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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목화솜 피는 날〉: 극은 뉴스보다 강하다

by indiespace_가람 2024. 6. 7.

〈목화솜 피는 날〉리뷰: 극은 뉴스보다 강하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해결되지 않은 실제 사건이 픽션을 만나도 될까. 창작의 영역에 있어 소재 활용의 경계는 뜨거운 감자다. 영화나 소설 등 가상의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해 어떤 사건까지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 제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돌아보며, 참사로 불린 굵직한 사건들은 여럿 있었다. 5.18 광주 민주 항쟁 당시 발생한 전두환 씨의 민간인 학살부터 제주 4.3,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방화까지. 전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또 그 성질이 제각기 다르다는 지점에 있어 해결되지 않은 참상은 셀 수 없이 많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10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는 겨우 교통사고라며 치부했지만, 그 누구라도 아이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고작 접촉 사고라도 운전자의 사고 전후 상황을 확인하는 마당에,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 아이를 잃어야 했던 부모, 함께 생사의 경계에 놓여야 했던 반 친구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다른 사건들과 조직이 개입하며 의문은 흐려져 갔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안아야 하는 현재 진행형의 무게다.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떠난 이유조차 밝혀주지 못한다는 미안함이 뒤섞인 국가적 트라우마는 4월이 되면 기억하겠다는 이미지들과 함께 노란 리본으로 우리 옆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렇게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간다. 해결되지 않은 실제 사건, 아니 세월호 참사가 픽션을 만나도 될까. 깊이 쌓여있는 마음의 앙금은 물론이오, 버티고 소리 질렀던 유가족의 삶 속에는 떠난 아이들의 향취가 배어 나온다. 과연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과 영화 제작자는 ‘극영화’ 등의 형식으로 참사와 주변인을 재현해도 되는 걸까. 조바심 나는 질문을 향해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최선을 다해 답한다. 어쩌면, 극영화로 나타내야만 했다고. 재구성했다는 사실이 마음의 진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병호’와 ‘수현’의 일상을 통해 보여낸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영화 〈목화솜 피는 날〉은 10년 전 딸을 잃고 기억도 함께 잃은 아빠, 그리고 그 기억을 외면하는 엄마를 그려낸 극영화다. 영화는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의 잔혹함이나 슬픔의 진폭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전달하기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담을 수 없던 개인감정에 대한 미시적 줌 인(Zoom In)이 시작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과정, 진전되지 않는 수사에 폭력적으로 대응한 병호나 혹시라도 빌미가 될까 서로를 검열해야 했던 유가족의 현실적 고민 등을 담아내며 병호와 수현은 남겨진 이들의 처지를 집합적으로 대변한다. 메가폰은 피해 당사자에서 진도 거주민,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국민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넓힌다. 영화는 우리가 왜 세월호를 아직 얘기해야 하는지 느리게 토로할 뿐이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스틸컷

 


영화 말미에 이르러, 병호는 인양한 세월호 선체에 당도한다. 최초로 공개된 그날의 공간에,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병호는 누워 눈물만을 흘린다. 현실의 자국과 극 중 인물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병호, 아니 박원상 배우가 보인 감정이 ‘연기’에 불과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목화는 꽃이 지면 그 자리에 보드랗고 하얀 솜을 피워낸다. 10년이 지난 그들의 마음에도 보송한 솜털이 자리 잡기를, 관객은 다시 병호와 수현의 입을 빌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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