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오기까지
〈모르는 이야기〉와 〈다섯 번째 흉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의 하루는 지나치게 무료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시간과 공간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유사한 공간에서 ‘기은(정하담)’과 ‘기언(김대건)’은 각자의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방해하는 것은 척추에 주어지는 비정기적인 통증과 그 통증을 견뎌내기 위해 복용하는 진통제 뿐이다. 어디 하나 닮은 구석 없는 두 사람이 각자의 고통을 경험하는 순간, 같은 공간에서 순간의 고통을 함께 겪는 듯 화면은 겹쳐진다. 서로에게 완전히 등돌린 채로 웅크리는 모습은 그들이 완전히 분리된 존재라고 말하는 동시에 두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 충분히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충분한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 같은 구조 안에 존재하는 두 사람 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이 가능에 충분히 포함 가능한 범주에 속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 실상과 가상을 넘나드는 그들이 각자가 창조해낸 완전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희미한 논리로 이어지는 계기는 결국 원치 않아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이다.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온전한 감각의 영역에서 어떤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어떤 타인은 감히 상상조차 닿지 않는 영역들에 쉽게 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설사 그것이 당장의 참을 수 없는 치명적인 고통일지라도.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개로, 과정으로, 혹은 결과로 유려하고 고유한, 한편으로 지극히 실재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 기은과 기언의 자아를 찾는 여정은 현실이 아닌 비현실의 영역에서만 온전히 실현 가능하다. 집 안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닌 불완전한 비현실 속에서 자아는 생성된 이후로 줄곧 같은 자리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어떤 자아는 놓아줌으로써 사라지고 또 생겨난다.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통과하는 의례처럼 비현실의 자아 찾기에 몰두하는 각자는 본인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분열된 장면들에서 스스로의 자아 또는 누군가의 자아에 의해 해체되고 조합되고 또 연결된다. 반복되는 기은과 기언의 군상 속에서 하이앵글로 보여지는 끝없는 대지와 낱낱이 부숴지는 파도들의 이미지는 결국 그 모든 것의 하나 됨을 시사한다. 당신과 나를 구분함이 그러니 얼마나 무의미한가. 애초에 그 모든 것은 하나이면서 동시인 것을.
헤어진 연인의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정체불명의 곰팡이 꽃이 기이한 생명력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다섯 번째 흉추〉는 감각을 통한 이미지로 재현한다. 사랑과 슬픔, 증오를 통해 자신을 확장하던 그 기묘한 존재는 결국 완전한 타인에게까지 고통을 주며 그들을 불규칙성으로 연결하기 시작한다. 권태로운 연인들을 거쳐 가족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흡수하는 곰팡이 꽃은 척추뼈에 자신의 고유한 고통을 나눠주는 대가로 사랑을 수거한다. 불규칙적이지만 다분히 의도적으로 타인과 관계하는 곰팡이 꽃은 자신과 관계한 각각의 개별들을 자신의 영역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낸다. 일상의 실존하는 존재와 비일상에만 머무르던 허구의 존재가 스스로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뺏기고 빼앗기며 하나가 되는 과정이다.
현실의 지금과 지금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모든 개별의 일들은 돌아보면 모두 무의식 영역에 존재하는 찰나의 꿈처럼 불분명하고 단절된 순간과 장면과 같다. 눈 앞에 있는 지금이 현실인지 혹은 꾸며낸 가상인지 불분명할지라도 그것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를 찾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진실과 허구를 가려내기보단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감각의 영역에서 지금까지의 그 무엇들은 모든 것인 동시에 온전히 하나될 것이라는 믿음일 것이다.
* 작품 보러 가기: 〈다섯 번째 흉추〉(박세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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