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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땅에 쓰는 시〉: 자연과 우리의 이야기

by indiespace_가람 2024. 5. 7.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우리의 이야기

〈땅에 쓰는 시〉 〈리틀 포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광활한 대지를 마주했을 때, 푸르른 계절을 온몸으로 뒤집어 쓴 자연이 고개를 들이밀 때, 살아 숨쉬는 깨끗한 공기가 코로 단숨에 흡입될 때, 어마무시한 스펙터클, 전경의 주는 광활함은 인간에게 큰 전율을 제공한다.
형용할 수 없는 광대함을 갖고 자연이 선사하는 것들을 온몸으로 체감할 때, 우리는 잠시 어느 시공간을 잊고 자연과 하나되어 그들의 진가를 깨닫고는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이, 내가 두 다리를 딛고 서있게 만드는 이 단단한 땅이, 실제로 자기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아우성 치고 있구나.” 어쩌면 당장 피부에 닿아 있어 깨닫지 못했던, 제공된 자연을 느끼는 순간. 그 아름다움을 자각시키는 데에 ‘조경사’라는 직업이 연결사로 위치해있다. 


영화 〈땅에 쓰는 시〉는 공간과 사람을 이어주는 조경사 ‘정영선’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영화 〈땅에 쓰는 시〉 스틸컷



초록색 풀들이 싹을 틔우고 솟아난 땅위를 밟는 이가 있다. 그는 자신의 주변의 식물과 자연을 소중히 눈에 담아 그림을 그린다. 자연스레 ‘아이고, 예뻐라”라며 흥얼거리는데, 귓가에 멤도는 이 소박하고 정갈한 리듬은 시간이 쌓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발 맞춰 나가는 사계의 속도를 반영하는 듯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개의 계절이 쌓여나가며 땅에 쓰여지는 시는 이렇듯 쾌활하다. 

 

조경사 정영선은 국내 1세대 조경가로, 우리가 익히 걸어온 익숙한 길을 다듬고, 정돈해왔다. 

‘선유도 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등, 그녀의 흔적은 인간사의 삶에 대한 고려와 땅이 갖고 있는 힘을 믿고 건설되었다.


자연은 힘이 있다. 그리고 이 힘은 인간의 힘과 반대에 위치해 있지 않고, 결속되어 움직인다. 우리가 이 자연을 지키기 위한 맹목적인 헌신에 집중해 땅에 나무를 심는 행위를 일삼는 것 보다, 그 자연의 존재성을 인지하고 신체를 통해 자연을 느끼고 공존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녀는 읊는다. 신체에 닿는 바람과 풀내음을 자각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풍족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 그녀가 땅을 밟는 인간에게 건네는 혜안이다. 


 즉,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봄이 아름다워야, 여름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 다음 계절이 존재하기 위해선 현재의 계절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켜야함을 속삭인다. 지층처럼 견고한 계절의 지반으로 쌓여야만 미래의 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듯. 그는 현재 계절에 충실하고, 주변 경관을 둘러 보며 우리의 일상과의 조화에 집중한다. 


이 일상성에 주목한 그녀의 시각은 ‘서울아산병원’의 설계 목적에서 잘 나타난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를 더 귀중하게 만드는 방법은, 그들의 일상과 자연을 결부시키는 행위다. 병동에 갇혀 밖의 내음을 맡을 수 없는 이들에게, 커다란 숲을 제공해, 살아 숨쉬는 기운을 제공한다. 고통과 맞닿은 공간 속에서 팔딱이는 자연의 숨을 제공해 현재의 반동을 제공한다. 그리고 가끔은 묵묵히 곁에 존재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려 발버둥치는 인간의 감정을 기다려주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의 속성과 함께 인간을 고려한 그녀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 속에서 안정감을 제공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였고, 땅을 밟으며 내일도 밟을 그 땅을 고대하며, 한발짝 내딛었을 때의 마주하는 숨결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거창한 일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은 어쩌면 고요한 적막일지도 모르며, 내가 땅 위에 서있을 수 있는 근본적인 체계에 대해 탐구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던 사회를 벗어나 엄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직접 자신의 끼니를 챙겨먹기 위한 고생을 일삼는데, 과일을 맨손으로 따먹고, 마트에서 사온 재료를 섞어 만드는 음식이 아닌 자신의 직접 공수해온 세상의 ‘맛’들을 조합해 자신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나간다.


삶을 되찾는 과정은 이처럼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현재 내가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는 행위에 집중해야한다는 듯이 생명체의 근간에 집중해 있다. 다음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선 현재 나를 충실히 돌보는 게 중요함을 알리는 듯. 꼭꼭 씹어 먹는 밥에 대한 유의미를 제공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인간이 사계절의 시간을 보내며 성숙되는 것처럼, 땅도 매번 찾아오는 계절을 맞이하고, 인간의 발로 단단히 밟히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생성한다. 자연과 인간 모두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고유의 의미를 찾아간다. 미래를 기대하기 위해선 현재의 땅을 어떻게 밟아 나가는 지가 중요하다. 현재의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해, 우리의 일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듯 영화는 외친다. 

 


* 작품 보러 가기: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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