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필요〉리뷰: 추상적인 것을 잡아 꺼내려는 연습
*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아 님의 글입니다.
감독은 포스터에서부터 관객을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 알 수 없는 외국인이 흙과 같은 포스터 바닥에 앉아있고, 돌과 같은 글씨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나는 자연스레 눈동자를 포스터의 위부터 아래까지 이동시켰다. 굵직하고 딱딱한 글자로 적혀진 비정형화된 문장들에 머리가 조금 아파질 때 즈음, 편안함을 얻는다는 문장이 눈을 밝혀준다. 나 또한 편안해진다. 이렇게 난 〈여행자의 필요〉로에 발을 들였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하는 이송과 이리스, 잠시 얘기를 나누다 이송이 피아노를 연주하러 걸음을 옮긴다. 연주를 마친 이송에게 이리스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묻는다. 행복하고, 아름다웠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그치지 않고, 이송에게 또다시 진짜 내면에서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으로 연주했는지 집요히 질문한다.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이리저리 속을 헤매다 이송은 사실 실력이 좋지 못해 짜증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리스는 그제서야 메모를 하고 이송의 생각과 본인이 덧붙인 문장들을 녹음기에 기록한다. 밖으로 나가 돌에 적힌 이송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반복된 질문과 구체적인 대답, 이야기가 기록된 녹음기가 이송에게 전해진다. 수업료를 받고 그녀는 식당에 들러 막걸리를 마신다. 이렇게 이리스는 첫번째 여행을 마친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원주와 해순 부부, 그리고 이리스가 보인다. 이리스는 부부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소파로 이동해 막걸리를 나눠 마신다. 살짝 취기가 오른 원주가 즉흥적으로 기타 연주를 한다. 이리스는 원주에게 기타를 칠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묻는다. 이송과 거의 동일한 답이 돌아온다. 이리스도 앞과 같은 질문을 통해 또다시 원주의 마음을 헤집는다. 원주도 부족한 실력에 짜증이 난 것도 같다 실토하고, 이리스는 녹음기에 원주의 진심과 본인의 생각을 기록한다. 그녀 안의 그녀를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는 누구인지. 셋은 산책을 나가 돌에 적힌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는다. 이리스는 또다시 질문을 반복하고, 원주는 또다시 대답하는 자가 된다. 대화를 마친 이리스는 수업료를 받고 홀연히 사라진다. 두번째 여행이었다.
총 두 번의 수업을 마친 후, 이리스는 본인이 머물고 있는 인국의 집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이곳이 이리스의 집이라 명할 수는 없다. 인국의 엄마가 집에 찾아오자, 이리스는 쫓기듯 밖으로 나간다. 순종적으로 보이던 인국은 이리스와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이리스에게 다시 찾아간다. 맨발로 하천을 건너고 흙을 밟아 큰 돌에 도달한 이리스는 막걸리와 함께 그곳에서 휴식하고 있던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인국의 말에 그녀는 그곳이 나의 집이냐고 되묻고, 인국은 굳은 말로 끄덕인다. 인국과 이리스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이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마지막 여행이었다.
돌에 적힌 글처럼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고, 때로는 부끄럽고 아름다운 우리들은 이름 모를 누군가를 경계하고 의심하며, 시선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산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여행자의 필요〉는 죽는 것을 잊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삶을 살아가려는 자를 매개로 끈질기게 질문하고 대답하게 한다. 그렇지만 내면의 나를 마주하게 하고 답을 얻으려 하는 사람을 불편해 할 필요는 없다. 결국 그러한 사람도 자주 막걸리를 찾아 불안정하고 흐릿한 상태로 향하는 자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편안함을 찾는다. 여전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알기 어렵고 취기에 어려있는 듯한 느낌이지만, 비정형화된 글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괜찮다. 어찌됐든 우린 살아있는 동안은 아름다울 것이고 언어로 전환하기는 어려워도 무언가 진정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나의 진실된 마음은 알아야 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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