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끝에 관한 이야기
〈드라이브〉 정연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차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어딘가로 향하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혼자 있을 때. 차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관계의 연장선 속 동반자로서 기능한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브〉 속 인물들에게 차는 과거의 한 조각이며 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관계의 끝을 은유한다.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좋은 마무리에 대해 질문하는 정연 감독과 만나 영화 바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드라이브〉는 감독님께서 공식적으로 개봉하는 첫 영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본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입니다. 인디스페이스는 제가 오래전부터 다니던 극장이기도 한데 여기서 개봉을 하게 되어 놀랐습니다. 〈드라이브〉는 제가 직접 배급을 하는 영화입니다. 개봉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찍을 때부터 개봉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영화의 첫 에피소드를 2015년에 찍었으니 10년이 걸려 개봉을 한 셈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는 2021년과 2022년에 촬영을 하였고 2023년에 후반 작업을 마쳤습니다. 독립영화는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배급사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았고 직접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올해 상반기에 영화를 틀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배급까지 하셨는데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까요?
저는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하나하나 주변에 물어가면서 했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경우 제작지원을 받게 되어서 백재호 감독님이 멘토링을 해주셨고, 감독님께서 직접 배급을 진행하신 영화가 있어서 여러 가지로 조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텀블벅까지 하는 등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완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대해서도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는 흔하지 않은데, 이런 형식을 구상한 계기가 있을까요.
첫 번째 에피소드를 영화 워크숍을 통해 좋은 환경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시나리오로 장편영화를 준비하다가 더뎌지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전에 촬영한 첫 번째 에피소드를 이어서 차와 관련된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찍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에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를 찍었습니다.
첫 에피소드의 제목이 사실 ‘여름에’입니다. 두 번째는 ‘겨울에’, 세 번째는 ‘가을에’입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인 ‘봄에’까지 찍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찍지 못해서 총 세 편의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3부작을 연속해서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을 다르게 설정하였고 그럼에도 유기적인 연결을 위해 첫 에피소드의 김시은 배우께 세 번째 에피소드 출연을 요청드렸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처음 구상과는 다르게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우연과 시행착오의 집합’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조의진 배우의 머리 스타일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달라지는 것도 배우님이 연극 공연을 진행 중이실 때라 우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각 에피소드의 인물이 개별적이어서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것도 ‘우연과 시행착오’ 중 하나죠. (웃음)
우연과 시행착오로 만들어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각 이야기가 하나의 연결성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는 작가보다 멀리 간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렇다면 이렇게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구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첫 차는 친구가 준 흰색 아반떼였습니다. 당시 차에 대해 낯선 감정과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직접 운전을 하고 폐차까지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차가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로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촬영하기 한 달 전쯤 친구에게 또다시 차를 받게 돼서 그걸 가지고 첫 에피소드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에피소드마다 차를 가지고 이야기를 연결시켰습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계절을 다르게 부여하셨는데, 각 계절의 의미도 있을까요?
첫 에피소드를 여름에 찍었기 때문에 두 번째는 겨울에 찍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시간 순서상 다음 에피소드가 봄이 돼야 하지만 저는 봄이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 번째 에피소드는 가을에 찍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메타포는 계절보다는 차였습니다.
영화 전반에서 관계가 끝난 이후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관계의 끝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쨌든 하나가 끝이 나야지 다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카톡이나 다른 SNS 같은 매체가 세분화되고 개인화되다 보니 사람들이 대면해서 끝을 잘 안 내잖아요. 그런데 저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아직은 확실하게 끝을 맺고 싶은 생각이 있더라고요. (웃음) 그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저에게 중요했어요. 사실 갑자기 다큐처럼 나오는 장면이기 때문에 논쟁이 많이 됐던 부분이에요. 너무 길기도 하고요. 실제로 촬영 날 폐차장을 하루 동안 빌렸는데 배우분들보다 폐차 장면을 더 오래 찍었어요. 추운 날에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편집할 때 주변에서 이 장면을 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이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관계가 끝나는 모습을 물성을 가진 자동차가 해체되고 분해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사랑을 하다가 헤어지면 사랑한 시간의 2배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물들이 차와의 관계를 끝내는 과정을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도 이 과정을 함께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저도 큰 스크린으로 이 장면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와, 감독 참 잔인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리고 파헤치고 분해하는 이 과정이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에서 가장 필요한 장면은 그렇게 모든 것이 해체된 후 껍데기만 남은, 그저 고철뿐인 그 모습이 제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관계를 잘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는데, 혹시 차기작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 중이신지, 또는 영화를 통해 발화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 중인데요. 말도 안 되는 블록버스터 시나리오도 생각하고 있고요. (웃음) 아마도 저는 이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는 영화를 계속 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끝을 보고 당해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어떤 시나리오든지 끝까지 써보고 평가를 당해본 다음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텀블벅도 진행했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 오는 분들 대부분이 아는 분들이에요. 또 김시은 배우님이 워낙 독립영화 쪽에서 인기 있으셔서 배우님을 보러 오는 분들도 있고요. 그러다 한 번씩 모르는 분이 영화를 보러 오시면 너무 놀랍고 소중합니다. 또 이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도와주셨고 폐차된 차는 지인이 제공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극장에서 개봉을 할 수 있을 줄 몰랐는데 필름포럼에서 처음 제 영화를 틀어 주었고 고향인 부산에서도 개봉을 해서 부모님께도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의미 있는 곳인 인디스페이스에서까지 영화를 개봉했고요. 너무 감사하게도 이런 경험을 하면서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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