 없어졌으니 그냥 귀가할 생각으로 아웃트로 영상을 찍던 두 사람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등장한다. 얼굴을 시꺼멓게 칠한 중년의 남성은 자기가 사연자라며 둘을 자기가 사는 집으로 데려간다.
인공과 병진의 어깨를 짓누르던 현실의 공포는 이제 중년의 사연자가 말하는 귀신의 공포로 변했다가, 이내 사람에 대한 공포로 변한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연자는 산에서 귀신을 만난 이야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를 둘에게 말한다. 사연자의 고집스럽고 퉁명스럽다가도 언뜻 보여주는 진중한 모습은 인공과 병진을 헷갈리게 만든다. 인공과 병진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영상 촬영을 이어가고, 어느새 둘 사이에도 불신이 싹튼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서 곤란하고 웃긴 상황들이 이어지고 공포는 계속 다른 모양으로 다가온다. 사연자의 ‘썰’과 인공의 목격담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귀신과 사람과 현실이 뭉텅이로 걷잡을 수 없이 뒤섞이며 엉망진창이 되며 공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다다른다.
〈어브로드〉에도 낯선 장소에서 무엇이 공포스러운지 경계를 흐리며 달려 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만나본 적 사연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공포스러워지는 〈THE 자연인〉과 달리, 〈어브로드〉에는 계속 곁에 있었던 여자 친구가 사라지면서 공포가 다가온다.
〈THE 자연인〉이 웃음과 긴장, 귀신과 사람, 현실이 뒤섞이며 무엇이 진짜 두려움인지 끝까지 헷갈리게 만든다면, 〈어브로드〉는 낯선 장소에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공포를 체감하게 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공포를 외부의 괴이한 존재에서 찾기보다는, 낯섦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준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 공포는 결국 그걸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이 (나에게) 공포스러운가? 뾰족한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 질문 속에서 공포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상황과 감정, 관계의 틈 속에서 모양을 바꿔가며 정체를 바꾼다.
* 영화 보러 가기: 〈어브로드〉 (지오바니 푸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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