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에 대하여
인디돌잔치〈사랑의 고고학〉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04월 30일(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이완민 감독, 옥자연, 기윤 배우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기록입니다.
역사의 궤적을 슬며시 좇는 인물의 삶은 그 궤적을 따라 내내 같은 자리를 맴돌더니 잠시 멈추어 자신이 남긴 흐릿하지만 명확한 선을 돌아본다. 그 선을 부정하지 않고 또 고이 인정하는 태도로 다시 자신의 궤적을 나아간다. 그 고요하지만 분명한 에너지가 〈사랑의 고고학〉에 있다. 사랑의 고고학이 지나온 궤적을 잠시 멈추어 돌아보고, 1년이라는 점을 남겨본다. 그리고 다시 함께 모여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현민 기자(이하 김현민): 안녕하세요. 오늘 〈사랑의 고고학〉 인디돌잔치 진행을 맡은 김현민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영화를 만드신 이완민 감독님과 배우님들 오셨습니다. 오늘 생일잔치 날인데요. 관객 분들의 투표로 치열한 접전 끝에 선정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와 주신 관객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완민 감독(이하 이완민): 안녕하세요. 1주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옥자연 배우(이하 옥자연): 안녕하세요. 1주년을 기념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쁘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윤 배우(이하 기윤): 안녕하세요. 인식 역을 맡은 기윤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현민: 담백한 인사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이 생일잔치이니까 특별한 순서가 있습니다. 케이크가 들어오면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세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사랑의 고고학〉 생일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익명의 팬분께서 선물로 준비해주셨습니다.
옥자연: 어떤 분이신지 너무 궁금하네요. (웃음) 감사드립니다.
김현민: 영화가 개봉한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감독님은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인디돌잔치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완민: 어리둥절했어요. 완전히 잊고 지냈어요. (웃음) 알바를 하며 생업에 좀 더 신경을 쓰다 보니까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뜻밖에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오늘도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낯설고 감사합니다.
김현민: 배우님들과는 오랜만에 만나시는 건가요?
이완민: 제가 가장 최근에 본 사람이 자연 배우님이고, 그 전에 본 사람이 기윤 배우님이에요.
옥자연: 다른 사람 안 만나요? (웃음)
김현민: 배우님들에게는 이 영화가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하고, 개봉 후에 영화를 챙겨 보셨는지 궁금해요.
옥자연: 저는 원래 제가 나온 걸 잘 못 보는데, 〈사랑의 고고학〉이 제일 많이 본 영화인 것 같아요. 마지막 GV가 끝나고 한동안은 이 영화를 안 봤어요. 갑자기 인디돌잔치에 선정되었다고 해서 엄청 놀랐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투표를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많이들 우리 영화를 보고 싶어 해주신단 말이야? 오늘 만석인 거 아니야?’ 했어요. (웃음)
김현민: 원래 자기가 나온 영화는 잘 못 본다고 하셨는데, 왜 〈사랑의 고고학〉은 여러 번 보실 수 있었던 걸까요?
옥자연: 영화제 갈 때마다 기윤 배우님과 감독님이 본다고 하면 같이 보기도 했고,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얼굴이 빨개질 줄 알았는데, 영화가 숨겨놓은 것도 많고 섬세한 부분이 많아서 이 영화가 재밌게 느껴졌어요. 지금도 간혹 생활하다가 생각이 나요. ‘지금 이 마음이면 더 잘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김현민: 저도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영화제 때였는데, 아직도 머리 한구석에 ‘영실’이 있어요. 배우님이 그렇게 한구석에 영실을 담아두고 있다면 그 안에서 숙성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기윤 배우님은 이 영화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시나요?
기윤: 감사한 영화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촬영했을 당시에는 현장에 빨리 나가고 싶었거든요. 현장이 너무 좋았어요. 첫 촬영 때 숙소에 들어갔는데 침대 위에 선물 박스가 놓아져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숙소랑 너무 잘 어우러져서 그냥 여기 있는 거겠거니 했는데, 다시 보니 제가 좋아하는 과일이랑 간식거리가 있더라고요. 감독님이 이전에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물어보셨었는데, 그때 답했던 것들이 모두 담겨있었고 “저희 스태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인식을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쪽지도 있었어요.
김현민: 촬영을 하면서 감독님이 연출자로서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지도 궁금해요.
기윤: 촬영 전에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현장에서는 특별한 디렉션 없이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게끔 해 주셨어요.
김현민: 혹시 대사 중에 애드리브는 없었나요?
기윤: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현민: 정말 감독님이 대사를 너무 잘 쓰시잖아요. 물 샐 틈 없는 장면들이 있어요. 인식이 밀어붙이는 장면들. ‘인식’이라는 캐릭터가 관객의 응원을 받기는 어려운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앞서 선물을 주는 것처럼 인식에게 더 힘을 보태고 싶으셨던 건가요? 객석에 계신 PD님의 답변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PD: 진심으로 응원했어요. 자연 배우님이 말씀하시길 현장에 처음 올 때가 제일 두렵다고 하시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고,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 때문에 두렵다고. 그래서 그런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어서 의논을 하다가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숙소에 배우들이 왔을 때, 쪽지를 써서 선물을 주자고 생각했어요.
김현민: 절대 작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독립 장편 영화를 찍은 배우님들이나 스태프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고 이야기를 듣고는 하는데, 가고 싶은 현장이었다는 이야기가 큰 울림이 있네요. 자연 배우님은 어떠셨나요?
옥자연: 우리가 힘들었던 건 더위였어요. 특히 고고학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랑 같이 찍은 장면이 더워서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감독님 성향에 따라서 현장 분위기가 다르더라고요. 이완민 감독님이 온화하시니까 현장도 굉장히 온화했어요.
김현민: 제가 느끼는 이 영화의 지배적인 이미지가 장렬한 햇빛이거든요. 주로 여름에 촬영을 하셨을까 궁금했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이 영화를 생각하셨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름일까 궁금했어요.
이완민: 맞아요. 여름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색 보정 감독님이랑 같이 작업할 때 좀 더 더위를 느낄 수 있게끔 콘트라스트를 생각했어요.
김현민: 이 영화를 다시 보다 보니, 그 장면에 눈이 가더라고요. 영화 초반에 자연 배우님이 버스에서 쿠크다스 과자를 먹어요. 쿠크다스는 굉장히 연약한 과자잖아요. 그거는 다분한 의도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자연 배우님 왜 쿠크다스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옥자연: 연출팀에서 쿠크다스에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완민: 쿠크다스가 부서지기 쉬우니까 ‘영실’이라는 인물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어서 사용했어요.
김현민: ‘영실’이라는 인물은 부서지기 쉬운 느낌도 있지만, 굉장히 단단한 느낌도 동시에 있기 때문에 초반에 그 과자를 보여준 게 영화 후반부 인물의 이면을 보게 되었을 때 굉장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드실 때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호함에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이 영화를 쓰고 만들고, 관객들에게 흘려보내고, 관객들의 평도 들으면서 감독님이 나름 해소가 되는 지점이 있었는지, 새롭게 정립된 생각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이완민: 만드는 과정에서 ‘영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그게 계속 이어졌던 것 같아요. ‘영실’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김현민: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그런 점에 집중하셨던 것 같아요. ‘인식’의 작업실에서 ‘영실’과 ‘인식’이 짜장면을 먹으면서 자꾸 체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잖아요. 대화가 굉장히 체감상 길어요. 프레임을 방 바깥에 걸쳐 놓고 지켜보는 혹은 훔쳐보는 느낌으로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보게 되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감독님께서 그 장면 설계를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완민: 로케이션에 도착했을 때 마침 공간과 공간 사이에 창문이 있었고, 촬영 감독님이랑 이야기했을 때 프레임이 흥미로울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인식’과 ‘영실’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좀 연극적인,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배우 같은 느낌도 들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장면 같아서 좀 길게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김현민: 관객들과 거리를 두고, 이 관계를 객관적으로 한번 볼 수 있게끔 효과를 만드셨던 것 같네요. 저는 그런 장면에서 배우님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연기를 했는지도 좀 궁금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초반에 주고받았던 메시지가 가장 상징적이면서 크게 다가왔어요. ‘인식’이 ‘영실’에게 “당신의 전부를 가질 수 있냐.” 이런 문자를 보내니까, 그때만해도 ‘영실’이 ‘인식’을 좋아할 때니까 부끄러워하며 “물이 되어 같이 흘러요.”라는 답장을 보내잖아요. 저는 이게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장이었다고 생각해요. 배우님들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나요? ‘인식’은 소유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기윤: ‘인식’이라는 인물 자체가 유약하고 불안함을 잘 느끼는 인물 같아요. 인식은 그 당시에 너무 사랑을 하니까 소유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었나 봐요. 영실이 언젠가는 자신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에 좀 집착을 하는 것 같고, 현재의 ‘인식’은 자신의 과거 행동들이 잘못되었음을 인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과거의 ‘인식’은 본인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고, 본인 상처가 더 중요해서 ‘영실’에게 하는 ‘인식’의 행동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를 인지를 못하고 행동한 것 같아요.
김현민: 저도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인식’이라는 사람이 자기 불안에 허우적대는 사람 같았어요. ‘영실’은 어땠나요?
옥자연: 그 장면에서 되게 안타까웠던 것 같아요. 분명히 ‘인식’이 자신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읽혔을 텐데, ‘영실’도 좋아하는 마음이 크고 모르지는 않지만, 자신과 가치관이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너무 좋은 나머지 자기 스스로 그것을 무시하는 거 같아요. ‘영실’은 계절같이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물이 댐처럼 막혀서 흐르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현민: 그 물이 고여서 혼탁해질 수도 있고요. 이 대사가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면도 있고, 복선도 있잖아요. 이 대사를 어떤 마음으로 쓰셨나요?
이완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기보다는 그냥 할 법한 말들을 써 내려가려고 했어요.
김현민: 어떤 영화를 보면 작가이자 연출자가 한 인물에 조금 더 치우쳐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완민 감독님은 ‘인식’에 대한 이해도와 ‘영실’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동일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게 놀라운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완민: 노력은 했는데,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영실’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빌런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누구에게나 양측면이 있잖아요. ‘영실’도 마냥 긍정적인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실제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극단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로 인물을 설정했어요.
김현민: ‘영실’이 영화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영실’이 그렇거든요.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져요. 보통 택배가 오면 빨리 뜯고 싶어지잖아요. (웃음) 그런데 ‘영실’은 엄청 천천히 뜯고 있어요. 옥자연 배우님이 ‘영실’의 리듬과 템포를 인식해서 행동을 그렇게 하신 건지, 아니면 배우님의 속성이 묻어난 건지 궁금해요.
옥자연: 저는 전체적인 리듬은 게으른 게 있지만 행동은 재빨라요. 그래서 ‘영실’을 연기할 때는 리듬을 신경 쓰면서 연기했어요. ‘영실’이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감독님도 그런가보다 생각했어요. (웃음)
관객: 영화에서 소품 중에 백팩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백팩에 대한 의미가 있는지 감독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이완민: 영화에서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백팩을 바꿀까, 바꾸지 말까에 대해 의상감독님과 이야기를 했을 때, 그냥 유지하자고 결론을 냈어요. 그게 ‘영실’이라는 인물과 어울릴 것 같아요. 백팩 말고 다른 가방도 시도해봤는데, 백팩이 좀 자유로움을 주더라고요.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넣고 나갈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도 백팩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어서 ‘영실’도 왠지 연구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두 배우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의 정의가 무엇인지, 영화를 찍기 전과 후에 사랑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옥자연: 며칠 전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뻔한 말이 맞는 말 같아요. 내 것을 줄 수 있는 게 사랑이고, 내 것을 다 줄 수 있으면 정말 사랑하는 거고, 조금 남겨두고 주면 조금 덜 사랑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제가 ‘사랑은 이래야 해.’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였어요. 영화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살기가 힘들든, 권태기가 왔든 일단 안 헤어지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관계에 대한 건 늘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사랑하고 나를 돌보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윤: 모르겠어요. (웃음) 사랑을 하고 싶고요. 사랑은 존중인 것 같아요. ‘인식’처럼은 사랑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웃음)
김현민: 그러면 인식의 가장 최악인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기윤: 일단 인식은 어떤 말이 떠오르면 보통 한두 번 생각을 하고 내뱉을 법한데,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 같아요.
관객: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드실 때 영감을 얻은 작품이나 책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완민: 저는 배우님들과 연기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때 활용했던 레퍼런스가 있는데요. 부뉴엘 감독의 〈이상한 정열〉에서 ‘인식’ 같은 캐릭터가 나와요. 그리고 도스트예프스키의 「온순한 여인」 소설을 영화화한 브레송의 작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갇힌 여인’ 속 관계성이 인식과 영실의 관계와 비슷해서 레퍼런스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관객: 영화 초반에 비가 오는 장면은 일부러 의도를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완민: 비는 사실, 저희가 촬영 첫날이라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비가 와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자연 배우님이 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서 봤는데 너무 좋아서 그대로 촬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관객: 유적지와 박물관 촬영지가 궁금합니다.
이완민: 익산에서 왕궁리 유적지를 중심으로 촬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익산여성영화제에 갔다가 지인들과 왕궁리 유적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때 한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흥미롭다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발굴한 무언가가 옆에 놓여있었고, 그 분에게 갓 발굴하신 거냐고 여쭤보니 맞다고 대답해 주셨어요. 그때 이 고고학자가 여성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관객: 배우분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윤: 항상 이야기하는 장면이 침대에 누워있는 영실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영실이 대사를 하는 장면이에요. “쉬고 싶어”라고 하는데, 그 부분이 저는 볼 때마다 좋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인식이 영실에게 “영실은 유리로 만든 악기 같아.”라고 하는 대사가 떠오르네요. 이 대사가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어려웠거든요.
옥자연: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인식이 창밖에서 기웃기웃하는 장면도 좋아하고요.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사과하는구나.”에요. 대본을 보면서 확 다가왔던 대사였어요. 그리고 요즘의 날씨 때문에 영화가 더 생각이 나더라고요. 최근에 조급함을 조금 느끼곤 했었는데, 영화 속에서 영실은 느긋하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서 좀 더 느긋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김현민: 영화를 생각하면 영실은 혼자 꼭꼭 씹어 먹고, 누워있고, 엎드려 있는 장면이 생각나요. 그게 어쩌면 자기 치유의 과정에서의 동작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완민: 저도 자연 배우님과 같은 대사를 좋아해요. “사과하는구나.”라는 대사를 가장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프로파간다에서 나온 『대사극장 -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을 보았는데 거기에 〈사랑의 고고학〉 대사가 하나 있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할게.” 였는데, 이게 좋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현민: 맞아요. 인상적인 대사였어요. ‘인식’의 의견은 참고만 하고, 내가 어떻게 할지는 내가 결정하게라고 말하는 부분이 캐릭터가 변하는 순간이라 인상적이었어요.
관객: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영화가 상냥하다고 생각했어요. ‘영실’이 소화가 잘되는 우유를 먹는 걸 보고 되게 예민한 주인공이라는 걸 느꼈어요. ‘영실’이라는 인물이 실제 같았으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인물인데, 영화로 보면 너무나 공감이 많이 가고 누구나 ‘영실’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와닿더라고요. 만약 주변에 ‘영실’과 ‘인식’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기윤: 주위에 ‘영실’과 ‘인식’ 같은 인물이 있으면 저는 아무 이야기도 안 할 것 같아요. 상대의 인생이고 이야기해 봤자 들리지도 않을 것 같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 같아서 이야기하면 기분만 안 좋아질 것 같아요.
옥자연: 기윤 배우님 말도 이해가 돼요. 맞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언들이 있잖아요. 너무 친한 친구가 안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하면 그래도 저는 말을 할 것 같긴 해요. 말을 계속하는데도 안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다른 안정감을 생각해 볼 것 같아요.
이완민: 저도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상황파악 자체도 어렵고요. 거기에 도움이 되라고 레퍼런스로 〈사랑의 고고학〉을 마련하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김현민: 영화에서 ‘영실’의 친구는 ‘영실’을 굉장히 존중해주고 선을 침범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요. ‘영실’과 ‘인식’의 오랜 관계를 보면서도 끼어들거나 침범하지 않고, 그 관계가 다 끝나자 다독여주고 그 과정도 인정을 해주잖아요.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으셨나요?
이완민: 그래도 마지막에 “처음부터 싫었어.”라고 이야기를 하자 ‘영실’이 “왜 이제서야 말했어.”라고 하잖아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알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관객: 〈사랑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의 의미와 창작 의도가 궁금합니다.
이완민: ‘영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봤을 때 층층이 고고학의 층처럼 느껴졌고, 직업도 고고학자이기도 해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어요. 저는 보통 외부에서 창작 의도를 찾기보다는 제가 궁금한 것을 들여다보는 편이에요. 제가 그 당시에 궁금하던 것들을 더 잘 들여다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감독님은 요즘 어떤 것들이 궁금하신가요?
이완민: 요즘은 창작 활동을 하지는 못하고, 수업을 하고 있어서 수업 준비하느라 자료 준비하고,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반전’ 영화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고 요새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읽으면서 거기에도 반전에 대한 내용들이 있어서 2500년의 시간과 한 사람의 일대기, 역사적인 사건들을 감각해보려 노력해보고 있습니다.
김현민: 이런 것들이 모두 차곡차곡 쌓여 어딘가 묻어 있다가 언젠가 작품화 되는거죠. 그날을 기대해보겠습니다. 배우님들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기윤: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 와서 굉장히 떨리고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드리고 전주영화제에서 〈어텀 노트〉라는 영화를 상영하는데 시간 나시면 보러 와주세요.
옥자연: 이렇게 1년을 기념해서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객원 프로그래머를 맡게 되어서 그때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완민: 1주년 기념해 주셔서 인디스페이스에 감사하고, 이렇게 시간 함께 해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관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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