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소소대담] 2024. 5 계절의 흐름, 피어나는 영화들
*소소대담: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의 정기 모임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기록입니다.
참석자: 접영, 영법, 배영, 자유형, 평영
파릇한 봄과 울창한 여름 사이인 5월, 여러 영화를 보며 봄과 여름을 모두 느낀 다섯 사람이 만났다. 수많은 문장 속에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계절을 겪는 영화들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걸어가는 영화들, 또는 멈춰있는 영화들과 함께한 소소대담이었다.
* 5월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인상적인 영화들
영법: 〈푸안〉이라는 아르헨티나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코미디 영화인데, 어떤 교수가 본인이 임용될지 말지에 따라서 계속 현실과 타협해 나가는 영화예요. 한참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불안정했을 때를 잘 드러낸 것 같아요. 영화의 완성도도 좋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코미디로 풀어낸 것이 흥미로웠어요. 〈한대만〉이라는 국내 단편은 묘한 텐션의 관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봤어요.〈귀화전도〉라는 영화는 꽤 실험적이었는데, 메타버스로 박물관을 관람한 느낌을 줬어요. 내러티브를 잘 쌓았기 때문인지 흥미롭더라구요.
접영: 〈말께리다스〉 는 여자 교도소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인데 모든 장면이 핸드폰 카메라로, 저화질로 찍혀 있어요. 재소자들이 몰래 반입한 핸드폰으로 통화도 하고 그 속에서의 생활을 직접 기록한 건데 엄청 긴 시간이 담겨 있더라고요. 감독은 이걸 편집하는 과정만 거쳤는데, 그 생활을 그대로 박제해 주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잘 보였어요. 그녀들이 겪은 삶의 내용을 물리 매체로 저장해두고 싶다는 것이, 범죄자이기 이전의 개인을 조명하고 싶어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자유형: 완전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였군요! 그냥 플롯인 줄 알았어요. 그런 영화는 정말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영화는 의도대로 담으려면 편집이 최대한 덜 들어가는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올해 한국 장편 기대작이었던 〈언니 유정〉을 봤어요. 전하고자 하는 말을 너무 빙빙 둘러 이야기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습니다.
영법: 전 이번에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보려고 노력했어요. 근데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소재들, 고여있는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새로운 시선을 더한다기 보다는 사태의 힘듦을 부각하는 정도였고요. 작년, 재작년에도 통했던 것을 지속적으로 가져온 것에서 많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작품도 유독 많았어요. 현실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한 탓일까요? (웃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긴 하죠.
자유형: 그래도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좀 다른 시선으로,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무언가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다큐도 물론 훌륭한 표현 방식이지만, 다큐로 만든다고 했을 때도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방면에서 그 상황을 풀어냈으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접영: 하지만 영화제라는 장소가 있기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제까지 없으면 우리가 〈귀화전도〉, 〈말께리다스〉도 못 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인 〈통잠〉은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통잠’이라는 단어는 보통 아기들이 ‘통잠’잔다 할 때의 통잠으로 사용하잖아요. 이 영화는 아기를 너무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계속 임신에 실패해서 그들이 통잠을 못 잔다는 내용이에요. 요새는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신 분들도 많잖아요. 그 와중에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지 궁금하더라고요. 주연으로 나온 김시은 배우가 연기로 영화를 끌고 갑니다. 임신을 위해서 남편과 수도없이 싸우는 장면들,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건의 심각성 등에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욕망이라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요. 남편 역의 이도진 배우가 공동연출까지 했고, 그래서 그런건진 몰라도 영화가 저를 잘 설득시킨 것 같아요. 보통 같은 소재를 다룬 미디어에선 남편이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오잖아요. 근데 〈통잠〉에서의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의 생각과 몸을 이해하고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나, 영화는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현실의 문제에 부딪혀서 미쳐버리고 마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김시은 배우의 연기가 정말 멋있었는데 최근 개봉작인 〈드라이브〉에서도 볼 수 있답니다.
* 5월에 우리가 만난 영화들
〈드라이브〉
[리뷰]: 여느 헤어짐과 어떤 만남(이지원)
[단평]: 차를 타며 보내는 시간, 그리고 그 안에 쌓이는 것들(오윤아)
[인터뷰]: 정연 감독(김민지), 김시은·조의진 배우(이수영)
[인디토크]: 정리되지 못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민서)
[뉴스레터]: Q. 🚙 마음 울적한 날엔? (2024.5.22)
영법: 〈드라이브〉는 거의 10년 가까이 오래 촬영되었더라고요. 3개의 에피소드로 되어있는데 모두 각기 다른 시기에 촬영되었어요.
배영: 전 처음 볼 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김시은 배우가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왔던 배우와 같은 분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 10년의 시간이 확 차이가 나더라구요.
접영: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 후반부의 폐차 장면이었어요.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었고요. 차가 분해되는 과정을 굉장히 오래 보여주는데 마치 제 내장이 뜯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만큼 세부적으로 차를 분해하는데 주인공들의 과거나 관계나 분해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자유형: 저도 폐차 장면에서 차에 완벽히 인간이 대입된다고 느꼈어요. 완전히 고장난 상태에서 더 이상 차를 몰 수 없으니까, 이 정도면 폐차를 해야하는게 맞는 선택이다 싶어서 주인공 앞에서 그 차를 다 뜯어버리잖아요. 오래 그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중간부터는 차가 완벽하게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영법: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의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화 속에서 한 명이 현상을 제시하면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해석을 해주더라고요. 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늦더위〉
[리뷰]: 뒤로 걸어가는 청춘의 발자취를 따라.(오윤아)
[단평]: 서울은 벌써 가을이야(김윤정)
[뉴스레터]: Q. 🍀 젊으니까 여름이다? (2024.6.12)
자유형: 단편들은 흐름에 맞춰 더 짧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와중에 3시간이 넘는 장편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요. 〈늦더위〉는 공시생인 동주가 과거를 뒷밟는 이야기이고요, 상영 시간은 120분이 넘어요. 주인공 동주가 굉장히 자기연민적이고, 자격지심도 크고, 질문을 해도 답을 못 돌려주거나 늦게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이 돼요. 전 그 부분에서 주인공에 굉장히 몰입하게 됐어요. 저를 닮았다고 많이 느껴서 그런 건지.. 주인공에 크게 이입하게 되는 순간 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실 꽤 길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한편으로는 그 길이가 있었기에 더 설득이 된 건가 싶기도 해요. 수상작은 확실히 다르구나 싶었고, 여름의 청량함이 아니라 여름의 꿉꿉하고 땀에 젖은 사람을 아주 잘 표현해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여행자의 필요〉에서 봤던 장면들이 겹쳐 보이더라구요. 특히 후반부에 동주가 뒷걸음을 하는 것을 오래 보여준다던가, 주인공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길로 걸어간다던가 하는 장면들을 꽤 오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느낌이 있다고 느꼈어요.
〈여행자의 필요〉
[리뷰]: 추상적인 것을 잡아 꺼내려는 연습(오윤아)
[단평]: 여행의 의미(김민지)
[뉴스레터]: Q. 여행 준비물.. 바로 막걸리? 😉 (2024.5.15)
자유형: 사실 제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어려워해요. 홍상수 감독 특유의 영화 유머가 있잖아요, 근데 저는 잘 와닿지가 않더라구요. 이해를 너무 못한 게 아쉬워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기는 했습니다. 지금 상태로 딱 느끼는 건.. 이번 영화의 카메라는 굉장히 철저하게 지시대로 움직인다고 느꼈어요. 이전에는 좀 복잡한 무빙이 많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프레임 안은 모두 홍상수 감독의 것이더라구요. 그렇지만 아직도 영화의 갈피를 잡지 못하긴 했습니다.
배영: 홍상수의 영화라고 하면 지루하다는 프레임이 되게 강하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저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어요. 특히 남자와 엄마가 나오는 장면이 웃겼어요. 분명 엄마가 등장하기 전에 이리스와 둘이 샐러드를 해먹을까, 빵을 먹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끓여준 찌개를 먹고 있다던가.. 하는 장면들이요.
접영: 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둘이 풀 숲으로 사라지는 장면인데, 딱 스크린의 정중앙 속으로 사라지잖아요. 연극처럼 딱 커튼이 내려가는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스크린 뒤로 가면서 영화에서 퇴장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목화솜 피는 날〉
[리뷰]: 극은 뉴스보다 강하다(이수영)
[단평]: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서민서)
[인디토크]: 이름을 불러보면(김윤정)
[뉴스레터]: Q. 💛 영화로 세월호를 기억하기? (2024.6.5)
배영: 올해가 세월호 10주기라 관련 다큐멘터리가 많이 나왔는데, 〈목화솜 피는 날〉은 극영화이기에 조금 다른 감정으로 보러 갔던 것 같아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영상에서, 박원상 배우가 현장 체험 온 학생들에게 세월호의 구조를 하나씩 설명해주는 가이드 역할로 나오세요. 전 영화 전체적으로는 슬프지 않았는데, 그 영상을 보며 좀 울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와 닿는 느낌이 크더라구요. 보면서 제목은 왜 〈목화 솜 피는 날〉인지 궁금했는데, 그 제목에 대한 뜻도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근데 그 제목이 세월호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져서 제목을 정말 잘 지으셨다고 생각했어요.
평영: 세월호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10년간 계속해서 나오면서, 다큐가 할 수 있는 반경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아 좋아요. 그 기억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피해자의 슬픔을 재현하는 방식만 가지고 가지 않아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영: 많이 알려진 사실 그대로만 가지고 가면 다 똑같은 영화가 되어버리니까요. 근데 창작자 입장에서 이러한 실제 사실에 창작을 더해서 만든다는 게 굉장히 부담이기도 할 것 같고, 조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유형: 전 〈세가지 안부〉라는 세월호 10주기 옴니버스 영화를 올해 4월 16일에 봤었어요. 보는 내내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기자들의 시선에서 세월호를 바라본 다큐멘터리 〈그레이존〉이었어요. 지금까지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서본 적이 없었는데, 기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다시금 기자들이 촬영한 영상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도 남겨두는 것이 확실히 좋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두 입장 모두 너무 이해가 가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직업 정신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부분이 있었긴 했지만, 너무나도 큰 사건이기에 기록으로 남겨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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