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리뷰: 여느 헤어짐과 어떤 만남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원치 않는 타이밍에 걸려 오는 전화만큼 불편한 게 있을까?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된 세 편의 이야기는 자동차 안팎을 오가며 각자의 속도로 흘러간다. 눈 스프레이로 더럽혀진 차, 기스가 잔뜩 난 차, 겉은 멀쩡해 보여도 완전히 고장 난 차. 멈춰 선 차는 더 이상 기껍지 않은 우리 사이를 떠올리게 한다. 처치 곤란의 자동차는 과거 안에 맴돌기도 선형적으로 흘러가기도 하며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나선다.
EP.1 여름
이선은 방치된 자동차를 처리하라는 연락을 받는다. 차를 찾으러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논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치고 옷에는 흙이 묻는다. 어렵게 찾아간 차는 먼지와 눈 스프레이로 더러워져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이선은 자동차를 직접 세차하기로 한다. 차를 세차하며 자동차 안에 밀봉되어 있던 지난 기억들이 튀어나온다. 중고차 딜러 상호는 과거의 기억을 꺼내어 이선 앞에 늘어놓는다.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 추억이 담긴 카메라, 눈 스프레이는 상호의 손을 빌려 이선 앞에 등장한다.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냐”며 불편한 기색을 비치던 이선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와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세차가 마무리될 즈음, 이선과 ‘그’의 이야기도 막바지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희는 목적지가 달랐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선은,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다. 차를 팔고 나온 이선은 상호로부터 사진을 건네받는다. 세차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EP.2 겨울
탁송기사 태현은 수취인 소희에게 자동차를 전달하러 지방 출장을 떠나지만, 수취인도 수령거부, 발송인도 자동차 수령을 거부한다. 누구도 자동차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서, 태현은 남녀주인공들의 싸움에 끼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왜 나한테 난리야. 차가 남자예요? 그냥 차지.” 이에 소희는 답한다. “그냥 차는 아니죠!!” 태현의 말처럼 차가 남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냥 차도 아니다. 그냥 차라면 소희의 말처럼 ‘애물단지’가 되어 태현을 괴롭힐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차는 지난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공간이다. 소희는 차를 통해 ‘그 사람’을 본다. 찌그러지고 기스가 난 차를 보며 차의 이력을 묻던 그녀는 문득,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요?”라고 묻는다. 문을 열고 차 안을 살피다 CD를 꺼내 들고는 “아직도 이런 노래 듣나 보네…”라고 중얼거린다. 소희는 차에서 ‘나’ 없이 살아가는 ‘그 남자’를 본다. 그녀는 상상했을 것이다. ‘헤어진 뒤 그 남자는 어땠을까?’ ‘무엇을 먹고 무엇을 듣고 어떻게 살았을까?’ 소희가 차를 떠나고 태현은 차와 남겨졌다. 차를 가지라는 탁송업체 사장의 전화에 태현은 이렇게 답한다. “남의 차를 어떻게 가져요?” 단지 사물에 불과했던 차에서 소희와 ‘그’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현은 소희의 말을 곱씹으며, 이미 식어버린 핫팩을 버린다. 태현 역시 소희처럼 이별을 겪었고 이별에 아파했다. 그 역시 문득, ‘그녀’가 궁금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EP.3 가을
영화배우 지현이 촬영 현장으로 가는 길에, 차가 고장 난다. 그녀는 전 남친 문호에게 전화해 차를 빌려달라고 말한다. 문호는 친구 상현을 차와 함께 보낸다. 상현은 지현의 일일 매니저가 되어 그녀를 촬영장까지 데려다주기로 한다. 촬영장으로 향하는 길, 상현은 문호와의 관계를 묻는다. “우리가 전화할 사이는 아니잖아”라는 문호의 말처럼, 문호와 지현은 사실상 헤어진 상태였다. 금전적 관계만이 미약하게나마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었다. 문호는 차를 보내며 ‘빚을 청산’했고 더 이상 지현과 문호 사이에 남은 것은 없었다. 유예되어 있던 이별은 지현이 차를 받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이루어졌다. 상현의 질문에 지현은 “헤어졌어요, 방금”이라고 답한다.
지현과 상현의 관계는 달음박질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언어에는 따스함이 담겨있지만, 과열되지는 않는다. 촬영현장에 도착한 지현은 카메라 앞에서 문호와의 마지막 대화를 재현한다. 상현은 카메라 속 지현의 모습을 본다. 상현의 표정은 아리송하다. 카메라를 통해서나마 지현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지현과 문호의 기억을 엿보는 것 일수도, 지현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상현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가, 차가 완전히 고장났음을 알게 된다. 문호의 차는 더 이상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지현은 폐차장으로 향해, 문호의 차가 분해되고 압축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상현이 그 곁을 지킨다. 폐차를 마치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이제, 지현과 상현의 시간이다. 두 사람은 뜨거워질 수도, 차가워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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